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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08 연어 덮밥 3
  2. 2015.03.06 쇠고기 무국 11
  3. 2015.02.25 아른아른... 8
  4. 2014.02.06 AI야 가라, 닭고기는 맛있어~ 4
  5. 2013.09.23 먹는 게 남는 것 11
  6. 2013.03.16 신촌 돈텐동식당 2
  7. 2013.03.14 혜화동 나들이 6
  8. 2013.01.18 올림픽 수제비 10
  9. 2012.09.14 몸 생각 2
  10. 2012.09.08 달걀 삶기 8

연어 덮밥

식탐보고서 2020. 5. 8. 20:59

 

어버이날 행사는 늘 주말에 미리 당겨서 동생들과 모여 밥을 먹지만, 정작 당일날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지나기가 좀 그래서 어차피 먹는 밥이지만 또 한번 메뉴에 신경을 쓰게 된다.  해서 작년 어버이날엔 스테이크를 구워 곁들이 채소와 함께 접시를 채웠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다음주 채혈을 앞두고 있어서 최소 일주일간은 나름 눈가리고 아웅 건강식으로 열량을 제한하는 중이라 가벼운 메뉴로 연어덮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칭찬에 워낙 인색하신 엄마가 맛있다 맛있다 여러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 처음 만들어본 거라 간이 어떨까 걱정했는데 간도 딱 맞았기에, 다음에도 참고하려고 여기에 기록해둔다. 

그리고... 마트에 나간 김에 카네이션도 사왔는데 ㅠ.ㅠ 아이비랑 카네이션을 예쁘게도 섞어 잘 키웠네 생각하며 들고 와보니 꽃은 조화였다. 나 원 참. 그 옆에 카네이션만 있는 화분도 있었는데 꽃이 별로 안 예쁘길래 탐스러운 것으로 골랐더니 럴수럴수 이럴수가. 눈이 삐었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가 보다.  

재료: 생연어 200g(2인분), 양파 1/4개, 다진 마늘 약간, 간장 1과 1/2숟갈, 참기름 1숟갈, 설탕 1티스푼, 고추냉이 약간, 후추, 요리술, 달걀노른자, 무순

 

1. 생연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오미자요리술에 담가 10분쯤 냉장고에 넣어둔다.

2. 다진 양파와 다진 마늘에 간장, 설탕, 참기름, 고추냉이, 후추를 넣고 휘휘 젓는다.

3. 재웠던 연어를 건져 요리술을 잘 짜낸 뒤에 양념장에 버무린다.

4. 뜨거운 밥은 좀 식혀야 한다고 해서 그릇에 미리 담아 더운 기운을 뺐다. 담아놓은 밥 위에 양념한 연어와 무순을 올리고 맨 위에 달걀노른자를 얹는다.

5. 노른자를 톡 터뜨려서 비벼 먹으면 됨. 

연어보다 달걀노른자가 주인공처럼 나왔다. ㅋㅋ 연어를  칼로 길쭉하게 잘랐지만 결국 비빌 땐 가위로 더 잘라드려야했다. 다음엔 깍둑썰기로 해야지. 내가 찾아본 레시피엔 부추나 쪽파를 넣으라고 했는데, 마트에 가보니 너무 거대한 양을 사기 꺼려져 내맘대로 무순을 넣어봤는데 완전 딱이었다. 다음엔 무순을 더 많이 넣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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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무국

식탐보고서 2015. 3. 6. 01:40

한밤중에 일하다 말고 종종 국을 끓인다. 큰 냄비에 잔뜩 국을 한번 끓이면 꼬박 서너끼는 먹을 수 있는데, 공교롭게 딱 엄마가 홀로 챙겨드실 아침에 먹을 국이 없으면, 괜히 신경이 쓰여서 일도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저녁 설거지 하면서 미리 생각해서 찌개나 국을 만들어놓기도 하는데, 오늘은 냉동실에 얼려놓은 고기 녹이는 걸 너무 늦게했다. 


여름엔 당연히 잘 안 끓이고, 봄과 가을에도 종종 생략하지만, 추운 겨울 동안엔 밥상에 국이나 찌개가 없으면 아무리 반찬을 많이 해놓아도 밥순이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 같은 자격지심에 휩싸인다. 뜨끈한 국물은 고혈압의 적! 아무리 싱겁게 끓인다 해도 국물은 남기시오! 찌개랑 국도 그냥 젓가락으로 건더기 위주로 먹기! 밥상머리에서 온갖 잔소리를 해대면서 또 국물이 없으면 찔리는 건 뭔가. 쳇...


해동한 쇠고기를 덩어리째 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그 사이 물을 끓이다가 고기를 풍덩. 통마늘도 대여섯 개 투입. 대파와 표고버섯도 숭숭숭 썰어넣은 뒤, 고기 익는 동안 달큰한 제주도 무를 나박나박 썰었다. 쇠고기 무국은 정말로 겨울에 먹어야 제일 맛있는 듯. 여름무는 종종 쓰고 매워서 똑같이 끓여도 맛이 없다. 30분쯤 끓여서 덩어리 고기가 다 익으면 집게로 붙잡고 가위로 조각조각 먹기 좋게 자른다. 식가위 없을 땐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몰라. 포기 김치도 당연히 가위로 잘라 먹는데, 이젠 아주 제법 가지런히 도마에 자른 것처럼 차곡차곡 잘라 그릇에 담는 신공까지 익혔다. ^^v


물론 명절이나 제사 때 올리는 탕국을 끓일 땐 상스럽게(!) 가위질을 하면 안되니깐 특별히 좋은 양지를 사다가 익혀서 결 따라 찢어 따로 국간장에 참기름에 갖은 양념을 해 놓았다가 고명을 올리듯 다시 탕국에 데워 수북하게 놓는다. 그치만 그냥 두 모녀 먹자고 그런 정성을 들이긴 싫다! 가끔 괜한 정성이 뻗쳐서 얼마 되지도 않는 뜨거운 고기를 건져 양손에 비닐 장갑 끼고 찢고 있노라면 괜히 서러워지는 걸 ㅠ.ㅠ 암튼 그래서 대충 먹는 쇠고기 무국 고기는 그냥 가위질로 낙착. 무는 금방 익으니깐 투입 시간은 고기 자르고 나서.


