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해당되는 글 136건

  1. 2011.07.26 홍유릉 12
  2. 2011.07.21 새주소 10
  3. 2011.07.19 책버릇 15
  4. 2011.07.06 모르겠다 6
  5. 2011.06.15 승복 퍼레이드 19
  6. 2011.06.12 브로콜리 너마저 다섯곡 9
  7. 2011.05.12 카네이션 9
  8. 2011.04.29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9
  9. 2011.04.05 가족이 뭔지 10
  10. 2011.02.28 선물 고민 12

홍유릉

놀잇감 2011. 7. 26. 07:55

삼계탕 챙겨먹기도 지겨워진 중복날, 동생들과 갈비 먹으러 가자고 의기투합한 김에 주 목적지인 갈비집과 가까이 있다는 홍유릉에 들러 반나절을 보냈다. 지난 가을 융건릉 다녀왔다고 자랑했을 때, 친구가 지척에 있는 홍유릉에도 좀 왔다가 자기네(꽤 유명한 갈비집인데 수년째 통 못가봐서 상당히 미안했다 ^^;) 들러가라고 퉁박을 주었던 걸 내내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오릉이나 융건릉 만큼 규모가 커서 산책길이 꽤 길 것으로 예상했건만 웬걸, 입구에서 빤히 다 보이는 곳에 홍릉과 유릉이 바싹 붙어 있어 서로 5분도 안걸리는 거리라 산책을 운동 삼는 건 애당초 불가능했다. 그래도 왕릉을 에워싼 숲은 깊고 높은 느낌이 들었고 잔디밭도 잘 다듬어져 있었으므로 피톤치드 섭취(?)의 의미로 나무 그늘에서 한참을 잘 쉬다 돌아왔다. 과거 서오릉에선 잔디밭에서 축구도 하고 놀았던 기억이 있으나, 조선 왕릉 세계문화유산 지정 덕분/탓인지 경건하게 보존해야 한다는 지령이 내려진 모양이어서 이제 이곳에선 공과 글러브를 아예 갖고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 +_+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대체 어떤 혜택이 있는 건지, 예산이 더 투입되어 좀 더 관리가 잘 되는 이점이 확실히 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제주도 세계자연유산 지정과 관련한 잡음을 봐도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세계적인 유산으로 지정을 받은 말든 지켜야할 문화재나 자연이라면 힘써 보호하면 그만 아닌가. 모든 호들갑엔 '야로'가 있을 것만 같아 통 못마땅하다. 암튼 그래서 가져간 축구공은 차보지도 못했고, 야구 캐치볼도 주차장에서 조금 하다 마는 아픔이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뿌듯한 나들이였다고 인정. 

고종과 명성왕후를 모신 홍릉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금세 보이는 연못엔 연꽃도 피어있고 팔뚝보다 더 긴 잉어가 돌아다녔다. 한쪽 옆에는 내가 '핫도그'라고 부르는 수생식물이 자리를 잡았고.



왕릉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홍릉과 유릉은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중국의 제후국임을 거부하면서 건축양식도 다르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 어쨌거나 내가 보기에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홍살문부터 전각까지 이어지는 온갖 석상들이었다. 말과 해치, 양 모양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코끼리와 낙타도 있더라! 맨 안쪽에는 문신과 무신 상도 서 있고... 능 옆에 지어놓은 한옥도 규모가 꽤 대단했다. 

전각에서 비각으로 이어지는 돌계단 틈에 피어난 처음 보는 꽃이 하도 신기해서 검색해보려고 찍어왔다. 혹시 나무님이 꽃 이름을 아실지도 모르겠고. ^^;; 궁궐 가서도 늘 하는 타령이지만 왕릉을 돌아다니면서도 결론은 하나, 이런 정원을 갖고 싶다는 것. 으휴.


오솔길을 따라 순종과 왕후, 계비를 모두 합장했다는 유릉까지 한바퀴 돌고 나니 제일 앞장섰던 큰동생이 대문이 활짝 열린 한옥 안에서 우리를 마구 불렀다. 시원한 대청마루에 아예 드러누워 쉬면서...
보통 관람용 한옥엔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떡하니 적혀 있기마련인데, 여긴 참 관람객 친화적이로군, 하며 신나했다. 잘 깎은 잔디밭도 구석구석 밟아보았고, 사랑채와 행랑채 방문도 여기저기 열어보며 새로 깔고 바른 장판지와 창호지까지 감상했다. 결론은 또 하나로 귀결, 아 이렇게 잘 생긴 한옥에 살고 싶어라!


 

 

분합문을 들어 올려놓은 대청마루에
아예 이렇게 자리를 잡고 놀았다는 얘기다.
입장료 천원(초등학생은 500원^^)이 조금도 아깝지 않아! 여기 너무 좋다! 이러면서...
(올케는 잠시 뒤 쿠션 좋은 제 남편 배를 베고 드러누웠다 ㅋㅋ)
 
그렇게 한 20-30분쯤 있었던가?
관리인 아저씨가 대문으로 들어서더니 우리에게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다. -_-; 
원래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이라 늘 잠가두는데 일이 있어 잠시 대문을 열어놓았던 것 뿐이라고...
우리는 민망해 하며 얼른 밖으로 나왔지만 한옥의 묘미와 대청마루의 시원함은 이미 즐길대로 다 즐긴 뒤였다. ㅋㅋㅋ
나와서 보니 대문이 두 군데 있고 정문쪽 대문에는 빨간색으로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었다. ;-p 우린 진짜로 몰랐을 뿐이고!


