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에 해당되는 글 157건

  1. 2009.10.29 소소한 낙 14
  2. 2009.09.07 페르난도 보테로 15
  3. 2009.08.23 언노운 우먼 14
  4. 2009.08.20 UP 8
  5. 2009.08.10 국수 18
  6. 2009.08.04 천원어치 보테로 13
  7. 2009.07.16 참 잘했어요 6
  8. 2009.06.01 5월 31일 12
  9. 2009.05.14 뒷북관람 - 클림트 전 10
  10. 2009.05.12 토룡마을 하층민의 첫 자전거모임 18

소소한 낙

놀잇감 2009. 10. 29. 17:00

하루하루 짧아지는 해길이며 으슬으슬 추워지는 날씨까지 가을을 실감하면서 계속 시름시름 맥이 빠졌다. 바삐 마무리해야 하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그와 별개로 삶이 너무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어 한숨만 푹푹 나오는 습관성 무기력증에 빠졌던 거다. 새콤달콤한 홍옥 사과를 와그작 깨물어 먹어보아도 잠깐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보고싶은 조카들과 통화를 해도 약발은 지속성이 없었다.
그러다 애써 TV에서 찾아낸 요즈음의 소소한 낙. 내가 퍽 단순한 인간임을 깨닫게 해준 고마운 소일거리라 널리 자랑하여 그 세를 넓히고자 한다. 홍옥의 진가를 널리 알려 더 많은 농가에서 내년에도 홍옥을 많이 재배해 새콤달콤 행복한 10월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사방에 홍옥 타령을 해대고 있는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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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

놀잇감 2009. 9. 7. 15:16

명화 속 주인공들을 찐빵처럼 부풀린 모습으로 패러디한 그림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 그림을 그린 이가 페르난도 보테로라는 걸 확실히 두뇌에 저장해둔 계기는 작년에 덕수궁에서 본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이었다. 그때 직접 본 보테로의 <시인>과 <브래지어를 하는 여자> 그림이 어찌나 유쾌하던지, 전시를 보고 돌아와 다시 한 번 다빈치와 벨라스케스의 명화를 따라 그린 그림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보테로 - 12세의 모나리자

다들 그랬겠지만 내가 이번에 보테로 전시 소식을 듣고 기대했던 건 가장 유명한 바로 이 <12세의 모나리자> 그림이었으나, 이 그림은 물론 오지 않았다. +_+
명화를 따라 그린 패러디 그림들은 보테로가 수년에 걸쳐 꽤 여러 작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혹시 한점쯤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보테로의 모나리자는 뉴욕 현대미술관과 콜롬비아 보고타 미술관에 있다는 듯하니 우리나라같은 데서 쉽게 빌려올 수 없었을 게 뻔하다.
그나마 이번에 전시한 그림들은 전부 최근까지 역동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보테로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란다. 도슨트 설명을 들으니 아직 안팔린 그림들도 많아서 서명이 없는 작품들도 더러 있다고. 유심히 작품 연도를 살피니 2007년, 2008년에 그린 그림들도 꽤 많았다.
70대 중반임에도 대형 그림을 1년에 몇 작품씩 그리다니 사람 좋게 생긴 화가의 사진이 자꾸 떠올라 더욱 신기했다.
어쨌거나 반아이크와 벨라스케스 등을 따라 그린 그림들은 몇 점 볼 수 있었지만 통통한 모나리자를 못본 아쉬움을 완전히 달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내가 막연하게 보테로 전시회를 오매불망 보고파했던 이유인 사랑스럽고 유쾌한 느낌들을 이번 전시에선 그리 실감할 수가 없었다. 사물과 인물의 양감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원래

보테로 - 죽마를 탄 광대

보테로는 인물의 표정을 뚱하게 그린다는데, 내가 보기엔 뚱한 정도가 아니라 삶에 찌든 슬픔에 가까워보였고 투우, 서커스, 라틴의 삶, 등으로 나뉜 전시 주제들 역시 화려한 원색으로 표현된 것과 상관없이 무거운 분위기에 큰몫을 담당했다.
전시 팸플릿 표지이기도 한  <죽마를 탄 광대> 속 인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두 사람 다 말못할 사연이 있어서 조금 있다가 돌아서서 눈물이라도 흘릴 것만 같다.
심지어 즐겁게 춤을 추는 무도장의 사람들 표정도 하나같이 슬픈 걸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느낌.










무식한 눈으로 늘 행복한 그림을 나만의 명작으로 꼽는 촌스러운 내 마음을 그나마 확 사로잡았던 건 정물화 쪽에 있었다. 작품 크기도 대형이라 시원시원하게 내 눈을 즐겁게 해준 작품은 바로 이 <꽃 3연작>

페르난도 보테로 - 꽃 3연작


내가 아무리 기억력이 별로이긴 하지만, 덕수궁 전시장에선 분명 노란 꽃이 가운데 있었던 것 같은데 노란 꽃이 가운데 있는 사진을 좀체 검색할 수가 없다.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일까. *.* 같이 간 지인 하나는 다닥다닥 붙은 꽃이 인간의 뇌 같아서 섬뜩하다는 평도 했지만 나는 저 노란 꽃의 색감과 통통한 모양이 너무 예뻐서 엽서 세트 말고도 무려 5천원이나 하는 전시 포스터를 사가지고 의기양양 돌아왔다. 또 몇년간 빛바랄 때까지 방문에 붙여놓고 쳐다볼 때마다 흐뭇해할 요량이다. ^^;

며칠 안남은 전시가 끝나기 전에 보테로 그림들을 잔뜩 보고 온 건 뿌듯하고 잘한 일이다 싶지만 이상하게도 조각상 포함 93점이나 된다는 이번 전시보다 난 아무래도 두 세점에 불과했던 지난 전시때의 느낌이 더 강렬하고 오래 남을 듯하다. 아기처럼 통통하고 작은 손에 빨간색 알반지를 끼고 한손엔 담배를 들었던 <시인>의 모습과 뾰족한 구두 위에서 중심잡기 묘기를 하듯 브래지어를 채우던 통통한 여인의 뒷모습이 왠지 더 좋았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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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우먼

놀잇감 2009. 8. 23. 16:39

일주일간 영화를 세편이나 봤다. 영화제 기간도 아니고서 이러는 일은 꽤나 드문 사건인데 한편으로 참 한심하기도 하다. 이럴 시기가 아니란 말이지...
그래도 적어두지 않으면 머릿속의 지우개가 싹싹 지워버릴 게 뻔하니 한심해도 기록은 해두자.
씨네큐브 운영에서 백두대간이 손을 뗀다는 소식에 망연하여 <마지막> 의식을 치르듯 모여본 이 영화는 앞으로 반쪽짜리로라도 이어지길 바라는 씨네큐브라는 극장 자체에 대한 우리들만의 예우에 걸맞게 여러모로 참 의미심장했다.


