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에 해당되는 글 157건

  1. 2009.05.08 미술관 옆 동물원 18
  2. 2009.04.16 흑백의 매력 18
  3. 2009.03.27 담백하다/담박하다 23
  4. 2009.03.23 전시회 마지막날 10
  5. 2009.03.17 화가들의 천국 15
  6. 2009.03.15 새로운 커피 메뉴 발견 11
  7. 2009.03.06 근대 엿보기 10
  8. 2009.03.03 한풀이 16
  9. 2009.02.24 여행 열망 21
  10. 2009.01.06 2008년 정리 10
아무리 생각해도 저 영화 제목은 참 잘도 지었다.
과천 현대미술관과 동물원을 동시에 떠올리면 자연스레 우리도 영화 찍는 기분이 드니까.
가까운 미술관은 더러 기웃거려도 과천까지 가는 건 제법 큰 걸음이라 생각했는지, 영화 찍는 기분으로 미술관과 동물원을 한쾌에 둘러볼 작심을 한 건 돌이켜보니 무려 십수년만이었다. 소풍가는 아이처럼 기린도 보고 미술관 구경도 하자고 조르던 지인과의 약속을 한 달이나 질질 끌다 전격적으로 어제로 날을 잡으며, 더 늦어지면 너무 덥고 냄새나서 동물원 구경하기 어려울 거라는 위기감을 느꼈는데, 여름날씨를 방불케 하는 어제 기온은 이미 너무 더웠다. 좀 더 일찍 올 것을 그랬다고 후회하면서도 5월의 신록이 하도 아름다워 그늘로 짚어다니며 기뻐할 수 있었으니 후회는 없다.
그 옛날에도 상설전시 중이었던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그대로였는데, 그 옆 벽엔 새로이 강익중의 <삼라만상>이 빼곡하게 뒤덮여 있었다. 25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손바닥 반만한 나무판자 그림과 조형물들은 아이들 장난 같은 모양이 하도 많아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겠다 싶었다. 20년 넘게 6만 5천개나 된다는 나무조각을 하나하나 작업했을 화가의 끈기가 놀랍다. 나 같으면 짜증내며 중간에 내팽개쳐버렸을 텐데... ^^

사실 우린 이 중앙 전시실보다는 층층마다 마련된 우리나라 근대미술 작품들을 다시 보려고 했던 것인데, 교체전시를 하는지 기대했던 그림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지난번 덕수궁에서 본 근대미술 걸작전 그림들을 몇 점 찾아내곤 뿌듯해 했으나, 나로선 영 이해도 못하겠고 훌륭한 줄도 모르겠는 현대 추상미술품들이 대부분이라 새삼 내가 왜 과천 미술관엘 십수년만에 왔는지 실감되었다. 미학적인 심미안 따위를 갖추지 못한 내 눈엔 추상적인 현대 미술품들이 죄다 젠체하는 화가들의 자기자랑일뿐 당최 '아름다운' 예술품이란 느낌이 안드니 어쩌겠나. 심지어 백남준 선생의 그 유명한 비디오 아트 작품도 난 그리 뛰어난 줄 정말 모르겠다. ㅡ.ㅡ;

이렇게 찍으니 예뻐보이는 것도 같고...

내눈엔 명멸하는 브라운관의 화면이 이루는 아름다움보다 작품에 뽀얗게 앉은 먼지가 더 눈에 들어오고 브라운관 아래 찍힌 제조업체 로고가 더 눈에 들어오는 걸 어쩌라고!

백남준과 강익중의 두 작품을 같이 전시해놓은 기획을 <멀티플 다이얼로그>라고 이름 붙였던데, 아쉽게도 나는 그 안에서 다양한 언어교류의 느낌을 받는 대신 새로 지은 건물이나 갓 도배한 집에서 나는 매캐한 본드 냄새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ㅎ
기획전시로 인도현대미술전을 하고 있던데, 역시나 현대미술품이라니 굳이 2천원씩이나 내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2, 3층 전시실 난간에서 내려다 보이는 코끼리 조각상과 금빛 오토바이 구경만으로도 우린 흡족했다. 

주린 배를 약소한 과일로 달래고 얼른 동물원으로 이동한 뒤에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먹고나서 돌아본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그새 참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못보던 동물도 많고(특히 아프리카 동물들!) 이름도 외기 어려운 신기한 녀석들을 건성으로 보며 감탄을 했는데 뭐니뭐니해도 나는 동물원에서 기린구경이 제일 신나고 즐겁다. 길쭉길쭉 늘씬하고 우아하게 돌아다니는 걸음걸이도 그렇고, 마스카라를 칠한 듯 짙고 기다란 속눈썹도 그렇고, 아래턱을 좌우로 요란하게 움직이며 풀잎을 씹어대는 모양새도 그렇고... 기린사 앞에 전망대도 높이 올려 바로 코앞에서 먹이를 먹는 녀석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게 해놓아 더더욱 탄성을 내지르며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생김새부터 정말 볼수록 신기하지 않은가! 게다가 안내판에 적힌 글을 보니 우리 앞에서도 끊임없이 풀잎을 씹어대던 기린은 원래 하루 12시간 동안 내리 먹이를 먹는 반면, 잠은 틈틈이 짬짬이 눈을 감으면서 고작 하루 20분밖에 자지 않는단다! 켁...

기린 무늬의 아름다움을 새삼 실감

기린 뿔 두갠줄 알았는데 세개더라

하마의 저 똥똥하고 귀여운 자태!


