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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12.17 이번엔 삐지다, 딴지.. 3
  3. 2014.12.15 그간... 1
  4. 2014.11.07 4
  5. 2014.11.04 그냥 3
  6. 2014.10.19 개많아? 13
  7. 2014.09.28 산에서 싫은 사람 10
  8. 2014.09.23 결국 문제의 글은 복원됐다 8
  9. 2014.09.17 생각보다 8
  10. 2014.09.11 편의점 인생 2

새 부엌

투덜일기 2014. 12. 22. 10:45

오래된 싱크대의 수납장 문이 잘 안닫히기 시작한 건 오래 되었고 얼마 전엔 덜컥 수도꼭지, 아니 물 나오는 부분의 길쭉한 철제 호스 같은 게 부러졌다. 이리저리 꺾어서 각도 조절할 수 있는 모양이었는데... 안에 든 플라스틱까지 끊어진 건 아니므로 물이 나오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철제 호스가 꺾여 덜렁거리니 설거지를 하려면 뭔가를 기대어 놓거나 왼손으로 잡고 한손으로만 그릇을 헹구어야하는 사태. 


그 수도꼭지도 몇년 전 언젠가 막내동생이 사다가 직접 달아준 거였는데, 아니 무슨 수도꼭지가 10년도 안 쓰고 고장이 나나 그래... 아무튼 노상 야근에 주말 출근도 불사하는 불쌍한 동생을 또 불러댈 순 없는 일이고 철물점 같은 데 가서 수도꼭지 사고 웃돈을 얹어 출장수리를 해달라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비용도 따지면 총 10만원 가까이 들겠더라.


요즘 유행하는 쿡탑 렌지를 비롯해 싱크대를 싹 바꾸고 싶은 마음은 수년째 품고 있었지만 그러다 집이 전격 팔리면 어쩌나 아까비.. 하는 마음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나무 상판이 남아있는 한쪽 싱크대가 물에 쩔어 막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문은 하나같이 제대로 안 닫히는 데도 강제로 욱여 닫아가며 살아왔었다. 아우 새삼 청승맞기도 하여라.


덜렁거리는 수도꼭지와 연일 씨름을 하며 드디어 부엌을 싹 갈아엎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혹시 아나, 머피의 법칙이라고 부엌 싱크대 갈자마자 집 팔려서 속쓰려하는 일이 생길지. 엄동설한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불운/행운이 작용하여 아무도 보러오는 사람 없는 집이 팔린다면 수리비 아까워할 게 아니라 좋아서 팔짝팔짝 뛸 일이다. (집이 하도 낡아 누가 이사오려면 벽부터 완전 개조가 필요한 집이라서 아마 부엌도 다시 뜯어야할 테니 하는 말이다;; ) 하여 결심은 섰으나 우유부단 추진력 제로인 게으름뱅이는 또 동네 주방가구점에 견적을 받으러 가야하는데, 가야하는데... 그러고만 있었다.


헌데 두둥~ 한 열흘 전 한밤중에 괜히 TV 리모컨놀이를 하다가 홈쇼핑에서 부엌 개조 상품 발견! <무이자 12개월 할부>에 특정 카드는 청구 할인, 일시불이면 또 할인... @.,@ 어떤 색깔로 할지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이 그냥 죄다 세트 상품이었다. 이거다 싶어서 얼른 줄자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가 대강 칫수를 재고는 주문 완료!


그러고는 속으로 마구 빌었다. 제발 크리스마스 이브(마침 울 할아버지 19주기 제삿날이다) 이전까지 설치 가능하게 해주세요... 아니면 망함...  설마 일주일이면 되겠지... 아 몰라... 설마.. 간만에 나한테 주는 거한 크리스마스 선물인데... 그랬다.


다행히 바로 다음날 주방가구 직원이 실사를 나와서 다시 직접 치수를 재고 사진을 찍더니 일주일 뒤 설치를 약속했다. 휴우... 게다가 진짜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면 철거와 시공이 다 된다네. 좋은 세상이닷. 감사하여라. 유럽이나 미국에선 수도꼭지 하나 바꿀라고 주문해도 최소 열흘은 걸린다던데 빨리빨리 대한민국 역시 최고. -_-; 


해서 오늘 드디어 대망의 부엌공사가 진행중이다. 어젯밤 우렁각시처럼 살금살금 온갖 그릇들을 치워 싱크대를 비우고, 식탁도 번쩍 들어 옮기고 타일공사 대신 내가 붙여야지 마음 먹었던 시트지 붙이기도 일부 먼저 해놓느라 이미 삭신이 다 쑤신데, 저쪽에선 드르륵 드르륵 공사를 하건말건 난 내방에서 일이나 하겠노라 맘먹은 건 그저 작심일 뿐 귓바퀴는 깔대기처럼 자꾸만 저쪽 집으로 쏠리고, 2층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발소리에 아무데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차 한 잔 드시겠어요, 그러면서 싹싹한 아줌마 코스프레나 하는 수밖에... 철거팀은 한시간 반만에 벌써 후딱 오래된 싱크대를 해체하고 간략한 수도공사까지 마친 뒤 철수했고, 어느 틈에 설치팀이 와 거실쪽을 비닐로 완전 차단막을 쳐놓고 조립 작업중이다. 놀라운 분업의 세계. 과연 이따 저녁땐 어떤 부엌이 나를 맞이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뭐 그래봤자 누렇게 된 벽지를 배경으로 새하얀 씽크대가 심히 튀기밖에 더하겠냐마는... 째뜬 나도 드디어 새 부엌을 갖게 되었다.  이사나 가야 가능할 줄 알았던 일인데. 감개무량하다고 해야하나 그간 불편을 외면했던 내가 미련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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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을 속시원히 짜장면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쾌재를 부르는 글을 여기 올린 게 벌써 아득한 2011년 일이었단다. 세월이 참 어떻게 가는지...

