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뒷설거지 하느라 연말연시는 늘 쫓기듯 바쁘지만 그래도 노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한해 정리 포스팅을 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는데 차일피일 미룬 이유는 우유부단한 속성 탓에 좀체 항목별로 셋을 뽑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_-; 마음에 꼭 드는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도, 베스트 사유를 쓰는 것도 은근히 시간 많이 걸리는 일이라 스스로 찔리기도 했다. 하지만 또 그런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또 이렇게 얼렁뚱땅 하고만다. 2011 베스트 포스팅. ㅋㅋ
1. 2011 베스트 책
책 목록에서 인상 깊었던 걸로만 색을 달리해두고도 꽤나 뽑기 어려웠다. 결국 독서노트를 뒤져 가장 인용문을 많이 적어둔 책을 보니 얼추 세권의 윤곽이 드러났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용경식 옮김/문학동네
의외로 남들이 다 읽은 책을 하도 안 읽은 게 많아, 이 책 또한 안 읽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주인공 모모가 낯익은 건 순전히 <모모>와 동명이인이기 때문일 거라고. 그런데 중간쯤 하밀 할아버지와 로자 아줌마가 결국 어떻게 어떻게 될 것인지, 모모의 반전 비밀이 뭔지 다 기억이 났다. 아마도 대학 다닐 때 쯤 읽었던가. 그런데도 폭풍 감동에 눈물을 훔치며 읽었다.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수많은 구절을 적어놓아 대체 뭘 인용할까 또 고민스럽다. 그래도 대강 골라 적자면...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 p95
"그녀는 정해진 법 때문에 자기 뜻대로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할 적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법이란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p113-114
" <식스펜스 하우스>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
킥킥대고 책을 읽고 나서 감동후기를 올릴까 하다가, 블루고비가 옮긴 책이라 또 다시 팔이 안으로 굽는 주례사후기(?)로 오인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뒀었다. 특유의 유머와 집요함, 박식함이 넘치지 않게 어우러진 폴 콜린스의 글쓰기 묘미에 나도 빠져든 것 같은 데다, '책들의 종착지'라는 헌책 마을 웨일스 헤이온와이에 무작정 살려고 갔던 지은이의 좌충우돌 체험기라 소재부터 흥미진진했다. 헤이온와이를 책마을로 만든 장본인인 리처드 부스 할아버지가 작년 무슨 도서전에 한국에도 왔던데 구경갈까 하다 관뒀을 정도. 책의 가치에 대해서, 어쩌면 운명이 비슷한 인생에 대해서 소소한 생각거리를 주는 책이다.
"책을 썼다는 사실에는 참 희한하고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책은 읽히기도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생명력이 질겨서 대개의 경우 작가보다 오래 남는다." - p168.
"원래 작가라는 일이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 p254
<연민>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이온화 옮김/지식의숲
다른 주민들의 책 베스트에도 많이 보이는 책을 나도 꼽았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이라는 부제에 모든 단서가 담겨있다. 나 역시 <광기와 우연의 역사> 밖엔 읽은 적이 없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이 이토록 맛깔스러울 줄 짐작도 못했다. ^^; 다른 책도 찾아 올해 '몰아읽기' 할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그저 어린아이가 우표를 수집하듯 열심히 친구를 모으고, 모은 표본(친구)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말하자면 태생적으로 거리낌이라곤 없는 사람에 속했다." - p9
"반만 행한 일과 반만 내뱉은 암시는 언제나 악의 원인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어중간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 p123
"사람은 아무리 나쁜 규율일지라도 그것이 옆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면 곧바로 가볍게 느끼기 때문이다. 정의는 신비롭게도 폭력에도 적용된다." -p404
흐이구... 책 읽자마자 리뷰를 올렸으면 간단히 끝낼 수 있었을 것을... 아주 베스트 뽑으며 리뷰 올릴 기세다. +_+
적어둔 인용문이 거의 길어서 짧은 것 중에 골라 옮겨 적으려니 안타깝다.
2. 2011 베스트 영화 비기너스
천국의 속삭임
주노
이탈리아 영화 <천국의 속삭임>(역시나 애들이 주인공인 영화 좋다! 게다가 음향감독의 실화라니 더욱 감동;;)은 연초에 봤는데도 기억에 오래 남아 단연 베스트 후보였고 연말에 본 <비기너스>(시작하는 연인들, 유안 맥그리거와 멜라니 로랑의 만남도 좋았지만, 일흔다섯 병든 아버지의 설레는 사랑 또한 눈물겹게 흐뭇했다. 소소한 소품과 배경도 딱 내 취향)또한 보자마자 베스트 후보임을 실감했다. 나머지 하나를 뽑는데 살짝 고민을 하긴 했으나, 역시 뒷북으로 본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과 <주노>(개성 넘치는 주인공 주노의 선택과 식상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주노 새엄마는 <웨스트 윙>의 CJ였어! ㅎ 좋아하는 캐릭터였는데;; <If you're in, I'm still in>이라고 주노가 광고지에 적어준 쪽지를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는 마지막 장면까지 흡족~) 가운데 유쾌한 영화를 골랐다. <파니 핑크>를 만들기도 한 도리스 되리 감독을 좋아하지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슬퍼서 또 보려면 가슴 아플 듯.
3. 2011 베스트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최고의 사랑
공주의 남자
압도적인 1위이자 군말없는 올 최고의 드라마였던 <뿌리깊은 나무>를 억지로 꼽은 나머지 둘과 같이 올릴 수야 없지. ㅋ
3회였나, 4회부터 보다가 완전 빠져들어 앞부분 재방송 찾아본 뒤엔 거의 본방사수 하려고 노력했다.
별로 닮지 않았음에도 송중기에서 한석규로 이어지는 이도 세종역할의 전환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니! 송중기도 다시 봤고 한석규한테는 정말 감탄했다. 극의 짜임새며 구구절절 가슴을 후벼파는 대본이며, 주조연의 연기(진정 충신 무휼과 조말생 대감까지!)며... 피칠갑을 했던 마지막회가 좀 보기 힘들었던 것만 빼면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한가놈의 마지막 반전까지 숨겨놓은 작가들 정말 존경스럽다. +_+
"임금의 마음이 지옥이지 않은 태평성대가 어디 있더냐"고 했던가, 가슴을 쿡쿡 후비는 감탄스러운 대사가 매회 툭툭 쏟아졌는데 그때그때 적어놓지 않아 다 까먹었다. 밀본 정기준과의 마지막 대면에서 세종이 "백성은 속아도 되고 지더라도 괜찮다. 또 싸우면 된다"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사극 보면서 어쩜 그리도 요즘 정치 세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사가 많던지. 드라마 보다 말고, 그래, 속아서 대통령 뽑은 사람들도 대선 총선에서 또 싸워주면 된다고 중얼거리고 앉았었다. 참 놀라운 드라마 아닌가!?
두번째는 <최고의 사랑>인데 가나다순으로 사진이 밀렸;;다. ㅋ 후반부로 가면서 재미와 관심도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구애정과 독고진, 띵똥 보는 재미에 끝까지 의리를 지키며 봤던 드라마다. 공효진을 원래 좋아했지만 연기에도 묻어나는 듯한 매력이 궁금해서 책(공효진의 <공책>)까지 사봤으니 뭐 말 다했지. 책 편집과 만듦새는 참 엉망이라는 걸 알고 봤음에도 공효진이 전하려는 환경 메시지와 생각은 마음에 들었다. 공효진의 다음 작품 기대중.
<공주의 남자>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한정적인 얼개 탓인지 중반 이후에는 거의 재방송을 보는 것 같은 상황의 반복이라 차츰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특별히 베스트에 넣어주었다. 세령 역의 문채원의 연기력이 좋아지는 과정을 응원하며 보던 생각도 나고(한복이 참 잘 어울렸던 <바람의 화원> 때부터 팬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마음에 안드는 한복이 너무 많았음! 특히 그네탈 때 입었던 것.. 으으), 김종서와 수양대군을 연기한 중장년배우(이순재/김영철)도 좋았다. 울먹이며 "우리 삼촌이 맞습니까?" 묻던 아강이 역할의 김유빈은 최고였고! <뿌리깊은 나무> 마지막회에서 한가놈의 정체가 드러난 뒤 성삼문, 박팽년과 스쳐지나는 장면을 보며, 먼저 방영한 이 드라마에서 본 사육신 참살 과정이 떠올랐던 것도 베스트 선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
그러고 보니 사극 잘 안보는데 베스트에 둘이나 뽑혔고, 외국 드라마는 아예 없다. BBC <셜록>을 기대했는데 아예 제작이 무산되어 안타까웠다. 올해는 설마 제작되겠지.
전시도 둘만 선정했다. 둘 다 후기 올렸으니 링크 참조.
