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에 해당되는 글 157건

  1. 2010.03.31 나에게 주는 선물 23
  2. 2010.03.24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5
  3. 2010.02.26 무지한 눈으로도 6
  4. 2010.02.22 드립 커피 13
  5. 2010.02.01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5
  6. 2010.01.28 진짜 별 10
  7. 2010.01.21 방학 14
  8. 2010.01.02 2009 한해 정리 12
  9. 2009.12.25 2009년에 읽은 책 14
  10. 2009.11.27 Sting 4

나에게 주는 선물

놀잇감 2010. 3. 31. 14:57

우유부단한 것도 가끔은 장점으로 작용하는 터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지름신에 넘어갈 때면 늘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건 그동안 잘 살아온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라고. 게다가 작년부터 변변찮은 수입을 염려하여 퍽 금욕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탓에 알게 모르게 욕구불만이 가득 쌓여 더욱 까칠하고 음울한 인간으로 살았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자각을 핑계삼아 최근 마구 질러대고 있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더욱 블로그질에 탐닉하는 쌘이처럼 나 역시 바빠서 제대로 즐길 겨를도 없지만 어쨌거나 특히나 정신없는 3월의 마지막날에도 이렇게 틈틈이 블로그질을 하며 자랑까지 나섰다. 가열찬 블로그질은 늘 하기 싫은 일이 더더욱 하기 싫다는 욕망의 표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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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까지 유효한 전시회 표 두 장을 진즉에 이벤트로 당첨받아 놓고선 전시 끝나기 열흘 전에야 다녀올 수 있었다. 그나마도 이웃분들이 단체관람 날짜를 잡으며 펌프질을 해준 덕분에 어떻게든 짬을 내겠다는 생각을 했지, 안 그랬으면 조카와 올케에게 티켓을 주어보냈을지도 모를 만큼 그간 만사가 시큰둥했다.

게다가 앤디 워홀의 그림은 하도 유명해서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탓에 직접 보지 않은 그림도 마치 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말이다. 전시장에서도 순간순간 기시감에 시달렸는데, 가물가물한 기억을 억지로 뒤져보니 마릴린 먼로나 캠벨 수프 정도는 실제로도 과거 전시회에서 본 기억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떤 백화점 꼭대기의 전시장이었던 것도 같고, 어느 여행길이나 출장길에 들른 이국의 미술관이었던 것도 같긴 한데, 정확한 건 알 수가 없다. 기억력도 나쁜 주제에 기록 습관마저 부실하니 어쩌겠나.

하기야 뻔뻔스러울 정도로 미국적으로 느껴지는 앤디 워홀의 몇몇 작품을 처음 대중매체에서 접하며 과거의 나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게 (실제로 그는 자기 작업실을 <팩토리>라 부르고 조수들에게 실크 스크린 작업을 대신 맡기기도 했다) 어떻게 독창적인 예술이 될 수 있겠냐는 비판 쪽에 고개를 끄덕거렸으므로,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아 기억에 안남겼을 수도 있다. (사실 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도 처음 뉴스에서 접하며 저 <따위>가 무슨 예술 작품인가 하고 어이상실을 경험했던 무식한 사람이다) 팝아트에 대한 무지의 소치였을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존경스럽기는 해도 격조 높은 양반들이 우아떠는 세상인 것만 같아 괜히 빈정상하는 구석이 있는 현대 미술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조롱한 앤디 워홀의 삐딱한 정신이 나랑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통조림 찍어내듯 뚝딱뚝딱 그림도 복제하는 것처럼 공장에서 쓱쓱 실크스크린으로 대량으로 밀어낸 뒤에 현란한 색채로 마무리하지만, 정작 똑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스스로 언론에 노출되기를 즐긴 괴짜 예술가로서의 그의 삶에 대해서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단순하면서 명쾌하게 다가오는 앤디 워홀의 작품들은 확실히 <대중적>이어서 친근하고 편하다. 앤디 워홀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마릴린 먼로가 그토록 인상적으로 현대인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라고. 진한 주황색을 바탕으로 걸려 있던 수많은 인물 작품들은 벽 자체가 커다란 한 폭의 그림 같이 보이기도 했다. 튀고 싶고 주목받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 십대의 정서에서 평생 못 벗어난 것 같은 그의 자화상들도 좋았고, 얼굴이 무너지기 이전의 마이클 잭슨이랑, 비틀즈, 특히 믹재거 연작이 마음에 들었다. 

나야 퍽 보고 싶은 전시였지만 열세살 조카를 대동하고 관람하면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공주는 뜻밖에도 장 뒤뷔페 이후 두번째로 마음에 드는 전시라며 흡족해 했다. "나는 일상생활 그림들이 좋더라"는 촌평과 함께. +_+ 매번 그러듯 둘이 같이 이번 전시 최고의 그림도 선정했는데, 같은 그림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라고 엄청 광고하던데, 소장품과 서류 같은 것들도 포함된 탓인지 그림이 정말 많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색상별로 훨씬 다양한 마릴린 먼로도 몇 작품 안온 것 같아 아쉬웠다. 늘상 느끼지만 <질과 양> 모두 흡족하게 작품을 감상하려면 원 소장처로 가야한다는 것인데, 앤디 워홀 작품들이야 하도 고가에 여기저기 팔려다니니 앤디 워홀 미술관엘 가도 다 보지는 못하려나. 하여간에 봄맞이 미술관 탐방으론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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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는 아름답고 눈부시더라. 다들 김연아 칭찬에 입이 마른 터에 나까지 거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고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기분 좋아지는 포스팅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제만해도 <1등만 기억하고 주목하는 더러운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최소한 곽민정 경기부터는 관람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알람을 맞춰 놓고도 그냥 누르고 잤다. 민정양, 미안. -_-;

