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베스트 포스팅을 하려고 보니 먼저 읽은 책 정리부터 해야겠다 싶었다. 마흔권을 넘겼던 작년에 비해 권수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으니 정리하기도 더 수월하다. 읽은 족족 누구에게든 도움이 될만한 독후감을 써놓으면 참 좋으련만 올해도 독서후기는 거의 남기지 못했고, 독서노트랍시고 만들어놓은 공책에도 감상은 별로 없고 죄다 베껴적어놓은 인용문 투성이다. 그래서 어떤 책은 제목도 벌써 가물가물, 낯설 정도다. 적어놓은 제목을 보며 소설인지 비소설인지 분류하는 것도 혼동했으니 오죽하랴. 어쨌든 따져보니 24권, 한달에 딱 2권 꼴이다. 여름 지나고부터는 통 소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비소설만 찾아보았는데도 소설이 적지 않아 좀 놀랐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일도 하기 싫어 마냥 방구석에서 뒹굴러다니는 날들이 많았기에, 독서경향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그저 이 정도로도 장하다고 결론지었다.
<소설>
1.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김남주 옮김, 민음사
장기이식을 위한 인간 복제를 다룬 이야기인데, 이웃 주민들의 평처럼 읽는 내내 슬프고 먹먹한 가슴을 움켜쥐었다. 잘 만들었다는 영화도 찾아봐야지 마음만 먹었을 뿐 아직은 보지 못했다. 뭔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영화일 것 같아서. 묵묵히 자신의 존재이유를 받아들이는 클론들의 태도에 분노하면서도 곧 감정이입과 수긍이 가능했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그려내서 그런 걸 거라 여기며,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도 사다놓고는 두툼한 2권짜리 분량에 시작도 못하고 먼지만 씌웠다. 2011년, 2012년에 이어 2013년 독서목록에도 가즈오 이시구로가 등장하겠구나 싶다.
2. 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박현주 옮김, 북하우스
<7년의 밤>에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작가가 되고싶어하는 등장인물이 나오는데다 정유정도 좋아하는 작가라고 해서 그럼 어디 한번 읽어보자 했었다. 그러나 필립 말로는 셜록 홈즈만큼 매력적인 주인공이 아니었고, 기대한 만큼 챈들러의 작품도 끌리는 데가 없었다. 딱 한권 읽고 판단하기는 섣부르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암튼 내겐 너무 미국 냄새 풀풀.
3. 기타보이, M. J. 아크 지음/문지영 옮김, 낮은 산
불우한 환경을 딛고 꿈을 이뤄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청소년 소설.
연초에 읽어 가물거리는데 책도 어디갔나 안보여서;; 더는 못적겠다. 번역하신 치니님께 괜히 죄송.
4.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지음, 웅진
5.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웅진
작년에 이어 계속된 박완서 다시 읽기의 일환. 인생과 현실은 정말이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고 새삼 느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생도 이 소설들 못지 않게 기구할텐데.. 하는 생각도 더불어 들었던 것 같다.
6. 메트로랜드, 줄리언 반스 지음/신재실 옮김, 열린책들
이웃 따라 줄리언 반스 읽기 프로젝트 좀 해보려고 책은 사들였으나 하나같이 좀체 몰입되질 않아 몇 장 읽고 던져버리기를 거듭하던 끝에, 데뷔작이라는 이 책 딱 한권을 읽어낼 수 있었다. 성장소설이어서 그랬을까. 남들보다 성장이 더디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이라서 유독 청소년 소설, 성장소설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 같다. 밑줄 그어둔 부분도 꽤 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느니보다는 청춘을 빈둥거리는 편이 더 낫다. (중략) 적당하게 <태평한> 방식으로 빈둥거리지만, 항상 눈을 크게 뜸으로써, 삶을 손아귀에 쥘 수 있다" - 37쪽. (그래서 나도 중년을 빈둥거리는 쪽으로 방향을;;; ㅋㅋ)
"나는 요사이 왜 행복이 멸시당하는지 의아하다. 안락 또는 자기만족과 경멸적으로 혼동되고, 사회적, 심지어는 기술적 진보의 적으로 심판을 받기 때문인가? 사람들은 행복을 보아도 믿기를 거부하거나, 그것을 단순히 요행으로 얻은 것, 단순히 유전적인 어떤 것, 몇방울의 이것, 소량의 저것, 두셋의 염색체의 원할한 접합으로 무시한다. 성취로 보지 않는다." - 263쪽.
