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2.05.22 친구의 밥상 15
  2. 2012.05.16 휴지 6
  3. 2012.04.25 10
  4. 2012.04.03 삼색볼펜 10
  5. 2012.03.29 관계 2
  6. 2012.03.13 은행 16
  7. 2012.02.03 영하 17.1도 6
  8. 2012.01.26 빗질 13
  9. 2012.01.16 결국 개를 쫓아냈다 12
  10. 2012.01.09 동물 생각 13

친구의 밥상

투덜일기 2012. 5. 22. 17:26

입던 옷차림에 슬리퍼를 대충 끌고 아무때나 스스럼없이 집으로 놀러가도 좋을 동네 친구는 이제 없다. 여전히 '우리집으로 놀러와'라고 말하는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선뜻 나서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나만해도 몇년 전까진 아주 가끔 친구가 집으로 놀러오는 일이 있었으나, 조카들 놀러오는 것도 귀찮은 마당에(!) 친구가 집으로 오는 건 이제 손사래를 치며 말리고 싶다. 무엇보다도 청소하기 싫엇!

 

내 입장에선 차라리 그냥 밖에서 만나서 수다떨고 밥먹고 차마시는 게 훨씬 편하고, 전업주부든 아니든 친구들도 대개 내 의견에 동감한다. 혹시 아이가 어리다든지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집에서 모이게 되더라도 밥은 반드시 나가서 먹거나 시켜먹는 것이 대세. 그렇더라도 나로선 한끼니 내 손으로 안챙겨도 해결되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다. 누군가에게 집밥을 대접받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황공무지한 일이 된지 오래. 사실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동생네 집에 가서 큰올케가 해주는 집밥을 얻어먹으며 황송해한다. 밥을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는 내가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더러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생기면 시누이 노릇이고 아니고를 떠나 똑같이 지겨운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사람으로서 양심이 저릿저릿 하는 것 같다.

 

암튼 집밥의 귀중함을 알기에 누구에게든 함부로 청할 수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으며 누가 해준다고 하면 일견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최근 그런 귀한 집밥상을 친구에게 연달아 받는 일이 생겼다. "요리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밥값으로 니가 해!"라고 하는 친구들도 아니어서 나는 그야말로 황송하고 감격했다. 귀찮게 나가서 먹지 뭘 밥을 했느냐고, 괜한 빈말이 아니라 정말 미안해하던 나에게 그들은 좋은 사람을 위해 차리는 밥상은 전혀 피곤하지도 귀찮지도 않다는 대답으로 나를 더욱 민망하게 했다. 나는 매끼니 밥상 차리면서 노상 인상 구기고 툴툴대는 인간인데...

 

확실히 그들은 나와는 다른 유형의 인간이 틀림없다고 여기며, 괜한 죄책감까지 품지는 않을 작정이지만 사진을 담아둔 김에 고마움과 자랑을 겸한 포스팅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셋 다 내가 이런데다 자기네가 차려준 밥상 사진을 올리고 주절대는 짓거리를 하고 산다는 건 모르고 있으니 금상첨화. 친구가 해준 요리 중엔 참고 삼아 나중에 해먹어도 좋을 것들도 있으니 여러모로 유용한 기록이 될 거라 믿는다.

 

밥상1.

이중에 나도 시도해본 건 냉이무침과 새싹채소 샐러드. 뒷줄 왼쪽, 삼치를 밀가루 입혀 굽고 데리야끼 소스를 끼얹은 건 한번 해먹어보고 싶은데 귀찮아서 잘 안된다. 소금구이로도 맛있는걸 뭐! 그날 친구의 냉장고엔 이 요리를 위한 레시피 적힌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친정엄마가 해주셨다는 김치 두 종류 말고는 따끈한 잡곡밥까지 죄다 신선한 반찬. 과연 몇시간을 공들여 차려낸 밥상일지 감개무량.

 

밥상2 

당연히 밖에서 사먹을 거라 생각했다가 집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놀랐던 두번째 친구의 밥상은 사진 한장으로 담을 수가 없었다. 내가 도착한 순간 씻어놓았던 쌀로 돌솥에 밥을 앉히고 중탕으로 계란찜까지... 죄다 냉장고에서 꺼낸 밑반찬이라 손 가는 거 하나 없었다고 극구 주장했지만, 중탕 계란찜도 누룽밥도, 부추전도 저절로 되는 요리는 아님을 내가 왜 모르나. 우리집 계란찜은 늘 전자렌지에 뚝딱 해먹지만, 그냥 내버려두면 퍽퍽하고 딱딱해져서 계란찜 메뉴로 눌러놓고도 틈틈이 휘저어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날 밥 한공기 다 먹고 누룽밥까지 과식한 바람에 위가 아파서 저녁은 굶어야 했다. ㅎㅎㅎ

 

밥상3

 

이날도 저 수북한 밥그릇 좀 봐라. 원래 집에서 먹는 양은 저 절반쯤 되는데... 밖에만 나가면 꾸역꾸역 참 잘도 먹는다. 따끈따끈한 새밥은 정말 그냥 밥만 씹어도 맛있다는 걸 이제 나도 아는 나이랄까... ㅠ.ㅠ 이 친구네 냉장고 안엔 밑반찬이 단 한 개도 없고, 매끼니 새로운 반찬을 즉석에서 해먹는 걸로 유명하다. 가운데 있는 건 맵지 않게 끓인 닭볶음탕이고, 부추 샐러드와 부추전도 내가 보는 앞에서 금세 뚝딱 만들어냈다. 여덟살 짜리 아들놈이 초록색 부침개를 좋아해서 부추를 갈아 체에 걸러 놓았다가 저렇게 앙증맞은 부추전을 부쳐먹는단다. 켁... 가서 울 엄마 부쳐드리라고 초록색 반죽을 준다고 해서 급사양했다. 울 엄마가 애기도 아니고! 이 다음날 부추 사다가 부추가 잔뜩 씹히는 두번째 밥상 속 부추전을 만들어 먹고, 남은 생부추는 비빔국수에 넣었더니 엄만 안 씹혀 못먹겠다고 하셨다. 결과적으로 들기름과 간장 들깨로 버무린 향긋한 부추샐러드는 우리집에선 못해먹을 음식이란 의미. 대신에 닭볶음탕을 그렇게 간장에 청양고추만 조금 넣고 안동찜닭처럼 해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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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

