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사랑'에 해당되는 글 89건

  1. 2011.03.22 토론의 기술 10
  2. 2011.03.13 간만에 지우 그림 21
  3. 2011.01.28 사춘기 8
  4. 2011.01.21 방학 10
  5. 2011.01.06 자리 9
  6. 2010.12.09 막내 프리미엄 18
  7. 2010.12.01 개똥벌레 ^^; 12
  8. 2010.10.15 흥얼흥얼 4
  9. 2010.10.07 공주야 고맙다 9
  10. 2010.09.02 고백 유감 5

우리나라 사람은 참 토론을 못한다. 지금은 아예 볼 생각도 안하지만, 손석희 교수가 진행을 하던 시절의 <100분 토론>을 보아도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주장을 바락바락 우겨댈 뿐인 패널들을 보는 게 지치고 짜증스러워 중간에 채널을 돌리기 일쑤였다. 다른 토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고, 토론이라고 할 수도 없는 국회 청문회는 아예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다. 과거 청문회에서 '스타'로 떠오른 정치인을 다분히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조목조목 논리로 검증하는 건 못배우고 대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호통치는 것만 따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보면 온 국민이 토론에 익숙하지 않고 토론을 못하는 게 당연하다. 평생 주입식 교육만 받아온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앞뒤 맥락에 맞는 언어와 주장으로 토론에 끼어든단 말인가. 대학에서도 대부분이 강의식 교육만 받는 실정이니까. 그러다 보니 소수 세미나 수업으로 진행된다는 대학원 수업도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수업마다 발제자가 있어 발제문을 줄줄 읽고 나면 몇몇 도드라지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상투적인 질문이, 또는 너무 뻔한 질문이 이어지고 그나마 성의 있는 교수의 경우 다양한 논쟁거리를 제시하고 주제를 아우르는 정도다. 페미니즘 분석의 경우 간혹 재미있는 말들이 오가는 경우가 있기는 했으나, 상대의 논리적 오류를 짚어내는 토론으로 무언가 서로를 설득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기보다는 그저 놀라운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되는 때가 많았다. 세미나식 수업의 목표는 발제자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다퉈 입증해야 한다는 것인데, 별로 새로울 것도 없이 기존 연구자들의 논문과 주장을 이리저리 참고해 이른 대학원생 수준의 결론엔 딱히 이의를 제기할 것도 사실 없다. 괜히 누군가 뭣 하나 물고 늘어져 수업이 길어지면 오히려 눈총만 받을 뿐.

마이클 샌델 본인도 의아해했다는 한국인들의 '정의' 열풍에 힘입은 덕분인지 EBS에서는 하버드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라는 <정의란 무엇인가> 수업 동영상을 벌써 몇번째 방영하고 있다. 빠짐없이 전회를 다 본 건 아니지만 연말엔가 처음 채널을 돌리다 프로그램을 알게 된 이후, 부러 시간을 기다려 일부러 찾아본 강의 수업에서 나는 강의 내용은 일단 제쳐두고 교수가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학생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에 따라 논리를 펼치고, 각자 생각에 따라 학생들이 편을 나누어 논리를 지원하고 보태다가 다시 강의 주제로 돌아와 다양한 정치철학을 제시하는 토론식 수업법이 너무도 매력적이고 경이로웠다.

공리주의 입장에서 개인의 기본권은 얼마나 침해되어도 좋은지, 완전한 자유주의가 공동체의 이익과는 어떻게 상충되는지를 주로 살펴보는 강의 내용은 사실 새로울 건 없는 것 같다(라고 주장하며 책은 안읽을 생각이다. 역시 나는 문자 매체보다 영상매체를 선호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음. ㅠ.ㅠ). 그런데 다양한 인종적 민족적 배경을 안고 모인 수많은 학생들이 본인의 입장에서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거침없이 일어나 주장하고, 교수는 또 그런 주장에 대한 반박 의견을 이끌어내고 모든 학생들의 주장을 일일이 기억했다가(학생들의 이름까지!) 강의주제와 연결해 결론을 내리거나 철학적인 논리를 설명하는 외적인 강의 모양새가 참 감탄스럽다. 

