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부모님이 즐겨 보시던 오락 프로그램에서 하던 게임이 하나 있었는데, 낱말 퀴즈를 맞히면서 동시에 돈을 세는 거였다. 낱말퀴즈를 몇개 이상 맞히면서 지폐도 정확히 세면(이 또한 몇십 장 이상 세어야 하는 제한이 있었다;) 점수를 획득하는 게임인데, 나로선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그 상황에서 놀랍게도 거의 다섯 명에 한 명꼴(열 명에 한 명꼴이던가;;)로 정답자가 나왔던 듯하다. 인간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숫자나 셈에 관한 한 나는 물론 심히 모자란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열장이 넘어가는 지폐는 두어번 셀 때마다 매번 장수가 달라진다. 숫자나 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손가락의 기민함에도 문제가 있는 건가?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마찬가지다 ㅋ)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긴 하지만 내가 다닌 마지막 회사에선 매달 월급날에 월급봉투를 만드느라 경리부에 대소동이 일었다. 그 무렵 이미 대부분의 회사에서 급여통장으로 이체하는 방식을 시행하고 있었으나,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 목소리가 컸던 생산직 직원들의 거부로 유독 그 회사만은 월급봉투 지급제를 고수하는 중이었다. 이전의 두 회사에선 이미 급여통장으로 월급을 받았었는데 갑자기 월급날마다 누런 봉투에 손글씨로 급여내역이 적힌 '월급봉투' 받아들었을 땐 나도 '아 이 맛에 사람들이 월급봉투를 선호하나 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통장에 한줄로 찍히는 금액과는 느낌이 다르게 노동의 대가를 실물로 받아드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300명에 가까운 직원들의 급여봉투를 일일이 만들어야 하는 경리부 직원들의 수고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며칠 전부터 명세내역을 일일이 손으로 적어야 하던 누런 월급봉투는 머지 않아 컴퓨터로 출력한 전산용지로 바뀌었지만, 그 봉투에도 일일이 일원(!) 단위까지 금액에 맞춰 돈을 세어 넣는 데는 인력이 필요했다. 월급날 아침 일찌감치 경리과장과 여직원이 은행엘 다녀오면, 경리부의 모든 직원과 총무과 직원까지 동원되어 이사실에서 돈을 세 월급봉투 만들기 작업에 돌입했다. 나중엔 인원감축으로 총무과 직원이 한 사람밖에 남지 않자 다른 부서의 여직원들도 '차출'되었다. 그저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로 멋모르고 월급날 경리 이사실에 불려갔던 날, 나는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빠졌으나 다행스럽게도 곧 그 방에서 쫓겨났다. 틀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더욱 긴장해 봉투 하나를 들고 한시간 가까이 계속 끙끙댔기 때문이다. 수표와 현금을 적절히 분배해서 봉투에 적힌 급여 금액을 맞춰 넣어야 하는 상황인데, 셀 때마다 지폐 장수가 달라지는 내 솜씨로 그런 고난도의 노동을 제대로 해낼 리가 없지 않은가.
어린 시절 설날에 받은 세뱃돈도 나를 믿지 못해서 세고 세고 또 세고 그러고도 총액 계산이 잘 안되서 헤매던 나였다. 지금도 돈 세는 건 정말 싫고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현금지급기나 은행 창구에서 돈을 찾으면 당연히 맞겠거니 세어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현금을 많이 찾아서 들고 다니는 적도 별로 없다!). 언젠가 창구에서 꽤 많은 돈을 찾아야 했던 날 잘난 척 돈을 세어봤는데 두번 모두 한 장 모자랐고, 평소 지폐를 두번 세어서 같은 장수가 나오는 적이 한번도 없던 나는 그간 실력이 늘었나보다 놀라워하며 창구직원에게 재확인을 요구했다. 창구 직원은 착착 순식간에 지폐를 세어 확인한 뒤 한 번 더 지폐 개수기로 장수를 보여주었고, 결과는 당연히 나의 오류였다. 얼굴을 붉히며 도망치듯 은행을 나오면서 생각했었다. 그래, 은행직원이 어떻게 돈을 틀리게 세겠니. 내가 멍청했지.
