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 풍년

투덜일기 2014. 5. 26. 16:28

집앞 앵두나무가 해걸이를 해서 한 해 열매가 많이 열리면 그 다음해는 성글게 열리는데, 올해는 많이 열리는 해다. 작년에는 한움큼씩 두어번이나 따먹었나. 그것도 감지덕지 꽤 많다 싶었는데 올해는 아예 엄마가 한번에 소쿠리에 수북하게 따대시는 데도  계속 익어가고 있다. 너무 익어 떨어져 버리기 전에 얼른 따먹어야 한다며, 오늘도 한 소쿠리 따갖고 올라와선 냉동실에 얼렸다 애들 오면 줄까, 설탕 넣고 잼을 만들까 괜한 고민을 하신다. 며칠 전에 딴 앵두도 아직 냉장고에 들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엄밀히 옆집 나무이되 우리 마당으로 가지를 더 많이 뻗은 살구나무와 벚나무 역시 해걸이를 하는데 완전 흉년인 쪽이다. 작년엔 살구를 역시나 한두 소쿠리 쯤 따서 아주 맛있게 먹었고, 큼지막하게 익은 버찌도 꽤나 먹을 만 했었는데, 올해는 열매 구경하기가 아예 힘들다. 얼마 안되는 살구 열매가 앵두만하게 자랐을 무렵 웬일인지 다 떨어져 마당에 뒹군 탓이다. 그래도 한두개는 건지겠거니, 아무리 살펴봐도 온전하게 가지에 붙어 익어가는 살구는 한 알갱이도 안보인다. 크기는 작아도 사온 살구보다 더 달고 맛있었다며 쩝쩝 입맛을 다시는 엄마. 그러고 보니 작년 살구 수확(2층 베란다에서 가지를 당겨 따야하는 위험한 과정;;)도 나 외출한 새 엄마가 다했었다. 


엄마는 올해도 마당에 내려다 놓은 스티로폼 화분과 새 화분에 꽃씨와 모종을 심어놓고 매일매일 물을 주며 정성을 들이고 있다. 화원에서 사온 영양토 말고도 작년 가을 마당에서 쓸어 모았던 낙엽을 비닐에 담아  썩혀 그걸 퇴비로 얹어준 때문인지 올해는 가지와 고추 모종이 그럭저럭 잘 자라나는 중이고, 심지어 작년에 심었는데 나오지 않아 망했던 분꽃도 하나 싹을 튀웠단다. 2년만에 싹이 나는 분꽃이라니! ㅋㅋ 작년 분꽃 자리에는 원래 올해 과꽃 씨앗을 뿌렸는데, 그건 다 싹을 틔워 쑥쑥 자라나고 있다. 


집앞 앵두나무는 30년전 아래층 할머니가 분재 화분을 버리려고 마당에 내용물만 휙 쏟아놓았던 게 지금처럼 무성하게 자란, 전설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이제 그걸 아는 사람은 울 엄마와 나뿐이다. 집앞에 벚꽃이랑 살구꽃 한참 만개했을 때 누군가 집을 보러 온다면 30년 넘어 낡은 집에 대한 나쁜 인상이 조금이나마 덜해질 텐데 아쉬웠듯이,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는 요즘 누군가 집을 보러 온다면 또 낡았지만  해마다 앵두 따먹는 재미에 대한 환상 같은 걸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는데, ㅋㅋ 부동산 이야기론 동네 자체가 원래 매매가 뜸하지만 이런 오래 된 집은 아예 보겠다는 사람조차 없단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듯, 엄마는 이사가면 앵두 따먹는 것도 끝이라며 열성을 부리는 거라고. 알았으니 많이 드셔. 그러면서 한 소쿠리 깨끗이 씻어놓았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