훈데르트 바서 전시회를 갔더라면 셋을 채울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만 잔뜩.
올해는 가고픈 전시를 안 빼먹고 다 갈 수 있으려나.
6. 2011 베스트 발견
엄마의 건강
정유정
Snoopy's Street Fair
게임중독자의 자질
내가 번역한 책 한권의 힘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년 한해 엄마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체중은 7kg정도 줄었고 10분도 채 못걷던 분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만큼 걸음도 경쾌해졌으며, 심리적으로도 대단히 안정적이다. 우울증 약도 꽤 줄였는데 정신적인 안정상태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모습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도 잘 본 적이 없었다. 일년에 열달은 울증, 한달은 조증, 나머지 한달만 말짱하다고 내가 농담삼아 툴툴거렸던 게 거짓말 같다. 이젠 나더러 운동 안한다고 잔소리를 하실 정도고, 최근엔 심지어 잠든 나를 그냥 내버려두고 혼자 버스타고 대학병원엘 다녀오셨다. 동네 의원은 몰라도, 복잡하고 진료과도 많은 대학병원은 아버지 계실 적에도 반드시 내가 운전해 모시고 다녔었는데... 아마도 엄마가 혼자 대학병원엘 가서 진료받고 약 타온 건 근 10년만에 처음이 아닐지. 암튼 과거의 엄마는 매일매일 '죽으려고' 살았다는데, 요즘 엄마는 '열심히 살려고' 사신단다. 합창단 연습도 여전히 열심히 참여중. 매우 고무적이고 감동이다.
정유정은 <7년의 밤> 읽고 반해 국내작가 중 유일하게 전작을 찾아볼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읽고 나니 군더더기랄까 좀 과하다 싶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던 <7년의 밤>보다 <내 심장을 쏴라>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마지막에 읽은 청소년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가 제일 좋아 두세번은 본 것 같다. 책표지가 기묘하게도 지우 그림과 많이 비슷해서였을까(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전무함에도!), 이상스레 정이 가는 작품. 어쨌거나 주류 문학계에선 정유정을 완전 무시하고 있대서 더욱 관심을 기울여 지켜볼 작정이다. 흥!
[#M_비슷하다고 우기기;; |접기|
아직도 안드로이드 마켓엔 없고 아이튠즈에만 있다는 스누피 마을 게임. 정말 지난 연말부터 삶의 낙이다. ㅠ.ㅠ
눈내린 겨울배경 업그레이드 버전도 좋지만 어서 봄이 와 초록 잔디 깔린 마을을 구경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데 벌써 22단계. 마지막 26단계가 머지 않았다. 마지막 단계를 이루고도 그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리세트 하고 처음부터 다시 마을을 가꿀지도 모르겠는데 어느쪽이 나을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무료 앱이라 깔아놓고, 결국엔 10불짜리 기프트 카드까지 사서 캐릭터를 사모았다. +_+ 처음엔 하루에도 몇시간씩 끊임없이 붙들고 있었는데 그래도 요샌 틈틈이 실행해서 동전만 벌어들이는 쪽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ㅋㅋ 어제였나 연속 27일째라며, 자주 이용하는 사람에게 주는 동전 10만개를 또 받았다. 이러니 매일 접속을 안할 수가 없다니깐! ㅠ.ㅠ
산타 스누피 기념 캡쳐
200점 증거 사진 -_-;
네번째는 베스트가 아니라 워스트 발견이어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우겨서 이 항목에 넣으련다. 스스로 중독자 기질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서... 작년에 이웃에 불었던 타일깨기 게임 열풍 때도 혼자 뒷북으로 열올라선, 다들 시들해 관뒀다는데도 홀로 악착같이(?) 중독자 답게 매달리더니(하도 시간낭비가 심해 즐겨찾기에서 지웠는데도 매번 구글 검색으로 찾아내 하고 있는 나를 발견;;;) 끝내 <200점>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그제야 관심에서 멀어져 더는 타일을 깨지 않고 있다. 대신 아이폰으로 스누피 게임에 매달리는 중. ㅠ.ㅠ 그러나 중독자임을 자각하여 자제하려고 노력한다는 데 의의를 두련다. ㅋ
7. 2011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멍하니 살았다.
적고 보니 두 마디로군.
아무리 돌이켜봐도 베스트나 워스트로 뽑을 만한 기억도 없고, 뭘 딱히 지른 것도 없는 것 같고(기껏해야 연말에 산 거위털 이불 정도?), 인상 깊은 사건도 없이 그저 소소한 아쉬움 뿐이다.
그래서 베스트 항목을 더 뽑으려야 뽑을 수도 없었다. 참 재미없게도 살았구나 싶은 느낌. 그래서 2011년을 보내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가버려서 속 시원.
8. 2011년 번역작업 달랑 3권이 출간됐다. 그중 하나는 두권짜리라며 위안을 해보지만, 8월 이후 하반기 출간된 책이 전무하다는 것은 아마도 출판 불황과 나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합작품일 듯.
작업한 책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벌려놓은 수만 잔뜩이다. 스스로 채찍질이 필요. 그래서 일부러 적어놓았다. 정신 차리라고 쫌!
9. 2012년의 계획이라면 1. 일과 관련해서 좀 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될 것
2. 조금 긴 여행 (홀로 두고갈 엄마 걱정도 덜었겠다, 여행비 모을 욕심에 더욱 열심히 일하던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3. 기타든 그림이든 뭘 좀 배우러 다니고 싶단 소망을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을 발휘할 것
4. 큰 마음 먹고 이사 (과연;; ㅎㄷㄷ)
우리나라 소설에는 작가에 따라서 얼마든지 비속어를 사용하는데 왜 번역서엔 그게 허락되지 않을까? 영어로 <son of bitch>는 거의 누구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흔히 쓰는 일상적인 욕이다. 그렇더라도 상황에 따라선 분명 <개새끼>가 정확한 옮김인데 번역서에선 종종 <개자식>으로 순화된다. 그뿐인가. goddamn, damn, fucking, mother fucker, shit... 제 아무리 머리 굴려 나름 기발하게 달리 옮겨봐도 편집 과정에서 그저 <빌어먹을> 아니면 <젠장>, <제기랄> 정도로 순화'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원서로 읽으면 방황하는 십대의 날선 언어와 감정, 욕설이 난무하지만(한 페이지에 욕이 막 두세개씩 나온다), 번역서로 읽어보면 어찌나 공손하고 고상하신지. 일부 오역도 오역이지만 이 책의 경우, 비속어의 일체 순화 및 생략은 확실히 읽는 재미를 반감시켰다고 생각한다. 김려령의 <완득이>를 킥킥대고 읽으며 <호밀밭의 파수꾼>의 번역도 가끔씩 그렇게 경쾌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문득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다. 물론 두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퍽 다름을 잘 안다. 둘 다 남자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다보니 단순히 예를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라를 막논하고 약간 삐딱한 청소년이라면 원래 욕이 일상 아닌가?
암튼 언젠가 범죄소설을 번역하면서 수시로 등장하는 fucking의 뉘앙스를 살려보겠다고 내딴엔 비속어인 '씹할'을 주장했다가 결국 졌다. 단순히 한국 출판계에서 번역어의 공손함과 교양을 추구하기 때문은 아니다. 비속어가 남발된 책은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딴죽을 걸 수도 있고, 그러다 혹 재수없게 19금 판정이라도 받게 되면 비닐로 포장 판매를 해야한단다. 그랬다간 가뜩이나 열악한 시장에서 독자층은 좁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어쩔 수 없이 지레 위축된 편집자와 번역자는 오랜 세월 원서의 비속어를 자체 검열하는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설을 읽어보면 길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비속어와 욕을 작품에 구사해도 아무 문제 없더구만? (가령,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을 읽으며 '씨발'을 비롯한 비속어의 사용이 매우 자연스러워 놀랐었다) 그런데 왜 번역서는 구태의연하게 계속 공손해야 하는지?
그나마도 요즘엔 번역서에서도 <나쁜년> 정도는 허용되는 추세다(과거엔 <못된 계집>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아직도 <새끼>는 <자식>, <놈>으로 순화하고 있자니 문득 부아가 난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가끔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외칠 때 느끼는 희열을 번역서에서도 느끼면 안되는 걸까? 일부러 격 떨어지고 천박한 언어로 번역할 이유는 없지만, 걸핏하면 '원서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독자들의 비수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번역인들에게도 이제는 좀 제대로 비속어를 우리말로 옮길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 이미 그렇게들 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보수적인 출판사들과만 일을 했던가? -_-;;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 작업하는 책에선 나름 원색적인(?) 비속어를 또 한번 디밀어볼 생각이다. 통과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번역가가 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할 때
잘 생각했어! 어디가도 진짜 이만한 직업이 없지! 강추야! 완전 좋아! 날 보면 알잖아!
