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식료품 쇼핑을 하는 건 환경을 위해서나 건강을 위해서나 좋지 않은 일이니 재래시장에서 그때그때 먹을 것만 구입해야 한다는 원칙은 나도 안다. 하지만, 마트에서도 원산지를 속이는 판국에 원산지 표시가 잘 눈에 띄지도 않는 우리 동네 재래시장은 좀체 잘 안가게 된다. 특히 시장 입구에 좌판을 벌이고 마치 집앞 텃밭에서 뜯어온 것처럼 소규모로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들의 채소가 박스째 떼어온 중국산일 수도 있음을 알고 난 뒤로는 말이다. 게다가 나로선 일주일에 한번 장보는 것도 얼마나 별러야하는 일인데!
어쨌거나 장바구니에 생선과 고기 같은 신선식품은 미리 담아오더라도 늘 박스 한두개는 따로 배달을 시켜야 할 정도로 거한 일주일치 장보기를 마치고 난 다음 며칠은 당연히 밥상이 풍성하다.
원래 어젠 공주님 납시는 날이어서 가장 풍성한 밥상이 꾸며졌어야 할 터이나, 저녁에 <파스타>가 먹고 싶다는 난데없는 공주의 변덕을 맞닥뜨린 무수리는 우리 동네 마트에선 생 <바질>을 절대로 구할 수 없다는 억지스런 변명으로 간단히 인스턴트 스파게티를 해먹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고 본격 요리는 오늘로 미뤄졌다.
오늘은 오징어를 볶을까 시금치된장국을 끓일까 고민하다 블로그질에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르고 어영부영 시간이 많이 지나 제일 간단한 닭죽을 끓이기로 했다. 통마늘과 대파를 넣고 푹푹 닭을 삶다가 불린 찹쌀만 넣어 끓이면 되는 간단한 메뉴. 어려선 닭 백숙과 닭죽이 그리도 느끼하고 싫더니 요샌 별러서 먹는 영양식이다. 물론 엄마가 해주실 때보다 나는 닭껍질을 많이 벗겨버리고 누런 기름도 죄다 건져내니까 당연히 담백할 수밖에 없겠지만...
어제 저녁에 끓인 굴국도 시원하고 좋았는데 엄마가 점심때 안드시고 남겨두는 바람에 나는 신경질을 펄펄 내며 다 쏟아버린다고 신경질을 부렸다. 내가 요리한 음식이 내가 예상한 대로 <딱딱> 소비되지 않으면 나는 왜 화가 나는지.
엄마는 순전히 나 먹으라고 아껴둔 것이지만, 저녁엔 또 저녁에 먹을 메뉴를 염두에 두고 있던 나는 계획이 틀어지면 버럭 히스테리와 홧병이 도진다.
삼십대 초반이었을 거다. 초보 번역가 시절, 어느 출판사의 부탁으로 외서기획과 저작권 계약 업무를 도우며 비상근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란 저작권 에이전시를 주기적으로 돌아다니며 책을 추천받고 검토를 하고 기획회의를 거쳐 계약을 추진하는 것. 기회가 되면 맘에 드는 책을 번역하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 만난 어느 저작권 담당자 때문에 웃을 일이 있었다.
당시에 내가 액세서리, 특히 반지를 좀 과도하게 끼고 다닌 탓도 있기는 했겠지만, 몇달쯤 안면을 익히고 나서 점심도 한번 같이 먹어 일 관련 이야기와 함께 간간이 사담도 끼어들기 시작했을 무렵 나와 동년배였던 그 담당자가 나에게 난데없이 물었다.
"아직 아이는 없으세요?"
허걱.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푸하하하 웃으면서 결혼여부도 아니고 어떻게 대뜸 아이가 없는지 물을 수 있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게 유부녀 아줌마스러워 보였느냐고.
