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해당되는 글 136건

  1. 2011.01.09 모피 유감 8
  2. 2010.12.26 주전자 12
  3. 2010.12.11 바느질 13
  4. 2010.06.19 목소리 14
  5. 2010.06.15 어린 취향 11
  6. 2010.06.08 월드컵 안 볼 권리 17
  7. 2010.06.01 대물림 10
  8. 2010.02.22 막요리의 기록 19
  9. 2010.01.06 홍대 조폭 떡볶이 11
  10. 2010.01.02 2009 한해 정리 12

모피 유감

투덜일기 2011. 1. 9. 16:15

왕비마마와 내가 옷에 대한 취향이 사뭇 다르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의견통일이 이루어진 부분은 모피 코트에 대한 거부감이다. 젊어서는 모피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고 특히 노년에 접어들면 모피, 특히나 밍크 코트 한벌쯤은 갖고 있어야 면이 선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므로, 엄마가 예순살 즈음부터는 겨울마다 나도 아버지도 계속 왕비마마의 의향을 물었다. 한벌 사줄 테니 골라보시라고 말이다. 한벌에 몇천만원까지 한다는 초고가의 모피는 못 사줘도 '까짓것' 몇백만원짜리는 사주겠다며 몇번이나 백화점엘 모시고 나가 입혀본 적도 있었다. 엄마가 내심 갖고 싶은데 괜히 사양하는 '척'하는 거라면, 백화점까지 가서 입어본 다음에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실 것이라는 게 우리의 짐작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때마다 억지로 걸쳐는 보았으되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원래 우리 모녀는 웬만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옷을 잘 입어보지 않는다. 입어보고 나면 소심한 성격에 점원에게 미안해 마음에 안들어도 얼떨결에 사버리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모피 코트가 워낙 고가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왕비마마의 거절 이유는 우리가 듣기에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첫째로는 불자로서 수백마리 짐승을 죽여 만든 옷을 걸치고 절에 다니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고, 둘째로는 당신 몸이 뚱뚱해서 그렇게 짐승털가죽 옷을 입은 본인의 모습이 한 마리 곰처럼 흉측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말 부부동반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모피코트를 입지 않은 사람은 울 엄마밖에 없더라면서 그게 속이 상했는지 아버지는 잊을만 하면 한번씩 계속 백화점 모피 매장으로 왕비마마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왕비마마는 밍크 코트 대신에 밍크털이 깃과 소매에 장식된 무스탕이나, 오리털, 모직 코트를 대신 사거나 차라리 아버지랑 세트로 등산 점퍼를 장만해 들어오셨다. 그러고 나서는 지난 몇년간 나는 왕비마마의 모피 취향이 변했는지 아닌지 떠보기를 잊고 살았다. 그런데 유난히 혹독한 추위가 이어지고 있는 올 겨울, 왕비마마의 나들이라고 해봤자 한달에 한번 동창모임 아니면 절에 가는 것 이외엔 죄다 병원 정기검진이긴 하지만 노친네들이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밍크 코트'를 보니 새삼 또 찔려 왕비마마에게 물었다. 엄마도 이젠 밍크코트 한 벌 입으시지, 라고. 그랬더니 단박에 싫으시단다. 더 뚱뚱해보일 거라나. 그럼 살 빠지면 입으실 거냐고 했더니 그도 아니란다. 오히려 입고 싶으면 너나 입으라고, 통 크게도 한벌 사주시겠다고, 요즘엔 젊은 애들도 많이들 입나보더라고, 한 술 더 뜨는 거다. -_-; 징그러워서 개털도 잘 못쓰다듬을 뿐더러, 특히 실감나게 생긴 밍크털은 더 소름끼쳐서 소매나 깃장식도 못 견딜 판국인데 무슨!

이렇게 모피 혐오증 환자처럼 굴고는 있지만 나도 짐승털이 얼마나 따뜻한지는 알고 있다. 할머니 유품 중에서 스웨터 말고도 내가 또 챙긴 물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밤색 토끼털 목도리다. 다행스럽게도 토끼 눈과 꼬리까지 실물처럼 재현해놓은 그런 모양이 아니라(그런 거라면 무서워서 절대 갖겠다는 소리 안했을 거다. 할머니 밍크 코트를 외면했던 것처럼;;) 둥글게 코트 깃처럼 생긴 집게형 목도리라 모직코트를 즐겨 입던 시절엔 정말 거의 매일 두르고 다녔다. 비록 이제는 몇년째 장농에 그저 매달려 있기만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가죽코트 사면서 안에 입는 토끼털 조끼가 덤으로 생겨 입어본 적도 있다. 그나마 변명이라면 내가 일부러 모피를 추구해서 장만한 건 아니라는 정도지만, 토끼털은 괜찮고 밍크 코트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과연 나도 더 '늙으면' 취향이 바뀔지 그건 모르겠으나, 어려서는 모피가 징그럽다고 나와 동감하던 친구들도 중년에 접어들더니 슬슬 모피에 눈길이 가고 호피무늬가 좋아진다고들 고백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나는 요즘 모피 코트 디자인이 제 아무리 세련되게 바뀌었다고 해도, 깜찍 발랄하게 새하얀 모피를 입은 젊은 아가씨들을 보아도 전혀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데 말이다. 호피무늬 싫은 거야 예전에도 포스팅했던 적이 있을 정도고! (좋아하는 배우가 배역 때문이 아니라 그저 좋아서 호피무늬 걸치고 나오면 호감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선호 배우 명단에서 제명될 수도 있다) 얼마 전 혹독하게 추운날 잠깐 만나 밥을 먹었던 친구는 나 싫어할까봐 제일 뜨뜻한 모피 코트를 못입고 나왔다고 툴툴거렸다. 그 친구는 그 옛날부터 걸어다니면 반드시 팔짱을 껴야 하는데, 모피 걸치고 나온 날은 내가 내내 사모님이라고 놀려줄 뿐만 아니라 팔짱도 금지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 취향을 고려해 하루쯤 모피를 포기한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긴 것, 짧은 것, 색깔 연한것, 조끼형까지 일일이 갖고 있는 모피 코트를 들먹이며 효용성을 피력하는 사모님에게 결국 나는 '고급스러운' 취향을 존중해 줄 터이니 그만 입닥치라고 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까마득한 옛날에 결혼할 때도 시어머니 혼수로 모피코트를 해드리고 저도 모피를 받았던 것 같다. 어차피 물려받을 거라 생각하고 좋은 걸로 바치기로 했다던가.

