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해당되는 글 136건

  1. 2009.12.25 2009년에 읽은 책 14
  2. 2009.12.22 동짓날 19
  3. 2009.12.19 투덜투덜 12
  4. 2009.11.30 책 고르기 20
  5. 2009.10.08 내겐 아니올시다 19
  6. 2007.09.20 DIY 14

2009년에 읽은 책

책보따리 2009. 12. 25. 22:53

올해는 드디어 나도 독서노트라는 걸 만들어 읽은 책을 적어두었고, 탁상 달력 맨 아래 그달그달 읽은 책을 적어보았더니 꽤 훌륭한 채찍이 되는 바람에(단 한권도 끝내지 못한 7, 8, 9월 석달간은 괜히 가시방석이었다) 애당초 목표인 스무권 넘기기를 가뿐히 달성했다. 다 애서가 이웃분들을 따라가 보려는 뱁새의 몸부림이었는데, 앞으로도 적당히 가랑이 찢어지지 않을 만큼만 따라가는 시늉을 할 작정이다. 역시나 따라하기의 일환으로 개인적으로 좋았던 책은 색을 달리해보았는데 비율이 꽤 높다. 재미 없거나 인내가 따르지 못한 책은 더러 읽다 집어던졌기 때문인데,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위로할 작정이다.
잘생긴 뱀파이어한테 반해서 <트와일라잇> 시리즈만 탐독하는 열두살 조카의 독서를 독려하느라 새삼 읽은 아동서도 많으니 공주에게도 고맙다고 해야할 판.  
하지만 여전히 사들인 책 대비 읽은 책의 비율은 60퍼센트 정도인듯. 이젠 좀 그만 사고 있는 거나 읽자. 책꽂이도 부족해 다탁 밑에 쌓아둔 책엔 먼지만 쌓이고 있다는 점은 반성이 필요하다. 


