'번역'에 해당되는 글 76건

  1. 2009.03.14 욕먹을 두려움 21
  2. 2009.02.10 독촉전화 23
  3. 2009.01.06 2008년 정리 10
  4. 2008.12.24 짜증 22
  5. 2008.09.10 혁명의 매력 10
  6. 2008.08.07 불경기 10
  7. 2008.07.23 어렵다 19
  8. 2008.06.30 본전치기 10
  9. 2008.05.27 책구경 15
  10. 2008.05.23 월말 19

욕먹을 두려움

책보따리 2009. 3. 14. 16:31

실제로 욕하는 사람들과 대면할 일은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긴 하지만 번역가 역시 대중에 노출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직업이기에 어느 정도 욕 먹을 각오는 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검증과 검색 수준이 뛰어난 독자들을 상대로는 더욱 그렇다. 나 역시 과거에 번역서들을 읽으며 통 내용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문장 호흡이 길어 심히 얽힌다 싶으면 <번역이 뭐 이따위야!> 또는 <번역이 엉망이군>이라는 말을 아무 생각없이, 수없이 외쳤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지금도 내노라하는 이름난 번역가들이 옮긴 책에서도 혹시 제자를 대리 번역시켰나 싶은 의혹이 드는 이상한 문장이나 비문을을 발견하는 일이 더러 있을 정도이니 오죽하랴.

어차피 입맛 다양한 독자들을 일일이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번역문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로 위로를 삼기는 하지만, 굳이 지난번 시리즈물 번역건으로 속쓰렸던 일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특히 잘 팔렸으면 싶은 책이거나 잘 팔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책의 경우는 욕먹을 두려움 때문에라도 점점 최종 원고를 넘기는 일이 망설여진다. 물론 그래야 번역의 질이 높아지고 더 정성들인 문장이 태어날 터이니 나에겐 도움이 되는 고민이긴 한데, 아무리 고민을 해봤자 딜레마는 깊어만 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과거 출판사들은 대부분 독자들을 위해 가독성이 뛰어난 매끄러운 번역문장을 선호하여 너무 복잡한 문장은 번역이나 편집 단계에서 <알아서> 정리했지만 최근들어선 가독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원문의 문체와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번역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쉽게 술술 잘 읽히는 문장만이 능사는 아님을 책만드는 사람들도 책 읽는 사람들도 깨닫기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나 역시 골머리가 썩을지언정 쉽게 번역하자고 대여섯줄씩 이어지는 복잡한 문장을 생선 토막치듯 난도질해 편히 옮기는 것보다는 기필코 유려하게 원문과 <최대한> 유사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고 나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 걸 더 즐기는 편이다. 복잡한 만연체로 쓴 작가의 작품을 선택해 읽는 독자라면 호흡이 더뎌 진도가 느리더라도 문장을 곱씹어 읽는 정도의 수고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글을 다듬는 과정을 <윤문>이라고 하는데, 번역서의 경우 윤문의 정도가 얼만큼이 적당한지, 원작 훼손과 가독성의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 양보를 할 수 있을 것인지의 논란은 아마도 인류가 다른 언어권의 책을 읽어대는 행위가 끝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옷을 바꿔입으면서 이미 원전은 훼손을 피할 수 없지만, 그 훼손의 정도를 최소로 줄여 전달하는 것이 번역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할 때 번역가의 존재는 눈에 띄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은이와 독자 사이의 소통에 옮긴이의 개입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독서를 이끄는 번역. 냄새 고약한 정로환에 분홍색 껍질을 입혀 냄새를 없앤 정로환 당의정 같은 느낌의 번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약효는 똑같으니 본질은 같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겠지만, 일단 다른 언어로 먼저 쓰인 책을 만들고 읽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라면 거북한 냄새가 나는 정로환은 냄새 나게, 달콤하고 알록달록한 새알 초콜릿은 또 그렇게 경쾌하고 달콤하게, 번역가도 편집자도 독자도 그대로 인정하고 삼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내 경우도 이 생각은 어디까지나 내가 번역작업을 하며 목표로 삼는 <이상>일 뿐, 현실에선 끊임없는 유혹을 느낄 때가 많다. 이왕이면 좀 더 그럴듯하게 유려하게 문장을 다듬고 싶은 유혹. 읽다가 턱턱 걸려서 짜증났던 과거의 수많은 번역서 독서 경험도 원인으로 작용했겠고, 일단은 쉽게 풀어 독자 입에 쏙 넣어주는 매끄러운 번역을 선호했던 과거의 번역경향에 이미 내가 꽤 길들여진 탓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원문이 워낙 유려하다면 오히려 그 느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할까 염려해야 하는 형편이니 더욱 공을 들이면 될 일이다. 하지만 원문이 의도적인 비문이라면?