암튼 그렇게 뜨뜻하다는 모피 코트에 대한 왕비마마의 거부감이 진심인지 아닌지, 진심이었더라도 혹시 변하는지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떠볼 작정이다. 왕비마마가 계속 싫다고 하시면 몹시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하겠지만, 못 이기는 척 입겠다고 하셔도 매몰차게 친구에게 하듯 팔짱을 못끼게 하지는 말아야지 마음먹고 있다. 곰 한마리나 바야바 같은 왕비마마를 모시고 다니는 일은 정말 싫겠지만, 뭐 그렇게 또 따뜻하다니까... 원시 시대엔 겨울에 누구나 모피를 몸에 두르고 다녔을 텐데 뭐... 암... 혹시 내가 하도 질색팔색을 하니까 왕비마마가 모피 입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계신 건 아닌가 슬며시 걱정스럽기도 하다. 빤딱이 여우털 프린세스 라인 패딩을 사다 입으라고 강요 받았을 때 내가 난감했던 것처럼, 나 또한 내 취향을 노친네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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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투덜일기 2010. 12. 26. 21:17

과학이나 상식으로 접근하면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나 혼자 굳게 믿고 있는 편견 가운데 하나는 바로 물 끓이기.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으니까 (여기서 고도나 물의 순도는 논외로 하자;; 복잡한 거 모른다) 30초를 끓이든 1분을 끓이든 5분을 끓이든 물의 온도는 똑같을 테고 성분이 달라지거나 하지도 않을 거다. 그런데 나는 주전자 꼭지에서 수증기가 팍팍 올라올 만큼 꼭 물을 '팔팔' 오래 끓여야만 커피 포함 모든 차를 맛있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 오랜 편견은 아마도 생수나 정수기가 생활화되기 이전에 수돗물로 모든 찻물을 끓이던 시절 수돗물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내가 원두커피와 친해지기 이전에 생겨난 것이고, 특히 인스턴트 커피를 탈 때는 반드시 해당되는 '진리'였다. 

내가 녹차를 몹시도 싫어하면서 떫고 비린내 나고 비위에 거슬리는 맛이 난다고 주장하면, 녹차 애호가인 친구는 내가 찻물 온도를 못 맞춰서 그런 거라고 코웃음을 치지만 그 친구가 청정지역에서 수행자들을 위해 재배한 특수 녹차를 다관까지 갖춰놓고 만들어줘 봐도 도무지 녹차는 내 취향이 아니다. 나도 집에서 왕비마마 녹차 만들어 드릴 때 물 뜨거우면 더 떫어지니까 충분히 식혀서 티백을 넣는단 말이닷! 드물게 드립 커피를 만들어 마실 때도 물의 온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기 때문에 드립 전용 주전자는 없더라도 일단 물을 팔팔 끓인 다음에 사기로 된 작은 주전자에 일단 옮겨 대강이나마 물의 온도를 90도쯤으로 맞춘(다고 생각한다 ^^;)다. 물을 붓는 게 아니라 아예 푹푹 오래 끓여야 하는 대추차나 둥글레차, 생강차 같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향긋하거나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감돌 때까지 약한 불에 뭉근히 끓여야 제격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집집마다 없는 집이 거의 없다는 무선주전자를 사고 싶지도 않고 전혀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이미 탁 하고 꺼져버리는 경박함도 마음에 들지 않고, 일단 그렇게 끓다 만 물로는 커피믹스에 금방 부어도 맛이 없다니깐! +_+ 내가 근거 없는 이 이론을 제시하면 더러 동의를 하면서 무선주전자 작동 버튼을 한번 더 눌러 두번 끓인다는 이도 있다. 코코아든 커피믹스, 녹차든 홍차든, 캐모마일 차든 국화차든, 일반 주전자로도 물을 좀 덜 끓였거나 무선주전자로 물을 끓여 타면 뭔가 미묘하게 덜 된 맛이 느껴지는데, 이게 순전히 나의 무선주전자 불신 탓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원두커피의 경우는 에스프레소를 희석할 때도 끓인 물을 적정온도로 식혀 부어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테고, 드립 전용 주전자까지 필요한 드립커피는 더 말할 것도 없으니 커피물을 팔팔 오래 끓여야 한다는 나의 주장은 순전히 억지이고 오류일지 모른다. 강릉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커피전문점 사장님도 전기 무선주전자로 끓인 물을 드립 주전자에 담아 (그 과정에서 적정온도인 90도가 될 거라고 했다) 커피를 만들더라. ㅋ 그저 내가 좀 구식이고 아날로그형 인간이고 사소한 데 집착하는 구석이 있다고 인정할 뿐이다.

문제는 자동 온도조절 장치가 있는 무선주전자와 달리 가스불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팔팔 끓이다가는 자칫하면 주전자를 태워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이미 내가 '해먹은' 주전자가 서너 개는 되는 듯하다. 나처럼 정신 나간 장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들을 위해 익히 발명된 '삐삐 주전자'가 있기는 하지만, 난 또 시끄러운 그 물건도 혐오하는 사람이다.-_-; 예쁘장한 법랑 주전자로 찻물을 끓어야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걸 어쩌랴. 그래서 찻물을 올려놓고 수다를 떨거나 딴짓을 하다 허거걱 놀라 달려가는 경우가 간간이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물이 다 졸아들지 않아 새로 끓이기만 하면 될 때도 있지만 심한 경우엔 법랑에 금이 갈 정도로 쇠가 달구어져 십년감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에도 딸기 무늬가 들어간 법랑 주전자를 그렇게 망가뜨려 보냈건만, 얼마 전 아끼던 '에**' 주전자를 또 그렇게 해먹고 말았다. ㅠ.ㅠ 한두 잔 타기 위한 찻물을 올려 놓으면 반드시 그 옆에서 지키다가 임무를 완수해야 함을 원칙으로 정했으면서, 거의 1년 주기로 그 원칙을 까먹는 탓이다. 이쯤 되면 집집마다 아줌마들이 왜 무선주전자로 정착을 하는지 알 것도 같다. 차 한 잔 탈 물을 끓이는 데는 1분도 안걸린대고, 가스불을 켜면서 발생하는 유해가스도 없으니 탄소배출량도 적을 거라고 누군가 주장하던데, 그 진위는 몰라도 1년에 한번씩 주전자를 태워먹어 새로 사는 것보다는 그쪽이 환경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긴 하다. 그래봤자 나는 또 일반 주전자를 사들이겠지만서도... 