다리 아프고 덥다는 핑계로 사자랑 하마 코끼리, 바다사자 빼고 다른 동물들은 셔틀버스 타고 차안에서만 대충 훑어본 터라 찍은 사진도 별로 없다. 사자 같은 녀석들은 어차피 가까이 찍을 수도 없어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평일인데도 미술관, 동물원 모두 사람들이 꽤 많아 조금 놀랐다. 주말엔 얼마나 더 바글거릴까. 벌써부터 퀴퀴한 동물냄새가 진동을 하는 동물원은 앞으로 또 십년쯤 있어야 가볼 마음이 생길 듯하지만, 숲과 나무가 싱그러웠던 미술관옆 산책로는 날이 흐린 날, 아니면 비가 오는 날 또 가보고 싶은 욕심을 품고 돌아왔다. 평일 퇴근시간과 맞물리는 바람에 돌아오는 길은 죽도록 막히는 괴로운 경험이었지만, 이 하루의 행복한 나들이로 부디 일주일은 나의 심술이 잠잠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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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매력

놀잇감 2009. 4. 16. 17:35

내가 사진 보러 가는 걸 그림 보러 가는 것만큼 열광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사진에 대한 개인적인 무식과 더불어 도구의 보편성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유명 사진작가의 작품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순간 포착의 예술이지만 여러장 <뽑을> 수도 있어 아무래도 그림보다는 희소성이 떨어지고(판화도 그러하지만;;), 사진의 질은 하늘과 땅 차이라 해도 예나 지금이나 카메라를 눌러 결과물을 갖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란 편견이 은근히 깔려있는 게 아닐까.
물론 앙리-카르티에 브레송, 윌리 호니스(왜 '로니스'로 표기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궁금!), 요번에 본 요섭 카쉬의 사진들을 보면 확실히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오게 만드는 <아우라> 같은 것을 뿜는다. 그런데 특히 나에게 그런 작품들이 강한 인상을 남긴 이유는 워낙 거장들의 사진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죄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흑백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컬러 사진 전시회를 보러 갔던 기억도 더러 있지만, 기억에 남은 컬러 사진은 작년 제주도에 갔을 때 들렀던 두모악 갤러리에서 본 김영갑의 사진들뿐인 것 같다.
하기야 흑백 사진들만 있으리라 기대하고 일부러 흰색과 회색, 검정 색깔로 골라입고 나섰는데(간만의 외출이라 그냥 혼자만의 놀이 같은 치기가 들었다) 이번 카쉬 전에는 뜻밖에 선명한 빨간색이 인상적인 소피아 로렌의 사진도 한장 만나기는 했다. 그래도 여전히 카쉬의 사진들은 강렬한 흑백이 제격이란 느낌이다. 그리고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나 여운 같은 것이 느껴지는 흑백이라서 더욱 보는 이의 시선을 오래 잡아끄는 것이 아닌지. 전시장 끄트머리에 함께 전시되었던 한국 인물사진 5인전의 사진들을 봐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제는 돌아가신 장욱진, 오상순, 백남준 선생 같은 인물사진도 그렇고 현존 인물들의 사진도 그렇고 컬러였다면 누군가의 앨범 어디서나 흔하게 보는 느낌으로 남았을 텐데 흑백이라 한번 더 빛과 그림자의 오묘한 조화를 들여다보게 되는 듯했다.

그건 그렇고.
오드리 헵번이야 워낙 아름다운 배우지만, 카쉬는 모든 인물을 예쁘고 잘생기게 찍는 작가인가 뭔가, 유치한 의문이 들 정도로 모든 인물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낸 듯한 사진들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나는 요즘 사진찍히기를 두려워하는 내 마음을 바꿔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드리 헵번과 케네디 부인 시절의 재클린, 카쉬의 아내들, 공주 시절의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젊은 모델의 사진들도 좋았지만, 나는 각자 세월의 무게를 얼굴에 담고 있는 중년 이후나 노년의 인물사진들이 어쩐지 가슴에 와 닿았다. 물론 측근들의 카메라에 담길 내 모습이 카쉬의 모델들처럼 아름답게만 포착될 리 없고, 더욱이 흑백도 아니라 적나라하게 온갖 허물과 세월의 흔적이 담기겠지만 그래도 그 모습이 내가 살아가는 과정의 단면임을 인정하는 편이 현명하지 않겠나 싶었던 거다. 몇년 새 팔자주름이 깊어지고 처진 눈꼬리는 더욱 아래를 향하고 볼살도 힘없이 내려앉았음을 눈치채는 것은 확실히 본인 뿐인데, 어차피 더 젊어질 수도 없는 마당에 사진 찍히기를 두려워하는 건 비겁한 외면이다.
그렇다고 당장 카메라 앞에선 입과 뺨에 경련이 일어나는 어색함이 가실 리 없겠지만, 노년을 살고 있을 무렵 나의 중년을 추억할 흔적들을 애써 거부하진 말아야겠다는 얘기다.

예술의 전당이 워낙 멀다는 핑계로 아직 클림트전도 안보고 있었던 터라 누가 꼬드기지 않았다면 굳이 보러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 텐데 그래도 보길 잘했다 싶은 전시였다. 입장료도 비교적 저렴한 8천원. 다 둘러보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으니 적절한 가격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도슨트 설명도 있던데 짜증스러운 목소리의 도슨트 아저씨는 감상에 참 부적절한 느낌이라, 피해다녀야 했다. 사진마다 인물과 에피소드 설명이 꽤 자세히 적혀 있어서 굳이 도슨트 필요 없겠던데 때로는 과잉친절이 공해임을 새삼 실감. 전시는 5월 8일까지 한가람 미술관 3층에서 한다. 엽서도 팔던데 한장에 무려 2천원. 인쇄 질에 비해 비싸다고 아무도 사지 않았다. 차라리 저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이 담긴 포스터를 팔지 그러냐고 벨로와 파피와 함께 투덜거렸다. 브레송 사진전때 <얻어온> 포스터는 4년째 내 방문을 장식하고 있건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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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낙서장에 가까운 블로그지만 담백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문득 내가 알고 있는 뜻과 속속들이 맞는지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보니, 또 하나 배우게 됐다.
<담백하다>는 원래 담박(淡泊)하다에서 나온 거란다.
1.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2. 아무 맛이 없고 싱겁다.
3.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사전에 <담백한 글>이라는 용례는 없지만, 담백함의 반대말은 느끼함이라고 내 맘대로 생각하며 글에도 비유적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련다.