고기가 더 잘 무르기까지 총 1시간은 족히 끓여야하니 계속 시간을 확인하느라고 어차피 일엔 집중할 수가 없다. 자칫 까먹고 있다가 몇시간 지나 홀라당 국물이 졸아버리면 큰 낭패. 국냄비는 아직 그런 적이 없지만 찻주전자는 물 올려놓고 딴짓하다 하도 많이 태워먹어서리... -_-;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풍긴다. 요번에 표고버섯이 좋았나? 아니면 무가 특히 달콤한가? 아직 소금도 넣기 전인데 다른 때보다 더 감칠맛 나는 냄새가 풍기는 이유는 뭐지? 쇠고기는 늘 사던건데... 이건 마치 그 옛날 방학때 놀러간 외할머니댁에서 아침 일찍 잠결에 풍겨오던 추억의 냄새 같기도 하고. ㅋㅋ 우리집이나 친할머니 댁에선 특별히 아침밥 준비하는 냄새에 잠을 깬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한옥집의 구조 때문인지 외할머니댁에서 자면 안방에서 자든, 건넌방에서 자든, 뒷채 구석방에서 자든 고소한 나물 볶는 냄새나 구수한 국 냄새에 선잠이 깨곤 했다. 심지어 새까만 가마솥에 짓는 밥냄새도 분간이 되어, 노랗게 일부러 눌렸다가 통째로 들어내는 바삭한 가마솥 누룽지 먹을 생각에 자다말고 침을 삼기키도.


물론 일찌감치 아침밥 먹으라고 할머니가 깨우면 이잉 이불 쓰고 누워 버티다가 느즈막하게 한번 더 차린 아침상을 게으름뱅이들끼리--외삼촌들, 사촌언니, 그리고 나--둘러앉아 먹었었다. 그때 먹은 무국엔 분명 쇠고기는 없고 다시마랑 무랑 표고버섯이랑 유부가 들어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 내가 끓이는 거랑 냄새가 똑같다고 느껴지는지? 내 착각이 틀림없다. 내가 '기억'한다고 우겨대는 수많은 추억들이 상당부분 왜곡되어 실제와 거리가 있듯이, 추억으로 남은 냄새도 내가 막 제멋대로 꾸며댔을지 모르겠다. 


느릿느릿 이 글을 적어대는 사이 1시간 경과. 드디어 소금으로 슴슴하게 간을 하고 가스불을 껐다. 이젠 그만 일할 시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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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른아른...

식탐보고서 2015. 2. 25. 17:40

어떤 요리프로그램이었나, 거기 나온 요리사가 그랬다. 탄수화물을 기름에 튀기면 어떻게 하더라도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고. 온갖 튀김 재료에 특히나 겉에 튀김옷을 입혀 더욱 바삭바삭하게 만드는 건 그 때문인 듯. 


아무튼... 튀긴 음식은 온갖 대사증후군을 지니고 계신 어마마마에게 절대 피해야할 음식이고, 나 또한 탐닉하는 만큼 뱃속은 튼튼하질 못하게 된 고로 웬만하면 튀김을 먹는 일이 드물다. 프라이드 치킨이든, 돈까스든, 탕수육이든... 혹시라도 식탐을 부려 먹게 되면 다음날 속깨나 아픈 걸 감당할 각오를 해야.. (튀김 하나 먹는데 뭐가 이리 비장한가. ㅋ)


하지만 하지 말라는 것, 못하게 된 것에 대한 욕망은 점점 더 커지는 법. '그래, 먹고 죽자' 싶은 심정으로 나몰라라 먹어댈 때가 있다. 주로 '치+맥'의 형태. ^______^ 거기다가 또 하필 요새 정붙일 곳 없이 방황하던 내가 탐닉하는 TV 프로그램은 죄다 먹는 게 주제다. <삼시세끼 어촌편>, <수요미식회>, <냉장고를 부탁해>


막강한 차줌마의 온갖 진기명기 요리솜씨 때문에 자괴감마저 든다는 아줌마들이 주변에 꽤 많은데(홍합 짬뽕 때도 놀랐지만 요번에 화덕을 오븐으로 개조해 테스트 베이킹을 거쳐 식빵까지 완벽하게 구워내는 걸 보고는 두손두발 다 들었다. 그냥 그는 차줌마가 아니라 '차셰프'다. +_+),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스피드'라고 말하는 성질 급한 차승원의 '빨리빨리' 해치우는 요리가 나랑 비슷한 점이 많아 완전 신이 나서 구경하고 있다. 음식 만드는 데 시간 오래 걸리는 거 진짜 싫고, 있는 재료로 대충대충 만들지만 꽤 맛은 비슷하게 내는 거 좋아좋아... ㅋㅋ 다만 모든 양념에 설탕을 넣는 건 불만이다. 매운탕 양념에도 설탕을 넣다니! 으어... 개인적으로.. 감칠맛은 몰라도 단맛 나는 찌개는 싫다규~


<수요미식회>는 허름해도 오랜 전통을 지켜온 가게들 위주로 음식의 통사까지 대충 훑어주는데다 패널 별로 아주 매몰차게 의견이 갈리고 비판도 서슴칠 않는 점이 흐뭇하다. 쓸데없이 유명한데 맛없는 집이 좀 많은가 말이다. 줄서서 먹어야하고 심지어 선불에다 자리에 앉자마자 쫓겨나다시피 흡입해야하는 명동 칼국수집 얘기 나왔을 땐 많이 통쾌했다. 나 역시 어려서부터 부모님따라 다닌 집이고, 아직도 그 집 만두와 칼국수 좋아하는 지인이 있어서 일단 마음을 접고 아직도 1년에 한두번 가고는 있지만 먹고 나면 늘 찝찝텁텁. 얼마 전 서울 장안의 '치킨' 집을 다루었을 땐 TV보며 아주 괴로웠다. 하마터면 바로 다음날 반포 치킨 먹으러 달려나갈뻔... (대신에 며칠 뒤 집 근처의 영양센타 전기구이 통닭을 먹어주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매번 진짜로 출연진의 냉장고를 옮겨다가 그 안의 재료로만 그럴싸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와 솜씨가 기발하고 놀랍다. 나도 단지 장보러 나가는 게 귀찮아서 냉장고 텅텅 빌 때까지 막판엔 요것조것 '퓨전' 반찬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까. 본인도 내용물의 존재를 잘 모르는 남의 냉장고 들여다보며 놀려대는 재미도 쏠쏠. 이것도 못말리는 관음증이겠지. ㅋㅋ 아무튼 요리엔 맛의 조화를 짐작하는 센스와 순발력, 창의력이 새삼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역시 요리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어... 오랜 시간 공들이고 정성 바치면 누가 못하겠나, 후다닥 단시간(15분!)에 있는 재료만으로 꽤나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낸다는 구상이 딱 내 취향이다. ㅎㅎ 간혹 일반인이 만든 요리가 전문가 셰프의 요리를 이기는 반전도 흥미진진.  


하여간 설날 연휴 내내, 그리고 바로 어제까지도 남아있던 각종 전을 데워먹었고 주말엔 밖에 나가서 '리치'한 ^^; 맛의 토스트와 감자튀김도 먹어주었건만, 자꾸만 휴대폰에 든 먹거리 사진 중에 감자튀김과 맥주 사진이 아른거려 새삼 들여다보게 된다. 아으...


