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4.09.04 9월 날씨 5
  2. 2014.08.27 산에서...
  3. 2014.08.25 인터넷 없는 세상
  4. 2014.08.23 소망교회? 8
  5. 2014.08.18 못 생기고 매력이 없어서
  6. 2014.08.10 지갑과 사례금 7
  7. 2014.08.08 고양이 ㅠ.ㅠ 9
  8. 2014.07.24 고교생 연인? 7
  9. 2014.07.15 등산이 뭔지 10
  10. 2014.06.30 못해먹겠다 6

9월 날씨

투덜일기 2014. 9. 4. 00:33


8월말부터 확실히 하늘빛이며 공기의 냄새며 바람의 질이 달라진 건 느끼고 있었다. 일교차가 벌어져 아침저녁으론 선들선들. 포근한 이불을 덮지 않으면 차게 식은 발이 잘 따뜻해지질 않아서 좀체 잠들기가 어려울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암튼 그래도 낮엔 꽤나 더워서,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일할 때 민소매 아니면 못버티겠더니, 심지어 오늘은 비온 뒤끝에 종일 춥고 발시리려서 저녁땐 보일러를 돌렸다. 따뜻한 방바닥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ㅠ.ㅠ 


추석이 하도 일러서 요번 추석때도 에어컨 깨나 틀었다 껐다 많은 식구들 취향 맞추느라 번잡하겠구만 싶었더니만 이거 뭐지. 최저기온 17도면 나는 발이 시리다는 걸 오늘 머리에 새겨두기로 했다. 그래도 내일 낮엔 29도까지 올라간다니 또 더워지겠지만, 이렇게 극적으로 변해가는 날씨가 좀 무섭다. 금방 눈 내리고 얼음얼게 생겼어! 흑... 이 여름의 끝을 잡고... 가 아니라 바짓가랑이라도 붙들어 매달고 싶은데 어쩌면 이미 가을인지도 모르겠다. 밤마다 들리던 풀벌레 소리가 정녕 귀뚜라미였던 것이냐. 새삼 세월무상.


3년째 쓰고 있는 아이폰이 점점 느려지고 액정 안에 습기가 찾는지 작은 얼룩이 보이면서 휴대폰을 바꾸긴 바꿔야겠는데 뭘로 바꾸나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이튠즈에 푹 연결만 하면 더 골치아플 일 없게 그냥 아이폰6이 나오면 그거 나 살까 하는 생각이 가장 유력했고, 안드로이드폰 중에선 그래도 G3가 젤 나아보이는데 내 취향엔 좀 너무 크고 손에 잘 잡히지도 않아서, 에라이 뭐하러 미리 고민하나 나중에 9월 되면 생각해보지 그랬다. 그러고는 9월이 아직 아주 멀리 있는 줄...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네그려. 아까 누가 내 휴대폰을 보고 바꿀 때 됐다고 그러길래, 9월에 아이폰6 나오면 구경해보고 마음 결정해볼라고요, 했다가 다음주 출시래요.. 하는 말을 들었다. 으악. 월말로 약속했던 일들과 추석 때문에, 9월이 무서워서 나는 아직도 계속해서 8월에 살고 있었구나야.  얼른 정신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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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투덜일기 2014. 8. 27. 17:11

지난 주말에 경기도내 어느 산엘 갔는데 거기서도 가짜 땡중을 보았다. 전철역이나 사람 많은 데 불전함 놓고 꽝꽝 목탁두들기는 사람들 대부분 승적도 없이 그냥 옷만 어서 사다입은 가짜 땡중이라고 주변에 주의를 시키는데, 그런 사람들이 산중턱에도 있었다! 어휴... 대개 산속에 절이 있으니 사람들이 의심없이 믿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날 산봉우리를 세개나 넘어야 한대서 삐질삐질 땀흘리며 헉헉대고 계단을 오르다 뜬금없는 목탁소리에 엥~ 쳐다보니 역시나 불전함 앞에 놓고 결식아동 돕는 성금으로 쓴다는 표지판과 함께 명함도 한 갑 놓여 있었다. 멀리서도 꽝꽝 요란하게 두들기기만 하는 목탁소리를 들으니 분명 제대로 교육받은 적 없는 땡중임이 분명한데, 결식아동돕기 팻말과 명함에 잠시 의구심을 갖던 찰나, 결정적인 사기꾼 증거가 땡중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하반야바라밀다 수리수리마하수리... 아제아제 바라아제...

크하하핫.. 그럼 그렇지!


불교에 대해서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목은 들어본 적이 있을 법한 <반야심경>과 <천수경>. 이 둘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듯 절에서 드리는 '예불'에 빠지지 않고 외는 불경들인데 반야심경의 첫소절이 바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반야심경의 정식 이름이기도 하고. ^^; 강수연이 주연했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했던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반야심경의 맨 마지막 반복구절. 


