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 2014. 4. 30. 22:52

생각해보면 나는 참 무서운 게 많다. 계단도 무섭고, 높은 데도 무섭고, 새도 무섭고, 사방이 꽉 막힌 좁은 데도 무섭고, 뾰족한 것도 무섭고, 물도 무섭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사고 순간을 상상했고 때때로 가슴이 꽉 막혀 숨이 잘 안쉬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원래도 매사에 이성적인 분석과 판단, 비판보다는 감정적인 반응에 능한 사람이라 열흘도 더 지난 지금껏 여전히 어느 쪽이 더 '발전적'인 반응인지 갈팡질팡하다. 언제까지 일손을 놓고 있을 건가, 일상으로 돌아가서 각자 제 할일을 하며 지켜봐야 하지 않는가 싶다가도, 벌써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망각의 시초는 아닌가 불안하다. 


그래도 이웃 블로거들의 일상 이야기를 읽으며 내 마음도 안정되는 걸 보니, 차츰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도무지 머릿속에서 잘 정리가 되지 않아 문장 하나도 잘 맺기 어려운 것도 내가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러려면 시답잖은 블로그 끄적거리기부터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오늘이 4월의 마지막날이다. 4월은 정말로 잔인한 달이었다고 모두의 마음에 기록되겠지. 4월 3일과 더불어 4월 16일까지. 정말로 이젠 영국의 황무지를 들먹일 필요도 없어졌다.  그러나 곧 이어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5월은 가정의 달. 실은 슬프고 무서운 세상과 별도로 벌써부터 어버이날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모여 밥을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슬프다고 질질 따라 울다가, 배고프다며 홀로 밥 챙겨먹고 있는 느낌. 하지만 세상이 어떻든 인생은 살아가야 하는 것. 어버이날 챙기는 건 그래도 엉뚱한 데서 라면 먹는 장관 짓거리완 다르니까. 그러나 5월 하면, 가정의 달보다 80년 광주가 떠오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5월이란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때를 아스라이 잊은 것도 어쩌면 이번 사고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신채호 선생이 익히 말씀하셨거늘.


잊지 않겠다고, 오래 기억하겠다고 모두 다짐하지만 이 일의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그건 정말로 두고볼 일이겠으나, 최소한 당분간은 매순간의 행복과 곁에 있는 이들의 가치와 특히 때때로 귀찮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더욱 실감하는 나날이겠지 싶다. 사회적인 분노와 개인적인 일상의 행복을 따로 떼어놓기 어려운 시기지만... 일단은 심호흡 크게 한번.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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