요 며칠 또 괜히 머리가 시끄러워서 잠도 잘 안오는 밤과 새벽 머리맡에 책을 쌓아두고 정서불안 환자처럼 이 책 저 책 들춰보다가 느낀 게 있다. 나도 접속사로 연결된 복잡하고 긴 문장을 습관적으로 많이 쓰는 편인데, 확실히 간결한 문장이 더 설득력있고 마음에 오래 남는다는 사실. 문장이 긴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유려한 글쓰기를 하는 이들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호흡이 길어지면 시선과 이해력이 흐트러져 다시 되돌아가야할 때가 많다. 특히 요즘의 나처럼 정신 시끄러울 때 하는 독서의 경우는 더더욱. 거기다 젠체 하는 거들먹거림까지 버무려진 느끼한 글을 만나면 아예 참을 수가 없다.
어디선가 소개글을 보고 한번 읽어보고는 싶은데 내 돈주고 사기는 아까운 책이라 마침 그 출판사에 다니는 지인에게 한권 얻어놓은 책이 있었다. 이참에 한번 읽어볼까 싶어 몇달만에 드디어 들춰보려니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무거운 주제도 아니고, 인간의 <쇼핑> 욕망에 대한 잡다한 단상을 적은 것임에도 그렇더라. 조사와 접속사 빼고는 죄다 외래어인 패션잡지를 멀미나서 잘 못 읽는 나의 개인취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유없이 거슬리는 꼭지들을 건너뛰어 뒷장으로 넘어가도 문장들이 딴죽을 걸듯 자꾸 턱턱 걸렸다. 어찌나 멋을 부리셨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패션전문가의 손을 빌려 꾸미고 명품으로 휘감았는데, 진품인지 모조인지 구분하기는커녕 명품 브랜드에 무지한 나는 그게  명품인줄도 모르는 격이랄까. 아니지, 내눈엔 진짜도 죄다 가짜로 보인다는 게 더 맞겠다.
아무튼 결국 난 그 책 읽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다 읽진 못했어도 나도 쓸데없이 기교와 멋부리는 문장은 쓰지 말아야한다는 교훈을 주었으니 그마저도 성공적인 독서라고 할 수 있으려나. ㅎ

상대적으로 수전 손택, 서경식의 글과 생각들은 어찌나 명징(나는 이 단어가 참 좋다!)한지 하나같이 밑줄 그어 두고 싶은 주옥같은 표현이다. 우리말로 옮긴이들의 공도 당연히 있겠지만 저들은 삶부터 겉치레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원래 글도 담백하고 간결했을 거라 믿는다. 
한 두어달 일은 관두고 장서욕심에 사두고 밀린 책들이나 죄다 읽으면 좋겠건만 마음만 바빠서 독서도 초조한 메뚜기처럼 자꾸 이 책 저 책 옮겨다니게 되니 어쩌면 좋으냐. 으휴. 하기야 그런 욕심을 품으면 담백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건가? 이래저래 딜레마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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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마지막날

놀잇감 2009. 3. 23. 18:00

늘 궁금했다. 미술관 전시회의 마지막 날엔 평소보다 관람객이 많을까, 적을까?
대부분 마지막날은 주말이므로 당연히 사람이 많을 것도 같지만, 또 대대적인 홍보가 뒷받침되지 않은 전시라면 오히려 한적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마지막 날이라고 개인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처럼 폐관시간 되기도 전에 오후쯤 그림을 회수해 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단 한번의 경험으로 함부로 단정지을 순 없겠으나, 어쨌든 어제 나는 미술관 전시회의 마지막날이 꽤나 번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는 최근에 내가 보고 감동했던 두 개의 전시회, <한국근대미술걸작전>과 <퐁피두센터 특별전>이 공교롭게 나란히 끝나는 날이었다. 서점에서 찾아볼 책도 있고 하여 겸사겸사 시내 외출을 준비하며 나는 며칠째 이어온 고민에 종지부를 찍었다. 두 전시 모두 한번 더 보고싶은 욕심이 들기는 했지만, 퐁피두센터 그림들이야 언제고 파리에 가서 볼 수 있을지 몰라도(재수없게 하필 그 시기에 다른 나라에 빌려주지만 않는다면;;) 유족소장품들이며 개인소장품이 많은 한국 근대미술 걸작들을 이렇게 대거 볼 수 있는 기회는 내 생전 다시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설 땐 그림을 먼저 보고 나서 서점에 들러 책과 자료를 찾아보겠다는 계획이었으나, 버스를 타고 시청앞을 지나며 보니 덕수궁 대한문 앞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침 수문장 교대식 시간이라 구경꾼들이 많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뜻밖이었던 건 대한문 앞부터 줄지어 선 사람들이 담장을 따라 거의 영국대사관 입구까지 늘어서 있다는 점이었다. 궁궐 입장객을 제한하기 때문인지 단순히 매표소에서 표를 사기 위한 줄인지 확인할 순 없어도 내가 보기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몇명씩 문안으로 들어서는 듯했다. 나는 계획을 바꾸어 먼저 서점으로 가 일부러 늑장을 부리며 볼일을 죄다 본 뒤 6시가 다 돼서야 덕수궁으로 돌아왔고, 기다림 없이 천원짜리 표를 사 대한문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지난번엔 비가 내렸고 카메라를 가져갈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똑딱이일지언정 부러 마음을 먹고 디카를 들고갔던 터라 여기저기 몇장 눌러대곤 석조전부터 먼저 들렀다. 또 언제 석조전에 들어가볼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조바심이 첫번째 이유이기도 했지만, 현대미술관 측에서야 그곳을 동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상일지 몰라도 본래는 고종이 신식 건물로 세운 석조전이 먼저이고 미술관은 나중에 들어선 것이니 미술관 서관 동관으로 칭하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서양의 건축양식 대로 서양인이 설계한 건물이라 외국엘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이지만, 우리 궁궐 마당에 자리잡은 석조전은 느낌이 또 새롭고 주변 건물과 안어울리는 것 같으면서 은근히 어울려 멋진 자태를 자랑한다. 건물한테도 그런 말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잘 생겼다>는 느낌을 받는 건 나뿐이련가.