....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어... 진짜? 왜 하필 이런 지난한 길을? 꼭 해야겠어? 꽤 오래 힘겹게 버틸 자신 있어? 덤벼들 실력은 있고? 겉보기보다 이 일이 실체는 퍽 초라한데... (원고료 5백원 올리자고 협상하고 있으려면 정말이지 우어~!!)
라며 자꾸 초를 치게 된다.
본의아니게 최근 번역가를 꿈꾸는 두 사람에게 번역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조언을 해주게 됐다.
한 사람은 너무 어려서 (친구 딸의 후배 ㅠ.ㅠ) 앞으로 진로변경의 가능성이 훨씬 더 많으니까 현실적인 부분보다는 꽤나 아련하고 황홀한 꿈으로 포장해주고 나서 자책감에 휩싸였다. 나중에 정말로 번역가의 길에 들어선 그 소녀가 막 나를 원망하면 어쩌나. +_+ (걱정도 팔자라고 곧 머리를 흔들었다.)
또 한사람, 지금 하고 있는 출판사 편집일을 '때려치우고' 번역공부를 위해 전공을 바꿔 진학까지 결심했다는 낯선 이에게는 정 하고 싶으면 도전해보라고 빤한 권유와 함께 나름의 노하우와 현실적인 고충을 대강 알려주긴 했으나, 역시나 마음이 꺼림칙하다. 희망에 차올라 거듭 감사 인사를 하는 그의 답 메일을 열어보고 나니 더더욱. 하도 망해 넘어가는 출판사가 많아 나도 이 일로 노년까지 잘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 아닐지 문득문득 두려움이 밀려드는 판국에 잘하는 짓일까나. (그치만 출판계에 있으니 그 정도 사정은 본인도 알지 않겠어? 라며 책임 회피 중)
한 1, 2 백년쯤 지난 뒤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이 생겨나고 했을 무렵, 번역가는 과연 어느 부류에 속해 있을지 돌연 궁금하다. 젊은 사람들에게 이 직업 추천하고 앉았는게 설마 죄는 아니겠지? 에휴.
대다수 국민들이 영어에 미친 요즘과 달리 꽤 구세대인 나는 당연히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처음 영어를 접했다. 그때 처음 느낀 영어에 대한 인상이 무엇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참 복잡하고 남녀차별적인 언어구나 하는 생각은 줄곧 이어졌다(고등학교 진학 후 불어를 만나 형용사마저 성별을 달리하는 걸 보고 더욱 경악했지만;;). 인칭별로 달라지는 be동사도 이상하고, 시제별 동사변화(특히 불규칙 동사!)도 이상하고 특히나 인칭대명사는 참 이상했다. 그냥 '그 사람, 그분, 걔'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성별따져서 he/she 나누는 것도 웃기고 '그녀'라는 말도 웃겼다.
정확한지는 자신이 없지만 시사영어사판 중1 교과서 첫과 즈음에서 She가 등장했을 때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영어선생이 "그녀는 OOO입니다"라고 한 설명을 '그년은'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선생이 수업시간에 욕을 하다니! 나처럼 오해한 아이들이 꽤 있었던듯 누군가 킥킥 웃기도 했던 것도 같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영어와 '그녀'라는 말이 우리말에 도입된 역사는 아직 100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명실공히 여성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로 번역서뿐만 아니라 국내 문학이나 언론, 방송, 일상생활에 뿌리 깊이 자리를 잡았다. 다만 원래도 대명사를 잘 쓰지 않는 우리말 습관 때문에 입말에서만큼은 그다지 사용되지 않을 뿐이다. 구어체에서는 '그녀'뿐만 아니라 '그', '그들'도 잘 쓰이지 않는다. 괜히 욕을 바가지로 먹고 싶다면 일상적인 입말로 저런 인칭대명사를 사용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녀가 오늘은 좀 늦네. 그녀에게 전화 좀 해봐." "그들은 언제 오니?"라는 식으로. -_-;
번역과 관련된 노하우나 경험담을 담은 책을 보면 'he/she'를 번역할 때 '그/그녀'를 적절히 사용하라는 조언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특히 엄마, 할머니, 심지어 여동생을 가리키는 대화에서도 계속 꿋꿋하게'그녀'라고 해놓은 번역서를 만나면 아주 난감하다. 특별히 가족을 남으로 대하는 인물이거나 성격상 후레자식이 아니고서야... 쩝...
또 한 가지, 쓸데없이 복수명사에 얽매여 '들'을 붙이지만 않아도 초짜 티를 벗어날 수 있다는 팁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선 사물에 복수형을 붙여 <거리들마다 쏟아져 나온 자동차들의 홍수 속에서...>라는 식으로 쓰면 틀린 건 아니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마다'라는 조사와 '홍수'라는 표현에서 이미 거리와 자동차 여럿의 이미지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 학생들, 어른들, 애들, 노인들처럼 사람의 경우엔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쓰일 수 있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바로 '그녀들'이다.
똑같이 '걔'나 '그사람', '그분'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그/그녀로 나누어 성차별을 했던 he/she도 여럿이 뭉치면 사이좋게 다시 그들/they 하나로 통합된다는 기본적인 영문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왜 영어로는 똑같이 they인 말을 한글에선 왜 굳이 '그녀들'로 바꾸게 된 걸까? man이 남자이면서 인간을 대표하는 것처럼 '그'의 복수형인 '그들'이 3인칭복수형의 대표가 되는 것에 열이 뻗친 이 땅의 여성주의자들이 우리말 번역에라도 별도의 복수형을 만들어야겠다고 주장한 것은 설마 아닐테고...
그 정도로 언어를 연구했다면 3인칭 여성 단수로 '그녀'가 당연한 듯 쓰이기 전에는 '그'나 '저'가 성차별없이 공용으로 쓰였음을 '그들'이 몰랐을 리 없는데 말이다. 이제껏 작업한 번역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소설이었던 터라 '그녀'의 효용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더러 이름으로 바꾸기도 하고 생략도 해보지만, '그녀'를 아주 안쓰고는 못배긴다. 그만큼 '그녀'는 이제 우리말과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음을 인정한다. 그건 그렇다쳐도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그녀들'은 확실히 아니다 싶다. 소설가나 시인 앞에 굳이 '여류'를 붙여 폄하하는 태도처럼 나에겐 참으로 못마땅하고, 특히나 잡지와 광고에서 수시로 쏟아지는 '그녀들' 때문에 너무 싫어서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녀들의 발칙한 반란이 시작된다.'
'독하게 성공한 그녀들의 비법을 소개한다.'
'잘 나가는 그녀들이 여기 다 모였다'
우웩~~~~!!!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대로 된 우리말에 그녀들은 없다(영어에도 없다니깐!!). 그들이 있을 뿐이다. 걔들, 또는 그분들이거나.
꾸준히 책을 읽은 감상을 올리는 블로거와 달리 독후감 못쓰는 지병을 탓하며 가뭄에 콩나듯 독서 후기를 올리면서 한 가지 착각을 했던 것 같다. 파워 블로거도 아닌 주제에 마치 내가 후기를 올리면 조금이라도 책 판매에 도움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깊이 생각해볼 것도 없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같은 타령이다. 하루 접속 인원이 수백 명, 수천 명 되는 도서 전문 블로거라면 몰라도 행여나!
하여튼 출판계에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단군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푸념이 한해도 빠지지 않을 만큼 열악한 이 업계의 구조적 한계를 알고 있기에 나와는 별 상관없는 희소식에도 그저 반갑기만 하다. 나는 신간, 구간 따지지 않고 내키는 대로 책을 사기 때문에 나온지 몇년 지난 책을 처음 접할 때도 꽤 많은데, 그럴 때 찾아본 서지정보에서 5쇄, 10쇄 이상 발행됐다는 내용이 눈에 띄면 괜스레 기쁘다. 또한 베스트셀러를 일부러 기피하는 성향이 있으면서도 100만부를 넘겨 팔렸다는 책이 뉴스에 등장하면(물론 이제 100만부 넘겨 팔리는 책이 드물어 뉴스거리가 되고 만 현실이 서글픈 것과는 별개로) 역시나 아직도 책을 읽거나 사는 사람이 깡그리 사라지진 않았다는 생각에 슬몃 안심이 된다.