1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 김석희 옮김. 살림. 사둔지 꽤 됐는데 작년에 <디아스포라 기행> 읽은 김에 생각나 작년말부터 시작해 연초에 끝냈다. 학자로서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무슨 기억력이 그리도 좋은지.
2.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이한음 옮김. 김영사. 맞다, 신은 없다. 종교에 대한 오랜 회의를 속 시원히 긁어준 책. 오죽하면 포스팅까지 했을라고.
3.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지음/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인데, 내용은 제목만큼 기발한 재미는 없었고 평이한 편. 글줄이 곧 밥줄일 땐 어디서든 삶이 지난하다는 만고의 진리.
4. 문학은 자유다. 수전 손택 지음/홍한별 옮김. 밑줄그어 외두고 싶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사고와 글의 집합체.
5. 보이지 않는 인간 1, 2. 랠프 엘리슨 지음/조영환 옮김. 민음사.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는 아직도 지천이므로 분명 가치 있는 독서였지만 그래도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어려운 과제물 끝낸 기분.
6. 완득이. 김려령 지음. 창비. 조카 주려고 사서 먼저 읽고는 너무 재미있어 자지러졌다. 이후로 아류작이 쏟아져 나왔던데 원조는 다를걸! 물론 조카도 이 책을 무척 좋아해서 몇날몇일 완득이 얘길 주고받으며 신을 냈다.
7.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한미희 옮김. 비룡소. 조카한테 읽고 토론하자고 해놓고 막상 기억이 잘 안나서 다시 읽었는데도 새삼 부분부분 좋더라.
8. 사자왕 형제의 모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김경희 옮김. 창비. 예상대로 슬프고 감동적이긴 했으나 <만들어진 신> 독서의 영향으로 결말에 대해선 조카와 어떤 토론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9.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지음/박동원 옮김. 동녘. 예전에 읽다가 슬퍼서 몇번이나 울었다고 했더니 공주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눈물이 나더냐고 따져서 빌려다 다시 읽었다. 역시나 또 눈물이 났다. 그제야 떠올랐다. 처음 읽었을 때 너무 비참하고 슬퍼서 책을 내던지며 짜증을 냈던 기억이.
10. 한밤중의 작은 풍경. 김승옥 지음. 전집구매 욕망을 잠재우고 작년 이웃 블로거의 목록에서 딱 한권 고른 책. 역시나 좋았다. 하찮은 블로그질에라도 간결하고 깔끔하게, 너저분하지 않게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는 김승옥의 글!
11. 그녀의 프라다백에 담긴 책. 이유정 지음. 북포스. 이요님이 여기서 권하는 책도 몇권 골라 읽었다 ^^ 
12. 나는 런던의 수학선생님. 김은영 지음. 브레인스토어. 해리님의 친구분이자 나 홀로 링크 걸어놓고 구경다니는 내맘대로 이웃의 책이라 읽어보고팠다. 영국의 학교체계와 교사들의 마음가짐이 어찌나 부러운지.
13.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이구열 지음. 돌베개.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다녀와서 부푼 호기심에 읽어보며 새삼 '공부'했다. 비록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14.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서경식 지음/이목 옮김. 돌베개. <기억>은 정치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옮긴이의 말이 인상적이었고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가운데 내가 미처 모르는 이들이 많아 민망.
15.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박이엽 옮김. 창비. 남다른 개인사 때문에 서양미술 가운데서도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에 유독 시선이 머문 지은이의 감상이 가슴아팠음.
16. 눈먼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 해냄. 신종플루 공포가 처음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리던 시기에 읽어 더욱 실감났던 듯. <눈뜬자들의 도시>도 연이어 샀지만 몇십장을 못넘기고 지지부진.
17.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지음. 솔. 문근영양 나온 드라마 덕분에 새삼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 펄럭거린 1人의 선택으로 고른 책. 이 책 보고선 또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지 실습하러 국립박물관 가보려 작심했으나 실천은 못했다. -_-;
18. 하나의 대한민국, 두개의 현실. 지승호 인터뷰. 시대의창. 사둔지 오래돼 이 책에서 비판의 주요 대상인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이라 맥빠지는 독서였다는 기억이 난다. 소통 안되는 답답한 현실은 그대로지만... 
19. 탐욕의 시대.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의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라고 한 레지드 브레의 말에 정말 딱 맞는 지식인이 바로 장 지글러! 무지하고 이기적인 민중이 이런 지식인의 말을 외면하는 현실이 슬플 뿐.
20. 소설. 제임스 미치너 지음/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컴퓨터질로 피로해진 뇌파 정리용으로 올해는 잠자리에서 책을 꽤 읽었는데, 이 책은 잠이 완전히 달아나게 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어 자야한다며 일부러 애써 책을 덮기도 했다. 소설 탄생을 둘러싼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지 기발하게 조명한 소설. 사둔지 오래 됐는데 왜 이제야 읽었던고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
21. 희박한 공기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김훈 옮김. 황금가지. 오래 전 외서기획 할 때 프랑크푸르트 현지에서 출간도 안 된 이 책에 대한 판권 경쟁이 엄청났고, 당연히 작은 출판사를 대신해 간 나는 힘을 써볼 도리가 없었는데 빼앗겼다고 돌아와서 언짢은 소리를 좀 들었던 책이다. 민음사 그룹을 어찌 이기라고! 해서 97년 첫 출간됐을 때 괘씸해서 안보리라 마음 먹고 잊었다가 이요님의 책을 읽고 마음을 바꿔 집어들었다. 읽고보니 여전히 경쟁적인 고산 등반의 열기가 식지 않아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정상등반의 진실을 의심받는 요즘 세태를 보며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산이 뭐라고... 
22. 한국의 글쟁이들. 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 글잘 쓰는 글쟁이들에 대한 선망을 부채질하고 수많은 독서를 강권하는 책. 나는 동의할 수 없는 글쟁이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서 다시 수십권의 도서목록을 적어두었으나, 일단 눈을 질끈 감았다.
23.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지음/이재원 옮김. 이후. 조목조목 짚어주시는 손택 여사의 말씀이야 한줄한줄 피가되고 살이되고...
24. 꿈꾸는 책들의 도시 1, 2. 발터 뫼르스 지음/두행숙 옮김. 들녘.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판타지 소설을 잘 못즐긴다던데 내가 좀 그런 편이라 여겼으나, 이렇게 기발한 발상이 다 있나 싶어 하며 즐겁게 읽었다. 지루하고 답답한 병원 간병 무수리의 괴로움을 순간순간 잊게 해주었던 고마운 책.
25. 성찰하는 진보. 조국 지음. 지성사. 조국 교수는 내가 이상으로 여기는 지식인에 가까워 칼럼도 열심히 찾아 읽는 편이나, 이렇게 글을 모아놓으니 가끔 그가 쓰는 <백화제방 백가쟁명> 따위의 고루한 한자성어 쓰임새가 턱턱 걸리더라. 내용도 너무 원론적이고... 하기야 원론만 지켜져도 이 세상이 이꼴은 아니겠다만서도.
26. 노란 불빛의 서점. 루이스 버즈비 지음/정신아 옮김. 문학동네. 서점에 대한 선망이 늘 있어 크게 기대했다가 실망했다. 서점이 좋아 서점 직원이 된 사연이 담긴 앞부분만 좀 읽을만.
27. 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정창 옮김. 열린책들. 열린책들 Mr. Know시리즈 50% 할인소식에 눈이 어두워 전격 사들인 열권의 책 가운데 이거 딱 한권 읽었다. 온라인 서점의 반액할인 때문에 출판사가 죽어간다는데 덩달아 춤춘 게 미안해서였던... 건 아닐테고, 주섬주섬 골라보다 이게 제일 재미있었음.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소설"을 즐기는 노인의 사연이 짠하다. 중남미 문학엔 특히 무지한 편이라 좀 더 찾아 읽어볼 작정. 
28. 어루만지다. 고종석 지음. 마음산책. 어떻게든 써먹어 보겠다고 열심히 좋은 우리말 베껴 적으며 읽었는데 책을 덮을 때쯤엔 과연 번역할 때 써먹으면 편집자와 독자들이 받아들여줄지 회의가 들었다. 
29. 앗 뜨거워. 빌 버포드 지음/강수정 옮김. 해냄. 기자직을 때려치우고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려고 뛰어든 남자의 요리학습기. 손으로 조물조물 만드는 것, 먹는 것,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시종일관 침나오고 감탄스러웠다. 요리사가 그렇게 어려운 직업인 줄 몰랐다네...
30. 밴버드의 어리석음.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 양철북. 당대엔 파란을 일으켰지만 이내 잊혀지고 만 이른바 '루저'들을 결국엔 이렇게 책으로 기억해준 폴 콜린스 같은 사람이 다 있다니, <기억>이 정치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이목 선생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인 사회에서 세상을 바꾸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도 기록을 시도한 지은이와 이런 책을 번역하자고 기획한 옮긴이 블루고비에게 갈채를! ^^