그렇다면 천수경의 첫소절은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로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외할머니와 엄마 따라 하도 절에 다녀서, 그리고 고등학교땐 따로 학생회 활동도 좀 했던 덕분에 지금까지도 외고 있는 구절인데... ㅋㅋㅋ 그 땡중은 둘을 아무렇게나 뒤섞어서 읊어댄 거다!  그것도 사람들 귀에 익숙한 구절만 쏙쏙 뽑아서 반야심경 한 줄, 천수경 한 줄, 또 반야심경 한 줄... 아 놔...  그 노력을 가상하다고 해야할지, 이왕 외울 거 좀 더 신경써서 외우지 그랬냐 핀잔을 줘야할지... 암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교회엘 열심히 다니는 친구에게 가짜중이란 증거를 이야기하며 올라가다보니 200미터 쯤 뒤에 똑같은 땡중이 한 명 더 있었다. 한 패거리겠지? 


쯧쯧쯧... 승복 사입으려면 비쌀텐데 투자비 꽤나 많이 들었겠다, 불전함 매고 산꼭대기까지 올라오느라 애썼지만 흥,  망해라, 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첫번째 산봉우리에 거의 당도하니 이번엔 우렁찬 '아이스께끼~' 외침소리가 우릴 반겼다. 산꼭대기까지 갖고 올라가서 음료수며 아이스께끼며 엄청 비싸게 받아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 나는 절대 외면하는 편인데(먹고난 쓰레기 사람들이 사방에 막 버리는 것도 싫다!) 누군가 값을 물어보니 1500원이란다. 엇, 다른 산에선 2천원 받던데! 단 거 먹으면 더 목말라진다고 주장하는 편이었으나, 그날은 슬슬 당떨어질 때도 됐고 또 일행이 사주신다고 해서 다리도 쉴 겸 낼름 받아먹었다. 중간에 막대기 버릴 데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취하며 끝까지 다 먹고 버리고 가야한다고 우겨대면서. ^^


아직도 낮엔 꽤나 뜨거운 날씨에 이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고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께끼를 먹으며, 땡중과 아이스께끼 아저씨 둘 다 서울 근교 산을 생계의 터전으로 삼아 무거운 상자를 짊어지고 등산로를 올랐겠지만 본인의 자부심도 그렇겠고 참 얼마나 가치가 다른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설마 산중턱 아이스께기 장사에도 정해진 영역이나  자릿세 같은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달랑 1500원짜리 멜론 맛 아이스께끼를 먹으며 노동의 소중함이니 부가가치니 소비효율이니 하는 얘기까지 막 덧붙이며 께끼 아저씨한테는 온갖 칭찬이 쏟아졌었다. 물론 좀 전에 우리가 지나쳐온 땡중에게 시주하는 이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었다. 당연히 수입도 엄청 차이가 나지 않을까? 목탁을 두들기며 불경을 외는 것도, 아이스께끼를 목청껏 외치는 것도 똑같은 노동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기꾼의 눈속임과 엄연한 상업 행위를 동등하게 바라볼 순 없다. 물론 국립공원 관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상업행위가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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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세상에서 난 도저히 못살 것 같다.

책상 아래 서랍장 위에 올려둔 모뎀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인터넷 연결이 끊어진 것이 토요일 저녁. 순식간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모뎀에 불 들어오는 부분은 멀쩡해보이는데, 컴퓨터에선 케이블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거나 손상된 것 같다는 메시지만 계속 뜨고... 당장 주말 안으로 보내기로 한 역자교정 원고며, 월요일까지 약속한 자질구레한 일감이 두 가지,  그밖에 이놈의 블로그 권리침해 신고 관리며 파일 첨부해서 메일 보낼 게 수두룩한데, 하필 일요일까지 끼었으니 ㅠ.ㅠ

 

급한대로 어젠 도서관 디지털자료실에 가서 메일 하나를 보내 급한 불을 껐고, 월요일 아침 일찍 고장신고를 하면 오후까진 수리가 되어 일처리에 무리가 없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러.나. 어젯밤에 첨부파일 달린 긴급 메일이 또 들어왔을 뿐이고! 아침에 또 후닥닥 도서관에 가서 첨부파일을 받아가지고 집에 돌아와 초인적인 속도를 발휘해 작업 시작. 다행히 인터넷 AS 방문은 3시경으로 잡혔고, 오히려 약속시간보다 일찍 왕림해주신 기사분 덕분에 오래 된 모뎀도 바꾸고 이번 사달의 핵심이었던 케이블 접촉부분도 새로 고쳐 끼었다. 


그간 데이터 유무선 공유기를 사서 다는 게 그리도 귀찮아서 이웃집의 와이파이를 대충 빌려쓰고 있었는데, 아랫집 2호가 이사간 뒤로 와이파이가 사라져 나도 모르게 어마무시한 데이터통신 추가요금이 나와버린 (모든 앱이 자동 업데이트 되면서 수시로 3G로 데이터 사용을 했는지 무려 10만원이 나왔다는;;; ㅠ.ㅠ) 걸 뒤늦게 후회하며 공유기도 달았다. 집에 있으면서 대체 왜 스마트폰을 끼도 도는지 알수는 없지만 암튼 요번에 컴퓨터 인터넷 불통 때 요긴하게 쓴 걸 고마워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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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

투덜일기 2014. 8. 23. 03:03


티스토리 다음 측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메일을 받았다. 내가 올린 글이 권리침해 신고로 삭제조치되었다는 것이 메일의 요지. 전에도 한번 겪어보았지만, 누군가 권리침해 신고를 하면 티스토리/다음 측은 무조건 해당글을 삭제해버린다. 그러고는 30일 이내에 복원신청하라고만 통보. 아 열받는다.