처음 번역에 발을 디디면서 깨달은, 출판기획은 도박이나 다름없다는 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스캔들에 휩싸였던 전직 큐레이터의 자서전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리라고 짐작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의 판매 호조도 내겐 그저 놀랍다. 일단 탄성이 붙어 화제에 오르고 난 다음엔, 뇌화부동하는 군중들이(워낙 이 나라 사람들은 집단주의에 휩쓸리는 경향이 많다고 생각한다. 언론에도 꽤 오르내리고 주변인들이 좀 아는 체 하면 따라 읽는 심리;;) 너도너도 덩달아 사보는 분위기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궁금한 건 어쩌다가 탄성이 붙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과거엔 주요 일간지에 서평이 실리는 게 책 판매실적을 크게 좌우했다. 조중동 서평난에 실리면 기본 1만부는 거뜬히 넘긴다고 장담하던 때도 있었다. 내가 번역으로만 밥벌이하기가 힘들어 출판사 외서기획을 돕던 시절, 서로 친분이 두터운 소규모 출판사 사장님들은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그 주요 일간지 서평 담당 기자들을 불러다가 깍듯이 '접대'했다. 한번은 나도 그들과 얼굴을 익혀두는 것이 좋겠다며 인사동으로 불려나간 적이 있었다. 기쁨조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앉은 내 심사를 파악한 사장님은 어차피 저 사람들 2차로 보낼 데도 있으니 밥만 먹고 일어나라고 달랬다. 그날 따라 몸이 좋지 않아 2차까지 '수행'하지 못하게 된 사장님은 동석했던 다른 출판사 사장님에게 한껏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고는 준비해간 돈봉투를 은밀하게 기자들에게 하나씩 찔러주었다. 그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지 나는 이미 경리직원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빳빳한 만원권 100장씩이었다. 늘상 있는 일인 듯 그걸 받아드는 기자들은 몹시 태연자약 여유로웠고, 나는 속으로만 부르르 치를 떨었다.
벌써 십수년 전 일이긴 하지만 그 당시 작고 이름없는 출판사의 경우는 그렇게 밥과 술과 돈과 여흥으로 서평 담당 기자를 접대해도 조만간 일간지에 서평이 실린다는 보장이 없었다. '나름' 괜찮은 책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대규모 출판사는 특별히 기자 접대를 하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서평이 실렸다. 자금력이 확보되어 있으니 대형 화제작을 언제든 터뜨릴 수 있지 않겠나. 출판계에도 통용되던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 내게 기획자 명함을 파주었던 그 출판사의 서평이 드디어 일간지에 실린 건, 직접 목도했던 돈동투 사건으로부터 1년이나 지나서였다. 로열티도 꽤 많이 주고 계약한 경제경영서를 출간했을 때였다. 일간지 서평 덕에 과연 그 책의 손익분기점을 넘겨 혜택을 보았는지 결과는 알지 못한다. 내가 곧 그 출판사 기획일을 때려치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작컨대 분명 '밑지는' 장사였을 것이다. 1, 2년 꼬박 기자들에게 그런 접대를 해야 했다면 들인 돈이 대체 얼마인가! 기가 막혀서...
웃기는 건 서평 담당 기자들 가운데 실제로 책을 꼼꼼히 읽고 기사를 쓰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고, 출판사에서 자체 제작한 홍보자료를 순서만 약간 바꾸어 서평을 올려놓고는 그 기사의 저작권을 신문사에서 주장한다는 점이었다. 그 시절엔 나도 종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고 비상근이긴 해도 출판사에 나가보면 주요 일간지가 매일 수북하게 쌓여있었는데, 거기서 가끔 실제로 책을 읽고 쓴 게 틀림없는 서평을 발견하면 우와 놀라며 감동할 정도였다. 그때 만난 서평 담당 기자들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나빴던 나머지, 요즘도 인터넷으로 일간지 서평을 보게 되면 못내 궁금하다. 책을 직접 읽고 쓴 걸까, 홍보자료를 읽고 쓴 걸까? (화제작에 대해서 일간지 별로 대동소이한 서평이 올라오면 십중팔구 출판사 홍보자료라고 장담한다 ^^;) 아직도 서평 담당 문화부 기자들은 출판사의 깍듯한 접대를 받을까?
일간지 서평과 함께 당시엔 일간지 4, 5단 통광고나 전면광고가 '꽤 먹히던' 시절이었다. 물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전면광고, 통광고 좋아하다가 마케팅 비용에 들인 돈 만큼 책이 팔리지 않아 결국 부도를 내거나 크게 손해를 본 출판사들이 쎄고 쎘지만 말이다. 요샌 종이 신문을 본 적이 거의 없어 경향이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과거만큼 영향력이 없는데도 여전히 일간지에 4, 5단 통광고나 전면광고를 턱턱 내는 출판사들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설마 옛날보다 광고비가 싸졌을 리는 없는데 미약하기는 해도 여전히 효과가 있기 때문일까? 그 또한 궁금하다.
이제는 인터넷 서점의 엄청난 위용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의 힘이 날로 줄어들고는 있지만, 옛날엔 대형서점의 진열대도 책의 판매실적을 좌우했다. 그래서 영업사원들은 서점 직원들과 각별히 친하게 지내며 유리한 진열 위치를 선점하려 했고, 따로 돈을 내야 하는 특별 판매부스 코너도 종종 설치했다. 서점에 영업을 나가선 슬쩍 경쟁사의 책을 구석쪽으로 밀어두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과연 그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서점에 나가서도 베스트셀러는 눈으로만 구경할 뿐 괜히 못마땅해하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라며 수북하게 쌓여 있으면 선뜻 손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일부 출판사에서 책 사재기까지 해가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려고 안달을 하는 게 아닐까.
출판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과 달라진 현실 때문에 책 영업에도 고충이 많다. 요즘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입소문과 온라인 서점의 판매지수, 거기 올라간 독자 서평이라는 것 같다. 그래서 웬만한 출판사들은 책이 나오면 으레 온라인 북카페나 자체 출판사 회원 사이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 무료로 책을 나눠주고 자신의 블로그와 온라인 서점 게시판에 서평을 올리는 것이 조건인 것 같다. 그걸 알기에 나는 책이 출간된 후 후딱 올라온 온라인 서점의 후한 서평을 믿지 않는다. 출판사의 입김이 닿은 서평단의 글일 확률이 백프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닌 경우도 더러 있을 텐데 그들에겐 좀 미안타;;) 출판사에서 굳이 서평단을 모집하지 않더라도, 지은이 쪽에서 사람을 풀기도 하는 것 같다. 영어교사를 하고 있는 선배가 종종 교재를 출간하는데, 책이 나오면 어김없이 단체문자가 날아온다. 온라인 서점에 별 다섯개짜리 서평을 책임지고 두개씩 올리라고. -_-; 학교 제자들한테도 그러라고 시켰다는 후문이고, 나중에 선후배 모이는 자리에선 출석확인 하듯 서평 올렸나 안 올렸나 따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과연 인세 대박이 났는지 그건 또 잘 모르겠다. 최근 이삼 년 간은 조용한 걸 보면 인기 교재 집필자는 아닌 것 같다. ㅋㅋ
얼마전 신간 소설 읽고 올린 후기 때문에 출판사의 검색망에 딱 걸려든 적도 있었지만, 확실히 출판사에선 1인 미디어시대라는 요즘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 소셜미디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웬간한 출판사는 공식 사이트뿐만 아니라, 장르별 북팬카페를 운영하기도 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다 열어두고 어떻게든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 또한 출간 기념회 같은 행사에도 주요 블로거와 북카페 회원들을 반드시 초청해 기념품과 책 선물을 안긴다. 어느 정도 위상이 높은 서평 전문 블로거나 북카페 회원의 경우 공짜로 책을 받았다고 해서 터무니 없이 호의적이기만 한 서평을 올릴 리는 없다고 믿는다. 애서가로서 자신의 신뢰도에 금이 가는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판사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지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적절한 예일지 모르겠지만, 부정선거가 판을 치던 시절 울 엄마는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불려 다니며 공짜밥을 먹었다. 어쩔 때는 누가 내는 밥인지도 모르고 갔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야 전화로 어느어느 후보가 낸 밥이라는 통보와 한 표 부탁한다는 인삿말을 듣기도 했다. 울 엄마는 밥은 얻어 먹되 안 찍어주면 그만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순진하게도 나중엔 양심이 있지 어떻게 그러느냐며 그놈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뒷구멍으로 돈을 쓴 놈은 나중에 당선되면 선거비용을 죄다 뽑으려고 부정부패를 일삼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내가 길길이 뛰며 화를 내도 소용없었다. 요새는 부정선거운동이 발각되면 당선무효가 되는 데도 여전히 뇌물성 선심을 쓰거나 밥을 내는 지자체 선거 후보자가 사라지지 않는 걸 봐도 사람들은 아직 뇌물에 약한 것 같다.