작년처럼 한줄 평만 넣으려고 했는데 쓰고 보니 길어진 내용이 많다. 역시나 독서노트의 덕이다! 이러다가 내년쯤엔 나도 두려움 없이 읽은책 리뷰를 몇권 더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는 게 아닐지. 
하지만 내년엔 더 많은 책을 읽겠다고 호언장담하지 못하겠다. 이 정도로도 내겐 장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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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투덜일기 2009. 12. 22. 15:03

대부분 음력인 전통 절기 가운데 이상하게도 입춘과 동지는 유독 양력이다. 이유를 찾아볼 생각은 않고 그저 의아하게 여기고만 있던 그 동짓날이 바로 오늘. 나에게 동지는 일년중 밤이 가장 긴날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그저 <팥죽 먹는 날>일 뿐이다. 친할머니댁에서 살 땐 할머니가 전날부터 팥을 삶아 놓고 찹쌀 새알심을 만들어 다음날 아침 일찍 큰 솥으로 하나 가득 팥죽을 끓여주셨다. 끼니로 먹고 간식으로 또 먹고 마지막엔 솥 아래 눌어붙은 팥죽 누룽지까지 알뜰하게 긁어먹으며 종일 몹시 흐뭇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분가한 뒤로는 엄마가 가끔 동지 팥죽을 쑤어 마당 여기저기 뿌리고는 시루떡과 함께 고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주로 외할머니댁에서 팥죽을 얻어다먹었다. 원래 동지 팥죽에 든 새알심은 자기 나이수대로 먹는 거라는데, 나는 새알심을 좋아하지 않아서 늘 세 개만 달라고 하곤 그걸 내 나이수대로 잘게 잘라 팥죽에 섞어 먹곤 했다. 물론 언제부턴가는 새알심 세 개를 내 나이수 만큼 자르는 것이 불가능해졌지만...

동지 팥죽을 좋아하지만 들척지근한 단팥죽은 싫고, 팥시루떡은 좋아해도 단팥빵과 팥빙수는 싫어하는 나의 이상한 취향은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담백한 동지팥죽에 입맛을 들인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다. 붕어빵은 예외라고 쳐도 많이는 못먹는 걸 보면 모름지기 팥은 단 것보다 담백하게 조리할 때 더 맛있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게다가 친할머니도 그렇고 외할머니도 그렇고 울 왕비마마까지 손맛은 또 얼마나 좋으신가 말이다. 제 아무리 유명하다는 집에 가서 팥죽을 먹어봐도, 수십년간 내가 즐겨왔던 소금간과 절제된 단맛이 조화로운 담백한 팥죽은 만날 수가 없었다.

3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외할머니댁 동지 팥죽을 매년 빠짐없이 날라다 먹었고, 왕비마마는 이미 10년째 살림살이에서 손을 뗀 터라 이젠 동지에 맛있는 팥죽 얻어먹을 일은 없겠구나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작년부터 다시 동지팥죽이 생겼다. 엄마가 다니시는 절에서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넉넉하게 쑤어 신도들을 먹이고 난 뒤에도 집에 있는 가족들한테 맛보이라고 싸주었기 때문이다. 작년 오늘, 나는 난데없이 생긴 팥죽에 기뻐 얼른 한 입 퍼먹고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탄맛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팥죽 구경도 못하는 동짓날보다야 낫지 싶어 흐뭇했다. 

오늘도 엄마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서라도 굳이 절엘 가야한다고 우기더니, 조금 전 도저히 혼자선 집앞 언덕을 못오르겠다며 데리러 내려오라고 전화를 걸었다.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딸 주려고 얻어온 팥죽 통 무게를 못이긴 탓이다. 통이 그리 그지도 않은데 꽤 묵직한 엄마 가방을 대신 메고 비틀거리는 엄마를 부축해 집으로 올라오며 마음이 참담했다. 절에 갈지말지 망설이던 엄마가 힘겨운 외출을 시도한 건 팥죽 얻어오라는 딸의 은근한 압력 때문이었을까. 그깟 팥죽이 뭐라고! 올해는 팥죽이 맛있게 쑤어졌더라며 어서 먹어보라고 엄마는 자꾸 권했지만, 나는 속이 상해서 배부르다고 거절했다. 아마 올해 동지 팥죽은 평생 최악의 맛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년부턴 동지 팥죽 따위 안먹고 말테다. 반평생 동짓날=팥죽으로 알고 살았으니 이제부터 팥죽은 잊고 남은 반평생은 동지를 밤이 제일 길었다가 드디어 점점 짧아지기 시작하는 날로 세뇌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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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투덜