가끔 현급지급기에서도 지폐 장수나 금액 오류가 나므로 꼭 세어보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이제껏 나는 그런 경우를 단 한번도 겪은 적이 없다. 혹시 안 세어봐서 모르고 지나친 게 아니라면 말이다. -_-; 가끔 왕비마마의 은행 심부름을 하는 경우 나는 지급기에서 뽑은 돈을 그냥 뭉텅이로 봉투에 담아 가져다 드리는데, 옛날 분 답게 왕비마마는 지폐를 구부려 잡고 부실한 손가락으로도 꼭 장수를 세어 확인하신다. 그걸 지켜보며 나는 속으로 조마조마하지만 (혹시 뭔가 잘못되어 금액이 틀리면 대체 나는 그걸 은행에 가서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싶어서;;) 이제껏 한번도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다. 참 다행이다.
왜 이런 돈타령을 하고 있는고 하니, 조금 전 새삼스레 돈 세기 때문에 민망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병원에 갔다 오는 길에 은행에 왕비마마를 내려드리고 그냥 차에서 기다렸다. 각종 자동이체와 연금 때문에 통장정리를 취미생활 쯤으로 여기시는 양반이라 직접 즐거움을 만끽하시라고 말이다. 헌데 아무리 기다려도 노친네가 나오질 않기에 뭔일인가 싶어 들어가보니, 가뜩이나 복잡한 말일에 번호표까지 뽑아들고 창구 순서를 기다렸단다. 아니 새삼 왜? 단순 인출이란 걸 안 다른 직원이 지급기로 안내해 현금인출을 돕고 있는 순간이었는데, 민망해서 얼른 모시고 나오려는 순간 직원이 내게 요구했다. 지금 바로 현금을 세어 확인해 보시라고. 헉. 왕비마마 혼자도 아니고, 남들 보는 앞에서, 그것도 은행직원 앞에서 수십장 지폐를 세라니. 게다가 왕비마마는 5만원권을 영 신뢰하질 않으셔서 만원권만 좋아라하시는데. ㅠ.ㅠ 내심 대충 세는 척 하고 맞다고 말할 작정이었으나 바보처럼 나는 습관처럼 중얼중얼 숫자를 세었고 당연히 마지막 숫자는 금액과 달랐다. 곁에서 지켜보던 왕비마마는 당연히 다시 잘 세 보라고 타일렀다. 이미 내 머릿속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선 채로 서툴게 돈을 세다가 파라락~ 지폐를 바닥에 떨어뜨려 허겁지겁 다시 주우며 얼굴 뻘게지는 나의 모습이 눈에 선했던 거다....
천만다행으로 눈 녹은 물이 질척한 바닥에 돈을 떨어뜨리는 사태까진 벌어지지 않았으나, 서른장밖에 안되는 지폐를 나는 두번이나 더, 하나, 둘, 셋, 넷... 왕비마마와 구호를 맞춰 세야 했다는 슬픈 이야기. 아 왜 노친네들은 현금을 그리 좋아하시냐고!!! 쳇.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긴 하지만 내가 다닌 마지막 회사에선 매달 월급날에 월급봉투를 만드느라 경리부에 대소동이 일었다. 그 무렵 이미 대부분의 회사에서 급여통장으로 이체하는 방식을 시행하고 있었으나,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 목소리가 컸던 생산직 직원들의 거부로 유독 그 회사만은 월급봉투 지급제를 고수하는 중이었다. 이전의 두 회사에선 이미 급여통장으로 월급을 받았었는데 갑자기 월급날마다 누런 봉투에 손글씨로 급여내역이 적힌 '월급봉투' 받아들었을 땐 나도 '아 이 맛에 사람들이 월급봉투를 선호하나 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통장에 한줄로 찍히는 금액과는 느낌이 다르게 노동의 대가를 실물로 받아드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300명에 가까운 직원들의 급여봉투를 일일이 만들어야 하는 경리부 직원들의 수고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며칠 전부터 명세내역을 일일이 손으로 적어야 하던 누런 월급봉투는 머지 않아 컴퓨터로 출력한 전산용지로 바뀌었지만, 그 봉투에도 일일이 일원(!) 단위까지 금액에 맞춰 돈을 세어 넣는 데는 인력이 필요했다. 월급날 아침 일찌감치 경리과장과 여직원이 은행엘 다녀오면, 경리부의 모든 직원과 총무과 직원까지 동원되어 이사실에서 돈을 세 월급봉투 만들기 작업에 돌입했다. 나중엔 인원감축으로 총무과 직원이 한 사람밖에 남지 않자 다른 부서의 여직원들도 '차출'되었다. 그저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로 멋모르고 월급날 경리 이사실에 불려갔던 날, 나는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빠졌으나 다행스럽게도 곧 그 방에서 쫓겨났다. 틀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더욱 긴장해 봉투 하나를 들고 한시간 가까이 계속 끙끙댔기 때문이다. 수표와 현금을 적절히 분배해서 봉투에 적힌 급여 금액을 맞춰 넣어야 하는 상황인데, 셀 때마다 지폐 장수가 달라지는 내 솜씨로 그런 고난도의 노동을 제대로 해낼 리가 없지 않은가.