이 포스팅도 그 감자튀김 열망을 식혀보고자 시작한 것인데 딴소리가 길었다. ㅜ.ㅜ



경복궁 역 근처 체부동 음식점 골목 안쪽, '열정 감자'로 시작했다가 상표 등록 문제로 이름을 바꾼 '청년 감자'의 감자튀김과 맥주다. 고깔모양 봉투를 편의점 앞에서 흔히 보는 플라스틱 테이블 가운데 홈에 푹 꽂아주는 게 특색. 사실 좀 짜고 너무 자극적인 맛이라 일반 튀김도 같이 시켰지만 역시나 나중엔 케이준 맛으로 더 시켜 먹었다. 둘이서 감자튀김 세 봉다리를 먹었네그려... 더불어 크림맥주도 꽤나 마신듯. 파이렉스 계량컵에 맥주를 담아주는 것도 특이한데, 나는 잔도 무겁고 계량컵이라는 원래 용도가 거슬려서 쫌 별로다! 그래도 바삭한 감자튀김이 저렴하니 맛있고, 특히나 '젊고 잘생긴 엉아들'이 마구 뛰어다니며 친절하게 서빙하는 게 마음에 들었었다. ㅋㅋㅋ 알바생이 아니라 다들 정규직원이라는 것 같지 아마. 재미난 별명 등에 적힌 검정색 티셔츠 입고 있었던 여름에 주로 많이 갔었는데, 화장실이 불편해서 한두잔 후딱 마시고 일어나야 하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종종 생각난다는 게 함정. 


유학중 남편 먼저 학위 따게 뒷바라지 하랴, 아들 둘 키우랴 본인 공부하랴 엄청 바빴던 친구는 그 놀라운 상황 속에서도 여러 종류 김치를 직접 담그고 심지어 육포까지 집에서 만들어 먹이던 좀 심한 열혈 슈퍼우먼이었는데(미쿡에서 사먹는 김치와 육포는 너무 비싸고 무엇보다도 재료가 못 미더워서였다고;;), 10년 가까이 이어지는 유학 생활 중 쌓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프렌치프라이를 대형 오븐에 두판 쯤 구워서(? 그래도 프렌치'프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먹어댔다는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감자튀김은 아직도 자기에게 스트레스 해소용 힐링음식이라나. 학창시절 '하늘하늘 코스모스 신비소녀' 분위기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친구가 나와 함께 와구와구 감자튀김에 맥주까지 꽤 많이 마셔서 놀랐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다. 


1월 어느날이었던 것 같은데 저 사진 찍은 날도, 자극적인 감자튀김 때문에 맥주를 주량 이상 들이키고는 다음날 수북하게 부은 눈으로 속이 아파 한참이나 빌빌 거렸던 기억이 생생하건만 지금 막 땡기는 건 뭐지... 그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지도. ㅋ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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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적고보니 뜬금없이 노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폭포가 '나이야가라'라는 관광버스 유머가 생각났다. -_-; 암튼 인간의 탐욕 때문에 좁고 더럽고 스트레스 심한 환경에서 사육된 조류들의 질병이 더는 생겨나지 않도록 세상이 좀 바뀌면 좋겠다. 읽혀 먹으면 닭고기 오리고기는 아무 문제없다고 언론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마트나 시장에서 일단 닭과 오리를 사기가 힘들어진 것 같고 (특별 할인 스티커를 붙이고 있지 않으면, 아예 매장에서 제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 AI가 수도권까지 퍼졌으니 죄다 살처분하고 나면 당분간 닭고기 오리고기 값은 고공행진일듯. 이런 악순환은 좀 어떻게 안되겠니!

 

먹거리 포스팅이 뜸하다는 나무샘의 요청에 힘입어, 그리고 AI가 수그러들기를 바라는 닭고기 애호가의 마음으로 그간 먹어댄 닭고기 음식 사진을 모아보았다. 닭고기는 정말이지 어떻게 요리해도 맛없기가 어려운 재료가 아닐지. 내가 다 애정하는 집들인데, AI 때문에 닭수급에 어려움이나 심히 겪지 않기를 바란다.

 

1. 동대문 원조 닭한마리 칼국수

 

내가 동대문 시장 뒷골목에 자리잡은 양푼 닭한마리 칼국수를 처음 접한 건 90년대 초. 같이 졸업한 학교 선배가 동대문 근방 청계천변에 헌책방을 인수했고, 개업 축하 비슷하게 친구들과 몰려갔던 날 선배가 닭고기의 신천지를 소개했다. ^^;

등에 감자를 꽂은 닭 한마리가 통째로 냄비도 아니고 커다란 양푼에 담겨 나오는데, 시커먼 가위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어설프게 가위질을 할라치면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어우... 근데 겨자와 간장 식초 따위를 넣은 양념장에 찍어먹는 닭고기 맛이 그야말로 신세계! 인근 시장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술집 정도로 알고 있었기에, 자주 갈 기회도 없었는데 회사 생활 때려치우고 번역을 한답시고 준백수처럼 대낮엔 학원다니고 나이 어린 친구들과 몰려다니게 되자,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닭한마리 칼국수를 먹으러 가기에 이르렀다. 외국인 선생들이 이런 험악한 음식을 더 좋아할줄이야! (국물까지 싹싹 저 양푼을 바닥까지 비우고는 뿌듯해하며 여럿이 양푼 쳐들고 찍은 엽기 관광객 모드 사진도 어딘가 있다) ㅎㅎ 암튼 동대문에 밀리오레, 두타 같은 패션타운이 생겨나면서 야시장 구경을 수시로 다녔던 시기까지 겹쳐, 30대 중반까지 참 많이도 먹으러 다녔다. 그러나 그 뒤로 너무 유명해지고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점점 외국 관광객들을 포함해 찾는 사람들도 많아져 줄을 오래 서야하는 게 싫어 이젠 아주 많이 별러야 가는 정도. 정 먹고 싶으면 집에서도 비슷하게 흉내내서 끓여먹기도 하는데, 맛을 똑같이 낼 순 없다. 그러니 노상 그렇게 사람들이 많겠지. 90년대에도 이미 주인 할머니는 여름 내내 하와이 별장에 가서 쉰다는 둥, 빌딩이 수십채라는 둥 갑부설이 나돌았었다. ^^; 저 사진을 찍어온 날은 울 엄니까지 대동하고서 추위를 뚫고 동생네랑 갔었는데, 노인 동반 대가족 프리미엄 덕분에 줄 서 기다리는 남들보다 금방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하이고, 그러고 보니 20년 넘게 다녔다는 얘기다. 중간에 가게에 불도 나고 아들이 분점 내면서 맛이 변했네 어쨌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째뜬 20년 넘게 안 없어지고 건재하는 게 고맙다. 시장통 골목 음식점이라 위생이니 친절이니 꼼꼼하게 따질 순 없지만 묘한 중독성을 지닌 맛인 걸 어쩌겠나. 추릅.... 올 겨울 가기 전에 한번 더 가봐야지. 