내게 놀라운 건 자칫하면 바보 되기 십상인 편협한 주장을 펼치는 학생들도 매우 당당하고 나름 논리적 근거가 탄탄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교수가 이끄는 반대토론을 거쳐 학생들 스스로 논리의 허점을 발견하게 하는 과정이다. 게다가 조단조단 또박또박 설명하는 마이클 샌델의 목소리와 말투는 또 얼마나 정갈한 느낌인지. 하버드대학이나 서울대의 엘리트주의가 나라를 망친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공감하기는 하지만, 강의 동영상을 보며 불쑥 나도 저런 명강의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더불어 손석희 교수의 강의도 문득 궁금하다). 물론 나는 토론되는 사안에 대한 내 주장이 어느 쪽인지 자신이 없어서 (실제로 강의 동영상 보며 어느 쪽이 옳고 정의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 주제들이 꽤 있었다) 절대로 손들고 나서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일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간혹 전해듣는 현실속 학교 현장은 여전히 한심스럽다. 중학생이 된 조카는 요즘 이른바 교사들의 '군기잡기' 분위기에 퍽 괴로운 모양이다. 자유로운 초등학교 분위기에 익숙한 아이들이 뭔가 부당하다고 느껴 이의를 제기하면 선생님이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식으로 반응한단다. 나도 겪어본 일이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처음이라 주도권 잡으려고 더욱 그럴 거라고.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일방적인 소통은 억울할 수밖에 없고, 부당한 건 부당한 거다. 하물며 그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이성적인 토론의 자질이 어떻게 싹틀 수 있겠나. 

예를 들어, 체육복 문제. 산꼭대기 학교의 특성상 대운동장은 건물 바로 앞이 아니라서 산너머 언덕을 한참 내려가야 한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엔 절대로 옷을 갈아입고 운동장까지 시간 내에 갈 수 없다. 체육시간 전에 미리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있어야 한다. 체육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교실로 돌아와 다음 수업 이전에 교복으로 갈아입을 시간 역시 없다. 그런데 체육시간 바로 직전이나 직후에 배정된 일부 과목 교사는 애들이 '모양빠지게' 체육복을 입고 자기 수업을 듣는 걸 못견딘다. 다음 수업이 체육이든 아니든,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충분하든 말든, 자기 수업시간엔 모두 교복을 단정히 입고 있으라는 주장이다. 아 왜??? 물론 체육교사는 이전 과목 선생의 취향이 어떠하든 자기 수업시간에 늦는 학생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체육 수업에 많이 늦었다간 벌로 언덕배기 중간에 있는 감나무까지 선착순 뛰기를 몇번이나 해야할지 모른다. 딜레마다.

30여년 전에도 교사간의 알력은 우리를 괴롭게 했다. 설마 중학교 신입생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가 아닌 다음에야, 왜 아직도 그러고들 앉았는지! 물론 체육복을 입고 있어도 이해해주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원칙이 뭔가 더욱 헷갈린 거다. 과거에 우리는 그나마 만만한 체육선생에게 부탁했다. 체육복 미리 입지 말라고 강요하는 선생을 설득해달라고. 결과는? 둘이 교권을 두고 으르렁거리며 싸웠을 뿐이다. -_-; 조카에겐 별 수 없이 과거 우리의 비법을 전수할 수밖에 없었다. 체육복 바지만 미리 갈아입고 위엔 교복을 입은 채 다른 수업을 받으라고. (그런데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교복 웃도리에 체육복 바지만 입고 있는 건 정말 더욱 모양빠지는 일이다! 흉측하기 이를데 없는! 게다가 그 꼴로 화장실이라도 갈 때 학생부 교사에게 걸리면 '복장불량'이란 지적을 받는다. 체육복이면 체육복, 교복이면 교복을 입으라고. 대체 어쩌라는 거냐!) 그러고서 한편으로는 반장을 보내든지 해서 선생과 다시 협상을 시도해보라고 권했다. 교실에서 단체로 아이들의 왁왁대며 불평을 쏟아내는 건 교권에 대한 발칙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교사들이 좀 많은가. 은밀히 교무실로 찾아가 '간절히' 부탁하면 권위를 세울 수 있으니 혹 들어주려나... 물론 과거처럼 괜히 교사들끼리 싸움만 붙이는 수도 있겠지만. ㅎㅎ

아직도 윽박지르고 일방적인 주장을 강요하면 씨알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느 분야에든 많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기주장이 강한 요즘 아이들은 그 방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어린 조카들도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는 의견을 관철시키기가 쉽지 않던데 교육학도 배운 사람들이 왜들 그러실까. 답답하다. 하기야 그러니까 너도나도 팍팍한 이 나라 교육현실을 외면하고 조기유학을 보내거나 이민을 떠나는 것이겠지. 그리고 대대로 토론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주요 협상 테이블에서 늘 불리할 수밖에 없을 테고. 