이번에 번역한 책이 그랬다. 중국인 지은이가 <고의로> 서툰 영어로 쓴 일기식 소설. 초반부엔 완전한 문장이 단 한줄도 없는 단어의 나열이고, 맞춤법을 틀리게 쓰는 건 유머스러운 애교 수준이었으며 중반 이후에도 주어와 동사가 마구 생략되거나 시제는 무시되었다. 물론 처음엔 재미있는 작업이라 여겼고, 점점 문장력이 향상되는 지은이의 글쓰기 과정을 독자들도 생생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원전의 비문을 온전한 문장으로 만들려는 관성 같은 것이 되살아났고, 몇번이나 서술어를 지우고 다시 눈에 거슬리게 비문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출판사 및 담장자와 의논하여 결정한 번역방향이기도 했고, 그 책의 독특한 특징이므로 옮긴이로선 당연히 지켜야할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_-;; 그렇게 어렵사리 고민하고 넘긴 원고가 교정지 형태로 다시 되돌아온 지난주 내내 나는 역자교정을 하며 새삼 두려움에 떨었다. 책속의 수많은 비문과 불온전한 문장, 서툰 글쓰기와 표현을 과연 독자들이 순순히 원전 때문이라고 여길 것인가? 아니면 옮긴이의 역량부족이라고 불평하며 짜증이 나서 책을 집어던질 것인가?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하마터면 역자후기에 수많은 비문과 서툰 글쓰기 및 표현은 지은이의 의도이니 옮긴이의 책임이 <절대> 아니라고 티나게 유치한 변명을 적어넣을 뻔했다가 참았다. 욕을 할테면 하라지. 나만 떳떳하면 되는 거니까, 라고 마음을 다잡고는 있는데 그래도 슬며시 되살아나는 두려움은 어쩔 수가 없다. 욕 먹는 거 너무 싫은데. 온당한 욕이라면 발전의 밑거름이라도 삼겠지만, 부당한 욕은 나같은 소심생이 투덜이에겐 큰 상처와 좌절을 남긴다. 잘해야 본전인 번역 인생에서 앞으로도 욕 먹을 일은 수없이 많을 텐데 햇수가 거듭될수록 대범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나마 발전적인 고민이라고 새삼 위로를 하고는 있지만, 이 책 잘 팔렸으면 좋겠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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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촉전화

투덜일기 2009. 2. 10. 15:39

사람마다 죽어라 하기 싫은 일이 다르겠지만
워낙에도 먼저 전화하기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뭔가를 독촉하는 전화가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 축에 들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금전 문제의 독촉전화라면 더더욱.

아주 가끔 몇년씩 원고료 지불로 속을 썩이는 출판사가 있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힘깨나 쓰는 지인들이 당장에 나선다.
"내가 대신 받아다 줄까?"
과연 그들이 험상궂은 얼굴로 찾아가 단박에 받아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상상을 해보면 즐겁기는 하다. 요리조리 뺀질뺀질 결제를 미루는 악덕 담당자의 멱살을 쥐고 위협해
당장 원고료를 받아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나의 하수인이라니.
다만 그러고 나면 출판계에 소문이 자자해지겠지.
깡패를 동원해 밀린 원고료를 받아내는 무시무시한 번역가이니 나와는 웬만하면 상종하지 말라고. ㅎㅎ