나중에 국립현대미술관엘 가면 또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언제 봐도 눈이 즐거운 장욱진의 그림들을 유심히 감상하고, 다시 못볼 확률이 높은 개인소장품들을 남달리 찾아본 뒤 나는 미술관 본관으로 향했다.
뜻밖의 놀라움은 계속 이어졌다. 보통은 맨 마지막에 아트숍에 들러 도록이나 엽서나 기념품을 사는데, 어젠 이상스레 아트숍부터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미술관 폐관시간보다 아트숍 문닫는 시간이 더 빠르면 어쩌나 걱정이 들면서.
그러고는 드디어 첫 전시실에 들어섰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지난번에 전시를 함께 본 후배였다. J야! 반갑게 부르니, 마지막 날이라 어떻게든 그림들을 한번 더 보려고 서둘러 동생과 함께 달려나왔단다. 어떻게 그런 우연이...
나야 혼자 갔지만 후배는 일행이 있으니 감상 잘하라며 금세 헤어졌지만, 우린 도슨트의 설명이 시작되자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다시 그앞에서 다시 합류했다. 주말엔 아예 도슨트 설명이 없는 서울 시립미술관과 달리, 역시 국립이 다른 건지 덕수궁 미술관은 주말에도 전시설명이 있었다! 그걸 모르긴 했지만 알았대도 지난번에 이미 도슨트의 설명을 들었기에 이번엔 홀로 그림만 감상할 생각이었는데, 도슨트가 처음 설명을 시작하는 그림이 우리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제 전시의 마지막 설명을 맡은 도슨트는 지난번 우리가 구경왔을 때와 같은 사람이었다. 덕수궁 미술관을 자주 가면 다른 전시에서 과거에 만난 도슨트를 보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특히 그 도슨트는 지난번 비오는 날 전시 설명때도 비가 와서 석조전엘 가지 못했는데도 정해진 1시간을 넘기고도 해줄 말이 계속 남아 마이크를 끄고 살살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들려주어, 역사상 최고의 도슨트라는 생각에 이름이라도 알아두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중에 결국 우리는 팬클럽이라도 결성해야겠다면서 <이애선 도슨트>라는 그분의 이름을 동료들에게 알아냈고, 이왕이면 과천이나 덕수궁 미술관에서 또 그 분의 설명으로 전시를 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
전시를 자주 다녀보면 매 설명 때마다 녹음기를 틀듯 똑같은 그림 설명을 반복하는 도슨트가 있는가 하면, 그날의 느낌에 따라서인지 아니면 반복해서 찾아오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인지 그때그때 다른 설명을 하는 도슨트가 있다. 같은 전시를 두세번씩 다니다 보면 그런 것도 알 수가 있는데, 좋은 도슨트를 만나는 것도 그저 운이려니 여기곤 했지만, 역사적인 전시 마지막날 그곳도 마지막 전시설명에 그런 놀라운 도슨트를 또 만나다니. 복터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원래도 열정적인 설명을 하는 분이었지만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진 때문인지, 그 도슨트는 마치 학교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기 전에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훌륭한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이었다. 학교가 진정한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와 행정 기관으로 전락해버린 요즘엔 도저히 만날 수 없으며, 예전에도 지극히 드물었던  존경스러운 선생님이 떠올랐달까.

다시는 못볼지 모른다는 아쉬움을 잔뜩 담아 또 다시 미술관을 둘러보며 새삼 여러 근대 화가들의 인생과 배경을 들으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교육을 담당하러 온 일본인 미술 교사들은 놀랍게도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유명 서양화가의 사사를 직접 받았거나 대학에서 그런 스승들의 화풍을 배우고 일본내 수상경력도 화려한 진짜 화가들이었다. 그런 화가들이 일개 식민지 보통학교에 미술선생으로 부임하여 요즘 따지면 고등학생에 해당하는 아이들에게 너희도 화가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쳐 정말로 화가를 만들어내다니... +_+
물론 천재적인 재능을 갖춘 사람들이기에 능력이 발굴되긴 했겠지만, 요즘으로 치면 중학생이 되도록 붓 잡는 법도 몰랐던 조선 아이들에게 일본인 교사가 정규 미술 수업 시간에 그림을 가르쳐 3, 4년 안에 조선미술전람회에 뽑히는 화가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워낙 일본인들 가운데 미를 추구하여 보존하고 감탄하고 존경하는 성품을 갖춘 이들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그래서 수많은 우리나라 고미술품이 일본에 팔려갔겠지만;;) 어쨌거나 식민지인 식민국민의 구분을 떠나 스승과 제자로 예술가로 관계를 맺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로선 계속 신기하고 놀랍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친일파로 손가락질 받다가, 해방후엔 좌파였다가 결국 월북하기도 하여 좀체로 이해하기 힘든 정치행적을 보이기도 한 근대화가들의 존재까지 알게 된 이번 전시는 그야말로 나에겐 소중한 경험이다. 고흐, 마티스, 샤갈 타령은 수시로 하면서 정작 우리나라 화가들은 그저 뭉뚱그려 생각했던 나의 태도도 반성할 겸, 근대미술사 책도 좀 읽어봐야겠고 <바람의 화원>으로 살짝 불붙었다 식어버린 옛날 그림들에 대한 관심도 지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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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천국

놀잇감 2009. 3. 17. 16:00

역시나 오래 별렀던 퐁피두센터 특별전에 다녀온지 일주일이 다 됐나보다. 감동은 벌써 많이 식었지만 늦게라도 적어두지 않으면 연말에 2009 베스트 정리할 때 멍하니 까먹을지도 몰라서 조바심이 났다.
베스트 3에 드는 전시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
<퐁피두센터 특별전-화가들의 천국>은 기대를 크게 했는데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드문 전시였다. 호앙 미로의 대작들은 비행기에 실을 수가 없을 만큼 크기 때문에 캔버스를 분해해서 다시 조립하는 예행연습을 파리에서 해본 뒤에 옮겨왔다는 둥, 이미 뉴스에서도 익히 선전을 했기 때문에 혹시나 과하게 기대하며 상상력을 부풀렸다가 펑 바람터진 풍선처럼 실망할까봐 걱정스러웠는데, 전혀 기우였다는 얘기다. 평일 오후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아서 그림을 좀 오래 감상하려다 보면 간혹 누군가와 부딪치거나 발을 밟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아쉽기는 했다. <꽃보다 남자>에서 윤지후가 시립미술관 휴관일에 금잔디만 홀로 데려가서 구경시켜주던데, 젠장 나도 그러구 싶단 말이닷~!! 언제부턴가 나 같은 문화허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아져 좀 유명하다 싶은 전시가 열리는 미술관은 언제나 도떼기 시장이다. 으휴...

과거 경험상 시립미술관의 도슨트는 덕수궁 미술관 도슨트들보다 워낙 성의 없이 설명을 하는 데다(늘 비싼 대규모 전시를 기획하기 때문에 관람객이 많아서 그러는 것일까?)  횟수도 몇번 없어 시간도 맞질 않아서 이번엔 거금 3천원을 들여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처음엔 매표소에 사람들이 없길래 도록을 사서 읽어보며 다닐 작정을 했는데 전시장에 들어가보니 그럴 여유는 없어 보였기 때문.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도 오디오 가이드 내용은 너무 피상적인 이야기만 담겨 있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이어폰이 귀를 아프게 하는 끼우기 형태가 아니라 다행이었고 미리 그림 공부를 많이 안하고 갔으니 없는 것보다는 나았음.