투덜일기 2009. 12. 19. 18:15

옛날에 고모들이 할머니한테 옷을 선물하면 늘 마음에 안들어하셨다. 색깔이 어떻고 소매 길이가 어떻고 <갑삭해야>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틀렸다는 둥, 요란해서 이런 걸 어떻게 입냐는 둥... 교환이 가능한 경우면 몇번이나 바꿔오기 일쑤였고, 그게 아니면 할머니가 손수 리폼을 하시거나 그냥 옷장에 처박히기 십상이었다. 고모들은 할머니가 너무 까다롭게 군다면서 웬만해선 옷 선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울 엄마가 사드리는 옷은 할머니의 취향을 최대한 고려해 골랐으므로 고모들의 안목보다는 성공률이 높았지만, 할머니가 나한테만은 못마땅한 부분을 털어놓을 때가 더러 있었다. "니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라"면서...
외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남자 한복을 맞춰입고 사셨던 외할머니의 외투 선택은 더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엄마나 이모가 심혈을 기울여 코트를 사거나 심지어 제일 좋은 양모 털실을 수십만원어치 사다가 뜨개질로 떠드려도 결국 그옷은 다른 사람 차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해서 친할머니, 외할머니 공히 최고의 선물은 <현금>으로 굳어지고 말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십수년간 두분 할머니께 선물할 스카프나 목도리, 장갑 따위의 선물을 애써 고르기도 했지만, 정말 마음에 들어하셔서 애용했던 선물은 손에 꼽힐 정도다. 무난하게 가자고 산 내복마저도 색이나 레이스가 요란하다 (내 눈엔 정말 수수한 건데도!)는 이유로 슬쩍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었음을 안 뒤론, 나 역시 철저하게 <현금> 선물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들의 까다로움을 겪어보았으면서 난 또 새삼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 나는 작년부터 왕비마마에게 <털신>을 사드리려고 계속 살피는 중이었다. 왕비마마가 최근 1년 넘게 애용하는 신발은 딱 하나. 바닥이 푹신해 다리 당김이 덜 느껴지는 마사이슈즈다. 그것 말고 다른 신발을 신고 외출했다간 금세 발바닥과 다리가 아파져 고생을 하는 걸 알고 있으므로, 최대한 발이 편하면서 가볍고 신기벗기도 편리한 (끈을 조여야 하는 마사이슈즈는 신고 벗기가 불편한 게 탈이다)  따뜻한 신발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온라인에서 발견한 복슬복슬 부츠형 털신 하나는 방수가 안된다는 이유로 겨울 내내, 그리고 올해 다시 왕비마마의 실내화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ABC마트 같은 데 가서도 이런저런 신발을 만져보고 신어보다 마음의 결정을 못하고 있던 차에, ㅌㄹ마을에 새로운 유행 신발이라는 <사눅> 사진을 보고 옳다구나 싶었다. 나 또한 매장에서 유념해 보았던 그 신발이 아니던가! 주
민들이 신어보고 그렇게도 편하다니, 왕비마마의 겨울용 <털신>으로 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게다가 엠티에서 실물을 두 켤레나 보고나선 마음을 굳혔다. 그 정도면 바닥도 푹신하고 털 때문에 포근해 올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 데 적합해 보여 이왕이면 왕비마마도 한 켤레 사드리고 나도 사 신자고.
해서 얼른 40%나 세일을 하고 있는 마을 추천 사이트에 두 켤레를 주문하고 흐뭇하게 사눅 신발을 기다렸다.
헌데 드디어 오늘 신발이 도착해 엄마에게 보여주니 표정이 좋지 않다. 방수도 안되는 신발을 겨울에 어떻게 신고 다니느냐.. 쭈글쭈글해서 신고벗기 불편하다.. 왼쪽은 크고 오른쪽은 꽉 낀다(좌우 발 크기는 누구나 다르지 않나??)... -_-;;
결국 나는 신기 싫으면 관두시라고, 왕비마마 껀 반품시키면 된다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어휴... 나는 맨발로 신어도 감촉이 좋아서 마음에 들던데 웬 타박이신지 원...
그제서야 옛날 우리 할머니들의 까탈스러움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되면 원래 저렇게 까다로워지는 것인지... 나가서 같이 고르자고 하면 또 싫다고 할 거면서! 죽을 날 머지 않았으니 새옷 새신발 사들이는 거 관두겠다고 하는 것까지 그 옛날 할머니들의 레퍼토리랑 아주 똑같다. 으휴... 
그나저나 비회원으로 구입한 신발인데 한켤레만 반품이 되나 어쩌나 그것도 모르겠고 골치아파 죽겠다. 젠장.. 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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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르기

책보따리 2009. 11. 30. 06:12
책을 읽고 나서 꼼꼼한 후기를 블로그에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책으로 밥 벌어 먹고 살면서 민망하게도 그리 책을 많이 읽지도 않지만, 그나마 드물게 읽는 책의 경우도 내가 좀체 후기를 쓰지 못하는 건 직업병과도 관련이 있다.

