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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2. 6. 11. 17:40

쓰다 만 서도호 전시 후기를 마무리 해야하는데 통 못하고 있다.

요즘은 특히나 글이 눈에 잘 안들어오고 써지지도 않는 시기인 듯.

풋. 슬럼프 핑계 대기도 이젠 민망하고 지친다.

 

최근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정리해야 할 계기가 있었다.

번역가라는 직업의 장단점도 새삼 꼽아보고, 알고보면 허술하고 열악한 출판번역계의 현실도 인정하고

분명 매력 있는 일이지만 잘 하려 들면 들수록 더 큰 어려움이 느껴지는 번역의 허망함도 까발렸다.

탁 까놓고 연봉이 얼마나 되냐는 물음엔 '영업상 비밀'이라고 눙치는 데 성공을 거두었으나

'나만의 번역론'이 무얼까 하는 질문에선 딱 막혔다.

......

 

이미 많은 유명인들이 번역에 관하여 워낙 주옥같은 명언들을 쏟아냈기에

난 그저 살짝 얹혀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번역은 반역", "번역은 실패의 예술", "번역은 경계를 넘어서는 일", "번역은 언제나 손실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훌륭한 번역론을 감히 내가 어찌 생각해내겠나.

노동력 대비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지기는 하나 그래도 내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훌륭한 밥벌이 수단이라 여기며 그저 감사할밖에.

 

내가 허투루 보내는 오늘 하루가 누군가에겐 절박하고 간절한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식의

감상적 사고 전환이 더는 불가능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노상 투털투덜 구시렁구시렁 불평불만 많은 나의 직업이 누군가 몹시 선망하는 목표라는 사실도 크게 절실하진 않다.

인간은 원래 가진 걸 잘 몰라보고 늘 멀리서만 파랑새를 찾는 족속이 아닌가.

 

그럼에도 가끔씩 허우적대던 구멍에서 벗어나 돌아보고 반성하고 주제파악을 하는 건 꽤 건설적인 과정이다.

초심으로 돌아가기엔 속물 근성이 너무 완연해졌더라도

그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을 뒤지며 조금 웃을 수 있었다.

17년 전의 나는 참 무모하게도 패기 넘쳤고, 그런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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