이름 까먹은 그루지야 선수가 넘어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잠을 떨쳐낸 나는 미국의 레이첼 플랫 선수부터 정신을 차리고 경기를 관람했는데 이제 겨우 17살이라 토실토실 젖살이 남아 있는 귀여운 얼굴로 정말 신나게 즐기면서 경기하는 모습이라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안도 미키는 등장과 함께 속이 상했다. 아무리 프로그램이 클레오파트라라지만, 그래도 지난번 시퍼러둥둥한 의상보다는 좀 차분해졌지만, 내가 초록색 옷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지닌 이유를 증명이라도 하듯 촌스럽게 느껴지는 초록색 의상은 이번에도 안습이었다. 솔직히 나는 아사다 마오보다 안도 미키가 더 뛰어난 재능과 노련함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좀 넓은 듯한 얼굴과 이목구비도 시원시원 매력이 있고. 헌데 안도 미키는 매번 의상이 꽝이다. 뭘 그리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지 원! 게다가 클레오파트라 때문인지 난데없는 단발머리도 어색하고, 피겨 스케이팅에 완전 무지한 울 엄니가 보시면서 "쟤는 왜 스케이트를 타다 말다 한다니."라고 하실 정도로 연기가 뚝뚝 끊겼다. 보라색 옷 입고 했던 세계 선수권 대회였나 그땐 그나마 좋았었는데!

안도 미키의 안쓰러운 연기 뒤에 본 연아의 모습이야 뭐 다들 아는 바대로 완벽했고 무지한 눈으로 봐도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왕비마마도 "김연아는 진짜 잘하네. 딴애들이랑 확실히 다르다."고 촌평할 정도였다. 연기를 끝내고 눈물을 터뜨린 연아를 보며 나도 질질 울어대자 왕비마마는 상당히 의아해하셨지만, 자기도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는 연아의 말처럼 나도 왜 울었는지는 딱히 잘 모르겠다.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눈물이 난다는데 그런 것이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다.

넘기 어려운 연아의 세계신기록 이후 연기를 펼친 아사다 마오도 그만하면 대단했다. 혹시라도 너무 큰 부담감에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몇번의 실수는 있었어도 훌륭하게 연기를 끝낸 걸 보면 연아도 그렇고 마오도 그렇고 스무살짜리들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림이나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나쁜 방법이 <예쁘다/안 예쁘다> <멋지다/별로다><마음에 든다/안 든다>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라는데, 무식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매번 예술품 앞에서 순간적으로 마음을 양분하며 감상을 이어간다. 마음에 안 들었던 작품이 나중에 다시 마음에 들어올 수도 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김연아에 대해서도 나는 언제부턴가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것처럼 경외감을 품게 된 것 같다. 예쁘고 멋져서 마음에 꼭 드는 예술품인데, 심지어 거기다 인간적이고 마음 씀씀이도 넓은 대인배이며 스무살에 걸맞은 천진난만함까지 갖추고 있으니 어쩌란 말이냐. 저절로 애정이 샘솟는 걸. ^^ 

다들 일상의 구차스러움을 잊을 만큼 기쁨과 감동을 안겨준 김연아에게 고마워하는 분위기던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울지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듯했으나, 오늘은 무한반복 재방송되는 연아 얼굴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만병통치 효과가 있는 김연아 백신이라도 맞은 기분이다. 고마워요, 연아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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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 커피

놀잇감 2010. 2. 22. 18:44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주전자 하나로 카페 놀이 하듯 솜씨를 부려 연일 커피 메뉴를 달리해 마셨던 초심은 버얼써 사라졌고 최근엔 마시는 커피 메뉴가 거의 일정했다. 그냥 커피 아니면 카페 라떼, 딱 두가지. 거품기가 고장나 카푸치노는 꿈도 꿀 수가 없고, 추워서 아포가토는 땡기질 않는다.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그냥 커피라고 말한 이유는 에스프레소 자체를 즐길 정도는 못되어도 점점 진한 맛의 커피가 더 개운하게 느껴지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 물을 섞는 양이 훨씬 줄었으므로 아메리카노라고 말하기 싫었다. 어쨌거나 하루 한잔씩 즐기는 커피는 꽤나 만족스러웠는데도 공연히 심심해진 나는 오래 전부터 눈여겨보던 1인용 드리퍼를 사들였다.

요즘 카페에선 대부분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만들어주지만 간혹 드립 커피임을 자랑하는 곳을 만날 수가 있는데 향이 좋으면서도 맛이 깔끔한 드립 커피를 까짓것 집에서도 만들어 보자 싶었던 거다. 저렴한 플라스틱 드리퍼 가운데 나는 그나마 진하게 추출되기를 바라며 구멍 하나짜리 멜리타 드리퍼를 선택했고 (구멍 세개 짜리는 칼리타 드리퍼란다) 드디어 오늘 시음에 돌입했다. (택배 온 지 며칠 됐는데 귀찮아서 비닐도 안뜯고 구경만 했었다).

브리카 때도 처음부터 단박에 성공하지는 않았으니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일단은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앞섰다. 원두를 다 먹어가고 있으니 신선도에서 문제가 있기는 하겠고, 다른 도구 없이 그냥 일반 주전자로 서툴게 물을 내린 얼치기 바리스타 탓이 크겠지만, 에스프레소로 추출한 커피보다 향도 별로고 맛도 그리 개운한 줄 모르겠다. 나름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낸 대로 했는데 왜 실패했을까나. 드립 커피는 처음엔 물을 약간 부어 원두를 적신 뒤 빵처럼 부풀어오르게 살살 내려 3분 안에 추출해 먹되 맨 마지막 추출액이 떨어지기 전에 드리퍼를 치워야 잡스러운 맛이 없는 개운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단다.