투덜일기 2012. 5. 16. 14:50

얼마전 이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가난했던 어린시절 얘기를 하는데, 화장실 갈 때 휴지 대신 쓰던 달력종이를 구두쇠 아버지가 엄격히 제한했다는 말이 나왔다. 어머나, 우리집 재래식 화장실에도 주로 금은방에서 주던 습자지 같은 그 일력 종이를 절반씩 잘라(그나마도 아껴야 하니까) 줄에 매달아 휴지 대용으로 쓰게 했었는데! 그게 국민학생 때였던가? 그러다 곧이어 좀 누리끼리한 재생 두루마리 휴지가 등장했다가 하얀색 휴지로 발전했던 듯하다. 개그콘서트 <네가지> 코너에서 촌놈 양상국이 노상 주장하는 것도 촌과 도시의 삶이 하나도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이듯, 극적인 삶의 변화는 물리적 공간과는 상관없는 세월의 흐름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집도 화장실에서 달력종이 대신 휴지를 쓰게 됐을 때 내가 제일 못마땅했던 건 엄마가 항상 두루마리 휴지를 꾹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어 봉에 꽂아놓는다는 점이었다. 둘둘 마구 풀려 낭비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지만, 또 나는 휴지를 엄청 많이 풀어 써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었으니 휙 단번에 잡아당길 수 없게 납작하게 눌러놓은 휴지 때문에 짜증이 났다. 해서 엄마가 납작하게 눌러놓은 휴지를 난 또 열심히 펴서 잘 풀리도록 해놓았고, 엄만 다시 납작하게 눌러놓는 사태가 반복되기도 했다. 요샌 그런 휴지가 아예 나오지도 않지만 우리 엄마 같은 알뜰파를 위함이었는지, 옛날엔 가운데 속지가 아예 처음부터 납작하게 눌려 타원형으로 휴지가 감긴 대형 두루마리 휴지를 팔았다. 그 납작한 홈 안에 휴지걸이 봉을 끼우려면 정말 낑낑대야 했을 정도다. 이제 더는 그런 넙적한 두루마리 휴지를 볼 수 없지만,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엄마는 화장실 휴지걸이에 두루마리를 새로 꽂을 때 한번 꾹 눌러서 둘둘둘 함부로 풀리지 않게 해놓았었다. 그나마 이젠 손에 힘이 딸리는 노인이 된 탓에 두루마리 휴지를 납작하게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할 뿐이다.

 

엄마의 휴지 절약은 그뿐이 아니었으니, '크리넥스'가 화장지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라고 생각했던 그 옛날부터 엄만 화장대에 올려둔 화장지를 쓸 때 꼭 반을 잘라 한번에 절반씩만 사용했다. 근데 난 코풀려면 한번에 두장은 겹쳐 써야해서 늘 핀잔을 들었다. '휴지공장하는 놈한테 시집을 보내든지 해야지 원! 휴지로 재산 거덜낼래?!'라는 것이 당시 울 엄마의 잔소리 레퍼토리. 한 참 세월이 흐른 뒤, 큰조카가 아기 때 우리집에 와서 놀 때면 이상하게 각휴지 한통을 다 뽑아서 방으로 하나가득 만들어놓는 걸 좋아했는데, 나랑 울 아버지는 그저 귀엽다고 (어차피 뽑아놓은 휴지는 다시 통에 넣어뒀다가 쓰면 되니까!) 허허거리는 반면, 엄마는 휴지 함부로 한다고 엄청 화를 내면서 조카를 혼냈다. 애 버릇 망친다고 우리까지 덩달아 혼을 내시고...

 

중학교 때, 지금은 학생인권침해로 사라진 책가방/소지품 검사가 한두달에 한번 불시에 있었는데, 소지해선 안될 물건을 적발하는 것도 목적이긴 했겠으나 더 중요한 것은 필수 소지품목을 구비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른바 여학생스러움의 전형이랄 수 있는 손거울, 반짇고리, 손수건 또는 휴대용 휴지가 바로 그 필수 소지품이었다. 해서 학기초엔 아예 학교앞 문방구에서 저 물건이 다 들어있는 파우치를 팔 정도였다. 헌데 난 휴지가 겨우 열장 정도 작게 접혀있는 초소형 휴지론 만족할 수가 없었고 (일단 학교 가면 제일 먼저 책상 닦아야지, 코 풀어야지, 밥먹고 입 닦아야지, 볼펜 잉크똥 닦아야지...) 좀 더 두툼한 여행용 휴지를 꼭 들고 다녔다. 손거울과 휴대용 반짇고리야 팽개친지 오래지만, 꼭 가방에 휴지를 넣고 다니는 버릇은 직장인이 될 때까지도 이어졌었다.

 

조카들과 놀 때도 A4용지는 엄청 아까워 이면지 사용을 종용하면서 상대적으로 휴지는 마구 함부로 쓰는 내가 우스워보였는지 언젠가 셋째 조카가 한 마디 했다. A4용지도 나무로 만들고 휴지도 나무로 만드는데, 고모는 휴지는 하나도 안 아까워하더라! 새하얀 백지를 낙서용으로 내놓으라고 할 때마다 아마존 밀림이 어떻고 인도네시아 펄프가 어떻고 잔소리를 해댄 주제에 휴지 아까운 줄은 모르고 쓰는 내 꼬라지가 어린 눈에도 모순이었던 거다. 어찌나 부끄럽던지.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방 쓰레기통엔 휴지가 언제나 제일 많고, 재활용에 힘써보지만(얼굴 살짝 닦은 휴지 바로 안 버리고 뒹굴리다가 먼지나 얼룩을 닦는다든가;;) 걸레 빠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태도로는 도무지 휴지를 아낄 방도가 없다. 일회용품 사용 자제를 위하여 환경운동가들은 코 풀 때도 손수건을 쓰라는데 어우 그건 쫌... ㅠ.ㅠ 행주를 사용하면서도, 북북 뜯어 더러운 걸 닦아버리는 용도로는 키친타월 역시 포기 못하겠는 걸 어쩌란 말이냐. 

 

비데 사용 때문에 우리집에선 언제부턴가 두루마리 휴지도 세겹으로 된 걸 쓰게 됐는데, 꽃무늬나 곰돌이 모양까지 압착무늬로 새긴 휴지를 둘둘둘 마구 풀어쓰다 문득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러나 또 재생지에 형광증백제를 엄청 들이부어 만든 휴지가 피부건강을 해친다는 정보에는 귀가 솔깃하다. 에효. 휴지뿐만 아니라 일회용품을 쓰면서 드는 죄책감 앞에선 얼른 자기합리화를 하게 되는 이율배반의 태도. 알면서 안 지키는 것이 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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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2. 4. 25. 16:24

아파트도 말로는 공동주택이지만 말본연의 의미대로 '주택'인 집에 살려면 여러가지 불편함이 따르고 각별한 관리도 필요하다.  일년에 한번 구청에서 정화조 청소하라고 엽서 날아오면 업체 불러다가 청소해야지, 몇년에 한번은 외벽도 다시 칠하고 옥상방수도 해야지, 망가진 방충망도 갈아야지...