그 담당자는 몹시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지면서, 나이 들어 보인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며 두세개쯤 끼고 다니던 나의 알반지 때문만은 아니고 그냥 분위기가 그렇게 느껴졌다고 실토했다. 자기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더욱 잘 아는데, 통상적인 혼기로 여겨지는 나이가 지난 미혼여성들, 특히 자존감이랄까 자기색깔이 뚜렷하기 쉬운 출판계의 <노처녀>들이 풍기는 미묘한 까칠함과 조바심 같은 것이 나에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분의 변명이었다. 심지어 나에게선 기혼자 특유의 여유로움 같은 것까지 풍겼다나. -_-a 자기가 설명을 계속 이어봤자 나에겐 더욱 민망한 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는 정말로 칭찬의 의미였다고 극구 미안함을 토로했고 나도 순순히 칭찬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남들 다하는 것의 때를 놓친(또는 놓쳤다고 생각하며 낭패감에 젖는) 사람들은 확실히 조바심과 앙탈을 부릴 수밖에 없다. 20대 초반부터 꽤 오래 결혼을 꿈꾸며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마음처럼 삶이 풀려나가지 않았던 내 주변의 몇몇 친구들이 그야말로 <노처녀 히스테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에게선 그런 짜증스러움이 온몸에서 배어나오지 않는다는 평가에 그땐 솔직히 흐뭇했다.
그런데 그때의 그 담당자를 요즘 만난다면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 틀림없다. 매사에 왜 이리도 짜증이 많아졌는지. 물론 지금도 혼자라는 내 상태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고, 이 정도의 자유로움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만날 무얼 해먹어야 할지, 냉장고에 먹을 거리가 떨어졌는지 살펴야 하는 밥순이로서의 삶은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다. 가사 도우미를 들이고 그 시간에 열심히 일을 더 해보자는 생각도 해보지만, 사실 내가 <실제로> 가사일에 힘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청소도 일주일에 한번 할까말까 하니, 후닥닥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 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과연 그 시간에 일을 얼마나 하겠나. 오히려 시간이 많이 드는 건 왕비마마의 건강과 영양상태를 감안해서 메뉴를 고민하는 일인데, 우유부단함과 본인의 식탐까지 더해져 그 과정은 쓸데없이 참 소모적이다. 그러고는 또 혼자서 생병을 앓으며 짜증을 부려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고 사니, 삶이 반영되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얼굴은 더더욱 못생겨지고 있는 듯하다. ㅜ.ㅜ
예전엔 그래도 아, 또 한끼 해결했으니 기쁘다, 고 여겼는데
이젠 아이고, 한끼는 해결했다만 내일은 또 뭘 해먹냐, 고 미리 걱정부터 하고 앉았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인데 난 왜 이리 자꾸 비비 꼬일까나.
어쨌거나 장바구니에 생선과 고기 같은 신선식품은 미리 담아오더라도 늘 박스 한두개는 따로 배달을 시켜야 할 정도로 거한 일주일치 장보기를 마치고 난 다음 며칠은 당연히 밥상이 풍성하다.
원래 어젠 공주님 납시는 날이어서 가장 풍성한 밥상이 꾸며졌어야 할 터이나, 저녁에 <파스타>가 먹고 싶다는 난데없는 공주의 변덕을 맞닥뜨린 무수리는 우리 동네 마트에선 생 <바질>을 절대로 구할 수 없다는 억지스런 변명으로 간단히 인스턴트 스파게티를 해먹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고 본격 요리는 오늘로 미뤄졌다.
오늘은 오징어를 볶을까 시금치된장국을 끓일까 고민하다 블로그질에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르고 어영부영 시간이 많이 지나 제일 간단한 닭죽을 끓이기로 했다. 통마늘과 대파를 넣고 푹푹 닭을 삶다가 불린 찹쌀만 넣어 끓이면 되는 간단한 메뉴. 어려선 닭 백숙과 닭죽이 그리도 느끼하고 싫더니 요샌 별러서 먹는 영양식이다. 물론 엄마가 해주실 때보다 나는 닭껍질을 많이 벗겨버리고 누런 기름도 죄다 건져내니까 당연히 담백할 수밖에 없겠지만...
어제 저녁에 끓인 굴국도 시원하고 좋았는데 엄마가 점심때 안드시고 남겨두는 바람에 나는 신경질을 펄펄 내며 다 쏟아버린다고 신경질을 부렸다. 내가 요리한 음식이 내가 예상한 대로 <딱딱> 소비되지 않으면 나는 왜 화가 나는지.