미로, 마티스, 피카소, 샤갈, 브라크, 보나르, 칸딘스키, 파울 클레... 이런 것이야 말로 <거장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가 싶은 멋진 작품들을 연이어 만날 수 있었으니 전시실을 옮길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했는데, 더욱 기뻤던 건 깜짝 선물처럼 장 뒤뷔페의 그림도 여러 작품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나 뉴욕에 가지 않는 한 다시는 뒤뷔페 그림을 보지 못할 거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가, 동행이었던 정민공주랑 나랑 거의 폴짝폴짝 뛰며 신나했다.

장 뒤뷔페 [행복한 시골풍경]

물론 이 사진의 색감은 원작보다 훨씬 흐려 속상하지만 동심의 세계를 담아낸 듯한 뒤비페의 그림들이 연상되는  시기의 작품. 미로의 대작 옆에 걸려 있던 검은 바탕의 암호같은 선들이 어지러이 그려져 있는 농-리유 연작도 인상적이었지만, 난 역시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좋다!

정말로 천국이 있는지 어쩐지, 아니 그런 건 없다고 거의 믿고 있지만, 정말로 천국이 있고 내가 거거 갈 수 있다면 나는 만날 멋진 화가들의 그림이나 휘휘 보러다니는 걸로도 충분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안 아프게 이왕이면 훨훨 날아 다니면서 ^^

앞에 서면 저도 모르게 흠칫 숨을 멈추게 되는 거장들의 대작이 많았고, 올리브 잎들을 모아 향기로 방을 꾸며놓은 페노네의 <그늘을 들이마시다> 같은 작품은 참으로 기발하고 놀랍고 싱그러워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1999-2000년에 만든 작품이라는데 지금까지도 그윽한 올리브 잎 향기가 처음엔 얼마나 더 강렬하고 생명력 넘쳤을지!

좋은 작품들이 하도 많아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동선과 상관없이 2, 3층을 여러번 오가며 특히 좋았던 작품을 보고 또 보고, 마음에 담아두려고 꽤나 노력을 하며 미술관을 나서기 전에 거의 언제나 습관적으로 하는 순위 매기기를 했다. 어느 그림이 제일 좋았는지, 누가 딱 하나만 가지라고 하면 어느 그림을 갖겠는지... ^^

사실 이번엔 좋아하는 화가들과 작품들이 많아서 선뜻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으나 추리고 보니 최종으로 남은 후보작이 둘 다 마티스였다.  

<폴리네시아-바다>와 연작이었던 이 <하늘>은 종이를 오려 붙인 단순한 콜라주 작품이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어찌나 눈이 시원해지던지...
아 참..
<꽃보다 남자>를 꾸준히 본 사람이면서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 카피가(사이즈가 훨씬 작음) 드라마 초반부에서 F4의 휴게실 벽에 걸려 있었음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
나는 전시회에 빨리 못가보는 대신 퐁피두전시회 공식 홈페이지에 하도 들락거려서 알고 있었으므로, 언뜻 뒷배경에 이 그림이 스칠 때마다 속으로 어서 그림보러 가봐야 할 텐데, 라고 부르짖곤 했다. ㅋ (구준표네 집엔 보나르의 <미모사가 피어 있는 아틀리에>와 마티스의 <목련이 있는 정물>, 페르낭 레제의 <여가> 등도  걸려있다! ㅎㅎ)

퍼온 사진으로는 역시나 원작의 생생한 감동과 느낌을 전하기에 역부족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굳이 사진을 퍼다 붙여넣는 것은 순전히 기억력 나쁜 나를 위한 배려다. 도록이 있기는 하지만, 매일 들락거리는 블로그만큼 접근성과 유용성이 뛰어난 건 아니니까...

암튼 <붉은색 실내>는 눈부신 빨간색이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만 같은 느낌...

샤갈의 <무지개>도 좋기는 했지만 나의 새공포증 때문에 그의 그림에 빠지지 않는 닭머리가 무서워서 집에 걸어두면 밤에 으스스할 것 같다. ;-p

누가 정말로 주겠다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미술관 카페에 앉아서 정말 꽤나 진지하게 어느 그림을 가질 것인가 오래 고민을 하다가 나중엔 속으로 킬킬 웃었다. 누가 준댔냐고!!
그래도... 어쨌거나... 나의 최종적인 선택은 마티스의 <붉은색 실내>.
만약에 집이 갤러리만큼 공간 많고 벽이 넓다면 마티스의 <폴리네시아-하늘>을 갖겠지만, 지금 당장 그림을 하나 집어들고 나가라고 한다면 당장 걸어둘 곳이 마땅칠 않으니까... 라는 것이 나의 변명이었음.
남들이 비웃거나 말거나, 미술관에서 좋은 그림을 보다가 만일 작품을 하나만 가질 수 있으면 어떤 걸 가져갈까 고민하는 과정은 가슴아픈 갈망이면서 동시에 대단한 행복이다.

아참..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불만은, 한장에 무려 천원씩이나 하는 공식 엽서들의 인쇄 품질이 바닥이라는 것!
차라리 하나은행에서 입장할 때 공짜로 주는 엽서의 인쇄상태가 더 나은 느낌이니 오죽할까.
원래도 미술작품의 색감을 제대로 살려내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이렇게 형편없는 색감의 엽서들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마티스의 붉은색을 완전 벽돌색으로 해놓질 않나, 보나르의 화사한 봄빛깔들을 칙칙한 갈색으로 해놓질 않나... 전시 관람 마치고 아트숍에서 엽서 몇장을 사는 것이 큰 낙이었던 나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한장도 살 수가 없었다. ㅠ.ㅠ 그나마 5천원짜리 소도록을 3천원에 할인판매하고 있어서 구입하고는 애써 위로를 했지만... 앞으론 부디 엽서 제작업체 선정에도 신경을 좀 써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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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왜 난 이제야 알았을까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제 보니 웬만한 카페엔 이 메뉴가 다 있더군.
하지만 난 얼마전 이태원에 있는 소르티노스에 갔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먹어보곤 반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만 있으면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다는 말에 득달같이 사다가 시도했는데...
정말 그렇더라!
이름하여 에스프레소 아포가토.