나 역시 애서가 이웃 블로거들의 리뷰를 보고 따라 읽으려고 책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짜로 받은 책이나 아는 사람의 책에 근거 없이 후한 평가를 내리는 분들이 아니다. 또한 책에 대한 내공이 깊어 팔랑귀에다 변덕 심한 나의 감상과는 평가수준도 다르다. 어차피 책 또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책을 많이 읽은 분들의 평가는 대체로 옳다. 그렇다면 나는? 독서량이 일천하여 비교대상이 현저히 적은 나로서는 그때그때 즉흥적인 감상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좀 괜찮다 싶으면 어떻게든 좀 더 '팔아줄' 방법이 없나 고심하게 된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리도 주제넘은 생각을 하는지 원. 그나마 위안은 이제껏 올린 후기치고 빌려본 책은 있을망정 출판사나 지은이, 번역자에게 홍보용으로 받아 읽은 책은 없다는 것 정도다.
독서 후기 자체의 충실함보다 이런저런 책의 판매에 먼저 관심을 쏟는 나의 태도는 어쩌면 인세 대박을 향한 흑심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물론 번역료의 인세/매절 계약 여부를 내 쪽에서 정하는 건 아니고 출판사의 원칙을 따르는 것 뿐이다. 별로 안 팔릴 것이 너무도 뻔한 책을 인세로 계약할 땐 속으로 꿈을 꾼다. 아는 언니가 <체게바라 평전>을 인세로 낼 때만 해도 그렇게 많이 팔릴 줄 상상도 안했다잖아 결과는 모르는 거야, 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괜한 동병상련이랄까, 지은이든 번역가든 약간이라도 괜찮은 책은 인세로도 혜택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다. 하지만 출판은 도박이라, 어떻게 팔리는지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요지경이다. 수천만원을 들여 일간지 전면광고를 낸 만큼 수익을 뽑으려면 책을 최소한 수만부는 팔아야 할 텐데, 온라인 서점 반값 할인으로 수익구조는 나날이 열악해지는 가운데 일간지 전면광고, 버스 광고를 계속해서 해대는 출판사가 나는 더 신기하다. 베스트셀러 내고 광고 빵빵 쳐대다가 망하는 출판사를 그간 하도 많이 봤어야지.
사실 책이 어떻게 팔릴지는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닌데 책으로 밥벌이를 할 운명을 선택하고 보니 신경이 쓰이는 것뿐이다. 언젠가 쓴 포스팅에 당신이 읽는 책 한권이 이 나라의 출판계와 라니의 밥줄을 지킵니다, 라고 눙쳤던 게 생각난다. 어디까지나 목표대로 예순 살까지 번역으로 먹고 살기 위한 안간힘이라고 생각하면 한편 눈물겹다. 누군가 책이 어떻게 팔릴지 걱정하지 말고, 마감일이나 잘 지켜 일감이나 짤리지 말라고 충고할 것만 같다. 암, 그래야 하고 말고.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뜬금없이 책 팔리는 사정이 궁금해진 연유는 최근에 읽고 퍼뜩 후기를 올려 판매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던 책 세권 때문이었다. 이들 책에 대해서도 후기를 쓴다면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므로 그냥 제목과 짧은 메모만 적어둔다. 혹시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 하시라고. ^^;
<보통의 경험> 한국성폭력상담소 지음/이매진
이웃블로거이신 당고님이 집필진으로 참여하셨고, 책의 수익금은 전액 한국성폭력상담소 기금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DIY 가이드'라는 부제가 붙은 책. 실제 성폭력 피해자 상담을 바탕으로 현명한 대처법을 조목조목 치유부터 법률 조언까지 담았다. 온갖 수위의 성폭력, 성추행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 정말로 보통의 경험일 것이다. 나 역시 대학시절 버스 맨 뒷자리에서 사파리를 입은 중년남이 코앞에서 성기노출을 하는 바람에 엉엉 울며 놀라 입은 충격을 오래 잊지 못했다(그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기까지 몇년이 걸렸을 정도). 아직도 사파리를 입은 남자는 무조건 불신하고 혐오한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훨씬 더 순발력 있게 대처해 놈을 잡아 넣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이웃인 성폭력 피해자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수단으로 독서라니, 좋지 아니한가. ^^;
<소설 파는 남자> 이구용 지음/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위에도 언급했던 초짜 기획자 시절 저작권사무소를 거의 매주 전전하며 원서 소개를 받았다. 대형출판사에 밀려 선인세 경쟁에서 여러번 좋은 책을 놓쳤던 출판사 사장님은 나에게 아예 저작권사무소를 차려주겠다며 에이전트 일을 배워보라고 권했다. 저작권 중개업이라는 것이 번역만큼이나 열악하다는 걸 금세 파악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처음 내가 만났을 때 이구용 대리님이었던 지은이는 이 책을 집필할 당시만 해도 상무님이었다가, 현재는 해외저작권 소개가 아니라 한국문학 해외진출을 전문으로 하는 에이전시의 대표가 되었다. 십수년 전 1년쯤 교류한 게 전부지만 책 출간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사두었다가 무용담을 듣듯 읽으며 감탄했다. 신경숙의 <엄마는 부탁해> 미국진출이 바로 이분 작품이다. 비록 책속엔 죄다 내가 안읽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이지만, 글마다 사람좋은 지은이의 성품이 묻어나오는 듯했다. ㅎㅎ
<번역에 살고 죽고> 권남희 지음/마음산책
여러 언어권의 대표 번역가들의 공저 <번역은 내인생>이 출간되었을 때 괜히 제목에 배알이 뒤틀려 안 읽기로 결심했던 것과 달리 이 책은 제목을 보고 대번에 끌렸다(역시 책 제목은 중요하다! ㅋ) . 무학이신 부모님이 읽을 일은 없더라도 무학의 독자들까지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쓰기를 목표로 한다는 '일본문학 전문번역가'의 에세이집인데, 번역가로서 공감하는 내용이 어찌나 많은지 킥킥대며 웃었다. 번역료 독촉전화 할 때 몸을 배배 꼬고 있는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에선 그야말로 빵 터졌다. 앞으로 번역관련 에피소드를 내가 굳이 블로그에 올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 책안에 다 들어있다! ㅋㅋㅋ 특히 인상깊은 구절만 하나 인용하자.
"번역의 세계는 '실력과 이름과 학벌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실력'인 곳이다." (136)
당고님 블로그에 갔다가 알게 된 출판 외주자 실태파악 설문조사.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 있을 뿐 거의 점조직으로 퍼져 있는 출판계의 무수한 외주자들을 어떻게든 하나로 묶어 권리의 목소리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이름도 낯선 <한국외주출판인회의>라는 단체도 있대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설문조사가 이루어진다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도 일단은 대강의 '실태' 파악이라도 된다는 게 고무적인 느낌이다. 얼핏 들여다보니 편집 외주자들이 제일 똘똘 뭉쳐 활동하는 것 같다. 번역하는 사람들은 바쁜 일정 때문에 일감을 못맡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일이 거의 드물다. 그런데 편집 외주일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단행본이든 잡지든 1교, 2교, 3교를 서로 나눠 보기도 하고, 본인 일정이 안되면 다른 지인들에게 얼른 비상연락을 취해 인력을 확보해준다. 아예 외주자가 처음부터 단행본의 책임편집을 맡아 정해진 제작비 내에서 비용을 집행하는 이도 있다. 그런 경우는 사업자 등록증을 내서 하는 엄연한 단독 사업이다.