쓰던 법랑 주전자를 태워먹은지 몇달 됐는데도 아직 새로 안(못)사고 엄마네 삐삐 주전자를 빌려다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으로 살지 마음을 정하지 못해서다. 또 다시 편하고 익숙한 '에**' 주전자로 살것인가(그렇다면 또 어떤 무늬로??), 그냥 법랑주전자이긴 하되 별로 안 예뻐도 저렴한 것으로 부담없이 장만할 것인가, 아니면 이왕 사는 거 더욱 깜찍한 무늬가 들어간 고가의 유럽산 법랑 주전자를 살 것인가(이 또한 브랜드와 무늬가 여러가지다 -_-;) 우유부단한 마음으로는 쉽사리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으휴. 앞으로 또 태워먹지 말란 법이 없으니 너무 비싼 건 안 사는 게 나을 것도 같지만, 또 고가의 주전자라면 아끼느라 더더욱 조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러니 계속 갈팡질팡이지! 까짓 주전자 하나로도 꾸질꾸질 청승맞게 (문득 하이킥 해리 생각나는 조어로다;) 이러고 고민하는 내가 참 싫다. 주전자 태워먹는 나는 더욱 싫고! 물 끓이는 것조차 집착하는 내가 제일 싫은 건가? 아무려나 차 마시는 기분이 안 나서라도 얼른 주전자를 사긴 해야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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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놀잇감 2010. 12. 11. 13:31
주말이랍시고 또 일이 하기싫어져서 방바닥을 뒹굴며 어른들의 장난감 아이폰이랑 씨름중이다.

11월에도 괜히 딴짓하고 싶어서 밤마다 바느질에 힘썼던걸 자랑하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올려야지. 블로그에 포스팅하려고 사는 인생인가 싶어 민망하지만 이런 거 자백하고 나면 스스로 한심스러워져서 채찍질의 효과가 좀 있다. ㅋㅋ

우선은 왕비마마가 할머니 같아보인다고 질색을 하는 울 할머니의 유품 스웨터를 살짝 리폼했다. 단추만 바꿔 단 것도 리폼이라 쳐준다면.... 40킬로그램도 안되는 체중의 할머니가 입으시기엔 솔직히 옷도 너무크고 묵직하다. 셋째고모가 핸드메이드에다 순모라고 엄청 생색내며 선물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어쩔수없이 몇번 입으시고는 노상 간수하는데 더 신경을 쓰셨고, 그래서 20년쯤 묵었어도 아직 새것 같다. 원래는 털실로 짜서 덧씌운 단추가 달려 있었는데 나무느낌의 단추를 사서 바꿔 달았다. 이렇게만 해도 할머니옷 얻어 입은 느낌은 좀 덜나지 않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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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 사진 방향이 안돌려지누만 ^^;

두번째 바느질도 할머니와 관련이 있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생신에 넷째고모가 이불을 선물했었다. 집집마다 풍습이 달라서 고인의 물건을 다 태우거나 없애는 것이 원칙이라는 얘기도 있고 특히 이불은 반드시 살라버려야 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난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고인의 유품을 간직하며 추억을 곱씹는게 뭐가 나쁜가? 특히나 올빼미인 내가 잠자러 들어가면 그때 할머니가 곧 일어날거니까 당신자리에서 자라고 덮어주시던 이불인 것을...
해서 봄가을에 10년 넘게 애용했더니 드디어 한쪽 가장자리가 헤졌다. 버려야하나 고민했었는데 막상 버리자니 다른데가 너무 멀쩡하고 대용량 쓰레기봉투값도 아까운 거다. (이럴 땐 또 지지리 궁상 ㅎㅎㅎ) 그래서 천을 끊어다가 덧씌워 꿰매보자고 결심한 게 작년이었다. 사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는데 요가학원 근처에서 발견한 바느질 부자재 가게에 저 스웨터 단추 사러 가보니 아 글쎄 천도 파는게 아닌가! 동대문 가야하는줄 알고 1년도 넘게 미루기만 했었는데... 그래서 그날로 득달같이 천을 잘라 헤진부분을 감쪽같이 덧씌웠다. 완성품을 본 정민공주가 예쁘다고 아래쪽도 마저 하라더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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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폭풍 바느질에 힘쓰다보니 두려울 것이 없어졌고 동네 구두수선 아저씨가 가죽이너무 부드러워 자긴 못고친다고 하는 바람에 찢어진 채로 그냥 들고다니던 가방을 손수 꿰매겠다는 도전의식이 불타올랐다. 마침 택에 달렸던 가죽 한조각도 안버리고 두었더라고!! 안쪽 천을 튿어서 바느질을 버텨줄 천도 풀칠해 넣으며 스스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삭바느질로 전생에 먹고 살다가 갖바치 노릇도 했던 것일까 ㅋㅋㅋ 아무래도 가죽이라 바늘땀은 비뚤빼뚤하지만 이로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 탄생했으니 더욱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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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이렇게 복잡하고 긴글을 휴대폰으로 쓰다니 나도참 못말린다. 오타는 얼마나났을지 모르겠으나 다시는 이런 삽질을 방지하는 의미로 컴퓨터로 수정하지 않겠음.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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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투덜일기 2010. 6. 19. 18:11

편견인지 취향인지 나는 목소리 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남들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목청으로 핏대 올리며 이야기하는 사람은 혐오대상이다. 목소리 좋은 사람 싫어할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어쨌든 나는 목소리의 미추 여부를 떠나 그냥 조용조용 나직나직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좋다. 그렇다고 너무 저음이라 웅얼웅얼 못알아 들어먹게 생긴 목소리는 또 별로.

그런 잣대로 보자면 나는 내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직도 가끔 전화 받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텔레마케터가 "어머니 안 계세요?"라고 물을 때가 있을 정도로 목소리가 유치하게 가늘고 높은 톤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고상함과 우아 떠는 연습을 좀 많이 한 덕분인지 그나마 예전보다는 톤이 좀 낮아진 것도 같지만, 내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무심결에 녹음된 진짜 목소리를 들으면 퍼뜩 놀랍고 민망하다.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앵앵거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유난스레 많이 떠들어대고 들어온 날 특히 공허하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건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싫어하는 내 목소리를 계속 견뎌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목소리를 무척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안 품게 되지 않을까.