퍼온 사진.. 출처 까먹음

그냥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푹 퍼담고 에스프레소 샷을 끼얹으면 그뿐이다.
소르티노스에선 캐러멜 시럽을 좀 얹어주었고, 다른 곳에서도 초콜릿 가루나 시럽을 얹어 주기도 하던데 이시리고(ㅠ.ㅠ) 단것이 별로라 아이스크림을 즐기지 않는 나에겐 그런 것까지 필요도 없다.
그냥 아이스크림 약간 퍼담고 에스프레소만 끼얹어 먹으면 그저 황홀.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뜨겁고 쌉쌀한 에스프레소의 만남이 생각밖으로 잘 어울린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특별히 맛있을 필요도 없는 것 같다.
하겐다즈나 나뚜루 아이스크림으로 해도, 그 절반 가격에 마트에서 산 이름모를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도 해도 최종의 맛은 큰 차이가 없더라. 그저 에스프레소만 잘 뽑으면 된다는 얘기다. 
이 밤중에 일하다 말고 밤참으로 만들어먹고는 몹시 흐뭇하다. 의무적으로 읽어야하는 책은 좀체로 진도가 나가질 않아서 또 딴짓... 카페인과 칼로리 섭취도 했으니 이제 일 좀 하려나 -_-;; 남들 다 놀고 쉬는 주말에 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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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엿보기

놀잇감 2009. 3. 6. 15:52

덕수궁 입장료 단돈 천원으로 한국근대미술 걸작전을 볼 수 있다는 낭보를 접한지 한달만이었나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제 오후 정동으로 향했다. 궂은 날씨가 얄밉기도 했지만, 동시에 비가 오니 미술관이 한적하겠구나 싶어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좀 춥긴했어도 비 내리는 날 우산 쓰고 고궁 뜨락을 거니는 맛 또한 감격스러웠다. 드물게 석조전 동관까지 개방해 전시를 할 만큼 작품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음에도, 전시는 입이 헤 벌어질 정도로 대규모라 운수라곤 통 없는 내가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느낌이었다. 


미술관 서관과 동관 입구에서 각각 나눠주는 무료 티켓도 어찌나 앙증맞고 예쁘던지 책갈피로 쓰거나 간직해두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소중히 가져와 스캔했다.
표에 인쇄된 건 아시다시피 박수근과 천경자의 그림.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를 눈앞에 마주한 순간 나도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혹 상고머리를 하고 저렇게 아이를 들쳐업은 울 엄마의 사진을 언젠가 본적이 있었던가.

이번에 전시된 2백3십 몇점들의 작품은 겨우 삼분의 일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고 나머지는 다 빌려온 것들이란다. 클림트의 작품을 대거 만나보는 건 금세기에 또 없을 거라는 광고에 힘입어 예전 미술관이 매일 문전성시라던데, 우리나라 근대화가들을 이렇게 대거 모아놓은 전시 또한 금세기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바빴다. 티켓엔 본인이 몇번째 관객인지 알아볼 수 있게 숫자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본관은 12만명이 넘은 반면 동관은 인원이 그 절반밖에 안되는 것으로 보아 다들 시간이 빠듯했나보다 싶었다. 하기야 도슨트의 설명 1시간을 포함하여 우리도 양쪽 미술관을 관람하는데 꼬박 3시간 이상이 걸렸는데, 제대로 감상하려면 한번 더 가야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이인성, 김기창, 김환기, 장욱진, 구본웅, 박래현, 천경자... 이름을 대기에도 벅찬 유명화가들이 무려 105명이나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오죽하랴!
 

이쾌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학교 다니던 시절 미술교과서에서 익히 보았던 작품들도 알현 가능했고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보았던 작품들도 더러 있어서 더욱 반가웠는데, 월북한 화가라 최근에야 비로소 해금되었다는 이쾌대 화백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비롯한 낯선 작품들은 역시나 눈길을 끌었다. 자유연애의 열풍이 불었다는 근대의 그 시기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다는 미래의 부인 유갑봉 여사에게 보낸 절절한 연서도 함께 공개되어 있었으니, 비오는 봄날의 정서와 어찌나 잘 어우러지던지.
해방전후의 다양한 그림들을 보면서 당시를 상상하려니 얼마 전 읽은 책 <서울은 깊다>와 많은 부분들이 겹쳐지는 듯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변모하는 사람들의 모습, 지난한 역사 속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들, 풍요와 빈곤이 공존하는 그 시절 이 나라의 면면들이 <근대>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모습을 엿보는 기분은 퍽 묘했다. 너무 가난해서 처자식을 일본으로 보낸 뒤 담뱃갑 은박지 뒤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이 있는가 하면, 당시 집 한채 값도 넘는 800원이라는 외상값을 갚으려고 유학비를 타 외상값을 청산하고 유유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이종우의 그림도 있었다. 내노라하는 당대 거부의 자식이었기에 서양 화구와 서양화를 접할 수 있었을 수많은 화가들의 친일여부를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 같았다.  정치적인 향방과 상관없이 예술은 예술이니까. 그래도 아는 게 병이라고, 조각을 그림보다 덜 좋아하긴 하지만 친일 문제를 거론할 때 제일 먼저 손꼽히는 김경승의 조각품을 보는 시각은 확실히 심드렁해서 휙 지나치게 되더군. 

인상적인 그림들이 하도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든데, 그래도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있기 마련이다. 동관 전시실에 아담한 화실을 옮겨다 재현해 놓아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던 유쾌하고 귀여운 느낌의 장욱진 선생의 그림들도 좋았고, 박수근, 이중섭의 그림들은 말하면 잔소리고, 이응노 화백의 그림을 볼 수 있어 기뻤다. 특히 <취야>는 비도 오겠다 술한잔 해야할 것 같은 흥겨운 느낌을 풀풀 풍겨 그림을 보다 말고 마구 목이 말라졌다. ^^

이응노 [취야]

장욱진 [수하樹下]



그리고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했던 그림은 박래현의 <노점A>.
중3때였던가 고1때였던가, 학교 미술시간에 판화를 할 때, 나는 하필 미술책에 있던 이 그림을 판화로 시도하겠다고 결심했었다. 박래현이 김기창화백의 부인이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큐비즘을 시도하여 이 작품으로 국전 대상을 탔다는 뒷이야기는 알지도 못할 때였고, 그냥 시장 좌판의 여인들을 단색의 판화로 모사해도 멋있을 것 같았다. 미술선생님은 굳이 어려운 걸 파겠다고 애쓰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찼지만 완성된 작품은 꽤나 뿌듯하게 나왔고, 특히 리어카에 앉아 팔을 괴고 있는 아줌마의 표정과 머리에 인 광주리에 담긴 생선이 원작보다 생동감 있다는 과장 섞인 칭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미술책 속 사진과 소싯적 내 판화의 밑그림으로만 알던 이 그림은 실제로 보니 꽤나 크기가 큰 대작이었는데, 건너편 벽에 걸린 김기창 화백의 예쁜 여인들 그림과 함께 번갈아 보며 기분이 묘했다.

