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자 금단추

투덜일기 2014. 5. 21. 00:38

지다님이 마고자가 어떻게 생긴 옷인지 몰라 검색해봤다는 댓글을 다셨는데, 그걸 보니 깃과 고름 없이 큼지막한 단추로 슬쩍 여미게 되어 있는 남자 마고자와 관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아 진짜 일하기 싫은 게 맞다. 마감이랍시고 컴퓨터 앞에 꼬박 앉아는 있으되 틈만 나면 딴짓할 궁리를 하게 되누만. 하여간에 후다닥 적어보련다. 기가 막힌 마고자 금단추 얘기를.



<이것이 바로 마고자. 사진 출처는 사진에 찍힌 저 사이트임. 문제 되면 삭제하겠음>


친구 하나가 스물 서너 살 쯤, 엄청 일찍 결혼을 했다. 그래도 제일 먼저는 아니었던 것 같고, 아마 두번째쯤? 처음 결혼한 친구는 소개받고 거의 석달 만엔가 초스피드로 후다닥 채여가다시피 결혼을 하는 바람에 혼례의 절차고 뭐고 얘기 들을 기회가 전혀 없이 어느 틈에 결혼식장 구경을 하게 됐었다. 그런데 대학시절 내내 연애를 거쳤던 이 P양의 경우, 상견례며 약혼식 준비(결혼식 비용은 반반 나눠 내지만 약혼식 비용은 전액 신부 부담이라던데 요즘도 진짜 그런가? 아 왜?)부터 시시콜콜 수월하게 넘어가는 게 단 하나도 없었고, P양은 종종 우리에게 하소연을 하다 눈물을 흘렸다. 친구가 사귀던 '오빠'가 '의대생'이었던 것이 사단이었다! 의사 사위 보려면 열쇠 3개(아파트, 자동차, 또 뭐지? 설마 병원 건물?)를 신부에게 딸려보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던 시절이었고, P양의 예비 시댁은 아주 기세등등 했다. 


P양은 정말로 거의 친정 기둥뿌리를 뽑다시피 혼수와 예단을 장만했는데, 결혼식을 달랑 한달쯤 앞두고는 급기야 결혼을 하네 마네 파란이 일었다. 예비 시어머니가 적어보낸 예단 목록대로 얼추 다 맞춰보내고는 친정 엄마가 한숨을 쉬려는 찰나, 신랑 마고자에 달린 단추가 순금이 아니라 호박이라고 돌려보냈다는 것! -_-;; 


당시 P양의 마고자 금단추 사건은 꽤나 유명하고도 워낙 인상적이어서, 수십년이 지난 요즘도 가끔 친구들 사이에  오갈 정도다. 견디다 못한 친구의 친정 엄마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면서, 그런 시댁을 참아가며 결혼을 꼭 해야겠느냐고 그만 엎어버리자고 하셨다나. 놀라운 건 나 같으면 진짜로 확 다 엎어버렸거나, 남자친구를 설득하거나 시댁과 싸워서 호박단추를 관철시켰거나 했을 것 같은데 P양은 징징 울면서 엄마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이제껏 들인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순순히 금단추로 바꿔주지 싶은 생각에 섭섭하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거다. 우웩~!!


결론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P양의 의대생 남친은 결혼식 폐백 때 황금칠보 단추가 떡하니 달린 마고자를 입고야 말았다. 

폐백용 한복과 피로연 때 입을 정장을 맡아가지고 있던 우리들은 폐백실에 따라가서 얼른 보자기를 풀며 그 문제의 황금단추를 구경했다. 도대체 마고자 금단추는 어떻게 생겨먹었나 궁금해서 말이지... ^^; 매듭으로 매달리는 큼지막한 눈물 모양의 마고자 단추를 죄다 황금으로 만들려면 최소한 수십돈 쯤 들지 않을까 우리끼리 궁시렁거렸었는데, 알고보니 안을 텅 비게 해서 그렇게 많은 양의 금이 들어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10돈이라던가 5돈이라던가.... 꽤 고가이긴 했다. 



<역시나 퍼온 사진. 그날 본 금단추는 이것보다 훨씬 크고 화려했던 기억이;;;>


어쨌거나 이십대 초반에 내가 구경한 마고자 금단추 사건은 결혼제도의 폐해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면이었고, 집안 나름이겠지만 결혼은 진짜로 할 게 못된다는 심증을 굳혔다. 이후 결혼하는 친구들이 나타날 때마다 묻곤 했다. 너도 마고자 금단추 해가냐? ㅋㅋ 이후 P양에게도 걸핏하면 놀려댔다. 친정 기둥뿌리 다 뽑아서 신랑 마고자 금단추까지 해갔는데 잘 살아야지! 


최근 사촌동생들 결혼 때 보니, 마고자 금단추 같은 말도 안되는 일은 사라진 듯했다. 합리적인 아이들은 어차피 잠깐 촬영할 때만 필요한 거라며 아예 한복도 안 맞추고 친구에게 빌려 입기까지! 예쁜 것들...  

근데 '마고자 금단추'로 검색해서 뭔가 나오는 걸 보면 요즘도 혼수로 해가는 사람들이 있는 건가 어쩐 건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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