포스터에 제목만큼이나 강조된 <시네마 천국> 두 거장이 다시 만든 영화라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시네마 천국>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내 인생의 영화> 목록을 뽑을 때 누구나 다섯 손가락 안에 그 영화를 손꼽지 않을까. 토토와 알프레도의 감동적인 우정 말고도 영화가 우리 인생에 안겨주는 행복의 의미를 그보다 더 잘 담아낸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시네마 천국>이후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를 본 기억은 전혀 없거나 있었더라도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인데, <언노운 우먼>을 보고나선 역시 거장은 거장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배경음악만으로도 불안초조해서 덜덜 떨리게 만드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씩 깔아놓은 조각퍼즐로 시종일관 긴장과 궁금증을 멈출 수 없게 만들어 진이 다 빠져버릴 때쯤 활짝 펼쳐놓는 분노의 진실에 나는 정말이지 간이 오그라붙는 것 같았다.

번역 일을 하다보면 약간 기묘한 인연이랄까, 이상한 기시감 같은 것이 들 때가 있다. 전혀 상관없는 두 작품에서 똑같은 음악이나 책이나 인물이 인용된다든지 해서 나만 느낄 수 있는 기이한 공통점을 발견한다든지, 어쩐지 비슷한 장면을 상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든지 하는 거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책에도 상처뿐인 과거로 괴로워하는 여자가 주인공인데, 배경도 상황도 모두 다르지만 자기 아이를 빼앗기고 그리워하는 점이나 주류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소외계층의 여성이 자기 방어를 위해 남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점이 똑같아 영화를 보는 내내 집에 두고온 밀린 원고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 영화를 보면서도 일을 나몰라라 미뤄둔 게으름을 추궁받는 느낌이었으니, 나에겐 더욱 의미가 남달랐달까. 비록 영화 주인공 이레나는 우크라이나 출신이고, 소설 주인공 콘수엘라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이지만서도.

암튼 충격적인 사실들이 하나하나 펼쳐지며 줄곧 자지러지게 놀라고 안쓰럽고 분노하던 감정을 마지막엔 감동의 눈물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 감독의 배려가 고마웠다. 이레나의 과거 상처는 결코 잊혀질 수도 쉽사리 치유될 수도 없겠지만 이레나의 진심이 통한 상대가 이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남아 있다는 게 왜 그리 위안이 되던지. 생각할 것도 너무 많고 가슴이 먹먹해서 쉽게 뭔가를 꼬집어 적어두기에도 쉽진 않은 영화였지만, <시네마 천국>과는 다른 성격으로 오래도록 여운을 남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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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놀잇감 2009. 8. 20. 16:57

과연 이게 초절정 마감모드에 임하는 자세인가 싶게 이번주는 계속 노는 추세다. 발등에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는 뻔뻔함의 추동력이 놀랍다.
째뜬 개봉한지 꽤 오래라 이미 다 끝난 줄 알았던 <UP>이 아직 근처 영화관에서 상영중이란 걸 알고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픽사 애니메이션을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기대를 많이 했더라도 픽사 애니메이션의 경우엔 별로 실망하는 법이 없다. 섬세한 그림과 황홀한 색채만으로도 그저 행복해지기 때문. 칼과 엘리가 살던 집은 고풍스런 가구며 사소한 소품들까지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다 집어오고 싶었다.  확실히 나는 애니메이션에 훨씬 점수가 후하다. 어쨌거나 영화관을 나서며 나는 단언했다. <해운대>보다 <UP>이 훨씬 재미있었다고!
디지털로 봤는데도 장면장면 자지러지듯 놀라고 헐떡거렸으니 3D로 봤더라면 나는 간덩이가 남아나질 않았겠더라. ㅋㅋ
어쩌면 고소공포증 때문에 어지러워하다가 끝내 3D안경을 벗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상투적인 드라마 주인공들이 홀부모 슬하에서 자란 걸로 설정되는 이유는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제작비 때문이거나 출생의 비밀을 터뜨리기 위한 방편이라지만, 가족과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확실히 홀부모 가정을 다루는 시각이 의연하다. 아이없이 해로하는 노부부의 사랑과 행복도 그저 아름답기만 할 뿐이고. 아버지나 어머니의 부재를 당연하게 드러내면서 그 대안으로 확대가족을 제안하는 듯한 부분은 동양적인 것 같지만 어디나 아이와 노인은 상통하는 데가 있으니 굳이 동서양을 따질 것도 없을지 모르겠다.

암튼 여름방학 이벤트로 3대가 같이 본 <UP>은 우리 3대를 모두 만족시켰다. 마지막에 자막 함께 올라가던 칼과 러셀의 새로운 모험 앨범처럼 우리도 평범한 일상에서 사소하게나마 짜릿한 모험을 느끼며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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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삶꾸러미 2009. 8. 10. 16:21

어느 책에선가 국수가 혁명가들의 음식이란 얘기를 봤다. 후루룩 먹고 또 일을 해야하기도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이 기다란 국수발을 끊지 않고 목으로 넘기며 죽음을 경험하는 거라나 뭐라나.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최소한 국수가 노동자의 음식일 순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맛 없어도 면발 몇 줄기 삼키는 건 누구나 가능하고, 노동의 중간에 후다닥 끼니를 해치우기엔 국수만한 것이 없는데다 값도 싼편이니까. 물론 전통의 맛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다는 우래옥이나 을지면옥의 냉면은 사먹으려면 7, 8천원이나 하는 고가(?)의 음식이 되었지만 몇만원짜리 만찬에 비하면야 뭐. 