전시는 3월 22일까지.
평일 전시는 6시까지, 금토일엔 8시반까지 연장 운영된다. 얼마 남진 않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고, 나 역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제 무료 관람에다 전시작품이 많아 복권 당첨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 건 마지막에 뜻밖의 근대 엿보기 경험을 하나 더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번 있는 것도 아니고 딱 하루라는데, 하필 우리가 간 날 무성영화를 상영하다니. 여러모로 공교로웠다.
제목도 익히 들어본 바 있었던 <검사와 여선생>.
현존하는 마지막 변사 신출 할아버지의 설명으로  1948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를 난생처음 덕수궁 미술관 로비에 앉아 보고 있으려니, 정말로 난생처음 영화를 접했을지도 모를 옛날 사람들의 설렘과 내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든이 넘으셨다는 신출 할아버지는 결코 손수건 없이 볼 수 없는 영화라는 귀띔으로 영화 설명을 시작했지만, 음향과 발음의 문제로 삼분의 일은 못알아들으면서 우린 계속 웃음을 터뜨렸다. 조악한 초기 영화 기술도 그렇거니와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표정은 정말로 요즘도 코미디에서 모사하는 상투적인 표현의 전형이었는데 그게 어찌나 귀엽던지!
혹시나 관객이 졸까봐 그러시는 것인지 중간중간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이름을 불러대시는 변사 할아버지의 말소리도 재미났고, 당시에 자막의 맞춤법까지 손볼 여유가 없었던 때문인지 아니면 그땐 그렇게 맞춤법을 소리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썼던 것인지 가끔씩 출몰하는 자막의 <이튼ㅅ날> <며칠을 굴멋니?> <엇째서 그러니> <내>(네) 같은 글씨들을 볼 때마다 관객들은 와글와글 웃어댔다. 

잠깐이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느낌인데, 들고 돌아온 팸플릿과 티켓을 보면 확실히 현실이라 오늘까지도 느낌이 더욱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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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풀이

투덜일기 2009. 3. 3. 14:11

설날 이후론 계속 마음이 바빴다. 막다른 벼랑끝에 몰리듯 원고독촉을 받는 상황인데도 내 정신상태는 초절정마감모드로의 전환을 계속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 잘 지키는 번역가의 평판은 이미 3년전부터 흐지부지 무너져버렸으니 배째라는 고약한 심보가 더 발동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양심은 남아 있어서 지인들이 만남을 청하면 <어차피 밥은 먹어야하니까...>라는 핑계로 아무 때나 짬을 내 외출을 시도하는 일을 마구 저지를 순 없었다. 이런저런 집안 행사로 이미 미루고 또 미뤄줬던 나의 친교생활은 결국 원고마감과 함께 한풀이를 하듯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개강, 개학이 맞물려 있으니 그 전에 만남과 놀이를 <해치워야>한다는 의무감도 불타올랐다. 신학기의 시작인 3월엔 아무래도 다들 학업이든 작업이든 초심을 잡아야한다는 새해결심 비슷한 다짐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말이다(물론 나는 빼고;;) 

결국 지난주는 월요일부터 꼬박 일주일을 넘겨 다시 월요일까지 단 하루도 집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은 무려 점심과 저녁으로 나누어 약속을 두탕(!)씩 뛰어야 했다. 연일 집에 틀어박혀 붙박이처럼 지냈던 저질 체력으론 당연히 무리가 왔다. 여드레 동안, 10명의 친구를 거의 각각 만났고(한 친구는 두번이나!) 조카 입학전에 가기로 약속했던 그림책 전시를 봤고, <워낭소리>와 끝났다고 포기했던 영화 <쌍화점>을 봤고, 그 가운데 생일 모임은 네번이나 되었다. 서대문, 서초동, 강남역, 압구정동, 신촌, 홍대앞, 이태원, 일산, 파주, 광화문, 오이도, 다시 홍대앞까지 마치 홍길동이라도 된 양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녔던 터라 매일 외출에서 돌아오면 당연히 다리허리가 아팠고 연일 기름진 음식을 과식하여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그렇게 매일 거의 대중교통수단으로 돌아다녔으니 억지로라도 운동이 되었을 법도 한데, 어제 전철을 두번이나 갈아타고 오이도에 갔던 게 주효했는지 10시간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눈이 붙어 잘 떨어지질 않는다. 아참... 오이도엔 이번에 처음 가봤는데 조개구이는 역시 을왕리가 훨씬 낫더라. 가격은 비슷해도(새우+조개구이+칼국수 세트 중간크키 = 7만원) 조개와 새우의 양도 작고 일단 양념맛도, 곁다리 반찬도 형편없었다. 고현정과 천정명이 드라마를 찍었다는 원조뚝방집이 그 모양이니 다른 집은 오죽할까 -_-;; 늘 가던 을왕리 조개구이집에선 조개도 막 더 갖다주고, 공짜로 주는 떡볶이랑 파전도, 조개 찍어먹는 양념도 엄청 맛있었는데 속상했다. 바다냄새라도 맡겠다는 원래 목적에도 을왕리쪽이 훨씬 더 낫다. 오이도는 갯벌위로 솟은 둑방길에서 철조망 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밖엔 없지만, 을왕리는 그래뵈도 해수욕장이니 찰랑거리는 바닷물도 직접 신발에 묻힐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아무리 노는 게 좋아서 광분했더라도 마감폭풍후의 한풀이는 이쯤에서 한 이틀 맥을 끊어야겠다. 
에구구 삭신이야.
봄맞이 체력강화에 힘쓰려면 어서 자전거에 바람부터 넣어야하는데 에구구 고되다.
간간이 놀아주며 슬슬 다시 초반 작업모드를 가동해야 할 때이지만 지금 생각 같아선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고 싶다. 에구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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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열망

