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4.06.28 자아분열? 8
  2. 2014.06.20 엄마의 발원문 8
  3. 2014.06.19 서울 도서전 6
  4. 2014.06.11 여보세요 9
  5. 2014.05.26 앵두 풍년 7
  6. 2014.05.21 마고자 금단추 11
  7. 2014.05.11 일요일 오후 3시 10
  8. 2014.05.06 어김없이 8
  9. 2014.04.30 4
  10. 2014.04.09 좌절된 꿈 8

자아분열?

투덜일기 2014. 6. 28. 18:24

우리집 바로 옆 빌라에 얼마 전 이삿짐 옮기는 탑차가 들락거리더니 연일 동네 소음이 달라졌다. 까르르 까르르 아이들 웃음소리와 고함소리, 투닥투닥 골목길 뛰어다니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 거다. 


나1: 어머, 노친네만 주로 사는 동네에 어떻게 젊은 부부가 이사왔나보네. 동네 평균 연령 내려가겠다. 아파트 촌엔 낮에도 애들 다 학원가고 뛰노는 애들 거의 없다던데, 애들 잡는 부모가 아닌가보다. 훌륭하군. 애들도 골목길에서 뛰어노는 거 신선하겠지. 한참 뛰어놀 나이에 몸을 쓰며 뛰어놀아야 두뇌와 신체가 골고루 성장해 사춘기도 수월하게 넘어간다더라. 막다른 골목이라 드나드는 차도 많지 않고 다행이네. 애들이 몇살이나 됐을까... 궁금하다. 마주치면 인사도 잘하고 그러는 귀여운 아이들이었으면. 


나2: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다) 아악 시끄러워! 쟤네들은 대체 몇 시간을 뛰어노는 거야?! 힘들지도 않나? 더운데 창문을 다 걸어닫을 수도 없고! (장보러 나가려고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내 앞으로 물총을 들고 확 튀어나오는 사내아이를 보고) 으악! 이누무시키! 골목길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애들은 폭탄이야 폭탄! 부모가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휴, 사고날뻔 했잖아... 왜 골목길에서 위험하게 물총 싸움을 하고 난리... ㅠ.ㅠ


똑같은 상황에서 며칠 차이로 전혀 딴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정말 나인지 같은 사람인지 원... 유치원생 아니면 기껏해야 초등학교 1, 2학년인 것 같은 남매의 골목길 물총 전쟁을 룸미러도 흘끔거리며 골목길을 빠져나가면서 엄청 민망했다. 

Posted by 입때
,

엄마의 발원문

투덜일기 2014. 6. 20. 16:51

며칠에 한번씩 연필 깎아대기 귀찮아서 연필 깎는 기계를 살까말까 고민하는 포스팅을 했다가, 결국 반성하고 계속 연필깎이 봉사를 보태기로 했던 엄마의 금강경 필사는 계절이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매일 새벽 거의 2시간씩 꼬박 식탁에 앉아서 금강경을 베껴적으시는데, 이젠 아는 한자가 많아져 속도도 빨라졌고 목표로 했던 7권 가운데 마지막 한권만 남았다는 것 같다. (1권에 3번씩 쓸 수 있으니 총 21번을 쓰는 셈)

 

노친네가 1월에 빙판길에 넘어지면서 손을 다쳐 초반부엔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1달에 한권씩 써서 백중(8월 10일이다) 전에 다 끝내겠다던 대장정이 순조롭게 결실을 앞두고 있다.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너무 짧아진 연필 몇 개는 버리고 새 연필을 서너 자루 더 깎아드린 것 같다. 지켜보는 사람으로선 참 대단한 끈기이고 정성이다 싶어서 존경스럽다가도, 간혹 잠도 안자고 새벽 3시에 막 필사하겠다고 나서면 억지로 다시 방으로 쫓아보내 더 주무시라고 하면서 버럭 화가 난다. 뭐든 스트레스가 되면 안되는 거라구욧!

 

엄마 본인의 말로는 학창시절 공부를 못했단다. (딸에게 이런 고백을 스스럼없이 하는 엄마라니.. 참 나.) 하여간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많이 졸다가 쉬는 시간에만 재잘재잘 살아났고(요즘도 한달에 한번 만나는 엄마의 고교동창들이 그런단다. 얘, 너 학교 다닐 때도 엄청 수다스러웠어!), 집에서도 공부 좀 할라고 그러면 어찌나 졸린지, 시험 앞두고서도 할머니한테 새벽에 깨워달라고 하고는 내쳐잔 뒤 다음날 안 깨웠다 신경질만 부렸단다. 할머니가 왜 안깨웠겠나, 깨워도 그냥 잤겠지. ㅋㅋ 게다가 워낙 악필이라 수업시간에 적어온 필기 내용을 (아마 졸면서 적어서 더 그랬을듯;;) 본인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는 게 함정. 그뿐인가. 무려 고2때부터 이후 8년간이나 이어지는 연애질을 시작해 종종 학교 수업 빼먹고 명동으로 영화구경도 다녔다니, 공부를 대체 언제 했겠나! (가끔 울 아빠가 읽어보라고 건네주는 책--주로 고전--읽기에도 바빴다고;;)