 

2. 춘천 우성 닭갈비

 

작년 가을 남이섬에 갔을 때 선착장 근처에서 도저히 닭갈비라고 부르기에 화나는 수준의 닭갈비를 먹고는 춘천 원조 닭갈비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그 다음 달에 다녀왔다. ㅋㅋ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명동 닭갈비 골목 말고 춘천 시민들이 간다는 바로 그 우성 닭갈비! (파피야 고맙다 ^^;)

삽처럼 커다란 뒤집개가 아주 인상적이지 않은가? ㅎㅎㅎ

원래 닭갈비는 숯불에 구워먹는 거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닭갈비는 저렇게 철판에 볶아먹어야 제맛인 것 같다. 방산 시장 가서 저런 철판을 사다가 한번 해먹어보면 비슷한 맛이 나려나 늘 궁금한데, 그런 수고를 들이느니 그냥 춘천으로 먹으러 다니는 게 낫지, 그러며 참는다. 알싸하고 시원한 동치미까지 곁들여 먹으려면 암.. 가서 먹어야하고 말고.

이날 꽤 아침 일찍 서둘러 갔기에 내 생각 같아선 소양댐도 올라가고 청평사도 가고 그럴까 싶었으나, 동행의 반대로 소소하게 공지천 산책길만 둘러보고 춘천MBC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고는 휭하니 올라와 좀 아쉬웠다. 순전히 닭갈비 먹으려고 춘천 가는 여자다 나. ㅋㅋ 

 

 

3. 부암동 계열사 치킨

 

부암동 치킨집이 서울 3대 치킨에 든다는 말을 들은 터라, 김환기 미술관 구경갔던 날 꽤나 벼르고 기대해서 찾아간 곳.

요즘 추세처럼 튀김옷에 온갖 양념과 자극적인 맛을 첨가하는 게 아니라 옛날 방식으로 담백하게 튀겨낸 치킨이었다. 치맥은 진리~ 라며 생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먹으니 맛은 있었지만, 진짜로 이게 서울 3대 치킨이라고? 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음. 물론 치킨과 같이 나오는 큼지막한 감자튀김이 흡족했고 둘이서 배가 터지도록 바구니를 싹 비웠지만, 소문처럼 그렇게 몇시간씩 줄 서서 사먹을 만한 맛인줄은 잘 모르겠다. 다행히 이 날은 춥기도 했고 평일 저녁이라 줄을 서야하는 문제 따윈 없었으나, 우리가 나올 무렵엔 거의 자리가 없었다. 듣자하니 맥주를 제외한 안주메뉴는 추가주문이 안된다고. 골뱅이 세트도 있는데 그런 건 앉자마자 시켜야한다는 뜻. 켁.. 하여간 저 한바구니에 2만원이다.

나중에 부암동 주민께 물어보니, 원주민들은 이집보다 되레 그 골목 안쪽에 있는 다른 치킨 집 맛을 더 쳐준다고... 나중엔 그 집에 가서 한번 먹어보고 비교해야지.

 

 

4. 백숙

 

 

사실 닭고기는 집에서도 일주일에 한두번 이상 해먹는 것 같다. 백숙과 안동찜닭을 번갈아 해먹는 중간중간 닭안심을 사다 얼려두고는 스파게티에도 넣으니까. 하지만 토종닭 백숙은 뭐 딱히 요리랄 것도 없어서 사진을 찍어둘 생각도 하지 않는데, 차례상을 차릴 때마다 서식 안내서를 들고 낑낑대는 동생들을 불쌍히 여겨 언젠가 찍어둔 사진이 생각났다. ^^;

우리집은 제기 설거지를 최대한 피하고 얼른 우리가 상 차려 먹을 수 있도록 기름기 있는 음식은 죄다 접시에 올려 제기로 받치기만 한다는 사실~!

그러고 보니 요번 설날 차례 때는 단감을 사과 왼쪽에 둔 것 같은데 쩝;;; ㅋㅋㅋ 

하여간 차례나 제사때는 어쩔 수 없이 저렇게 껍질째 통닭을 삶지만, 평소 먹을 땐 끓이기 전에 껍질과 꼬리, 온갖 지방을 완전히 제거한 뒤에 담백하게 삶는다. 차례와 제사 때도 통대파와 통마늘 듬뿍 넣고 푹푹 삶아 건져버림. 순전히 산자들이 맛있게 먹기 위한 음식이라규~ 

 

 

5. 단호박 치킨 파스타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마지막 닭안심을 녹여서 바로 어제 해먹었다. 사진 찍을 줄 알았으면 좀 더 예쁘게 담았어야 하는데, 가지런히 담았던 엄마 접시는 이미 시식중이셨고, 마침 모짜렐라 치즈 얹은 파스타 해먹는다는 자랑에 친구가 사진 보내보라고 해서 찍은 거라 민망타. 

냉장고에 있는 채소랑 마늘, 닭고기 대충 볶다가 우유 붓는 걸로 화이트소스 끝. 

닭고기는 정말 어디에 넣어도 어울리는 재료라니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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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준비로 명절 며칠 전부터 꽉꽉 채워놓았던 냉장고 두대가 드디어 거의 다 비었다. 그간 남은 명절음식으로 꽤나 편하게 먹고 지냈는데, 어젠 드디어 먹을 게 없어서 새로이 된장찌개를 끓여야 했다.  빨랑 장을 봐다가 뭐라도 밑반찬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끼니 때마다 까칠녀의 짜증이 폭발할 위험이 있다. 하늘은 왜 내게 오만가지 식탐만 내리고, 김치나 반찬 한 개만 놓고도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착한 식성은 주지 않았는지.... 젠장. 거기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을 세트로 껴안고 계신 대비마마까지. (왕비마마에서 대비마마로 호칭을 바꿔볼 요량이다. 그럼 내 신분도 올라갈 수 있을지도 ㅋ) 

 

그나마 냉동실에 얼려두고 쓰던 표고버섯이며 닭고기도 동났고, 굴비도 추석때 끝을 보았다. 주기적으로 텅텅 비는 냉동실과 냉장고를 보면서 스스로 꽤나 알뜰하게 살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냉동실에 정체모를 검정비닐과 하얀비닐 덩어리가 그득하게 들어있는 거, 난 너무 싫다. 그렇다고 냉장고 CF에 나오는 것처럼 훌륭히 정리된 건 아니지만, 째뜬 평소에 냉동실은 절반 이상 비어있어야 뿌듯하다. 그래야 냉커피 탈 때 얼음에서 이상한 냄새도 안나고 말이지...