곧 도착할 갓 볶은 원두를 갈아서 다시 시도는 해보겠지만 어설픈 솜씨로는 카페에서 진짜 바리스타가 내려준 드립 커피 맛을 내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에 공연히 어깨가 쳐졌다. 드립 전용 주전자까지 사긴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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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ㄹ마을 필독도서가 되어버린 책을 이제야 읽었다. 내일까지 검토서 만들어 보내야할 원서가 있었는데도, 워낙 하기 싫은 일인 데다 책 네 권이 자꾸 나에게 손짓을 해대는 것 같아서 그제 밤을 꼬박 새워가며 엄마한테 구박 들어가며(원래 자는 시간인 아침이 밝은 뒤에도 안/못 자고 계속 읽었다) 거의 쉴 새 없이 내달리듯 탐독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웃분들이 거론하던 가상 캐스팅 배우들의 얼굴이 연이어 떠올라 킬킬 웃음짓기도 하고 나만의 아이디어를 짜내보려고 애쓰다가는 그냥 포기하고 이야기속에 빠져들었다.

로맨스 소설은 읽기 전엔 괜스레 뻔한 상투성을 비웃다가도 읽기 시작하면 매번 정신 못차리고 끝을 봐야 속이 시원하다. 중학생 시절 하이틴로맨스로 시작돼 할리퀸 로맨스 시리즈를 거쳐 주드 데브루가 어떻니, 조안나 린지가 어떻니 작가 따져가며 골라 읽던 시절에도 그러했고, 한동안 끊었다가(?) 로맨스 소설로 번역인생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로맨스 번역에서 차츰 손을 떼게 된 건 번역 분야를 넓혀 몸값을 올리고(?) 싶은 내 욕심도 있었지만, 그 무렵 외국(특히 미국) 로맨스 작가들의 작품이 사양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속속 등장한 국내물의 선전이 주효했다. 지나치게 진부하고 통속적인 구도와 인물에 신물나기 시작한 외국물보다 아이디어도 기발하고 아기자기하고 인물도 정감있는 국내물이 훨씬 재미있다고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어서, 중소대형 출판사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로맨스 작가들을 스카우트 하려는 열풍이 불었다.

성균관, 규장각 시리즈를 쓴 정은궐 씨 얘기도 그때 지인에게 들었다. 초기 작품의 교정과 편집을 맡은 친구가 작품 의논 때문에 연락을 해보니 직장인이더라나. 다른 국내 로맨스 작가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던 눈썰미 좋은 그 친구가 글솜씨 칭찬하는 말을 들으며, 다들 막 짜증을 냈던 것 같다. 뭐냐, 직장생활도 하면서 취미생활로 돈도 벌고! 부러워서 질투난다, 뭐 그런 내용이었을 거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인기로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예약 판매분만 수만 부가 넘었다는 얘기도 들은 듯하다. 얼마 전까지도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었으니, 지금쯤 지은이는 돈방석에 올라 직장생활을 관두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을까?

나로선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 <성균관>이 2007년 초에 나왔는데 <규장각>이 2009년 여름에 나왔으니 거의 2년 반이나 걸린 셈이다.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그러기도 했겠지만, 직장생활과 병행하느라 더 오래 걸린 게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짐작이다. 물론 중론이 그러하듯 나 또한 <성균관> 1, 2권이 <규장각> 1, 2권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주요 인물들의 정체가 다 공개되고 말았으니 다음 시리즈는 긴장감이 더욱 느슨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금 4인방 김윤희, 이선준, 문재신, 구용하를 비롯해 덕구아범과 순돌이, 반다운, 황서영 낭자까지 참으로 흥미롭고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해낸 솜씨라면 뭔가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엮어내고 있지 않을까나? 지은이가 정조 시대 역사와 궁궐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던데, 여기서 끝내기는 아깝다규~!

반할 수밖에 없는 훈남들의 활약상을 즐기며 상상세계에서 너무 오래 머문 탓인지, 찌질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꼬부랑 글씨 원서가 좀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재미없는 소설 읽고 검토서 만드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어쨌거나 얼른 마무리해서 아침까지는 메일로 쏘아주어야 하는데 어흑... 어제처럼 이선준을 꿈꾸며 잠이나 자고싶다.(나도 이선준은 너무 완벽한 인물이라 문재신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는데 꿈엔 문재신 대신 이선준이 나왔다. 내 옆에 앉아 조보 대신에 신문을 꼼꼼히 읽더니 감미로운 목소리로 잔소리를 해댔다. ㅋㅋ)

그나저나 제 다음 순서는 통통님이신데, 워낙 바빠 언제 읽으실 수 있으려나요? 어떻게 전달을 해드려야 하옵는지... 책이 돌고도는 책방마을 ㅌㄹ마을, 나도 좀 기여를 해야할 터인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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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별

투덜일기 2010. 1. 28. 17:04

사람마다 이상형의 조건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 남들이 좀 특이하다고 보는 부분은 <존경스러운 점>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첫눈에 뿅가는 불타는 사랑 따위 해본 적도 없고 믿지도 않지만, 그나마 어설프게라도 상대에게 사랑을 느끼려면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먼저 생겨야 한다. 스스로 부족한 게 워낙 많아서 내가 존경할 만한 부분도 조목조목 워낙 많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운동을 잘해도, 아이들이랑 잘 놀아줘도, 노인들에게 잘해도, 박식해도, 악기를 잘 다뤄도, 목소리가 낮고 좋아도,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써도, 말솜씨(달변과는 좀 다르다)가 좋아도, 인간관계를 잘해도, 동정심이 많아도... 손꼽자면 끝도 없다. 다만 저런 사실을 드러내놓고 우쭐대며 잘난척만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나의 존경심이 샘솟는 건 순식간이다. 내가 끔찍이 싫어하는 자질도 중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존경스러운 부분이 그 단점을 뒤덮을 정도라면 아마 사랑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다. 물론 과거 연애사를 돌아볼 때 변변찮은 빈도수를 보면 퍽 까다로운 기준임은 확실하다.