전에도 푸념을 한 적이 있지만 번역을 맡아 일을 하는 과정 중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분은 <책 검토와 검토서 작성>이다. 순수한 독자로서 책을 읽으면 좋다 싫다 별로다 괜찮다 정도로 뭉뚱그려 판단할 수도 있고 중간에 집어던졌다가 맘 내킬 때 다시 읽거나, 아예 끝내 포기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책의 재미와 가치 여부는 물론이고 상업성은 있겠는지, 독자층은 어떤지, 기존의 책들과는 어떻게 차별화되거나 유사한지, 내용 요약과 책을 조목조목 분석해서 판단하는 의견까지 내놓으라는 출판사의 요구를 받노라면 시작도 하기 전에 나는 책멀미를 느낀다. 논리와 분석력이 떨어지는 인간에게 책 한권을 읽고 객관적인 검토 소견을 제시하는 일이란 몹시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해서 바쁜 일정을 핑계삼아 책 검토는 애써 사양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는 법이라, 어쩔 수 없이 원서를 읽고 검토서를 만들어야 할 때면 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냥 독자로서 책을 즐겨보려고 노력하는 거다. 다행히 재미있게 책장이 넘어가면 호감어린 검토서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시작도 전에 느꼈던 책멀미가 계속 이어진다면 비판적으로 헐뜯는 의견을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늘 두려운 건 독자로서 나의 객관성이 얼마나 합리적일까 하는 점이다. 단순히 독서할 책을 추천하는 것이라면야 누군가 읽고나서 투덜대며 별로였다고 던져버려도 상관없지만, 원서에 지불해야하는 저작권 로열티부터 제작비까지 큰 돈과 시간을 들여 만들 <가치>가 있는 책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지기 시작한다. 

번역만으로는 당연히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번역 초창기 시절 나는 월급을 받으며 비상근으로 어느 출판사의 기획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말이 그럴듯해 출판 기획이지, 내가 하는 일은 저작권 중개 사무소를 돌아다니며 책을 추천받고 꼼꼼히 검토해 <대박>날 책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경제경영서 같은 무지한 분야의 책들을 고르는 건 괴로운 작업이었지만, 그래도 온갖 종류의 책을 접하고 읽는 게 좋아서 처음엔 꿩먹고 알먹는 일이라고 기뻐했었다. 요것조것 책을 골라 읽으면서 정기적인 수입도 생겼으니까.
하지만 머지않아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출판 경력도 전혀 없는 내가 어떻게 개인적인 취향이나 재미 여부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잘 팔릴> 책을 골라낸단 말인가! 출판사에서 원하는 건 <베스트셀러>가 될 책 90% + <출판인으로서 의미 있는 책> 10% 정도의 비율이었으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책은 얼마든지 추천 가능해도 <잘 팔릴 책>을 찝어내는 건 로또 번호 찍기처럼 막연하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저작권 중개사무소에서 소개받은 <유망한> 책들을 다 읽고 검토서를 만들어 기획회의를 거쳐 높으신 분들이 결정하도록 책임을 회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도 문제는 있었다. 놓친 고기는 늘 커보이는 법이라고, 내가 보기에 괜찮은 책 같아서 열심히 추천하다가 막판에 꼬리를 내려 출간을 포기했는데 그 책이 다른 출판사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 난 곧 지탄을 받았다. 워낙 좋으신 분들이라 심한 얘긴 하지 않았지만, 그때 내가 좀 더 강력하게 출간을 주장했으면 안 놓쳤을 거라며 안타까워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내가 완전 별로라며 소개만 하는 수준에서 그쳤던 원서가 그럴싸한 포장으로 날개돋친듯 팔려나갈 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베스트셀러가 다 좋은 책은 아니란 건 누구나 알지만, 아무리 문화산업의 자긍심을 품은 출판사라고 해도 우선은 매출이 높아 돈을 많이 벌어야 그 여력으로 <많이 팔리진 않더라도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최종 결정은 다 같이 했더라도, 비싼 저작권료 지불해가며 공들여 출간한 책이 맥을 못추고 안팔려도 애당초 맨 처음 그 책을 집어왔던 장본인인 나는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대체 출판이 도박과 다른 점은 뭐란 말인가!

책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도 좋았고 책 자체를 읽는 재미는 충분했지만 나는 3년만에 결국 <책 고르기>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아예 외서 기획일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내게 그 일을 맡겼던 출판사 사장님의 깊은 뜻은 번역가로서 책 고르는 안목을 높여 주어지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책을 선정하고 기획해 출판을 주도하는 역할까지 하라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런 재목이 되지 못함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지금도 가끔 아마존이나 뉴욕타임스 북리뷰 같은 사이트에서 좋은 책을 찾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는 출판인들이 계시지만, 나는 머쓱하게 뒷머리만 긁적이는 수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게을러서 그럴 시간이 잘 없네요..."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블로그 이웃 가운데 동종업계에서 번역에 힘쓰고 계신 두 분은 놀랍게도 번역과 함께 그 어려운 <책 고르기>를 병행하고 계신다. 재미 있으면서 가치도 있는 책을 골라 어렵사리 출간을 권유하고, 또 번역을 맡아 그 책이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땐 성취감과 뿌듯함이 몇배는 더 클 것이다. 더욱이 그 책이 독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어 <잘 팔리는 책>으로까지 인정을 받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지만 막연히 그걸 짐작하면서도 겁쟁이에 게으름뱅이이자 소심증 환자인 나는 의식 있는 번역가의 책무라고 하는 그 길을 갈 수가 없다. <책 골라 권하기>는 고사하고 출판사에서 골라준 원서 읽고 검토서 하나 만들라고 하는데도 어깨가 무거워 한숨을 쉬는 위인임에야 어쩌겠는가.