 

하여간 공부를 잘 해보고 싶어도 잘 안됐던 그 시절의 로망을 요즘에 투사하는 건지, 엄마는 뭐든 금강경 필사만큼이나 열심이다. 실버 아카데미 다닐 때는 무결석은 물론이고 숙제도 그날 오자마자 상 펴고 앉아 몇시간씩 낑낑대며 다 해치웠고, 요즘도 활동중인 실버 합창단은 열혈 선생이 구워준 CD를 집에서 연거푸 들으며 악보 챙겨와 따로 예습복습까지 해갈 정도다. 자고로 선생이 예습복습 해오란다고 정말로 해가는 아이들이 반에서 1퍼센트는 될까? -_-;; 암튼 그래서 엄마는 합창단 지휘자 선생도 인정하는 모범생이다. 

 

예전에 엄마가 서예 배우러 다닐 때도 신기하게 느꼈던 건데, 한글 글씨체는 진짜 악필인데 한문 글씨체는 잘 쓰는 편이라는 것! 나는 한글도 엉망이지만 한문 적어놓으면 그야말로 어린애가 그려놓은 듯 우스꽝스러운데, 금강경 필사야 밑에 흐린 점선으로 적혀 있는 대로 베껴적어서 그렇다치고 일반 공책에 한자성어 적어놓은 것도 한글은 지렁이 기어가듯 보이는 반면 한문 획은 반듯하다. 나로선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그래도 몇달째 필사를 하면서 손아귀에도 힘이 생겨 악필도 많이 나아진 것 같다.  금연하라고 하사금까지 내렸는데 아직도 몰래몰래 담배를 피워 노친네 애를 태우는 동생놈들 양심 찔리라고 엄마의 발원문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노친네가 쌓고 있는 정성의 힘이 어떤 절대자의 마음을 움직인다거나 해서 소원이 덜컥 다 이뤄진다고 믿진 않지만(신은 없다니깐!) 이런 과정을 실천하고 지켜보는 인간들이 슬그머니 변모하려는 노력은 낳게 되지 않을까. (마지막 두 줄은 나와 괜히 티격태격한 날 덧붙인 모양이라 나도 찔린다. 버럭버럭 마감 스트레스 괜히 엉뚱한데 풀지 말고 나도 뾰족한 말 좀 덜 하기를 바라는 차원의 포스팅...)

 

Posted by 입때
,

서울 도서전

투덜일기 2014. 6. 19. 23:46

와우북페스티벌 말고는 '도서전'이라 이름 붙인 대규모 행사장엘 가본지 한참되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노상 말이 '국제'지 프랑크프루트나 시카고에서 봤던 국제도서전과는 정말 비교도 되지 않는 소규모 국내잔치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주로 아동도서 할인전에 그치고 마는 꼬라지를 하도 많이 봐서, 언제부턴가는 아예 안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었다. (오늘로서 과거형이다 ㅋㅋ)


도대체 몇년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암튼 오늘 도서전 당번이니 놀러오라는 문자를 어제 오후엔가 받고는 웬일인지 혹했다. 진짜로 도서전에 혹한건지 코엑스 갔다가 강남역 올케의 옷가게 들를 생각에 혹했는지 암튼 그건 그냥 잘 모르는 걸로 넘어가기로 하자. 하여간 역시나 수년만이 틀림없는 삼성동 코엑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온통 공사판이잖아!


상경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강북촌년이 오랜만에 강남 번화가에 가면 꼭 그렇게 된다) 티를 팍팍 내면서 도서전이 열리는 전시장을 찾았다가 또 놀랐다. 아니 입장료를 받아??? 언제부터? 미친 거 아닌가? -_-" 그것도 3천원씩이나!! 아 진짜, 티켓값 아까워서 안들어가고 싶었는데 사들고 간 빵이랑 음료수가 아까워서 참았다.


듣자하니 사전등록제로 미리 신청을 했거나, 이벤트 같은 거에 당첨됐거나 코엑스 멤버(? 뭐하는 건지는 모름)거나 출판계, 언론계 종사자들은 공짜로 출입도 가능한 모양이던데 아 뭐야! 하여간에 티켓을 사야하는 나는 짜증이 났다. 공짜로 어서옵쇼 해도 흥행이 될까말까, 고민해야 하는 처지인 것 같은데 아주 잘들 나셨다. 나를 부른 출판계 종사자에게 들으니, 서울 도서전에서 입장료 받은지 꽤 됐단다. 하기야 예전에 무료입장일 땐, 아주 더 도떼기 시장이었고 공짜로 나눠주는 캔버스백이나 기념품 가져가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 엄청 많긴 했다. 정신 사나워서 별로 돌아보지도 않았지만, 이번엔 무료 홍보물 나눠주는 데는 별로 없는 듯. 똑같은 물건이나 부채 들고 돌아댕기는 사람 못본 것 같다.