용인 어느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자기네 단지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1년에 한번 주방 팬 청소도 해주고 전화만 걸면 관리실에서 나와 형광등도 갈아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우리집에선 물론 그런 일들이 이제 다 내 차지다. 아버지가 집에 사다 쟁여놓으셨던 장수램프 형광등이 다 떨어져 얼마전 마트엘 갔더니 이제 장수램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죄다 중국산 GE 제품이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직원에게 왜 국산은 없으냐고 괜히 신경질 부리다 어쩔 수 없이 또 길이별, 종류별로 GE 형광등을 사다 쟁여놓았다.  중국산 형광등은 얼마나 오래 가나 두고봐야지.

암튼 올 봄엔 외벽 칠과 방수를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6년 만에 새로 페인트를 칠했다. 사람을 불러 견적을 받고 어쩌고 공동부담액을 나누고 내가 주동이 아니었는데도 약간 골치가 아팠다. 아침 8시부터 업자들이 와서 외벽을 긁어대고 칠 작업을 사흘이나 하는 통에, 나는 첫날 커피 타서 내간 것 말고는 한 일도 없이 신경이 곤두섰다. 어휴.

30년도 넘은 오래된 집에 겉만 새로 칠해놓으니 언뜻 꼴사납게 화장발 잔뜩 세워 오히려 주름살이 더 드러난 늙은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째뜬 깨끗해져 개운한 건 사실이다. 집안 역시 제대로 가꾸자면 도배할 때도 됐고 주방 싱크대도 확 갈아치우고 싶다는 욕심을 품다가 또 결론은 이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 재건축은 아예 물건너갔으니 금세 팔릴 지 모르겠으나, 다시 부동산에 알아봐야겠구나 싶었던 거다. 부동산에 매물 내놓을 때 사진도 있으면 도움이 된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어본 바 있어서 충동적으로 사진도 찍었는데, 페인트발이 화장발처럼 화사하기를 바랐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조명발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이 문제일수도;;). 벌써 무성해진 나무 때문인지 무슨 귀곡산장 분위기가 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진 올리면 오히려 보러 올 사람도 안 올듯.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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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은 이사에 미쳤으되 부동산에 연락을 하는 순간, 언제 낯선 사람이 온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고 있다. 과연 나는 이 집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하여간 사소한 노력의 일환으로 쓰지 않는 오래 된 그릇을 한 보따리 쓰레기봉지에 담아 버렸고, 앞뒤 베란다 여기저기 뒹굴던 빈 화분들도 큰 자루에 넣어 처분했다. 어찌나 쓰레기 자루가 무거운지 비틀비틀 낑낑대며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 골목 어귀까지 내다놓은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팔과 어깨가 쑤셨을 정도였다. 쓸데없는 오래된 세간살이는 엄마 안 계실 때 몰래몰래 자꾸 처분하라는데, 버리지 못하는 병은 모녀가 똑같으니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나마도 옥상 방수작업은 계속 오는 비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어떤 집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참... 골치아프다. 지금껏 30년 가까이 붙박이로 살 수 있었음이 그저 감사할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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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볼펜

투덜일기 2012. 4. 3. 11:08

서랍에서 오래된 삼색볼펜을 찾아냈다. 빨간펜이 필요해서 뒤지다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지만, 정작 빨간색은 나오지 않았다. 알공달공 더러운 자태로 보아 대체 언제 것인지 알 수 없고, 누가 다 쓴 것을 잘못 넣어두었나 열어보았더니 뜻밖에 심이 모두 새것이다. 왠지 최소한 15년은 넘은 물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정색은 써보니 금세 나왔고, 파란색도 용수철무늬를 서너개 그리고 나니 잉크가 솔솔 잘나왔다. 하지만 빨간색은 며칠째 심심하면 이면지 뒤에다 용수철을 그려대고 있는데도 잘 안나온다. 검정색과 파란색은 흐리게 나오다 이내 진하게 나왔는데, 빨간색은 신기하게도 한참 뒀다 쓰면 진하게 나오다 곧이어 흐려진다. 이유가 뭘까. 원래 빨간펜이 필요했던 일은 하는 수 없이 색연필 심을 가늘게 깎아 대체했기에 꼭 필요가 없는데도 계속 집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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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색펜을 싫어했다. 회사다닐 때 빨간색과 검정색 모나미 볼펜을 테이프로 묶어 한꺼번에 쓰는 사람도 본 적 있고, 그런 사람들의 수요가 있기에 삼색펜이 출현했겠지만 나는 괜스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뚱뚱한 볼펜자루 모양새부터 싫다고 여겼으나, 비슷한 굵기의 뚱뚱한 만년필은 손에 잡히는 느낌을 좋아했으니 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한꺼번에 다재다능한 느낌, 약삭빠른 쓰임새의 느낌이 싫었던 것 같다. 뭔가 꾸준하고 지긋하지 못하달까. 빨간색, 파란색, 검정색 펜이 다 필요하더라도 나는 굳이 세 자루를 다 갖고 다닐망정, 삼색펜은 체신머리 없다며 쓰지 않았다. 한 가지 색을 쓰다가 다른 색 뒤꼭지를 눌러 심을 집어넣을 때 나는 찰칵 소리도 싫었다. 유독 볼펜똥이 많이 나왔던 것도 같다. 싫어서 안 썼다며 이토록 단점을 많이 알고 있는 건 실제로 꽤나 많이 써봤다는 뜻인가? ㅋㅋ 암튼 어떻게 된 사연으로 내 책상서랍에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보니 엄청 대단한 발명품이라 특허도 당연히 받았을 것 같은 물건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다방면에 재주 있는 사람, 멀티플레이어다. 그러니 걸핏하면 열등감에 시달리는 내가 싫어할만도 하다. 새삼 나는 물건에까지 질투를 했던 인간인가 싶어져 좀 웃기다. 어쨌든 이제는 멀티플레이어 팔방미인에 대한 시기심보다 존경심을 품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삼색펜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진다. 쓸 일도 없으면서 빨간색도 어떻게든 나오게 하려고 집착하는 시도가 그 마음의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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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투덜일기 2012. 3. 29. 16:05