암튼 요번에 또 국립국어원에서 새로이 표준어로 인정하기로 한 단어들을 발표했다. 역시나 접근성이 가장 좋은 이곳에 퍼다놓아야 찾아보기 쉬울 것 같다. 







ㅇ 현재 표준어와 같은 뜻을 가진 표준어로 인정한 것(5개)

추가된 표준어

현재 표준어

구안와사

구안괘사

굽신*

굽실

눈두덩이

눈두덩

삐지다

삐치다

초장초

작장초


* ‘굽신’이 표준어로 인정됨에 따라, ‘굽신거리다, 굽신대다, 굽신하다, 굽신굽신, 굽신굽신하다’ 등도 표준어로 함께 인정됨.



ㅇ 현재 표준어와 뜻이나 어감이 차이가 나는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한 것(8개)


추가 표준어

현재 표준어

뜻 차이

개기다

개개다

개기다: (속되게) 명령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버티거나 반항하다.

(※개개다: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다.)


꼬시다

꾀다

꼬시다: ‘꾀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

(※꾀다: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추겨서 자기 생각대로 끌다.)


놀잇감

장난감

놀잇감: 놀이 또는 아동 교육 현장 따위에서 활용되는 물건이나 재료.

(※장난감: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물건.)


딴지

딴죽

딴지: ((주로 ‘걸다, 놓다’와 함께 쓰여)) 일이 순순히 진행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거나 어기대는 것.


(※딴죽: 이미 동의하거나 약속한 일에 대하여 딴전을 부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그라들다

사그라지다

사그라들다: 삭아서 없어져 가다.

(※사그라지다: 삭아서 없어지다.)


섬찟*

섬뜩

섬찟: 갑자기 소름이 끼치도록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느낌이 드는 모양.


(※섬뜩: 갑자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한 느낌이 드는 모양.)


속앓이

속병

속앓이: 「1」속이 아픈 병. 또는 속에 병이 생겨 아파하는 일. 「2」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걱정하거나 괴로워하는 일.

(※속병: 「1」몸속의 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 「2」‘위장병01’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3」화가 나거나 속이 상하여 생긴 마음의 심한 아픔.


허접하다

허접스럽다

허접하다: 허름하고 잡스럽다.

(※허접스럽다: 허름하고 잡스러운 느낌이 있다.)



* ‘섬찟’이 표준어로 인정됨에 따라, ‘섬찟하다, 섬찟섬찟, 섬찟섬찟하다’ 등도 표준어로 함께 인정됨. 



위에 접어놓은 더보기 내용에 있기는 하지만 꺼내놓아야 또 한눈에 보이니... 그밖에 레이다/레이더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된다고. 


이상 모두 출처는 국립국어원. 귀찮아서 그냥 긁어왔더니 폰트며 형식이 다 마음에 안들지만 그냥 두련다. -_-; 



딴 건 다 알겠는데 '초장초'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낱말이라 찾아보니, 괭이밥이라고도 부르는 풀 이름이다.

표준어로 그간 작장초(酢漿草)가 쓰였던 이유는, 저 한자가 '잔돌릴 작', '신맛 초' 두 가지 음으로 불리는데 도무지 글씨 생김새가 '초'자로는 읽기 어려웠기 때문인듯. -_-; 나더러 찍으라고 해도 '작'으로 읽었겠구나 싶다. 혼자 술 따라 마시는 '자작'이라고 할 때 바로 저 글자를 쓰겠거니.. 

하지만 토끼풀을 닮은 괭이밥의 특성상 '신맛 초'로 불리는 게 더 옳다고 식물백과사전에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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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투덜일기 2014. 12. 15. 16:50

마지막 포스팅을 한지 한 달이 넘었다. 다른 때는 종종 중간에 비공개로 써놓은 글도 있곤 했는데 이번엔 그야말로 완전 블로그를 방치했다. 바쁘기도 했고 확실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간... 별일이 좀 있었다.

늘 허둥대듯 폭풍처럼 몰아쳐 원고를 마감했고,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못 미더워 붙들고 매달렸던 원고를 이메일로 보낸 뒤 허겁지겁 대충 싼 짐가방을 끌고 공항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탔다. 3월에 시도했다 실패했던 터키 여행. 7박9일짜리 패키지 상품에 3일을 연장해 짧게 자유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두어달 전부터 예약을 해놓고도 정말 가도 될까 염려하며 이번에도 타의로 못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일주일 전 출발확정일 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귀국편 비행기 연장도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는 그래, 이번엔 확실히 잘 다녀오라는 하늘의 뜻인 게야, 그렇게 생각했었다. 같이 가는 후배 J도 나도.

하지만 마음이 그리 가뿐하진 못했다. J의 어머니는 암투병 중이셨고, 울 엄마는 중이염 치료를 위해 입원을 권유받는 형편이었다. 심지어는 월요일 출국 예정인데 토요일에 의사가 얼른 치료 시작하자며 엄마에게 입원장을 내버렸다. 거기서 엄마는 또 넌 예정대로 가려므나, 난 홀로 입원할테다... 그러시고 ㅠ.ㅠ 막대한 취소 수수료를 물고 이번에도 터키를 포기해야하나, 고민하던 나는 의사와 원무과에 다시 뛰쳐가서 입원 못한다고 버텼다. 2주 뒤나에 입원 가능하다고.

암튼 우여곡절 끝에 떠나 도착한 이스탄불엔 계속 비가 내렸다. 12월부터 우기라더니 왜 벌써! 비쯤이야 뭐 방수재킷에 우산까지 준비했으니 맞아주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카파도키아에선 심지어 폭설이 내렸다. 우리보다 하루, 이틀 먼저 여행을 시작한 팀들은 폭설에 고립되어 산맥을 넘지 못했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식도 들려왔으니, 열기구를 못 탄 것쯤이야 불운도 아니라고 위안을 삼아야했다. 그래, 눈 덮인 터키를 또 언제 내가 구경하겠니, 그러면서.