삶꾸러미 2009. 2. 24. 13:00

역시나 얼마전 작업한 책에서 주인공은 내키지 않는 여행을 떠났다가 어느 한가로운 소도시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떤 이들이 짧게 머물려고 낯선 도시로 여행을 갔다가 한달이 지나고, 그러다 석달이 지나고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왜 결국 남은 평생 그곳에서 살게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겠다고. "이상한 힘. 제 아무리 야성적인 사람이더라도 상관없이, 한 사람을 외국 땅에 정착하게 만드는 기운. 나는 그 이상한 힘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모험과는 반대되는 무언가, 살아가는 습관에서 비롯되는 무언가이며, 단조로운, 매일 같은 일상의 단조로움에 대한 수긍이다."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가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아니 영영 그곳에 정착하고 싶은 생각을 품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나도 여행에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품은 적은 많았다. 나에겐 여행의 동기라는 것이 도피였거나 휴식, 애쓴 나에게 주는 포상 같은 것이었으므로 멍에 같은 현실이나 일상의 번잡함이 싫어서 가능한 한 여정을 길게 늘여 돌아감을 지연시키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낯선 곳에 정착이라니.

언젠가 멕시코에 갔을 때였다. 떠나기 전에 내가 기대했던 건 칸쿤 같은 편한 휴양지의 빌라에서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마가리타를 마시거나 새하얀 요트에 누워 눈부시게 파란 바다를 즐기는 휴식이었지만 일행이 나를 데려간 곳은 골수 낚시꾼들이나 찾아가는 태평양 연안의 작은 어촌이었고, 수영장이 딸린 호텔 따위는 아예 없었으며, 일행이 트럭 뒤꽁무니에 매달고 간 배는 물론 요트가 아니라 작은 고기잡이 배였다. 40도를 넘는 폭염에 새벽 6시에 깨어나 찬물을 틀어도 달궈진 지붕과 물탱크 때문에 화들짝 놀랄 만큼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열악한 환경의 모텔에서 친구와 나는 망연자실했다. 친구의 남편이 우리 키만큼이나 큰 방어를 끔찍이도 많이(그때 잡아서 아이스박스 몇 개에 담아온 방어는 최소 석달은 먹고도 남음이 있었다) 잡아와 자랑을 늘어놓아도 우린 둘 다 시큰둥했다. 그나마 현지인들에게 방어를 나눠주고 바꿔먹는 생굴과 클램차우더, 짝퉁 레몬 대신 진짜 싱싱한 라임을 넣어 먹는 코로나 맥주가 맛있어서 참을 뿐이었다. 
그런데 거기, 낚시꾼들을 상대하는 아주 작은 포장마차 비슷한 음식점엔 뜻밖에도 스웨덴 여자가 허드렛일을 거들고 있었다. 멕시코인 부부와 올망졸망한 십대 자녀들이 충분히 운영하고도 남을 만큼 한가한 그곳에서 과연 그 여자는 무슨 일을 하며 얼마나 돈을 받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전직 교사였다는 그 여자는 방학동안 남미로 여행을 왔다가 몇년 전 다 때려치우고 그곳에 그냥 눌러앉았다고 했다. 이미 안면이 있던 친구 남편의 설명에 따르면, 특별한 직업 없이 낚시철엔 낚시꾼들이 흔쾌히 주고 가는 생선으로 연명하고 주말에는 그 포장마차에서 서빙을 거들어주고 끼니와 맥주를 제공받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간의 저축과 연금을 쪼개서 궁핍하게 살면 늙어 죽을 때까지도 그곳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거라나. 차마 나이를 물어볼 순 없었지만 오십대는 된 것 같은 여자였다. 
나는 도저히 그 여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텔에서도 발전기를 돌려야 겨우 에어컨과 전등을 켤 수 있으며 더위 때문에 어떤 날은 해저물 때까지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지독히 심심하고 한가한 그 <깡시골 어촌>에서 그 여자는 어떤 매력을 발견했기에 무턱대고 눌러 앉기로 작정을 했을지. 맑고 푸른 바다는 오대양 주변이라면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을 터였고, 순박한 시골 사람들도 나라마다 없는 곳은 없지 않겠나? 
어쨌거나 지금은 이름도 까먹은 바하캘리포니아 끝자락의 어느 어촌엔 그 여자 말고도 여행으로 흘러들어왔다가 정착한 외국인들이 두어 명 더 있다고 했다. 친구 남편의 꿈 역시 은퇴해서 그곳에 정착해 남은 평생 낚시를 하며 사는 것이었지만, 친구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책을 번역하다 저 구절을 만난 순간, 십년도 넘게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 스웨덴 여자가 불쑥 떠올랐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행을 떠났다가 뜻밖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낯선 곳에 정착했다는 사람들을 좀체 이해하진 못하겠다. 나에게도 여행은 새롭고 낯선 것들의 경험이 큰 의미를 차지하지만, 결국엔 익숙한 장소와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지연시키고픈 현실임과 동시에 든든한 <빽>인 것만 같은데 말이다.
내가 아직 인생의 연륜을 덜 쌓아 낯선 여행지가 풍기는 <이상한 힘>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사주에 역마살이 있기는 하지만 늘 원점으로 돌아오는 역마살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사주팔자 때문인지, 낯선 곳과 낯선 삶을 두려워하는 우물안 개구리이기 때문인지 그건 알 수 없지만,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하나는 있다.
낯선 곳에의 정착은 꿈도 안 꿀 터이니, 그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을 만큼 여러가지 여유를 지니고 살고 싶다는 사실.
봄바람 살랑살랑 부니 슬슬 역마살이 도지고 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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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정리

놀잇감 2009. 1. 6. 21:38

토룡마을 주민들이 대거 보이코트할 양상을 보여 2008 베스트 포스팅 릴레이가 존폐위기에 놓였다니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나라도 동참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을 이런 식으로나마 정리해두는 건 나 같은 비기록형 인간에게 퍽 훌륭한 갈무리방법이므로, 옆구리 찔려서라도 적어두면 십년쯤 후에 차곡차곡 돌아볼 때 굉장히 흥미로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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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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