고백하기 좀 민망하지만 나에겐 가상연애나 기약없는 짝사랑의 일종이라고 생각되는 <스타>에 대한 애정 역시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물론 처음엔 외모나 목소리, 노래에 혹해서, 또는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에 혹해서 잠시 열광하는 배우나 가수가 있지만, 오래도록 지켜보며 존경스러운 점을 찾지 못하면 나의 애정은 한순간에 식고 만다. 싫고 짜증나는 단점을 발견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특별히 열렬히 팬 활동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의 미니홈피를 드나들며 멋진 사진을 퍼나르기도 하고, 컴퓨터 하드에 따로 사진 폴더도 꾸미고 그에 관한 기사는 죄다 찾아 읽으며 홀로 흐뭇해하다가 어느 순간 스러져간 나만의 스타들을 꼽아보자면 원빈, 조승우, 현빈, 김범, 장국영, 여명, 다케노우치 유타카, 오다기리 조, 콜린 퍼스, 주드 로, 조니 뎁 등이 있다. 조승우는 한 때 단체로 열광하다가 순식간에 다들 싫어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보니, <지킬 앤 하이드> 보고 와서 열병 앓듯 계속 ost 듣던 때가 의아할 정도다. 그 외엔 싫어하게 된 사람은 없는데 그냥 시큰둥한 정도랄까.

헌데 세월이 흘러 애정 지수가 좀 떨어지긴 했으되 내가 옛정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확실히 존경스러운 부분이 많은 이들이다. 바람둥이니, 노래를 못하니, 하는 단점은 별로 상관없을 정도로. 그런 사람들을 표현할 때 <아직 촉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 열심히 정보를 찾지는 않지만 우연히 들려오는 소식은 빠짐없이 읽고 흐뭇해하며 잊고 있던 존경심을 다시 끄집어낸다.

첫번째 인물은 조지 클루니. 13, 4년 전쯤 메디컬드라마 <ER> 보며 그에게 열광했던 건 순전히 섹시한 외모와 껄렁한 캐릭터 때문이었지만 정치성향도 훌륭하고(내 취향이란 얘기다) 최근 감독이나 프로듀서로 제작하는 영화들도 그렇고 하나같이 존경스럽다. 특히 이번 아이티 지진 난민 돕기 프로그램은 순전히 조지 클루니의 기획이라는데, 할리우드 최고 명사 측근들을 죄다 불러모은 그의 마당발과 기획력은 놀라울 정도다. 듣자하니 미국 전역에서 모인 아이티 기부금보다, 그날 딱 3시간 동안 모은 기부금이 더 많단다. 그냥 100만불 턱 기부하는 것도 모자라서, 기부 프로그램 기획하고 사회보고, 돈 많고 유명한 친구들 동원하고... 멋지다는 말 밖엔 안나온다. 물론 어리디 어린 모델이나 여배우들과 만날 사귀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진짜 양다리를 걸치거나 추문을 낸 적은 거의 없다. 내가 알기론 조지 클루니가 결혼까지 생각했던 진정한 사랑이 존 트라볼타의 아내가 되는 바람에(존 트라볼타 커플은 또 굉장한 잉꼬부부다) 신나게 얕은 연애만 하고 살겠다고 결심한 거란다. 첫사랑 못잊어 평생 징징대는 남자는 진상이라 싫은데, 조지 클루니의 바람기는 완전 이해된다. 아, 사실 바람기는 자꾸 딴눈을 팔아야 바람기지, 여자를 바꾸어가며 사귀는 건 그냥 취향 아닌가! 그렇게 멋진 남자를 젊든 늙든 예쁘고 멋진 여자들이 가만 놔둘리도 만무하고.. (애정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 거 인정 ^^) 암튼 희끗희끗 은발이 멋진 미중년이 된 클루니는 숀 코너리처럼 미노년으로 늙기까지 줄곧 나의 촉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두번째 인물은 브래드 피트. <가을의 전설> 보고 홀딱 반해서는 <프렌즈>에서 부인을 위해 카메오로 나와 제니퍼 애니스톤을 혐오하는 예전 비만남으로 나올 때까지 무작정 꺅꺅~ 거리며 좋아했다. 남들이 원시인 같다고 손가락질 해도 내눈엔 그게 안보였고, 조강지처 버리고 안젤리나 졸리랑 합쳤을 때도 제니퍼보다 안젤리나가 훨씬 매력있다고 인정해줬다. 게다가 이 남자 조지 클루니랑 아주 친하다. ㅋㅋ 조지 클루니가 문득 결혼이 하고 싶어지면 브란젤리나 커플과 아이들을 몽땅 집에 초대해 저녁을 먹이는 걸로 결혼욕구를 잠재우는 충격요법을 실시한다는데, 어쨌거나 아무리 안젤리나의 행보에 편승한 거라고 해도 둘이었나 셋에서 시작해 이제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을 공동 양육하고 있는 이 남자, 존경스럽지 않나? 조지 클루니의 영향인지 정치 성향도 멋지고 특히 안젤리나랑 같이 턱턱 여기저기 거액 기부하는 건 정말 기특하다. 다 졸리 때문이라고? 요즘 불화설이니 이혼설이 파다해서 가슴이 아픈데, 결과가 어떻든 그건 사생활이고 그 외에 해오던 기특한 사회활동은 계속될 거라 믿는다.