더 볼 것도 할 것도 없어진 우리는 늦게 출발한 막내동생네가 합류할 때까지 눈에 띄는 제일 큰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냥 쉬기로 했다. 오전에 내린 비로 잔디밭은 축축했지만 그늘엔 서늘한 바람이 솔솔 불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음이라...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워주었던 이 큰나무를 막내는 '낙엽송'이라 우겼는데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축축 늘어져 넓게 퍼진 가지가 아주 일품이어서 드러누워 올려다보며 므흣했다. 
 

 

요새 건강해지시면서 부쩍 콧바람을 쏘이고 싶어했던 울 엄마, 너무 가깝기는 했지만 주목적은 어디까지나 '복날 갈비 먹기'였으므로 먹기도 전에 흡족하셨는지 표정이 좋다. 휴대폰 들이대며 좀 웃어달랬더니 흔쾌히 협조도 하고.
 
그치만 새삼 사진으로 보니... 내가 아무리 '아줌마'라고 우겨도 어째볼 수 없는 할머니시구나. 역시나 아줌마는 내게 더 어울리는 호칭이었어. 그래도 염색 안한 회색 머리가 징그럽게 새카만 염색머리보다 나는야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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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주소

투덜일기 2011. 7. 21. 21:29

서울시 @@@구 □□로 37길 XX-X
정부가 우리집에 부과한 새주소다. (원래 주소는 서울시 @@@구 OO2동 XXX-XXX)
지번 찾기 쉬우라고 길마다 정했다는 새주소의 편리함 여부는 내 상관할 바 아니고, 그냥 마음에 안든다. 익숙한 것을 버리기가 원래 힘든 법이지만, 늘 새로운 걸 추구하는 취향도 갖고 있는 터라 단순히 낯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따져보면 나는 이 동네에서 35년을 훨씬 넘겨 살았다. 20년 넘게 산 이 집 이전에도 우리집 주소는 번지만 달랐지 늘 OO동이었다. 전월세 계약 기간이 2년으로 정해진 지 꽤 됐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막 6개월마다 이사를 다녔다. 아이가 셋이라 시끄럽다고 집주인이 계약연장대신 계속 쫓아냈다고 들었던 듯하다. 해서 우리는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길 하나를 마주하고 반대편 주택가로, 주소상으로는 OO2동에서 OO4동으로, 다시 OO3동으로  하도 이사를 다녀 옛날 손글씨로 적던 주민등록 등본을 떼면 주소 적는 난이 빽빽하다못해 넘쳐날 정도였다. 같은 구를 벗어나지 않은 건 할아버지댁과 가까이 있기 위함이라고 해도 부모님은 대체 이 동네가 뭐 그리 좋다고 고수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전셋값이 다른 동네보다 쌌을까?

어쨌든 밤늦게 택시 잡기 어렵고 집값은 저렴해도 워낙 오래 터를 잡고 산 동네라 OO동이라는 주소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이상하다. 명목상 번지수가 바뀌었대도 물론 너 어디사니, 하는 질문엔 다들 원래 동네 이름을 대겠지만 당최 새 주소는 써먹고 싶은 느낌이 안든다. 그나마 이 동네에선 새주소명 의의신청 움직임은 없었던 것 같다. □□로에 붙은 □□동 이름이 우리 동네보다 더 부자 동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초동 방배동 사람들은 '우면로'라는 새주소를 못마땅히 여겨 결사반대를 했다고 들었다. 원래는 다 평창동이었는데  새주소명이 '세검정길'과 '평창길'로 나뉘어 근거 없이 차별받는다고 단체 이의신청을 했다는 아파트 단지 이야기도 들렸다. 다 집값과 상관 있기 때문이란다. -_-;

이재에 어두워 집값 같은 건 전혀 모르겠고 30년 넘은 우리집이야 주소명 바뀌었다고 값을 더 쳐줄 리도 없다. 나는 다만 발음도 착하고 정겨운 OO동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더는 못쓰게 된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새주소는 당연히 아직 외지 못했다. 요번에 날아온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서는 당연히 원래 주소를 적었다. 연말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내년부터는 다 바뀌 주소를 사용해야 한다는데, 나는 언제까지 원래 주소를 고집할 수 있을까?

한 동네에 너무 오래 살아서 너무 많은 이웃과 서로 알고 있기에 인사하기도 귀찮고 민망해 확 이사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내가 선택해서 새 동네에서 터를 잡고 사는 것과 원래 오래도록 산 동네에서 동네 이름을 빼앗기는 것은 확실히 기분이 다르다. 현정부가 하는 일마다 족족 마음에 안들어 무조건 닥치고 싫다는 게 아니라, 정말이지 새주소가 필요했던 건지 잘 납득하기가 어렵다. 전화도 안걸고, 심지어 초인종도 안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올라와 물건을 전해주고 가는 수많은 택배기사님들은 새주소를 사용해도 그렇게 귀신같이 찾아와줄까? 아마도 내겐 그게 제일 큰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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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버릇