마뜩찮게 도맡은 책 검토를 할 때도 그나마 위안을 삼는 건, 번역작업을 맡을 욕심에 재미없는 책을 재미있다고 의견을 내거나 가치없는 책을 가치 있다고 추켜세운 적은 없다는 점이다. 사실 사적으로 싫은 분야가 아닌 한 웬만한 책은 소소하게 읽는 재미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이미 다른 언어로 세상에 선을 보인 책은 누군가 출간할 가치를 인정했다는 의미이므로, 그 분위기에 얼렁뚱땅 편승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또 다시 수천만원 이상의 돈과 노력을 들여 나무 없애가며 다시 우리말로 책을 펴낼 의미가 있을지 곱씹어보자면 나는 웬만하면 회의적인 태도로 기울게 된다. 어쩌면 출간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술수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책이 안팔려도 최초 검토자로서 덜 민망하도록. 물론 검토자에게 추후 책 판매 여부의 책임을 묻는 출판사는 없다. 검토자가 아무리 칭찬을 하거나 혹평을 해도, 결국 최종 결정은 출판 기획자의 몫이니 말이다.

번역서든 창작서든 이 땅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은 하나같이 여러 사람의 고민과 염려와 손길을 거쳐 탄생한다. 얼마 전 본 기사엔 3만개도 넘는 국내 출판사 가운데 작년에 한 권 이상 책을 낸 곳이 10%에 불과하며, 나머지 90%는 단 한 권도 책을 펴내지 못했을 정도로 출판시장이 열악했다고 한다. 서점에 나가보면 지천으로 깔려있고 쌓여있고 꽂혀 있는 게 신간이던데, 그게 겨우 10%였다니.

올해 상황은 어떠했을지 지나봐야 알겠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먹고 사는 형편이 극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한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책 산업이 돌연 호황을 누릴 리 만무하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어렵디 어려운 <책 고르기>와 <책 만들기>에 종사하는 수많은 출판인들이 보람을 느끼려면 그래도 누군가 꾸준히 책을 읽어주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골치아프게 만들어 내놓는 입장보다야 선뜻 집어 읽는 입장은 얼마나 더 수월한가. 확실히 나는 독자쪽을 더 선호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막상 읽기를 소홀히 하는 걸 보면 책으로 밥 벌어먹을 자격이 부족한 것도 같다. 2009년 정리할 때 덜 부끄럽도록 마지막 남은 한달 동안 몇권이나 더 읽을 수 있으려나 마음이 조급하다. 검토서 멀미증의 영향으로 독자로서 읽은 책의 후기를 쓰는 것 또한 못할 노릇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그래도 이웃 애서가들에게 자극을 받아 올해는 읽은 책을 기록하는 독서노트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정리에 젬병인 위인에겐 큰 발전인데, 이러다 보면 시답잖은 감상이라도 언젠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꼬박꼬박 독서후기를 쓸 날도 오게 되려나 어쩌려나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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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패션은 20년 주기로 돌고돈다는 말이 있고, <복고풍>이란 말이 패션계에선 단 한시즌도 빠지질 않는 걸 보면 아무리 디자이너들이 창의력을 발휘한다고 해봤자 사람들의 생각이란 게 워낙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결국 옛것에 약간의 변형을 가미해 새로운 척 내미는 시도가 되풀이될 수밖엔 없나보다. 옷장엔 한가득 옷이 들어 있어도 계절마다 옷타령을 멈출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백화점이든 거리의 옷가게엘 나가봐도 선뜻 사고픈 옷은 그리 많질 않다. 나로선 신체특성상 소화할 수 없거나 소화할 마음이 없는 옷들을 제외하고 나서 어렵사리 골라보면 결국 이미 갖고 있는 옷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저 본인이나 <새옷>이라는 기분만 낸다뿐이지 남들이 보면 아마도 십수년째 만날 똑같이 우중충한 옷만 입고 다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기야 뭐든 잘 못 버리는 성격인 데다 옷 욕심이 많기 때문인지 20년 묵은 옷가지들까지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간이니, 십수년째 똑같은 옷만 입는다고 누가 손가락질해도 전혀 할말은 없다. 오히려 20년 전에 입던 옷이 아직도 더러 몸에 맞는다는 게 자랑스러울 뿐!