세번째 인물은 이현우. 원래부터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 가수는 아니었고, 요샌 처자식 부양하느라 노래보다 사업에 더 힘쓰고 있어 소식 듣기 어렵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가끔씩 그의 6집과 드라마 <아일랜드> ost의 곡들을 들으며 좋아라 한다. 각종 사회단체에서 연예인을 얼굴마담으로 세우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이현우는 워낙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작년엔 북한산에 올라가 에스컬레이터 설치 반대하는 1인 시위도 했고, 간간이 환경 관련 모금 집회 같은데서 노래를 부른다. 사업으로 돈 많이 벌면, 지구온난화 때문에 80년 뒤엔 한반도에서 사라져버린다는 소나무를 살리는 운동에 턱턱 기부금을 내놓을 사람이라고 생각중이다. ^^

요번 아이티 지진 때문에 생겨난 난민을 돕겠다고 존 트라볼타는 자기 전세기에 구호품을 6톤이나 싣고 직접 비행기를 조종해 남미로 날아갔다고 한다. 의료진도 태워갔다지 아마. 우리나라에서 연예인들 모아놓고 모금 캠페인 같은 거 하면 스타들은 노래 한곡 부르고 가버리거나 몇 마디 하는 게 다 일뿐 기부금 전화 받는 이들은 죄다 알바생이던데, 조지 클루니가 기획한 아이티 기금마련 프로그램에선 줄리아 로버츠,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사람들이 주르륵 스튜디오에 앉아 일일이 전화를 받더라. 전세기를 몰고 간 존 트라볼타도 그렇고, 다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스타들이니 쇼맨십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우리나라 연예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할리우드에 아무리 돈이 흔하다고 해도 그야말로 그들은 진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우리나라엔 왜 얼굴도 잘생기고 섹시한 데다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이라 내가 십몇년씩 존경하고 사랑하는 스타들이 왜 없을까... (아 물론 권해효 씨 존경하긴 하지만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애정하기엔 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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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추억주머니 2010. 1. 21. 22:12

방학(放學): 학교에서 학기나 학년이 끝난 뒤 또는 더위, 추위가 심한 일정 기간 동안 수업을 쉬는 일. 또는 그 기간. 놓을 방, 배움 학이니, 방학은 배움을 놓고 놀라는 뜻이 틀림없다.

초중고대,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보아도 방학땐 거의 놀기만 했던 것 같다. 요샌 방학이 되어도 누구 하나 정신없이 놀기만 하는 학생을 찾아볼 수 없으니, 마냥 놀아도 되었던 시절을 타고난 복도 작용했을 것이다. 고3을 앞둔 겨울방학엔 자율학습을 하느라 매일 학교에 가야했지만, 등교는 했으되 공부대신 우린 여전히 수다가 본업이었고 고체 연료와 냄비, 양푼 따위를 집에서 날라와 친구가 끓여준 수제비를 먹거나 도시락을 모두 모아 비빈 양푼 비빔밥에 달려들어 숟가락 다툼을 하며 히히덕거렸다.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과 달리 괜한 시국 탓하며 학기중에도 학업을 멀리했던 우리가 방학 동안 공부를 했을리 만무했다. 친구들 따라 토익, 토플 특강을 신청하긴 했어도 출석일수가 열흘을 넘긴 적은 없었다. 그나마도 3학년 때부터는 특강 등록증을 검사하는 학생회 친구가 거저 들여보내 줄 터이니, 다들 특강비로 술 사마시자고 꼬드겨 단체로 부모님을 속인 뒤 꽤 오래 술과 밥을 사먹으며 놀았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대학시절 4년이라고 아직도 아련하게 추억하는 이유도, 학기중이든 방학이든 따지지 않고 참 원없이도 놀았기 때문이다. 막연히 미래가 두렵긴 했지만 특별히 인생을 계획하고 앞길을 따져 본 적 없이, 그저 빈둥빈둥 놀았다. 뭐가 그리 재미 있었으냐고 꼬치꼬치 따지면 딱히 손꼽을 것도 없이, 멍하니 무심하게 놀 수 있었던 건 정말 그 때 뿐이었던 것 같다.

아 물론, 노는 게 본업이었던 유년시절은 빼고서 그렇다는 말이다. 학원이나 과외는 생각도 못하고 요즘 학습지에 해당하는 <일일공부>가 유일한 사교육 경험이었던 나는 학기중이든 방학때든 만날 시험지가 밀려도 별 걱정하지 않고 놀았다. 까짓것 일주일치가 밀려도 하룻저녁 끙끙대며 앉아 다 풀면 되는 일이었다. <방학생활>과 일기가 문제이긴 했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한참 밀어 두었다가 한꺼번에 해치우는 버릇은 여전했으므로 개학을 일주일 쯤 앞두고서 숙제검사를 실시한 부모님에게 손바닥을 몇대 맞은 뒤 시작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개학 후 글짓기든 독후감이든, 만들기든 뭔가 하나쯤은 상을 타왔으니까. 어린 마음에도 치밀한 구석이 있어서, 똑같은 굵기와 진하기의 연필로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다 쓰면 티가 날까봐 나는 연필도 굵은 것, 흐린 것, 뾰족한 것, 뭉툭한 것 번갈아서 일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땐 그렇게 강요받은 일기 쓰기가 싫더니, 요샌 누가 쓰라지도 않는데 이렇게 열심히 블로그질을 하는 걸 보면 우습다. 한두 달치 밀린 일기를 며칠 만에 다 해치우던 어린 시절의 <필력> 덕을 지금 보고 있는 건가? 흐흐흐.