 

어제부턴 냉장고와 냉동실을 아무리 열었다 닫았다 해도 딱히 뭘 해먹을 게 없어서 항상 면식을 추구하는 점심 끼니도 이틀 내리 소면을 삶아 나박김치에 말아먹었다. 파스타도 알리올리오는 가능하겠지만, 같이 먹을 채소거리가 없어서 안되겠다. ㅠ.ㅠ 4분의 1쯤 남은 무토막과 당근 자투리만 나뒹구는 냉장고를 보며 이상스레 먹고싶은 건 많은데, 장보러 나가긴 싫으니 참;; 

 

째뜬 명절 노동의 강도로 깡그리 사라져버린 요리 본능과 의욕을 되살려보고자 그간 찍어놓은 음식 사진을 찾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없다. 아마 요리할 땐 주로 심술을 부리고 있어서 사진찍고 어쩌고 할 마음이 안들기 때문이리라. 요리에 병원놀이까지, 현대판 장금이가  따로없다고 자화자찬에 킥킥거리면서도 막상 현실에선 표독스런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으니... 헛헛.

 

어쨌거나 날도 더운데 이리도 잘 해먹고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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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앞에 엉덩이 오래 붙이고 앉기' 연습은 역시 블로그질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노는 맛에 길들여져 작업능률 바닥인 것이야 어쩔 수 없다쳐도, 다시 추워진 날씨에 따뜻한 구들장이 손짓하는 유혹을 꾹 참고 견뎌내야 하느니라...

 

밤참도 최대한 오래 걸리는 걸로 후루룩첩첩첩 해먹고 나서도 뭔가 좀 부족한 느낌에 먹거리 포스팅이나 마무리해볼까 하며 궁둥이를 눌러 앉혔다. 2월에 놀고먹고한 것들은 건수도 사진도 많으니까 뒤로 돌리고 일단 또 튀김(!) 이야기. 그러고 보니 살이 붙으려나 요새 튀김을 많이도 먹고 다녔구나야. ㅋㅋ

 

신촌엔 딱히 부담없고 맛있게 뭘 먹으러 갈 데가 별로 없다는 불만을 잠시나마 잠재울만한 작은 음식점을 얼마 전 하나 발견했다.

 

클로리스 카페 있는 뒷골목(그러니까 신촌 형제갈비 있는 명물거리에서도 다시 창천동쪽으로 한번 더 들어가는 뒷골목)에 맛집 꽤 생겼다던데... 라는 말만 믿고 무작정 들어서 보았더니 정말로 못보던 음식점들이 꽤 생겨났다. 어린이 입맛을 지닌 후배가 제일 먼저 마음에 들어한 곳은 골목 초입의 새우튀김을 파는 곳이었으나, 6시부터 저녁 영업시작이라며 문을 닫아 건 주인장의 배짱에 다음을 기약하고, 신촌 로터리 방향으로 골목을 좀 더 내려가다 얼결에 발견한 데가 이 식당.

 

프랜차이즈 돈부리와 우동 전문이라 별 기대도 않고 만만하겠다 싶어 들어가보니 모든 메뉴가 6천원이라는 실로 놀랍고도 착한 가격! 점심 때 굳이 또 우동을 끓여먹고 나간 나는 저녁만이라도 밥을 먹어야한다는 일념에 가키아게돈을 시켰고 다른 이들은 가츠돈, 가키아게 우동과 돈까스로 다양하게... 

그러고 보니 먹느라 바빠서 가츠돈과 돈까스 사진은 없다. ㅋ 둘 다 고기 두툼하고 바삭하니 맛있었는데...

암튼 덮밥이든 우동이든 모듬튀김이 엄청난 크기로 나온다. 다른 메뉴 먹으면서 튀김을 추가로 시키면 단돈 3천원(배고픔에 흥분해서 메뉴판을 잘 읽지 못했지만, 돈까스 추가메뉴도 3천원이었던 거 같다;;). 거대한 튀김이 한 화면에 잡히질 않아서 맨 오른쪽 사진은 다시 찍은 건데도 결국 짤렸다. ^^;

 

굳이 흠을 잡는다면 덮밥에 딸려나왔던 저 국물이 무진장 짜서 나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는 점. 우동 용으로 낸 국물을 똑같이 떠주어 그런 것 같다. 옆에서 시킨 우동 국물을 먹어보니 간이 맞는 걸로 보아 내 짐작이 맞는 듯. 아무리 제대로 맛을 낸 가쓰오부시 국물이라도 까짓것 안먹으면 그만이고, 암튼 신선한 재료를 바삭바삭 좋은 기름에 튀겨낸 맛이 틀림없는 저 거대한 튀김과 밥을 싹싹 바닥까지 비우고 나왔다.

 

수다를 떠느라 우리가 다 먹고나서도 한참을 마냥 노닥거리며 앉아있었는데, 계산하고 밖에 나와보니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 줄 서서 기다렸다가 먹는 집이었군! 다른 동네에서도 똑같은 이름의 식당을 본 적 있지만 줄 서서 먹는 걸 본 적은 없다. 똑같은 프랜차이즈 식당이라도 회전율이나 주방장 솜씨에 따라 지점마다 맛이 다르다는 것은 진리. 암튼 그런데도 종업원들이 우리한테 눈치를 주거나 쫓아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흐뭇해서 점수가 더 올라갔다. 이젠 튀김 먹고 싶어지면 고민 좀 생기겠다. 신촌으로 갈 것이냐, 혜화동으로 갈 것이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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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쪽으로 나가 놀일이 그간 통 없었다가 간만에 어제 혜화동을 누볐다. 맛있는 커피집을 소개받기로 했던 게 지난 여름부터였는데 벼르고 벼르다 두 계절이나 지난 뒤에 드디어 성공. 향기롭고 맛있는 반나절을 보낸 행복감에 쓰다 만 밀린 포스팅들 죄다 제쳐두고 그 자랑부터 해볼란다. 요즘은 다들 입맛이 까다로워서 카페마다 커피는 웬만하면 다 맛있는 편이지만 간만에 원두까지 장만하고픈 집을 만난 게 어찌나 반가운지.  

 

위치는 번화한 대학로 쪽이 아니고 혜화동 로터리에서 주유소 옆 도로로 좀 올라가다 왼편 골목 안에 있다. 이렇게 써놓으면 누가 찾아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흥미가 있다면야 방법은 있겠지. 원래 나는 그렇게 친절한 맛집 안내 블로거가 아니라 항상 먹고 논 거 슬쩍 자랑 수다에 치중하는 사람. ㅋㅋ

 

 

오래된 좁은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집이란 것도 나에겐 무조건 가산점! 혜화동에도 가만 보면 아직 한옥들이 점점이 박혀있긴 하지만 대부분 폐허에 가깝던데 반갑기도 하여라...

 

<Lim's Coffee>라는 곳인데 이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기만 해도 고소하고 향기로운 커피 냄새가 풍겨와 황홀했다. 직접 볶은 원두도 팔지만 로스팅 교육도 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요즘은 일하기 싫은병에 이어 '뭐든 배우고픈 병'에 걸렸는지 순간적으로 로스팅 교육 받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_-;) 자체 개발해서 이름 붙인 커피와 직접 블렌딩한 커피도 여러종류인 듯했다.