책보따리 2011. 7. 19. 01:54

우리나라에서 싯누렇거나 거무스름한 싸구려 재생지로 만든 보급판 책이 널리 사랑받지 못하는 건 워낙 책을 숭상하는 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페이퍼백이 지천인 외국과 달리 제 아무리 시답잖은 내용이라도 책은 마트 선반에서 대충 골라 한번 읽고 내다버리는 용도가 아니라고들 믿는다는 얘기다. 그렇게 책을 신성시 하기 때문에 오히려 독서인구가 적다는 아이러니도 존재하지만, 어쨌거나 책은 독서 여부와 상관 없이 사서 책꽂이에 '진열'하는 용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조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내가 책을 살때 장정과 표지, 제목을 꽤 중시하고, 독서하는 동안과 이후에 띠지를 고스란히 간직했다가 다시 새책처럼 둘러 책장에 꽂아두는 버릇도 아마 그러한 전시행정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책을 훼손하는 짓 역시 당연히 금물이라 여겨 옛날부터 책장을 함부로 접거나 줄을 긋지 않았다. 가끔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다가 책장에 한방울 흘리기라도 하면 엄청난 죄책감에 사로잡혀 호들갑을 떨었다. 얼른 닦아내어 흔적을 없애보겠다고 말이다. 예외가 있다면 교과서, 교재, 참고서적 정도. 하기야 그런 책은 독서를 하는 게 아니라 책장과 씨름을 하는 거니까 형광펜과 색깔 볼펜으로 죽죽 줄을 긋고 메모를 해두어도 죄책감은커녕 오히려 뿌듯했던 것 같다. 나중에 학자가 되고 나면 그런 책들이 부끄러워 새로 다 책을 장만해 꽂아둔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나는 학자가 될 생각이 없으니 상관없다. 내가 보기엔 옛날 교재를 다시 들춰볼 일도 거의 없을 것 같고.

암튼 그런데 최근 책 훼손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려고 노력중이다. 일부러 막 더럽게 읽거나 줄을 마구 긋는 건 아니지만 인상깊은 구절을 발견하면 일단 책장을 접어둔다.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하면서는 책을 읽으며 옆에 공책을 끼고 있다가 인상적인 구절이 나타나면 틈틈이 적어두곤 했는데 그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게다가 독서의 흐름도 확 끊기고! 뿐만 아니라 읽을 땐 괜찮은 것 같아 적어뒀는데 나중에 보면 대체 왜 적었나 싶은 문장들도 꽤 많다. 언제나 감상의 과잉에 허덕인다는 증거다. -_-; 그렇다고 또 내가 막 모든 책을 두번씩 탐독하며 내용을 정리하는 위인도 아닌지라 뭔가 방법이 없을까 고민(실은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꼼짝도 하기 귀찮은 마음이 더 컸다;)하다 그냥 책장을 확 접어 표시해두기로 한 거다. 

포스트잇을 붙여두는 방법도 있겠지만 내게 포스트잇은 통째로 수집 및 관상용 아니면 '일'과 직결된 거라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해서 처음엔 빳빳한 아트지 책장을 접는 손끝이 바르르 떨릴(과장 포함;;) 정도로 좀 찔렸으나, 그 또한 거듭되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어차피 누굴 빌려줄 책도 아니고 나 혼자만 볼 건데 뭐! 원래도 읽던 부분 표시는 온갖 종류의 책갈피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헷갈릴 필요는 없고, 책모서리가 많이 접힌 책일수록 인상깊은 구절이 많은 책임이 한눈에 척 들어오니 다 읽고 나선 꽤 뿌듯하기도 하다. 물론 접어놓은 부분은 며칠 내로 독서노트에 옮겨놓고 다시 잘 펴놓는다. 그 과정에서 역시나 왜 접어놨나, 다시 읽으니 별로다 싶은 부분도 있고, 새삼 책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 일석이조다. 한번 접힌 자국은 영영 지워지지 않겠지만, 의미없는 훼손은 아니며 새로운 책버릇일 뿐이라고 세뇌 중이다. 다 읽고나서도 새것처럼 깨끗한 책이 좋기는 하지만, 안 읽어서 새것인 책(아직도 너무 많다;;)은 자랑이 아니라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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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투덜일기 2011. 7. 6. 02:40

고등학교 졸업후 소식을 통 모르다 수십년 만에 만난 동창생. 많이 변했겠거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워낙 인면치이긴 하지만 어디서 본듯한 낌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성형 때문이었다. 눈, 코, 뺨, 치열교정의 효과라고 했다. 나로선 도대체 시선을 어디 두어야할지 몰라 어색함을 무릅쓰고 일부러 계속 옆자리에 앉았다. 좀처럼 마주볼 자신이 없을 정도로 첫인상은 좀 무서웠다. 예전엔 눈매가 기름하니 순하고 귀여운 인상이었는데.  거의 변하지 않은 목소리와 걸음걸이로 겨우 붙잡아낸 반가움이 긴 세월의 무게와 낯설음을 이기기까지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같이 만난 다른 친구에게도 고백했지만 내눈엔 조금도 예쁘지 않았고 나이보다 젊어보이지도 않아 이상했다.

그 친구의 성형이 좀 과할뿐, 내 주변에도 성형으로 '예뻐진' 이들이 서넛에 하나쯤은 있는 듯하다. 쌍꺼풀 정도는 아마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변화한 뒤에 만난 사람에겐 굳이 물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원한다는데야 성형수술을 굳이 반대할 마음도 없다. 하지만 전혀 성형 따위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친구가 떡하니 얼굴을 고치고 나타난 경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심 약간 실망스럽기는 했다. 나 역시 예쁘고 잘생긴 사람에 반색하는 외모지상주의자이면서 그 무슨 심술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눈을 째고 코를 높이고 턱뼈를 깎고 얼굴 사방에 주사바늘을 꽂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외모를 바꾸는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배우나 모델이라면 몰라도;;). 심지어 수술후 더 미워진 경우는 정말 속상하다. 개인적으로 쌍꺼풀이 없는 길쭉한 눈매를 좋아하는데 하나같이 눈을 찝어 동그랗게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놓는 것도 못마땅하다.