째뜬 혹시 책을 사게될지도 모른다 싶어서 배낭을 매고가긴 했지만, 지인과 헤어지고 나자 입장료 3천원의 본전을 뽑아야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ㅠ.ㅠ 결국 가을에 와우북페스티벌 하면 가서 사야지 마음먹었던, 컬러화보 많이 들어간 비주얼용 자료도서를 마구 골랐다. 30퍼센트 할인에다 7만원 넘으면 무료택배 서비스...  에효.. 내가 그렇지 뭐.


지난번 중고책들을 54권 정리하고 잠시나마 뿌듯해했으나 오늘의 지름으로 또 새책이 10권 생겼다. 그나마 시간이 없어서 후딱 전시장을 나왔으니 망정이지 좀 더 돌아다녔더라면 3천원 본전 생각하다 계속 질러댔을지도 모르겠다. 브로셔를 보니 저자와의 대화에서 몇몇 호기심이 가는 인물들이 있긴 하지만, 절대 또 가지 않을 걸 안다. 입장권 한번 팔아준 것도 억울한데!


아무려나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적어두자면 서울도서전은 22일까지. 평일엔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토요일은 8시. 마지막날 일요일은 5시에 끝난다고. 대체로 신구간을 30% 할인해서 살 수 있고, 반품되어 온 책들을 저가에 판매하기도 한다. 전시 부스를 다 안돌아봐서 무슨 출판사가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대형 출판사는  당연히 다 나왔고 (입구에 다 몰려있다) 아동서적 출판사도 빠지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 

Posted by 입때
,

여보세요

투덜일기 2014. 6. 11. 13:12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은지는 꽤 됐다. 가끔 예외는 그날 택배 배달 예고가 있는데 밖에 나가있을 때 정도. 그렇다고 번호 저장된 사람들의 전화를 잘 받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워낙 전화오는 일이 드물기도 하고, 진동으로 해두고 못들을 때도 많다. 배터리 꺼진줄도 모르고 있을 때도 있으니 뭐.


암튼 전화와 관련해선 기피증도 심하고 구세대임이 분명한 나는 아는 이에게 걸려온 번호도 미리 반색하며 알은체를 하지 않는다. 그냥 일관되게 "여보세요."라고 응답하는 쪽인데, 가끔 저쪽에서 섭섭해하는 경우가 있다. 내 번호 저장 안 돼있어? 아니 저장되어 있는데요... 근데 왜 모른척 해? 어 그게 아니고....  


이거 원 참... 난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여보세요"라고 안하고 대뜸 "응 OO아!" "네, 언니!" "어, 웬일이야?"라는 식으로 대답하면 그게 더 어색하다. 어쩐지 빨랑 용건부터 말해야할 것 같고... 난 "여보세요"란 말에 대비해 서서히 인삿말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쪽에선 벌써 "오랜만이네. 어떻게 지냈어" 따위로 대화를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좀 더듬거린다. 이것도 사회성 부족 현상일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특히나 휴대폰에 뜨는 상대방 이름을 보고 재빨리 응대할 태도 준비까지 마쳐야하는 모양이다. 무작정 "여보세요"라고 받으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점수가 심히 깎인다고. 지켜본 바에 의하면 배우자나 애인한테도 마찬가지인 듯. 대뜸 콧소리 작렬하는 "자기야~!"로 응답하는 장면 꽤 목격했다. 으윽.  

 

문득 회사다닐 때 생각이 난다. 사무실 전화가 울리면 습관적인 '여보세요' 대신에 회사이름을 대야 했는데, 난 그게 어찌나 어렵던지. 첫 회사는 심지어 영어이름이었으니... 두번째인가 세번째 회사는 심지어 "감사합니다, OOOO 영업부 OOO입니다."라고 회사명과 소속부서 본인 이름까지 대라고 강요했다. 아우 발음꼬여! 하도 스트레스라서 집에 와서도 그렇게 회사이름을 대며 전화받던 시절도 있었네그려.

 

어린시절 우리집엔 없는 대문 인터폰이 달린 고모네 집에 놀러갔을 때, 벨이 울리고 부엌에서 일하던 고모가 나더러 받아보라고 했을 때 수화기를 들고는 '누구세요' 대신 '여보세요'라고 했던 민망한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어찌나 창피했는지. 마침 퇴근하신 고모부가 누른 벨이었고, '여보세요'라고 했다고 놀림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인터폰에 대고 '여보세요'라고 한 적이 꽤 되는 듯. 드디어 우리집에도 인터폰을 달았을 때, 들고 있는 수화기가 전화인지 인터폰인지 헷갈려 '여보세요' 했다가  '아니, 누구세요'로 바꾸곤 한 것 같다.

 

암튼 습관이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것이고, 대인관계의 태도 역시 갑자기 바꾸기 어려우니 나의 '여보세요'는 평생 이어질 게 틀림없다. 엄마한테 오는 전화도 동생들한테 오는 전화도 다 일단은 "여보세요"라고 받는 게 나로선 너무 당연한데,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가? 문득 궁금하다.