엄마는 순전히 나 먹으라고 아껴둔 것이지만, 저녁엔 또 저녁에 먹을 메뉴를 염두에 두고 있던 나는 계획이 틀어지면 버럭 히스테리와 홧병이 도진다.
삼십대 초반이었을 거다. 초보 번역가 시절, 어느 출판사의 부탁으로 외서기획과 저작권 계약 업무를 도우며 비상근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란 저작권 에이전시를 주기적으로 돌아다니며 책을 추천받고 검토를 하고 기획회의를 거쳐 계약을 추진하는 것. 기회가 되면 맘에 드는 책을 번역하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 만난 어느 저작권 담당자 때문에 웃을 일이 있었다.
당시에 내가 액세서리, 특히 반지를 좀 과도하게 끼고 다닌 탓도 있기는 했겠지만, 몇달쯤 안면을 익히고 나서 점심도 한번 같이 먹어 일 관련 이야기와 함께 간간이 사담도 끼어들기 시작했을 무렵 나와 동년배였던 그 담당자가 나에게 난데없이 물었다.
"아직 아이는 없으세요?"
허걱.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푸하하하 웃으면서 결혼여부도 아니고 어떻게 대뜸 아이가 없는지 물을 수 있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게 유부녀 아줌마스러워 보였느냐고.
그 담당자는 몹시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지면서, 나이 들어 보인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며 두세개쯤 끼고 다니던 나의 알반지 때문만은 아니고 그냥 분위기가 그렇게 느껴졌다고 실토했다. 자기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더욱 잘 아는데, 통상적인 혼기로 여겨지는 나이가 지난 미혼여성들, 특히 자존감이랄까 자기색깔이 뚜렷하기 쉬운 출판계의 <노처녀>들이 풍기는 미묘한 까칠함과 조바심 같은 것이 나에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분의 변명이었다. 심지어 나에게선 기혼자 특유의 여유로움 같은 것까지 풍겼다나. -_-a 자기가 설명을 계속 이어봤자 나에겐 더욱 민망한 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는 정말로 칭찬의 의미였다고 극구 미안함을 토로했고 나도 순순히 칭찬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남들 다하는 것의 때를 놓친(또는 놓쳤다고 생각하며 낭패감에 젖는) 사람들은 확실히 조바심과 앙탈을 부릴 수밖에 없다. 20대 초반부터 꽤 오래 결혼을 꿈꾸며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마음처럼 삶이 풀려나가지 않았던 내 주변의 몇몇 친구들이 그야말로 <노처녀 히스테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에게선 그런 짜증스러움이 온몸에서 배어나오지 않는다는 평가에 그땐 솔직히 흐뭇했다.
그런데 그때의 그 담당자를 요즘 만난다면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 틀림없다. 매사에 왜 이리도 짜증이 많아졌는지. 물론 지금도 혼자라는 내 상태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고, 이 정도의 자유로움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만날 무얼 해먹어야 할지, 냉장고에 먹을 거리가 떨어졌는지 살펴야 하는 밥순이로서의 삶은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다. 가사 도우미를 들이고 그 시간에 열심히 일을 더 해보자는 생각도 해보지만, 사실 내가 <실제로> 가사일에 힘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청소도 일주일에 한번 할까말까 하니, 후닥닥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 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과연 그 시간에 일을 얼마나 하겠나. 오히려 시간이 많이 드는 건 왕비마마의 건강과 영양상태를 감안해서 메뉴를 고민하는 일인데, 우유부단함과 본인의 식탐까지 더해져 그 과정은 쓸데없이 참 소모적이다. 그러고는 또 혼자서 생병을 앓으며 짜증을 부려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고 사니, 삶이 반영되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얼굴은 더더욱 못생겨지고 있는 듯하다. ㅜ.ㅜ
예전엔 그래도 아, 또 한끼 해결했으니 기쁘다, 고 여겼는데
이젠 아이고, 한끼는 해결했다만 내일은 또 뭘 해먹냐, 고 미리 걱정부터 하고 앉았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인데 난 왜 이리 자꾸 비비 꼬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