지중해쪽 안탈랴, 케코바에 갔을 때만 잠깐 날씨가 개었을 뿐 그밖엔 계속 우중충 비가 내렸고, 장기여행이 하도 간만이라 그랬는지 서둘러 짐을 싸서 그랬는지 내가 가져갔던 옷들은 너무 두껍거나 얇아서 춥지 않으면 더워서 낑낑대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나마도 챙겨간 바지도 티셔츠도 갯수가 부족했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사프란볼루를 떠나 다시 이스탄불로 갔다가 인천공항에 내리니 우릴 기다리고 있던 건 엄청난 한파. 엄마가 미리 보일러를 돌려놓았다는데도 방의 냉기는 그날 밤에야 비로소 좀 가시는 듯했는데, 오자마자 세탁기 돌려 빨아놓은 옷들이 다 마를 새도 없이 다시 병원 짐을 싸 귀국 다음날 곧장 엄마를 입원시켰다. 

집에 돌아와 딱 하룻밤 자고 다시 떠돌이처럼 병실 쪽잠을 자야한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여행 파트너였던 J에게 엄마 상태는 좀 어떠시냐고 문자를 보내도 통 답이 없었다. J도 귀국하자마자 잡지 마감 들어가야한다더니 바쁜가보다..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곧이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J에게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던 어머니가 우리 떠나 있는 동안 돌아가셨다는 것. 여행 중 J가 계속 가족들에게 어머니 안부를 물었을 때도 분명 암말 없이 신경쓰지 말고 잘 놀다오라고 했다던데, 어떻게 그런 일이. 

알고 보니 이미 우리가 터키 가는 비행기 안에 있을 때 돌아가셨기에, 이스탄불에 도착해 곧장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도 시간상 장례절차가 다 끝난 다음일 것이 뻔해서 식구들이 아예 말을 하지 않은 것이란다. 아아. 자식으로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만큼 평생 한이 되는 일이 없다던데 얼마나 기가 막힐까...  괜히 터키 여행을 강행했구나 싶어 J에게도 그 어머니에게도 죄스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나이롱 환자처럼 그냥 시간 맞춰 항생제 주사만 맞으면 된다던 멀쩡한 엄마가 혈압 불안정으로 입원기간 동안 또 나를 식겁하게 하는 상황도 어쩐지 천벌 받는 것 같고... 안정되지 않은 떠돌이 같은 삶이 3주를 넘어가니 심신에 쌓인 피로로 신경은 더더욱 날카로워지고...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 J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는 것도 어쩌면 몹쓸 짓일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내 마음의 무게를 덜어보겠다는 심보가 아니고 뭔가. 그래서 이 글은 생각을 좀 더 해본 뒤 공개를 안하게 될수도... 그치만 너무도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7년전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그러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곱씹으며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려 자책하는 과정을 자꾸 되풀이하게 된다. 역시 여행을 가는 게 아니었다. 왜 하필 올해 내내 터키 타령은 해가지고... 나도 이런 지경일진대 J는 괴로운 마음이 오죽할까. 부모님을 잃었을 땐 섣부른 위로가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고, 더욱이 나는 이런 상황을 야기한 죄인인지라 J에게 더더욱 할 말도 면목도 없다. 이럴 땐 나 말고 차라리 남탓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수도 있으니 J가 내 탓을 하며 욕을 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고...  

아무튼 우리 엄마는 무사히 8일만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고, 나 역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당분간은 터키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워서 사진도 들여다보지 못하겠고 계속 가슴이 먹먹하다. 때로 인생은 참 가혹하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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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4. 11. 7. 16:20

지지난주 토요일에 사촌동생 결혼식엘 갔다가 꽃길과 리셉션에 장식되었던 꽃을 양껏 집어왔었다. 전문 예식장이 아니라 그날 예식은 딱 한번 뿐이라 한갓져서 좋았고 사진촬영을 마친 뒤로는 주최측에서 얼른 꽃장식을 뽑아 하객들 가져가라고 입구에 쌓아놓아 더 좋았다. 나는 노친네들 식당으로 안내한 뒤에야 그 낭보를 듣고 뒷북으로 혹시나 하고 가봤는데 다들 한두 다발씩 가져갈 만큼만 챙겼는지 아직 꽤 수북이 쌓여 있었다.

 

수국과 장미, 리시안서스를 각기 챙겨서 막내고모랑 나눠가졌는데도 집에 와 꽃으니 화병 3개 분량. 

맨 오른쪽 센터피스는 뭐, 주로 줄기 꺾어진 꽃들로 급조한 거라지만 며칠간 눈과 마음이 행복했다.  이 꽃들처럼 예쁘게 잘 살거라 사촌동생아, 그런 마음도 들고...

 

꽃이 오래가지 못할 걸 예상하기는 했지만 과연 사흘쯤 됐을 무렵부터 한 송이 한 송이 시들어 뽑아버리다 보니 일주일 뒤엔 장미는 다 사라지고 큰 화병 두 개의 수국과 리시안서스만 남았었다. 그나마도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면 수북했던 수국이 한줄기 통째로 축 늘어져 쪼그라져 있기 일쑤.

 

헌데 내일이면 꽃을 얻어온지 만 2주가 되는데도 하얀 수국 한 줄기와 리시안서스 한 송이는 여전히 멀쩡하게 버티는 중이다. 수국은 줄기나 두껍지, 리시안서스는 하늘하늘 가느다란 줄기로 어떻게 버티는지 신기할 따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 없다는 옛말 틀린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름부터 아예 백일홍이라는 꽃도 있고, 가을 국화는 뭐든 2, 3주도 끄덕없다규~~) 장하고 고고하여라 꽃송이!