그에 비하면 번역자들은 정말 모래알처럼 흩어져 은둔하며 사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얼떨결에 출판사 행사에 참여했을 때 담당자가 그랬다. 50여명의 번역자들에게 초청의사를 밝혔으나 오겠다고 한 사람은 손가락에 꼽혔다고. 번역하는 분들은 대개 집밖에도 잘 안나오는 히키코모리 같다고. 그런 자리를 왜 내가 나갔던고 나도 무릎을 꼬집으며 후회했었다. 확실히 나를 제외하고 그날 만난 번역가들은 대외적인 활동이 활발한 분들이었다. 매체 인터뷰 같은 데서도 꽤 자주 볼 수 있는 유명인이거나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거나 두개 이상의 언어를 번역하는 멀티플레이어거나... 불어나 독어를 번역하는 실력파 가운데선 영어도 같이 번역하는 분들도 꽤 있다. 영어권 단행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어/독어 번역일이 적어 어쩔 수 없노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나 같은 사람에겐 밥그릇을 다투는 경쟁자다. 그리고 책이란 게 편집과정을 거쳐 탄생되는 터라 번역직후의 생원고를 볼 기회가 없으니 웬만해선 다른 번역가의 실력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기 난감하다. 1, 2, 3교 교정지만 딱 보면 편집자의 역량을 알 수 있다는 외주 편집자의 경우와는 다르다. 도무지 연대가 안되는 성질의 일이랄까. 그래서 사실 나는 이런저런 번역가 모임에 들라는 조언을 죄다 거절하고 살았다. 무슨무슨 협회에 들어 설렁설렁이든 열심이든 회원 활동을 하는 성격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죄다 나 같은 생각만 하고 사니 번역과 번역가의 지위를 바라보는 출판계의 시선과 대우가 크게 달라질 리 없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나는 출판 외주자 프리랜서들의 연합과 단체행동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자기 이름을 옮긴이로 인쇄할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아주 저렴하게, 아니 공짜로도 번역을 하겠다는 의욕 넘치는 이들이 세상엔 아직도 많고, 낮은 단가에라도 일단 생계를 위해선 일감 끊기는 일 없이 지속적인 작업을 하는 게 더 중요한 사람들도 수두룩하니까. 그렇다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곤란하다는 건 알기에 우선 실태파악이라도 해보자는 움직임에는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에라도 출판 외주자 노동조합 같은 게 생겨나 권익이 제대로 보호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나. (당장 떠오르는 건 주변에서 죄다 내용증명 보내라고 부추기는데도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 출판사의 미출간 원고료 미지급건 +_+)
어쨌거나 현재의 일과 대우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하느냐, 마감때 하루 일하는 시간은 몇시간이나 되느냐, 월평균 수입은 얼마냐, 외주일을 끝내고 정신적, 신체적 피로를 느낀 적이 있느냐, 외주 일감에 대한 급여를 떼먹힌 적이 있느냐 따위의 설문에 답변하며 문득 서글퍼지기는 했지만 아무튼 퍼질러 앉아 있기보다는 손가락이라도 행동에 참여해보자는 취지로 여기에 퍼다놓는다. 출판 번역에 종사하고 계신 이웃들도 혹시 설문에 참여하고 싶어질지 모르니까... 번역뿐만 아니라 편집, 디자인, 글, 그림, 대필, 원고 입력, 영업 등 분야도 다양하다니 가끔 눈팅만 하고 가는 프리랜서 두 J양도 마침 보게 되면 참여해보심이 어떨지. ^^* (링크된 사이트들을 보니 당신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 같기는 하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세상을 떠났단다. '여배우'라는 말과 함께 내 의식과 무의식에 동시에 자리잡고 있었을 두 사람이 바로 오드리 햅번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였는데, 이제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어리고 깜찍한 모습으로 <녹원의 천사>, <작은 아씨들>에 나온 리즈 테일러를 보면서 어린 나는 세상에 저렇게도 예쁜 사람이 다 있군, 하며 놀라워 했다. 인형처럼 생겼다는 말의 의미가 뭔지도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리즈 테일러가 나온 여러 영화를 봤지만, 고등학생 때까지 우상이었던 제임스 딘과 함께 나온 <자이언트>에서의 모습이 내겐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타블로이드판 신문에서 늘 욕 먹고 씹히던 남성편력도 내겐 멋졌다. 남자만 여러 번 결혼하란 법 있나. 게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마다할 남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고혹적인 입술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나라도 혼이 쏙 빠져나갈 것 같던데. 다만 오드리 햅번처럼 외형적으로도 자연스레 아름답게 늙어가지 못한 게 안타깝긴 해도 온갖 지병과 싸우며 끊임없이 사회에 기여한 노력은 똑같이 우러러보인다. 대중과 미디어가 아무리 제 멋대로 소모해버리려고 파고들어도 당당히 버텨냈으니 이젠 고이 잠들어 편히 쉰다고 생각하면 될텐데, 왠지 기분이 착잡하다.
리즈 테일러의 부고가 아니어도 온종일 잡념이 많아 별로 일을 하지 못했다. 학력위조 파문과 정치권 특혜 의혹으로 언론을 홀딱 뒤집어놓았던 장본인이 이번에는 또 책으로 세상을 들쑤시고 있다. 당시엔 나도 한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력위조 문제가 이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주의가 낳은 폐해라 생각했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질겅질겅 씹어대듯 한 여자를 매도하는 분위기가 못마땅했다. 도무지 실체가 잡히진 않지만 누구나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연예계 성상납 비리와 마찬가지로, 줄줄이 엮인 굴비처럼 오르내리던 수많은 정치권 인사의 개입은 진실 여부를 떠나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남성 중심의, 상품으로서의 여성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도 그 여자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는데, 요번에 대대적인 출판기념회를 열어 선정적인 회고록을 내놓은 걸 보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책을 냈을까? 하기야 요즘은 굳이 자비출판을 하지 않더라도 책 내는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느 쪽에서 기획을 하든 일말의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나무에게 부끄럽든 말든, 일단 책의 형태로 출간된 책은 세상에 나올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는 출판계의 속설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자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 어처구니 없고 힘빠지는 소식은 그런 황당한 자서전이 벌써 나온지 하루만에 2만부가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나는 출간기념회도 그렇고 책 속에 언급되었다는 정치인의 이름도 그렇고, 그 여자가 들고 나왔다는 명품 가방이 더 큰 이슈가 되는 찌라시 언론에 그저 코웃음만 치고 있었는데, 이 나라 출판시장이 겨우 그 꼴이라니 맥이 탁 빠졌다. 노이즈 마케팅이든 아니든 자서전을 낸 그 사람으로서나 출판사 입장에선 두손 들고 환영할 일일 것이다. 이 엄청난 불황에 초판을 5만부 씩이나 찍어서 1, 2주 만에 2쇄 인쇄에 돌입하는 책이 어디 흔한가.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백만부 이상 팔리는 초베스트셀러를 일년에 서너 권씩 냈던 어느 대형 출판사도 작년에는 10만부 이상 팔린 책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게 요즘 현실이다. 최근 1, 2년 새 초베스트셀러 경향을 보면, 인기 작가 몇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연예인이나 아이돌의 팬덤에 편승해 낸 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연예계와 가요계 뿐만 아니라 출판계 마저도 연예인과 아이돌이 접수하는 거 아니냐고 씁쓸해 하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거라던데, 정말 출판시장에서 이제 팔리는 책은 떠들썩한 유명세를 업어야만 나올 수 있다는 뜻일까?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번역을 하든 글줄만으로 밥벌이를 제대로 하는 게 그리 쉽지 않고,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출판계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남은 한 가지 잡념은 가끔 주제도 모르고 펄럭대는 내 오지랖에 대한 자책이다. 주변에서 간혹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지인들이 있으면 펄펄 뛰며 말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막연하게 아련한 희망을 심어주지도 않는 편이다. 그저 혹독한 현실을 일러주고 스스로 가능성을 점쳐보도록 이끄는 것밖엔 해줄 수가 없는 걸 어쩌랴. 그리고 책이란 게 백이면 백 모든 사람에게 다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문장 역시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친구의 문장력과 외국어 이해력을 속속들이 알 방법 또한 없다. 그러니 나로선 얇디 얇은 연줄을 대어줄 순 있으되 그 이상의 생존은 어디까지나 본인에게 달렸다. 실제로 지난 십수년간 우연한 기회로 몇몇 지인들을 '추천'해본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어느 출판사든 초짜 번역가를 선뜻 쓰려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책의 검토나 시험번역의 기회를 어렵사리 주선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연줄'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서로 운대가 맞아야지 소심의 극치인 내가 먼저 불쑥 누군가를 소개해주겠다고 나섰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돌이켜보면 양쪽에서 만족하는 결과가 나온 적이 별로 없다. 시험번역을 통과했던 친구 하나는 결국 자기 이름으로 번역서를 한권 내기는 했지만, 자기는 죽어도 번역으로 못 먹고 살겠다며 떨어져나갔다. 현재는 학원 원장님이신데, 나더러도 만날 그 골빠지는 일 때려치우고 고액과외나 하라고 권유한다. 친구 하나는 안타깝게도 시험번역 단계를 통과하지 못했다. 수년에 걸쳐 서로 재고 테스트하고 망설이는 과정을 거쳐 동료 번역가 대열에 접어든 친구가 둘 있는데, 하나는 출산 후 육아에 전념하다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 아무데도 찾아주는 데가 없다고 괴로워하는 중이다. 얼마 전 다행히도 검토 일을 하나 연결해줬건만, 작품 분석력이 떨어져 안되겠다는 출판사 지인의 귀띔을 들었다. ㅠ.ㅠ 다른 친구 하나는 세번째 책이 요번에 나올 예정인데, 마침 잘 아는 후배가 그 책의 외주 편집을 맡았다. 뜻밖에도 문장력도 없고 원고의 첫장부터 오역 투성이라면서 온통 새빨갛게 된 교정지를 후배가 내게 보여주었다. 그 친구에게 일을 맡긴 최종 결정은 출판사가 했음에도, 내 얼굴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물론 친구에겐 여태껏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앞으로 절대로 사람을 추천하지 않기로 홀로 결심만 세웠다. 그러면서 총체적으로 또 다시 시작된 고민. 과연 나는 이 일을 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잡념인데 잘 떨쳐지지가 않는다.