Posted by 입때
,

앵두 풍년

투덜일기 2014. 5. 26. 16:28

집앞 앵두나무가 해걸이를 해서 한 해 열매가 많이 열리면 그 다음해는 성글게 열리는데, 올해는 많이 열리는 해다. 작년에는 한움큼씩 두어번이나 따먹었나. 그것도 감지덕지 꽤 많다 싶었는데 올해는 아예 엄마가 한번에 소쿠리에 수북하게 따대시는 데도  계속 익어가고 있다. 너무 익어 떨어져 버리기 전에 얼른 따먹어야 한다며, 오늘도 한 소쿠리 따갖고 올라와선 냉동실에 얼렸다 애들 오면 줄까, 설탕 넣고 잼을 만들까 괜한 고민을 하신다. 며칠 전에 딴 앵두도 아직 냉장고에 들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엄밀히 옆집 나무이되 우리 마당으로 가지를 더 많이 뻗은 살구나무와 벚나무 역시 해걸이를 하는데 완전 흉년인 쪽이다. 작년엔 살구를 역시나 한두 소쿠리 쯤 따서 아주 맛있게 먹었고, 큼지막하게 익은 버찌도 꽤나 먹을 만 했었는데, 올해는 열매 구경하기가 아예 힘들다. 얼마 안되는 살구 열매가 앵두만하게 자랐을 무렵 웬일인지 다 떨어져 마당에 뒹군 탓이다. 그래도 한두개는 건지겠거니, 아무리 살펴봐도 온전하게 가지에 붙어 익어가는 살구는 한 알갱이도 안보인다. 크기는 작아도 사온 살구보다 더 달고 맛있었다며 쩝쩝 입맛을 다시는 엄마. 그러고 보니 작년 살구 수확(2층 베란다에서 가지를 당겨 따야하는 위험한 과정;;)도 나 외출한 새 엄마가 다했었다. 


엄마는 올해도 마당에 내려다 놓은 스티로폼 화분과 새 화분에 꽃씨와 모종을 심어놓고 매일매일 물을 주며 정성을 들이고 있다. 화원에서 사온 영양토 말고도 작년 가을 마당에서 쓸어 모았던 낙엽을 비닐에 담아  썩혀 그걸 퇴비로 얹어준 때문인지 올해는 가지와 고추 모종이 그럭저럭 잘 자라나는 중이고, 심지어 작년에 심었는데 나오지 않아 망했던 분꽃도 하나 싹을 튀웠단다. 2년만에 싹이 나는 분꽃이라니! ㅋㅋ 작년 분꽃 자리에는 원래 올해 과꽃 씨앗을 뿌렸는데, 그건 다 싹을 틔워 쑥쑥 자라나고 있다. 


집앞 앵두나무는 30년전 아래층 할머니가 분재 화분을 버리려고 마당에 내용물만 휙 쏟아놓았던 게 지금처럼 무성하게 자란, 전설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이제 그걸 아는 사람은 울 엄마와 나뿐이다. 집앞에 벚꽃이랑 살구꽃 한참 만개했을 때 누군가 집을 보러 온다면 30년 넘어 낡은 집에 대한 나쁜 인상이 조금이나마 덜해질 텐데 아쉬웠듯이,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는 요즘 누군가 집을 보러 온다면 또 낡았지만  해마다 앵두 따먹는 재미에 대한 환상 같은 걸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는데, ㅋㅋ 부동산 이야기론 동네 자체가 원래 매매가 뜸하지만 이런 오래 된 집은 아예 보겠다는 사람조차 없단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듯, 엄마는 이사가면 앵두 따먹는 것도 끝이라며 열성을 부리는 거라고. 알았으니 많이 드셔. 그러면서 한 소쿠리 깨끗이 씻어놓았다. 




Posted by 입때
,

마고자 금단추

투덜일기 2014. 5. 21. 00:38

지다님이 마고자가 어떻게 생긴 옷인지 몰라 검색해봤다는 댓글을 다셨는데, 그걸 보니 깃과 고름 없이 큼지막한 단추로 슬쩍 여미게 되어 있는 남자 마고자와 관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아 진짜 일하기 싫은 게 맞다. 마감이랍시고 컴퓨터 앞에 꼬박 앉아는 있으되 틈만 나면 딴짓할 궁리를 하게 되누만. 하여간에 후다닥 적어보련다. 기가 막힌 마고자 금단추 얘기를.