스마트폰을 별로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않는 나는 웬만한 푸시알림 기능을 다 꺼놓고 내킬 때만 들여다본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조금씩 하기는 하지만 주로 구경하는 쪽이라 SNS의 과잉현상에선 한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언제부턴가 그놈의 카카오톡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겼다. 문자와 달리 카톡은 무료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또 무료이기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시답잖은 내용을 복사해 전송하는 사람들은 왜 또 그리 많은지! 4040 번호로 오는 전화를 받으면 순식간에 2만5천원이 결제된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의 메시지는 아마 그날 대여섯번 쯤 받은 것 같다. 유행하는 유머 동영상 링크를 수시로 보내는 사람들도 꼭 있다. 참 정성도 뻗쳤다고 하겠다. 하지만 안부인사를 겸한 것이든 아니든 대뜸 띵동 띵동 일방적으로 복사해 전송하는 그런 메시지가 나는 하나도 고맙지가 않다.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유유상종인지, 보내오는 메시지 내용이 똑같을 때도 많다. 알고 보면 퍽 비좁은 카톡 세상에서 돌고 도는 유행인지 몰라도, 그들이 원한 반응은 '지루한 오후 너 때문에 한참 웃었다. 고마워!' 따위의 것인지 몰라도, 그냥 내겐 귀찮은 스팸일뿐이라고!!

얼마전까지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을 때 받는 이가 정식으로 읽지를 않으면 전송시간 앞에 적힌 숫자가 없어지질 않는단다. 초기화면에 알림기능으로 내용이 뜨기 때문에 완전히 읽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간 귀찮은 메시지가 오면 읽지 않는 것으로 나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하게 무딘 사람이 아니고서야 읽지도 않고 답장도 안하고 씹으면 싫어하려니 싶어서 관두겠지 여기기도 했고. 헌데 나처럼 메시지 읽음 표시 기능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아직도 끈질기게 재미난 유머 링크나 꼭 알아야 할(?) 뉴스 따위를 친절하게 보내오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카톡스토리라나 뭐라나 새로운 앱이 나왔는지 새로이 친구신청을 하는 이들도 생겼다. 이쯤 되니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는 듯,  카톡 계정을 확 삭제해버릴까 충동이 인다. 내게 연락을 하고픈 사람이라면 문자 메시지 비용쯤은 감당하기를 바란다고 하면 너무 이기적인가? 안 그래도 수익구조에 야로가 많은 통신회사에 굳이 유료 문자전송으로 돈 벌어줄 이유가 없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어쨌든 충동 대로 곧장 카톡탈퇴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데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전화기피 증상이 심하고, 차츰 사교성도 줄어들고 그렇다고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도 아닌 삶이 이어지다보니 밖에서 친구 만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친구라고 해도 다들 거의 비슷한 성향의 인간들이 어울리다 보니, 누군가 성격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은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곁에 남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궁금하고 보고싶고 만나서 수다떨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실천은 하게 되지 않는 이 망설임을 과거엔 그래도 '갑갑함' 때문에라도 떨칠 수 있었지만, 이젠 정말이지 집구석이 제일 좋고 일주일, 열흘 집안에서 꼼짝하지 않아도 별로 갑갑하지 않다.

나의 전화 기피증과 게으름을 알기에 먼저 연락해주는 이가 아직 더러 있는 건 고맙고, 막상 불러주면 기쁘게 달려나가지만 내쪽에서 오랜 침묵을 깨고 만남을 청하는 건 또 쉽지가 않다. 머릿속으로 늘 생각하고 있으면서 막상 연락은 못해 아쉬운 이들도 있지만, 차라리 이렇게 서서히 관계가 정리된 것이 반가운 친구들도 있지 않은가! 나도 그렇게 정리되어 차라리 반가운 인물이면 어떡하지?! 아무려나 점점 은둔형 인간이 되어가는 탓에 소통의 도구가 점점 줄어드는 마당에, 몇몇 과도한 친철형 인물들 때문에 카톡마저 관두는 건... 소외를 자처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일방적이고 뜬금없는 메시지가 짜증스러운 것일뿐 또 관계 자체를 아예 끊고 안 볼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조금 전, 오늘의 유머 동영상 링크를 보내온 이에게 까칠하게 답장을 보냈다. 그런 거 안 좋아해서 별로 안 고맙다고. 그래도 계속 보내면 카톡차단할지도 모른다고 경고도 했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쪽도 앞으로 내게 그런 쓸데없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더 편하지 않을까. 일단은 좀 만만한 상대라서 이런 방법으로 해결을 했지만, 문제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대상도 있다는 점이다. 대체 왜 내게 그런 정성을 들일까, 혹시 보험 같은 걸 팔려는 것일까, 의아스러운 몇몇 인물은 눈 딱감고 차단해두긴 했으나, 원천적으로 봉쇄된 게 아니라 퍽이나 찜찜하고 껄끄럽다. 아마도 메시지를 보낸 저쪽에선 그냥 내가 읽지 않은 걸로만 나온다지... 스마트 한 세상에서 스마트하게 관계를 맺는 것도 참 쉬운 일은 아니란 생각에 마음이 묵직하다. 이러다 완전히 혼자가 되고 말 거라는 두려움은 또 별개의 것이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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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투덜일기 2012. 3. 13. 18:24

이런저런 이유로 세군데 은행의 통장을 갖고 있긴 하지만, 주 거래은행은 어디까지나 한군데고 나머지 두 군데는 통장이 어디있는지, 인터넷뱅킹 신청을 했었는지 안했었는지도 까마득할 만큼 이용 빈도수가 거의 없다. 그 은행이 나의 주거래은행이 된 이유는 그저 첫 직장에서 급여통장을 개설한 곳이었고 계좌번호가 외우기 매우 쉽다는 점 때문이었다. 다른 데 계좌도 외우긴 하지만 숫자가 한두개씩 더 있어서 복잡해! 거의 모든 자동이체도, 모든 수입 입금계좌도 그 통장으로 해놓은 터라, 거래내역만 뽑아보면 따로 가계부도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산 것이 어언 이십여년이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는 이놈의 은행이 외국계로 넘어가면서 지점수가 확 줄어, 집근처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당시만 해도 다행히 작업실 바로 앞에 지점이 있어 그리 불편한 점은 없었으나 통장정리하기도 귀찮은 김에, 오로지 인터넷과 텔레뱅킹으로만 거래하는 e통장으로 바꿔버렸다. 인터넷뱅킹과 현급출납기 사용시에는 언제나 수수료 무료라는 점도 나에겐 딱이었다. 어차피 현금 찾을 일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라고 위로하면서. 현금이 급하면 언제든 며칠은 완전 무이자로 빌려주는 왕비마마도 집에 계시니 별로 불편할 것도 없었다. 좀 귀찮기는 해도 인터넷 뱅킹으로 집 근처에 있는 다른은행으로 송금해놓았다가 은행근무 시간 내에 돈을 찾으면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도 귀찮을 땐 에라 모르겠다, 은행들 돈 많이 벌어처먹어라, 하면서 수수료를 물고 아무데서나 돈을 찾기도 했고. 