7.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박현주 옮김, 마음산책
한여름에 읽으며 서늘한 느낌에 좋았지만, 북극해의 날씨가 실감되는 요즘에 읽으면 더욱 묘미가 있을 것 같아 조만간 다시 읽어볼 작정이다. 아마도 베스트 책 3 후보작. 드물게 독서후기도 올렸으니 링크로 대신.
8. 알라디노의 램프,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권미선 옮김, 열린책들
<연애소설 읽는 노인> 읽고 좋아서 오래 전에 사놓은 단편집을 드디어 읽었다. 여행 중 얻은 영감과 경험을 녹여 쓴 작품은 환상적이기도 하고 통쾌한 풍자와 유머, 씁쓸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제일 좋았던 단편은 돈이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라는 교훈을 전한 <가늘고 기다란 행운의 불꽃>.
9.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권미선 옮김, 민음사
다 읽고 나서 한밤중임에도 맹렬히 요리가 하고 싶어졌던 책이다. 음식과 사랑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는 작가의 견해대로, 요리와 사랑의 공통점을 맛있고 향기롭게, 그러나 종종 가슴 아프게 그려냈다. 그런데 그리 깊은 인상은 안남겼던 모양으로 이번에 목록 정리하면서, 엥? 내가 이런 책을 읽었던가 싶었다. ㅠ.ㅠ
인상깊었던 구절은... 속으로 뜨끔했었던;;; "티타는 삶의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혼동했다." - 14쪽.
10. 원수들, 사랑 이야기,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김진준 옮김/열린책들
언젠가 미스터노 시리즈 반값 세일 할 때 사둔 책이었던 것 같다. 누렇게 변해가고 있던 책이 어느날 전격 눈에 띄어 단숨에 읽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라는데 나는 전혀 모를 뿐이고... ㅠ.ㅠ
홀로코스트를 피해 살아남아 미국으로 온 유대계 폴란드인이 동족들에게 느끼는 부채감과 불안감을 그린 소설인데, 그 불안감의 표출이 아 글쎄 중혼이다. 능력도 별로 없는 남자에게 부인이 셋이라니 ㅋㅋㅋ 비극이면서 희극이라 종종 킥킥댔다.
11. 문, 나쓰메 소세키 지음/김정숙 옮김, 비채
작품의 고즈넉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좀체 몰입이 되질 않아 몇번이나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했다. 물론 순전히 나 개인의 심리 탓이어서, 결국 제대로 읽게 됐을 땐 내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육중한 문짝 아래 계속 서서 기다리듯 스스로 은둔하고 숨죽여 살아가야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어쩐지 알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시절이 옛날이기로서니, 불륜이 그토록 평생 업보를 지고 가야할 엄중한 죄인가? 새삼 궁금;;
<비소설>
1. 그날들, 윌리 로니스 지음 및 사진/류재화 옮김, 이봄
사진이 많긴 하지만 질투심 불쑥 솟았을 만큼 정갈한 글솜씨로 엮은 에세이집이었다. 책 자랑 겸 후기도 올렸으니 링크로 대체
2. 조선 왕을 말하다, 이덕일 지음, 역사의 아침
3. 조선 왕을 말하다2, 이덕일 지음, 역사의 아침
악역을 자처한 왕, 쫓겨난 왕, 절반만 성공한 왕 등으로 구분하여 성공한 군주와 실패한 군주를 역사적으로 조명한 책이므로 1, 2권을 연달아 읽은 건 아니지만, 두권 모두 퍽 재미있게 읽었다. 첫권은 총선 즈음, 2권은 대선 즈음하여 읽었던 터라 조선의 역대 왕에 대한 지은이의 평가가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덕일에 대해서는 일부에서 하도 '듣보잡' 취급하며 '까대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로선 더욱 흥미가 동하는 저자다. ㅋㅋ
"어떤 정치 지도자가 혜성같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혜성 같이 등장한 지도자가 성공의 결실을 거두는 경우는 드물다. 기존체제와 맞서 싸우면서도 미래를 지향해야 하는데 대부분 기존 체제와 싸우다가 끝을 맺기 마련이다. 혜성같이 등장한 대원군의 앞에도 같은 길이 놓여 있었다." - 조선 왕 2, 401쪽