우편함 맨 밑바닥 광고물 아래 깔려 있어 온 줄도 몰랐던 어느 출판사의 작년 하반기 인세보고서를 이제야 개봉하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출고 44권, 반품 46권.
실판매 -2권 (마이너스 두 권이란 뜻이다)
폐기 103권
증정및 홍보 217권.
총판매누계 3701권. (총 제작부수는 4천권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급할 인세액 란에는 마이너스 천원이 기재되었다. 계산하기 좋게 책의 정가도 딱 만원이었고, 번역인세율은 정직하게 5%(창작인세 10%, 번역인세 5%면 갑과 을이 서로 공평하다 인정하는 적정수준이다)였기 때문이다. 이 금액을 추후 판매분 인세에서 정산하겠다는 요지의 인세보고서다.
참고로 이 책으로 내가 작년 상반기에 지급받은 인세는 268부에 해당하는 13만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만 3년 반 동안 꼬박 이 책으로 발생한 인세의 총액을 계산해봐도 18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1년 평균 60만원이 채 안된다. 만약에 내가 이렇게 안팔리는 책으로만 인세로 계약해 일년내내 작업했더라면 두달에 한권씩 떡찍어내듯 번역했다고 해도 연봉이 88만원세대의 절반도 안됐을 거라는 얘기다. 켁.
책이 2007년에 나와서 초판 1쇄를 2천부 찍었고, 그나마 2년만에 2쇄, 3쇄를 1000부씩 더 찍었다는 걸 기뻐했던 순간도 있었으나, '좋은' 책을 주로 많이 내면서 모든 번역료를 인세로 정직하게 지급해온 이 출판사에서 책을 좀 팔아 이윤을 내보겠다고 상업적인 실용서를 낸 결과가 이러하니 다른 인문교양서의 실적은 어떠할지 출판계의 상황이 눈에 선하다.
오래된 지인이 편집장으로 있던 이 출판사와 이 책을 계약하며, 최소한 5, 6천부는 팔릴 것을 예상한다며 좀 오래 걸려서 그렇지 매절 번역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원고료는 챙겨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건 아니었지만, 내심 주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인세 계약이 여럿 쌓이면 꽤 짭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후 2년쯤 욕심을 내며 계속 인세 계약에 응했던 책치고 2쇄 인쇄에 들어간 책은 거의 없다. 죄다 초판도 다 소화를 못했다는 뜻이다. 6만부 팔리면 미니쿠퍼를 살 수 있겠다고 호기롭게 꿈꾸었던 책들은 그 이십분의 일도 팔려나가지 않았다. 큭큭.
물론 아직도 버리지 못한 '번역인세 대박'의 꿈과, 초기비용을 줄이려는 출판사의 정책이 맞물려 지금도 번역작업의 둘 중 하나는 인세 계약이고 그에 대한 불만은 없다. 어차피 지켜보니 출판은 도박이나 로또 맞추기와 별 다를 게 없다. 그런 엄청난 행운이 나한테 떨어질 확률은 번개 맞을 확률보다 적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정직한 퍼센티지의 인세계약과 인세지급이 장기적으로 번역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막강한 마케팅 전략으로 많이 팔릴 것을 예상하는 상업적인 책을 대뜸 인세로 계약해주는 출판사는 없지만, 생활을 위해서라도 나 역시 간간이 매절계약을 선호하니 그 또한 불만은 없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달려오다가 일년치 손익계산서를 손에 들게 되면, 간간이 한숨이 나올 정도의 연봉에 아득해질 뿐이다.
지병과 가난으로 아사한 젊은 시나리오작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오고가는 가운데, 새삼 저런 인세보고서를 열어보니 나 또한 만감이 교차했다. <빵굽는 타자기>를 읽으며 폴 오스터도 성공한 작가가 되기까지 글줄로 밥벌이를 하느라 꽤 오래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는 내용에 한편으로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 고까운 느낌이 들었었다. 어차피 이제 그는 성공한 작가가 아닌가 말이다. 며칠전 무릅팍 도사에 나온 공지영도 가난한 시절의 에피소드를 뽐내듯 말하던데, 그들이 아무리 과거의 지난함을 토로하더라도 이미 그들은 부와 성공을 거머쥔 기득권자들이다. 물론 이렇게 엄살을 떨고 있는 나 역시 일감이 없어 이런저런 쪽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일부 번역가들에게는 젠체하는 '중견'으로 보일 것임을 잘 안다. 이른바 번역계의 중산층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중산층이 무너져 워킹 푸어가 되어가고 있는 건 번역계도 마찬가지;;)
하지만 최상위 1%의 사람들이 90%이상의 부를 소유하는 현상은 글쟁이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다. 총 판매부수가 900만부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모은 돈이 하나도 없다고 엄살 떠는 판국에(물론 그 사람은 주변인이 다 써버렸다고 변명했다) 밑바닥에서 부정기적인 수입으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인세욕심에 눈이 어두워 불을 켰던 3, 4년전의 나도 아마 비빌 언덕 없이 완전 홀로 사는 신세였다면, 오피스텔 보증금을 다 까먹고 난 뒤 며칠에 한번씩 굶어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경우엔 억누를 수 없는 식탐이 자존심과 수치심을 모두 이겨 주변에 손을 벌리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말이다.
내 편견속의 글쟁이는 언제나 가난했다. 배부른 자의 손과 머리에선 청아한 생각과 문장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대체 어디부터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정도의 가난과 사회적 홀대와 역경은 감수해야 글줄로 밥벌이를 하겠다고 나설 자격이 된다는 것이 이 사회에 팽배한 의식인 것 같다. 그러다 개천에서 용 나듯, 가뭄에서 콩 나듯, 정말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글쟁이가 탄생하지 않는가. 그러나 현실은 참혹하다. '글'만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가의 비율은 지극히 적으며, 다들 부업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번역만 해서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나 정도면 감지덕지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나름 중견이고 중산층인 내가 간간이 굶지 않은 이유의 절반은 캥거루족인 덕분이란 현실은 슬플 수밖에 없다. 만일 내가 부양가족이 있는 홀벌이 '가장' 번역가였다면 부업이 필수였거나, 더욱 코피터지게 일감을 찾아 헤매야했을 것이다. 그간 인세를 100억은 벌었을 작가도 통장에 잔고가 없다는데 나까짓 게으른 인간의 통장 잔고가 비어 있는 건 당연한 일. 최고은 작가와는 엄연히 다른 상황이면서 덩달아 넋두리하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전체적으로 열악한 문화산업의 구조와 글쟁이를 홀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서글픈 비극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결국 타인의 죽음에 제 밥그릇 타령만 하고 앉아있는 이 모진 현실에서 정년이 없어 선택한 이 길은 과연 언제까지 뚫려 있을까.
반드시 창작이 아니더라도 글과 관련된 직업은 대개 '말이 빠져나가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채워넣지 않고 계속 줄줄 뽑아쓰기만 하면 어느 순간 번쩍번쩍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등이 켜지다가 완전히 방전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같은 번역가라고 해도 공력이 월등한 분들은 자가발전기 같은 게 늘 작동하고 있어서 별도의 충전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상상하며 씁쓸해 한 적도 있었으나, 그런 분들도 쉴 새 없이 빠져나가는 말을 다시 채워넣는 과정을 간간이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론 사람마다 빠져나간 말을 채워넣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여행을 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다시 책 속에서 말과 글을 골라 주워담아 비어가는 머리를 채우 것이 보통이다.
예전에 소형 카세트플레이어나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닐 때 충전지를 쓴 적이 있다. 그때 배운 건 음악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배터리가 약해졌더라도 바로 충전기에 끼우지 말고 좀 더 방치해 완전히 방전시킨 다음 다시 충전을 해야 그나마 건전지가 오래간다는 사실이었다. 최근에 나온 휴대폰에 들어가는 리튬 배터리는 그럴 필요가 없어 수시로 충전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누누히 들었어도, 한번 익힌 버릇이나 습관은 쉬 고쳐지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거의 매번 배터리가 저절로 꺼질 때까지 휴대폰을 방치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내 고집이 맞다는 듯이, 2, 3년씩 휴대폰을 써도 남들보다 배터리 성능이 쉬 떨어지는 문제를 겪은 적은 없었다. (물론 아이폰의 부실한 배터리 문제는 워낙 유명하여 나도 앞으로 어떻게 되려는지 두고볼 작정이다만;)
과거의 휴대폰처럼 여분의 배터리가 있다면야 완전히 방전이 되든 말든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배터리 인심이 인색한 아이폰처럼 문제는 그 누구도 머리를 여유분으로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몇달에 한번씩 자진 방학을 해가며 한가로이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방전을 피할 방법은 오로지 하나 미리미리 채워넣는 것뿐인데 참 그게 잘 안된다. 더욱이 작년엔 독서를 또 얼마나 게을리했던가. 작년에도 아마 읽다 그친 수많은 책들은 방전된 머리에 뭐라도 채워넣어보려고 잠깐씩 애쓰다 성급하게 중단한 흔적들일 것이다. 외출 직전에야 휴대폰이 방전된 걸 알고 한 30분쯤 충전기에 꽂아 겨우 한 눈금의 배터리로 불안불안하게 반나절을 견딜 때가 많은 나의 꼬락서니와 어쩜 그리도 닮았는지.