가끔 정말로 사장의 개인 주머니는 배불리면서 결제에 인색한 출판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이 업계에 발을 들이민 후 해마다 최악의 불경기에 허덕이고 있다는 출판계 사정을 빤히 아는 나로선
무작정 배째라 원고료 독촉을 해댈 배짱도 없고 담당자의 얼굴을 봐서라도 늘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웬만해선 독촉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는 것.
다행히 최근 꾸준히 거래하는 출판사들은 때가 되면 다들 알아서 결제를 해주는 양상이라
죽어라 싫은 독촉전화를 할 일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문제는 친분관계가 쌓이기 이전에 순전히 단발성 작업으로 연결되었는데 계약 및 번역 이후 차일피일
결제가 미뤄지다 담당자들이 모두 퇴사하고 나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경우다.
그나마 책이라도 출간되었으면 상황이 나은데
중간에 기획이 엎어져 출간은 물 건너 가고 흔적도 남지 않은 책의 경우, 담당자마저 없으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딱 2년전에 번역 원고 넘기고 마냥 기다리다가 작년에 드디어 출간포기 결정을 들은 책이 있는데
얼굴 익힌 담당자들은 다 떠나고 그나마도 전화 통화하던 후임자마저 퇴사한 후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으니 가뜩이나 출간도 안 된 책의 결제가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그럴 땐 나라도 나서서 자꾸 독촉질을 해야하는데, 뼛골 빠지게 작업해서 넘긴 원고료 달라는 것임에도 나는 왜 그리도 결제 독촉전화 하는 게 싫은지. ㅠ.ㅠ
전화 해야지 전화 해야지, 작년에도 몇달을 벼르다 새로운 편집부 팀장과 통화를 했더니 넌지시 관리부 담당자와 직접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마침 그날 관리부 차장은 자리에 없었고....
나는 또 꼬박 한달을 넘게 벼르고 별러 겨우 오늘 전화 걸 용기를 냈다.

그러나.
관리부 차장은 내가 2년 전에 그런 번역원고를 넘겼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_+
사실을 확인해봐야겠단다.
미치겠다. 
왜 진작 독촉질을 하지 않은 건지, 이럴 땐 우유부단하고 행동력 떨어지는 내가 정말 짜증스럽다.
여기에 이런 창피한 푸념을 적어 놓는 것은 수일 내로(가능하면 내일!) 추후 독촉전화를 해야겠다는 뒤늦은 의지의 표현이다.

결심 1. 이번 결제 건이 해결될 때까지 일주일에 한번은 반드시 독촉전화를 한다.
결심 2. 내키지 않는데도 부탁을 거절 못해 억지로 맡는 일은 반드시 탈나게 되어 있으니 앞으론 확실히 거절하자.
결심 3. 계속되는 출판불황에 원고를 넘겨도 결제일이 불확실하니 큰소리 치려면 마감일이라도 잘 지켜 원고를 넘기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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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정리

놀잇감 2009. 1. 6. 21:38

토룡마을 주민들이 대거 보이코트할 양상을 보여 2008 베스트 포스팅 릴레이가 존폐위기에 놓였다니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나라도 동참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을 이런 식으로나마 정리해두는 건 나 같은 비기록형 인간에게 퍽 훌륭한 갈무리방법이므로, 옆구리 찔려서라도 적어두면 십년쯤 후에 차곡차곡 돌아볼 때 굉장히 흥미로울 듯하다. ^^;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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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투덜일기 2008. 12. 24. 20:17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무조건 기분좋게 보낼 수야 없는 일이고 사실 나와는 별 무관한 날이니깐
그냥 평소 까칠한 성격대로 혼자 구시렁거리며 털어버려야겠다.

소소한 짜증의 원인이야 누구에게나 늘 있으며 얼마간 마음 끓이다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요 몇주일 증폭되는 짜증의 원인은 결국 내가 뿌린 씨앗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단기간에 끝날 것도 아니어서 더욱 속이 곯는다.