국수 애호가였던 이북 출신의 조부모님과 오래 살면서 나 역시 국수를 어려서부터 먹고 자랐고 지금도 퍽이나 좋아한다. 내가 파스타류를 특히 좋아하는 것도 국수와 워낙 친근하기 때문이 아닐까. 암튼 할머니댁에서 살 때나 나중에 분가후 주말에 다니러 다닐 때도 그 옛날 여름이면 점심끼니는 으레 국수였다. 평안도 출신 답게 물냉면 아니면 비빔국수. 멸치다시를 내서 뜨거운 육수에 말아먹는 잔치국수는 아무래도 서울이나 남도쪽 음식인듯 집에서 해먹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저 매일 냉면냉면... 맛있는 동치미 국물을 늘 마련해놓은 것도 아니어서 인스턴트로 파는 마른 냉면을 사다가 삶고 거기 딸려오는 봉지스프로 육수를 대강 만들어 먹는 건데도 삶은 달걀 하나만 얹어 있으면 어찌나 맛있게 여겨졌던지. 할머니가 신김치 송송 썰어 참기름과 설탕을 약간 넣고 맨손으로 고추장과 함께 조물조물 국수에 비벼 주시던 비빔국수의 맛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어린 시절엔 동네마다 국수가게가 있어서 빨래를 널듯 긴 젖은 국수를 기다란 가로대에 걸쳐 높은 건조대에 척척 올려놓았다가 다 마르면 걷어서 잘라 팔았다. 그땐 쌀이 부족할 때라 혼분식을 장려하기도 했고 안 그래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집집마다 국수를 참 많이도 먹고 살았던 모양이다. 국수 심부름을 가는 것도 늘 내 차례였는데, 신문지에 크게 한움큼 싸준 국수를 사들고 오며 나는 한줄기씩 그 밀가루 국수를 뽑아 과자처럼 오독오독 끊어 씹어먹으며 즐거워했다. 엄마는 배탈난다고 질색을 했지만, 국수 삶는 걸 기다리는 동안 동생들과 나는 엄마 몰래 얼른 마른 국수 한두 줄기를 뽑아 씹으며 좋아했었다. 여름이면 우리 식구들은 냉면도 좋아했지만 콩국수를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에 유난히 콩국수를 더 많이 해먹었던 것 같다. 학교 급식제도가 막 시작되고 있던 시절이라 그 땐 일주일에 한번씩 우유 대신 유리병에 든 두유가 빵과 함께 나오곤 했는데, 나는 지금이나 그 때나 단맛을 가미한 콩국물을 절대로 못먹는 반면(편식은 안된다며 담임선생이 억지로 먹였다가 다 토해버린 기억이 있다) 소금을 쳐 고소한맛이 더욱 강조된 콩국물은 몹시 좋아했다. 콩을 덜 삶으면 콩비린내가 나고 너무 삶으면 메주냄새가 나기 때문에 콩국수를 맛있게 만드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엄마는 늘 푸념을 하면서도 매번 맛있는 콩국수를 만들어주셨던 것 같다. 몇해 전 나도 큰 마음 먹고 흰콩을 사다 삶아 손수 콩국수를 만들어보았지만, 콩이 옛날 콩이 아닌 때문인지 그 옛날처럼 고소하고 뿌듯한 맛은 결코 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푹푹찌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도 점심끼니는 거의 언제나 국수다. 더욱이 마트에 나가보면 다양한 국수 종류는 물론이고 평양냉면 육수며 콩국물까지 1인분씩 봉지에 담아 팔고 있으니 금상첨화. 이런저런 브랜드 냉면을 죄다 사먹어 보니 굳이 완제품으로 비싸게 호화포장된 냉면을 세트로 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저렴하게 포장된 생냉면을 사고 제일 싼 봉지육수를 골라도 완성후의 맛은 거의 똑같다. 반면에 콩국물은 브랜드별로 가격과 맛의 차이가 심한 편인데, 딱히 내 입맛에 맛는 정말 고소한 콩국물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무원이가 만든 콩국물이 *정원이네서 만든 것보다 낫더라. ^^

그저께 점심은 물냉면, 어제는 콩국수, 오늘은 크림스파게티. 그끄저께는 열무비빔국수를 해먹었을 텐데, 지난주에 사온 육수와 콩국물을 다 먹었으니 내일은 또 다시 비빔국수 차례. 연일 너무 더워서 입맛이 없으니 자꾸만 차가운 것만 찾아서 그러는지 계속 배탈기가 있어서 오늘은 일부러 스파게티를 해먹었는데도 속이 편하질 않다. 이어지는 밀가루 세례를 감히 내 뱃속이 거부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더위와 스트레스에 심신이 지쳐버린 것일까. 그래도 확실히 국수는 식욕이 없는 와중에도 일단 입안에 넣으면 술술 잘도 넘어가니 신기하다. 말년에 이가 부실해 단단한 음식은 거의 못드셨던 우리 할머니가 유독 소면을 좋아하셨던 눈물겨운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밥먹기 귀찮은 심정으론 저녁끼니도 국수로 대충 때우면 좋겠구만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일 점심때 비빔국수는 특히 맵게 비벼먹고 나면 늘어진 정신줄이 좀 팽팽해지려나. 국수 한 그릇 먹자마자 얼른 또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요즘의 나를 보면 국수가 노동자의 음식인 건 맞는 듯도 한데, 왕비마마는 무슨 죄람. 고종황제도 냉면을 즐겨먹었다는 이야기로 위로를 해드려야 할까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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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어치 보테로

