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어제 잠시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었다. 서점내 커피집에서 만나 일차로 수다를 떨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음식점에서 친구가 갑자기 가방을 뒤적뒤적이더니 휴대폰이 없다고 사색이 되었다. 마침 커피집 영수증이 있어 그리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앉은 자리를 알려주며 흘린 휴대폰이 있는지 물었지만 없다고 했다. 친구는 혹시 길에 떨어졌나 돌아보고 오겠다며 앞뒤 잴 것도 없이 후다닥 뛰어나갔다.
남은 친구들 셋은 요즘 스마트폰 잃어버리면 거의 못찾는다더라. 택시에 두고내려도, 그걸 중국쪽에 수출하는 업자한테 팔면 최소 20만원쯤 받기 때문에 혹시 분실 후 통화가 되더라도 사례금을 20만원쯤은 줘야 돌려준다더라.. 뭐 그런 암담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혹시나 누군가 전화를 받아줄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나는 계속 친구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진동으로 되어 있던 탓인지 한동안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한 열번쯤 연달아 걸었을 무렵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OO문고 별다방인데 휴대폰을 주웠다고...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곧 가지러가겠다고 말한 뒤 뒤이어 음식점을 뛰쳐나갔다. 친구는 길바닥에서 만나지겠지...
친구도 혹시나 해서 다시 서점안으로 들어갔던 터라 입구에서 만나 기쁜 소식을 알렸고, 우린 노트북을 켜놓고 음악을 들으며 공부인지 검색인지를 하던 대학생 차림의 청년에게 구형 '걘역시' 휴대폰을 받아들고는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뭔가 사례를 하고 싶었으나 아뿔사, 친구도 나도 둘 다 흥분해서 가방은 음식점에 두고 몸만 튀어나갔으니... ㅠ.ㅠ 암튼 핑계 대듯 그런 사정을 말하고는 몇 번 더 인사를 마치고 서점을 나왔다.
우와,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며 우리는 찌는듯한 무더위 속 뙤약볕을 걸으며 마구 감탄했다. 친구는 언젠가 금돼지 한돈까지 달린 휴대폰을 주인에게 찾아준 적 있다며 그 선행이 보답을 받는가보다고, 기뻐했다. 우린 답례 못한 것이 미안하니, 얼른 밥 먹고 나서 서점으로 다시 가 청년에게 별다방 상품권이라도 사주자고 이야기를 했다. 어쩜 두 여자가 그래 똑같이 몸만 튀어나갈 수가 있냐.. 그러면서.
헌데 배불리 밥을 먹고 나오니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뙤약볕을 걸어 다시 서점까지 가는 게 퍽 귀찮고 수고롭게 느껴졌다. 아깐 보은하러 당장 달려갈 기세더니만! 어쨌거나 그래도 우린 귀찮음을 무릅쓰고 다시 사거리를 건너 오던 길로 되돌아가 서점으로 내려갔다. 노트북 펼쳐놓고 있었으니 당연히 아직 있을 거야, 라면서... 그러나 청년은 가고 없었다. 일행을 만났을지 몰라 원래 자리뿐만 아니라 다른 테이블까지 돌아보아도 없다고 했다. 좀 아쉬웠다. 밥먹고 나서 아줌마들의 귀차니즘 때문에 살짝 심보가 흔들리긴 했어도, 별 건 아니지만 커피집 상품권으로 그 착한 청년에게 진짜로 일말의 보은을 했더라면 드문 도시의 미담이 더욱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을 텐데. 아까 그 청년의 연락처라도 받아둘 걸, 생각이 짧았다고 민망해했다. 그 착한 청년은 혹시 우리가 뻔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찝찝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잃어버리는 게 무서워 분실보험까지 들어놓긴 했지만, 2년 가까이 차곡차곡 쌓인 역사를 한꺼번에 잃어버린다면(아이튠즈 동기화 기능이 있기는 해도;;) 나는 그야말로 '멘붕'이 올 것만 같다. 그러니까 요즘처럼 험악한 세상에서 금세 스마트폰을 되찾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던 것이고,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감탄까지 토로했을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물건은 무엇이든 별 문제 없이 그 자리에서 찾을 수 있는 사회가 원래 살만한 세상 아닌가. 그 청년이 '유별나게 엄청' 착한 게 아니고, 휴대폰을 주웠으니 주인에게 돌려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평범한 청년이어야 옳지 않겠나 뭐 그런 생각이 새삼 든다. 꽤나 평범한 상황을 각박한 도시의 훈훈한 미담으로 여겨야하는 세상이 된 걸 더 씁쓸히 여겨야 하는 게 아닐까나. 그러나 이미 달라진 세상은 어쩔 수 없는 거고, 우리가 운이 좋았으며 그 청년이 착했다는 건 변함없는 진실이다. 누군지 복받을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