어쨌든 어린 시절 방학 중 내가 가장 크게 기대했던 이벤트는 친척집 순례였다. 친할머니댁에서 며칠, 외할머니댁에서 며칠, 고모네집에서 며칠, 원두막이 있는 시골집이 아니라 다들 서울 하늘 아래라 특별한 것도 없건만 나는 방학동안의 홀로 외박을 학수고대했다. 싸가지고 간 방학숙제와 일기는 언제나 손도 대지 않은 채 며칠 뒤 다시 집에 가져갔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부시시 눈을 떠보면, 안방 한가운데 덩그라니 내 이불만 놓여있고 같이 잤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불은 어느틈에 치워졌을 뿐만 아니라, 방 구석에 상보가 덮인 소반 하나가 놓여있기 일쑤였다. 두분 아침 드시는 동안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쿨쿨 자고 있었다는 얘기다. 완고하고 무섭기로 소문난 우리 할아버지가 늦잠 자는 손녀딸을 그냥 내버려두고 그 옆에서 아침상을 받아 진지를 드셨을 걸 생각하면 지금도 놀랍다. 할머니가 깨우지 말고 그냥 자게 내버려두라고 말리셨을 게 분명하지만, 밥상 예절을 중시하셨던 할아버지 성격상 보아 넘기시기 힘드셨을 텐데. 딱히 할머니댁에서 뭘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할머니 옛날 이야기 듣고, 갓 성년이 된 고모들 수다 떠는 데 눈을 빛내며 끼어 앉아 있고, 낮잠자고 누룽지나 찐고구마 같은 간식 먹고 TV 드라마 보고... 나중에 작은아버지댁이랑 합치셨을 땐 사촌동생들이랑 놀아주고... 근데 그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방학때 할머니댁에서 며칠 놀다 돌아오면 집에서 한 일주일쯤 보내다가 다시 외할머니댁엘 갔다. 거긴 사촌언니가 있는데다 만화책을 수십권씩 빌려다 쌓아놓고 보는 외삼촌들도 있었으니 더욱 즐거웠다. 물론 할머니댁보다는 늦잠자기가 수월하지 않았지만 새벽같이 안방에서 쫓겨나 잠이 모자라면 건넌방이나 사랑방으로 베개를 들고 옮겨 이어잘 수도 있었다. 온갖 과일과 한과, 견과류가 그득했던 외할머니댁 광이나 다락에서 끊임없이 가져다먹는 간식의 묘미는 또 어떻고!  두 할머니댁 말고도 고모네 집에서도 거의 방학마다 나를 불렀던 건 좀 의아하다. 살림이 여유로웠던 셋째 고모는 딸이 없어 그러려니 한다지만, 꽤나 먼 동네 단칸방에 살았던 넷째 고모네는 딸도 있는데 거길 가서 며칠 씩 지내다 온 건 무슨 이유였을까. 아무리 아이라지만 군 식구 하나 더 챙기는 게 꽤나 귀찮았을 텐데, 고모들이 나를 심히 예뻐했다는 것말고는 딱히 나를 오라고 했던 정황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편하기만 했던 두 할머니댁과는 달리 고모네 집에서 지내는 며칠은 나도 대단히 조심스럽고 어려웠는데도, 다니러 오라는 고모들의 청이 싫지 않았다. 어린마음에도 오히려 내쪽에서 큰 아량을 베푸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끼니 때마다 고모들을 도와 수저를 놓거나 물잔을 옮기며 듣는 칭찬도 퍽이나 뿌듯했고.

물론 요즘 아이들은 방학에도 과거의 나처럼 마냥 놀지 못한다. 놀기는커녕 다음 학년 수업을 땡겨서 선행학습을 하느라 학교 다닐 때보다도 더 오래 학원에서 지내는 아이들도 많다고 들었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집안에선 아예 방학 내내 외국으로 연수를 보내거나... 달리 노는 인생을 아예 알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은 그 속에서도 나름 행복과 즐거움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여유롭고 신나야 할 때조차 공부에 치여 보낸 아이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더욱 숨막히는 삶에 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몹시 안타깝다. 유년을 돌아보며 "나 어렸을 땐 방학 내내 빈둥빈둥 놀기만 했어!"라고 즐거이 고백하는 나와 달리, 그 아이들은 "나 어렸을 땐 방학 내내 학원을 다섯개나 뺑뺑이하느라 정신없었어!"라고 토로하며 그마저도 행복하다 여기는 건 아닌지.

아무려나 일 하기가 싫으니 만날 꿈꾸는 게 진정한 의미의 안식년, 방학, 휴가, 이 따위 것들이다. 이 맘때쯤 아직은 밀린 방학숙제와 일기 걱정 없이 태평하게 빈둥빈둥 놀고 있었을 내 유년의 방학이 그리워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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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한해 정리

놀잇감 2010. 1. 2. 01:39

글 하나에 2009년을 정리해 담는 행위는 퍽 뿌듯하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하다. 이른바 삶의 <낙>이라고 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을 수도 있고, 요것밖에 없었나 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실한 기억력으로도 요것밖에 없었나 허망한 느낌이 들 것이라는 데 심증이 가지만, 하여튼 꼽아보자. 나의 2009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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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읽은 책

책보따리 2009. 12. 25. 22:53

올해는 드디어 나도 독서노트라는 걸 만들어 읽은 책을 적어두었고, 탁상 달력 맨 아래 그달그달 읽은 책을 적어보았더니 꽤 훌륭한 채찍이 되는 바람에(단 한권도 끝내지 못한 7, 8, 9월 석달간은 괜히 가시방석이었다) 애당초 목표인 스무권 넘기기를 가뿐히 달성했다. 다 애서가 이웃분들을 따라가 보려는 뱁새의 몸부림이었는데, 앞으로도 적당히 가랑이 찢어지지 않을 만큼만 따라가는 시늉을 할 작정이다. 역시나 따라하기의 일환으로 개인적으로 좋았던 책은 색을 달리해보았는데 비율이 꽤 높다. 재미 없거나 인내가 따르지 못한 책은 더러 읽다 집어던졌기 때문인데,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위로할 작정이다.
잘생긴 뱀파이어한테 반해서 <트와일라잇> 시리즈만 탐독하는 열두살 조카의 독서를 독려하느라 새삼 읽은 아동서도 많으니 공주에게도 고맙다고 해야할 판.  
하지만 여전히 사들인 책 대비 읽은 책의 비율은 60퍼센트 정도인듯. 이젠 좀 그만 사고 있는 거나 읽자. 책꽂이도 부족해 다탁 밑에 쌓아둔 책엔 먼지만 쌓이고 있다는 점은 반성이 필요하다. 


