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걸이

투덜일기 2012. 7. 26. 09:55

인체의 복원력은 대체로 놀랍다. 간이식 같은 것까지 멀리 갈 것도 없다. 얼굴에 한번 생긴 주름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지만 글쎄? 수시로 밤샘을 하며 잠을 좀 부실하게 자면 얼굴은 금세 자갈밭이 되고 만다. 세수할 때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과장하면 그대로 자갈밭이요, 곧이 곧대로 표현하자면 좁쌀밭(?)이다. 거무죽죽 변한 눈밑이나 넓어진 느낌의 기미 같은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또 하루 이틀 푹 자고 일어나면 세수할 때 느낌이 다르다. 어랏, 다시 맨들맨들해졌네. 물론 어른이 되고 나선 백옥같은 아기 피부였던 적이 통 기억나지 않으며, 아무리 잠을 푹 잔다고 회춘 같은 게 이루어질 리는 없다. 수십년 넘게 중력의 힘을 받아온 볼살은 확실히 아래를 항해 차츰 늘어지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자고 빈둥거리면 확실히 낯빛은 나아진다. 세포분열과 재생의 힘일까?

 

그러나 인체의 복원력은 때로 좀 귀찮다. 예를 들면 20년쯤 전에 뚫어놓은 귓불. 당시 처음 귀를 뚫고나서도 엄청 고생을 했다. 남들은 사흘쯤으로 말짱해진다는 먹는 항생제와 연고를 일주일도 넘게 먹고 발라도 귀가 땡땡 부으며 피가 막 났다. 금속 알레르기인가 싶어 금 재질로 바꿔 끼어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아픈 수고를 허사로 만들 수가 없어 근 1년 가까이 고생을 참아야 했다. 좀 멀쩡해졌다가도 술만 마시면 덧나고 난리! 젠장, 또 내가 20대 직딩시절 또 좀 애주가였나. ㅎㅎ

 

귀걸이 구멍이 완전 자리를 잡고 나서도 또 한참 귀걸이를 안하다 새삼 끼워보려면 저항이 느껴졌다. 안 익은 돼지고기 젓가락으로 찔러보듯 귀걸이로 귓불을 마구 쑤시는 것처럼 복원일로에 있는 구멍을 다시 확보해야 할 때도 많았다. 으으, 징그럽고도 집요하다. 그치만 그래도 20년쯤 지났으면 이제 한 몇달 귀걸이를 전혀 안하다가 불시에 시도해도 구멍이 온전히 남아있어야 정상 아닌가? 내 생각은 그런데 막강한 인체의 재생력은 그렇지가 않다. 어제 또 근 몇달만에 귀걸이를 했더니 아 젠장, 오른쪽이 또 말썽이다. 쫄깃하게(?) 오른 새살이 구멍을 막아서는 느낌이 들더니만 억지로 귀걸이를 하고 나선 역시나 좀 부었다. 

 

귀 뚫었다가 잠시 소홀히 한 사이에 홀라당 막혀버린 사람은 주변에 널렸다. 그래서 다시 또 뚫기도 하던데 나는 한번 막히면 또 다시 뚫을 용기가 없다. 20년 전에도 한쪽만 뚫고 아파서 관두겠다고 도망치는 걸 엄마가 붙잡아 앉혔었다. 미리 사놓은 귀걸이 아까워서 안된다면서... 지금 내 마음도 그렇다. 혹시 나중에 귓불이 막히면 언젠가 친구 하나가 그랬듯이 주변에 귀걸이를 죄다 나눠주면 되겠지만, 귀걸이는 팔찌, 반지와 더불어 나의 기호품이라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귀걸이 타령을 하고 있자니 문득 엉뚱한 생각이 난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귓불에 걸거나 다는 장신구를 뜻하는 우리말은 '귀고리'만 표준어였다. 그러다가 '귀걸이'도 표준어로 인정된 건데, 아직도 가끔 책에서나 만나게 되는 '귀고리'라는 낱말은 참 어색하고 낯설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왜 귀걸이 귀걸이라 부르지 못하게 했었는지 원.

 

아무튼... 똑같은 세포분열과 재생의 힘이건만 귓구멍 막히는 건 짜증내고, 피부색 좋아지는 건 반기고, 변덕스러운 주인 때문에 내 몸도 참 고달프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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