권리침해신고자는 소망교회를 대리하는 단체라는데, 대체 그 단체 사람들은 내가 올린 블로그의 글을 제대로 읽기나 한 것일까?? 어떤 글인지 다시 읽어보려해도, 삭제조치 되었으니 확인할 길도 없다. 기가 막혀서...

주변에 독실한 기독교인들도 많고 심지어 목회자 친구도 있기 때문에, 단언컨대 내가 함부로 저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썼을리가 없다. 그래서 아... 더 열받고 화난다. 

 

일단 복원신청을 해놓기는 했는데, 아 진짜 함부로 '개독교'라 일반화해 욕하고 싶지 않지만 자기네 교회 이름 들어갔다고(실제로 글에 언급이 됐는지 아닌지 기억도 안남) 명예훼손 운운 협박하며 게시물 삭제시키는 행태는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 티스토리 다음 측에선 또 한달간 뜸들이다 슬쩍 메일 보내 복원조치되었습니다 어쩌구 하며 빠지겠지. 온라인 공간에서 함부로 누군가를 욕하고 있지도 않는 사실로 명예를 훼손하거나 ~카더라는 유비통신으로 사람들 생각을 어지럽히는 건 물론 지양되어야하지만, 그누구보다 찌라시 언론과 포털이 앞장서서 못미덥고 선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내고 유통하고 있으면서, 힘없는 개인한테만 이딴 식으로 말하고 글쓰는 자유를 막는 짓거리는 정말 못마땅하다. 

소망교회? 단체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 뭐하는 데서 대체 뭘 걸고 넘어졌는지 어디 두고보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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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할아버지의 방한 뉴스를 볼 때였나.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통령이 나란히 한 화면에 잡힌 걸 보고 열두살 조카가 한 마디 했다. 

둘 다 결혼 안 한 사람끼리 만났네. 

어 그렇네, 맞장구를 쳤더니 대뜸 묻는다. 

대통령 되면 결혼 못하는 거지? 

엥? 그런 게 어딨어. 지금이라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어. 근데 하기 싫어서 안했겠지. 할 사람이 없었거나. 

진짜? 아.. 못 생기고 매력이 없어서 못했겠구나. 

(맞다고 대꾸하려다 보니 문득 나까지 도매급으로 똑같은 취급을 당하게 생겼고, 고모는 달라! 라고 말하기엔 녀석이 보기에도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 내 몰골이 늘... 엉망이어서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어.... 그런가.... 


그나저나 녀석, 예리하긴!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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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과 사례금

투덜일기 2014. 8. 10. 15:04

지난번 등산을 갔을 때 작은 배낭에 먹을 것과 얼음물을 하도 바리바리 쌌더니 평소보다 너무 무거워서 꽤나 애를 먹었다. 등산애호가 후배 말로는 당일 등산이라도 너무 작은 맹꽁이 배낭 말고 무게 분산도 되고 혹시나 넘어졌을 때 몸도 보호해주는 적당한 크기로 사는 게 좋다고 했다. 그간  계속 검색하고 골라보고 고민하고 실제로 매장에 가서 구경도 한 배낭을 결국 사들였고, 그 김에 평소 들고다니는 가죽지갑 대신 휴대폰이랑 신용카드 한 두장 넣을 수 있는 작은 천지갑도 함께 샀다. 배낭 끈에 찍찍이로 매달 수 있는 형태의 손바닥만한 검정색 지갑이었다.

 

그러고는 어제 등산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글쎄 신분당선을 갈아타는 도중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ㅠ.ㅠ 서울 지하철 중엔 처음에 한번, 그리고 나중에 내릴 때 한번만 교통카드를 찍으면 되는 노선이 있는가 하면, 신분당선 같이 민자 도입 전철은 중간 중간 갈아타면서도 환승 개찰구에서 다시 계속 카드를 찍어야 한다. 정자역에서 갈아타고도 금방 또 내려서 카드를 찍어야 하므로 내내 배낭에 매달고 다니던 지갑을 손에 들었던 게 문제였다. 전철을 타고 널널하게 빈 의자에 앉아 배낭을 껴안고 뻐근한 다리를 쉬려는 찰나 허걱, 지갑이 없다! 맙소사... 분명 손가락에 끼고 있었는데 어디갔지... ㅠ.ㅠ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교통카드도 거기 들었고, 현금도 거기 넣어두었는데! 또 휴대폰은 어쩌나! 최악의 경우 집에 갈 차비 한 푼 없는 상태였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 달랑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ㅠ.ㅠ) 후다닥 다음 역에서 내려 반대방향 열차를 타고 다시 정자역으로 갔다. 에스컬레이터 타는 시간도 아까워 다다다다 계단을 뛰어 오르고 내려 내가 앉았던 전철역 벤치를 찾아보았지만... 지갑은 없었다. 혹시 검정색 지갑 못 봤냐고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도리도리... 남은 가능성은 역무실로 가보는 것 뿐이었다.