누군가 은행계좌를 물을 때 내가 그 은행 이름을 대면, 거기 없어지지 않았나? 하며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간 별다른 착오가 생긴 적은 없었다. 앞에 영어알파벳이 붙긴 했어도 옛날 은행이름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이놈의 은행 이름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sc제일은행도 불편했는데 이제는 아주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란다. 외국계 은행임을 공표하는 이 이름이 나는 심히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직은 현금출납기에서 은행코드 확인할 때 sc제일은행이라고 나오는 것 같은데, 설마 저 긴 이름을 죄다 쓸 리는 없고 어떻게 줄여쓰려나? 그야 뭐 그 은행 사람들이 걱정할 일이고 나로선 누군가 은행계좌 물을 때 불러주거나 적어주어야 하는 저 길고 불편한 이름이 싫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저 은행을 주 거래은행으로 고수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매달 고정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제와서 세금우대 급여통장을 개설할 리도 없고, 아무리 오래 거래를 해왔더라도 알량한 번역 수입만으로는 저 대단하신 은행에서 우수고객으로 대우를 해주는 것도 아닌 듯하다. 이제부터 온갖 자동이체며 계약서 계좌를 다른 데로 바꾸고 나면, 송금 수수료 우대 쯤이야 어느 은행에서든 받아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혹 아닌가? ㅋ). 아무튼 가끔가다 계약서 쓸 때 단출하게 'OO은행' 대신에 무려 다섯자나 더 많은 저 은행 이름을 손글씨로 쓰는 장면을 생각하면 우선 치떨리게 싫다. 손으로 뭐든 남 앞에서 글씨 쓸 일이 있으면 별안간 부끄러워 쪼그라드는 것 같은 심정이 드는 지 오래됐다. 타닥타닥 두들기는 자판에만 익숙해져 손글씨는 정말 개발새발, 뭔가 특히 공적인 일로 양식 같은 걸 채울 땐 민망하기 그지없다.

굳이 글씨 핑계가 아니더라도, 은행의 신용도나 자산규모를 떠나, 금융회사마저 외국자본이 침투한지 오래인 이 사회의 현실이 나에겐 이제 겨우 실감된다는 게 좀 소름끼친다. 언젠가는 이 나라 은행이 모두 외국계 자본에 넘어가는 날이 올 수도 있겠으나, 일단은 정리해고를 밥먹듯이 하고 노조 탄압에 압장선 외국계 은행에 내가 단순히 타성 때문에 의리를 지킬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뜻이다. 해서, 드디어 결심했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핸드폰 번호를 계좌번호로 개설할 수 있다는 은행에 새로이 주거래 계좌를 트기로. 각별히 게을러진 탓에 과연 언제 은행까지 발걸음을 할지는 미지수지만, 최소한 여기에 다짐을 적어두었으니 허튼 소리로 남진 않겠지. 아 물론... 그 수많은 자동이체를 죄다 변경하려면 진땀깨나 흘리긴 할 것 같다. 부디 다들 인터넷으로 변경 가능하기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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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7.1도

투덜일기 2012. 2. 3. 03:59

어제 서울 기온이 무려 영하 17.1도였다. 체감온도는 당연히 영하 20도가 넘는다고 했다. 2월 한파로는 55년만이라나 뭐라나. 내 기억으론 평생 겨울 날씨를 다 합쳐도 이렇게 추운 날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암튼 이런 날은 그냥 집에 콕 박혀 있어야 좋을 텐데 하필 엄니 병원 예약일이었다. 시내 곳곳에 시동 안 걸리거나 시동 꺼져버린 차들이 널려 있다는 뉴스도 들었겠다, 이틀 전 쌓인 눈도 먼저 치워야해서 완전무장을 하고 미리 나가 차에 시동을 걸고 6-7센티미터쯤 쌓인 눈을 걷어내는데 어휴... 털장갑 낀 손이 금세 시렵고 뻣뻣해졌다. 어이춰!! 그나마 단번에 시동이 걸려주어 어찌나 기쁜지 원.
 
낮이라 기온이 꽤 올랐는데도 온도 확인을 해보니 영하 10도. 거리엔 다니는 차도 드물어 원래 집에서 10-15분쯤 걸리는 병원까지 딱 6분 걸렸다. 히터에서도 간신히 더운 바람이 나오기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문제는 주차권 뽑는 기계 앞에서 창문이 열리다 말고 잘 안내려가더라는 것. 눈맞고 나서 녹았던 물이 얼어붙어 아예 창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는 전에도 겪어봤으나, 이번엔 반뼘쯤 내려가다 말고 윙윙거리기만 했다. 켁. 강추위에 옥외역에서 지하철 문이 안닫혀 난리가 났다더니만 그 비슷한 현상인가 싶었다. 하는 수 없이 차문을 열고 주차권을 받았다. 그 추위에 한데 서서 주차권 뽑아주는 사람들 불쌍도 하여라...

오늘도 서울은 영하14도까지 내려간단다. 그렇게 춥거나 말거나 많은 사람들은 매일매일 새벽에 일어나 추위 속으로 나설 것이다. 문득 남극의 혹한을 묵묵히 견디느라 서로 어깨를 맞대고 모여 번갈아가며 온기를 나누는 펭귄들 생각이 났다. 따뜻한 방안에서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기며 그래도 동면하고 싶다고 투덜거리는 나는 비유하자면 부모의 발등을 딛고 따뜻한 뱃속(영하 40도를 넘는 남극의 추위 속에서도 펭귄의 뱃속은 35도를 유지한단다;;)에 들어있는 철부지 새끼펭귄 쯤 되려나. 한겨울의 쨍한 추위가 한여름 더위보다 훨씬 낫다는 사람들을 나로선 절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기록적인 한파 때문인지 나도 쨍하고 얼얼한 추위에 한 자락 제정신이 들어오려는 모양이다. 몇달치 먹이를 한꺼번에 먹어 몸을 불린 채 겨울잠을 자도, 봄에 깨어나면 체중이 절반으로 줄어 굶어죽기 직전이라는 곰탱이보다야 그래도 매일매일 타고난 식탐을 만족시키며 노동하는 쪽이 낫겠다. 아무렴. 그렇긴 해도 영하 17도는 좀 심했다. 주말부턴 풀린다고 했으니 부디 더는 무시무시한 추위야 오지 마라. 입춘이 바로 내일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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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질