조카의 고민을 듣고 돌아온 탓인지 리모컨질 하다 걸린 EBS 정의 재방송을 또 한번 구경하며 입맛을 다셨다. 우리나라 애들도 저렇게 멋지게 토론하는 어른으로 커야 하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텐데 그저 시스템과 어른들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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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지우 그림

놀잇감 2011. 3. 13. 22:08

일본 지진관련하여 그제부터 거의 신이 난듯 특보를 내는 TV 뉴스와 인터넷 기사에 짜증이 나면서도 자꾸만 보게 되고, 덩달아 망연자실 기운이 빠진다. 그래도 나는 희희낙락 기운내서 살아야겠다고, 며칠 내리 빌빌거렸으면 이젠 좀 빠릿빠릿 움직여야 한다고 즐거운 포스팅을 기획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계속 올려대는 생각 짧은 기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이기적인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아무튼... 블루고비처럼 멋진 그림을 그려주는 화백 친구는 없지만 다행히도 내겐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려주는 조카들이 있다. 올해로 여섯 살이 됐어도 만으로 따지면 이제 네 살 반 밖에 안된 지우의 그림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물론 고슴도치 고모의 시각이 다분히 작용했을 거라고 믿지만, 미술학원에서도 꼼꼼한 솜씨로 선생님들의 칭찬을 독차지한다니 앞으로 기대해보련다.

제 엄마 생일에 지우가 선물로 그려준 그림이라는데 드물게 채색 전과 채색 후의 작품사진을 모두 입수했다. 제 부모는 색깔을 칠하고 나서 섬세한 디테일이 지워졌다고 속상해하던데, 내가 보기엔 화사하고 봄스러운 색감이며 전체적인 조화가 그저 예쁘기만 하다. 어제 채색 그림 찍어오며 나도 사람 많은 그림 그려달라고 간절히 사정했으나 무시당했다. 애들 방에 걸어놨던데 다른 작품으로 대체된 후에 슬쩍 달래서 가져오든지 해야겠다. 지우가 최근에 그려준 내 그림은 두번 연달아 노래방에서 마이크 들고 노래하는 그림이다. -_-;; 조카들이랑 노래방 안 간지가 2, 3년은 돼가는구만. 나도 이런 완성도 높은--혹은 실물보다 백배 더 아름답게 그린--그림을 그려달란 말이닷. 연일 야근으로 찌들어가고 있는 제 아빠를 아주 어린왕자처럼 그려놨다. *_*


그림설명: 왼쪽부터 엄마, 아빠, 형아, 지우.
엄마 아빠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게 좋아서 형아가 웃으며 쳐다보고 있고, 자기는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형아에게 <구름빵> 책을 꺼내달라고 손으로 '탁' 치는 장면이란다.
각자 입고 있는 옷에 들어간 그림은 엄마-영어, 아빠-공룡, 형아-지렁이, 지우-햇님
채색 전의 스케치를 보면 두 어린이의 눈동자에 표정이 생겼다! 아우 귀여워 ㅠ.ㅠ
엄마는 색칠하면서 스케치에 없던 목걸이도 생겨났다.
구름에 밑에 세로 선은 혹시 '빗줄기'인가 물었더니 수염으로 '할아버지 구름'을 표현한 거란다. 
머리색깔도 어쩜 저렇게 다 다르게 표현했을까.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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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추억주머니 2011. 1. 28. 21:34