어린 시절 설날에 받은 세뱃돈도 나를 믿지 못해서 세고 세고 또 세고 그러고도 총액 계산이 잘 안되서 헤매던 나였다. 지금도 돈 세는 건 정말 싫고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현금지급기나 은행 창구에서 돈을 찾으면 당연히 맞겠거니 세어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현금을 많이 찾아서 들고 다니는 적도 별로 없다!). 언젠가 창구에서 꽤 많은 돈을 찾아야 했던 날 잘난 척 돈을 세어봤는데 두번 모두 한 장 모자랐고, 평소 지폐를 두번 세어서 같은 장수가 나오는 적이 한번도 없던 나는 그간 실력이 늘었나보다 놀라워하며 창구직원에게 재확인을 요구했다. 창구 직원은 착착 순식간에 지폐를 세어 확인한 뒤 한 번 더 지폐 개수기로 장수를 보여주었고, 결과는 당연히 나의 오류였다. 얼굴을 붉히며 도망치듯 은행을 나오면서 생각했었다. 그래, 은행직원이 어떻게 돈을 틀리게 세겠니. 내가 멍청했지.
가끔 현급지급기에서도 지폐 장수나 금액 오류가 나므로 꼭 세어보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이제껏 나는 그런 경우를 단 한번도 겪은 적이 없다. 혹시 안 세어봐서 모르고 지나친 게 아니라면 말이다. -_-; 가끔 왕비마마의 은행 심부름을 하는 경우 나는 지급기에서 뽑은 돈을 그냥 뭉텅이로 봉투에 담아 가져다 드리는데, 옛날 분 답게 왕비마마는 지폐를 구부려 잡고 부실한 손가락으로도 꼭 장수를 세어 확인하신다. 그걸 지켜보며 나는 속으로 조마조마하지만 (혹시 뭔가 잘못되어 금액이 틀리면 대체 나는 그걸 은행에 가서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싶어서;;) 이제껏 한번도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다. 참 다행이다.
왜 이런 돈타령을 하고 있는고 하니, 조금 전 새삼스레 돈 세기 때문에 민망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병원에 갔다 오는 길에 은행에 왕비마마를 내려드리고 그냥 차에서 기다렸다. 각종 자동이체와 연금 때문에 통장정리를 취미생활 쯤으로 여기시는 양반이라 직접 즐거움을 만끽하시라고 말이다. 헌데 아무리 기다려도 노친네가 나오질 않기에 뭔일인가 싶어 들어가보니, 가뜩이나 복잡한 말일에 번호표까지 뽑아들고 창구 순서를 기다렸단다. 아니 새삼 왜? 단순 인출이란 걸 안 다른 직원이 지급기로 안내해 현금인출을 돕고 있는 순간이었는데, 민망해서 얼른 모시고 나오려는 순간 직원이 내게 요구했다. 지금 바로 현금을 세어 확인해 보시라고. 헉. 왕비마마 혼자도 아니고, 남들 보는 앞에서, 그것도 은행직원 앞에서 수십장 지폐를 세라니. 게다가 왕비마마는 5만원권을 영 신뢰하질 않으셔서 만원권만 좋아라하시는데. ㅠ.ㅠ 내심 대충 세는 척 하고 맞다고 말할 작정이었으나 바보처럼 나는 습관처럼 중얼중얼 숫자를 세었고 당연히 마지막 숫자는 금액과 달랐다. 곁에서 지켜보던 왕비마마는 당연히 다시 잘 세 보라고 타일렀다. 이미 내 머릿속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선 채로 서툴게 돈을 세다가 파라락~ 지폐를 바닥에 떨어뜨려 허겁지겁 다시 주우며 얼굴 뻘게지는 나의 모습이 눈에 선했던 거다....
천만다행으로 눈 녹은 물이 질척한 바닥에 돈을 떨어뜨리는 사태까진 벌어지지 않았으나, 서른장밖에 안되는 지폐를 나는 두번이나 더, 하나, 둘, 셋, 넷... 왕비마마와 구호를 맞춰 세야 했다는 슬픈 이야기. 아 왜 노친네들은 현금을 그리 좋아하시냐고!!!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