 

개찰구 앞에 있는 역무원은 혹시 지갑 주워온 사람 있나 물어봤더니 모르겠다며 역무실로 가보라고만. 개찰구 호출버튼을 누르고 지갑을 잃어버려서 혹시 신고 들어온 거 있나 물어보려 한다고 했더니, 혹시 아이폰 들어 있는 검정색 지갑이냐고 묻는다. 네, 맞아요! 철커덕 잠겼던 비상문이 열리고 역무실로 달려가니, 내 지갑이 맞았다. ㅠ.ㅠ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 보여달라는데, 다 빼놓고 왔으니 원.. 그래도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번호 확인을 하고 잠긴 패턴 풀어 다시 통화기록까지 확인한 뒤 지갑을 돌려주었다. 어휴... 안에 신용카드도 무사히 들어있다고. 헌데 현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

 

5만원짜리 1장, 만원짜리 1장, 천원짜리 2장 들어있었는데... ㅋㅋㅋ (왜 하필 별로 쓸 데도 없으면서 현금은 또 그리 많이 가져갔을까!) 하지만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걸 안 순간부터 내가 다짐한 것이 있었으니--어쩐지 지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뜬금없이 50퍼센트쯤은 들었다. 무슨 근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혹시 누군가 지갑을 주워 맡겨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 고마운 사람에게 지갑에 든 현금을 몽땅 사례금으로 주어야지 하는 결심이었다. 그랬었기에 지갑에 들었던 현금이 홀라당 사라졌어도, 그저 다행이다 고맙다 역무원들에게 연신 감사인사를 했다. 역무원들은 원래부터 현금은 없었다며 찝찝하다고 걱정했지만, 원래도 사례금으로 다 줄 생각이었다고, 그분이 미리 챙겨간 셈 치면 된다고 얘기하고 역무실을 나왔다. 지갑 주워준 사람도, 지갑을 열어보고 현금을 발견한 순간 이 정도 사례금은 받을 만 하다고 자평하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

 

지갑 못 찾았으면 당장 집에 갈 일도 깜깜한 상황에서(그럴 땐 역무실에서 차비도 꿔주고 그러나?? 문득 궁금 ㅋㅋ) 신용카드며 휴대폰까지 무사히 되찾았으니 진짜로 얼마나 다행인가. 돈 잃어버리고도 기분 좋은 경험은 또 처음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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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ㅠ.ㅠ

투덜일기 2014. 8. 8. 01:05

어제 장을 보러가려고 주차장에 내려서다 흠칫 놀랐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데 계단 아래 새끼고양이 한마리가 웅크리고 있다가 내 발소리에 놀라 야옹 하며 차 밑으로 숨었다. 비도 오는데 너 왜 거기 있어!? 하마터면 밟을 뻔 했잖아! 기겁해 나도 모르게 소리치며 얼른 차에 올랐다. 누군가 주차장 계단 옆에 우유 그릇과 통조림 캔도 놓아준 걸 보니, 새끼고양이에게 신경쓰는 이웃 주민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왜 비도 오는데 한데서.... 먹을 것 때문인가? 고양이 문외한이자 동물혐오주의자인 나는 도대체 그 고양이가 얼마나 어린지 가늠도 되지 않았고 그저 무서울 뿐이었다. 


암튼 조심조심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룸미러로 돌아보니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휴 다행... 장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올 땐 갑자기 억수로 비가 쏟아졌고 주차장으로 후진하며 계단 밑에 고양이가 없는 게 다행이다 싶었는데... ㅠ.ㅠ 앗... 새끼 고양이는 딴데로 간 게 아니라 계단 옆 모퉁이에 숨어 있었다. 엄마가 낙엽을 모아 퇴비로 쓰려고 담아놓은 비닐봉지와 계단 구석 틈새에... 으악.. 어떡해 어떡해... 집안에 들어가 엄마에게 얘기하니 아침부터 계속 거기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더란다. 다른 새끼 고양이도 두세마리 더 있다고...


다시 저녁때 비가 그치고 한밤중. 10시쯤 됐나, 조카를 집에 데려다주러 나가며 보니 아.. ㅠ.ㅠ 이젠 갔겠지 싶었던 새끼고양이는  그대로 계단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 있었고, 자동차 엔진의 온기로 몸을 말리려했는지 똑같이 몸집 작은 형제 고양이들과 어미 고양이까지 차밑에 우글우글 모여있다 쏜살같이 달아났다. 원래부터 있던 흰바탕에 검정 무늬 새끼 고양이만 계속 구석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신고를 해야하는 건가(어디에?), 제 식구들이 돌보는 중인가(아프면 어미가 물고 가지 않을까..), 통 감을 잡을 수도 없고 불길한 느낌에 겁이 날 뿐이었다. 심각한 병이 들었나... 에이, 고양이 밥준 사람이 알아서 신경쓰겠지... 애써 모른 척 외면했다. 내가 뭘 어쩌겠어!