4. 고흐의 다락방, 프레드 리먼 & 알렉산드라 리프 지음/박대정 옮김/마음산책
책이 예뻐서 와우북 페스티벌 때 집어들었던 것 같은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고흐의 그림과 그와 관련되어 남은 에피소드를 엮고 지금도 가 볼 수 있는 그 장소와 음식들을 레시피까지 설명해놓았다. 내 느낌으론 이도저도 아니어서 되다 만 책 같고, 안타깝게도 하나도 남은 인상이 없다. 어떤 책이었더라, 까먹어 이 포스팅 하느라 일부러 책을 들춰보아야했을 정도. 고흐 관련한 일대기를 내가 이미 너무 많이 읽어서 그랬을까.
5. 시간의 목소리,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김현균 옮김, 후마니타스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지식인이 직접 체험했거나 들은 짧은 이야기 333편을 엮은 책이다. 모르는 이름이 많지만 가끔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이름도 등장하고, 축구공과 초콜릿과 열대우림에 대해서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되기도 한다. 이웃의 독서 목록에서 보고 따라 읽은 책인데, 베껴 적어놓은 글귀가 여러 장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고, 재미난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길고 혹독한 겨울에 호수가 얼어붙었다. 예고도 없이 호수가 갑자기 빙판으로 변해 버려 왜가리들은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밤낮 없이 여러날 동안 사력을 다해 날갯짓을 한 끝에 포로였던 왜가리들은 마침내 날아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호수를 통째로 든 채였다. 그들은 얼어붙은 호수를 가져가 버렸고 호수를 매단 채 하늘을 날았다. 얼음이 녹자 호수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먼 곳에 남게 되었다." - 213쪽, 지리학자.
(이건 티티카카 호수의 이야기 아닌가! 반가웠다.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
6.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김태현 지음, 역사의 아침
정조가 워낙 인기 키워드라 제목을 저리 붙였겠으나 책 전체가 다 정조의 심리분석은 아니다. 3분의 1쯤? 나머지는 이이, 허균, 연산균의 분석이다. 사람의 심리유형을 내향-외향, 감각-직관, 감정-사고, 실천-인식의 쌍으로 분류하여 분석하는 것은 MBTI 성격분석이랑 비슷한 듯. 읽을 땐 혹해서 책장을 넘겼으나 성격분석 테스트할 때처럼 그 때뿐이지 남는 건 없는 것도 같다.
"영조는 마마보이였다. 애정결핍이나 독재 뿐만 아니라 동정심에 기초한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연민'도 마마보이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얼마 전까지 한국사회에서 가장 흔한 유형이기도 하다. 조금도 쉬지 못하고 고생고생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데도, 아버지를 비롯해 주변 식구들에게 대접받지 못하고 당하며 사는 어머니들이 있다. 아마 조선시대의 여성들 중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 31쪽
7. 세계시골마을, 이형준 글&사진, 예담
여행기는 섣불리 집어들지 않는다. 역마살이 도질까 두려워서다. 그런데 참... 이렇게 무무건조하게 읽히는 여행기가 다 있나 싶었던 책이다. 글도 사진도 어느 하나 여행 열망을 부채질하지 못했다. ^^; 예술마을, 문화마을, 전통마을로 구분해놓았으나 그 의미도 불분명하고 내용도 피상적인 요약에 불과했다. 차라리 마을의 수를 줄이고 내용에 더 공을 들였다면 누구에게든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등 도움될 것 없는 제자랑식 여행지 나열이 아니고 뭔가 싶었다. 책을 끝낸 게 장하다.