놀잇감 2009. 8. 4. 20:27

신체리듬도 깨뜨리지 않으면서 친구와 약속도 지키고 보테로 전시회를 보는 방법은 의외로 쉬웠다. 친구 일행도 전시를 오후에 보면 되잖아! 어차피 젖혀둔 일감이야 몇 시간 더 논다고 크게 달라질 진도도 아니었다.
그러나 난관은 다른 데 있었다.
다들 휴가 떠났을 줄 알았더니만 그것은 나의 오산.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뙤약볕 아래로 나서 덕수궁으로 향하니 놀랍게도 지난번 유명 전시회 마지막날만큼이나 매표소앞부터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궁궐만 들어가는 이들도 바글바글. +_+
멀리 경기 외곽에서 날을 잡아 보러 온 친구 일행은 여유롭게 기다려서라도 전시를 볼 요량을 품었지만(방학이라서 그런지 덕수궁 현대미술관 전시는 고맙게도 8시 반까지더라), 계속해서 출판사의 독촉전화마저 날아드는 마당에 나 또한 여유를 부릴 순 없었다. 곧바로 헤어지긴 아쉬워 나는 일단 천원짜리 덕수궁 입장표만 사서 들어갔는데, 의외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테로의 조각품들이 궁궐 마당에 떡하니 전시되어 있는 게 아닌가! ^^

대한문으로 들어서 조금만 들어가면 나타나는 건 큼지막한 검정색 고양이 조각상.
보테로의 고양이 조각이 여러개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사진을 퍼오며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들여와 버젓이 실외 궁궐마당에 세워놓은 건 복제품이 확실하다는 것을.
새까맣고 매끄러운 질감이라 혹시 대리석인가 했더니 팻말에 <청동>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모름지기 정말로 청동이라면, 그리고 1999년에 제작한 거라면 당연히 이 사진처럼 칠이 벗겨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말이다. 덕수궁에 서 있는 건 갓 제작한 새것처럼 매끈하기만 하다. 실외 조각품 대여전시에는 언제나 복제품을 보내는 게 정석인지도 모르겠으나, 뭐 나로선 못마땅했다는 이야기.



미술관 양 옆에선 이렇게 통통하고 귀여운 여체 조각상도 두개나 더 볼 수 있었다. ㅎㅎㅎ 9월을 기약하며 전시회 구경을 포기한 나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듯 요염하게 몸을 비틀고 앉은 저 사랑스러운 자태라니!

오늘은 설렁설렁 구경했지만 담엔 조각상들도 더 꼼꼼히 보고 말리라...
나는 까마득히 몰라는데 이번 전시회를 위해 페르난도 보테로 아저씨가 직접 내한도 했었다는군. +_+ 알았더라도 인파를 뚫고 만나러 갈 용기는 내지 못했겠지만 은근히 아쉽다.

사진을 보니 그림속에 담긴 오동통한 인물들보다는 훨씬 날렵하고 예리한 예술가의 모습이지만 어쩐지 동글동글하고 순진무구한 표정이 닮았다. 예술가의 생김새 때문에 그림을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멋진 보테로 아저씨의 사진을 보니 그림 구경 열망이 더욱 커진다! 어쩜 이렇게도 만화 주인공 같이 생겼다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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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했어요

삶꾸러미 2009. 7. 16. 12:46

일주일에 한번꼴로 장을 보러가는 집 근처의 OOO마트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었던 낡은 상가 건물 1층에 있다. 재래시장과 마주보는 위치이기도 하고, 워낙 옛날 건물이라 지하 주차장 따위가 갖추어져 있을 리 없으니 건물 앞 도로에 구획이 그려진 노상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마트 바로 앞쪽 주차구획을 이용하면 무료 주차 확인 도장을 받아 처리할 수 있으므로, 뱅글뱅글 멀미나게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폐소공포증 비슷한 두려움에 젖을 필요도 없고 오히려 시간도 절약된다. 
내가 식탐이 많기도 하지만, 고른 영양분 섭취까지 신경써서 나름대로 메뉴를 짜 사들이는 일주일치 장보기의 양은 꽤나 거대하다. 무거운 건 배달을 시키고 신선식품만 먼저 들고오는데도 낑낑거려야할 때가 많으므로 나는 최대한 마트 입구에 가까운 주차공간을 찾는 편이다. 따라서 마트에 갈 때마다 만나는 공영주차장 요원 아저씨도 늘 동일한 분인데, 내가 그간의 긴 공백을 어렵사리 접고 드디어 끼적거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바로 이 아저씨다.