첫번째는 지난번에도 자아비판이랄까 제발등 찍기랄까 민망한 고백을 한 적이 있었던 번역건.
4권짜리 시리즈물을 두 권 번역한 뒤 세번째 책의 계약을 앞두고 있었을 때 담당자들이 바뀌면서 트집을 잡혀 이후 계약이 무산되었던 일이 있다. 그  사람들이 제 아무리 예의나 출판개념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사소하든 말든 내가 빌미를 제공하여 일이 불거졌으니 다 내 잘못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들과는 두번다시 상종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앞으론 바쁜 마감에 시달리더라도 번역에 좀 더 신경쓰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였으니까.
그것으로 그냥 덮어두고 잊을 수 있으면 좋겠으나 상황이 또 여의치가 않다.
처음 상하 두권으로 냈던 소설을 단권으로 재출간하고 내가 번역한 두번째 시리즈가 출간된 뒤,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으며 출판사에선 영화개봉과 더불어 특별판을 제작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작년 말에도 몇년 전 내가 우리말로 옮겨 출간된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워낙 흥행이 안되는 바람에 곧장 극장에서 내려와 주변에서 아무도 알은체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할리우드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꽤나 흥행에 성공한 모양이다. 비수기인 요즘 관객수 백만을 넘어섰다나 어떻다나, 뉴스에서도 다뤄지는 상황이니 뭐.
설상가상, 영화나 드라마가 뜨면 원작도 덩달아 팔리는 법이어서 책도 엄청나게 팔리고 있는 눈치다.
그걸 배 아파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인세계약도 아닌 책이 수십만 부(실제로 수십만 부가 팔렸을 거란 얘기는 결코 아니다!) 팔린들 나한테 더 돌아오는 금전적 이득은 없으니까.
아 그런데, 속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만 인사랍시고 그 책과 영화에 대해서 알은체를 하며 축하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짜증스럽다는 얘기다!
별 문제 없었던 책이라면, 그런 연락을 받더라도 후후 낮게 웃으며 "많이 팔리고 장사 잘 되도 저랑은 상관 없는 거 아시잖아요"라고 한 마디 대꾸하면 그뿐이겠는데 이번 책은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잖아!
더욱이 고약한 출판사에서는 재출간된 첫권과 나중에 출간된 2권의 증정본도 보내주지 않았다. 2권의 경우 계약철회 통보와 출간일정이 얽히면서 역자교정도 없었고 심지어 역자후기도 싣지 않은 채 출간된 상태.
당시에 기가 막히고 열이 받쳤지만, 내 의무는 다하려고 역자후기와 교정 문제를 문의했지만 저들은 내 이메일에 아무런 회신도 하지 않았다.
그런 예의없는 인간들과 더는 상종하고 싶지가 않아서 나중에 서점에 나온 책을 보고도 증정본을 요구하는 대신 나는 씁쓸하게 한권씩 주문을 해서 책꽂이에 꽂아두었으며, 완전히 마음을 비웠다는 의미로 책과 함께 받은 휴대폰 액정클리너도 달고 다녔었다.
그런데, 이번주 내내 몇번이나 영화흥행과 더불어 예약판매까지 하고 있는 세번째 시리즈(다른 사람이 번역한!) 출간 때문에 덩달아 나한테 공연히 축하전화 비슷한 것이 걸려오니 그야말로 짜증스럽다. 출판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책 잘 팔린다고 옮긴이가 떼돈 버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는 걸 잘 알 텐데 왜들 그러는지 원!!
(제목 언급을 교묘히 회피하긴 했지만 이쯤하면 내 정체가 다 드러난 걸까? 아닐까? 에라 모르겠다.)

국내외 흥행에 힘입어 이미 할리우드에선 2번째 시리즈 영화 제작을 결정했다고 하니, 돌아가는 꼬락서니로 봐서는 다음 영화개봉 때도 나 역시 덩달아 일부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또 있다. 단권으로 출간된 1, 2권 원고를 아무래도 출판사측에서 나의 동의 없이 문장에 손을 댄 모양인데, 대체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번역문장이 훼손되었을 확률이 더 높고 그에 대한 욕도 내가 먹어야한다는 사실이다.
출판사에서 애당초 문장 스타일로 꼬투리를 잡아 옮긴이를 <잘랐>으니 지들이 고쳐놓은 문장에 대한 비난 역시 내 탓으로 돌릴 거라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벌렁 분노가 치민다. 으으으.

두번째 짜증의 원인 역시 일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중견 출판사들과 일을 하지만 초창기엔 나도 당연히 작은 출판사에서 번역을 시작했고 경력 없는 번역자를 키워주다시피한 곳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지금도 그대로다. 오랜 출판불황을 겪으며 안타깝게도 그 출판사는 몇년 전 부도를 맞았고 사업등록은 유지하고 있지만 사장님 혼자 고군분투하며 재기를 꿈꾸고 있다. 그 회사에서 알게 된 편집자며 기획자, 번역자들은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로 남아 있기 때문에 가끔 모이면 그 회사와 사장님 걱정을 잊지 않았고, 가능하다면 조금씩 일을 거들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시간이 되는 대로 번역이든 편집이든 디자인이든 도와드리자는 식으로.
그러다 나는 정말로 몇년 전 운좋게 작업스케줄이 비는 틈에 그 출판사를 위해 얇은 책 한권을 번역해주었다. 언제 출간될지 기약도 없는 일이었고, 원고료는 혹시 책이 대박나면 주세요, 라고 흔쾌히 제안할 정도로 처음엔 순수하고 기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몇년이 지난 지금 새삼 그 일의 뒤치다꺼리를 짬짬이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니 왜 이리 짜증이 날까. 그때도 긴급하게 출간일정을 잡겠다 하여 몇날몇일밤을 홀딱 지새워 번역을 마치고, 힘겹게 역자후기까지 써서 보냈는데 몇년이나 소식이 없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인지, 더욱 미적지근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몇년 새 간사하게 변해버린 내 마음도 부끄럽고 잔뜩 밀린 다른 일은 어떻게 하나 한숨이 나오면서 과연 얼마나 걸릴지 모를 <공짜 일>의 순서를 어떻게 잡아야할지 갈피가 안잡히고,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짜증스럽기만 하다. 

