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이 끝까지 곤두선 어느 순간에는 확~ 살의를 느낄 정도로 미워하던 개였건만 막상 쫓아내는데 성공을 거두고 나니 마음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어쨌든 주말부터 동네엔 평화가 찾아왔고, 나도 더는 개짖는 소리 때문에 작업의 흐름이 끊겼다는 핑계를 들이댈 수가 없게 되었다. 다 잘 된 일이다... -_-;

사건 해결의 전말은 이러하다. 컹컹 짖어대는 송아지만한 아래층 똥개의 횡포에 대하여 나는 무던히도 참다 참다, 지난 여름부터 진지하게 소음과 위험성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한번은 개끈 쇠사슬이 풀려, 차에서 내리던 나를 향해 정면에서 짖어대는 놈을 발견하고 도로 차에 올라타 몸을 숨긴 적도 있었다.) 이미 개 문제를 제기한 다른 이웃들과의 불화를 지켜보매, 큰소리로 항의하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인간유형임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작전상 나는 아래층 아저씨에게 사정하는 말투로 부탁했다.

1년이 넘었음에도 볼 때마다 하도 짖어대니 무서워서 내 집을 잘 드나들 수도 없고, 물려 죽는 꿈까지 꾸었을 정도며, 가장 중요하게는 번역작업에 심히 방해가 된다고. 주로 아침에 자는 사람이라 안면방해가 된다는 말은 부러 하지 않았지만, 문자 오는 소리에도 잠을 깨는 인간인지라 하루하루가 정말 괴로웠다. ㅠ.ㅠ  내 이야기를 들을 땐 금방 조치를 취해줄 것처럼 말만 앞세우던 아래층 아저씨는 매번 자기네 딸들의 안전을 위한 방법견 목적을 빌미로 약속을 어겼다. 한번은 본가인 이천에 보내겠다고 했었고, 두번째는 전기충격기 목줄을 달겠다더니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12월 초 내가 또 한번 개 문제를 꺼내자, 개주인은 그럼 외부인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건물앞에 철제대문을 만들어 세우자는 의견까지 냈다. 자기네 두 딸 때문에 방범문제에 대한 우려를 버릴 수가 없다나. (이 동네 30년 가까이 살았어도 도둑 한번 없던 동네라니깐! 실수로 현관문 안 잠그고 외출 다녀와도 아무일 없었다고!) 나로서야 일단 개만 없애준다면 비용을 분담하겠다고 동의했다.(물론 속으론 울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아래층 가족 구성원들의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아침 일찍 나간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집을 비워두기 일쑤고 우편물이며 택배는 노상 오던데, 그럼 그 때마다 나더러 저 아래 계단까지 현관문 대문 차례로 열어주고 우편물 및 택배 관리인까지 하란 말이냐?) 허나 세입자 입장에서 언제까지 살지도 모를 집에 한두푼도 아닌 대문설치 비용을 감당하고 싶진 않았는지, 대문 건은 흐지부지 무산되었다.

그렇게 또 한달여 속만 부글부글 스트레스를 받던 지난주 수요일, 온종일 빈 밥그릇을 발로 차고 팽개치며 미친듯이 짖어대던 아래층 똥개의 횡포는 밤 10시가 다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주말에 집에 주인이 있을 땐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짖는 빈도수나 시간도 좀 주는데, 온종일 집이 비어있는 날엔 아무 이유없이 길길이 날뛰며 짖어, 나의 살기를 돋우는 녀석이었다. 그날도 내가 두번이나 내려가 호통을 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나는 곧장 구청에 민원신고를 할 것인가 한번 더 대화를 해볼 것인가 고민하다--아 일단 개주인을 만나야 이야기를 하지!--편지;;를 썼다.

강력한 경고문을 쓸까 했으나, 아예 얼굴 안보고 살 것도 아니고 일단은 또 한번 인정에 호소해보기로 했다. "정말로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번역작업에 심히 지장이 있으며, 현재도 원고마감에 힘쓰고 있는데 오늘 같아선 정말 일을 하기가 힘들다. 가족 모두 외출 기간이 길어 개를 통제해줄 사람이 없으니, 외출할 때는 입마개를 해놓고 나가는 건 어떠냐. 부디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주시길 빈다." 작년에 출간된 책도 적겠다, 내가 그간 얼마나 일에 지장을 받았는지 실제로 인터넷 서점에 확인해보라며 내 이름이 인쇄된 책 한권(학생과 직장인인 듯한 그 집 딸들도 확실히 알 만한, 제일 잘 팔리고 유명한 '그' 책)도 동봉해 그 집 현관문 앞에 놓아두었다. 
 
인쇄된 이름의 힘을 빌다니(아날로그형 손편지의 힘이 좀 더 컸기를 빈다) 꼼수를 쓰는 것 같아 약간 찔리기는 했지만, 정말 나는 이번 편지와 읍소로도 해결이 안되면 이를 악물고 구청과 파출소에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신고하고, 개 짖는 소리의 소음도를 측정해 주거권 피해 사례로 볼 수 있을지 전문가에게 알아볼 작정이었다. (실제로 똥개의 짖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과 녹음 파일도 갖고 있다 -_-v) 더는 못 참아! 헌데 바로 그 다음날 아침, 개주인이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알겠다고, 주말에 개를 치우겠다고 선선히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전날 밤까지 거의 악에 받쳐 있다가, 그런 말을 들으니 고맙다, 죄송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비록 기쁜 마음으로 돌아서서는, 혹시나 개주인 아저씨가 또 마음을 바꾸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염려와 달리 개는 토요일 오전에 정말로 모습을 감추었다. 다만 찜찜한 것은 마당 한구석을 매일 한강으로 만들며 놈이 싸질러놓은 오줌이 얼어붙은 자국과 함께 개집과 파라솔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 -_-; 예전에도 본가에 갔다줬다가 다시 데려온 적 있었는데 설마 또 그러려는 것은 아니...겠지? 어쨌든 올해 나의 첫 쾌거는 골칫덩어리 똥개를 쫓아냈다는 것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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