 

혹시나 도움이 될까 열심히 물도 갈아주고 줄기 끝도 잘라주며, 역시 잘 참고 질긴 게 이기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유독 강하게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특히 송이나 줄기가 크고 튼튼하지도 않았는데 남들보다 오래오래 잘도 버티는 것이 나름의 비법을 갖춘 게 틀림없다. 마음 스산하다는 핑계로 수시로 돌려대는 보일러 탓에 실내 공기가 꽤나 건조할 것 같은데도 누렇게 말라붙지 않고 종잇장처럼 얇은 꽃잎으로 새하얗게 버티고 있는 꽃. 누가 불러주어서 꽃이 되고 싶은 건 잘 모르겠는데, 질기고 아름답게 고고하게 독야청청 쭉 버티는 것도 진정 미덕이라는 (너무 당연한가?) 뜬금없는 깨달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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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투덜일기 2014. 11. 4. 17:23

집에서 멀지 않은 동네에 화교들이 많이 모여산다. 인천 어느 동네처럼 아예 '차이나타운'이라고 이름까지 붙은 건 아니지만 주변에 화교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이 몹시 많고, 꽤 오래된 화교 학교도 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산꼭대기 학교가 워낙 춥고 등하굣길도 험해서 드물게 교복바지를 입는 게 허락된 학교였는데 동복 교복 바지에 남색 코트를 입고 버스에 오르면 사람들이 우리에게 종종 물었다. 너네 화교 학교 다니니? (내 기억으로도 교복바지 입는 여학생들은 서울시를 통틀어서도 그 화교 학교 아이들과 우리 학교 애들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당시 8번과 522번 버스 노선이 우리학교와 옆동네 화교학교를 모두 통과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깐 나의 모교도, 옆동네 그 화교 학교도 역사가 꽤나 길다는 의미.


몇년 전까지만 해도 오후 무렵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 화교 학교 앞에서 교복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타면 사방에서 중국어가 들려 왔었다. 경복궁에서도 종종 느끼지만 중국어는 4성이 있어서 높낮이가 유별나 한꺼번에 여럿이 떠들어대면 진짜 시끄럽다. 경상도 사투리 쓰는 단체가 더 시끄러울지, 중국인 단체 관객이 더 시끄러울지 언제 한번 소음도 테스트를 해보고 싶을 정도로. ^^;  특히 중고등학생들이 떼거지로 버스에 타면 어느 언어를 쓰든 시끄럽게 마련. 나 중고생때도 친구들이랑 버스에서 떠들다가 운전기사 아저씨나 다른 승객들한테 핀잔도 여러번 들은 것 같으니 말 다했지. (나는 나름 얌전했는데 친구들 탓이라고 극구 주장;;; ㅋㅋ)  


암튼 귀화를 했든 안했든 이 나라에 사는 어린 화교 학생들이 평소 제1언어로 중국어를 사용한다는 게 나로선 엄청 신기했었다. 중국인들이야 세계 어느나라를 가도 그건 마찬가지라지만, 외국으로 이민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들 현지 적응하는 걸 우선시하다보니 1.5세만 되어도 우리말 다 잊어버리고 제 부모랑 소통도 잘 안된다던데! 하물며 잠깐 유학을 갔거나 해외주재원으로 나간 덕분에 어린 애들을 몇년 외국어에 노출시킨 친구들을 보면, 한국어 딸린다고 돌아와서도 아예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엘 보내기도 한다. 헌데 중국인들은 어느 나라엘 가도 아이들까지 모국어를 철저하게 사용하고 있으니 그 자부심이랄지 고집이랄지 존경스러울 수밖에.


헌데 한류 덕분이었을까? 얼마전부턴 똑같이 화교 학교 정류장에서 올라탄 아이들인데 아무리 유심히 들어봐도 학생들이 그냥 다 우리말로 떠들어서 진짜 화교 학교 아이들인지 다른 학교 아이들인지 헷갈릴 정도다. 헐... 대박... 졸라... 특히 애들이 많이 쓰는 추임새며 욕까지 거침이 없다. 교복과 교표를 보면 분명 그 학교 애들 맞는데... 학교에선 분명 한국어 수업을 듣긴 해도 전과목 죄다 중국어로 수업을 할텐데 우와... 아이들이 달라진 거다. 물론 화교 부모들은 집에서 엄격히 중국어를 쓰도록 여전히 교육하고 있을 것 같지만 (나의 편견에서 비롯된 상상일까?? ㅋ) 그래서 여전히 그 아이들의 제1언어는 중국어일 확률이 높지만, 친구들끼리는 거침없이 한국어로 소통하는 그 아이들은 완벽한 이중언어사용자인듯! 


오래 전 출판사일로 대만에 출장을 갔을 때 하루 동안 현지 가이드와 상담 통역을 부탁했던 남자 하나는 한국으로 이민온 부모님과 함께 화교로 살다가 여러가지 차별적인 법규와 세금 문제 때문에 대만으로 돌아간 경우였다. 요샌 많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재한중국인들은 한국에서 재산권도 제대로 행사할 수가 없고 세금도 엄청 더 많이 내야한다고 억울함을 토로했었다. 귀화를 선택하지 않는 한은 한국에서 일자리도 잘 얻을 수가 없었다나...  부모님 운영하시던 중국집 물려받는 거 말고는 통 비전이 안 보여서 대만으로 유턴했다는 그 남자 얘기에, 따지고보면 정말 인종차별, 국적차별 심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나도 막 열 올리며 거들었던 것 같다. 그 남자 말로는, 한국에서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이 특히 불친절한 이유가 뭐냐면 돈을 암만 많이 벌어도 세금으로 다 빼앗아 가기 때문이란던데 ㅎㅎ 요새도 그런가 어쩐가 되게 궁금하다. (화교도 아니면서 불친절한 한국 식당들은 그럼 이유가 뭘까나? ㅋㅋ 아 왜 얘기가 이리로 흘러갔지 -_-;;)