이달들어 걸핏하면 "나 요즘 슬럼프인가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좋아하는 일이고 재미있게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어서 선택했는데 왜 요샌 만사가 다 시큰둥하고 열정이 일지 않을까.
결국 가장 큰 짜증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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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매력

책보따리 2008. 9. 10. 23:12
세계사에 몹시 취약한 내가 요즘 어쩔 수 없이 러시아 혁명사를 공부하고 있다.
1년 넘게 미루고 미뤄두었던, 볼셰비키 혁명부터 세계 1차대전에 이르는 대하소설을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은 했지만 작업은 멀미나게 힘들고 온종일 용을 써도 진도는 눈곱만큼씩 나가는 중이라 앞이 캄캄하다.
그런데 나 같은 무식쟁이에게도 러시아 혁명의 역사는 몹시 매력적이다.
물론 비러시아인의 비판적인 사관으로 쓰인 책과 트로츠키 같은 혁명의 주동 인물이 기록한 책은 느낌이 전혀 다르고, 양쪽의 견해를 모두 받아들인다 해도 순수한 의미의 인민 혁명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허무한 결론에 도달하기 십상이지만 그래도 혁명은 (유혈폭력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유혹적인 변화의 시도인가.

혁명을 꿈꾸었던 수많은 역사적 인물과 실패를 맛본 인간들의 기록을 들여다보며 갑자기 혁명가를 만나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온종일 했다.
세상은 늘 혁명가가 필요한 냄새나는 부패를 떠안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결국엔 혁명가도 늘 부패하거나 권력에 숙청당하는 역사가 반복되긴 했지만
퇴폐 낭만주의에 빠지거나 말거나, 아무리 봐도 '혁명'은 참 멋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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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

하나마나 푸념 2008. 8. 7. 17:35

피부로 마구 실감하는 건 아니지만 워낙 심한 불경기라 오히려 IMF 차관을 들여와야 했던 외환위기 때보다
더욱 살기가 어렵다고 난리다. 언론에서 괜히 부추기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조그맣게 장사나 사업을 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일을 하기는 하는데 좀처럼 이윤을 남길 수가 없다니 말이다.

불경기엔 당연히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갑을 닫으니 소비는 위축되고 경기는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위정자들이 내놓는 '경기부양책'이라는 것들이 과연 힘을 발휘하긴 하는지도 사실 나는 관심이 없다. 과거 외환위기 때 국민들이 나라를 살리겠다며 금모으기 행사 같은 걸 벌이기도 했지만, 그 때 돈을 번 건 이스라엘 금업자라던가. 나중에 우리나라에선 웃돈을 주어가며 다시 금을 사들여야했다고 들었다. 뭐든 떠들썩하고 요란하게 벌이는 생색내기엔 언제나 구린 구석이 감추어져 있고, 이면엔 겉보기와 다른 고도의 계략이 존재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불경기에 사람들이 줄이는 비용엔 문화비가 포함되니, 학습지와 아동물을 제외한 출판물은 불경기에 속수무책으로 타격을 받는다. 안 그래도 워낙 망하는 출판사도 많고 새로  생겨나는 출판사도 많은 곳이 출판계이긴 하지만 조만간 또 수많은 소형 출판사들이 떼거지로 도산했다는 소식이 들릴까봐 걱정이다.
몇달 전부터 프리랜서로 출판계에 종사하는 지인들은 재정상태가 어려워진 출판사가 많아 결제가 미뤄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귀띔을 해주었었다. 꽤 탄탄한 규모의 출판사에서도 편집료나 번역료 지불을 마냥 끌고 있다나.