1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 김석희 옮김. 살림. 사둔지 꽤 됐는데 작년에 <디아스포라 기행> 읽은 김에 생각나 작년말부터 시작해 연초에 끝냈다. 학자로서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무슨 기억력이 그리도 좋은지.
2.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이한음 옮김. 김영사. 맞다, 신은 없다. 종교에 대한 오랜 회의를 속 시원히 긁어준 책. 오죽하면 포스팅까지 했을라고.
3.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지음/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인데, 내용은 제목만큼 기발한 재미는 없었고 평이한 편. 글줄이 곧 밥줄일 땐 어디서든 삶이 지난하다는 만고의 진리.
4. 문학은 자유다. 수전 손택 지음/홍한별 옮김. 밑줄그어 외두고 싶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사고와 글의 집합체.
5. 보이지 않는 인간 1, 2. 랠프 엘리슨 지음/조영환 옮김. 민음사.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는 아직도 지천이므로 분명 가치 있는 독서였지만 그래도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어려운 과제물 끝낸 기분.
6. 완득이. 김려령 지음. 창비. 조카 주려고 사서 먼저 읽고는 너무 재미있어 자지러졌다. 이후로 아류작이 쏟아져 나왔던데 원조는 다를걸! 물론 조카도 이 책을 무척 좋아해서 몇날몇일 완득이 얘길 주고받으며 신을 냈다.
7.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한미희 옮김. 비룡소. 조카한테 읽고 토론하자고 해놓고 막상 기억이 잘 안나서 다시 읽었는데도 새삼 부분부분 좋더라.
8. 사자왕 형제의 모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김경희 옮김. 창비. 예상대로 슬프고 감동적이긴 했으나 <만들어진 신> 독서의 영향으로 결말에 대해선 조카와 어떤 토론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9.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지음/박동원 옮김. 동녘. 예전에 읽다가 슬퍼서 몇번이나 울었다고 했더니 공주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눈물이 나더냐고 따져서 빌려다 다시 읽었다. 역시나 또 눈물이 났다. 그제야 떠올랐다. 처음 읽었을 때 너무 비참하고 슬퍼서 책을 내던지며 짜증을 냈던 기억이.
10. 한밤중의 작은 풍경. 김승옥 지음. 전집구매 욕망을 잠재우고 작년 이웃 블로거의 목록에서 딱 한권 고른 책. 역시나 좋았다. 하찮은 블로그질에라도 간결하고 깔끔하게, 너저분하지 않게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는 김승옥의 글!
11. 그녀의 프라다백에 담긴 책. 이유정 지음. 북포스. 이요님이 여기서 권하는 책도 몇권 골라 읽었다 ^^ 
12. 나는 런던의 수학선생님. 김은영 지음. 브레인스토어. 해리님의 친구분이자 나 홀로 링크 걸어놓고 구경다니는 내맘대로 이웃의 책이라 읽어보고팠다. 영국의 학교체계와 교사들의 마음가짐이 어찌나 부러운지.
13.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이구열 지음. 돌베개.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다녀와서 부푼 호기심에 읽어보며 새삼 '공부'했다. 비록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14.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서경식 지음/이목 옮김. 돌베개. <기억>은 정치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옮긴이의 말이 인상적이었고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가운데 내가 미처 모르는 이들이 많아 민망.
15.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박이엽 옮김. 창비. 남다른 개인사 때문에 서양미술 가운데서도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에 유독 시선이 머문 지은이의 감상이 가슴아팠음.
16. 눈먼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 해냄. 신종플루 공포가 처음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리던 시기에 읽어 더욱 실감났던 듯. <눈뜬자들의 도시>도 연이어 샀지만 몇십장을 못넘기고 지지부진.
17.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지음. 솔. 문근영양 나온 드라마 덕분에 새삼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 펄럭거린 1人의 선택으로 고른 책. 이 책 보고선 또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지 실습하러 국립박물관 가보려 작심했으나 실천은 못했다. -_-;
18. 하나의 대한민국, 두개의 현실. 지승호 인터뷰. 시대의창. 사둔지 오래돼 이 책에서 비판의 주요 대상인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이라 맥빠지는 독서였다는 기억이 난다. 소통 안되는 답답한 현실은 그대로지만... 
19. 탐욕의 시대.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의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라고 한 레지드 브레의 말에 정말 딱 맞는 지식인이 바로 장 지글러! 무지하고 이기적인 민중이 이런 지식인의 말을 외면하는 현실이 슬플 뿐.
20. 소설. 제임스 미치너 지음/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컴퓨터질로 피로해진 뇌파 정리용으로 올해는 잠자리에서 책을 꽤 읽었는데, 이 책은 잠이 완전히 달아나게 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어 자야한다며 일부러 애써 책을 덮기도 했다. 소설 탄생을 둘러싼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지 기발하게 조명한 소설. 사둔지 오래 됐는데 왜 이제야 읽었던고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
21. 희박한 공기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김훈 옮김. 황금가지. 오래 전 외서기획 할 때 프랑크푸르트 현지에서 출간도 안 된 이 책에 대한 판권 경쟁이 엄청났고, 당연히 작은 출판사를 대신해 간 나는 힘을 써볼 도리가 없었는데 빼앗겼다고 돌아와서 언짢은 소리를 좀 들었던 책이다. 민음사 그룹을 어찌 이기라고! 해서 97년 첫 출간됐을 때 괘씸해서 안보리라 마음 먹고 잊었다가 이요님의 책을 읽고 마음을 바꿔 집어들었다. 읽고보니 여전히 경쟁적인 고산 등반의 열기가 식지 않아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정상등반의 진실을 의심받는 요즘 세태를 보며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산이 뭐라고... 
22. 한국의 글쟁이들. 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 글잘 쓰는 글쟁이들에 대한 선망을 부채질하고 수많은 독서를 강권하는 책. 나는 동의할 수 없는 글쟁이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서 다시 수십권의 도서목록을 적어두었으나, 일단 눈을 질끈 감았다.
23.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지음/이재원 옮김. 이후. 조목조목 짚어주시는 손택 여사의 말씀이야 한줄한줄 피가되고 살이되고...
24. 꿈꾸는 책들의 도시 1, 2. 발터 뫼르스 지음/두행숙 옮김. 들녘.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판타지 소설을 잘 못즐긴다던데 내가 좀 그런 편이라 여겼으나, 이렇게 기발한 발상이 다 있나 싶어 하며 즐겁게 읽었다. 지루하고 답답한 병원 간병 무수리의 괴로움을 순간순간 잊게 해주었던 고마운 책.
25. 성찰하는 진보. 조국 지음. 지성사. 조국 교수는 내가 이상으로 여기는 지식인에 가까워 칼럼도 열심히 찾아 읽는 편이나, 이렇게 글을 모아놓으니 가끔 그가 쓰는 <백화제방 백가쟁명> 따위의 고루한 한자성어 쓰임새가 턱턱 걸리더라. 내용도 너무 원론적이고... 하기야 원론만 지켜져도 이 세상이 이꼴은 아니겠다만서도.
26. 노란 불빛의 서점. 루이스 버즈비 지음/정신아 옮김. 문학동네. 서점에 대한 선망이 늘 있어 크게 기대했다가 실망했다. 서점이 좋아 서점 직원이 된 사연이 담긴 앞부분만 좀 읽을만.
27. 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정창 옮김. 열린책들. 열린책들 Mr. Know시리즈 50% 할인소식에 눈이 어두워 전격 사들인 열권의 책 가운데 이거 딱 한권 읽었다. 온라인 서점의 반액할인 때문에 출판사가 죽어간다는데 덩달아 춤춘 게 미안해서였던... 건 아닐테고, 주섬주섬 골라보다 이게 제일 재미있었음.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소설"을 즐기는 노인의 사연이 짠하다. 중남미 문학엔 특히 무지한 편이라 좀 더 찾아 읽어볼 작정. 
28. 어루만지다. 고종석 지음. 마음산책. 어떻게든 써먹어 보겠다고 열심히 좋은 우리말 베껴 적으며 읽었는데 책을 덮을 때쯤엔 과연 번역할 때 써먹으면 편집자와 독자들이 받아들여줄지 회의가 들었다. 
29. 앗 뜨거워. 빌 버포드 지음/강수정 옮김. 해냄. 기자직을 때려치우고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려고 뛰어든 남자의 요리학습기. 손으로 조물조물 만드는 것, 먹는 것,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시종일관 침나오고 감탄스러웠다. 요리사가 그렇게 어려운 직업인 줄 몰랐다네...
30. 밴버드의 어리석음.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 양철북. 당대엔 파란을 일으켰지만 이내 잊혀지고 만 이른바 '루저'들을 결국엔 이렇게 책으로 기억해준 폴 콜린스 같은 사람이 다 있다니, <기억>이 정치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이목 선생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인 사회에서 세상을 바꾸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도 기록을 시도한 지은이와 이런 책을 번역하자고 기획한 옮긴이 블루고비에게 갈채를! ^^