요즘 젊은 남녀가 많이 다니는 곳에 가보면 인면치인 내눈엔 정말 똑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공장에서 규격 맞춰 찍어놓은 공산품처럼. 외모도 경쟁력이기 때문에 너도나도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뜯어고쳐야 살아남을 수 있을 듯한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오죽하면 성형공화국이 됐을까. 가뜩이나 취직도 잘 안되는 상황에 못생기고 뚱뚱하면 시작도 해보기 전에 패배자로 낙인찍힌다나. 정말 그럴까. 90%를 훨씬 넘는다는 대학진학률처럼 우리나라 인구의 성형률도 그 정도 수치에 육박하고 나면 아무 소용없는 게 아닐까.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돈을 들여 스펙쌓기 경쟁을 하듯, 외모와 성형의 정도도 시술 가격 및 결과에 따라 경쟁력을 갖게 되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친구의 경우 성형으로 미인이 된 게 아니란 건 확실했다. 부자연스러운 건 확실히 아름답지 않다. 대부분의 인공미인을 내가 못마땅히 여기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성형까지 갈 것도 없다. <6시 내고향> 같은 탐방 프로그램에 나오는 지방의 할머니 어르신들도 가만 보면 다 문신으로 짙게 새겨 숱검댕이 같은 눈썹을 하고 나온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서워 죽겠다.

다들 감쪽같이 자연스럽게 예뻐져 눈쌀 찌푸릴 일이 없다면야, 그들이 생돈을 들이든 뼈를 깎는 아픔을 겪든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미추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므로 내 잣대를 들이댈 일도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관리가 칭송받아야 하는 덕목임은 확실하므로, 자연을 거스르는 인공적인 관리 노력 역시 미덕으로 봐야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음 생이 있어 외모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예쁘게 태어나고 싶은지, 귀엽게 태어나고 싶은지 꽤 심각하게 고민했던 걸 떠올려 봐도 점점 더 모르겠다. 과정이 어떠하든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 좋은 건가. 에라이, 모르는 소리는 관두고 중력 때문에 늘어지고 처진 내 뺨과 주름을 사랑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는 데나 신경을 써야겠다.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극구 위로하면서. 10년쯤 뒤 극구 위로하던 자연스러운 변화가 영 마음에 안들면 나도 겁없이 과학과 의술의 힘을 빌려는 생각이 들지, 그 또한 모를 일이니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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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복 퍼레이드

놀잇감 2011. 6. 15. 15:20

이른바 '마린룩'이라고 하여 봄과 여름이면 거의 해마다 유행하는 듯한 줄무늬 옷에 마음이 약해진다는 벨로의 포스팅을 보고 곧장 공감했다. 나는 무늬보다 색깔에 집착하는 편인데 마음에 들어서 사고 보면 회색인 경우가 어찌나 많은지. 대체로 무채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흰색, 검정색, 회색의 범주에 속하는 옷들이 가장 많으나 그 가운데도 회색이 워낙 많아서 왜 만날 스님 옷 같이, 똑같은 옷을 사오느냐고 엄마에게 종종 타박을 듣는다. 반면에 벨로가 좋아하는 미색/남색 가로줄무늬 옷은 남들이 입은 거 보며 좋아라하면서도 선뜻 사게 되진 않는다. 가로줄무늬를 입으면 '키가 작아보인다'거나 자칫 잘못하면 '죄수복'처럼 보인다는 속설에 너무 깊이 세뇌당한 탓일까? ^^; 그렇다고 그런 옷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암튼 일하긴 싫고 책도 눈에 안들어오고 TV도 별 볼일 없기에 나도 승복 퍼레이드로 트랙백하려고 옷장을 열었다. 회색 옷이 제일 많은 건 사실이나 먹물 들인 스님옷과 가장 유사한 '그레이 헤더' 옷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질 않은 느낌이라 진하고 흐린 회색옷을 몽땅 찍으려니 또 막 귀찮고... 암튼 그래서 그냥 손에 집히는 대로 골라 모았으니 큰 기대는 하시지 마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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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이웃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 베스트 다섯곡 뽑기,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싶지만 새삼 해봤다. 공연보러 가려면 어차피 노래 예습도 해야하니 겸사겸사다. CD를 사서 처음 들을 때 좋은 곡이 있고 나중에 더 좋아지는 곡이 있고, 또 계절이나 시기에 따라서 유독 귀에 박히는 곡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뽑고 보니 나도 좀 의외였다. 약간 의기소침한 요즘 상태를 반영하듯 전부 다 조용조용한 곡인 것 같다. 원래 브로콜리 노래가 거의 그렇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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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삶꾸러미 2011. 5. 12. 14:47

꽃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부모님께 달아드리거나 사다드리는 건 어째 좀 쑥스럽고 민망했다. 꽃으로만 따져도 카네이션은 내눈에 별로 안 예쁘다. 부모님도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고 출근하는 걸 자랑스레 여기는 쪽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중고등학생 시절까지는 카네이션을 선물했겠지만 그 이후로는 현실적으로 선물만 내미는 게 편했다. 혹시 꽃을 사더라도 깃에 다는 용이 아니라 바구니째 놓고 보는 쪽을 선호했고. 꽃을 달고 나다녀야 하는 민망함에서 놓여나 부모님도 안심하는 눈치였다.