과거 뒤통수를 치듯 결제문제로 몇몇 출판사와 골머리를 썪은 뒤로는 사실 나도 부끄럽지만 <좋은 책>을 번역하겠다는 욕심보다 <안정적인 결제조건>을 우선으로 계약을 추진하는 게 사실이다. 사장님과 편집자까지 속속들이 친하고 애정을 갖고 있어도 회사가 어려워져 문을 닫게 되거나 몇년씩 지불을 끌면 자선사업 하는 셈 치고 번역료를 포기하지 않는 한 서로 민망한 관계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정말로 어떻게든 돕고 싶은 마음으로 무상 번역을 해준 출판사도 있기는 하지만, 가뜩이나 부정기적이고 불안정한 프리랜서의 수입체계에 자선사업을 자주 할 수야 없으니 조직을 떠나 좋아하는 일을 하네 마네 평생 자유를 추구하네 마네 그럴듯한 겉모습을 자랑하긴 해도 결코 재정적인 관계를 소홀히 할 순 없다.

내 나름대로 약삭빠르게 운신했던 덕분에 최근 몇년 사이엔 번역료를 망연하게 <떼인> 경험이 없긴 한데
작년부터 번역료 지불여부와 상관없이 무작정 출간이 마냥 보류, 지연되는 사태가 더러 생기더니
급기야 출간을 아예 포기하는 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굳이 제작비를 들여 출간을 할만큼 책에 대한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작년까지 우후죽순으로 임프린트를 늘려 이름 다른 자회사를 대거 만들어낸 출판사들일 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어차피 휴짓조각으로 변할 상업적인 책이니,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 인쇄비며 광고비며 인건비며 크게 절약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실컷 공들여 번역해놓고 엎어지는 책들이 늘어나는 건 번역자로서 몹시 입맛이 쓰다. 으휴.

올들어 벌써 두 번째로 <죄송하지만 회사 여건상 책을 출간을 하지 않게 되어 송구하다> 내용으로 출판사가 보낸 이메일을 열어보니 새삼 불경기는 불경기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연한 위기감과 불안감에도 긴장할 줄 모르고 지속되는 일 거부감은 또 어쩐 일인지 원.
오늘은 맥이 빠졌다는 핑계로 또 슬며시 작업할 책을 저만치 밀어놓았다.
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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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투덜일기 2008. 7. 23. 23:51

또 시작됐다.
나의 옮긴이의 말 울렁증.
일주일 내내 고민해도 가닥이 잡히질 않아 며칠째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옛날에 읽으며 주옥같은 문장에 반해 따로 챙겨두었던 책도 읽고 최근에 사들여 쌓아두고만 있던 책들도 읽으며, 뭔가 그럴듯한 화두가 떠오르길 빈다기보다는 글솜씨 뛰어난 작가들의 <글발>이 어떻게든 전염병처럼 내게 옮겨오길 빌었다.
그런데 별 소용이 없다.
그나마 밤이 내리면 감상의 과잉에 허덕이게 될까 싶어 일부러 연일 진한 커피를 들이키며 밤의 마법을 기대했건만 눈주변만 시커매질 뿐 그마저 효험이 없다.
오늘은 급기야 술의 힘을 빌어볼까 캔 맥주를 땄다.

번역가도 작가랍시고 꼬박꼬박 나를 선생님이라 추어올리는 이들은 내 이런 부끄러운 고통을 알까.
당연하겠지만 우리말로 옮기면서 애정이 많이 생긴 책일수록 역자후기 쓰는 게 어렵다.
번역하며 내가 즐긴 만큼 그 매력과 묘미를 독자들도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몇 문단의 진솔한 글로 전할 재주가 내게는 참 멀기만 하다.

종일 마셔댄 카페인에 맥주의 알코올 기운이 더해져 알딸딸 뇌가 뜨거워지니 기분은 아삼삼 좋기만 한데,
종일 열어둔 한글 문서엔 좀처럼 글자수가 늘어나질 않고
애꿎은 블로그만 들락거리고 있다.