사춘기에 대한 까마득한 기억을 돌이켜보면 대체로 '착하게' 보냈다고 생각된다. 갑자기 와락 화가 나거나 슬펐던 적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겉으로 크게 반항기를 내보일 만한 형편이 아니란 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어려서 잘 몰랐던 것인지 정말로 무탈하게 넘어갔던 것인지 알 수 없어도, 암튼 지긋지긋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 된 엄마의 우울증을 목격한 기억이 없던 반면, 중학생때 목도한 엄마의 심한 우울증은 너무 괴롭고 난감해서 나까지 속을 썩이면 절대로 안된다는 다짐을 불러올 정도였다. 그래도 중학시절의 반항 사건이 두 가지 정도 남아있는 걸 보면, 내가 기억에서 지워버려서 그렇지 사춘기의 엇나감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왕비마마의 증언에 따르면 조잘조잘 노상 집에 와서 학교 얘기를 털어놓던 애가 한동안 방구석에 처박혀서 책만 보지 않으면 한숨을 푹푹 쉬는 정도였을 뿐, 이제부터 고백하려는 거짓 일기장 사건 말고는 달리 속썩이는 일이 없었다니 앞으로도 나는 계속 '대체로 착한' 사춘기 소녀였다고 주장할 작정이다.

거짓 일기장 사건은 중학교 1학년땐가 난생처럼 수련회라는 걸 가면서 생겨났던 일이다. 이름도 우스운 '간부 수련회'라는 걸 며칠 가야했는데,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가는 것도 모자라 준비물에 '잠옷'이 있었다. 요즘 수학여행 같으면 그냥 '편한 옷' 정도로 적혀 있었을 테고, '잠옷'이라고 적혀 있었어도 그냥 편한 옷 아무거나 챙겨가면 되겠거니 여겼겠지만 고지식한 나에겐 '잠옷'이라는 품목이 반드시 지켜야할 규정으로 생각됐다. 물론 당시 나도 집에서 입던 파자마 형태의 낡은 잠옷이 있었다. 다만 그게 국민학교 때부터 줄곧 입던 거라 소매와 바짓부리가 모두 껑충하게 7부쯤으로 짧아졌고 낡아서 프린트도 다 흐려진 쪼글쪼글한 몰골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집에서 입는 건 상관 없지만 그런 잠옷을 학교 수련회에 가서도 입고 자야 한다니, 나로선 앞이 캄캄했다.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그 참에 잠옷을 새로 사달라겠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 집안 형편은 갖고 싶은 것을 아무때나 불쑥 사달라고 말해선 안되는 수준이었다. 부모님 입장에선 뜻밖의 지출인 수련회 회비도 은근히 부담스러워하시는 마당에 잠옷이라니. 그런데도 나는 정말이지 헌 잠옷을 수련회에 가져가기가 싫었고, 결국 잠옷 사달라는 말을 하는 대신에 영악하게도 일기를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일기 내용은 빤했다. 수련회에 헌 잠옷 입고 가는 게 정말 창피해서 수련회도 가기 싫을 정도지만, 부모님한테 꼭 필요하지도 않은 새 잠옷을 사달라고 하는 건 큰딸로서 할 짓이 아니다. 다른 애들은 다 새 잠옷을 사온다는데 아 나는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어쩌구 저쩌구... 집안 사정을 크게 고민하는 (나름) 착한 딸 코스프레를 한 거다. 그렇게 새 공책에 딱 한장 일기를 써서 책상에 올려놓고 학교를 다녀와보니(원래 쓰는 비밀 일기는 늘 책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녔었다 ㅋ)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그날 저녁 연분홍색 바탕에 진분홍 땡땡이가 찍힌 예쁜 새 파자마를 내밀었다. 물론 엄마는 내가 새 잠옷을 얻기 위해 딱 한장짜리 거짓 일기장을 '일부러' 책상에 두고갔음을 알았고, 그 때문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나중에 털어놓았다. 못된 기집애, 그냥 사달라고 할 것이지... 라면서. 그렇게 해서 생긴 새 잠옷을 수련회에 들고 가긴 했지만, 나는 두고두고 그 잠옷을 입을 때마다 양심에 찔려서 괴로웠고 엄마 역시 잊을 만 하면 친척들 앞에서도 가짜 일기장을 언급하며 내 약점을 공략했다. 쟤가 은근히 영약한 애예요.... ㅠ.ㅠ