<이것이 바로 마고자. 사진 출처는 사진에 찍힌 저 사이트임. 문제 되면 삭제하겠음>


친구 하나가 스물 서너 살 쯤, 엄청 일찍 결혼을 했다. 그래도 제일 먼저는 아니었던 것 같고, 아마 두번째쯤? 처음 결혼한 친구는 소개받고 거의 석달 만엔가 초스피드로 후다닥 채여가다시피 결혼을 하는 바람에 혼례의 절차고 뭐고 얘기 들을 기회가 전혀 없이 어느 틈에 결혼식장 구경을 하게 됐었다. 그런데 대학시절 내내 연애를 거쳤던 이 P양의 경우, 상견례며 약혼식 준비(결혼식 비용은 반반 나눠 내지만 약혼식 비용은 전액 신부 부담이라던데 요즘도 진짜 그런가? 아 왜?)부터 시시콜콜 수월하게 넘어가는 게 단 하나도 없었고, P양은 종종 우리에게 하소연을 하다 눈물을 흘렸다. 친구가 사귀던 '오빠'가 '의대생'이었던 것이 사단이었다! 의사 사위 보려면 열쇠 3개(아파트, 자동차, 또 뭐지? 설마 병원 건물?)를 신부에게 딸려보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던 시절이었고, P양의 예비 시댁은 아주 기세등등 했다. 


P양은 정말로 거의 친정 기둥뿌리를 뽑다시피 혼수와 예단을 장만했는데, 결혼식을 달랑 한달쯤 앞두고는 급기야 결혼을 하네 마네 파란이 일었다. 예비 시어머니가 적어보낸 예단 목록대로 얼추 다 맞춰보내고는 친정 엄마가 한숨을 쉬려는 찰나, 신랑 마고자에 달린 단추가 순금이 아니라 호박이라고 돌려보냈다는 것! -_-;; 


당시 P양의 마고자 금단추 사건은 꽤나 유명하고도 워낙 인상적이어서, 수십년이 지난 요즘도 가끔 친구들 사이에  오갈 정도다. 견디다 못한 친구의 친정 엄마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면서, 그런 시댁을 참아가며 결혼을 꼭 해야겠느냐고 그만 엎어버리자고 하셨다나. 놀라운 건 나 같으면 진짜로 확 다 엎어버렸거나, 남자친구를 설득하거나 시댁과 싸워서 호박단추를 관철시켰거나 했을 것 같은데 P양은 징징 울면서 엄마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이제껏 들인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순순히 금단추로 바꿔주지 싶은 생각에 섭섭하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거다. 우웩~!!


결론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P양의 의대생 남친은 결혼식 폐백 때 황금칠보 단추가 떡하니 달린 마고자를 입고야 말았다. 

폐백용 한복과 피로연 때 입을 정장을 맡아가지고 있던 우리들은 폐백실에 따라가서 얼른 보자기를 풀며 그 문제의 황금단추를 구경했다. 도대체 마고자 금단추는 어떻게 생겨먹었나 궁금해서 말이지... ^^; 매듭으로 매달리는 큼지막한 눈물 모양의 마고자 단추를 죄다 황금으로 만들려면 최소한 수십돈 쯤 들지 않을까 우리끼리 궁시렁거렸었는데, 알고보니 안을 텅 비게 해서 그렇게 많은 양의 금이 들어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10돈이라던가 5돈이라던가.... 꽤 고가이긴 했다. 



<역시나 퍼온 사진. 그날 본 금단추는 이것보다 훨씬 크고 화려했던 기억이;;;>


어쨌거나 이십대 초반에 내가 구경한 마고자 금단추 사건은 결혼제도의 폐해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면이었고, 집안 나름이겠지만 결혼은 진짜로 할 게 못된다는 심증을 굳혔다. 이후 결혼하는 친구들이 나타날 때마다 묻곤 했다. 너도 마고자 금단추 해가냐? ㅋㅋ 이후 P양에게도 걸핏하면 놀려댔다. 친정 기둥뿌리 다 뽑아서 신랑 마고자 금단추까지 해갔는데 잘 살아야지! 


최근 사촌동생들 결혼 때 보니, 마고자 금단추 같은 말도 안되는 일은 사라진 듯했다. 합리적인 아이들은 어차피 잠깐 촬영할 때만 필요한 거라며 아예 한복도 안 맞추고 친구에게 빌려 입기까지! 예쁜 것들...  

근데 '마고자 금단추'로 검색해서 뭔가 나오는 걸 보면 요즘도 혼수로 해가는 사람들이 있는 건가 어쩐 건가...  

Posted by 입때
,

일요일 오후 3시

투덜일기 2014. 5. 11. 16:12

벌써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작년 이맘때쯤? 정확하진 않지만 계절이 여러번 지나간 건 확실하다. 하여간 일요일 오후 3시 무렵이면 똑똑똑 현관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이웃인데요,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필요없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잠깐만 시간 좀 내주세요. 됐어요! 아무리 쌀쌀맞게 대꾸를 해도 그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 매번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다음 일요일엔 어김없이 나타나는 저 놀라운 끈기. 


나는 한번도 대면한적 없어 도무지 정체가 누군지 알지 못했는데, 듣자하니 동네 입구 상가 2층에 있는 작은 교회 신자들이란다. 이웃 아줌마가 호기심에 문을 열고 인쇄물을 받아보았더라나. 우리집을 찾은 사람과 동일인물인지 아닌지 확신할 순 없지만 유독 일요일 오후 3시쯤 집집마다 문을 두들기고 좋은 말씀을 전하려는 이들이 또 있을까 싶긴 하다. 아니지, 언젠가는 '좋은 말씀' 언급은 꼭 빼고 이웃이라며 물어볼 게 있다는 감언이설(?)로 문을 열게 한 뒤 다짜고짜 인쇄물을 내밀고는 됐다고, 필요 없다고 하자 '50원'인가 '100원'을 내놓으라고 하던 특정 종파도 있었다. 그날도 일요일이었던가, 그땐 평일이었던 것도 같고. 