동생들이 결혼을 한 뒤 나는 아예 카네이션을 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올케들이 다 알아서 했으니 말이다. 조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꽃까지 종종 색종이로 만들어와 가슴에 달아드렸던 것도 같고... 암튼 어버이날 카네이션은 이제 동생들 몫이라고 제쳐두었다. 그런데 지켜보니, 카네이션이 미학적으로 그리 예쁜 꽃은 아니란 건 다들 인정하는 모양인지 카네이션 바구니는 해를 거듭할수록 달라졌다. 내가 카네이션 바구니를 사올 때만 해도 빨간 카네이션에 안개꽃을 약간 꽂은 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러더니 올케들이 어버이날 꽃을 대기 시작하며 카네이션과 안개꽃에 장미가 혼합되어 화려해졌다. 언제부턴가는 다른 작은 꽃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기도 했다. 하기야 수년 전부터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만드는 양상이 달라졌다. 꽃을 한 종류로 하던 경향에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꽃을 아름답게 섞어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카네이션 꽃바구니에도 당연히 그런 추세가 적용됐을 것이다.

덕분에 더욱 아름다워진 어버이날 카네이션에 해마다 감탄해왔는데 올해는 정점을 이뤘다. +_+ 두 동생이 가져온 앙증맞은 꽃바구니는 똑같이 카네이션을 활용했으면서도 분위기가 아예 달랐다. 카네이션 별로 안 예쁘다고 툴툴대던 나의 편견이 교정될 정도였다. 다량으로 제작판매하는 바람에 신선도가 떨어져 그 아름다움이 오래가진 못했지만 어차피 화무십일홍이랬다(잘하면 2, 3주일도 거뜬한 국화는 예외다 ㅋㅋ). 토요일부터 사흘간 한껏 예쁜 자태를 자랑하다 푹 고꾸라져버린 꽃들을 빼버리고 남은 것들만 다시 추려 유리병에 꽂아놓았는데 식탁 센터피스로 아주 딱이다. 밥 한 숟가락 먹고 꽃 한번 쳐다보고 반찬 한번 집어먹고 벌어진 봉오리 한번 쳐다보고... 서양사람들이 정찬 식탁에 왜 꽃을 두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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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던 북리뷰는 계속 안 쓰는 게 좋겠고 특히 따끈한 신간 후기는 검색망에 걸려들기 쉬워 괜히 난감(?)할 수도 있으니 안하겠다고 선언한지 얼마나 됐다고, 손바닥 뒤집듯 또 독후감을 쓴다. 의지력 박약 및 우유부단, 내가 그렇지 뭐.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

일단 옮긴이의 블로그에서 이 표지와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이미 낚인 게 틀림없다. 전작 <밴버드의 어리석음>을 읽고나서 폴 콜린스라는 사람 참 대단하고 신기한 사람이구나, 역자가 소신껏 밀어줄만한 작가로구나 생각은 했지만, 토머스 페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대번에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으니 제목 한번 잘 지었다 싶다. 거기다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라는 부제도 호기심을 끌기 충분하다. (다 읽고 보니 중의적이다. 그 옛날 18세기에 이미 토머스 페인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이 지극히 '상식'이라고 주장했고, <상식>이라는 책도 펴냈다) 역사가 외면하고 잊어버린 기인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두는 폴 콜린스의 취향은 이번 책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지는데, 전작 <밴버드의 어리석음>보다 대중적이고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 읽는 재미도 훨 낫다. 

토머스 페인. 미국 건국의 아버지란다. 심지어 미합중국이란 말을 처음 만들어냈으며, 자기 주머니 돈을 털어 미국 연방준비은행(뉴스에서 자꾸 '연준'이라고 해서 내가 못 알아먹었던 그곳의 역사가 이리도 오래됐구나!) 종잣돈을 마련했고, 미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주장한 책 <상식>을 써서 '독립선언문'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영국에서 군주제 폐지를 부르짖다 반역자로 조국에서 쫒겨나 프랑스에서 혁명운동을 하다 투옥됐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끊임없이 급진적인 주장을 펼치던 그는 복음주의 기독교를 비난하는 <이성의 시대>라는 책 하나 때문에 독립영웅 대신 혐오스런 무신론자로 배척 당하다 끝내 가난과 고독에 허덕이다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어쩜.. 이름도 하필 Pain, '고통'이람. 나중엔 끝에 e를 넣었다지만 영어로는 고통, 한국말로는 '폐인'의 어감이 난다. 혹시 그의 수난은 작명탓이 아닐까 잠시 딴 생각이 들었다만, 뭐 그의 일족이 죄다 그런 일생을 살았을 리는 없겠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면 벤저민 프랭클린 아닌가?(그러니까 무려 100달러짜리 지폐에 얼굴이 새겨진 게 아니었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면 나도 한번쯤 들어봤을 텐데(물론 내가 상식이 풍부하거나 세계사를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금시초문인 걸 보면 뭔가 사연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책은 토머스 페인의 '전기'가 아니다. 토머스 페인이라는 인물은 그저 대 전제로 존재할 뿐 이야기의 골자는 어디까지나 그의 '사라진 유골'이다. 프랭클린의 장례식에는 2만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는데, 페인이 매장될 때 참석한 인원은 달랑 6명이었다. 퀘이커 교도였던 그는 교회 묘지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그 어디서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 결국 그의 시신은 살던 오두막 근방의 마당 한구석에 묻혔다. 