이후 나의 사춘기가 평탄했던 건 거짓 일기장과 잠옷으로 생겨난 죄책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내가 또 한번 눈물을 쫄쫄 흘리며 괴로워했던 사건이 있었으니, 그 또한 금전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주말마다 특별활동을 상당히 심도 있게 운영했고, 미술반이던 나는 격주 토요일마다 늘 이젤과 화구상자를 들고 경복궁 등지로 그림을 그리러 다녔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별도로 미술학원에 다닌 적은 없지만, 역시나 가끔 고궁으로 그림을 그리러 다니던 막내고모를 따라 몇번 어깨 너머로 배운 수채화 기법을 '흉내'내봤더니만 교내 사생대회에서도 막 상을 주질 않나, 학교 대표로 뽑혀서 '서부지역' 중학 사생대회에 파견되질 않나 결과가 꽤 우쭐했다. 그러다 드디어 중3때 학교 축제일. 그간 교내 및 교외 사생대회에서 지나치게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탓에 나는 그림을 세 개나 전시하게 되어 개인이 내야 하는 표구비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림 하나 당 5천원쯤 했던 것 같은데(당시 친구가 다니던 미술학원비가 한달에 2만5천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니, 꽤 큰 돈이었다) 축제 기간 동안에 그림을 걸려면 각자 자기 그림을 인사동이나 홍대앞 표구상에 가져가서 유리액자에 끼워 제출하거나, 학교에서 단체로 표구를 맡기도록 그림당 돈을 내야 했다. 집에 와서 부모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까 대번에 엄마는 꼭 그림을 전시 해야하느냐고, 그냥 액자 없이 '판떼기' 같은 데 붙이거나 이젤에 올려놓으면 안되는 거냐고 물었다. 액자 3개 값이면 한두달 치 쌀값이라는 둥... 결국 나는 알았다고, 전시 안하면 되지 않느냐고 쏘아붙이고는 꽝 소리 나게 방문 닫고 들어가 눈물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 때 제일 친한 친구가 하필 우리집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살던 동네 최고 부잣집 딸이라 (당시 마당에 수영장이 꽤 크게 있고,  뜰 한 구석엔 팔뚝보다 큰 잉어들이 노니는 연못이 있었으며, 기사 딸린 검정색 세단이 가끔 토요일에 나와 친구를 경복궁으로 실어 날라주기도 했다) 그 친구는 일부러 인사동 표구상에서 최고급 액자로 표구를 맡겼다는 걸 알기에 내 처지가 더욱 비관스러웠던 것 같다.

학교축제일까지 근 열흘쯤 그야말로 나는 학교 다니는 게 죽을맛이었다. 그림 위치 선정 외에도 축제때 미술반이 해야할 일이 꽤 많아 이런저런 잡일에 동원되느라 방과후마다 미술실에 가면서도 나는 미술선생을 계속 피해다닐 수밖에 없었다. 표구비가 없어서 그림 전시를 안하기로 했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미술반 아이들은 대개 미대 전공을 꿈꾸는 넉넉한 집안 아이들이라, 이젤과 화구상자도 고모가 쓰던 낡은 걸 물려받아야 했던 나 말고는 표구비로 전전긍긍하는 애들이 없었다. 그러니 더더욱 나는 마치 가난 때문에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그림천재라도 되는양 오만상을 떨었을 게 분명하다. 크크크. 집에선 입을 꾹 다물고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므로 부모님을 축제에 초대하는 가정통신문도 당연히 전달하지 않았다. 내 그림은 걸지도 못하는데 뭣하러! 물론 나 혼자 심통을 있는대로 부리고 다니긴 했지만, 아마 무심한 엄마는 그림 표구비 때문에 내가 괴로워하는지 마는지, 학교 축제가 언제인지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친구네 엄마는 예의 그 검정색 세단을 타고서 축제 첫날 큼지막한 꽃다발과 함께 왕림하여 친구 그림 앞에서 기념촬영까지 하셨지만 말이다. ;-p 아, 맞다. 약간의 감동스러운 반전이 있기는 했다. 표구비를 못 냈으므로 당연히 내 그림은 한 개도 전시되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것과 달리 놀랍게도, 미술실과 교무실 앞 복도엔 미술선생이 전시를 명했던 내 작품 세개가 모두 걸려 있었다. 비록 삐까번쩍하게 고급 액자로 새로 표구를 한 건 아니었지만, 미술실에 돌아다니는 옛날 그림 액자를 재활용해 미술선생이 내 그림을 전시해주었던 것. ㅠ.ㅠ 표구비 못내서 내 그림은 없을 거라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다 얘기해놓았다가, 막상 내 이름표가 달린 그림을 마주하고 느낀 감동에다 이튿날 친구들이 그림 밑에 붙여준 장미꽃까지 곁들여져 중3 때의 추억은 신파스러우면서도 퍽 아련하게 남을 수 있었다.