오늘 아침 뚜벅이로 외출하며 슬쩍 주차장을 들여다보니, 새끼 고양이는 그대로 그 자리... 아 난 몰라... 형제 고양이들도 어미도 보이지 않았다. 먹이 사냥을 간 걸까. 암튼 밖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새끼 고양이 아직도 거기 있으니 신경 좀 쓰시라고 얘기하고는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ㅠ.ㅠ 주차장 앞 골목에 어미 고양이인 듯한 큰 고양이가 떡 버티고 앉아 나를 노려보고, 형제 고양이들인듯한 조그만 녀석들은 차 밑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녀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내가 내려다본 각도에선 가지런히 모은 하얗고 검은 발만 보였다. 죽었나보다는 직감. 징징거리며 집으로 뛰어올라와 엄마에게 제발 나가보시라고 안달복달을 했다. 오후에 엄마가 들여다봤을 땐 다른 고양이들이 야옹야옹 달려들 것처럼 울어서 접근 못하고 그냥 두셨다는데... 


내 예감이 맞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어미 길냥이와 새끼 고양이들은 세상 떠난 새끼와 형제의 곁을 계속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는 죽은 고양이 좋은 데 가라고 나무아미타불을 외며 치우셨다고 한참 뒤에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왔다. 께름칙하고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애묘인도 아니고 고양이 관련지식도 없다고 자꾸 발뺌을 하고는 있는데 문득문득 죽은 고양이의 가지런히 모은 발이 떠오른다. 반성도 아니고 변명도 아니고 그저 길냥이 애묘인들에게 지탄받을 무관심과 비정함을 토로하는 이 글을 쓰는 건 가슴이 답답해 일단 어디라도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아서다. 뭔가 더 현명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앞으로 또 똑같은 일이 닥치더라도 뭔가 내가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할 것 같진 않다. 내게 길고양이는 아무리 작아도 그냥 무서운 존재인 걸...  불심 깊은 엄마의 기도 덕분에 정말로 좋은 데 갔기를(정말로 그런 데가 있다면;;) 덩달아 바라는 걸로는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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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연인?

투덜일기 2014. 7. 24. 17:50

번역하다보면 오래 고민해 봐도 뾰족하게 일대일로 이거다 싶게 대응하는 답이 안나오는 말들이 더러 있다. 'highschool sweetheart'도 그런 말이다. 곧이 곧대로 '고교생 연인'이라고 하면 얼마나 웃긴가! 그냥 아무개랑 아무개는 고등학교 때 사귀었다.. 정도로 풀어쓰는 차선책을 택하는 게 낫다. 요새도 가끔 고등학교 때 사귄 첫사랑이랑 결혼하는 이들이 더러 있나본데 (대표적인 주자로 차태현이 있다;; ㅋ) 옛날엔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이 케이스의 대표주자는 단연코 울 부모님이다;; +_+)했다고 들었다. 결혼시기가 지금보다 빨랐으니 아무래도 더욱 그랬겠지.


하여간 외국에선 최근까지도 '고교생 연인'끼리 결혼하는 비율이 한국보다는 더 높고(그래봤자 걔들도 고딩때 사귄 애인과는 절반 이상 졸업 후나 대학 들어가면서 헤어진다고;;)  대체로 어린 마음에 확 결혼했다가는 몇년 못 살고 헤어지는 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만 해도 일반 이혼율이 40퍼센트를 넘는다는 것 같은데, 어린 부부들이야 오죽할까!


요즘처럼 너도나도 장수하는 100세 시대와 발을 맞추려면, 평균 수명 40세 안팎일 때 만들어진 결혼제도와 일부일처제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최소한 배우자를 3번은 바꿔가며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나! ㅋㅋㅋ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말로 자신과 잘 맞는 파트너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그냥 웃어넘기기엔 나름의 타당성도 있다. 살아봐야 아는 점이(어떤 건 살아봐도 잘 모르지 않나?) 어디 한두가지여야 말이지... 그렇다고 덜컥덜컥 쉽사리 결혼하고 또 헤어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개인의 성향차이고 선택의 차이겠거니 할 따름. 


얼마 전 번역하다 책에 나온 '고교생 연인' 이야기의 추이에 유달리 신경을 쓴 이유는 아무래도 나의 조카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도 그렇고 그간 남자친구 있느냐고 그렇게 묻고 의심해도 절대 없다고 딱 잡아떼시던 우리의 ㅈㅁ공주. (중딩땐 진짜로 없었던 건지도...) 고등학교 올라가자마자 남친과 동네에서 데이트 하다가 온 가족에게 현행범으로 딱 걸렸다. 하필 울 엄마랑 나도 간 날이라 밖에서 저녁 먹고 나서 평소와 다른 뒷길로 움직이던 중이었는데, 그야말로 '고교생 연인'의 실루엣이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딱 걸려들었다. ㅎㅎㅎㅎㅎ 


고2때 만난 남자랑 8년 연애 끝에 결혼해 40여년을 같이 살고도 다시 태어나도 그 남편과 살겠다는 순애보를 고집하는 할머니는 당장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뭐하는 집 아들인지 알아보라'고 성화를 부리시고, 공주 아빠는 얼굴이 굳었다. (남자애가 뭐 저렇게 못 생기고 키도 작고 비실비실하냐!) ㅋㅋㅋㅋ 물론 당시 겉으로는 다들 웃는 얼굴로 창문을 내리고는 반갑다, 니가 ㅎㅈ이구나, 나중에 또 보자, 집으로 놀러와라... 다정하게 대해주었음을 밝혀둔다. (조카의 카톡 프로필 글귀에서 우린 ㄱㅎㅈ이란 애가 남친일 수도 있다고 이미 추측하고 있었다!)