처음 이 아저씨를 만났을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다. 길어야 1년 반 정도.
낯선 사람과 쓸데없이 말 섞는 걸 싫어하는 내가 처음 차를 세운 뒤 이 아저씨를 만나고 뜨악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기 때문이다. 마트 입구쪽에 차를 세우면 그간 다른 주차요원 아저씨들은 아무 말 없이 시간만 표시한 종이를 앞 유리창에 끼우거나, 그나마 친절한 분들이 "마트가냐?"고 묻고는 도장 받아올 종이 반쪽을 찢어 건네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일단 차가 접근하면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무조건 양팔을 휘저어 반색하며 주차를 돕고는, 차에서 내리면 이렇게 말한다. "잘 하셨습니다!" 이면도로에 계속 오가는 차들이 있으니 주차과정이 험난할 때도 있는데, 이 아저씨는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던져 주차를 도울 때가 있다. 저러다 차에 치이지 싶을 정도로...
그러고는 마트에 간다고 하면 "아유, 잘 오셨어요."라며 주차증 반쪽을 찢어주는데, "잘 다녀오세요."라는 인사도 잊지를 않는다. 과잉 친절에 어색해지는 나 같은 사람은 얼른 "네"라고 대꾸하고 머쓱해서 장을 보러 도망치듯 들어가게 됐는데, 처음 장을 보고 나와서 나는 좀 짜증이 났었다.
그 아저씨의 일처리가 어쩐지 굼뜨고 느렸기 때문이었다. 마트에서 찍어준 확인 시간을 초과하면 돈을 더 내야하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내 경우는 하도 장을 많이 봐서 대부분 시간도장을 넉넉히 찍어받기 때문에 주차증만 척 봐도 알텐데 이 아저씨는 주차증 시간과 자기 시계, 그리고 또 다른 장부에 적힌 기록을 꼼꼼이 확인하지 않고는 보내줄 생각을 않기 때문이다.
뭐가 그리 바쁜지 늘 빨리빨리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것에 길들여진 나는 몇분 안 되는 그 아저씨의 꾸물거리는 태도에 괜히 부아가 났던 것 같다. 실은 그게 일 처리의 원칙임에도 말이다. 처음엔 아저씨가 주차요원 초보라서 그러는 줄 알고 속으로 혀를 찼지만, 1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그 아저씨의 주차증 확인시간이 빨라지지 않은 걸 보면 그 분은 그냥 원래 그런 분이라는 의미다.
"아유, 넉넉하네요. 잘하셨어요."라고 또 한번 칭찬의 말과 함께 무료주차 확인이 끝나면, 그 아저씨는 또 열심히 오가는 차를 살피고 양팔을 휘저으며 내가 차를 빼기 좋도록 안내를 한다. 이면도로의 주차구획선을 떠나기까지, 제 아무리 운전과 주차에 베테랑이더라도 "오세요, 오세요!" "천천히 하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조심하세요." "잘하셨어요." "안녕히 가세요."로 이어지는 그 아저씨의 인삿말을 피할 도리는 없다. ^^
언젠가 한번은 그 아저씨가 잠시 화장실에라도 간 듯 옆 구역의 아저씨에게 주차증을 드리고 확인을 받아야했는데, 내가 차를 뺄 무렵 헐레벌떡 달려온 아저씨는 동료에게 "아유, 미안해요."라고 하더니 도장 찍힌 주차증을 확인해 장부에 끼우며 덧붙였다. "잘했어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늘 하던 자기 일에 <잘했다>는 칭찬을 들은 동료 아저씨의 표정이 궁금해진 나는 얼른 거울을 쳐다보았는데, 예상대로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반면에 칭찬쟁이 아저씨는 정말로 기쁜듯 싱글벙글.

어제도 장을 보러 다녀오며 나는 어린시절 숙제공책에 찍힌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처럼 은근히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그 아저씨의 익숙한 칭찬 3종 세트를 듣고 돌아왔다. 
"아유, 주차 잘하시네요." - 다른 차의 주차증을 발급하느라 미처 도와주지 못하는 새에 내가 냉큼  차를 대자
"잘 오셨어요." - 마트에 간다고 하니까
"아유, 넉넉하게 잘 받아오셨네요." - 30분 무료 도장 두개를 쾅쾅 받아온 나의 주차증과 유리에 끼워놓은 주차증에 적힌 시간과 자기 손목시계를 유심히 다 확인하고 난 다음에

도대체 그 아저씨는 어째서 그렇게 매사에 싱글벙글 감탄하고 칭찬하는 삶의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일처리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인 것 같지만 타인에 대한 예의와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그 아저씨를 처음엔 버럭 짜증스럽게 여겼고, 아직도 그 아저씨의 "잘하셨어요"라는 말에 민망하다는 생각이 크긴 하지만 나도 본받아야할 점이라는 건 분명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한다는데 말이지...
칭찬은커냥 입만 열면 뾰족한 꼬챙이로 콕콕 찔러대는 말만 뿜어대고 있는 초절정 까탈스러움을 떨쳐버려야하는데 참, 그게 쉽질 않다. 

오늘은 왕비마마한테 "잘했다"는 말을 최소한 3번은 해보겠다는 다짐의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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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투덜일기 2009. 6. 1. 15:50

얼마전 토룡마을 주민들과 자전거를 타러 갔던 날, 홀로 집을 지키던 엄마가 전화로 말했었다.
"월드컵 공원 좋아? 엄마도 가보고 싶다."
서울서 태어나고 자라서 오히려 서울 곳곳을 <관광>하러 다니는 게 어색한 우리 엄마는 특히 최근들어 생겨난 크고 작은 공원 같은 곳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는 듯해, 몇년 전부터 가끔씩 모시고 다니리라 다짐은 했지만 실천에 옮기는 건 늘 게으름에 밀리기 일쑤다. 하늘공원은 작년엔가 막내네가 모시고 다녀왔지만, 바로 아래쪽 평화공원엔 왕비마마가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다. 더불어 서울숲과 올림픽공원, 한강 둔치, 유람선도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그래서 더 더워지기 전에 월드컵 공원 소풍을 계획하고 나선 것이 어제. 엄마는 걷는 운동을 하고 나는 자전거를 차에 싣고 가 타기로 마음 먹었더니, 소풍 계획을 알게된 정민공주네도 합류하고 싶어 했다. 온집안에 몰아친 자전거 열풍에 휩쓸려 자기도 어린이용 자전거 말고 <기어> 달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공주가 드디어 소원을 이루어 <우베공>을 장만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와 똑같은 하얀색. 당연히 작은 사이즈로 샀을 줄 알았더니, 자존심 상하게도 M사이즈였다. ㅠ.ㅠ 좀 더 있으면 당연히 공주가 나보다 키가 커지겠지만, 제 아빠도 같이 타려면 큰 걸 사는 게 정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모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뭐든 고모 자전거랑 똑같아야 한다며 욕심을 부리던 공주는 제 자전거가 더 크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모양이더니, 벨로 언니도 M사이즈라니깐 그제야 생글생글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M사이즈 살 걸! 안장 제일 낮추면 지금 내 안장 높이랑 똑같던데 ㅠ.ㅠ;;

원래 계획은 왕비마마를 모시고 월드컵 공원을 한바퀴 돌아 <빡시게> 운동을 시키는 것이었지만, 초장부터 다리 아프다며 드러누워 좀체 운동을 하려하지 않는 왕비마마를 독려하는 건 불가능했다. 속으로는 정말로 눌린 척추신경을 복원하는 수술을 해야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인지 겁부터 나는데, 겉으로는 엄살부린다며 엄마한테 자꾸 짜증을 내고 있었다. 왕비마마는 자꾸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주고 가는 중국집, 치킨집 먹거리에 끌리는 모양이었고 공주네 식구도 잔디밭에 앉아 짜장면과 짬뽕을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단호히 그들을 말렸다. 말이 소풍이지 본래 목적은 가열찬 운동이건만, 나와서 잔뜩 먹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람!  