쓰고 보니 사춘기 반항담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심통부린 이야기가 다 인것 같아 민망하지만, 암튼 세상 고민을 혼자 다 하는 것처럼 괴로워하던 나의 사춘기는 중3때로 막을 내렸던 것 같다. 고1때부터는 걸핏하면 병나는 엄마 대신 아침밥 챙기고 동생들 도시락 싸주고 그러느라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흔히들 하는 얘긴데 옛날 우리들은 나처럼 대개 사춘기가 짧고 굵게 금방 지나갔단다. 옛날 세대들이 확실히 삶이 덜 여유로워 철이 빨리 들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지금보다 부모의 간섭이 심하지 않아 반항할 일도 덜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정답이야 모를 일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춘기가 시작되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계속 사춘기 성향을 보이는 요즘 아이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올해 중학생이 되는 조카를 봐도 그렇다. 5학년때부터 이미 발칵발칵 성질을 부리고 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걸 보며 벌써 사춘기에 접어들었나 보다는 심증을 가졌는데 점점 아주 가관이시다. 제 부모도 그렇고 나도 왕비마마도 본격적인 공주의 사춘기를 두려워할 정도다. 원래 사춘기 때는 뇌의 구조와 기능부터 달라서 번쩍번쩍 아무때나 스파크가 일고 번개가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뇌관 같은 머릿속이 정리될 때까지는 어른들의 이해가 필수적이라던데, 여전히 철도 덜 났고 수시로 감정의 기복이 많은 나로서는 이해는커녕 제법 참고 지켜보다 덜컥 싸움을 할 태세가 되고 만다. +_+ 요번에 방학맞이 공주의 왕림기간 동안, 정말이지 작년 여름방학과는 다른 양상에 나도 왕비마마도 어쩔 줄을 몰랐다. 원래도 여기 오면 제멋대로 하는 경향을 보이곤 했으므로, 그러려니 했는데... 암튼 이번엔 확실히 받아주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았고, 특히나 왕비마마께서 마음 상하는 일이 다수 발생했다. 심지어 기물파손(?)도 한 건 있었을 정도다. ㅎㅎㅎ 왕비마마께 가장 긴요한 물건인 간단형 리모컨을 공주께서 집어던져 망가뜨렸는데, 내가 중재자로 나서야 했을 정도로 할머니와 손녀딸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는 걸 보며 나는 더럭 겁이났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하던 나의 공주는 이제 없구나 싶기도 하고. 원래는 심성이 착한 아이니까 자기도 주체 않되는 감정의 기복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방법을 스스로도 발견하리라고 믿고 있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고모는 언제나 네편이 되어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폭탄선언까지 해야했던 조카의 사춘기가 과연 어떻게 넘어갈지... 그나마도 여자애들은 좀 나은 편이고, 남자애들이 더 문제라는데 주르륵 공주 아래로 셋이나 되는 사내녀석들은 또 어찌 사춘기를 버텨나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성장과정이므로, 뭐 고민해봤자 지켜보는 것밖엔 할 일이 없겠지만 취미가 조카사랑이라고 주장해온 얼치기 어른 고모에겐 벌써부터 큰 두려움이다. 지금까지도 애들 버르장머리 없게 만든 장본인이 나라는 비난을 계속 들어왔는데, 설마 조카들의 사춘기도 나 때문에 더욱 힘겨워지는 건 아니겠지? 어려서도 커서도 조카들이랑은 늘 속을 털어놓는 멋진 고모가 되는 게 꿈인데, 인품이 딸려서 과연 그런 경지에 오를 수나 있을지... 암튼 부모노릇엔 댈 것도 아니지만 오지랖 넓은 고모노릇도 뭐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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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투덜일기 2011. 1. 21. 13:26