아무튼 '쿨한 고모 코스프레'에 충실하려는 나는 울 공주 결혼하려면 그 전까지 남친 열명도 더 갈아치울 테니 염려 말라고, 이제 겨우 고1인데 뭔 걱정이냐고 코웃음을 쳤다. 본인이 예쁘니깐 남친 외모도 안보고 사귀네, 엄청 훌륭하네 뭐, 남자애가 착한가보다... 너스레를 떨면서... (근데 내심 나도 그 남친 ㅎㅈ이가 그리 맘에 들진 않았다. ㅠ.ㅠ 이놈의 외모지상주의자!) 


이후로도 조카에게 남친 얘기 물어보면 절대로 대답도 안해주고 버럭 화만 내기 때문에 조카의 카톡 프로필 글귀나 보면서 둘 사이를 짐작할 뿐이었다. 과연 얼마나 오래갈까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가끔 보란듯이 엄청난 남친 욕설을 적어놓는다든지 수상한 글귀가 떠오르면 둘이 헤어졌나 싶기도 했는데, 또 금세 잘 만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젠 막 남친이 집으로 놀러도 오는 사이라나... ㅠ.ㅠ 


그러더니 급기야 좀 있으면 사귄지 200일이라고 선물(커플 시계!)까지 준비중이시란다. 그것도 영원한 봉 고모의 스폰서를 받아서.. 끙... 그냥은 스폰서 못해주겠고 와서 할머니 어깨 주무르기 알바라도 하면 시급으로 비용을 까주겠다고 했더니만 진짜로 방학 첫날인 오늘 건너왔다. 주말에 제발 좀 놀러오라고 할머니랑 고모가 애걸복걸 할 때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쳇... 아 놀라운 풋사랑의 힘이여~! 


업고 안아 재우며 키운 첫조카가 벌써 17살이 되어 연애질을 한다는데 허거걱 그간의 세월이 놀랍기도하려니와 고딩 연인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데이트를 하는지 호기심이 발동하며 자꾸 실실 웃음이 난다. 중간고사 기간 땐 둘이 울 동네 구립 도서관에도 같이 간 모양인데 (아우 귀엽다!) 자리가 없어서 헤매다 둘이 밥 얻어먹으러 우리집에도 왔었다. 이쯤 되면 건전하고 착한 연인이라고 인정. 다만 조카가 자꾸 다이어트에 열 올리지 않도록 남친 녀석이 좀 살이 쪄주면 좋겠다. ㅎ 


200일 기념 커플아이템 마련을 위해 (공주께선 그간 남친이 사준 커플링을 두번이나 잃어버리셨다고 +_+) 일종의 알바를 하러 온 건데, 나 원참 할머니 어깨는 10분씩 겨우 두번이나 주물렀나.... 히히호호 남친이랑 통화를 하지 않으면 카톡하느라 정신이 없더니 30분에 걸쳐 곱게 '풀메이크업'을 하고는 데이트나가신단다. 계속되는 조카의 봉노릇... 기분이 그닥 나쁘지는 않은데, 이거 괜찮은 건가 좀 염려는 된다. 조카 남친의 봉노릇까지 하는 고모라니 쯧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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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 뭔지

투덜일기 2014. 7. 15. 15:44

어차피 내려올 산을 헥헥거리며 올라가는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산이 좋으면 밑에서 올려다 봐도 되잖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어려서 억지로 산엘 쫓아다녀서였을까? 북한산과 멀지 않은 동네에 오래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는데, 암튼 아버지는 꽤 젊어서부터 종종 등산을 다녔고 40대땐 부부가 아예 이런저런 산악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면서 가끔씩 억지로 우리 삼남매를 등산에 끌고 갔다. 봄엔 진달래 능선에 핀 예쁜 꽃을 봐야한다면서, 가을엔 눈부신 단풍구경을 하자면서, 겨울엔 나무에 얼어붙은 눈꽃이 얼마나 예쁜지 아느냐면서... 

등산화 없다는 핑계를 대면 새로 아이젠까지 다 사주면서까지 어떻게든 꼬드겨 애들을 산엘 데려간 걸 보면 그 정성이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툴툴거리면서도 결국 따라나선 우리들이 착하다고 해야할지. 그 옛날엔 모든 산에서 취사가 가능할 때였으니, 코펠에 버너에 쌀과 반찬에 짐을 한보따리 홀로 짊어지고 밥짓는 노동까지 다 도맡아하면서도 아버진 뭐가 그렇게 좋으셨는지 지금도 좀 의아하다. 산에서 먹던 코펠밥과 삼겹살과 김치찌개가 엄청 맛있긴 했지만, 그 맛에 또 따라나서겠다고 할 만큼 대단하진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의 '등산 차출'에 동원되었던 건 아마 나 대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던 듯. 막내나 큰 동생은 나보다 몇 번 더 끌려(?) 갔을지도 모르겠다. 