8. 요리본능, 리처드 랭엄 지음/조현욱 옮김, 사이언스북스
직립원인의 출현에 대하여, 효율적인 사냥으로 안정적인 고기 섭취가 이뤄짐에 따라 식물성 먹거리를 먹을 때보다 에너지 섭취가 많아져 뇌가 커질 수 있었다는 것이 전통 인류학 이론인데 반해, 이 책은 육식이 중요한 게 아니고 불에 익혀 먹는 '화식'이 그 직접적인 요인이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질긴 날고기를 씹어먹기엔 직립원인의 턱이 너무도 허약하고 치아크기가 작다는 점이 지은이의 논점이다.
계속해서 인간이 생식을 했더라면 하루에 씹는데만 5시간이 걸렸을 거라고;;; 수렵과 채집이 주요 식량 활동이긴 했을지라도 불의 사용으로 요리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성별분업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도 한다.
먹는 데 관심이 많은 인간인지라 퍽 재미나게 읽었다.
"... 생식을 하면 몸이 야윈다." - 35쪽
"불의 사용은 음식을 씹는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켜 줌으로써 사냥꾼들을 과거의 시간제약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또한 해가 진 후에 먹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따라서 사냥은 우연히 기회가 와서 하는 활동이 아니라, 헌신해서 하는 활동이 되어 보다 높은 성공 가능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식이 시작된 이후에야 비로소 사냥이 완전한 가정, 즉 여성과 남성 간에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경제적 교환이 이루어지고 그것을 토대로 한 가정으로의 발달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 189쪽.
"우리는 소화하기 쉬운 음식을 먹기 때문에 살이 찐다." - 263쪽
9. 희망, 리영희 지음, 한길사
선생 작고 후 리영희 선생의 산문집이라도 한 권 읽어야지 마음먹고 사두었던 책이다. 편집자가 골라 실은 글이니만큼 예나 지금이나 하나같이 피가되고 살이되는 말씀. 공책에 여러 장 베껴적어두었는데 오늘 새삼 눈에 띄는 부분은 에드라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인용 부분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모드(유행과 사치)는 개인적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 동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한 사회의 높은 계급이나 부강한 계층이 사회경제적으로 낮거나 빈약한 계급(층)으로부터 자기를 구별하려는 노력이다. 자기보다 낮거나 가난한 계층과 혼돈되는 위험을 예방하려는 외적 표현이다. 특히 여성의 유행과 사치는 자기와 같은 지위를 모방하려는 하급 여성의 모드를 파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새롭게 고안되는 하나의 계급적 표지이다. 말하자면 신분적, 계급적 허영심의 경주인 것이다. 그 경주는, 한쪽에서는 조금이라도 앞섬으로써 자기와 자기에 대한 경쟁자를 구별하려는 노력이고, 다른 쪽에서는 새로운 모드를 모방함으로써 경쟁자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투쟁이다." - 159쪽, 키스 앤드 굿바이.
10. 탐서주의자의 책, 표정훈 지음, 마음산책
출판계에서의 위치가 상당히 견고한 편인데도 글 팔아 먹고 사는 매문가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고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잘 읽지도 않으면서 자꾸만 책을 탐하는 '장서가'에 가까운 나의 경향에 위로가 되는 부분도 발견하여 적어두었다.
".....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책'.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지적 허영' 운운하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적 허영이 남을 깔보거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다가 망상의 지경에 이를 정도만 아니라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허영은 억지로 삼가기 보다 기꺼이 즐기는 게 좋지 않을까. 요컨대 자신과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지적 허영이 자괴와 자탄보다는 훨씬 더 건강하다. 어느 분야에서든 창조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이들의 대부분은 허영을 생산적으로 잘 갈무리한 사람들이 아닐까?" - 231쪽.