10년 뒤, 한밤중에 누군가 그의 유골을 파내 영국으로 가져간다. 살아생전 토머스 페인을 사사건건 트집잡고 비난하고 논쟁을 벌이고 조롱했던 골수보수주의자 윌리엄 코빗의 소행이다. 페인이 죽은 뒤 개처럼 버려져 묻혀야 한다고 독설을 퍼붓던 코빗은 뜬금없이 페인의 기념비를 제대로 세워줄 목적으로 그의 유골을 파내 대서양을 건너왔다. 긴 세월을 거친 뒤에야 페인이 주장하던 진보적인 진리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허나 영국에서 그런 일을 호락호락 허가할 리는 없다. 통관부터 문제가 되었던 페인의 유골은 기금 마련에도 어려움이 생기면서 계속 방치되어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떠돈다. 금서였던 그의 책은 다시 용기 있는 젊은이와 서적상 덕분에 암암리에 유통되고, 페인의 생애도 재조명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시각은 부정적이므로 페인의 유골은 계속해서 '뜻있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별로 힘은 없는 이상주의자, 진보주의자들에게나 관심의 대상이다. 

이 책은 그렇게 추종자들의 관심망에 따라 페인의 유골이 정처없이 떠돈 흔적을 뒤쫓아가며, 과연 어떤 사람들이 그리도 페인의 유골에 관심이 많았는지 결국 페인의 유골은 어디에서 안식을 취했는지(또는 영영 떠돌고 마는 것인지) 독자의 궁금증을 잔뜩 부추기며 대서양을 오간다. 급기야 두개골 따로, 뇌 따로, 왼손과 일부 유골 따로, 몸 따로 흩어진 페인의 자취를 좇는 과거(페인의 유골을 손에 넣었거나 유통한 사람들의 역사)와 현재(옛날 단서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지은이의 행적)의 시선이 공존한다.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나 싶으면 유골은 또 파산이나 몰락의 이유로 또 다시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간 뒤인데, 그들은 하나같이 말을 아낀다. 설마 찾겠지, 어디든 페인의 유골이 방황을 멈춘 곳이야 있겠지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새 책의 후반부다. 그래서 폴 콜린스가 분실된 페인의 유골을 결국 추적하는데 성공했느냐고? 물론 그건 나도 알려줄 수 없다. ^^;;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시기를! 지금 생각하면 엽기적으로 생각되는 19세기 영국인들의 각별한 유골 사랑(아 글쎄, 밀턴의 유골도 일부 도난당했다네!)과 기이한 수집벽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덤이다.  

토머스 페인도 낯선 마당에 그를 추종한 영미권의 수많은 사람들 이름은 책장을 덮고 나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가운데 남부출신의 극단적인 인종주의자였다가 사상이 완전히 바뀌어 페인의 추종자가 된 몬큐어 콘웨이는 워낙 독보적이라 두드러진다. 골통보수라고 할 수 있는 순회목사였던 콘웨이는 에머슨 목사(우리가 아는 그 랠프 왈도 에머슨 맞다)의 글을 읽고 신학공부를 다시 하기로 결심하는데, 에머슨을 찾아가 만나면서 계속해서 소개받고 만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대단하다. 짐작하다시피 호수 근처 이웃은 소로이고, 인쇄공으로 일하는 노동자 시인을 소개받아 만나고 보니 휘트먼인 식이다. 그 뿐만 아니다. 페인의 자취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선 또 테니슨 경, 새커리, 로버트 브라우닝, 다윈과 교류한다. 마크 트웨인, 해리엇 비치 스토 부인, 찰스 디킨스까지, 전부 다 콘웨이의 '지인'들이다. 우와, 역시 유유상종이로다.

콘웨이가 그 유명한 지인들과 주고받는 대화는 거의 선문답이다. 이를테면,
"정신이 일단 어떤 상태에 다다르면,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열매가 맺히는 법이지."(p144)
<블랙우즈 매거진>에 실린 에머슨의 글을 읽고 콘웨이가 얼마나 감동을 받고 삶의 행로를 바꾸게 되었는지 고백했을 때 에머슨이 겸손하개 해준 말이란다. 또한 에머슨은 목사의 존재 이유가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로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면서 "학교 회의에 양심적인 사람 한 사람은 앉아 있어야 하고, 지역사회 모임을 돕고 병들고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있기는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파리 한 마리가, 존재하는지 않는지 불분명한 천사보다 더 중요하네."(p145)라면서.
하버드 재학 시절, 남부 출신으로 노예문제에 이견을 갖고 있는 콘웨이가 양측의 공격을 받을 때 에머슨은 또 이렇게 충고한다.  "위대하다는 것은 (...) 오해 받는 것일세."(p154)

"약간 쌉싸래하죠. (...) 하지만 그게 경험입니다."(p156)
월든 호수를 같이 산책하며 소로가 콘웨이에게 풀잎을 씹어보라고 한 뒤 한 말이다.

워낙 유명인들과 교류한 콘웨이가 내 기억에 유독 남았을 뿐이지 페인의 유골 행방을 좇은 사람들은 대부분 흥미로운 개인사를 갖고 있다. 당시로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주장(여성에게 피임법을 알리거나,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등;;)을 펼치거나 실천하려던 그들이 토머스 페인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페인의 사상은 현재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펄떡거린다.

