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 커피

놀잇감 2010. 2. 22. 18:44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주전자 하나로 카페 놀이 하듯 솜씨를 부려 연일 커피 메뉴를 달리해 마셨던 초심은 버얼써 사라졌고 최근엔 마시는 커피 메뉴가 거의 일정했다. 그냥 커피 아니면 카페 라떼, 딱 두가지. 거품기가 고장나 카푸치노는 꿈도 꿀 수가 없고, 추워서 아포가토는 땡기질 않는다.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그냥 커피라고 말한 이유는 에스프레소 자체를 즐길 정도는 못되어도 점점 진한 맛의 커피가 더 개운하게 느껴지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 물을 섞는 양이 훨씬 줄었으므로 아메리카노라고 말하기 싫었다. 어쨌거나 하루 한잔씩 즐기는 커피는 꽤나 만족스러웠는데도 공연히 심심해진 나는 오래 전부터 눈여겨보던 1인용 드리퍼를 사들였다.

요즘 카페에선 대부분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만들어주지만 간혹 드립 커피임을 자랑하는 곳을 만날 수가 있는데 향이 좋으면서도 맛이 깔끔한 드립 커피를 까짓것 집에서도 만들어 보자 싶었던 거다. 저렴한 플라스틱 드리퍼 가운데 나는 그나마 진하게 추출되기를 바라며 구멍 하나짜리 멜리타 드리퍼를 선택했고 (구멍 세개 짜리는 칼리타 드리퍼란다) 드디어 오늘 시음에 돌입했다. (택배 온 지 며칠 됐는데 귀찮아서 비닐도 안뜯고 구경만 했었다).

브리카 때도 처음부터 단박에 성공하지는 않았으니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일단은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앞섰다. 원두를 다 먹어가고 있으니 신선도에서 문제가 있기는 하겠고, 다른 도구 없이 그냥 일반 주전자로 서툴게 물을 내린 얼치기 바리스타 탓이 크겠지만, 에스프레소로 추출한 커피보다 향도 별로고 맛도 그리 개운한 줄 모르겠다. 나름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낸 대로 했는데 왜 실패했을까나. 드립 커피는 처음엔 물을 약간 부어 원두를 적신 뒤 빵처럼 부풀어오르게 살살 내려 3분 안에 추출해 먹되 맨 마지막 추출액이 떨어지기 전에 드리퍼를 치워야 잡스러운 맛이 없는 개운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단다.

곧 도착할 갓 볶은 원두를 갈아서 다시 시도는 해보겠지만 어설픈 솜씨로는 카페에서 진짜 바리스타가 내려준 드립 커피 맛을 내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에 공연히 어깨가 쳐졌다. 드립 전용 주전자까지 사긴 싫은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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