투덜일기 2012. 1. 26. 17:54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꽤 오래 전부터 나는 빗질을 하지 않는다. 곰곰이 돌이켜 보아도 대체 언제 시작된 습관인지 모르겠다. 머리를 보글보글 볶고 나서부터인가?(파마를 하고 나서는 '컬'이 망가지지 않도록 '도끼빗'이라고 하여 빗살이 아주 성긴 거대한 빗을 사용해야 한다고 들었고, 과거 그런 도끼빗이 우리집에도 있었다. 사라진지 오래됐지만;;) 하지만 요샌 줄곧 생머리인데. 암튼 내방엔 아예 납작한 빗(일명 comb)이 없다. 대신에 헤어드라이 할 때 쓰는 둥근 롤브러시와, 일반 브러시가 하나씩 있기는 하다. 그나마 머리를 말릴 때 롤브러시를 앞머리와 옆머리에 대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쓱쓱 빗어내리기는 하므로, '빗질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받을 수는 있겠으나 어쨌든 그 행위는 내게 '빗질'로 여겨지지 않는다. 빗질이라 함은 납작한 빗이든 브러시든 손에 들고서 머리칼 전체를 쓱쓱 빗어내려야하는 거 아닌가? 난 그런 거 안한지 정말 오래됐단 말이지.

차르르 윤기나는 머릿결을 위해서는 열심히 빗질을 해주어야 한다는데, 오래도록 빗질을 생략하고 대충 털어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쓱쓱 정돈한 다음 헤어드라이어로 말릴 때도 롤브러시 대신 손가락으로 말거나 빗는 것이 나는 더 편하다. 물론 그 때문인지 머릿결도 엉망이다. 가뜩이나 숱도 적고 얇은 머리칼엔 점점 히마리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나이들면서 죄다 보글보글 아줌마 파마들을 해대는 이유도 생머리로 버틸만큼 숱과 결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이든 친구들이 귀띔을 해준다. 너도 얼마 안 남았어, 얘. 원래도 숱이 적어 속알머리가 들여다보이던 머리칼은 더욱 부실해졌다. 그렇게 많지도 않은 머리칼이 빠져서 브러시에 마구 끼어있는 걸 빼내는 것도 고역이다.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도, 브러시에 끼어 엉킨 머리칼도 나는 잘 못보겠다. 좀 섬뜩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머리 길이가 계속 짧은 편이었던 것이 원인일 수도 있겠으나(실제로 30대의 대부분은 숏커트로 살았던듯) 최소 10년은 넘게 '제대로' 빗질을 안하고 지냈음을 새삼 깨닫고 보니 스스로도 퍽 신기하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까? 게으른 나만 그런가? 빗질 안하기를 처음 내게 조언했던 건 분명 미용실이었다. 젖은 머리를 빗으로 빗으면 상하니깐 빗지 말고 수건으로 탁탁 털어 말린 후 손가락으로 슥슥 어루만지며 말리라고 말이다. 그러니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미용실에서 그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지 않을까? 물론 나처럼  그말을 십수년째 별 생각 없이 고수하란 법은 없겠지만.

하여간에 머리 길이와 상관없이 빗질 안하는 습관이 뿌리깊게 박힌 나머지, 요즘처럼 머리칼을 마구 방치하여 꽤나 길어지고 나면 이놈의 머리칼이 마구 엉킬 때가 있다. 특히 머리감고 나서 잘 안말린 채 비비고 잠을 잔 뒤엔 어김이 없다. 대개는 빗 대신 손가락으로 슥슥 빗어 넘기면 걸리는 것이 전혀 없는데, 가끔 뒷머리가 쇠수세미 뭉치처럼 바글바글 엉켜있는 거다. -_-; 그러면 또 행여나 소중한 머리칼 빠질세라 끊어질 세라 한올한올 엉킨 실 풀듯 손으로 풀어주어야 한다. 오늘도 한참 엉킨 머리칼을 풀고 앉았다가 킬킬 웃었다. 애당초 머리를 참하게 빗어놓았더라면 엉킬 일도 없었을 텐데 참 나. 성격도 이상하여라.

예전에 엄마가 뜨개질 고수였던 시절, 술술 뽑아쓰기 좋게 하느라 털실을 미리 풀어 바구니 같은데 담아놓았는데 동생들이 뒤집어 엎는 바람에 실이 엉키면 엄만 엉킨 실을 푸는 임무를 내게 맡겼다. 아주 드물게는 도저히 풀리지 않아 끊고 다시 실을 이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대개는 내가 기필코 엉킨 실을 다 풀어내고야 말았고 그 성취감을 퍽이나 즐겼던 것 같다. 오늘도 엉킨 머리칼을 한올한올 잡아당겨 죄다 풀어 다시 매끈하게 만들어놓고는 별난인간도 다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번쯤은 잘못될 것을 알면서도 즐기는 짜릿한 모험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그렇다고 새삼 내일부터 열심히 빗질을 시작할 위인도 아니고 이 게으름의 끝은 어디일지 그게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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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이 끝까지 곤두선 어느 순간에는 확~ 살의를 느낄 정도로 미워하던 개였건만 막상 쫓아내는데 성공을 거두고 나니 마음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어쨌든 주말부터 동네엔 평화가 찾아왔고, 나도 더는 개짖는 소리 때문에 작업의 흐름이 끊겼다는 핑계를 들이댈 수가 없게 되었다. 다 잘 된 일이다... -_-;

사건 해결의 전말은 이러하다. 컹컹 짖어대는 송아지만한 아래층 똥개의 횡포에 대하여 나는 무던히도 참다 참다, 지난 여름부터 진지하게 소음과 위험성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한번은 개끈 쇠사슬이 풀려, 차에서 내리던 나를 향해 정면에서 짖어대는 놈을 발견하고 도로 차에 올라타 몸을 숨긴 적도 있었다.) 이미 개 문제를 제기한 다른 이웃들과의 불화를 지켜보매, 큰소리로 항의하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인간유형임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작전상 나는 아래층 아저씨에게 사정하는 말투로 부탁했다.