목소리도 타고난 신체의 일부인데 싫으니 좋으니 따지는 건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예쁘니 미우니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손가락질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임을 알고는 있다.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고 싫은 건 싫은 거니 어쩌랴. 남들에게 티는 안내면서 속으로만 삭이고 살며 쓸데없이 욕먹기만 피하는 수밖에.

헌데 귀가 잘 안들리는 왕비마마와 살려니 자꾸만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데 가뜩이나 본인 목소리 싫어하는 나로선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고, 나도 모르게 쉽사리 짜증이 묻어나와 남들이 들으면 만날 모녀가 싸우고 앉았다고 여길 것만 같다. 원래부터 나긋나긋 상냥하고 낮은 목소리를 지녔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좀 더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으려나. 근본적인 이유는 까칠한 성격 탓인데도 오늘은 애먼 목소리만 탓하고 앉았다. 묵언수행이라도 해야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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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취향

투덜일기 2010. 6. 15. 17:50

최근 친구 하나가 '미드'에 빠져 연일 날밤을 새며 시즌을 하나씩 섭렵하고 있다며 내게도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
촌스럽게도 기회가 되면 간혹 미드를 즐겨보기는 하지만 열성적인 다운로드족이 아닌 나는 그런 걸 추천해줄 입장이 못돼 민망했다.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그 옛날 <프렌즈>, <사인펠드>, <섹스앤더시티>, <ER>로 미드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지만, 그때도 난 다운로드족이 아니라 케이블로 찾아보는 편이거나 dvd를 장만하지 않으면 주변에 빌려봤다. 확실히 나는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아날로그형 낀세대라는 얘기다.

지금도 우연히 마주치면 넋을 놓고 시청하는 <CSI>, <그레이 아나토미>, <하우스>도 파일을 다운받아 본 적은 없으며 <위기의 주부들>은 누가 파일을 보내주겠다고 하는데도 별로 볼 마음이 안생겼다. 뭔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랄까. 더욱이 TV시청 자세가 퍽이나 불량한 나는 드라마라고 하면 느긋하게 소파나 큰 쿠션에 거의 드러누워 편히 감상해야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하는 기분으로 봐야하는게 영 마뜩찮다. 일드를 특히 즐겨보는 부지런한 친구 하나는 열심히 다운받아서 케이블로 TV에 연결해 소파에 드러누워 보기도 하지만, 내가 그 친구 집에 가서 같이 봐주는 건 모를까 내가 몸소 그런 수고를 하고 싶은 생각은 평생 들지 않을 거다.
 
미드 친구는 당연히 <위기의 주부들>의 열혈팬이었고 내가 이름만 대강 아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열변을 토했다. 부업을 하는 가정주부인 친구는 그날 마땅히 다운받아볼 게 없으면 <위기의 주부들> 시리즈를 여러번 돌려보며 두세번째 시청할 땐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 식기, 패션소품까지 눈여겨봐 참고한다고 했다. 목동사시는 시간 많은 여사님들 사이에선 그게 유행이란다. +_+

추천해줄만한 미드가 생각나지 않는다는데도 굳이 최근에 본 걸 떠올리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자신없게 말했다. "가십걸...? 그 전엔 <OC>라는 것도 봤다...."
친구는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나의 어린 취향이 걱정스럽다고(그녀의 표현은 '취향이 어려서 큰일'이라고) 말했다. 자기는 그런 애들 나오는 드라마는 눈에 전혀 안들어온다나. 하기야 다들 <아이리스> 볼 때도 내가 혼자 <미남이시네요> 보면서 설레고 좋아라할 때부터 알아봤단다. 아이돌 가수 몇명을 눈여겨 보며 좋아라하는 것도 그렇고...

결혼과 학부모 역할을 인생의 커다란 '성취'이자 '성숙함'로로 여기며 '비혼'은 미완성 인생과 미숙함의  표상이라는 걸 은연중에 풍기는 주부 친구들이 "너는 참 취향이 어려서 큰일이다"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어쩌면 자격지심 때문에) 발끈하게 된다. 그들의 말엔 종종 "그러니까 정신 좀 차려라"는 당부의 뜻이 담겨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잘 보지도 않는 미국 드라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예쁜 학용품에 열광하고 실크블라우스보다 그림 그려진 티셔츠에 더 눈길이 가는 나의 태도를 어리다고 판단한다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취향은 곧 개성이라는 게 내 생각이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는 하지만 친구라고 해서 반드시 같은 취향을 가질 이유는 없다. 물론 처음부터 취향이 비슷해 급속도로 친해지는 사이도 있다. 그러나 몇 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도 취향이 다른 판국에 복제인간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취향이 판박이처럼 똑같은 사람을 만날 수가 있겠나. 하물며 어쩔 때는 본인의 취향 마저도 마음에 안드는 것을.

사실 나는 요즘 여러 분야에서 내 취향이 뭔지 선명하게 이야기할 자신조차 없다. 이것도 좋은 것 같고 저것도 좋은 것 같고, 좋아하는 것과 어울리는 것의 괴리 속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이제껏 그게 내 모습이라고 그려놓은 형상이 순간순간 허물어지고 일그러지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갈팡질팡 우유부단하게 해매는 자신이 짜증스럽기도 하다. 취향에 대해 핀잔을 들으면 발끈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 같다. 나도 잘 모르는 취향을 누가 얼마나 안다고! 하기야 남의 눈이기 때문에 객관적이라 더욱 판단이 잘 서는 것일까? 그렇더라도 할 수 없다. 어리다고 놀리든 말든, 난 이렇게 살테닷.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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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 한번씩 이맘때가 오기를 기다린 사람들이 많다지만, 나는 4년에 한번씩 이맘때가 지겹다. '누구나' 월드컵에 '당연히' 열광하고 즐겨야 한다는 논리의 근거는 대체 무엇인지? 축구를 좋아하고 특히 국가 대항전은 더욱 좋아하고, 한국선수들 이외에도 현란한 발기술과 전술을 선보이는 전 세계 축구선수들의 기량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가슴이 두근두근 설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열정이 '보편적'이므로 모두들 그 열정의 물결에 휩쓸려야만 '정상'인 듯 몰고가는 상황들이 나는 짜증스럽다.