 

어제는 '케냐투샤'라는 커피를 추천해주어서 드립으로 마셨다. 드립 커피 가격은 6천원 정도였던 듯. 드립커피야 어디나 좀 비싸지만, 여긴 원하면 다른 종류로 커피를 얼마든지 무료 리필해 마실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 시간만 늦지 않았으면 나도 세잔까지 마실 욕심을 부렸겠지만... '만델링'을 두번째로 마시고 참았다. 진하게 볶은 커피를 선호하는 편이라 요새 집에서도 케냐AA를 마시고 있는데, 이집 커피는 특히나 진하면서도 고소한 맛과 향을 높이는 로스팅 비법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만델링 원두를 사와서 오늘 내가 어설픈 솜씨로 드리퍼에 내려 마셨는데, 오오 어제 전문가 솜씨보단 못해도 맛있게 내려졌다. ^_______^  좀 전엔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 추출해서도 다시 마셔보고 간만에 카페놀이에 흠뻑 빠졌음.

 

게다가 드립커피 담아주는 커피잔도 예뻐! ^^; 손님마다 커피잔을 달리 주는데 처음 마신 커피잔은 연분홍색이라 사진이 잘 안나왔다. 음식 앞에두고 여러컷 사진질하는 건 민망해서 달랑 한장 찍고 얼른 먹고 마시는데 집중하는 편이라 처음 마신 커피잔 사진은 못 올리는 것이 아쉽다. 아래 두 사진은 두번째로 리필해달라고 해서 등장한 '스프링 왈츠'와 만델링. 자체 블렌딩해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뽑아주는 커피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강하게 볶은 '하드락'이란 것도 있다고. 담에 가선 그걸 마셔봐야겠다고 결심.   

머그잔 모양이야 특별할 것도 없지만, 색달랐던 건 오른손잡이의 경우 안쪽 로고가 본인말고 상대방 쪽에서 볼 수 있게 인쇄되었다는 점. 크레마로 뒤덮인 머그잔 아래로 드러난 저 로고를 본 순간 나도 마시고 싶어졌다. ㅋ 내가 마신 저 파란색 꽃무늬 커피잔은 노리다케 제품. 커피잔마다 다 브랜드 다른 걸 골라모은 듯했다. 큼지막한 머그잔에 잔뜩 담아주는 것도 좋지만, 확실히 잔받침 있는 커피잔에 우아하게 마시는 커피도 매력있다.

 

원두는 100g에 7천원 정도. 다른데와 비교해보면 저렴하다곤 할 수 없으나 신선하고 맛있는 로스팅으로 승부하려나보다 했다. 1kg을 4만원에 신청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월요일마다 4번에 나눠서 받아먹는 제도도 있다는 것 같다. 솔깃했지만 한달에 원두 1kg을 내가 다 못먹는다는 것이 문제. ㅋ

 

암튼 테이블도 몇개 안되고 아직은 비닐로 막아놓은 테라스 자리가 좀 추울 듯하지만 원목 의자와 테이블이며 천장에 드러난 서까래와 작은 화분들까지 마음에 들었다. 담에 가볼 땐 어느 케이크 전문점에서 공수해온다는 조칵 케이크도 맛있나 먹어봐야지.

 

저녁시간이 다 되어 출출해진 우리는 무얼 먹을까 또 한참을 고민했다. 눈알이 빠지게 맛집 검색을 해보다 포기한 뒤엔, 일행이 가본 적 있다는 칼국수집으로 가기로 했다. 사골칼국수집에서 아 글쎄 통통한 생선튀김을 판다네!?  

 

이름하여 <혜화 칼국수>. 위치도 혜화동로터리에서 금세였다. 이번엔 로터리에 있는 주유소 오른쪽 골목으로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수십년 역사와 포스가 한눈에 느껴지는 알루미늄 샤시문과 낡은 간판이 나타난다. 생선튀김을 먹어야 하므로 칼국수는 하나만 시키려고 우물쭈물했더니만 서빙하시는 아주머니 재빨리 생선튀김 반 짜리가 있다며 둘 다 칼국수 시켜야 양이 맞는다고 부추겼다. (이 아주머니 별도 메뉴 시키는 다른 테이블에도 악착같이 칼국수를 인원수대로 주문 받아내는 신공이 있었다. 그건 쫌 불만!) 지킴이 면접만 없었으면 반주도 하면서 안주로 먹기에 딱이겠다 싶어 내심 아쉬웠던 통통한 생선튀김의 위용은 바로 이렇다!

흰살생선의 정체는 대구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아마 맞을 듯. 바삭하고 신선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원래 허름하고 유서깊은 칼국수 집에서 다른 메뉴 성공시키기가 어려운 법인데 신기했음. 생선튀김 원래 가격이 2만5천원이고, 절반은 만3천원이니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먹어보고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칼국수는 7천원.

 

튀김기름 처리문제가 무섭기도 하고 왕비마마에겐 기피해야할 음식 1순위가 튀김이라 집에선 절대로 튀김요리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진짜 웬만한 재료는 바삭바삭 튀겨놓으면 다 맛있다는 걸 내가 왜 모를꼬. 나 역시 기름에 튀긴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저질 몸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가끔 튀김 먹고싶어지면 찾아가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ㅎㅎㅎ

 

통통한 생선살의 느낌을 찍어보려 카메라를 들이대긴 했으나 초점도 잘 못맞췄다. 생선튀김을 거의 다 먹고 났을 무렵 나온 사골칼국수는 평균적인 맛이었다. 다데기 양념을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다 덜어내고 풀어놓은 모습이 아래 사진 오른쪽. 집 근처에도 <연희칼국수>라고 오래 된 사골칼국수 집이 유명한데, 그 집에 비하면 크게 맛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특히 연희칼국수는 백김치가 인기의 비결인데, 혜화칼국수는 김치와 무채나물이 내 입맛에 좀 짰다.  

그래도 생선튀김 때문에 다 용서되는 기분! ㅋㅋㅋ 다음에도 혜화동 가면 칼국수와 생선튀김을 먼저 먹고 림스커피에 가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는 순서로 동선을 짜볼 작정이다.

 

간만의 혜화동 나들이가 즐거워, 버스 안에서 흥얼흥얼 혜화동 노래를 부르다 집에 돌아온 다음에도 얼른 동물원 노래를 찾아들었다. 내 어린시절의 골목길 추억은 헤화동과 상관없지만 기분은 딱 옛친구를 옛동네에서 만나고 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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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이라고 쓰기는 하지만 아직도 2013년 1월이라는 게 적응이 안된다) 스팅공연 보러 간 날, 전날까지만 해도 방이동과 몽촌토성역 근방의 '그럴듯한' 맛집 후보지 중 한 군데를 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난데없는 폭설로 일단은 전철 타고 올림픽공원 근처에 가 아무거나 먹자는 쪽으로 급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공원 내 공연장을 자주 다녀보는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그 바로 주변 상가엔 먹을 만한 밥집이 별로 없다. 역 바로 앞에 버젓이 올림픽아파트 상가가 있지만 대규모 공연이 있는 날 그 근처에서 제일 장사 잘 되는 집은 햄버거집이랑 편의점일 정도다. 입맛이야 상당히 주관적인 잣대일 수밖에 없지만 어쨌거나 내가 보기엔 딱 한 군데 의외의 보물같은 맛집이 있으니, 올림픽 상가(이름이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암튼;;) 지하에 있는 올림픽 수제비다.