작년처럼 한줄 평만 넣으려고 했는데 쓰고 보니 길어진 내용이 많다. 역시나 독서노트의 덕이다! 이러다가 내년쯤엔 나도 두려움 없이 읽은책 리뷰를 몇권 더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는 게 아닐지. 
하지만 내년엔 더 많은 책을 읽겠다고 호언장담하지 못하겠다. 이 정도로도 내겐 장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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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g

놀잇감 2009. 11. 27. 16:33

내가 스팅을 좋아하는 건 그의 목소리가 가장 큰 요인이다. 목소리 좋은 남자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비음과 허스키한 음성이 절묘하게 뒤섞인 목소리로 조곤조곤 불러주든 시원시원 질러대든,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황홀하다. 2005년이었던가 그의 공연을 보고 나와서 나는 단언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대머리 아저씨라고. ^^;

헌데 최근 보이는 그의 행보랄까 음악세계는 점점 낯설다. <Songs from the Labyrinth> 앨범에서도 주절주절 시와 편지를 낭송하는 바람에 의아했는데, 이번에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나온 캐럴 앨범 <If on a Winter's Night>은 무려 <복음성가집> 느낌이다.
사실 나는 스팅의 새 앨범이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가 뜻밖에 선물로 받고 희희낙락했었다.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 예쁜 설경을 배경으로 검은 긴 코트를 입고 거니는 스팅! 거기다 유니버설 뮤직에서는 사은품으로 스팅 달력까지 끼워주었단다! 하지만 달력을 넘기다 발견한 스팅의 최근 모습에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마선이 훌쩍 올라갔어도 여전히 날렵하고 샤프했던 매력남은 어디 가고 부숭부숭 머리털과 수염을 기른 산적 같은 아저씨가 환히 웃고 있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불과 4년 만에 이렇게 되다니.. ㅠ.ㅠ
그래도 스팅 공식 홈페이지에 가보니 유투브에 올라온 인터뷰에선 수염을 말끔히 잘라 산적같은 느낌은 없어져 다행. 괜히 달력에 든 사진들 때문에 심술을 품고 들어본 이번 앨범은 본인이 의도한 대로 하나같이 자장가 같아서 심심하고 나른하게만 들리더니만 자꾸 들을수록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정화 효과가 있는 듯하다.
어서 저렇게 새하얗게 세상을 뒤덮은 폭설을 보고 싶기도 하고...

어쨌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유럽 여러 나라의 민요와 캐럴보다 나는 두곡 실린 스팅의 곡들이 더 좋다. 몇번 들어보니 'Lullaby for an Anxious Child'는 쓸데없이 걱정 많은 나를 위로하는 자장가로 아주 딱이다. 재주가 없어 여기 올려 널리 들려줄 방도는 없지만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노래.
이번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Thank you, Sting, I love you! 더불어 고맙다,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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