겨울방학을 맞아 조카 공주가 몇주째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어제부터 4박5일간의 일정으로 와 있다. TV 리모컨도 컴퓨터 사용권도, 아이폰마저도 모두 공주의 손아귀에 들어가, 무수리는 그저 공주와 왕비마마께 봉사하는 일에 매진하는 수밖에 없다. +_+ 발등에 붙은 불 끄느라 며칠 블로그질을 멀리 했는데, 또 며칠 블로그계를 떠나 있을 수밖에...
지금도 점심준비 핑계로 잠시 컴퓨터방에 숨어들었다. 월요일까지 갈 길이 멀다. 강추위를 뚫고 매일 외출 스케줄이 잡혔다. 그나마 이번 겨울엔 조카를 동반하고 볼만한 영화가 별로 없다는 것이 다행인가, 불행인가. 으휴... 들켜서 혼나기 전에 얼른 나가야겠다. ㅠ.,ㅠ 아니지, 이렇게라도 쉬는 걸 나도 겨울방학이라고 생각하자. 공주의 요구사항은 단순하다. 자기가 다니러 온 동안엔 절대 '일'을 하지 말고 자기랑 즐겁게 놀아달라는 것. 하지만 열네살 짜리 조카와 '재미있게' 놀 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냥 빈둥거리라는 얘기다. 하기야 이 얼마만의 빈둥거림인지. 여튼 간만에 온종일 틀어놓은 TV는 광고부터 다 신기하다.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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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추억주머니 2011. 1. 6. 14:14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버스에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뒤에서 두번째 줄,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다. 요샌 거기도 두 좌석이 놓여있는 버스가 많지만, 몸체가 낮고 하차문이 안쪽으로 열리는 신형 버스에도 맨뒤에서 둘째 줄엔 한 좌석짜리 버스들이 더러 있어서 드물게 거기 앉을 수 있는 날이면 몹시 기분이 좋다. 아무래도 나는 모든 공간에서 구석자리를 선호하는 모양으로 카페나 음식점에 가서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한가운데보다는 주로 모퉁이에 콕 박혀 있는 게 좋다. 요가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연코 내가 원하는 자리는 사람들 사이에 끼지 않아도 되는 벽쪽 가장자리 자리다. 하지만 공주마마를 보필하고 다니는 무수리로선 가장자리 자리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벽쪽은 언제나 낼름 조카가 앉는다. 그래서 둘이 티격태격할 때도 있는데 내가 차지하고 싶은 요가매트는 가장자리 중에서도 버스 자리처럼 뒤에서 둘째 줄이다. 사람들이 꽉 차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뒤에서 둘째 줄에 앉아도 뒷사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첫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워낙 촘촘하게 요가매트를 깔아놓았기 때문에 맨끝줄에선 구르기 같은 동작을 할 때 잘못하면 벽에 부딪친다. 하지만 공주는 무조건 맨끝줄에만 앉으려고 든다. 앞쪽은 나도 절대 사절이지만 맨끝줄에 앉아서 설렁설렁 딴짓하며 동작도 어설프게 하다가 걸핏하면 잠들어버리는 조카녀석을 보노라면, 과거 맨뒷줄에 앉아서 노상 꾸벅꾸벅 졸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_-; 