하여간 이 땅에 정착한 화교들의 역사가 오래 되다 보니 어쩌면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의 유럽이나 미국에 정착한 각국 이민자 2세, 3세들처럼 중국어 대신 이젠 한국어가 더 편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 혼자 하고 있었다. 설마 집에서 엄마랑 싸울 때 엄마는 중국어로 혼내고 아이는 한국말로 대들고 그러는 거 아냐? 이러면서 혼자 시나리오까지 막 쓰고 말이지.... (LA로 이민간 친구네 애들이 자랄 때 딱 그랬다. 친구는 막 한국말로 혼내고 사춘기 아들놈들은 막 영어로 소리치고... 서로 알아듣고 싸움을 이어나가는 게 나로선 신기;;) 


바로 어제 마침 또 화교 학교 아이들 하교시간에 버스를 타고 그 앞을 지나가게 됐는데 유독 예쁘고 잘생긴 남녀학생들이 우르르 버스에 오르더니 한국말로 떠들뿐만 아니라 카톡도 한글로 주고받는다는 걸 발견! 호기심에 자꾸만 눈길이 그쪽으로 돌아갔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이 내리고 버스 맨 뒷좌석 내 옆에 아마도 커플인 듯한 남녀학생 둘만 남은 순간, 아 도란도란 속삭이는 둘의 대화는 다시 중국어였다! 게다가 하나도 안 시끄러운 나지막한 말투.... 맞다. 그러고 보니 중국 영화를 봐도  탕웨이, 장국영, 양조위, 주윤발이 하는 중국어 대사는 조근조근 감미롭기만 했었지....


한국에 살지만 (국적취득 여부에 따라서) 한국인은 아닐 수도 있고 모국어는 중국어지만 한국말도 그에 못지않게 잘하고 이중언어에 전혀 스트레스 안받으면서 (부디 그러기를) 다정하게 속삭일 땐 중국어를 쓰는 그 십대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추성훈과 사랑이도 떠오르고, 서경식 선생과 거창하게 디아스포라 어쩌구 하는 말도 떠오르고... 어쩌면 내가 이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에 버럭버럭 '아 진짜, 이민가야하나....'라고 수시로 중얼거리기 때문일지도. ㅜ.ㅡ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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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많아?

투덜일기 2014. 10. 19. 01:14

요즘 아이들은 모든 말에 접두어 '개'를 붙여 강조하는 게 추세다.

아 진짜 사람 개많다.

저 옷 개예뻐!

그 영화 개재밌대...


개죽음, 개박살, 개고생, 개나리, 개망초... 주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던 말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머잖아 개많다, 개좋다, 이런 말도 국립국어원 사전에 등록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_-; 


암튼 어린 조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잠깐씩 뜻을 몰라 놀라거나 말이 느려지는 때가 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신조어는 '노잼'과 '꿀잼'.

'꿀잼'은 꿀재미의 준말이고 '이 게임 완전 꿀잼이(혹은 꿀재미)야' 식으로 쓰이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근데 그 반대말이 '노잼'인 줄은 정녕 몰랐었다. 9살 조카가 고모 그거 엄청 노잼이야 노잼, 그러는데 순간 멀뚱. 읭?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 수밖에... 복사기나 팩스기에 종이 걸릴 때마다 '페이퍼 잼'이라고 뜨는 건 봤어도 나 원 참... 


심지어 답이 없단 뜻으로 '노답'이라는 말도 쓴단다. 영어와 우리말이 뒤섞인 노잼, 노답보다는 그래도 둘 다 우리말인 개많아, 개예뻐, 개좋아... 이런 말이 더 나은 건가? 


하여간에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인터넷 신조어(이를테면, '고나리'가 '오나전/완전'처럼 '관리'의 오타이면서 특별히 주시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는 걸 최근 알았다. ㅠ.ㅠ)와 아이들이 쓰는 축약어와 신조어들. 

따라가기가 벅차고 어렵다. 휴... 내가 점점 나이든 꼰대가 되어가는 게 맞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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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또 피곤해도 잠이 안오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그래서 다시 동네 앞산엘 올라갔다. 숲의 기운을 받으면 바짝 땡겨진 뇌주름도 좀 느슨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감기몸살 기운도 좀 남았고, 시간도 별로 없고 해서 정상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솔숲과 메타세콰이어숲에서 나름 절반의 효험은 얻고 온 것 같다. 하지만 기분 전환으로 찾은 산에서도 싫은 사람들을 종종 맞닥뜨려 와락 짜증이 인다. 아... 공기 좋고 호젓한 숲길 좋고 야생화 예쁘고 가을 하늘도 푸르른데 꼭 사람이 공해다 공해.


첫째는 휴대용 라디오나 mp3로 크게 음악틀고 다니는 사람들! 주로 할아버지들이 많이들 그러는데, 할머니들도 더러 있다. 음악은 거의 어김없이 조악하게 녹음된 뽕짝. 하기야 며칠 전엔 나름 우아한 경음악(엘리베이터에서 많이 들려오는;;) 을 틀고 가는 아주머니도 만났고, 가끔 야구중계 dmb를 크게 틀고 가는 아저씨도 있었다. 아 당췌 시끄러워서 원! 이런 분들은 이어폰이 없어서 그런다기보다는 뭔가 자랑삼아 더 그러는 것 같다. 종묘나 종로3가 주변엔 어르신들을 위해 아예 뽕짝 수천곡이 이미 다 들어있는 저렴한 mp3 겸 라디오를 판다던가... ㅎ 그러니깐 그런 분들 사이에선 요란하게 음악을 틀고 다니는 게 나름 신문물의 얼리어댑터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은 심리가 아닐지...


