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님 블로그에 갔다가 알게 된 출판 외주자 실태파악 설문조사.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 있을 뿐 거의 점조직으로 퍼져 있는 출판계의 무수한 외주자들을 어떻게든 하나로 묶어 권리의 목소리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이름도 낯선 <한국외주출판인회의>라는 단체도 있대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설문조사가 이루어진다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도 일단은 대강의 '실태' 파악이라도 된다는 게 고무적인 느낌이다. 얼핏 들여다보니 편집 외주자들이 제일 똘똘 뭉쳐 활동하는 것 같다. 번역하는 사람들은 바쁜 일정 때문에 일감을 못맡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일이 거의 드물다. 그런데 편집 외주일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단행본이든 잡지든 1교, 2교, 3교를 서로 나눠 보기도 하고, 본인 일정이 안되면 다른 지인들에게 얼른 비상연락을 취해 인력을 확보해준다. 아예 외주자가 처음부터 단행본의 책임편집을 맡아 정해진 제작비 내에서 비용을 집행하는 이도 있다. 그런 경우는 사업자 등록증을 내서 하는 엄연한 단독 사업이다.

그에 비하면 번역자들은 정말 모래알처럼 흩어져 은둔하며 사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얼떨결에 출판사 행사에 참여했을 때 담당자가 그랬다. 50여명의 번역자들에게 초청의사를 밝혔으나 오겠다고 한 사람은 손가락에 꼽혔다고. 번역하는 분들은 대개 집밖에도 잘 안나오는 히키코모리 같다고. 그런 자리를 왜 내가 나갔던고 나도 무릎을 꼬집으며 후회했었다. 확실히 나를 제외하고 그날 만난 번역가들은 대외적인 활동이 활발한 분들이었다. 매체 인터뷰 같은 데서도 꽤 자주 볼 수 있는 유명인이거나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거나 두개 이상의 언어를 번역하는 멀티플레이어거나... 불어나 독어를 번역하는 실력파 가운데선 영어도 같이 번역하는 분들도 꽤 있다. 영어권 단행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어/독어 번역일이 적어 어쩔 수 없노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나 같은 사람에겐 밥그릇을 다투는 경쟁자다. 그리고 책이란 게 편집과정을 거쳐 탄생되는 터라 번역직후의 생원고를 볼 기회가 없으니 웬만해선 다른 번역가의 실력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기 난감하다. 1, 2, 3교 교정지만 딱 보면 편집자의 역량을 알 수 있다는 외주 편집자의 경우와는 다르다. 도무지 연대가 안되는 성질의 일이랄까. 그래서 사실 나는 이런저런 번역가 모임에 들라는 조언을 죄다 거절하고 살았다. 무슨무슨 협회에 들어 설렁설렁이든 열심이든 회원 활동을 하는 성격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죄다 나 같은 생각만 하고 사니 번역과 번역가의 지위를 바라보는 출판계의 시선과 대우가 크게 달라질 리 없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나는 출판 외주자 프리랜서들의 연합과 단체행동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자기 이름을 옮긴이로 인쇄할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아주 저렴하게, 아니 공짜로도 번역을 하겠다는 의욕 넘치는 이들이 세상엔 아직도 많고, 낮은 단가에라도 일단 생계를 위해선 일감 끊기는 일 없이 지속적인 작업을 하는 게 더 중요한 사람들도 수두룩하니까. 그렇다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곤란하다는 건 알기에 우선 실태파악이라도 해보자는 움직임에는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에라도 출판 외주자 노동조합 같은 게 생겨나 권익이 제대로 보호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나. (당장 떠오르는 건 주변에서 죄다 내용증명 보내라고 부추기는데도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 출판사의 미출간 원고료 미지급건  +_+)

어쨌거나 현재의 일과 대우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하느냐, 마감때 하루 일하는 시간은 몇시간이나 되느냐, 월평균 수입은 얼마냐, 외주일을 끝내고 정신적, 신체적 피로를 느낀 적이 있느냐, 외주 일감에 대한 급여를 떼먹힌 적이 있느냐 따위의 설문에 답변하며 문득 서글퍼지기는 했지만 아무튼 퍼질러 앉아 있기보다는 손가락이라도 행동에 참여해보자는 취지로 여기에 퍼다놓는다. 출판 번역에 종사하고 계신 이웃들도 혹시 설문에 참여하고 싶어질지 모르니까... 번역뿐만 아니라 편집, 디자인, 글, 그림, 대필, 원고 입력, 영업 등 분야도 다양하다니 가끔 눈팅만 하고 가는 프리랜서 두 J양도 마침 보게 되면 참여해보심이 어떨지. ^^* (링크된 사이트들을 보니 당신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 같기는 하군)

설문조사 안내는 여기(설문 참여는 4월 말까지 가능함)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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