이미 광고는 죄다 붉은 물결로 도배가 되었고, 웬만한 오락프로그램도 월드컵 특집을 선보일 기세다. SBS가 독점중계권을 따내는 바람에 국민의 시청권이 침해되었다고 난리인데, 막대한 돈을 들여 다시 큰 돈 벌어보려는 꼼수를 쓰는 SBS는 내가 봐도 얄밉긴 하지만 월드컵 시즌마다 나 같은 월드컵냉소분자의 시청권은 늘 침해되고 무시되지 않았나 말이다. 타 방송국에서 소송까지 제기하며 중계권 다툼을 벌이는 모양인데, 솔직히 나는 월드컵 기간에 똑같은 경기를 앵커와 해설자만 바꾸어 틀어주는 걸 참아내느니 독점권 때문에 다른 방송에선 정규 프로그램을 틀어줄 수밖에 없을 요번 상황이 오히려 반갑다. 이런 나한테 대다수의 월드컵 팬들이 욕을 해대든 말든, 소수자인 내 의견은 그렇다는 뜻이다.

어제는 외출에서 돌아오다 차에 기름을 넣었는데, 주유를 끝낸 주유원이 대뜸 나에게 외쳤다. "화이팅입니다!"
난 당연히 그 말을 못알아듣고, 뭔가 더 볼 일이 남았나 싶어 되물었다. "네?" 
알고보니 대한민국 화이팅이라는 말이란다. -_-;; 잠시 그도 나도 뻘쭘해졌음은 물론이다. 얼른 창문을 올리고 주유소를 빠져나오며 문득 궁금했다. 월드컵을 오매불망 기다려온 붉은악마라면 주유원과 함께 '대~한민국!" 구호와 함께 그 유명한  박수도 치지 않았을까 하고.

생기는 것도 없이 그저 열정만으로 월드컵 응원을 위해 며칠 밤을 새고 봉사하고 즐기는 축구팬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뻘건 티셔츠 맞춰입고 길바닥에서 길길이 뛰며 환호하는 길거리 응원 따위에 휩쓸리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오죽하면 2002년에도 연구실에서 공부하다 학교 노천극장에서 들려오는 왁왁대는 함성이 시끄러워 짜증내며 집에 돌아왔을까. 이탈리아 전을 하고 있었던가, 길거리까지 한산하고 오래 기다려 도착한 버스엔 손님이 단 한명도 없어 학교에서 우리집까지 거의 논스톱으로 오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의 그런 집단적인 행동과 반응이 섬뜩하니 무서웠다.

8년 전엔 월드컵에 관심 없고, 5시간씩 화장실 참아가며 길바닥에서 탈진할 때까지 거리응원을 하는 아이들을 미쳤다고 여기는 나의 태도가 거의 돌맞을 수준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그래도 요샌 드물게나마 나와 같은 의견을 공공연히 토로하는 이들도 있고, 또 월드컵 안본다고 해도 정신나간 사람 취급하는 건 아닌 인식이 조금씩이나마 자리를 잡는 듯하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주제든 자기와 의견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그 다른 의견이 극소수라는 이유로 '이상하다, 유별나다, 비정상이다'라고 손가락질하는 대신에 흔쾌히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선선한 태도와 아량이 아직은 까마득히 먼 집단주의 사회이긴 해도, 티나게 욕하지는 않는 예의를 갖춰가고 있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이왕이면 한국팀이 좋은 성적을 거둬 많은 이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앞으로 몇주간 (월드컵이 언제 끝나더라?) 개인적으로는 월드컵을 안 볼 수 있는 소중한 나의 권리가 얼마나 지켜질지 그걸 더 열심히 관찰할 작정이다. 온 나라가 시끄러울 터이니 집안에서 조용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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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하나마나 푸념 2010. 6. 1. 22:06
야구 팬들이 최근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고 물으면 대뜸 멍해져서 민망해하기만 했는데, 요샌 아예 얼굴에 철판을 깔고 대답한다. 나는 <천하무적 야구단> 팬이라고.
물론 프로야구 원년엔 워낙 박철순 선수 팬이라 무조건 OB베어스를 응원하는 듯도 했지만, 박철순 선수가 안던질 땐 또 다른 팀에도 눈을 돌렸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연고지로 따지면 MBC 청룡을 응원해야할 것도 같았고, 고질적인 지방색을 타파하자면 그냥 공평무사하게 약팀을 응원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처럼 이렇게 팀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는 야구팬보다는 죽으나사나 한팀만 결사적으로 응원하고 충성을 다 바치는 야구팬이 훨씬 더 많을 테고 그게 정상인 것도 같다.

나의 두 동생들만해도 그렇다. 한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큰동생은 LG트윈스, 막내동생은 두산베어스 팬인데 그 역사가 무려 프로야구 원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막내동생은 어린 시절 무척 구두쇠라 저금통을 웬만해선 깨지 않는 아이였는데,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현재 두산 베어스의 전신인 OB베어스에서 리틀야구단을 모집한다는 신문광고가 나자 식구들과 의논도 하질 않고 저금통을 깨 당시 초등학생에겐 상당한 거금 (아마도 5천원이었던듯;;)을 회비로 내고 가입을 했고, 팀로고가 찍힌 야구공과 유리컵, 미니어처 배트 받침대, 야구모자, 티셔츠 등을 받아와선 제일 먼저 두각을 나타내며 프로야구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큰동생이 MBC청룡의 팬이 된건 어쩌면 먼저 치고나간 막내에 대한 반발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녀석은 우리 고향이 서울이므로 당연히 청룡을 응원해야한다며 막내동생을 배신자 취급했었다.

만날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TV앞에 앉아 옥신각신해대는 두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면서, 은근이 우리가 팀 선택을 종용하면 늘 "나는 지는 팀 편이다"라고 하셨다.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항의를 하면, 사는 건 서울이지만 어렸을 땐 피난 내려와 부산에서 살았으니 굳이 고향을 따지면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해야하는데 이놈저놈 다 딱히 마음에 안든다는 걸 이유로 대셨다. 그게 서울 한귀퉁이에 살던 한 집안에서 프로야구 응원팀이 제각각 나뉘게 된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리고 두 동생은 각자 고집스레 지금까지 구단주가 바뀌는 역사를 거쳐서도 여전히 그 맥락을 잇고 있는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의 팬이다.

