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투덜일기 2014. 6. 11. 13:12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은지는 꽤 됐다. 가끔 예외는 그날 택배 배달 예고가 있는데 밖에 나가있을 때 정도. 그렇다고 번호 저장된 사람들의 전화를 잘 받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워낙 전화오는 일이 드물기도 하고, 진동으로 해두고 못들을 때도 많다. 배터리 꺼진줄도 모르고 있을 때도 있으니 뭐.


암튼 전화와 관련해선 기피증도 심하고 구세대임이 분명한 나는 아는 이에게 걸려온 번호도 미리 반색하며 알은체를 하지 않는다. 그냥 일관되게 "여보세요."라고 응답하는 쪽인데, 가끔 저쪽에서 섭섭해하는 경우가 있다. 내 번호 저장 안 돼있어? 아니 저장되어 있는데요... 근데 왜 모른척 해? 어 그게 아니고....  


이거 원 참... 난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여보세요"라고 안하고 대뜸 "응 OO아!" "네, 언니!" "어, 웬일이야?"라는 식으로 대답하면 그게 더 어색하다. 어쩐지 빨랑 용건부터 말해야할 것 같고... 난 "여보세요"란 말에 대비해 서서히 인삿말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쪽에선 벌써 "오랜만이네. 어떻게 지냈어" 따위로 대화를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좀 더듬거린다. 이것도 사회성 부족 현상일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특히나 휴대폰에 뜨는 상대방 이름을 보고 재빨리 응대할 태도 준비까지 마쳐야하는 모양이다. 무작정 "여보세요"라고 받으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점수가 심히 깎인다고. 지켜본 바에 의하면 배우자나 애인한테도 마찬가지인 듯. 대뜸 콧소리 작렬하는 "자기야~!"로 응답하는 장면 꽤 목격했다. 으윽.  

 

문득 회사다닐 때 생각이 난다. 사무실 전화가 울리면 습관적인 '여보세요' 대신에 회사이름을 대야 했는데, 난 그게 어찌나 어렵던지. 첫 회사는 심지어 영어이름이었으니... 두번째인가 세번째 회사는 심지어 "감사합니다, OOOO 영업부 OOO입니다."라고 회사명과 소속부서 본인 이름까지 대라고 강요했다. 아우 발음꼬여! 하도 스트레스라서 집에 와서도 그렇게 회사이름을 대며 전화받던 시절도 있었네그려.

 

어린시절 우리집엔 없는 대문 인터폰이 달린 고모네 집에 놀러갔을 때, 벨이 울리고 부엌에서 일하던 고모가 나더러 받아보라고 했을 때 수화기를 들고는 '누구세요' 대신 '여보세요'라고 했던 민망한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어찌나 창피했는지. 마침 퇴근하신 고모부가 누른 벨이었고, '여보세요'라고 했다고 놀림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인터폰에 대고 '여보세요'라고 한 적이 꽤 되는 듯. 드디어 우리집에도 인터폰을 달았을 때, 들고 있는 수화기가 전화인지 인터폰인지 헷갈려 '여보세요' 했다가  '아니, 누구세요'로 바꾸곤 한 것 같다.

 

암튼 습관이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것이고, 대인관계의 태도 역시 갑자기 바꾸기 어려우니 나의 '여보세요'는 평생 이어질 게 틀림없다. 엄마한테 오는 전화도 동생들한테 오는 전화도 다 일단은 "여보세요"라고 받는 게 나로선 너무 당연한데,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가? 문득 궁금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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