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

투덜일기 2009. 4. 3. 17:33

내가 완전히 강박증 환자라는 얘기는 아니고, 사람마다 약간씩 강박증에 가깝게 신경쓰는 부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강박증은 좀 센 말이고 그저 염려증 정도가 적당하려나.
나도 몇가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부분이 있다.

첫번째는 손씻기. 볼일을 보고나서 손을 씻거나 뭔가를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밖에 나가선 손 안씻고 밥도 잘 먹으면서 집에 있으면 커피 한잔을 마시려해도 먼저 손부터 씻고 있다. 문제는 그냥 나만 그러고 살면 되는데, 온종일 엄마한테 손씻으라고 잔소리 하는 것. +_+
울 엄마는 예로부터 전쟁을 거쳐 물 길어 먹던 세대를 오래 살았던 지라, 웬만해선 손을 안씻으신다. ㅋㅋ 씻으라고 잔소리 하면 물 묻히는 시늉만 하시는 정도. 꼭 <비누질> 하시라고 덧붙여도 손씻는데 30초도 안걸리나보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손을 너무 자주 씻는다고 타박이다. 으휴.
그치만 손만 잘 씻어도 감기에 걸릴 확률이 반으로 준다는데!

두번째 염려증은 컴퓨터가 어느 순간 망가져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
거의 컴맹인지라 아주 가끔 <치명적인 오류> 어쩌구 하는 글귀를 볼 때면 겁부터 난다. 최근 10년동안 두번, 컴퓨터가 망가진 적이 있었다. 처음 망가졌을 땐 아무 대책없이 모든 파일을 다 날리고 복구도 하지 못해 새 컴퓨터를 장만하며 정말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컴퓨터 수리를 하러 온 기술자의 실력부족 탓이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이미 엎어진 물. 그래서 옛날 초기에 작업한 책들은 원고가 하나도 없다. 그나마 두번째로 컴퓨터가 이상해졌을 땐, 일부 파일을 복구해주어서 너덜너덜해지긴 했어도 자료를 얼마간 건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컴퓨터에 든 자료를 날릴까봐 염려하면서도 그간 백업을 해놓는다든지 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것. 섹스앤더시티에서 캐리가 노트북이 망가져 원고를 모두 날리고 전전긍긍하는 에피소드를 봤을 때부터, 나도 백업해두는 습관을 들여야한다고 생각은 오래 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나마 노트북이 생긴 뒤로 usb로 간간이 공유해돈 파일이 있긴 해도 체계적인 백업은 실천에 옮기기가 어려웠다. 원고를 날릴까봐 늘 불안에 떨면서도 외장하드를 사야지 사야지 마음만 먹다가 드디어 실천에 옮긴 게 불과 지난달이다. 그런데 그렇게 죄다 복사해놓고도 여전히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외장하드도 에러나면 어쩌나, 이러면서. +_+

세번째 염려증은 매사를 의심하고 걱정하는 나의 태도 자체다.
오늘도 교정지를 퀵 아저씨에게 보내며, 마구 불안했다. 이미 내 머리속에선 퀵서비스 아저씨가 요리조리 복잡한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리다 사고가 나 심하게 다치고 상자에 든 원고는 어디론가 내팽개쳐지는 장면이 연상되고 있었다. 켁. 물론 퀵서비스며 택배로 출판사와 원고를 주고받은지 몇년동안 그런 사고는 단 한번도 없었는데도!
조금전엔 엄마가 동네 친구의 부추김을 받아 뒷동산 산책을 가셨는데, 엄마가 돌아오기까지 나는 계속 부실한 다리로 언덕을 오르다 나동그라져 구급차를 부르는 상황에 놓인 엄마의 모습이 자꾸 상상돼서 안절부절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모시고 산책나가는 건 또 싫다. -_-;
노파심이란 말이 왜 생겼는지 점점 실감하는 나이가 된 겐가. 젠장.
요 며칠처럼 잠을 부실하게 자면 확실히 쓸데없이 불안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도 같다. 
그저 잠이 보약이려니 생각하고 오늘은 푹 좀 자야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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