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

투덜일기 2012. 6. 25. 05:25

5월말 6월초부터 30도를 막 넘어가는 건 반칙 아닌가 투덜대보지만, 작년에도 이맘때 똑같은 푸념을 했을 거다. 이미 한반도가 아열대기후로 변해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몇년 전부터 들은 것 같고. 어쨌거나 따뜻한 커피를 마신 기억이 최근엔 없다. 더워 더워를 연발하며, 연일 얼음을 잔뜩 넣어 만들어 마시고는 남은 얼음까지 우드득 우드득 깨물어 먹었다. 더운 오후엔 물 한잔을 마셔도 얼음을 띄워 마실 때가 많다. 그런데도 얼마나 건조한지 얼음 담긴 유리잔에 물방울이 거의 안맺힌다. 습기 높은 장마철에 아이스커피 한잔 만들어 마시면, 아니 그냥 찬물 한잔만 놓아두고 있어도 잔 표면에 물이 줄줄 흘러 바닥에 고이는 게 난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 그래서 책상엔 어울리지도 않게 잔받침을 아예 놓아두고 살고, 방바닥에서 마실땐 강박적으로 휴지를 접어 깔거나 심지어 키친타월로 둘러놓아 아예 잔이 땀 흘리는 걸 방지한다. 그런데 올 여름엔 아직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 물컵에 물방울 맺히는 걸 아예 못 본것 같다. 미세하게 맺힌 수증기도 금세 날아가버릴 만큼 온 세상이 메말랐다는 뜻이다. 원래도 해걸이를 하지만 올해는 앵두가 달랑 열 개나 열렸을까, 그나마도 익기 전에 말라붙어 시들어 떨어졌는지 빨간 앵두알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온 나라의 과수원 나무들도 형편이 다 그렇겠거니 하면서, 종일 밥은 굶어도 과일은 못 굶는 모녀를 위해 시들시들 알도 작으면서 값은 엄청 비싼 과일을 두어 종류 사다 놓았다. 이제 그만 장마가 시작되면 좋겠구만 일기예보엔 늘 가뭄과 더위 이야기뿐이다. 드디어 이번주중엔 장마전선이 북상할 거라니 그 예상은 절대 빗나가지 않도록 기우제라도 지내고픈 심정이다. 농사 걱정은커녕 마실 물도 없다는 분들의 마음에야 댈 것도 아니겠지만, 뒷베란다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며 치직치직 빗길에 굴러가는 차바퀴 소리 듣다가 부침개 타령도 좀 해봤으면 좋겠다. 옛날 할머니들이 왜 비를 오신다고 말했는지 이럴 때만 잘 알겠다. 정말 귀하신 비님, 이젠 좀 와주시지요.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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