노친네들이 유독 많이 살아 동네 분위기가 허술한 때문인가. 몇달에 한번쯤은 절에서 왔다며 시주를 청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물론 엄마 덕분에 불교쪽에 대해선 좀 더 빠삭한 사람으로서, 전철역 앞에 불전함 놓고 꽝꽝 드럼치듯 목탁 두들겨대는 땡중(승적도 없을 게 분명하다!)들이 다 구걸형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듯이, 절에서 나왔다는 사람들도 종교를 빙자한 사기꾼이라고 굳게 믿는다. 요즘이 어떤 시절인데 저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녀서 과연 종교 설파가 된다고 믿을까? 


순수하게 길을 묻는 사람들도 혹시나 '도나기' 일당은 아닐까 지레 경계하며 쌀쌀맞게 대한지 꽤 됐다. 이젠 이사했다고 떡 돌리는 이웃들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 있을지 모르는데 (아마 이 집이 팔려서 이사를 가게 되면 울 엄만 반드시 고사떡을 해가지고 이웃에게 돌릴 사람이다), 누군가 문을 두들기고 이웃이라고 하면 버럭 짜증부터 난다. 아으 참 용감하고도 질긴 (일부) 종교인들!


시내 중심가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팻말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그렇고, 일요일 예배후 지역을 나눠 동네 전도에 힘쓰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들이 전도에 힘쓰는 건 무지몽매한 비종교인들을 함께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들이 보기엔 지옥불에 떨어질 중생들이 안타깝고 불쌍하겠지. 그러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마침 내가 향기로운 커피를 즐길 시간에 똑똑똑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는 분명 스트레스다. 이젠 아주 그 시간 즈음 되면 미리부터 조마조마하다. 두들겨도 빈집인 척, 아예 대답을 하지 말까? 그러다 진짜 볼 일 있는 사람이면 어쩌지? 가스 검침원이라든지... 


현관문 유리로 얼핏 보이는 실루엣으로 미리 짐작하거나 베란다 창으로 내다보아 마당에 또 다른 일행이 서 있나 확인하기도 하는데 (둘셋씩 다니면 전도 목적이 확실하니까';) 나보다는 확실히 저들의 전략이 더 앞선다. 아 오늘은 조금 전에 글쎄, 젊은 청년이 홀로 나타나 문을 두들겼다. 착하고 성실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이웃인데요... 레퍼토리가 똑같지 않았더라면 나도 계단을 뛰어 내려가 문을 열어봤을지도 모르겠다. 귀가 어두운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대뜸 문부터 열려고 신발을 꿰신는 걸 내가 말렸을 정도. 그간 그렇게 두들겨 봤으면, 이 집은 도저히 안되겠으니 이제 좀 포기해주면 안되나. 내가 집에 없던 어느 일요일 오후, 가능한한 짧게 상대하지 않는 게 최선임을 모르시는 노친네, "우린 절에 다녀요."라고 괜히 대꾸했다가 한참이나 댓거리를 해야했단다. 안가고 서서 더욱 열렬히 한참이나 좋은 말씀을 전하시더라는...   으휴. 오늘은 날 흐리고 바람도 세차던데 참 수고가 많으시겠으나, 이제 부디 우리 집은 포기해주시기를. 


일요일 오후 3시 무렵의 스트레스에서 이만 벗어나고 싶다.   



Posted by 입때
,

어김없이

투덜일기 2014. 5. 6. 20:33

어김없이 올해도 아카시아 꽃이 피었다. 어제만해도 드나들며 전혀 못느꼈고, 심지어는 아까 낮에 외출할 때도 못맡았던 향기를 방금 전 음식물 쓰레기 내다놓으러 나가면서 깨달았다. 온 동네를 휘감고 있는 듯 훅 끼쳐오는 진한 향기를 아깐 왜 못 맡았을까. 5월 6일이면 예년보다 많이 빠른 건가 어쩐건가.


벚꽃을 비롯한 봄꽃은 보름이나 일찍 피었지만 그 뒤로 날씨가 하도 수상하게 오락가락, 얼마 전 비온 뒤로는 아침 저녁 다시 발시리고 춥다고 느껴졌다. 바람은 또 어찌나 불어대는지. 참담하고 암울한 세상 때문에 더 춥다고 느껴지는 건지 진짜로 기온이 많이 떨어진 건지 분간이 잘 안되고 있었는데... 