11. 지구를 부탁해, 박동곤 지음, 사이언스북스
읽자마자는 너무 재미있어서 독서후기를 쓸까 고민도 했었는데 두뇌의 한계로 벌써 그 느낌이 가물가물하다. 학교 다닐 때 지구과학이나 화학을 이렇게 재미있게 가르쳐준 선생님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기억난다. (물론 나는 문과라서 지구과학을 배우지 않았다;; ㅋ) 얼치기 환경주의자처럼 내가 주워들은 풍월로 걱정해온 지구에 대해서,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그리 어렵지 않게 귀여운 그림을 곁들여 설명해주기 때문에 읽을 땐 마치 다 알 것 같았다. 지금도 과연 그런지는 의문이지만... -_-;
앞부분에 지구의 생성과 구조를 총정리해준 뒤, 대기권, 수권, 암석권으로 나누어 우리가 다른 생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게 해놓았다.
"과거의 사라진 문명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예외 없이 거쳐간 단계적 현상은 인구과잉, 과소비, 이어진 자연자원의 고갈이었다는 점에 우리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 215쪽
"흔히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행동과 실천을 강조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관한 한 이는 앞뒤가 바뀐 잘못된 접근법이다.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행동과 실천을 강요함으로써 괜한 자책감만 갖게 하고 실제로는 변화에서 오히려 멀어지게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행동에 앞서야 하는 것은 바로 관심이다. 관심이라도 갖게 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관심만 가져도 이미 행동의 변화는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244쪽.
12. 번역어의 성립, 야나부 아키라 지음/김옥히 옮김, 마음산책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현재 쓰고 있는 수많은 번역어들이 일본의 앞선 난학 도입에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알기에 크게 기대를 하고 사보았는데;; 의미있는 책임은 알겠으나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좀 달랐다. ㅠ.ㅠ
'사회, 개인, 근대, 미, 연애, 존재, 자연, 권리, 자유, 그/그녀' 10가지 번역어의 일본내 생성 및 생존기여서, 그 과정도 알지 못한 채 낼름 고대로 가져다 쓰고 있는 우리로선 고마울 따름이지만, 일본어도 모르고 일문학도 모르는 나로서는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이 무리였스무니다.
13.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이주한 지음, 역사의 아침
영화를 봐도 그렇고 사극 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역사상 정조가 없었으면 어쩔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몇년 전에 발견된 정조 어찰도 그렇고!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덕일의 역사서를 재미있게 읽은 편인데, 정조 어찰에 대한 연구발표가 이루어진 직후 한겨레 신문에서 오간 논란 또한 흥미롭게 지켜본 적이 있다. 그 후속 이야기랄 수 있는 이 책이 나왔다고 하여 어디 한 번 보자 싶었다.
읽는 내내 어찌나 깔깔 웃어댔는지! 일부 학계와 출판계에서 이덕일의 저작과 연구를 듣보잡 취급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대충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이덕일 대신 나선 지은이가(같은 연구소 사람이니 제자 쯤 되려나? ㅋㅋ) 다시 그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 책에서 비판의 대상인 교수들도 인용문을 보면 정말 기막힐 정도로 유치하게 웃기고(학회지 같은 곳에 그렇게 상대 연구자에 대한 인신모독의 글을 써도 되는지 정말 몰랐다!), 똑같이 비난하며 댓거리하는 지은이의 논리도 웃기다! 학계에서도 주류 역사학자와 비주류 역사학자의 싸움이 있는 것 같고, 양극단의 저자들을 중심으로 출판계에서도 다툼이 있는 느낌. 크하하하... 대중역사서 출간에 힘쓰는 모모 출판사들을 앞으로도 지켜봐야겠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싸움 구경이 또 있으랴 싶네그려. ;-p
24권 중 소설 대 비소설은 11: 13이고, 번역서 대 국내서는 14: 10이다. 신간도서의 대다수를 아직도 번역서가 차지하는 이 나라 출판 경향을 나 한사람의 취향과 비교할 순 없지만, 그래도 번역서가 더 많다는 걸 개인적인 희망으로 보아도 좋을까 어쩔까 고민하고 있는 내가 문득 가엾어졌다. 흑;;
(인상 깊게 좋았던 책은 파란색으로 색을 달리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