왕비마마의 운동량은 오히려 평소 홍제천 산책 때보다 적었지만, 전체적으로는 훌륭한 편이었다. 월드컵 공원에 간 게 수차례이면서도 구석구석 다 돌아본 적 없던 나는 거의 공주에게 끌려다니다시피 공원을 여러바퀴 돌아야 했고, 심지어 공원이 너무 좁아서 자전거 타는 맛이 안난다는 공주를 데리고 한강으로 나가 성산대교, 양화대교를 지나 당산 철교까지, 그리고 다시 돌아 가양대교 방면으로 자전거길 조성공사를 새로이 하느라 길을 막아놓은 곳까지 다녀왔으며, 귀가길에도 차는 동생에게 맡긴 채 홍제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_+
자전거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올케 역시 핸들이 좀 흔들리긴 해도 꽤나 진척이 있어 사람들이 많지 않은 길에선 퍽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게 되었으며, 잠시 한강변 답사를 다녀온 큰동생도 우리집에서 반포대교까지는 무리없이 출퇴근할 수 있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원래 언덕 위 우리집에서 월드컵공원까지 자전거로 걸리는 시간은 25분에서 30분. 차로 가면 주차시간까지 합해도 15분이 안 걸린다. 시간상으로는 당연히 자동차가 빠를 수밖에 없지만, 돌아오는 길에 과연 누가 빨리 도착할 것인지 궁금했는데, 예상외로 자전거를 타고 온 우리가 훨씬 빨랐다. 자전거길 조성공사로 군데군데 공사중이던 홍제천변 산책로 포장이 거의 끝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공원 주차장에서 차 두대가 빠져나오는데만도 엄청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팍팍한 다리로 자전거를 끌고 마지막 언덕길을 오르며 나는 정말 죽을 맛이었는데, 여전히 팔팔하게 기운이 넘치는 공주는 공원에서 고모네 집까지 생각보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실망이라고 했다.

어느새 너무 익어 마당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앵두를 올해 처음 따면서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정말 감개무량했다. 느루를 장만하고 1년 넘게 내가 자전거를 탄 시간은 하루에 길어야 1시간 남짓. 다리가 묵직해지기 시작하면 이내 쉬면서도 홀로 흡족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젠 중간에 쉬엄쉬엄 타기는 했어도 꼬박 3시간은 자전거를 탔을 거다. 막판엔 엉덩이가 찢어질 듯 아프고 다리도 묵직하다 못해 거의 뻣뻣해졌으니까. 밤 10시도 되기 전에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일어난 오늘도 여전히 삭신이 쑤시는데, 예상보다는 거뜬하다. 지난주에 미리 좀 걷고 자전거를 타둔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 왕비마마도 자전거를 타실 수 있다면 다리가 좀 아파도 운동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프렌즈>에서 피비가 타던 어른용 네발 자전거 생각이 난다. 우리나라엔 어른용 네발 자전거 없나? +_+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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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전시회 시작됐을 때 연일 관람객이 바글거린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인파가 뜸해지길 바라며 꽃과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에 소풍삼아 예술의전당에 가리라 마음먹었다. 3월엔 클림트 전을 보고 나온 지인 모녀를 만나러, 4월엔 카쉬 전을 보러 예전에 가기는 했지만 정작 클림트전은 못보고 조바심만 내고 있었는데, 어느덧 달력을 보니 이번주 금요일이면 전시회가 끝난다고 적혀 있었다. 정신머리 없는 내가 못미더워 밀린 숙제처럼 탁상달력에 적어놓고도 마지막 주까지 버티다니. 참 한심스러웠지만 아예 놓쳐버린 것보다는 낫다고 여기며 지난 화요일 잠을 줄여 헐레벌떡 구경을 다녀왔다.
관람료도 비싼 대규모 기획전시를 찾아다니는 건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한 문화산업에 편승하는 짓이니 지양해야한다고 익히 들었어도, 그림구경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 늘 그 장단에 춤을 추고 있긴 하지만 이번엔 특히 마음이 찜찜했다. 평일 오전엔 원래 한가로운 아줌마 관객들이 미술관에 많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입구부터 줄을 서듯 두겹 세겹으로 그림앞에 둘러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안내직원들이 소리를 쳐댔다.
"다른 전시실 먼저 둘러보십시오! 안쪽으로 가시면 빈 공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전시실도 한가롭게 그림 하나를 오래 감상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곳은 없었고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딪치고 시야를 방해받고 누군가의 발을 밟거나 밟혀야 했다. 그동안 관람객이 어찌나 많았는지 전시 팸플릿도 다 떨어졌을 정도이니 오죽할까. 미리 준비된 게 다 떨어졌으면 다시 인쇄를 해야 마땅할 텐데, 아무리 마지막 주에 뒷북관람을 하는 관객이로서니 대놓고 푸대접을 받는 듯한 기분은 영 가시질 않았다. 전시 주최사인 동아일보사는 반성하라!
게다가 저 포스터에도 들어있는 <유디트I>을 제외하면 유명 작품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실망감은 줄지 않았다. 그나마 <베토벤 프리즈> 벽화와 정사각형 캔버스가 인상적이었던 풍경화를 직접 본 것으로 관람료 본전은 뺀 거라고 애써 위로하고 돌아왔는데, 기막히게도 그 <베토벤 프리즈> 원본은 오스트리아 박물관에 있고(현재도 전시중이라고 ㅠ.ㅠ) 훼손을 염려하여 한국에 보낸 건 복제본이란다. 완전 사기당한 기분!! 나만 몰랐던 것인가??