"관용은 불용의 반대가 아니라, 불용을 아닌 척 위장하는 것이다. (...) 둘 다 전제주의다. 불용은 양심의 자유를 억압할 권리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고, 관용은 양심의 자유를 허가할 권리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p198)

페인은 자기 묘비명에 단 한 구절 "<상식>의 작가"라고 새겨달라고 했단다. 46쪽에 달하는 소책자에 불과하지만 그의 사상이 축약되어 있고 책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그만큼 깊다는 의미다. 책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만으로도 나 역시 페인의 팬이 될 것 같다.
"어떤 그릇된 것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오래 굳어지면 겉보기에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p35)
"우리에게는 세상을 다시 시작할 힘이 있다."(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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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뭔지

놀잇감 2011. 4. 5. 12:41

친구에게 회사 추천을 했더니 가족 같은 분위기라 싫다고 했다는 블로그 이웃의 포스팅을 보다 생각났다. 아직도 소규모 회사의 경우 구인광고를 낼 때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를 자랑으로 삼는 데가 많지만, 이제 구직자 쪽에선 대개 그걸 식겁하는 조건으로 여긴다. 가족은 하나로도 버겁고 족하다고 말이다.

내가 벌써 구세대라 그런지, 솔직히 나는 얼마전까지도 '가족 같은 회사'가 정말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옛날 조직원의 삶에 충실했던 나를 돌아볼라치면, 그런 가족같은 대우와 처사에 막 감동했었다. 그러고 보면 이십대까지 가족이야말로 나의 영원한 등대이자 울타리, 안식처라고 철썩같이 믿고 살았다. 절대로 내 발목을 붙드는 족쇄일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참 순진하기도 하지. 암튼 가족에 대한 견해가 그토록 아련하고 긍정적이니,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도 좋게만 생각됐던 모양이다. 회사의 경영진과 관리자 측에서 '가족' 운운하는 건 다 노동력 착취와 유리한 위치 선점을 위한 포석이란 걸 나중에 깨닫기는 했지만, '그래도' 관성이랄까 습관이 든 때문인지 그 관계를 떨치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사이비든 아니든 '가족'이라는데.

주말마다 열심히 시청하고 있는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3의 마지막 경쟁미션의 주제는 뜬금없게도 가족이었다. 가족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을 완성하라는 것. 후보 디자이너들의 어린시절 가족사진이 화면에 등장하고, 가족들의 응원 영상이 나타나자 스튜디오는 울음판이었다. 나 역시 깜깜한 거실에 홀로 앉아 TV 앞에서 덩달아 울며 막 짜증이 났다. 아, 정말 억지 감동과 스토리를 짜내려는 찌질한 제작진의 심보가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가! 디자인 실력만 평가하면 될 것을 왜 꼭 그렇게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안달인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디자이너들도 어느 정도 '신상이 털리는' 상황은 예상하고 수긍했겠지만, 그런 식으로 사생활을 파고드는 제작 태도엔 내가 다 막 화가 나고 불쾌했다. 디자인 경쟁프로그램마저 가족과 배경 자랑의 장이 되거나 동정의 빌미가 되어선 안되는 거 아닌가?

어쨌든 5회미션부터 눈에 들어 개인적으로 열심히 응원하고 있던 디자이너의 경우엔 이십대 중반의 어린 나이임에도 가족이 곧 엄청난 상처이고 아픔이었다는 사실이 이번 가족 미션에서 드러났다. 디자인 외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너무 튀는 외모와 욕설도 서슴지 않는 거친 입담 때문에 나랑은 취향이 잘 안맞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노련한 솜씨가 느껴지는 디자인이 내 눈엔 그저 예쁘고 좋아서 탑3에 뽑히기를 몹시 바라는 마음이었다. 파리나 뉴욕에 있는 유명 패션스쿨 출신의 유학파와 비교되는 순수 국내파에 대한 심정적인 지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유럽과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을 것에 비하면 국내에서 의상학과나 디자인학원을 다닌 사람들은 아직도 '패션은 본고장인 서양에서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대주의 사고에 희생당하기 십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국내파라도 내 눈에 예쁘고 멋지지 않은 디자인을 보여주는 후보를 무조건 응원할 수야 없는 일인데, 신주연 씨의 의상은 대체로 훌륭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 아마추어인 내 견해로만 그런 게 아니라 우승도 두번이나 했을 정도이고, 미션마다 거의 상위권이었다. 비록 9회 자전거 미션에선 내가 보기에도 너무 아니올시다, 80년대 아줌마옷 같은 투피스를 선보이는 바람에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했지만서도...


런웨이에 올라 가족에서 영감을 얻은 각자의 디자인을 설명하며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울먹거리거나 통곡하는 수준이었다. 가족이란 누구에게나 짠한 부분이고 아픔이라는 방증이다. 하지만 가족이 남긴 찢어지고 곪아터진 상처를 그냥 덮어 꿰매어 놓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자꾸만 틈이 벌어져 아픔이 삐지고 튀어나온다는 느낌을 고스란히 폭로한 신주연씨의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볼 때는 아예 머리가 멍해졌다. 가족이 뭐라고...