음식물 쓰레기와 아카시아꽃 향기. 새삼 참 아이러니하구나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5월은 왔고 어린이날도 지났고 석가탄신일도 지나가고 있다. 외할머니 살아계실 때면 해마다 외가쪽으로 온 가족 총출동하다시피 모였던 석가탄신일엔 어려서부터 꽤 많은 사촌들끼리, 다 자라선 어린 조카들 조르륵 앉혀놓고 찍은 사진이 많은데, 그런 사진들 속에선 대부분 반팔을 입고 있었다. 지금도 냉장고에 붙어있는 초파일 사진 속 조카들은 죄다 반팔옷이다. 올해 음력이 좀 빠른 탓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온종일 으스스 추워서 보일러를 돌렸다. 


가족모임은 어린이날인 어제 큰동생네 모여 고기 구워먹는 것으로 끝냈다. 새집으로 이사하고 열흘만엔가 현관문 열린 사이 가출해 애를 태웠던 파랑이도 어제 가보니 무사히 귀가해 있었다. 연일 비와서 벽보도 못 붙이는 상황이라 그새 안락사라도 당했으면 어쩌나 내심 쫄아가지고 차마 묻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신고하고 잘 데리고 있었단다. 엄청 다행. 오늘까지 오른쪽 어깨가 뻐근할 만큼 조카들과 배드민턴도 쳤고, 몇년째 벼르기만 했던 가족사진을 막내 카메라로 그냥 찍었다. 아버지 생전에 스튜디오에서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엔 첫조카밖에 없어 8명뿐이다. 막내조카 태어나고 모두 11명이 된 대가족 사진을 찍자고 찍자고 부모님이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이상하게 못했다. 나부터 사진찍는 게 너무 싫으니 원.


엄마는 막내가 삐까번쩍한 dslr 카메라를 들기만 하면 영정사진을 찍어 내놓으라고 포즈를 취하시는데, 난 또 그게 싫어서 매번 핀잔을 주었다. 옷이 어떻네, 머리가 어떻네, 표정이 어떻네...  물론 어제도 엄만 가족사진 다 찍자마자, 영정사진 하게 독사진 한장 예쁘게 찍으라고 또 나섰다. 하이고, 이여사님 제발... 노친네의 논리는 영정사진을 찍어놓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 늬 할머니, 할아버지 봐라....그리고 한살이라도 더 젊고 예쁠 때(?) 찍어놓아야 한다나. 


그치만 여든다섯에 돌아가신 친할머니 영정을 칠순 사진(그냥 칠순기념 독사진이었을 뿐, 엄밀히 영정사진으로 찍은 건 절대 아니었다)으로 썼을 때, 모두들 15년 전의 할머니 모습을 낯설어했다. 최근 모습이 더 곱고 다정하고 예쁘다면서. 어떤 고모부는 영판 딴집 할머니 같아서 장모님 같지 않다고도 했다. 아버지 땐 너무 갑작스럽고 경황이 없어 사진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집안 어르신들은 정년퇴직 직전의 근엄한 양복사진을 쓰라고 권했지만, 우린 일주일에 세번씩 산에 다닌 아버지의 등산복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아 근데 그렇게 수많은 등산 사진 중에 왜 쓸만한 독사진이 없는지. 드물게 있는 독사진은 다 선글라스를 끼고 계시고... 


암튼 이번 가족사진 촬영은 밥먹기 전날 내가 먼저 충동적으로 제안했다. 막연한 위기감 같은 게 작용했던 것 같다. 조카들 다 사춘기 접어들면 아예 나타나지도 않으려고 할 텐데! 녀석들 예쁜 모습으로 주르륵 옆에 앞에 앉혀놓고 찍은 사진을 갖고 싶었다. 넷 중에 둘은 벌써 나보다 키가 한참 크다. 영 보기 싫은 내 모습도 10년쯤 뒤에 보면 아 젊었구나 할텐데 뭐, 위로하면서. 제발 좀 웃어달라고 아양을 떨어대도 오랜 촬영에 떼거지로 짜증을 내며 툴툴거리던 조카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담겼을지, 한 장이라도 제대로 건질 게 있을지 궁금하다. 있을 때 잘해줘야지,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지, 카르페 디엠, 요즘 특히 나의 모토다.  


2014년 아카시아꽃 공식 기록은 아무려나 5월 6일이라고 써두려던 게 딴소리로 흘렀다. 마음 같아선 창문 활짝 열고 아카시아 향기를 방안으로 들이고 싶은데 너무 춥다. 그래도 괜한 위기감에 창문을 여는 쪽으로. 

Posted by 입때
,

투덜일기 2014. 4. 30. 22:52

생각해보면 나는 참 무서운 게 많다. 계단도 무섭고, 높은 데도 무섭고, 새도 무섭고, 사방이 꽉 막힌 좁은 데도 무섭고, 뾰족한 것도 무섭고, 물도 무섭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사고 순간을 상상했고 때때로 가슴이 꽉 막혀 숨이 잘 안쉬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원래도 매사에 이성적인 분석과 판단, 비판보다는 감정적인 반응에 능한 사람이라 열흘도 더 지난 지금껏 여전히 어느 쪽이 더 '발전적'인 반응인지 갈팡질팡하다. 언제까지 일손을 놓고 있을 건가, 일상으로 돌아가서 각자 제 할일을 하며 지켜봐야 하지 않는가 싶다가도, 벌써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망각의 시초는 아닌가 불안하다. 