물론 전시 끝나기 직전이라 더욱 복잡했을 시기에 그림을 보러간 건 순전히 내 잘못인 걸 잘 안다. 대작들은 많이 없는 대신 드로잉과 뜬금없는 디지털영상사진이 더 많아 속상했지만 그렇다고 괜히 보러갔다고 후회를 한 건 아니었고, 보길 잘했다는 생각은 확실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는 속담이 어김없이 들어맞는 요란스런 거대자본형 전시에 머릿수를 보태준 것이 찜찜하다는 얘기다. 암튼 이러저러한 투덜거림은 전시회 자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화가들에 비해 큰 애정을 갖고 있진 않았던 클림트에 대해선 이참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생기긴 했다. 클림트와 황금빛 색채는 뗄레야 뗄 수도 없는 것이지만 나는 <키스>나 <포옹>, <유디트> 같은 그의 그림들이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눈쌀을 찌푸리곤 했다. 뭘 그렇게 유난스럽고 번쩍거리게 드러내나 싶은 무식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던 건데, 이번에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거의 사진처럼 묘사한 그의 초기작부터, 이미 대가로 칭송받던 시기에도 수없이 연습을 거듭한 드로잉과 스케치 작품, 중년 이후에 시도한 인상파 풍의 풍경화를 실제로 보니, 책과 화집에서 <읽어낸> 느낌과는 여실히 달라 나도 모르게 입이  헤벌어졌다.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하여 늘 가난하고 힘겨웠으며 유명 화가들의 그림들을 따라 모사하고 연습하던 고흐의 그림들이 상대적으로 아마추어 같은 노력의 과정을 진하게 풍긴다고 한다면, 클림트는 천재적인 자기 재능을 거리낌없이 온갖 방식으로 시도해본 노련함과 여유가 강렬하게 뿜어나왔다. 클림트의 황금빛 찬란한 작품에서 평범한 이들을 약간 움츠러들게 만드는 천재 특유의 오만함을 (경외심과는 별도로) 느끼는 건 순전히 나만의 편견일 수도 있겠는데, 하여튼 나는 그런 색다른 인상이 신기했다.

그림전시회를 보고 나와서 소박한 의식을 거행하듯 천원짜리 엽서 몇장을 사며 우리나라 업자들의 그림 인쇄술이 조악하다고 늘 불평했던 것 같은데, 이번 클림트전은 아예 그림 엽서와 카드, 복사본 그림 따위를 독일에서 수입했더라. 지금까지 그런지는 몰라도 컬러 인쇄술은 독일이 가장 앞섰기 때문에 고가의 화집 같은 건 독일에서 만든 걸 사라고 익히 들어왔는데, 색감이 확실히 선명하긴 해도 <Made in Germany>라서 작은 엽서 한장에 3천원, 5천원씩 하는 걸 보며 또 한번 내 입에선 불평이 터져나왔다. 젠장!
오스트리아엘 간다 해도 만나볼 수 없는 <처녀>와 <친구들> 엽서를 어렵사리 한장씩 고르고, 실물 알현의 영광을 누린 <아담과 이브> 타일 자석을 받아들고 흐뭇하긴 했어도 이번 전시의 노골적인 상업성은 성토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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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름이 하필 '토룡'이어서 모임 날짜만 잡으면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는 징크스는 아마도 이제 깨진 것일까? 한달쯤 전부터 거창하게 날을 잡았던 예전 모임과 달리 번개치듯 긴급하게 잡은 날짜라 하늘이 미처 손을 쓸 새가 없었을 가능성도 있겠으나, 어쨌든 토룡마을 주민들의 5월 자전거 모임은 화창하다못해 푹푹찌는 여름날씨 같은 주말을 마음껏 즐기는 기회가 되었다.
느루를 장만한지 1년이 넘고도 석달이 지나 드디어 토룡 마을 주민들의 자전거모임엘 참석하며 나는 정말 감개가 무량했다. 자전거 장만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토룡마을 주민들의 자전거 모임에 나가보는 것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꿈의 자전거인 토룡왕자님의 브롬톤을 알현하고 잘하면 시승해보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었으니! (자알~ 생긴  데다 씽씽 잘 나가기도 하는 브롬톤을 시승해본 것은 물론이고, 무려 18초만에 브롬톤을 접고 30여초만에 다시 펴는 키드님의 신공을 구경할 수 있었다!! @.@)
유일한 난관은 도시락 준비였는데, 약식을 만들어가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지난번 모임 때 날이 궂어 회동이 취소되면서 준비해둔 재료를 마냥 썩히기도 뭣해 그 다음주에 당장 약식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다. 다시 장을 봐다가 새로 만들면 되겠지만 <미술관 옆 동물원> 프로젝트(?) 이후 심신이 피폐해진 데다, 냉동실에 절반 잘라 넣어둔 약식을 재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요행심에 그냥 버티긴 했는데, 워낙 여름날씨 같은 오후 기온에 신선하지 않은 약식이 상하지 않고 무사할지 내심 겁이 났다. 결과적으로 모두 모여 나무그늘에 앉아 소풍나온 이들처럼 점심을 먹을 때까진 맛이 무사했으니 다행이긴 하다. 저녁시간까지 남아 있던 녀석들도 과연 쉬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

어쨌거나 첫번째 자전거모임에 전격 참석해본 결과 내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토룡마을에서 내가 최하층민이라는 사실이었다. 왜냐고?
일단 두 왕족부터 따져보자면, 그들은 내 기준으로 볼 때 뭣 하나 부족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인간들이었다. 소문과 사진으로만 알던 토룡왕자의 하늘색 브롬톤의 유려한 자태 때문이 아니다. 벨로 공주의 경우엔 검소하게도 하층민인 나와 같은 우베공을 타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그 둘은 각각 루이가노와 브랑셰, 이름 모를 오래 된 자전거까지 다수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토요일에 내가 확인한 바로는 토룡마을의 계급은 단순히 부의 크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선 계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다음과 같다고 확신한다.
첫째. 자전거 타기 기술
둘째. 운동신경
셋째. 체력
넷째. 요리솜씨