둘째는 먹을 거 잔뜩 싸와서 아무데나 돗자리 펴고 질질 음식물 흔적 남기는 사람들. 서울 근교나 멀리 설악산엘 가도, 동네 앞뒷산을 가도 먹거리 싸와서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의 '소풍' 기분을 모르는 바 아니나 과일껍질과 나무젓가락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숲에다 투척하는 꼬라지를 보면 확~ 때려주고 싶다. 농약과 왁스 묻은 귤껍질, 바나나 껍질 그런 건 수십년 지나도  안 썩는다는데! 나무젓가락도 마찬가지고! 으으으... 게다가 남은 반찬도 그냥 막 내버리고 가서 숲속에도 벌과 나비 대신 X파리들이 막 날아다닌다. ㅠ.ㅠ (난 안 올라갔지만 글쎄 설악산 중청휴게소 주변에도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파리떼가 엄청나단 얘길 들었다;;)


셋째는 술 먹고 등산하며 마구 떠드는 사람들. 얼린 막걸리나 맥주캔 하나 둘 싸가지고 가서 정상에서 캬~ 입맛 다시는 것까지 뭐랄 순 없지만 음주를 위해 등산하는 사람들이 가만 보면 꼭 있다. 중턱에서 널브러져 술판 벌리는 족속들은 뭐 서울 근교 산에 가면 어디나 볼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은 대개 등하산할 때도 떠들썩하니 시끄럽다. 어쩜 입을 한번도 안 쉬고들 놀리는지... ㅠ.ㅠ 그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넷째는 요즘 가을 되면서 출몰한 족속인데, 바로 산에서 불법으로 밤과 도토리를 채취하는 사람들이다. 다람쥐랑 청솔모 같은 들짐승 먹이니깐 가져가지 말라고 곳곳에 팻말과 플래카드가 붙어있는데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등산로 아닌곳까지, 노란 테이프로 막아놓은 곳에도 굳이 넘어가서 위험스레 구석구석 나뭇잎을 파헤친다. 어디선가 꺾었는지 주웠는지 굵직한 나뭇가지로 만든 지팡이겸 막대기를 들었다는 것이 내가 관찰한 그들의 특징. -_-;; 국립공원에선 그런 사람들 단속하는 이들도 있나본데, 동네 산이야 어차피 밤나무, 도토리나무가 대규모로 자라지도 않으니 단속까진 하지 않는 것 같고 그래서 아주 신들이 나셨다. 하지만 요샌 소나무 재선충 방재작업이 워낙 전국적으로 실시되므로 함부로 숲에서 도토리나 밤 주워다가 먹으면 맹독성 농약에 노출되어 큰일날 수도 있다던데... 어휴. 하긴 들짐승들도 농약 묻은 도토리나 밤을 먹으면 무사하지 못하려나? 째뜬 아슬아슬한 비탈길이나 벼랑 쪽으로 내려가서 도토리나 밥 줍는 어르신들(이런 분들은 또 할머니들이 많다;;) 위태위태해서 못보겠다. 제발 쫌!!! 


사람 공해 싫다고 내 몸 위한 운동을 아주 안할 순 없고... 그런데 또 스트레스 풀려고 오른 숲에서 저런 사람들 때문에 나는 또 스트레스를 받고... 젠장. 아예 남들에게 시선을 아예 안주고 무시하면 그뿐인데 문제는 결국 내 오지랖인가?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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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란 게 요즘엔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겠으나, 내 경우 그냥 하나마나 한 소리를 궁시렁궁시렁 혼자 끄적거리기도 하고 괜히 누군가 역성 들어주기를 바라며 응석도 좀 부리는, 순전히 배설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이번에 또 한번 권리침해 신고로 글을 '함부로' 삭제 당하는 경우를 당하고 보니 이곳에 수년간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잡글에 대한 느낌이 새삼스럽다. 


이제는 적지 않는 일기 대신에 여행 다녀올 때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전시를 볼 때마다 꼬박꼬박 몇줄이라도 느낌을 적어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그래서 엄연히 따지면 누구나 지나다니는 좁은 골목길 같은 곳이지만 나 혼자만은 사적인 안마당 같다고 여기며 꽃도 심고 돌도 고르고 잡초도 뽑고 그러며 가꿔온 게 아닐지. 이왕이면 왕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기를, 사소하고 소박한 들꽃이나 들풀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만 지나다녀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깡패같은 땅주인이 나타나서 여기 니 땅 아니야! 니 맘대로 하지 마! 언제든 내 눈밖에 나면 내쫓길 신세야! 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말도 안통하고 눈만 마주치면 무조건 싸움을 걸고보는 '이상한' 행인을 하나 끌고 와서 한바탕 휘저어 놓고 간 듯하다. 멍하니 망연자실했다가 한참 뒤에 떠오른 생각은... 아우쒸,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을 불태울 순 없다던데.


아무튼 그래서....

'적극적인 소명'이 부족하다며 두번이나 내 복원신청을 '까댔'으며 도대체 자기 글도 못 읽게 해놓고 어떻게 근거를 제시하라는 하라는 거냐고 분노의 이메일을 보내도 도와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식으로 (처음 복원신청을 했을 땐 지메일이었던 내 아이디로 해당 블로그가 검색이 안된다고 말도 안되는 답신을 보냈었다. 지메일 아이디로는 다음 사이트에 로그인도 어려워 복원신청도 절차가 어찌나 까다로웠는지... ㅠ.ㅠ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한메일로 티스토리 아이디를 바꾼 뒤에야 복원신청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더라. 서로 연동 안되게 해놓을 거면 다른 메일주소로 아이디 설정은 왜 가능하게 해놨는데????)  기막힌 대처를 하던 티스토리 측에서 휴대폰으로 검색해 겨우 얻은 포스팅 캡쳐 화면을 첨부했더니 결국엔 30일이 지나 해당 글을 복원조치해놓았다. 신고자측에서도 추가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아서 방송통신위원회에 실제로 명예훼손으로 권리침해된 사항인지 심사를 받는 단계까지도 가지 못했단다. 애당초 내가 글을 올렸던 3년 전도 아니고, 그 인터넷선교단체에선 무슨 심보로 뒤늦게 권리침해 신고를 했을까??? 아마 그 단체에는 대체로 그딴 식으로 블로거들을 협박하는 모양이다. 지들이 대리하는 주요 몇몇 교회의 이름이 들어간 글은 무조건 글을 삭제조치 시키도록 신고를 하고는, 복원신청 과정이 귀찮거나 절차가 복잡해 꺼려하는 블로거들이 지레 포기하도록... 물론 티스토리 측에선 그런 걸 매우 우호적으로 지원사격해주고.


