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투덜일기 2011. 1. 26. 11:24

설날 전에 두번 남은 주말 가운데 큰작은아버지의 일정에 맞춰 잡은 성묘일은 마침 대폭설이 내린 지난 일요일이었다. 집에서 출발할 즈음 눈길을 걱정스러워하는 전화를 받기는 했으나, 정말이지 그땐 눈발이 우스워보였고 공주보필에 힘쓰느라 나는 뉴스니 일기예보니 하는 것에도 무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강행한 파주 성묘길은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여기저기 눈길에 서너대씩 차들이 뒤엉켜 있는 도로를 엉금엉금 달려, 작은 언덕도 못올라 빌빌 미끄러지는 차를 산소 입구에 세워두고 모두들 함박눈을 맞으며 버적버적 걸어올라가야 하는 난코스였다. 제일 먼저 출발한 나는 빌빌 기어갔어도 한시간도 안 되어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먼저 공원묘지에 당도했지만, 모두 다섯대가 다 모인 시간은 약속시간에서 한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그나마도 그간 쌓인 눈이 엄청나 발이 푹푹 빠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엔 접근도 못했고, 아버지 계신 납골당에 들어가 급히 이면지에 적은 조부모님 지방과 아이폰에 담긴 아버지 사진을 나란히 제단에 놓고 절을 올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손을 호호 불며 (부츠는 신고 갔으되 왜 장갑을 빼먹었던고!) 한참이나 눈길을 걷고나서 돌아온 다음날까지 뒷다리와 허리가 뻐근했다. 생각해 보니 뜻밖의 눈사태로 나는 울음바람도 잊었더라. 지난 추석 성묘땐 비가 철철 오더니, 설날 성묘땐 대설이라... 다 자손들 잘 되라는 뜻이라는 큰작은아버지 말씀에 비싯 웃으며 동감했다. 눈길 운전은 솔직히 겁났지만, 1킬로 미터에 한번 꼴로 여기 저기 구석에 차가 처박혀 있던 자유로를 달렸어도 열여섯 명이나 되는 가족들 모두 별 탈없이 무사히 귀가하였으니 그냥 눈구경 한번 잘했다 싶은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너무 춥고 장갑이 없어서 조카들이랑 눈싸움 한번 못한 건 두고두고 한이 되겠다.

그나마 돌아올 무렵엔 거의 눈이 그쳤다. 저런 길을 내가 다녀왔구나.... 사진으로 다시 봐도 놀랍다.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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