1년이 넘었음에도 볼 때마다 하도 짖어대니 무서워서 내 집을 잘 드나들 수도 없고, 물려 죽는 꿈까지 꾸었을 정도며, 가장 중요하게는 번역작업에 심히 방해가 된다고. 주로 아침에 자는 사람이라 안면방해가 된다는 말은 부러 하지 않았지만, 문자 오는 소리에도 잠을 깨는 인간인지라 하루하루가 정말 괴로웠다. ㅠ.ㅠ  내 이야기를 들을 땐 금방 조치를 취해줄 것처럼 말만 앞세우던 아래층 아저씨는 매번 자기네 딸들의 안전을 위한 방법견 목적을 빌미로 약속을 어겼다. 한번은 본가인 이천에 보내겠다고 했었고, 두번째는 전기충격기 목줄을 달겠다더니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12월 초 내가 또 한번 개 문제를 꺼내자, 개주인은 그럼 외부인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건물앞에 철제대문을 만들어 세우자는 의견까지 냈다. 자기네 두 딸 때문에 방범문제에 대한 우려를 버릴 수가 없다나. (이 동네 30년 가까이 살았어도 도둑 한번 없던 동네라니깐! 실수로 현관문 안 잠그고 외출 다녀와도 아무일 없었다고!) 나로서야 일단 개만 없애준다면 비용을 분담하겠다고 동의했다.(물론 속으론 울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아래층 가족 구성원들의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아침 일찍 나간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집을 비워두기 일쑤고 우편물이며 택배는 노상 오던데, 그럼 그 때마다 나더러 저 아래 계단까지 현관문 대문 차례로 열어주고 우편물 및 택배 관리인까지 하란 말이냐?) 허나 세입자 입장에서 언제까지 살지도 모를 집에 한두푼도 아닌 대문설치 비용을 감당하고 싶진 않았는지, 대문 건은 흐지부지 무산되었다.

그렇게 또 한달여 속만 부글부글 스트레스를 받던 지난주 수요일, 온종일 빈 밥그릇을 발로 차고 팽개치며 미친듯이 짖어대던 아래층 똥개의 횡포는 밤 10시가 다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주말에 집에 주인이 있을 땐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짖는 빈도수나 시간도 좀 주는데, 온종일 집이 비어있는 날엔 아무 이유없이 길길이 날뛰며 짖어, 나의 살기를 돋우는 녀석이었다. 그날도 내가 두번이나 내려가 호통을 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나는 곧장 구청에 민원신고를 할 것인가 한번 더 대화를 해볼 것인가 고민하다--아 일단 개주인을 만나야 이야기를 하지!--편지;;를 썼다.

강력한 경고문을 쓸까 했으나, 아예 얼굴 안보고 살 것도 아니고 일단은 또 한번 인정에 호소해보기로 했다. "정말로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번역작업에 심히 지장이 있으며, 현재도 원고마감에 힘쓰고 있는데 오늘 같아선 정말 일을 하기가 힘들다. 가족 모두 외출 기간이 길어 개를 통제해줄 사람이 없으니, 외출할 때는 입마개를 해놓고 나가는 건 어떠냐. 부디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주시길 빈다." 작년에 출간된 책도 적겠다, 내가 그간 얼마나 일에 지장을 받았는지 실제로 인터넷 서점에 확인해보라며 내 이름이 인쇄된 책 한권(학생과 직장인인 듯한 그 집 딸들도 확실히 알 만한, 제일 잘 팔리고 유명한 '그' 책)도 동봉해 그 집 현관문 앞에 놓아두었다. 
 
인쇄된 이름의 힘을 빌다니(아날로그형 손편지의 힘이 좀 더 컸기를 빈다) 꼼수를 쓰는 것 같아 약간 찔리기는 했지만, 정말 나는 이번 편지와 읍소로도 해결이 안되면 이를 악물고 구청과 파출소에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신고하고, 개 짖는 소리의 소음도를 측정해 주거권 피해 사례로 볼 수 있을지 전문가에게 알아볼 작정이었다. (실제로 똥개의 짖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과 녹음 파일도 갖고 있다 -_-v) 더는 못 참아! 헌데 바로 그 다음날 아침, 개주인이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알겠다고, 주말에 개를 치우겠다고 선선히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전날 밤까지 거의 악에 받쳐 있다가, 그런 말을 들으니 고맙다, 죄송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비록 기쁜 마음으로 돌아서서는, 혹시나 개주인 아저씨가 또 마음을 바꾸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염려와 달리 개는 토요일 오전에 정말로 모습을 감추었다. 다만 찜찜한 것은 마당 한구석을 매일 한강으로 만들며 놈이 싸질러놓은 오줌이 얼어붙은 자국과 함께 개집과 파라솔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 -_-; 예전에도 본가에 갔다줬다가 다시 데려온 적 있었는데 설마 또 그러려는 것은 아니...겠지? 어쨌든 올해 나의 첫 쾌거는 골칫덩어리 똥개를 쫓아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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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생각

투덜일기 2012. 1. 9. 17:20

지난 금요일 MBC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 황제펭귄 편을 보며 정말 어찌나 울었는지, 머리가 다 지끈거렸고 눈을 자꾸 문질러댄 탓에 다음날 눈이 탱탱 부었다(경험상 눈물을 안닦고 그냥 질질 흘리며 울면 자고 나서도 눈이 덜 붓는다).  그간 동물은 몰라도 인간의 모성애니 부성애니 하는 것들은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사회가 철저히 교육하여 얻어낸 압력의 결과라는 주장에 심히 동조하는 편이었다. 하물며 영하 60도씩 내려가는 남극의 겨울에 하필 알을 낳아서는(그래야 천적이 없고, 새끼들이 봄에 성장하기 좋기 때문이라나;;), 어렵사리 옮겨받은 알을 발등에 올려 배에 품은 채 두세달씩 꼼짝 않고 알을 부화시키는 아빠 펭귄을 보노라니 경이롭다 못해 눈물이 줄줄 났다. 요즘 인간은 걸핏하면 자식을 아무데나 버리고 도망갔다는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던데... 황제 펭귄은 실수로 놓쳐버린 알이나 새끼가 순식간에 꽁꽁 얼어 터지고 딱딱해져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다시 배에 품으려 했다. 심지어는 알과 비슷한 크기의 얼음덩어리라도.