등산이라면 절레절레 인상부터 쓰던 내가 수학여행 때 한라산엘 올라갔던 건 순전히 지도교수로 따라간 할머니 교수님 덕분이었다. 요즘이야 뒷동산엘 가도 등산화에 아웃도어에 배낭에 히말라야 등반도 불사할 차림으로 나서는 게 유행이지만, 그때 우린 대체로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고 (심지어 정장바지에 구두를 신은 우리과의 퀸카 '패셔니스타'도 있었다!) 배낭은커녕 여관에서 아침에 싸준 은박 도시락과 물 한병을 각자 비닐봉지에 덜렁덜렁 들고 나선 터였다. 정상까지 가겠다는 생각도 당연히 없었고, 대충 올라가다가 점심 도시락 까먹고 내려와야지 싶었다. 그런데 정년퇴임을 앞둔 할머니 교수가 어찌나 깐족거리시는지... 늙은 나도 올라가는데 젊은 니들이 뭐가 힘드니, 여기까지 왔는데 백록담은 보고 가야지...

결국 얼떨결에 나까지도 한라산 정상을 올랐고, 지금까지도 그 사건은 불가사의한 추억담이다. 스물한살의 팔팔한 패기 와 오기 탓이었겠지만, 나이키 운동화에 무겁고 꽉 끼는 청바지까지 입고 대체 어떻게 한라산을?! +_+ 하여간 내 인생의 등산은 그날 한라산 해발 1950미터를 정점으로 영원히 끝이라라고 생각했다. 설악산은 흔들바위 이상 올라가본 적이 없고(케이블카 타고 권금성엔 올라갔다 ㅋ) 각종 단풍놀이로 간 내장산, 속리산, 주왕산 등등도 중턱이나 가봤을까. 직장인 시절 야유회를 산으로 가면 중간에 도망쳐 집으로 가거나 산 아래 막거리집에서 기다리는 쪽이었다. 

근데 그러던 내가 변덕도 유분수지, 최근 등산을 몇번 따라갔다.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낭떠러지가 무서워서 눈앞이 노래지는 순간을 겪으며 내 미쳤지! 다시는 안 따라올란다! 결심해놓고는 다음번에 또 따라가기를 벌써 서너번 했나? ㅋㅋ  운동삼아 동네 앞산 뒷산을 오르겠다고 장담할 때부터 스스로 좀 이상하긴 했는데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뭔가에 홀린 듯 등산화, 등산바지에 이어 스틱까지 장만하고는 요즘 계속 등산용품을 기웃거리고 있다. 어쩌면 마라톤화,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 요가에 이어 또 그냥 흐지부지 운동타령 푸닥거리로 반짝하다 말 짓일 수도 있겠다. 스스로도 못 미더워서 아직 배낭도 손바닥만한 엄마 걸 빌려갖고 다니고는 있는데 과연... 이건 그냥 물욕, 쇼핑욕일까 아니면 새로운 취미에 대한 초보스러운 열망일까. ㅎㅎㅎ

알록달록 색깔과 봉제선이 요란한 아웃도어는 또 내가 무진장 싫어하는 패션이어서 다행히 기능성 등산복엔 별로 눈길이 안가는데 배낭은 아무래도 꼭 하나 장만해야할 것 같고 ㅋㅋ 등산화도 아무케나 제일 가벼운 걸로 광고모델 봐서 덜컥 산 거 말고 좀 안미끄러운 놈으로 제대로 하나 또 사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계속 등산용품 사이트를 들락날락... 아무래도 등산화와 배낭은 고가품이라 확 저지르기 전에 몇달째 망설이고만 있는 우유부단함이 이번엔 나름 미덕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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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먹겠다

투덜일기 2014. 6. 30. 22:00

이걸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하는지 모르겠다. 일종의 파트타임 애보기라고 해야하나? 암튼 전업주부로 들어앉았던 큰올케가 또 갑자기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당분간 12살짜리 조카를 보필하는 임무가 내게 떨어졌다. 그래봤자, 화목토에 다니는 수학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고, 매일 저녁 해먹이고, 밤에 집에다 데려다주는 일이 전부다. 


열두살 조카는 이제 집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우리집에 오는 법을 확실히 익혔기에, 월수금엔 방과후 집으로 선생님이 찾아오는 피아노와 영어 과외를 받은 뒤 숙제거리를 싸가지고 저녁을 먹으러 11정거장 거리인 우리집으로 버스타고 찾아온다. 다행히 수학학원 가는 날엔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걔네 엄마가 학교부터 학원까지 픽업을 해주거나 둘이 택시를 타고(!) 연희동으로 간단다. 애들끼리만 택시 타는 게 나는 너무도 못마땅한데, 조카의 친구 엄마 말로는 자기네 애는 하도 택시를 많이 타고 다녀서 염려 없다고 장담했고 올케도 별 거부감이 없는 눈치다. 