20년 전에 유년기나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20년전에 이미 대학생이었던 나는 요즘 최고 유행이라는 패션경향을 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 옛날 나도 어쩔 수 없이 입고 다니긴 했지만 이후 촌스럽다고 외면했던 유행이 정말로 다시 되돌아왔구나 싶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샌 유행의 폭이 넓다고나 할까 다양성이 인정되는 분위기라서 아무리 한 가지 스타일이 유행해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으니 참 다행스럽다. 제 아무리 몇년째 스키니진이 유행이지만, 스키니진이 아닌 바지를 찾아 입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란 뜻이다. 과거엔 정말로 한 가지가 유행이면, 신상품은 죄다 한 가지로 통일되어 있었던 것 같다. 말만 달라졌지, 요즘 유행하는 <스키니진>은 그 옛날 <빽바지>로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나도 소싯적에 선택의 여지 없이 사입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 물론 지금처럼 밑위길이가 짧동하진 않아서, 허리까지 올라가는 <배바지>에 가깝긴 했지만, 청바지나 진바지는 물론 교복바지까지 통좁게 줄여입고 다니는 고등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넣고 꿰매입은 듯한(울 엄마의 표현이시다)> 몸에 밀착되는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지천이었다. 그나마 요샌 다른 모양의 바지도 사입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워낙에도 너도나도 똑같이 입고 다니는 집단유행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데다, 최신유행 패션을 열렬히 따를 만한  신체조건을 타고나지도 못했기 때문에 당대 유행하는 패션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무슨 옷이든 그저 내눈에 <예뻐> 보이면 그만이란 얘기다. 물론 첫눈에 아무리 <예뻐> 보여도 조만간 거리에 물결처럼 반복되는 패션이라면 일단 마음에서 제외된다.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면, 나는 두번다시 그 옷을 입고 싶어하지 않는 유형의 인간인데, 어떤 이는 똑같은 옷을 입었더라도 상대가 멋쟁이라면 스스로 대단히 뿌듯함을 느낀단다. <역시 유행과 패션을 아는 사람끼리는 통한다>고 생각한다나.  -_-; 작년 가을부터 요맘때면 계속 체크무늬 셔츠가 유행이라지만 나는 좀처럼 사 입을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너무 흔해빠진 체크무늬 말고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하고 예쁜 체크무니 셔츠를 사입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아직 그런 체크무늬는 발견하지 못했다;), 워낙 유행이라 똑같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거리에서 누군가를 맞닥뜨릴 확률이 높다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요즘 유행이라는 패션 가운데 내가 참아줄 수 있는 건 스키니진과 체크무늬 셔츠 정도인 것 같다. 하나같이 외래어라 더더욱 마음에 안드는 <2009 A/W 핫트렌드 패션>은 내눈엔 정말 아니올시다다! 나 같으면 거저 준다고 해도 안입을 옷들이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를 달고 언론의 조명을 받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 가까운 지인이 입고 나타난다면 당장 말리고픈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해도, 나로선 좀체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유행패션을 골라봤다. 어디까지나 따분함을 피해보려는 소치이니, 혹시 이미 소장했거나 소장할 마음을 먹은 지인들이 있다면 그러려니 하시길. 부디 나 같은 삐딱 촌닭과 만날 때만 선보이지 않으면 될지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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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

놀잇감 2007. 9. 20. 02:12

DIY... Do it yourself.
간단히 말해, 니가 직접 해라.
저 말 앞엔 괄호 안에 "돈 아깝거들랑", "딱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거들랑", 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착각의 늪에 빠져 우쭐해 하고 싶거들랑" 따위의 말이 생략되어 있을 게다.
어쨌든 DIY라는 슬로건은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도 꽤 유행인 듯하다.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자랑용' 블로그에는
무슨무슨 '리폼'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과 사진들이 수시로 보이고
내가 자주 가는 문방구 사이트에도 아예 DIY 코너가 생겨서 자투리 천과 재료들을 몽땅 갖춰 파는 DIY 인형이나 DIY 손지갑 같은 것도 있더라.

솜씨도 좋고 열정도 있는 나의 지인들 가운데선 정말로 목공을 배워
뚝딱뚝딱 전문가 뺨치는 커피탁자를 만들었던 이도 있고
퀼트 쪽으론 아예 전문가가 다된 이도 있으며
칼라시트 사다가 부분 벽지를 시도하더니 이젠 아예 제 방 도배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이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이들의 열정에 덩달아 부화뇌동하여 "별로 안 어렵다"는 부추김에 덜컥 넘어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몇 가지는 시도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결과의 만족 여부를 떠나서, 노동집약적인 그 과정은 늘 나에게 희열보다 짜증과 스트레스를 안겨주었기에 마지막엔 꼭 "다시는 하나봐라"며 손을 털었던 것 같다.