쌀독 바닥에 깔린 한줌의 쌀알을 닥닥 긁어모으듯 억지로 쥐어짜 역자후기를 한 편 써 보내고 나니 정말로 완전방전이 되는 바람에 블로그에 쓰는 시답잖은 수다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또 반권쯤 책을 읽고 열심히 TV 영화를 찾아보았지만 잘 알다시피 이렇게 전전긍긍할 때는 배터리의 한눈금도 잘 차오르지 않는 법. 알량한 이 포스팅도 썼다 중단하기를 세번쯤 했나보다. 원래도 많이 비어 있는 머리를 가득 채우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그럭저럭 밟아 넣어서라도 눈금을 좀 더 늘려야할 텐데 이젠 완전히 불량 전지가 되어버렸는지 진득하니 충전하는 과정을 통 못견디게 된 것 같아 걱정이다. 노상 걱정과 반성만 하지 말고 공부좀 하시지!
'번역가'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어쩔 수 없이 꼭 해야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하기 싫은 일은 누누이 이야기했다시피 '검토서'를 만드는 일이다. 번역에 앞서 책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므로 대단히 중요한 일임을 알지만, 대단히 편협한 독자로서 나는 책의 재미 여부를 말할 순 있겠으되, 과연 책이 잘 팔릴지 어쩔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분석'을 하라고 하면 그저 멍하다. 노상 지지부진한 일의 진도 때문에 쫓기는 입장이라 대개 짬을 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좀 시간 여유가 있다고 해도 책을 검토해달라는 부탁은 이제 그나마 거절을 잘하는 편이다. 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검토소견까지 소상히 '공식 문서' 형태로 작성해야 하는 검토서를 만드는 일은 정말 토나올 만큼 싫기 때문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얼치기로 아는 출판계 지인들의 부탁을 거절 못해서, 대규모 도서전 이후 원서들이 쏟아져들어올 때는 한달 내내 책읽고 검토서 만드는 일만 한 적도 있었는데, 기껏해야 10만원에서 20만원 정도밖에 주지 않는 검토비(가끔은 그 이상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만;;)도 들이는 품에 비하면 말도 안되는 수준이지만, 상당 수의 출판사에서 번역하는 이에게 검토를 맡기는 이유는 책의 내용이 쓸만하여 번역으로 이어지는 경우, 그 알량한 검토비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번역가에 대한 상당 수 출판사의 대우가 겨우 그 정도다. 필요에 따라선 공짜로도 '가끔 써먹을 수 있는 인력'. 물론, 역시나 번역을 맡게 되더라도 사전 검토비는 칼같이 따로 미리 지불하는 '훌륭한' 출판사도 있다.
헌데 양심 불량 출판사의 경우엔 번역가를 또 다른 무보수 노동에도 동원하기 일쑤인데, 책 홍보를 위한 각종 언론자료 번역이 바로 그것이다. 대개는 번역원고를 넘기고 나서 직후나 한참 뒤 책이 출간될 즈음에 부탁을 받을 때가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번역서 마다 전부 자료번역을 해야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일부 '개념있는' 출판사에서는 당연히 각종 자료에 대한 번역의뢰도 원고료로 계산해 지불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출판사에선 그냥 은근슬쩍 담당자가 '도움'을 청하는 식으로 들이미는 것으로 끝이 난다. 번역가로선 당연히 책이 잘 팔리도록 도울 의무가 있으니 극구 거절할 입장은 아니다. 정 바쁘면 양해를 구할 수 있을 테고. 또 대부분은 그 자료라는 것이 그리 많지도 않아서 크게 부담되는 일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긴 해도 게으른 나는 다른 일로 마구 바쁠 때 그런 영양가 없는 일을 하고 앉았노라면 자괴감이 든다. 흔히 번역한다고 하면 "한장에 얼마나 받아요?"라고 물으며 여권서류 번역일 쯤으로 알던 예전 대우와 달라진 게 뭐란 말인가? 물론 사내의 원칙이 어떠하든 담당자의 재량껏 앞뒤 표지와 날개글까지, 자료번역 원고까지 모두 매수계산을 해서 번역료에 반영해 지불하는 출판사도 많으니 무조건 분개할 일만도 아니다.책의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번역가가 관련 자료도 번역해야 제대로 된 카피 한 줄이라도 더 뽑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나 역시 믿으니까.
검토서 만들기 만큼 싫은 일은 아니지만 내 경우엔 역자후기 쓰기도 만만칠 않아서 일주일 이상 고민할 때가 많다. 번역하면서 뭔가 틀이라도 잡아놓는 경우엔 다행이지만, 도무지 방향도 못잡고 헤맬 때는 멍하니 백지를 들여다보며 머리털만 쥐어뽑다가 이러면서 무슨 글줄로 밥벌이를 한다는 건가 자학에 빠지기도 한다. 게다가 원고와 역자후기를 다 넘겼다고 번역가의 책무가 끝나는 건 아니다. 역자교정 과정이 아직 남았으니까. 책에 따라서 대단히 수월하게 한번 쓱 읽고 넘길 수 있는 원고도 있지만, 꼼꼼히 다시 원서대조하고 편집자와 용어 협의에 힘쓰느라 2, 3주도 훨씬 넘게 걸리는 역자교정 원고를 앞두면 또 한숨이 나온다. 그 즈음 되면 같은 책을 서너번째로 읽는 셈이니 아무리 재미 있는 책도 멀미가 나지 않겠나. -_-;; 사실 그렇게 멀미나게 역자교정을 마치고 드디어 책이 출간되면, 아무리 여러번 보았더라도 오탈자 확인도 할 겸 마지막으로 읽어주어야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몇장 들춰보는 경우는 있어도 옛날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새삼 읽고 살펴 혹시라도 2쇄에 반영할 부분을 찾아두는 경우가 없었다. 주변에서 오탈자를 일러주어 출판사에 통보한 적은 있었지만...
말 그대로의 '번역' 이외에도 번역가에게 주어지는 일의 범위가 이토록 다양하다 보니, 초창기에 에너지 넘치고 오지랖 넓을 때 작가나 해외 저작권사 쪽에 이메일 보내서 뭔가 작품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특별 서문을 먼저 부탁하는 따위의 정성은 꿈도 꾸지 않게 됐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다고나 할까. 해외 작가와 각별한 인연을 맺어서 작가 쪽에서 번역가를 독점 지정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나라면 미리 사양하고 싶다. 나도 안다. 비겁하고 불성실한 태도다. 하지만 정말로 '전문분야'를 갖고 있는 '전문번역가'를 꿈꾸는 대신 지겹지 않게 이것 저것 골고루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싶은 '종합출판인'을 목표로 삼고 있으니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번역할 때만 그러는 게 아니라, 작가 한 사람에게 반해서 그 사람 책을 모두 읽는 충실한 독자로서의 태도도 보인 적이 없다. 혹시 싫증나면 어쩌나, 라는 것이 나의 핑계지만, 이러면서 책으로 밥벌이 한다니 참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어쨌거나 마감일을 6개월도 넘게 어겼으니 어떤 무리한 부탁을 듣더라도 해줘야할 입장인 판국에, 자료번역에 대한 부분도 모두 원고료로 계산해주겠다는 '개념 있는' 출판사의 일을 하고 있으니 감지덕지해야 하는데, 어쩐지 자꾸 허드렛일 같고 자투리일 같고 쓸데없이 시간 부서지는 일 같고, 원래 내 일이 아닌 것 같은 불평이 불쑥불쑥 피어난다. 출판사에 따라서는 이런 자투리 번역만 따로 맡기는 인력망도 갖추고 있느 곳이 있긴 하다만, 결국엔 내 배가 불렀다. 번역의 원래 범위가 여기까지라고 애당초 생각했으면 될 일인데,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간 잡역부 취급했던 '일부' 출판사에 대한 고까움이 너무 커서 '책 번역' 이외의 모든 일엔 본능적인 거부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번엔 자료 분량이 워낙 많다고 또 변명;;) 그러니 여기다 고백하고 얼른 마음을 고쳐먹어야지. 책 팔아먹으려고 얼굴 팔리는 이상한 홍보에 동원하지 않는 게 어디냐.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