헌데 두 동생네 집은 현재 상황이 좀 다르다. 뱃속 태아 때부터 제 아빠가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을 자연스레 자기 팀으로 세뇌당한 조카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횟수가 몇번 안되긴 해도 각기 제 아빠와 LG와 두산 모자를 쓰고 경기장에 나가 응원막대기까지 휘둘러본 경험이 있는 조카들은 우습게도 어른인 두 동생이 LG와 두산을 응원하며 티격거리는 양상과 똑같이 자기네 팀이 더 멋지다고 서로에게 시비를 걸기도 한다. 심지어 나이차가 나는 걸 이용하여 자기네 편으로 오지 않으면 놀아주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모태두산팬인 지우에게 정민이가 "지우야, 너는 누나랑 같이 LG팬 할 거지? 응? 안 그럼 안놀아준다~!" 이런 식이다) 

막내동생은 회사에서 아마추어 야구단도 만들어 간간히 경기도 하는 눈치고 집앞에서 아들녀석과 캐치볼도 꽤나 열심히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준우네가 야구와 두산베어스에 대한 충성도와 애정이 깊다. 그렇기 때문에 큰 일이 없는 한 준우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두산베어스나 그 맥을 이어나갈 팀의 골수팬으로 남기 십상으로 보인다. 나의 의문은 여기서 생겨났다. 과연 준우는 커서도 두산베어스 팬이라는 자기 색깔과 취향에 대해 아무런 회의감도 들지 않을까?  나처럼 야구팬이랄수도 없는 뜨내기나 방관자는 몰라도,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는 특정 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열정이 없으면 수십년씩 변함없는 열성적인 팬으로 남기가 힘든 것 같다. 간혹 구단에 환멸을 느껴 응원하는 팀을 바꾸는 이들도 있다고는 들었지만, 내 두 동생들처럼 초등학생 시절부터 25년 넘게 충성을 바치던 팀을 버리고 다른 팀에 정을 들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정치문제를 두고서도 사람들의 태도는 프로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비슷한 것 같다. 나처럼 싫증 잘내고 의심 많고 귀찮은 거 싫어하고 싫은 것도 많은 인간은 정치쪽에도 만날 이랬다 저랬다 고민이 많다. 최선이라고 믿을 인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노상 좀 덜 나쁜 놈 중에 그나마도 좀 나은 놈을 뽑다보니 기준이 들쭉날쭉이다. 하지만 내가 죽기 전에 과연 타파될 날이 있을 것인지 의심스러운 고질적인 지방색은 종종 사람들을 여전히 나누고 수십년씩 한 가지 색깔을 신봉하게 만들기도 하며, 그 취향을 대물림한다. 어린 시절부터 부와 권력을 누려온 젊은 아이들은 그 당연한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인 선과 번영이라 굳게 믿고 체화하였으므로 대를 이어 그 누구보다 보수적이고 우익세력이 된다. 진보적인 사고를 지닌 부모 밑에서 어려서부터 촛불시위에 따라다녀 보았거나 주류 언론의 행간에 감추어진 진실을 간파하는 법을 배운 경험이 있는 아이들 역시 대를 이어 세상을 올바르게 보는 법을 체득한다. 

불행히도 이 사회는 개천에서 더는 용이 나지 못하고, 부유함이든 가난함이든 권력이든 차별이든 모두 대물림으로 세습되는 사회가 되어가는 듯하다. 선거 때마다 뭔가 좀 달라지기를 빌어보지만 통 달라지지 않는 판세를 보아도,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이 매번 권력자로 당선되는 걸 보아도, 자기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웃이 당장 맨몸으로 거리로 나앉든 말든 상관없이 외면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그 생각은 굳어진다. 그러니 변화의 희망을 품는 게 오히려 헛된 짓인지도 모르겠다. 다양성과 융통성이 꿈틀거리기엔 너무 견고하게 굳어진 집단 이기심 때문이다. <나만 잘살면 되고, 나만 성공하면 되고, 내 자식만 공부 잘하면 돼>라는.

선거를 하루 앞두고 후보자들의 홍보물을 죄다 정리해 폐지로 구겨 넣으며 또 한번 착찹한 마음이다. 과연 요번엔 어떤 이들이 어떤 선택을 받게될지. 요번에라도 부디 대물림한 구태를 뒤집어 엎는 선택들이 많이 나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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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을 주기로 거의 비슷비슷한 집밥 메뉴가 반복되는 데 질린 무수리는 뭔가 색다른 걸 먹고 싶은 욕망과 그 <색다른> 것을 직접 요리해야 한다는 비애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다 결국 식탐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어제 오늘 만들어본 막요리 몇 가지를 기록한다. 대충 인터넷 레시피를 뒤져 적용했지만 시행착오도 있었고, 어떤 건 그냥 충동적으로 만든 거라 다음에 또 해먹고 싶을 때 참고하려면 어디든 적어놔야 할 것 같다.

<생굴 무침>
늘 식사준비에 들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걸 목표로 삼고 있으므로 생굴을 사와도 그냥 초고추장에 찍어먹기만 했는데, 모나브님의 염장 밥상 포스팅을 본 데다 며칠 밑반찬으로 두고 먹으려면 무치는 게 좋을 듯 싶었다. 모나브님 레시피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레시피를 참고했다.
재료: 생굴 500g, 무 한토막, 양파 반개, 다진 마늘 한 숟가락, 대파 반뿌리, 청양고추 한 개, 고춧가루 세 숟가락, 멸치액젓 한 숟가락, 천일염 두 숟가락(은 너무 많다, 적당히 조절 필요), 올리고당 한 숟가락, 매실청 한 숟가락, 참기름이랑 통깨 약간.
1. 무와 양파를 나박김치 모드로 납작하게 썰어 소금 한 숟가락(죄다 밥숟가락 기준)을 뿌려 1시간쯤 절인다.
2. 생굴을 소금물에 씻어 체에 건졌다가 역시나 소금 한 숟가락을 뿌려 역시 1시간 절인다.
3. 고춧가루와 다진마늘, 다진파, 송송 썬 청양고추, 멸치액젓, 올리고당, 매실청 양념을 한군데 쏟아 섞어 놓는다. 고춧가루를 불려야 잡스러운 맛이 없어진다고 어디선가 조언하더라.
4. 절인 무를 먹어보니 너무 짠 것 같아서 얼른 씻어 물기를 꼭 짰다. 다음엔 반 숟가락만 넣고 절일 것.
5. 생굴도 너무 짜질까봐 다시 살짝 물로 헹궈 체에 받쳤다.
6. 양념에 물기 뺀 굴과 무, 양파를 넣고 살살 버무린다.
7. 참기름과 통깨로 마무리.
그럭저럭 맛있어서 뿌듯했다.