어려서부터 내가 품고 있는 자전거 타기 기술의 로망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한손으로 핸들 잡고 타기. 두 손 다 놓고 탈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ㅠ.ㅠ
또 하나는 한 발만 페달을 밟고 자전거 옆에 섰다가 자전거를 밀며 출발해 남은 다리를 유연하게 들어올려 안장에 앉아 자전거를 출발시키는 기술이다. 
현재 내 수준은 아주 잠깐, 한 1초쯤 한쪽 손을 놓고 얼른 머리를 넘긴다든지 안경을 올리고는 금세 핸들을 잡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핸들은 불안하게 흔들려 넘어지기 직전까지 바퀴가 버벅대기 일쑤다. 그런데 그날 토룡왕자와 벨로공주는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듯, 한손에 샌드위치가 든 종이가방을 들고 자전거를 몰고 오질 않나, 묵직한 과일 도시락이 든 쇼핑백을 들고오질 않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아무 어려움 없이 전화를 받질 않나... ㅠ.ㅠ
자전거 초보인 통통님과 나의 경우, 중간에 잠시 굳이 멀지도 않은 거리를 자전거 타고 물을 사러 매점엘 간 적이 있었는데 매점에서 파는 냉커피와 아이스티를 본 순간 옳타구나 하나씩 사가서 나눠먹자며 사들고 나서는 이내 난감해졌다. 우리 실력으론 밀봉되지도 않은 음료수는커녕 밀봉된 물병도 비닐봉지 없이 들고 자전거를 운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 마신 뒤 버리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통통님이 쓰레기통으로 향했을 때, 나는 어렵사리 물병을 바지 주머니에 끼우고는 절반쯤 남아 좀 덜 흘릴 듯한 냉커피를 왼손에 쥐고 핸들을 살짝 같이 잡는 만용을 부려봤지만 브레이크만 안 밟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 짧은 거리를 오는 사이 당연히 바지에 커피를 흘리고야 말았다. 헌데 토룡왕자는 자전거 타면서 휴대폰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문자 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자전거 옆쪽에서 한발로 페달을 밟고 자전거를 출발시키는 기술은 토룡왕자도 못한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을 놓기는 했지만, 어려서부터 부족함 없이 자전거 기술을 익혀왔을 왕족들한테 내가 어찌 비교될 수 있겠는가 하는 서글픔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운동신경과 체력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자전거 모임에선 여흥으로 <고무줄놀이>와 <배드민턴 치기>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노나또님과 지다님은 어찌 그리 나비처럼 사뿐사뿐 폴짝폴짝 고무줄을 하시던지! 애당초 고무줄 잡는 역할이나 하겠다고 했던 나도 미친 척 시도해보았지만 한두번 뛰고도 무거운 몸이 출렁거려 다시는 시도해볼 마음도 안생기는 나와 달리 고무줄 놀이의 대가 지다님과 노나또님은 그야말로 펄펄 나는 듯했다. 고무줄 놀이가 상대적으로 천한 계층의 유희였던지 두 왕족은 고무줄에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어 시작된 배드민턴 경기에선 악천후 바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순발력과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고무줄 놀이 때는 나와 더불어 고무줄 잡는 역할에 충실하여 잠시나마 나와 비슷한 계층이 아닐까 희망을 품게 만들었던 통통님 마저도 배트민턴에선 대단한 파워와 승부근성을 보이며 뛰어난 운동신경을 자랑했는데, 머리 나쁜 나는 그제야 통통님 역시 결코 나와는 같은 계급일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남산부터 한강까지, 그리고 다시 성산대교를 지나 근 2시간에 이르는 장거리를 물 한 모금 없이 주파한 강철체력의 통통님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1차로 자전거 모임에 참석한 뒤 바삐 성남으로 축구경기 응원을 떠난 노나또님의 체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ㅠ.ㅠ
저질 체력인 나는 겨우 40분 거리도 혹시 더위 때문에 늦어질까 조바심을 내며 페달을 밟아야했기에, 점심을 먹고 나선 고무줄도 배드민턴도, 농구에도 흥미가 없어 그저 푸르른 잔디밭에 누워 쉬고 싶었거늘... 나를 뺀 모든 이들은 그저 쉴새없이 공원을 뛰고 또 뛰어놀며 온갖 재주와 실력을 선보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요리솜씨라면 나도 명함을 들이밀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우선 노나또님이 익히 블로그에서 자랑하시던 주먹밥과 유부초밥은 되직하게 지은 밥에 갖은 양념을 해 맛도 일품인 데다 모양새까지 앙증맞고 먹음직스러웠다. 처음 차려놓았을 땐 양이 많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한톨 안 남기고 모두들 먹어치웠을 정도이니 말해 뭣하랴. 게다가 키드님의 그 유명한 <치킨> 샌드위치 역시 맛과 모양 면에서 다들 "사온 것 같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드물게 내가 집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보면 언제나 싱겁던데.... +_+
그에 비하면 내가 무성의하게 데워간 약식은 자른 크기도 들쭉날쭉, 견과류 내용물도 들쭉날쭉, 말들은 안했어도 분명 군데군데 너무 딱딱한 부분이 있었을 거다. 그나마 지다님과 통통님이 바쁜 관계로 도시락을 <싸>오지 않고 <사>는 바람에 은근히 안도했다고나 할까. 수박을 두 그릇이나 정갈하게 잘라와 모두의 갈증을 해소해 준 벨로공주는 요리솜씨로 쳐줄 수 없긴 해도 일단 왕족이고 자전거 솜씨가 가장 탁월하니 계급 결정에 영향을 제일 약소하게 미치는 마지막 기준이야 아랑곳하지 않을 게다.

하층민으로서의 서글픈 깨달음을 이렇게 주절주절 적고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거나 나도 토룡마을 자전거 모임에 드디어 참석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나 같은 저질 체력 운동부족 하층민에게도 동등하게 즐길 기회를 준 걸 감사하며, 계급이야 어떠하든 앞으로도 열심히 자전거 타기에 힘쓰겠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자 나의 결론이다. ㅋ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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