처음 며칠은 갑자기 달라진 삶에 심술이 난 조카가 집으로 고모가 자길 데리러 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고집을 부렸었고, 그렇지 않으면 택시를 탈 테니 큰길가에 내려와 있으라고 해서 몇번인가 데리러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필 고모는 바빠서 죽겠는 기간인데... 암튼 그래도 조카는 금세 리락쿠마 인형에 충전된 티머니로 버스 타는 묘미를 익혔고, 희희낙락 고모네 와서 마음껏 할머니 방 TV를 볼 수도 있고, 하녀처럼 살뜰하게 저를 챙기는 고모를 이리저리 부리는 재미(고모 놀자! 고모, 아이스 메밀차 먹을래! 고모, 방울토마토 먹을래! 고모, 바나나 먹고싶어!--집에 없어서 결국 사다줬다--고모, 얼음만 컵에 잔뜩 담아줘! 고모, 이제 우리 집에 가자! 고모, 우리 집에 같이 들어갔다가 가자!... +_+)에 길이 들었다. 


게다가 지난주와 오늘까지 기말고사기간. 괜히 왔다갔다 붕 뜬 마음에 시험공부라도 잘 못하면 어쩌나 괜히 내가 눈치가 보여서 정말로 왕자님 모시듯 떠받드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라 나도 아직 녀석을 애기취급하는데, 엄마 손길이 적어져 애가 맘상하진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다행히 지난주 영어시험도 그렇고 오늘 기말고사도 잘 본 것 같단다. 물론 성적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ㅋㅋ 어쩔 수 없이 나도 성적지상주의자로다. 그치만 고모가 보필해서 성적 떨어졌단 말은 듣기 싫은데;; ㅠ.ㅠ) 


그러다 2주째였던 지난주 중간쯤엔 괜히 스트레스 폭발, 조카한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영어과외를 째기로 애 엄마와 통화를 하고 애를 집에 데려왔는데, 시험기간 직전이라 굳이 과외선생이 우리집으로 찾아와 수업을 하겠다고 했던 날이었다. 6시에 온다고 해도 7시에 수업 끝나면 저녁이 늦어지는 판국에, 설상가상 길이 막혀 과외선생은 6시 반이 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난 원래 끼니 시간을 넘기면 분노 조절이 안된다. ㅠ.ㅠ 6시 반엔 저녁밥을 먹어줘야;;) 괜한 신경질에 조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왜 자기한테 화를 내느냐고 물었다. 아... 화를 낼 대상은 그냥 어쩔 수 없는 내 상황이었거늘. 금방 반성하고 사과할 수밖에.


매일 조카 저녁 챙겨먹이는 건 뭐 원래도 하는 일에 밥숟갈만 하나 더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해서 늘 영양 만점이라고 생각하는(아닌 날도 많은데 ㅠ.ㅠ) 고모의 밥상을 조카가 엄청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제 엄마에게 고모는 된장찌개도 대충 끓이는 데 엄청 맛있다고 했단다 으휴...) 편식 없이 아무거나 해주는 대로 잘 먹긴 하지만, 반찬에 아무래도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고, 당분간은 저녁약속도 잡을 수가 없다! (엄마 혼자 한끼쯤 홀로 챙겨드시는 건 문제 없어도 손주 끼니 보필은 좀 무리인 게 사실.)


매일매일 조카에게 현재 어딘지, 집에 왔는지 학원에 갔는지, 예정대로 그 시간에 데리러가면 되는지, 혹은 버스 타고 오는 중인지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아야 하고, 학원앞에 데리러 가서도 주차할 데 없으면 또 부리나케 전화통화를 해야하는 모든 상황이 나에겐 스트레스. 도대체 사교육에 힘쓰는 이땅의 엄마들은 어떻게 애들을 키울까! 난 겨우 2주만에 못해먹겠다 무자식이상팔자구나, 궁시렁궁시렁 온갖 투정을 해대고 있는데 말이다. 


지난 금요일엔가 나온 김에 저녁 먹고 들어가자는 말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들어가서 조카 데려다가 밥해먹여야 한다고 하자, 애들 다 키워놓은 지인들이 킥킥 웃었다. 운전해서 애들 학원 뺑뺑이 돌리는 거, 그거 마흔살 이전에나 할 수 있는 중노동이야! 라면서. 


물론 한정없이 내가 계속해야 하는 일은 아니고, 올케가 직원을 뽑아 일이 자리가 잡히면 곧 놓여날 수  있는 상황이라 그나마 다행. 아마 나더러 계속 하라고 하면 어디로 도망치고 싶을 것 같다. 부모 노릇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다고 익히 생각은 해왔지만, 역시 난 엄마가 될 수 없는 잠깐잠깐 조카들을 예뻐하는 고모일 뿐이고, 온전한 책임은 버거워하는 이기적인 사람임을 깨닫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주들 오면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다고 하는 말을 새삼 이렇게 뼈저리게 실감할 줄이야... 

매일 같이 지네 집과 고모 집을 전전해야 하는 조카녀석도 안쓰럽고, 집에 데려다줄 때마다 가끔씩 얼굴을 보는 고딩 큰조카도 어쩐지 안돼 보이고, 목이 다 쉬어 계속 피곤한 몸으로 오밤중까지 돈벌이에 힘쓰는 올케도 안쓰럽고, 갑작스런 애보기 신세에 스트레스 받는 나도 안쓰럽고... 문득 이 세상의 모든 맞벌이 부부나 싱글맘, 싱글대디들은 애들을 어떻게 키우나 의문이 든다. 이러면서 나라에선 출산율 떨어진다고 이상한 정책이나 세워대고 말이지...  암튼 어렵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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