<물미역 초고추장 무침>
재료: 물미역, 소금 약간, 고추장, 식초, 다진 마늘, 참기름, 올리고당, 통깨 (분량도 재료도 내맘대로였음)
1. 물미역을 잘 씻어서 뿌리를 잘라버리고 손질한다.
2. 냄비에 물을 끓여 소금 약간 넣고 물미역을 데친다. 갈색 미역이 금세 초록색으로 변하므로 적당히.
3. 데친 미역이 좀 미끌거리는 것 같아 찬물에 한 번 씻은 후 기다란 미역을 먹기 좋은 크기로 가위질 또는 칼질해서 자른 뒤 물기를 꼭 짠다.
4. 고추장 서너 숟가락, 다진 마늘, 참기름, 올리고당, 식초를 적당히 넣어 조물조물 무치며 맛을 봐 완성한다.
새콤달콤 꽤 먹을만한 샐러드 대체 반찬이 탄생됐다.

<달래장 콩나물밥>
재료: 콩나물, 잡곡, 달래, 다진 마늘,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약간, 통깨.
1. 잡곡을 씻어 평소보다 물의 양을 반눈금 정도 적게 압력밥솥에 앉힌다. (콩나물밥은 흰쌀로만 하는 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집 쌀독엔 이미 백미, 현미, 흑미, 보리쌀, 서리태, 기장쌀이 모두 섞여 담겨 있으니... 솔직히 난 어려서도 콩밥을 좋아했고 잡곡밥에 익숙해져서 흰 쌀밥 싱거워서 싫은데, 왕비마마도 조카들도 흰쌀밥이 좋단다. 나 원참)
2. 콩나물도 깨끗이 씻어서 앉힌 쌀 위에 얹는다.
3. 취사를 눌러 밥이 되는 동안 달래장을 만든다.
달래 뿌리쪽 가운데 들어 있는 딱딱한 껍질 같은 걸 일일이 떼내는 게 귀찮아서 잘 안사다 먹는데, 역시나 그 과정이 제일 싫었다. 암튼 다듬은 달래를 잘 씻어서 체에 받쳐 물기를 뺀 뒤 쑹덩쑹덩 2cm쯤 길이로 잘라서 (개인적으로 너무 잘게 다지는 것보다는 씹히는 게 많은 달래장이 좋다. 거의 달래나물 수준으로 ^^) 간장과 고춧가루 약간, 다진 마늘 한 숟가락, 참기름, 통깨를 넣으면 끝이다. (달래 향이 파랑 비슷해서 나는 달래 무칠 땐 파를 넣지 않는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4. 취사가 끝나면 콩나물과 잡곡밥을 잘 섞어서 푼 뒤 달래 위주로 양념장을 푹 퍼 넣어 비벼 먹는다. 예전엔 달래장에 식초를 좀 넣어 만든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생략.
콩나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면, 콩나물밥은 가끔 먹고 싶어진다. 만날 로망만 품다가 실로 몇년 만에 시도해본 건데 맛있었다!

<달래장 두부조림>
달래장이 너무 많아서 소진용으로 생각해낸 반찬이다.
재료: 두부 한 모, 포도씨유 약간, 위에서 만든 달래장.
1. 두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프라이팬에 포도씨유를 넣고 부친다. 내 경우 두부 한 모를 12등분했다. 
2. 노릇노릇 부쳐진 두부를 냄비에 담고, 달래장을 적당히(?) 위에 얹어 살짝 불에 조린다.
보들보들 고소하고 담백한 두부조림 완성.  

전생에 궁궐 사는 왕족이었든 수랏간 나인이었든 어쨌거나 나는 반찬이 수두룩하게 놓인 밥상이 좋다. 최소한 7첩반상은 돼야 행복을 느끼는 편이고, 반찬이 단촐하면 밥먹기가 싫다. 누군가 해바치는 밥상을 받아먹을 운명이 아니고서야  참 더러운 취향이다. 복잡한 게 싫어서 일품요리 위주로 간단하게 먹는 걸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난 그렇게 먹으면 밥심이 2시간밖에 가질 않는 느낌이다. ㅠ.ㅠ 이 못말리는 식탐이 슬프다. 어쨌거나 이삼일은 국이랑 생선만 구워 먹어도 밥상이 풍요롭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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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참 먹은 김에 키드님의 홍대 설경 사진을 보고 나서 포스팅해야지 생각했던 조폭 떡볶이 이야기나 해야겠다. 
홍대앞에 자주 다니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홍대앞 주차장 거리의 명물 포장마차 조폭 떡볶이가 글쎄 점포를 냈다고 했다. 원래 있던 자리에도 포장마차는 그대로 운영을 하고 있지만 그 옆쪽으로 번듯하게 테이블을 갖춘 점포를 냈으며 상호도 <조폭 떡볶이>로 간판까지 내걸었다고 했다. 드럼통 몇 개 엎어놓은 손바닥 만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만날 줄을 서서 먹을 만큼 장사 잘 되던 가게가 번듯하게 점포를 넓히면 희안하게 맛도 달라지고 서비스도 달라져 결국엔 망하고 마는 이상한 경우를 익히 보아왔던 나는 더럭 걱정이 앞섰다. 일단 포장마차와 점포 두 곳으로 나뉘면 당장 떡볶이 맛부터 달라질 게 아니겠나 말이다!

내가 처음 조폭 떡볶이 포장마차의 존재를 알개 된 것은 무려 15년전이다. 홍대 클럽이 지금처럼 정신 사나워지기 훨씬 이전에 얼떨결에 단체로 춤바람이 들어 일주일에 두번씩은 꼬박 <황금투구> <명월관> <발전소> <조커 레드> <흐지부지> 따위의 클럽에 놀러 다녔던 시절, 신나게 춤을 추고 나온 뒤의 출출한 뱃속을 채우기엔 딱이었던 그곳을 소개한 후배는 당연히 그 유명한 전설을 내게 들려주었다. 무뚝뚝한 얼굴로 주문을 해도 듣는둥 마는둥 대답도  잘 안하고는 기막히게 손님들이 주문한 메뉴를 턱턱 내주는 주인 아저씨가 전직 조폭인데 마음 잡고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터라 가끔 깍두기 아저씨들도 찾아와 말없이 오뎅과 순대를 먹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잘 살피면 얼굴 어딘가에 사연 깊어 보이는 흉터도 있다는 전설이었다.
 