입장을 바꾸어서 내가 명예훼손을 당한 쪽이어서 어떤 이의 블로그 포스팅을 권리침해로 신고를 했다고 쳐보아도 도무지 이런 절차와 포털의 태도가 이해되질 않는다. 젠장! 컴맹이라서 도대체 어떤 글이었는지 내가 쓰고도 전문을 찾아볼 수도 기억해낼 수도 없었다가, 이웃님의 도움으로 대충이라도 알게 된 그날의 포스팅에는 정말 내 사적인 이야기들이 많았고 주된 내용은 PD수첩 시청소감이었다. 나 원 참....  드디어 복원되어 완벽하게 읽을 수 있게 된 포스팅 전체 내용에도 정말이지 소O교회에 대한 욕설이나 비난은 없었다. +_+ 이 모든 소동과 분노와 불쾌감의 빌미가 너무도 무의미하지 않은가! 그래서 약간은 허무하기까지.... 가끔씩 몇년 지난 포스팅을 읽어보며 아 이땐 이랬구나 피식 웃을 때도 있는데, 이날의 포스팅엔 블로그계를 떠난 이웃의 댓글도 있어서 새삼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뭐 딱히 잘 쓴 글도 아니지만 그래도 복원된 걸 기념하여 링크해둔다.  



2011년 3월 16일에 쓴 문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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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투덜일기 2014. 9. 17. 03:15

생각보다 소망교회 관련해서 임시삭제조치 된 글의 복원이 어려울 것 같다.

지난번 이창하 씨 측에서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했을 땐 나의 복원신청이 곧장 받아들여졌던 듯 나중에 글이 다시 살아났었다. 그땐 임시삭제된 글을 외부인은 보지 못하더라도 본인만은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내가 읽어본 뒤 도대체 어느부분이 명예를 훼손한 거냐고 따져물을 수 있었던 듯...

그런데 이번엔 3년이나 지나 내용도 가물가물 기억도 나지 않는 그 글에 대한 '적극적인 소명'이 부족하다면서 복원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휴 참 기가 막혀서...

담당자에게 벌써 여러번 메일을 보내보았으나 계속 똑같은 대답뿐... 이러다가 3년전 그 글을 그냥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게 왜 이렇게 억울한지...


도대체 2011년 3월 16일자  http://ynot.tistory.com/770 <잡다> 포스팅이 어떤 내용인지 나 역시 궁금해 죽겠다.

휴대폰으로 블로그 접속해서 검색해 얻은 결과, 앞부분 몇줄이 나와서 궁금증은 더 커졌다. 태그를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죄다 푸념한 모양인데... 흠... 아무리 하찮은 글나부랑이라도 아까워서 삭제된 글 내용이라도 이메일로 복사해 보내달라고 담당자에게 부탁해놓았다. 과연 그 부탁은 들어줄까?? 




다음/티스토리에서 이런식으로 비협조적으로 나오니깐 정이 똑 떨어져서, 진짜로 문제의 포스팅이 복원되지 않으면 이참에 블로그를 옮길까 생각도 하고 있다. 국내포털은 또 이런 사태를 안만난다는 보장이 없으니 어디로 가야하나... 돈내고 독립 블로그를 운영하는 방법도 있겠고 구글 같은곳을 이용할 수도 있지 않으려나.... 하여간 그래서 요즘 더더욱 블로그질 하기가 싫어지고 있다. 8년이나 가꿔온 이 공간을 졸지에 확 폐쇄하자니 물론 아쉽기도 하고... 아니 티스토리를 포기하는 게 아쉬운 게 아니라 여기 올린 모든 포스팅을 백업해서 옮길 방법이 사라진 것 같아(방법이 있는데 내가 무식해서 모르는 걸지도;;;) 죄다 못 가져가는 게 아쉬운 거다. 폐쇄하지 말고 그냥 떠난 뒤 여기가 쓰레기통이 되거나 말거나 새로 시작을 해야하나... +_+ 아 귀찮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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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생

투덜일기 2014. 9. 11. 21:37

전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아직도 가끔씩 조카의 학원 앞으로 시간 맞춰 픽업을 간다. 서로 미리 말을 맞추지 않아도 우리의 접선지점은 늘 학원 건물 골목 입구의 편의점 앞. 물론 붐비는 곳이라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으면 한바퀴 다시 근방을 돌아야할 때도 있고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며 어느쪽으로 더 오라고 문자를 넣어놓기도 한다. 


그런 날이 두어달 이상 반복되자 이젠 나처럼 픽업 나온 몇몇 자동차까지도 눈에 익었다. 그 중 아무래도 시선이 가는 건 조카와 똑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태워가는 자동차들. 나는 멍하니 기다리며 허비하는 시간이 아깝고 싫어서 학원 마치는 시간을 아주 딱 맞춰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거의 6시면 6시, 6시반이면 6시반 정각에 학원 골목으로 들어선다. 그럴때 늘 나보다 먼저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고 기다리는 차가 있는데, 조카와 같은 반은 아니고 같은 학년이라는 몸집 작은 아이를 데리러 오신 할아버지가 그 주인공이다. 그 아이는 학원에서 나오면 할아버지 차를 향해 후다다닥 뛰어간다. 다음 학원으로 재빨리 이동해야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기다리는 할아버지에게 미안해서 또는 반가워서 뛰어가는 것일까 궁금하지만 알아볼 길은 없다. 아주 가끔 30분 넘게 기다리느라 붉으락푸르락 아 대체 왜 안끝나느냐고 조급한 문자를 서너개나 보내놓아도 절대 뛰는 법 없이 느긋하게 걸어와, 고모 안녕, 그러는 조카와 참 다르구나 할 뿐이다. ^^