전에도 술기운에 옮긴이의 말을 쓴 적이 있던가 없던가.
오늘은 다행히도 밤의 마법에 촉촉한 비의 효과까지 겹쳐지니 뭔가 결실이 있으려나 어쩌려나.
으휴.
새삼 느끼는 글쓰기의 어려움.
정말이지 난 아직 멀었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 재주에 불타는 질투심을 느끼는 밤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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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치기

2008. 6. 3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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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구경

책보따리 2008. 5. 27. 16:13
언뜻 떠오른 글의 제목으로 <난산>이라고 적으려다가 말았다. 가끔 자기 책을 자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책 한권 나오는 과정에 어찌 감히 생명의 신비와 어미와 자식 간의 오묘한 공감대까지 끌어다 붙일 수 있겠나 싶어서.
어쨌거나 <난산>이라는 말이 떠올랐다는 얘기는 요즘 내가 옮긴 책구경 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 원래 출판이라는 것이 시의적절한 것 같아 기획했다가도 교묘한 <타이밍>을 놓치면 아예 통째로 엎어지기도 하고, 시리즈로 기획했다가 초반에 생각만큼 판매가 되지 않으면 뒤에 만들려던 책들은 다 준비해 놓고도 마냥 썩히기 일쑤이며, 저자나 번역자가 속을 썩이며 원고를 넘기지 않아 질질 출간이 지연되는 예도 허다하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출간이 미뤄지거나 영업전략상 출판 순서가 뒤바뀌는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자 입장에서 제 아무리 성실하고 부지런히, 꾸준하게 번역을 해도 어떤 해엔 책이 가뭄에 콩나듯 두어 권 나오다 말더니 그 다음해엔 한꺼번에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마구 쏟아져 나와 한달에 한꺼번에 세권이나 신간코너에 내 이름이 박힌 책이 깔릴 때도 있었다.

작년엔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2권 말고 새로 작업한 번역서는 겨우 2권이 출간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사정이 있어 하반기엔 일을 거의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이번에 세금정산 때문에 작업 스케줄을 확인하니 놀랍게도 2007년 1년 동안 번역을 완성해 넘긴 원고가 5권이나 되었다. 개인적으로 생계유지를 위한 1년 번역 목표량을 6권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5권이면 얼추 목표를 달성했다는 뜻이다.
작년에 출간된 2권 가운데 하나는 그나마도 재작년에 작업한 책이었으니, 작년에 일해서 제대로 빛을 본 책은 달랑 1권. 4권의 책은 세상구경을 할 날이 2008년으로 넘어갔다는 얘기인데, 연초부터<곧> 출간할 계획이라던 두어 권의 책들은 차일피일 편집이 미뤄져 얼마 전 들으니 6월에나 나온다는 것 같다(그 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실제로 나와야 나오는 거지 뭐. -_-;;)

결론은 5월이 다 가도록 2008년도엔 버젓이 옮긴이로 내 이름을 달고 출간된 책이 한 권도 없었다는 점.

기획이 아예 엎어져 원고가 사장되는 경우(심하면 원고료를 홀라당 떼먹히기도 한다 ㅠ.ㅠ)도 겪어 보았기에, 일단 원고를 넘기고 번역료까지 챙겨받고 나면 책이 나오든 말든 내 소관이 아니라 여기며 모른체 하고 싶지만 사람 마음이 또 그렇지가 않다. 편집자의 교정과 표지 디자이너의 정성스런 손길을 거쳐 떡하니 책으로 인쇄되어 세상에 선을 보여야 그간의 모든 노고와 정성이 제대로 보답을 받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들이는 품과 에너지와 정성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 출판계의 번역료 수준은 그리 후한 게 아니므로 나처럼 부끄러운 공명심으로 그 모자란 성취감을 채우려는 인간은 해마다 내 이름을 달고 차곡차곡 늘어나는 번역서의 권수가 꽤나 중요하다. 번역하는 사람들이 더러 모이는 자리가 생기면 우리나라도 얼른 일본처럼 출판계가 발전하여 매절 번역료가 원고지 장당 최소 만원은 돼야 한다고 별 희망도 없는 이야기로 핏대를 세우기도 하는데, 정말로 그런 날이 오지 않는 한 생계를 위해서라도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려는 나 같은 치졸한 번역가의 욕심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ㅎㅎ