몇년 계속 들락거리며 들으니 그건 그야말로 전설일 뿐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하도 무뚝뚝해서 그런 헛소문이 돌았다는 카더라 통신도 함께 떠돌았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건 밤마다 일대 포장마차는 하나같이 파리를 날려도 그 포장마차는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조폭 떡볶이>가 그 무시무시한 전설과 함께 그토록 오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맛이었다. 그 집 떡볶이는 내 머릿속에 <이상>으로 자리잡은 떡볶이의 맛에 가장 부합하는 맛이다. 특별히 잡다한 양념 맛 없이 그저 고추장과 물엿으로 맛을 낸 듯한 담백하고 쫄깃한 맛이랄까. 순대와 튀김, 김밥, 오뎅까지 다른 메뉴도 골고루 먹어봤지만 일단 언제나 손님이 많아서 회전율이 높으니 모든 메뉴가 다 신선할 수밖에 없고, 특히 떡볶이는 그 주변 포장마차 떡볶이를 거의 다 먹어봤어도 비슷한 맛조차 내지 못할 만큼 맛이 있었다. 문득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일만큼, 자주는 못가더라도 나 혼자 단골이라 여기던 포장마차였기에 점포확장을 빌미로 행여 맛이 변할까봐 염려스러웠던 거다.

다행히 친구 말로는 맛이 변한 것 같지는 않더라고 했는데,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는 법이어서 마침 죄다 떡볶이 애호가들이 모인 지난주에 칼바람과 빙판길을 무릅쓰고 새로 열었다는 주차장길의 조폭 떡볶이 점포를 찾았다.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풍선기둥엔 상호와 함께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피식 웃음부터 나왔는데, 과연 조폭 주인아저씨가 점포의 주방을 직접 맡을 것인가 과거처럼 포차에 올라 앉아 있을 것인가 염려했던 내 걱정은 점포 외부에 설치된 높은 주방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본 순간 누그러졌다. 가게가 생기긴 했지만,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주방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되는 대로 자리를 잡고 먹는 셀프 시스템이었다. 가게 인테리어는 <조폭 떡볶이>라는 상호와 부조화를 이룰 만큼 뜻밖에도 대단히 여성스러운(?) 느낌에 아늑하고 깔끔하고 고급스러워보일 정도였다. 그뿐인가, 가게 안에 마련된 남녀 분리된 화장실까지 깨끗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제일 중요한 떡볶이 맛은 옛날 맛 그대로였다. 초저녁에 떡볶이를 처음 만들고 있는데 혹시라도 그냥 빨리 먹고 싶어 재촉을 하면, 아저씨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끝까지 양념을 다 졸여 맛이 밴 다음에 퍼주던 바로 그맛. ^^;

신촌에도 포장마차가 꽤 많지만 거긴 떡볶이를 만드는 네모난 판이 하나밖에 없어서 떡볶이가 거의 떨어져 갈 때면 거기다 다시 물을 붓고 흰떡을 넣고 다시 양념을 해 한쪽에서 조리를 하기 때문에 영 재수가 없으면 고추장 물에 빠진 맛대가리 없는 떡볶이를 억지로 먹어야 할 때도 있지만, 최소한 조폭 떡볶이집에선 그런 되다만 떡볶이는 팔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최고 인기 품목인 떡볶이가 다 팔려나가기 전에 언제나 옆에서 새로운 떡볶이를 한 판 미리 준비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래서 그토록 오래 한 자리를 지키며 명성을 쌓았겠지만...

이번에 연 가게엔 조폭 떡볶이의 역사가 무려 20년이며, 조폭 소문에 대해서도 정말로 무뚝뚝한 말투 때문에 받은 오해였다는 해명 내용의 벽걸이가 걸려 있었다. 소화 안된다고 다들 툴툴거렸던 게 무색할 만큼 떡볶이와 순대 오뎅 튀김을 후딱 먹어치우며 생각해보니, 지난 여름에 그 옛날의 춤바람 파트너와 만난 김에 부러 포장마차엘 갔던 게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로는 홍대쪽에 갈 일이 있어도 배가 너무 불러 떡볶이엔 생각도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반년간이나 내가 거들떠보지 않았는데도 그간 꾸준히 바글바글 손님이 몰리고 돈을 많이 벌어 번듯한 가게까지 낸 조폭 떡볶이 아저씨들은 어쩐지 점포확장 했다고 맛과 서비스가 달라져 결국 망하고 마는 이상한 음식점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 같다. 15년 전엔 주인 아저씨 혼자였던 것 같은데 몇년 지나며 일손을 돕는 아저씨들이 하나둘 늘어갔고 이젠 테이블을 닦아주는 아르바이트생 같은 예쁜 언니에다 설거지용 주방에서 빈 그릇을 닦는 아줌마들까지 갖추었지만, 떡볶이 값은 몇년째 15년 전보다 겨우 500원 오른 2500원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떡볶이 맛이 변함없으니 하는 말이다. 

춤바람은 사라진지 오래여도 홍대앞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동네지만, 15년전의 추억대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곳은 조폭떡볶이가 유일한 것 같다. 역시나 춤바람 일행들이 오래도록 열광했던 버섯칼국수집도 자리를 옮기고는 옛날의 영화를 잃고 말았다. 확실히 칼국수며 김치 맛도 그 옛날의 맛이 아니라 나부터 가고싶지 않아졌으니, 조폭떡볶이마저 맛이 변한다면 무척 허무할 거다. 조폭떡볶이 아저씨들이 계속 승승장구 번창해서 아예 그 자리에 건물을 세우는 날까지 한결같은 맛과 무뚝뚝함을 유지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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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한해 정리

놀잇감 2010. 1. 2. 01:39

글 하나에 2009년을 정리해 담는 행위는 퍽 뿌듯하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하다. 이른바 삶의 <낙>이라고 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을 수도 있고, 요것밖에 없었나 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실한 기억력으로도 요것밖에 없었나 허망한 느낌이 들 것이라는 데 심증이 가지만, 하여튼 꼽아보자. 나의 2009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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