마침 다음날 아침 절에 갔다 돌아오던 엄마는 절집 앞 골목에서 태어난 지 며칠 안된 것 같은 새끼고양이 세 마리를 보았다며, 노란 줄무늬가 있는 주먹만한 새끼 고양이가 추운 길바닥에서 무얼 먹고 한겨울을 날지 걱정이라고 했다. 한 마리 데려다가 키웠으면 싶은 생각도 들었을 정도라고. 엥? 엄마가 애완동물을? 그것도 길고양이를? 음식물 쓰레기 봉투 내다놓으면 죄다 뜯어놓는다고 욕하시더니 새끼에 대한 태도는 다른가 보았다. 그렇지만 엄마나 나나, 집에 함부로 애완동물을 들여 키울만한 사람들은 아니다. 밥 챙겨줘야지, 똥오줌 치워야지, 씻겨야지, 예방접종 시켜야지... 아우 다 귀찮아! 게다가 겁이 많아서 새끼고양이라고 해도 덥썩 집어 안고 올 용기도 없었을 테고. 새끼 고양이들이 어떻게 추운 겨울을 날 것인지 그건 안타깝지만, 누군가 데려다가 키워준다면 좋겠지만, 그 책임을 기꺼이 내가 나눌만한 용기는 없다. 정말로 가족처럼 반려동물을 키울 자신과 다짐이 없는 사람들은 함부로 시작도 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 하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로 딸에게 애완견 한마리를 사주었는데, 태생이 얌전한지 계속 잠만 잔다던 그 강아지가 병이 나서 계속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병원에선 계속 오늘내일이 고비라고 한대고, 부모님 입원했을 때도 매일 안찾아뵙던 병원을 꼬박 며칠째 빠짐없이 들여다보며 살아나기를 기도하는 중이란다. 짐승도 작고 약한 애들이 더 사랑을 받는다는 건 알지만, 처음 친구가 강아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자랑했을 때부터 나는 심술이 났다. 하필이면 인간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일부러 작고 약한 아이들을 교배하여 컵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게 만든 강아지를 왜 굳이 선택했는지? 수요와 공급 중 어느쪽이 먼저인지, 파는 사람이 잘못인지, 사는 사람이 잘못인지 원론적인 이야기를 파고들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강아지들은 핏줄도 너무 약해 어디가 아파 주사를 꽂으려 해도 핏줄이 죄다 터져버릴 정도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배에서 태어나도 어쩌다 약한 애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일부러 사람 보기 귀엽고 앙증맞으라고 열성인자만 애써 모아 탄생시켜, 수명도 턱없이 짧고 건강에도 문제가 있는 강아지를 머그잔에 쏙 들어간다고 한껏 자랑하면서 애완동물로 파는 건 파렴치한 죄악이다.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그저 귀엽고 안쓰러운 마음에 자기가 먹는 음식을 자꾸만 나눠주는 이들도 있다. 특히 우리 큰고모. -_-; 같이 늙고 병들어가는 처지라 불쌍하다면서 고모는 이미 십여년 전부터 그 개에게 온갖 음식을 '지나치게' 싸다 먹였고 결과적으로 현재 그 못생기고 늙은 개는 이미 수술도 몇차례 했대고, 비만에 관절염, 백내장 뿐만 아니라 아직 달고 있는 병명이 수두룩하다. 개들은 땀 배출 능력이 없어서 염분 많은 인간의 음식은 치명적이라고 주변에서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소용없다. 팔순 큰고모의 핑계는 늘 같다. 먹을 거 달라고 이렇게 꼬리를 치고 아양을 떠는데 불쌍해서 어떻게 안 주니! 어휴... 고모는 늙으셔서 그렇다 치고, 젊은 사람들 가운데도 심지어 키우는 강아지가 너무 오래 살면 안된다면서(농담인지 진담인지!!) 일부러 간간한 인간의 음식을 먹이는 이도 있다(이 글 읽고 있다면 반성해라. 바로 당신 말이야!! -_-+++). 그러다 나중에 병들어서 아파할 땐 어쩔 거냐고 옆에서 호통을 치면서도, 정말 아무나 애완동물을 키울 자격이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참으로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인간들. 하긴 나도 조카네 파랑이한테 먹다 남은 양념 고기 준 적 꽤 있다. 나는 동물혐오자니깐 뭐... -_-aa

한번 장가까지 들러 색시네 집에 다녀왔느나 2세 출산에 실패했던 파랑이는 결국 며칠 전 중성화수술을 했다. 배 밑엔 붕대를 붙이고 목둘레엔 투명한 삿갓 같은 깃을 두르고 있는 파랑이를 보노라니 만화에 나오는 애 같다고 놀리다가 문득 측은했다. 개는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서 가장 교활하게(?) 진화에 성공한 동물이라는 설도 있지만, 인간 세상에서 그렇게 편히 사료를 먹고 재롱을 부리며 같이 사느라 본래의 구실도 못하도록 변형되는 삶은 진정 행복할까. 이웃에 시끄러울까봐 성대수술을 해주는 애완견들도 그렇고, 별 생각없이 들였다가 책임지기 싫으니까 슬쩍 내다버리는 유기견들도 그렇고, 막 기르다 잡아먹히는 잡종견들도 그렇고, 음식쓰레기 봉지 뜯어먹고 살다가 염분 때문에 팅팅 부어 얼마 못살다 가는 길고양이들도 그렇고, 굳이 겨울이 아니더라도 먹이가 없어 가끔은 서울 도심까지 내려오곤 하는 멧돼지들도 그렇고... 인간 때문에 니들이 고생이 많구나 싶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인간이 얼마나 치명적인 천적인지 알 도리 없는 펭귄들은 겁도 없이 다가와 사람과 카메라를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부모 펭귄 없는 사이 사냥꾼 새가 공격해오자 아기 펭귄은 도와달라는 듯 촬영진에게 안겨들었다. 300일이나 남극의 혹한에서 고생한 제작진 덕분에 귀한 환경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 있는 건데도, 한편으론 온난화 영향으로 서식지가 많이 줄은 것 이외에 이미 조류독감까지 돌아 펭귄들이 폐사하고 있다는 남극에 또 무슨 질병 바이러스라도 옮겨놓고 온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물론 문제는 남극이 흘리는 뼈아픈 눈물을 우리에게 알리겠노라고  환경 다큐 찍고 돌아온 제작진이 아니라, 앞다투어 남극개발과 진출에 힘쓰는 (우리나라 포함) 힘깨나 쓰는 나라들이다. 세상에는 그냥 좀 내버려두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많고 많은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왜 그렇게도 꼭 들쑤시고 파헤치며 '개발'하려 하는지 원. 제목을 동물 생각이 아니라 인간 환멸로 바꾸어야 하려나. 으휴.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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