 

몇해 전 여름, 수제비 좋아하는 후배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온 집이었는데 처음엔 길을 잘못 들어서 허름한 지하주차장을 가로질러 반대편 마트를 마구 헤매다 찾아간 바람에 첫인상이 좋지 못했다. 그야말로 시장통 분식집 느낌. 그런데 나온 음식을 보니 선입견이 쏙 들어갔다. 해물이 완전 싱싱해!

 

해물 수제비의 위용. 반죽에도 채소를 갈아 넣었는지 초록빛이 난다

간도 슴슴하니 내 입맛에 딱이었고 자극적인 조미료맛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의 맛이라는 감이 팍 다가왔다.

무슨 메뉴를 시키든 볶은밥을 앙증맞게 김에 싸서 나오는 에피타이저가 나오는데 배고픈 김에 얼른 집어먹고 사진도 못찍었을 정도였다. 김치랑 깍두기도 맛있었고...

 

바지락 칼국수와 해물 수제비를 하나씩 시켜놓고 먹었는데, 짜지 않은 생물 바지락(싱싱하지 않은 바지락은 대부분 엄청 짜다;;)이 풍성하게 들어간 칼국수 사진 역시 남기지 못했다.

 

이후 올림픽 공원에서 공연이 있을 때마다 입맛을 다시며, 재차 가보려했으나 기회가 닿질 않았었는데 스팅 공연보러간 날 일행들과 뜻이 맞아 다시 가게 된 터였다. (스팅을 만나러 가는 날이니 일행들은 이왕이면 좀 더 그럴싸한 메뉴를 먹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올림픽 상가 1, 2층 식당을 뺑뺑 돌고 난 뒤이긴 했다;; ㅋㅋ)

 

이젠 맛있다고 소문이 많이 나서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날 역시 한산한 분위기였다. 시장통 같은 지하 식당가 반찬집 옆에 있는 위치 때문일까나? 어쨌든 나야 맛있으면 장땡. 벽에 붙은 메뉴를 보니 통영인가 여수에서 직접 가져온다는 굴로 만든 굴국밥이 계절메뉴로 새로 등장해 있었다. 굴이라면 익혔든 생으로든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므로 해물수제비와 함께 일단 시키고 봤다.

 

왼쪽 사진 위에 보이는 시커먼 물체가 1인당 2개씩 나오는 볶음밥 김쌈(?)이고, 오른쪽 사진이 정신없이 퍼먹다가 아차 하면서 찍어 자못 민망한 굴국밥이다. 익힌 굴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굴 넣고 끓인 미역국도 좋아하기 때문에, 이날 이집에서 부추와 두부를 곁들인 시원한 굴국밥을 먹어본 뒤로는 계속 집에서 해먹어봐야지, 해먹어봐야지 한달 넘게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드디어 며칠 전, 굴과 부추를 사다가 시도해보았다! 당연히 그날의 전문가스러운 맛은 내지 못했지만 다시마와 무와 멸치로 낸 다시 국물에 굴과 부추와 두부를 넣어 끓인 뒤 밥에 부어 먹었더니 캬... 겨울 별미로 딱이었다. 한번 더 가서 먹어보면 완벽하게 비슷한 맛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음... 이거 먹겠다고 엄동설한에 남의 동네 지하상가엘 가자니 좀 민망한 느낌. ^^;;

 

찾아갈 때마다 계속 헤맸지만 그날 주인아저씨의 안내로 직통 출입구를 알아두었으니 이젠 헤매지 않고 단번에 찾아갈 자신도 있다. 반원형으로 생긴 올림픽 상가 건물 입구로 들어가지 말고, 상가 앞 광장 왼쪽 귀퉁이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 곧장 건물지하로 들어가면 코앞에 올림픽 수제비가 있다.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도 친절하시고 싱싱한 재료로 만든 음식도 정갈하니 앞으로 올림픽공원에 갈 일 있으면 무조건 고민 않고 이 집으로 밥먹으러 갈 작정이니 부디 오래오래 번창하길 빈다. 오늘따라 저 해물 수제비가 몹시 먹고 싶어서 눈요기라도 하려고 시작한 포스팅인데 이거 좀 과한 홍보인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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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생각

식탐보고서 2012. 9. 14. 02:18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스스로도 영문을 모르게 멍한 상태가 되어 뒹굴뒹굴 컴퓨터 전원을 이삼일 씩 안 켜고 지낸 날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래도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있다는 걸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로 했다. 공부 좀 하자면 먼저 늘어놓은 책상정리에 몇 시간 땀을 빼고서야 본격적으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던 습관은 참 안 변한다. 원래도 책상과 친해지기가 참 힘든 인간이었구나 내가. 그에 비해 평생을 통틀어 나와 가장 친한 공간은 아무래도 구들장이 아닐는지.

 

몹시 뜨거웠던 여름 내내 더워서 몸 움직이기가 싫어서 그렇지, 별로 입맛을 잃거나 굶거나 한 적은 없었는데 오히려 찬바람 불면서 식욕이 떨어지고 다 귀찮아졌다. 먹고 사는 게 새삼 왜 이리도 구차한지. 그래서 게으름이 시키는 대로 가능하면 하루에 한 두끼만 대충, 잠도 아무때나 불규칙하게 자고 막 살며 몸을 좀 학대했더니 중년의 육신은 대번에 반항을 했다. 파르르 감기기운이 돌면서 목도 아프고 기진맥진, 좀체 카페인발도 안받고 말이지...

 

앗 뜨거라 싶어지면서 결국 손해보는 건 나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다시 열심히 해먹고 사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다. 중늙은이 상늙은이 할 것 없이 제 몸 생각 하느라 벌벌 떠는 태도는 참으로 숭하던데, 내가 그러고 앉았다. 남 욕할 거 하나도 없다. 숭하거나 말거나 어쨌든 물 대신 오미자 우려먹고, 배숙 끓여 먹고, 밤참으론 빵조가리 대신 수프도 끓여먹으며 땀냈더니 금세 비실거리던 기세는 떨어져나갔다. 역시 나는 밥심으로 사는 유형. 배숙과 수프는 인터넷 검색해서 참고했으니 적어놨다가 나중에 다시 써먹을 요량으로 기록한다. 아침에 기침 나오고 목 아프다던 노친네도 배숙 이틀 마시고 원상복귀됐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진짜 효험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기특하다.

