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는 아름답고 눈부시더라. 다들 김연아 칭찬에 입이 마른 터에 나까지 거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고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기분 좋아지는 포스팅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제만해도 <1등만 기억하고 주목하는 더러운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최소한 곽민정 경기부터는 관람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알람을 맞춰 놓고도 그냥 누르고 잤다. 민정양, 미안. -_-;

이름 까먹은 그루지야 선수가 넘어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잠을 떨쳐낸 나는 미국의 레이첼 플랫 선수부터 정신을 차리고 경기를 관람했는데 이제 겨우 17살이라 토실토실 젖살이 남아 있는 귀여운 얼굴로 정말 신나게 즐기면서 경기하는 모습이라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안도 미키는 등장과 함께 속이 상했다. 아무리 프로그램이 클레오파트라라지만, 그래도 지난번 시퍼러둥둥한 의상보다는 좀 차분해졌지만, 내가 초록색 옷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지닌 이유를 증명이라도 하듯 촌스럽게 느껴지는 초록색 의상은 이번에도 안습이었다. 솔직히 나는 아사다 마오보다 안도 미키가 더 뛰어난 재능과 노련함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좀 넓은 듯한 얼굴과 이목구비도 시원시원 매력이 있고. 헌데 안도 미키는 매번 의상이 꽝이다. 뭘 그리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지 원! 게다가 클레오파트라 때문인지 난데없는 단발머리도 어색하고, 피겨 스케이팅에 완전 무지한 울 엄니가 보시면서 "쟤는 왜 스케이트를 타다 말다 한다니."라고 하실 정도로 연기가 뚝뚝 끊겼다. 보라색 옷 입고 했던 세계 선수권 대회였나 그땐 그나마 좋았었는데!

안도 미키의 안쓰러운 연기 뒤에 본 연아의 모습이야 뭐 다들 아는 바대로 완벽했고 무지한 눈으로 봐도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왕비마마도 "김연아는 진짜 잘하네. 딴애들이랑 확실히 다르다."고 촌평할 정도였다. 연기를 끝내고 눈물을 터뜨린 연아를 보며 나도 질질 울어대자 왕비마마는 상당히 의아해하셨지만, 자기도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는 연아의 말처럼 나도 왜 울었는지는 딱히 잘 모르겠다.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눈물이 난다는데 그런 것이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다.

넘기 어려운 연아의 세계신기록 이후 연기를 펼친 아사다 마오도 그만하면 대단했다. 혹시라도 너무 큰 부담감에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몇번의 실수는 있었어도 훌륭하게 연기를 끝낸 걸 보면 연아도 그렇고 마오도 그렇고 스무살짜리들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림이나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나쁜 방법이 <예쁘다/안 예쁘다> <멋지다/별로다><마음에 든다/안 든다>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라는데, 무식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매번 예술품 앞에서 순간적으로 마음을 양분하며 감상을 이어간다. 마음에 안 들었던 작품이 나중에 다시 마음에 들어올 수도 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김연아에 대해서도 나는 언제부턴가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것처럼 경외감을 품게 된 것 같다. 예쁘고 멋져서 마음에 꼭 드는 예술품인데, 심지어 거기다 인간적이고 마음 씀씀이도 넓은 대인배이며 스무살에 걸맞은 천진난만함까지 갖추고 있으니 어쩌란 말이냐. 저절로 애정이 샘솟는 걸. ^^ 

다들 일상의 구차스러움을 잊을 만큼 기쁨과 감동을 안겨준 김연아에게 고마워하는 분위기던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울지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듯했으나, 오늘은 무한반복 재방송되는 연아 얼굴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만병통치 효과가 있는 김연아 백신이라도 맞은 기분이다. 고마워요, 연아씨. ㅋ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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