또 다른 빨간 차는 조카와 같은 반이라는 ㅅㅇ의 엄마라는데, 나보다 빨랑 데리러 온 적은 한두 번 밖에 없는 것 같다. 어리바리 대타를 뛰는 나보다 학원의 생리를 더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놈의 학원선생은 수업시간이 끝나도 아이들이 정해진 문제를 다 풀지 못하면 붙잡아놓고 끝까지 다 풀게 한단다. 혹시 숙제를 안 해가면 벌로 남아서 예전 숙제를 다 해야 집에 보내준다고.... ㅋㅋ  암튼 그 녀석과 나의 조카는 분명 엄마와 고모가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느긋하다. 심지어는 잠깐만 더 기다리라며 우르르 친구들과 편의점으로 쏙 들어갈 때도 있다. 누군가 차로 데리러 온 아이들도, 그냥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집으로 가는 아이들도 '다음 사교육'의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간단히 요기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나의 조카는 대개 우리집으로 저녁 먹으러 오거나 바삐 다음 과외를 위해 지네 집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편의점에 들러 간식 먹을 필요도 시간도 없는데, 이놈이 간혹 친구들에게 '티머니로 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호기를 부리는 거다. 아 놔;;;


보아하니 부지런하게 애들을 실어나르는 엄마나 조부모들은 아예 미리 준비해간 간식을 차에서 먹이는 것 같다. 올케도 학교에서 기다리다 학원으로 데려가며 늘 차에서 뭔가를 먹였다고 들었다. 편의점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별로 몸에 안 좋은 간식을 사먹는 행동 자체가 못마땅하다나. 하지만 편의점 앞에서 넋놓고 기다리다보면 주변 학원에서 쏟아져나온 아이들이 편의점에 언제나 드글드글하다. 그나마 노란 봉고에 실려 각각의 행선지로 실려가거나 엄마들이 차로 나르는 초등학생들은 빈도수가 덜하고, 대개는 중학생 고객들이다. (그 주변에 고딩들을 위한 대입학원은 없다;;)


대체 뭘 먹나 지켜보니 여학생들은 대개 간단하게 삼각김밥을 선택하는 것 같고, 남학생들은 컵라면이나 사발면 따위를 많이 먹는다. 물론 빵이랑 음료수를 먹는 애들도 있고, 사발면에 삼각김밥을 같이 먹기도 하고. 그러고도 뭔가 부족한지 편의점을 나올 때는 음료수와 봉지과자를 하나씩 들고나오기도... 


학원수업은 월수금이나 화목토, 일주일에 세번이니 그 아이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세번 편의점에서 저녁끼니를 때우는 건가, 아님 그냥 간식인가 궁금하다. 옛날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학교 파하고 내려오다 문방구나 분식점에서 꼭 뭘 사먹고 집에 와서도 또 저녁을 먹었으니, 삼각김밥이나 사발면이 모든 아이들의 온전한 끼니는 아닐 거라 믿고 싶다. 하지만 요즘 중학생들의 사교육 스케줄을 감안한다면.... 흠 모르겠다. 


올해 드디어 자식 입시 뒷바라지에서 벗어난 친구 하나는 중학교 3년간 매일 저녁도시락을 싸가지고 아들을 이학원 저학원으로 실어나르더니 염원하던 외고엘 보내는데 성공을 거두었었다. 자기가 도시락을 안싸면 애가 떡복이나 김밥, 편의점 삼각김밥, 빵 같은 걸 대충 먹고 학원에 가서 오밤중까지 공부해야 하는데 그럼 키가 제대로 안큰다나 뭐라나... 어휴... 그나마 고등학생 되니깐 아침부터 아예 하루 3끼를 학교 급식으로 해결해서 더 편했다고 들었다. 친구가 열혈 전업주부였으니망정이지, 일하는 엄마였다면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분식점이나 편의점에서 노상 저녁을 해결하고 학원 뺑뺑이를 돌아야했을 거다.


호기롭게 엄마가 충전해준 티머니로 친구들에게 간식을 쏘겠다는 조카를 말리러(티머니는 버스 타라고 충전해준 거지! 뭐 사먹으라고 넣어준 게 아니거든!) 나도 편의점에 따라 들어간 적이 있다. 아무래도 조카는 티머니 인형을 기계에 대고 '띠릭~' 결제하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고 멋져보이는 모양이었지만, 그렇게 생생내다가 티머니에 돈이 얼마 남은지도 몰라서 버스에서 쫓겨내린 전적이 있는 걸 알기에 그날 친구들의 간식값은 '무수리 고모'가 내주었다. 


편의점 카운터에 서 있는 사람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혹시 주인일까?)와 알바생인 듯한 청년. 몇시부터 일했는지 모르지만 둘 다 얼굴 가득 피곤함과 짜증이 담겨있었다. 편의점 앞에서 조카를 기다리는 동안 가끔 이따~만한 쓰레기봉지를 내다 놓으러 나오는 알바생을 보며 난 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중고딩때 노상 학원가기 전에 편의점에서 저녁 때우던 아이가 커서 다시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게 되는 편의점 인생의 반복...  오늘도 편의점에 들러 바글바글 바삐 배를 채우던 아이들 중에 혹시 편의점 알바생이 자신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걸 짐작하는 아이들이 과연 있을까.

 

날이 더워선가, 오늘따라 교복대신 죄다 체육복 반바지 차림으로 편의점으로 몰려 들어가는 중학생들을 보고 있으려니 철커덕 조카가 차문을 열었다. 쓸데없는 상념 끝. 카레이서 고모로 변신해 15분만에 휭허니 조카를 지네 집으로 모셔야한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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