 

<배숙>

큼지막한 배 1개, 생강 큰 거 1뿌리, 대추 열알쯤, 통후추 약간, 꿀 약간

 

1. 배는 12등분해서 껍질을 깐다.

2. 생강은 껍질을 까서 대충 저민다.

3.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붓고 껍질깐 배와 생강, 대추, 통후추를 넣고 중불에 끓여 물이 절반 쯤 줄어들 때까지 장시간 곤다.

4. 노르스름한 색깔로 잘 고아지면 꿀을 적당히 넣는다.

 

뜨거울 때 마셔도 좋고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식혀 먹어도 좋은듯.

기침엔 배도 다 건져 먹어야 좋다는데, 설컹설컹 익은 배를 먹는 느낌은 좀 고약하다. ㅋ

 

 

 

 

 

 

 

 

<마녀수프?>

냉장고에 있는 온갖 채소(감자, 양파, 당근, 가지, 샐러리, 브로콜리, 토마토), 버터 약간, 카레가루 약간, 소금 약간.

 

1. 온갖 채소를 잘 씻어서 큼직큼직하게 잘라 냄비에 넣는다.

2. 버터를 약간 넣고 볶다가 물을 한두 컵 붓고 끓인다. (다이어트를 위한 진짜 마녀수프라면 버터에 볶으면 안된다. 올리브오일을 쓰라던가.. 하지만 나는 맛이 중요한 사람이니까;;)

3. 채소가 물렀다 싶으면 카레가루 약간 넣고 소금도 원하는 만큼 넣는다. 나는 둘 다 거의 넣는 시늉만 했음.

4. 나름 그루통이랍시고 토스트빵을 잘라 넣어보았으나 에러... ㅋㅋ 그냥 따로 먹는 게 낫다.

 

두번째로 퍼먹을 땐 영양을 생각해 치즈 한 장 얹어 먹었다. 당근 빼곤 내가 다 좋아하는 채소들이라 딱 기대했던 맛이 났다. 자연스레 달착지근하면서도 담백한 맛이랄까. 비타민 완전 충전형 야채수프라고 생각하면서 땀내고 먹고 났더니 감기기운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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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삶기

식탐보고서 2012. 9. 8. 22:26

찬물에 열심히 헹궈 식히지 않아도 껍질이 잘 까지는 달걀 삶기 비법을 쌘이 블로그에서 전수받아 오늘 시도해봤는데

정말이었다! 완전 신기하여라. 방법은 물의 양을 한 국자, 75ml 정도만 냄비에 넣고 달걀을 중불에 뚜껑 닫고 6-7분 삶다가, 뚜껑을 덮은 채로 반숙은 3-4분, 완숙은 다시 6-7분 놓아두는 것. 물을 그렇게 조금 바닥에 깔릴 만큼만 넣고 달걀을 삶는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으나, 결과물은 정말로 신기했다.

 

달걀 삶아서 껍질을 매끈하게 잘 까려면, 갑자기 찬물에 담가서 껍질의 부피를 확 줄여 중간에 공기층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왕이면 얼음물에 담그라고 하는 조언을 오래 전 요리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어 나름 찬물에 헹궜다가 찬물 틀어놓은 수도꼭지 아래서 까보아도 성질 급한 나는 종종 우툴두툴 살점이 떨어지게 만들곤 했다. 그뿐인가, 냉장고에서 달걀을 바로 꺼내 냄비에 넣고 삶으면 왜 꼭 터져서 내용물이 질질 새어나오는지! 냉면 먹을 때야 옆구리 좀 터진 삶은 달걀을 얹어도 상관없지만, 장조림 같은 거 하려고 여러 개 삶을 때 터져버리면 참 난감했다. 삶을 때 터지지 않아도 껍질 까면서 우툴두툴 살점 떨어진 달걀은 장조림을 해놓아도 당연히 볼품 사납다.

 

달걀을 삶는 도중 껍질이 터져버리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을 나름 찾아보니 몇 가지가 있었다.

- 물에 소금을 넣고 삶을 것. 소금 성분이 단백질을 응고시킨다고.

- 불을 너무 세게 하지 말 것. 약불로 시작해 중불로 불 조절 필요. 냉장고에서 나온 차가운 달걀이 급격한 온도변화를 견디지 못해 급팽창하는 것이라나.

- 달걀이 완전히 물에 푹 잠기지 않도록 약간 숨구멍을 허락할 정도로만 물 양을 조절할 것. 뜨거워진 공기가 새어나올 구멍이 필요하다고.

- 삶는 도중 냄비를 흔들어 안에 든 달걀을 몇 번 굴려줄 것. 온도를 골고루 퍼지게 함과 동시에 노른자 위치도 정중앙에 놓이는 이점이 있음. 

 

그리하여 달걀을 터지지 않게 삶는 경지에는 오를 수 있었으나 살점 안 떨어지게 껍질 까는 것은 최근까지도 나에게 어려운 숙제였다. 웬만한 요리는 어깨너머로 보고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삶은 달걀 하나 매끈하게 못 깐다는 게 때로는 자존심이 상할 정도. ㅠ.ㅠ 찬물에 여러번 헹구면야 물론 나도 매끈하게 깔 수 있지만, 후닥닥 30분 미만으로 점심 준비하면서 냉면 사리와 달걀을 동시에 삶고, 오이채 준비하고 상차림까지 완비하려면 일사천리로 쉴 새 없이 과정이 진행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대개는 앗 뜨거라 하면서도 수도꼭지 아래서 후딱후딱 삶은 달걀 껍질을 까다보니...

 

째뜬 쌘이의 비법대로 오늘 삶은 달걀은 찬물에 한번만 헹구고 뜨거운 채로 막 까도 확실히 껍질이 잘 벗겨졌다. 물에 담가 끓이는 편보다 온도변화가 더 빨라서 내용물의 부피가 확 주는 모양인지, 톡톡 깨뜨려보니 공기구멍이 보통 물에 푹 담가 삶을 때보다 훨씬 컸다. 알고 보면 달걀 삶는 것뿐만 아니라 요리의 모든 과정에도 이토록 놀라운 과학의 비밀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염장 음식은 삼투압 현상을 이용해 재료의 수분 양을 줄이는 원리일 것이고, 밥만 해도 쌀의 녹말 형태를 변형시켜 부드럽게 만드는 화학작용이 아니겠나. 대대로 내려오는 손맛과 전통 같은 것이야 과학 따위가 끼어들 틈도 없이 그저 정성과 세월의 힘이라고 믿지만, 나 같은 식탐형 얼치기 요리사는 확실히 요리법과 함께 원리를 깨쳐야 납득을 잘하는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 손으로 꿈쩍여 먹고 살려면 배워야할 게 또 얼마나 많을까. 어차피 사람은 평생 배우며 살아야한다지만, 껍질 매끈하게 벗겨지는 달걀 삶기 비법을 사십대 중반에 비로소 깨닫고 좋아라 흥분했다고 생각하니 실소가 나온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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