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3시

투덜일기 2014. 5. 11. 16:12

벌써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작년 이맘때쯤? 정확하진 않지만 계절이 여러번 지나간 건 확실하다. 하여간 일요일 오후 3시 무렵이면 똑똑똑 현관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이웃인데요,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필요없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잠깐만 시간 좀 내주세요. 됐어요! 아무리 쌀쌀맞게 대꾸를 해도 그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 매번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다음 일요일엔 어김없이 나타나는 저 놀라운 끈기. 


나는 한번도 대면한적 없어 도무지 정체가 누군지 알지 못했는데, 듣자하니 동네 입구 상가 2층에 있는 작은 교회 신자들이란다. 이웃 아줌마가 호기심에 문을 열고 인쇄물을 받아보았더라나. 우리집을 찾은 사람과 동일인물인지 아닌지 확신할 순 없지만 유독 일요일 오후 3시쯤 집집마다 문을 두들기고 좋은 말씀을 전하려는 이들이 또 있을까 싶긴 하다. 아니지, 언젠가는 '좋은 말씀' 언급은 꼭 빼고 이웃이라며 물어볼 게 있다는 감언이설(?)로 문을 열게 한 뒤 다짜고짜 인쇄물을 내밀고는 됐다고, 필요 없다고 하자 '50원'인가 '100원'을 내놓으라고 하던 특정 종파도 있었다. 그날도 일요일이었던가, 그땐 평일이었던 것도 같고. 


노친네들이 유독 많이 살아 동네 분위기가 허술한 때문인가. 몇달에 한번쯤은 절에서 왔다며 시주를 청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물론 엄마 덕분에 불교쪽에 대해선 좀 더 빠삭한 사람으로서, 전철역 앞에 불전함 놓고 꽝꽝 드럼치듯 목탁 두들겨대는 땡중(승적도 없을 게 분명하다!)들이 다 구걸형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듯이, 절에서 나왔다는 사람들도 종교를 빙자한 사기꾼이라고 굳게 믿는다. 요즘이 어떤 시절인데 저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녀서 과연 종교 설파가 된다고 믿을까? 


순수하게 길을 묻는 사람들도 혹시나 '도나기' 일당은 아닐까 지레 경계하며 쌀쌀맞게 대한지 꽤 됐다. 이젠 이사했다고 떡 돌리는 이웃들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 있을지 모르는데 (아마 이 집이 팔려서 이사를 가게 되면 울 엄만 반드시 고사떡을 해가지고 이웃에게 돌릴 사람이다), 누군가 문을 두들기고 이웃이라고 하면 버럭 짜증부터 난다. 아으 참 용감하고도 질긴 (일부) 종교인들!


시내 중심가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팻말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그렇고, 일요일 예배후 지역을 나눠 동네 전도에 힘쓰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들이 전도에 힘쓰는 건 무지몽매한 비종교인들을 함께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들이 보기엔 지옥불에 떨어질 중생들이 안타깝고 불쌍하겠지. 그러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마침 내가 향기로운 커피를 즐길 시간에 똑똑똑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는 분명 스트레스다. 이젠 아주 그 시간 즈음 되면 미리부터 조마조마하다. 두들겨도 빈집인 척, 아예 대답을 하지 말까? 그러다 진짜 볼 일 있는 사람이면 어쩌지? 가스 검침원이라든지... 


현관문 유리로 얼핏 보이는 실루엣으로 미리 짐작하거나 베란다 창으로 내다보아 마당에 또 다른 일행이 서 있나 확인하기도 하는데 (둘셋씩 다니면 전도 목적이 확실하니까';) 나보다는 확실히 저들의 전략이 더 앞선다. 아 오늘은 조금 전에 글쎄, 젊은 청년이 홀로 나타나 문을 두들겼다. 착하고 성실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이웃인데요... 레퍼토리가 똑같지 않았더라면 나도 계단을 뛰어 내려가 문을 열어봤을지도 모르겠다. 귀가 어두운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대뜸 문부터 열려고 신발을 꿰신는 걸 내가 말렸을 정도. 그간 그렇게 두들겨 봤으면, 이 집은 도저히 안되겠으니 이제 좀 포기해주면 안되나. 내가 집에 없던 어느 일요일 오후, 가능한한 짧게 상대하지 않는 게 최선임을 모르시는 노친네, "우린 절에 다녀요."라고 괜히 대꾸했다가 한참이나 댓거리를 해야했단다. 안가고 서서 더욱 열렬히 한참이나 좋은 말씀을 전하시더라는...   으휴. 오늘은 날 흐리고 바람도 세차던데 참 수고가 많으시겠으나, 이제 부디 우리 집은 포기해주시기를. 


일요일 오후 3시 무렵의 스트레스에서 이만 벗어나고 싶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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