양쪽집 싱크대를 갈아치우자는 나의 주장이 비용 때문에 번번이 무산되었을 때
나는 두번이나 손수 칼라시트를 사다가(처음엔 수입 칼라시트를 사는 바람에  비용도 꽤 들었었다 ㅠ.ㅠ) 싱크대를 손봤고 (명절에 다니러 온 다른 가족들은 모두들 부엌 환해졌다고 칭찬했지만 정작 나와 함께 사는 두 노친네는 바쁘다면서 사서 생고생한다고 못마땅해 하셨기 때문에 잔소리 듣기 싫어서 두분 잠든 사이에 우렁각시처럼 해치우곤 했다. 쳇)

내가 지내는 쪽의 방문 두개와 화장실 문에 페인트를 사다가 칠하기도 했으며,
(밑바탕에도 칠을 해야한다는데 DIY가 꽤 유행하기 전이어서 무식하게 그냥 페인트만 사다가 칠해서 지금도 얼룩덜룩 가관이다 ^^;;)

직장생활을 잠시 쉬며 다른 회사로 줄을 갈아타는(?) 시기에 시간이 많이 남으면
"무려" 뜨개질을 해서 옷을 만들어 입거나, 손수 스커트 길이를 줄이기도 했다. ^^V

결론은 늘 "다시는 하나봐라"였음에도 가끔 또 그런 짓을 벌이는 걸 보면
그나마 내가 늘 바쁜 인간이라 다행이지 한가하면 집에 큰일 내겠다 싶다. ㅋㅋ

이번에도 원고마감과 추석 대비 집안정리에 바쁜 와중에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두 가지를 손수 해치웠다.
하나는 부엌 식탁 앞 흰벽에 그간 요리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은 더러운 벽지가 영 마음에 안들어, 단 두 폭만 접착형 벽지를 사다가 "포인트벽지"라고 주장하며 붙인 것과
몇년째 처분할까 천갈이를 할까 고민하던 내 방 앞 2인용 소파를 나름대로 '리폼'한 것.
ㅋㅋ
소파는 옛날부터 하도 더러워 몇년 전엔가 커튼 맞추면서 덮어씌워라도 놓을 요량으로 같은 천을 좀 끊어 놓은 게 있어서(몇년 전엔 소파에 덮어씌우는 눈가림용 천도 카탈로그 홈쇼핑에서 팔았던 적이 있다!) 그걸 대충 잘라 등받이와 바닥을 씌우고 옆은 대충 접어 꿰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덮어놓은 것인데, 그나마도 후다닥 해치우느라 손가락이 좀 과장하면 너덜너덜해졌다. 큼지막한 바늘에 이불 꿰매는 실을 꿰어 뒤쪽에다 듬성듬성 천을 고정시키느라 바늘에 수도 없이 찔렸기 때문이다. ㅠ.ㅠ

암튼 식탁 앞은 딱 내가 밥먹을 때 눈에 들어오는 부분 만이라도 깔끔해져 기분이 좋고,
소파도 버리거나 전문적인 천갈이를 하기 전까지 임시로 덮어둔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조카들이 쏟아놓은 얼룩덜룩한 주스 자국이 안보여 좀 낫다.

째뜬 생각해보면
DIY는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인 듯하다.
예전엔 겨울이면 엄마가 손수 떠주신 스웨터와 조끼, 털모자, 목도리, 장갑을 걸치고
아빠가 만들어주신 썰매를 탔더랬다.
해마다 가을이면 엄마는 방문에 창호지를 새로 바르고 여름 내내 책갈피에 말려둔 꽃잎과
새로 딴 단풍잎을 미닫이문 손잡이 주변에 장식하셨다.
내가 갖게 된 최초의 책꽂이도 아빠가 널빤지를 주워다가 톱으로 잘라 못을 치고 사포로 다듬어 니스까지 칠해주신 '사제품'이었다.
내가 중고등학교때 가사 실습 시간에 뜨개질이며 바느질, 한복 만들기에 월등한 솜씨를 보이며 으쓱해 했던 이유도 어려서부터 엄마의 솜씨를 눈여겨봤던 덕분일 게다.

요즘엔 뭐든 비싸야 잘 팔리고
단지 싫증이 났다는 이유로 멀쩡한 물건을 내다 버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누군가 내다버린 물건까지 냉큼 집어다가 손보고 칠하고 덮어서 새것처럼 만들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으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하나둘 늘어난다는 게
참 다행이다.

한올한올, 한뜸한뜸, 한뼘한뼘 손수 소중한 정성을 기울인 물건을 함부로 내다버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나 역시 16년전에 첫회사 관두고 1달간 쉬던 중에 손수 뜬 니트를 절대로 못버리고
1년에 딱 한번씩이라도 남들이 욕하건 말건 계절 맞춰 입어주려고 노력한다.
다행히도 유행은 돌고 돌아서 ^^;; 요샌 복고풍이 도래하여 내가 뜬 니트와 비슷한 옷들이 이른바 '튜닉'이라는 이름으로 더러 파는 곳까지 눈에 띈다.  
지난번 아줌마 파마머리 커버 용으로 입었다던 은색 반짝이 옷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아마도 작년엔 한번도 못 입었던 듯 하니 올해는 더 쌀쌀해지기 전에 마구 입어줘야겠다.
어차피 다른 이들의 시선을 머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려면 현란한 반짝이가 최고 아니겠나. ㅋㅋㅋ


구멍 숭숭 뚤린 손가락으로 자판을 치려니 손끝이 아려서 자랑질도 어렵군.
그래도 제자랑 실컷 하고 났더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역시 사람은 어느 정도 저 잘난 맛에 살아야 삶의 아이러니를 꽤 잊을 수 있나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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