어쨌거나 새해 들어서도 내내 작업은 늘어지기만 하여, 책구경 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원고 넘기기도 죽도록 힘들어 허덕이고만 있었는데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무려 4년전에 한두 꼭지 번역에 참여했던 문학선집이 드디어 출간된다는 것. 교수님 소개로 얼떨결에 맡는 바람에 당연히 주최측도 아니었고, 그간 통 소식이 없어서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에 책이 출간된다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번역료와 해설료도 지급되는 모양이었다. 당연한 것인데도 어찌나 고마운지 내심 몹시 뿌듯해 하며 이제나 저제나 책구경 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더니 오늘 증정본이 배달되었다. ^^;;

신비주의 블로그를 표방하는 터라 이곳에 본격적으로 책자랑을 할 날은 요원하리라 생각하지만, 이 책은 공역이니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리도 없고 ^^ 문학선집이라 작가들도 십여 명이어서 옮긴이들 이름은 아예 표지에서 구경도 할 수가 없으니 막 자랑하고 싶어졌다. 일반 서점에서도 판매가 될 책인지 어쩐지도 잘은 모르겠으나 도서관에나 보급될 확률이 높은 듯하고, 엮은이의 이름도 하도 거창하여 공동 번역자 이름으로 검색될 가능성도 별로 없을 듯하니 더더욱 금상첨화다. 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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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말

투덜일기 2008. 5. 23. 02:31
주말이니 월말이니 연말이니 하는 건 단순히 인간들이 편리하려고 정해놓은 시간의 구획일 뿐이라고 건방지게 무시해보지만 조직에 매인 것도 아닌 자유업자라면서 나란 인간은 그 시간의 담벼락을 좀체 쉽게 넘을 수가 없다. 일부러 요번에 연장받은 마감일은 월말을 피했건만 게으름 부리다보면 어느새 월말이고, 요일 상관없이 날짜로 턱 못박아 놓은 마감 약속일도 금요일 쯤에 걸리면 그냥 확 보내버리고 주말에 시체놀이 하거나 팽팽 놀면 얼마나 좋으련만 주책맞게 미련을 못 버리고 주말에 좀 더 다듬어보면 원고가 더 훌륭해지지 않을까 욕심을 부리게 되니, 나의 데드라인은 대부분 월요일, 월말 아니면 월초에 몰릴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말로는 초절정마감모드라고 되뇌면서 행동과 정신은 마냥 나사가 풀려 헬렐레하는 데다 늘어진 정신에 발맞추어 몸까지 골골대니, 늘어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원성과 양치기소녀의 거짓말 뿐이다.

게다가 5월은 종합소득세 신고의 달이렸다. -_-;;
국세청 홈페이지 접속도 어려운 월말 되기 전에 후다닥 작년처럼 해치워야지 작정했었는데, 1차 접속했다가 뭔가 계산이 잘못됐다기에 정신 사나와서 일단 후퇴하고 보니 별것 아닌 세금신고마저 발목을 붙드는 떼쟁이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작년에 나는 하반기 내내 거의 일을 못했기 때문에 벌이도 당연히 시원치 않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날아온 소득신고서를 보니 금액이 놀랍도록 많다. +_+ 그간 밀렸던 원고료를 작년에 꽤나 많이 받아냈다는 뜻인데 난 왜 줄기차게 계속 가난했던 걸까? 장부나 가계부 따위를 쓸 리도 없고 그저 달력에 원고료 입금된 날짜나 적어놓는 게 전부인데, 작업실 출근을 가뭄에 콩나듯 했던 데다 통장도 없이 인터넷 거래만 하는 계좌로 바꾸고 나선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관리가 형편없다 느끼긴 했지만, 작년엔 원고료 목돈으로 들어왔다고 곗돈 탄 기분으로 턱턱 엄마 용돈 드리고 사방에 밥산다고 껄떡댔던 기억이 거의 없건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ㅜ.ㅜ

다 아메바 뺨치는 기억력 탓일 거라고, 설마 나한테 주지도 않은 돈을 출판사들이 내 앞으로 신고 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세금신고 하기 전에 먼저 작년 계약서들이랑 통장 내역도 좀 뒤져봐야겠다고 작심하니 마음이 더 바쁘다. 으휴. 얼마나 내공을 더 쌓아야 꾸물거리다 막판에 몰아쳐서 일하는 버릇, 시간에 쫓겨서 허둥대는 버릇, 마감일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는 버릇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게으름뱅이의 인생이 참 딱하고 걱정스러운 건 확실하다.

이 야심한 시간에 잠 안자고 있으면 일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자아비판성 블로그질은 또 뭐란 말인가;; 으휴.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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