그래도 이웃 블로거들의 일상 이야기를 읽으며 내 마음도 안정되는 걸 보니, 차츰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도무지 머릿속에서 잘 정리가 되지 않아 문장 하나도 잘 맺기 어려운 것도 내가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러려면 시답잖은 블로그 끄적거리기부터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오늘이 4월의 마지막날이다. 4월은 정말로 잔인한 달이었다고 모두의 마음에 기록되겠지. 4월 3일과 더불어 4월 16일까지. 정말로 이젠 영국의 황무지를 들먹일 필요도 없어졌다.  그러나 곧 이어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5월은 가정의 달. 실은 슬프고 무서운 세상과 별도로 벌써부터 어버이날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모여 밥을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슬프다고 질질 따라 울다가, 배고프다며 홀로 밥 챙겨먹고 있는 느낌. 하지만 세상이 어떻든 인생은 살아가야 하는 것. 어버이날 챙기는 건 그래도 엉뚱한 데서 라면 먹는 장관 짓거리완 다르니까. 그러나 5월 하면, 가정의 달보다 80년 광주가 떠오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5월이란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때를 아스라이 잊은 것도 어쩌면 이번 사고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신채호 선생이 익히 말씀하셨거늘.


잊지 않겠다고, 오래 기억하겠다고 모두 다짐하지만 이 일의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그건 정말로 두고볼 일이겠으나, 최소한 당분간은 매순간의 행복과 곁에 있는 이들의 가치와 특히 때때로 귀찮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더욱 실감하는 나날이겠지 싶다. 사회적인 분노와 개인적인 일상의 행복을 따로 떼어놓기 어려운 시기지만... 일단은 심호흡 크게 한번. 



Posted by 입때
,

좌절된 꿈

투덜일기 2014. 4. 9. 15:08

보름도 넘게 정신만 들면 중얼거리고 있다. 지금쯤 터키에 있었어야 하는 건데... ㅠ.ㅠ 예정대로 27일에 떠났다 해도, 계획했던 귀국일이 벌써 내일. 이젠 정말 깨버린 꿈을 놓을 때도 되었다. 작년 내 별렀고, 올해들어 드디어 세부 계획을 잡아 여행사 예약까지 마치고도 못 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에효...

 

완전 자유여행으로 가기엔 경비도 이동도 부담스러워, 패키지 상품에 4, 5일쯤 자유일정을 덧붙이려는 게 우리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러려면 무조전 국적기 상품을 찾아야했는데, 치사하게도 여행사마다 막연히 문의할 땐 300달러만 더 내면 귀국일정 변경 가능하다고 해놓고 막상 예약하려고 들면 항공사 사정따라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마뜩찮아했다. 니들, 그냥 귀찮은 거였지!

 

암튼 프리랜서이면서도 매달 고정 일이 있는 파트너의 스케줄에 따라 가까스로 잡은 날짜가 3월말 4월초였는데, 왜 하필 내가 예약한 상품만 모객이 안되냐규~!!! (20명 넘어야 출발하는데 8명밖에 안모였다) 꽃보다 누나 때문에 터키 여행상품 죄다 대박이라더니 웬걸... ㅠ.ㅠ 조금도 미안한 기색 없이 당당하게 예약금 돌려주겠다는 여행사 담당자의 전화를 받고도 어떻게든 다른 여행사 통합 상품이나 출발 확정된 팀에 꼽사리 껴서, 갈 수 없을까 애걸복걸했으나 결론은 '노'. 단체발권이라 귀국 일정 변경할 수 있는 티켓이 현재는 없으십니다, 고갱님...아우 쒸...

 

4월말 5월초는 황금연휴라 몇달전 부터 비행기 티켓 구하는 것도 어렵대고

5월말 6월초는 집안 행사로 내가 안되고

6월말 7월초는 파트너가 또 안되는데다 한 여름엔 더워서 가기 싫대고...

9월초엔 추석 들었고... 으억.. ㅠ.ㅠ

 

언냐, 미리 예약해서 10월에나 갈까... 라는 파트너 말에 대실망. 과연 나는 터키를 갈 수 있을까? 작업실 보증금 뺀 걸로 유럽 가겠다던 계획도 결국 차일피일 실천 못했는데! 안 돼~~~~ 놀러갈라고 퍼뜩퍼뜩 일하려던 작심은 이미 예약금 돌려받은 순간 때려치우고 공연히 아픈 배만 쓸어잡고 심술 부리다 여행도 못가고 일도 못하고 끙끙 속앓이만 했다. 그러면서 쓰지도 않은 여행 경비만큼 자꾸 이것저것 사들이고 싶은 이 욕구는 뭔가! 으휴... 암튼 내일부턴 다시 깨져버린 터키의 꿈을 모아모아모아서 다시 덕지덕지 엮어봐야겠다. 흑...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