글이란 게 참 묘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줏대가 없는 건지 글이 좀 길어지면 처음 쓰려고 생각했던 이야기와 결말이 같아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지금도 내가 어쩌려고 가족 이야기와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이야기를 같이 꺼냈는지 잘 모르겠다. 가족이 멍에이고 상처라도 개인의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던가? -_-; 나도 갈피를 못잡겠다는 것으로 급마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은 이제 내게 너무 어려운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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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고민

투덜일기 2011. 2. 28. 16:51

1900분짜리 전화카드를 샀다는 친구랑 요 며칠 계속 통화를 했다. 친구의 언니가 부탁한 화장품 때문이다. 미 서부지역엔 웬만한 한국 제품이 다 들어가있는 것 같아 보여도, 세부품목이 거의 기함할 정도(손바닥 두개로 가려지는 얼굴에 발라야 한다고 사람들이 '주장'하는 화장품은 왜 그리 많은 건지! 나는 다 무시하는 쪽이다 ㅋㅋ)인 화장품은 아직 온갖 브랜드가 다 수출되진 않나 보다. 더구나 요즘엔 피부과 병원이랑 연계해서 만드는 기능성 화장품도 좀 많은가. 암튼 친구 언니와 딸들이 한국 사이트에 들어와 수많은 사용후기를 읽어본 뒤 골랐다는 *앤* 화장품을 사보내는 건 내겐 일도 아니다. 친구는 예전부터 로션도 잘 안바르고 다니는 사람이고, 그 언니들도 화장을 열심히 하는 이들은 아닌데 작은언니는 유독 피부에 신경을 쓴다. 원래 미인은 다 그런듯.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작은언니의 교복입은 모습이 워낙 아름다워, 하도 남학생들이 쫓아다닌 탓에 친구 어머니(몹시 보수적이신 분;)께서 이를 갈았던 역사는 나까지 알고 있을 정도.

암튼 종종 작은언니가 고르는 화장품을 사보낼 때면 나는 또 고민에 빠진다. 친구 말로는 자기는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다지만 그래도 뭔가 또 덩달아 같이 보내야 내 마음이 뿌듯하지 않은가. 근데 진짜 사보낼 품목이 마땅하지가 않다. 일과 집, 잠밖에 모르는 친구라서 특별히 기호품도 없고... 오죽하면 지난번 작은언니 화장품 보낼 때는 아줌마스럽게 그냥 멸치(볶음용 및 국물용)와 오징어, 쥐포를 보냈다. 가끔 내가 친구한테 다니러 갔을 때에도, 친구 역시 한국에 왔다가 돌아갈 때에도 멸치와 오징어, 쥐포는 빠지지 않는 쇼핑 품목이었다. ㅠ.ㅠ 2년전엔가 친구가 남편과 함께 다녀갈 때엔 그 세  품목에다 맥심 커피믹스까지 바리바리 사서 아예 이민가방 하나를 꾸렸었다. 물론 LA 한인마트에도 다 파는 물건이지만 여기 거랑은 맛이 다르다는데 어쩌랴.

노상 보는 친구의 선물도 역사가 길어지면 품목과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고민스러운 마당에 태평양까지 건너가려면 정말이지 난감하다. 좀 민망해도 제일 만만한 건어물은 무게가 많이 나가서 물건 값이나 부치는 비용이나 비등비등해서 좀 억울하긴 하다. 그래도 친구와 그 가족들이 제일 반기는 선물인 것 같아서 요번에도 염두에 두고는 있지만, 그거 말고 또 뭔가 참신한 선물을 보내면 좋겠는데 아무리 머리를 짜도 생각이 안난다. 작은언니가 오매불망 물건을 기다리고 있으니 화장품 배송되어 오는대로 나 역시 우체국으로 직행해야할텐데 뭘 사야하나. 친구가 이민간 초기엔 책도 많이 보냈는데, LA 인근 한인서점에 가면 웬만한 책은 다 있다. 초창기에 내가 번역한 책을 그곳 서점에서 발견하면 친구가 감격해하며 전화도 할 정도였지만, 요즘 새로 나온 책 증정본이 와도 우리 가족이 시큰둥한 것처럼 친구와 언니들 역시 이젠 **이 책 또 나왔네 하며 그냥 지나친단다. ^^; 미국에서 살며 굳이 번역서를 읽을 이유는 없잖은가.

최근 왕래가 뜸해지긴 했어도 친구 역시 한국 나올 때마다 선물 때문에 고민이란다. 한국에 수입 안되는 물건이 어디 있어야 말이지. 그래도 내가 커피를 좋아하니까 십수년년 전까지는 코스코에서 대용량으로 산 인스턴트 봉지커피를 사 나르다, 그 담엔 원두커피를 대형 깡통으로 안겨주었었는데 와서 커피를 먹어보더니 여기 커피 원두가 더 맛있다고 인정한 뒤엔 주로 육포로 승부를 걸었다. 그러나 또 광우병 광풍이 부는 바람에...  그 뒤로 서로 짬을 내지 못한 수년 사이, 몇번은 아주 실용적으로 서로의 계좌에 마음에 드는 선물 사라고 송금을 하기도 했으나, 하면서도 찝찝한 느낌이라 친구와 합의 하에 관두고 말았다. 미국에 살며 볼펜도 한국 걸로 사서 쓰는 친구에겐(디자인이 예쁘단다) 현금보다는 역시 여기 물건을 보내야 제대로 선물했다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만우절인 친구 생일도 머지 않았다. 화장품 보내면서 이참에 미리 챙겨야 마음이 편하겠는데 과연 뭐가 좋을까나. 그다지 무겁지도 부피가 크지도 않으면서 유용하고 뿌듯한 선물 뭐 없을까? -_-; 예쁜 메모지와 필기도구는 부록이니 제외하고, 목걸이는 지난번에 해봤으니 건너뛰고, 친구에게도 기능성 화장품을 보낼까? 그렇다면 어떤 종류로? 화장품에 대해서 나 잘 모르는데... 으으으. 이러다 또 멸치랑 오징어 냄새 안나게 비닐과 랩으로 꽁꽁 싸고 앉았는 내가 그려지는 것 같다. 뭐 없을까????? 이웃 여러분의 뾰족한 아이디어 대환영합니다.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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