학창시절 내 자리는 거의 언제나 앞쪽이었다. 국민학생 때는 그나마도 키와 상관없이 중간쯤까지 진출했었고,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십몇번대라 둘째 줄이었으나 고등학교 올라가선 가차없이 맨앞줄에 앉아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고2땐 키와 상관없이 제비를 뽑아 자리를 정하는 바람에 나중엔 슬쩍 번호표를 바꿔 친구들끼리 앉을 수 있었고, 나는 드디어 염원하던 대로 맨 뒷자리를 몇달간 경험할 수 있었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따로없다며 친구들끼리 다닥다닥 앞뒤로 옆으로 붙어앉아 지냈던 그 시절엔 정말로 하루하루 학교 가는 게 즐거웠다. 맨앞줄에선 등잔밑이 어두운 교탁 바로 코밑자리(거기선 교탁에 교과서를 기대놓는 척하고 딴 책을 숨겨보는 게 가능했다)아니고서야 딴 책 읽기가 불가능했지만, 맨뒷줄에 앉으니 온종일 교과서에 숨겨 만화책을 비롯한 딴 책을 읽어대도 걸릴 염려가 없었다. 돌아가며 망보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러 선생들이 필기를 시켜놓고 교실 앞뒤로 돌아다니긴 했지만, 우린 교실이 좁다는 핑계로 의자를 벽에 바짝 대놓고 우리 뒤쪽으론 못다니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당시엔 아직 과외금지령이 내려져 있을 때라 학원이니 과외니 하는 것도 전혀 없었고 순전히 학교 공부로만 버텨야 하는 시대였다. 나는 예습복습을 거의 하지 않고 수업중에 바짝 정신차려 집중하는 걸로만 대충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맨 뒷줄에 앉아서 그렇게 노상 딴짓만 하다보니 성적에도 당연히 티가 날수밖에 없었다. 단순암기, 찍기의 여왕이 되려면 일단 수업중에 선생이 중요하게 언급한 부분에 형광펜이라도 칠해놓아야 하는데 그 몇달간은 망보는 임무를 맡은 수업이 아니고선 교과서며 요점정리 유인물이 그저 하얗기만 했다. 사실 딴짓하는 친구들을 위해 망을 보느라 대표로 수업을 들을 때도 맨뒷줄에선 앞줄에 앉았을 때와는 공부의 질이 달랐다. 선생에게 시선을 집중해 보아도 시야에 들어와 거슬리며 움직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신경을 빼앗겼고(맨앞줄에선 선생과 나의 시선을 가리는 장애물이 중간에 없다! ㅋㅋ ) 목소리가 작은 선생의 설명은 맨뒤까지 잘 들리지도 않아 수시로 졸렸다. 키가 커서 늘 뒷자리에만 앉아 지냈던 친구들은 아마도 그런 악조건을 극복하고 수업에 집중하는 노하우를 꾸준히 쌓아왔을지 몰라도, 앞줄 붙박이였던 나는 암튼 그랬다. 그렇다고 친구들 배신하고 다시 맨앞줄로 갈 수도 없으니, 공부엔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 그래도 고2때 아니면 언제 놀아보겠냐며, 고3 올라가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3때 다시 맨앞줄로 회귀한 뒤에도 그랬지만, 대학엘 가서도 강의실에서 내 자리는 거의 앞쪽이었다. 맨앞줄은 단호히 거부했어도 거의 두세째 줄에 늘 앉았던 이유는 워낙 거구의 친구들이 많아서 뒤쪽에 앉으면 아예 앞이 보이지도 않았고 200명씩 듣는 합동강의실이든 영문과 단독 강의실이든 뒤쪽엔 요란하게 사투리를 쓰는 '무섭고 시끄러운' 남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가끔 졸릴 때면 일부러 덩치 큰 친구 뒤에 앉아 잘 가리라고 당부하기도 했고, 싫어하던 교직과목의 경우엔 가려주는 사람 없이도 뒷줄에서 빌빌 졸았지만.

사실 고2때 찍은 저 기념비적인 사진 속엔 뒷줄에 앉았든 아니든 전교1등 하던 친구도 있었으니 교실에서 앞줄과 뒷줄 여부로 공부나 집중도의 차이를 단정할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얼치기 범생에겐 확실히 지리적인 차이가 성적과 수업집중도에 분명 영향을 미쳤으니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도 할 수없다. 요가원 원생들을 봐도 그렇다. 언제나 맨앞쪽을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몸을 늘이고 유려한 동작을 보여준다. 수업 맨 마지막에 편하게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는 자세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쿨쿨 잠을 자다가, 그만 휴식에서 깨어나라는 요가 강사의 말을 못듣고 끝까지 누워 있다가 얼떨결에 일어나는 사람들은 나의 조카를 비롯해 꼭 뒷줄에 있던 사람들이다. 나도 이젠 확실히 어떤 자리든 뒷줄이 편하고 앞장서서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뒷자리에서 구시렁거리는 걸 즐기는 사람이지만, 벌써부터 맨 뒷자리만 고집하는 조카의 기호는 너무 일찍 자리잡은 게 아닐까 염려스럽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학교에서도 만날 맨뒷자리에 앉아 딴짓하고 조는 거 아니니, 공주야? ㅠ.ㅠ 물론, 맨 뒤에 앉아 빌빌 졸거나 만화책만 읽어대도 행복하고 바른 아이로 잘만 자라준다면 걱정이 없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다 부질없는 욕심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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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프리미엄

투덜일기 2010. 12. 9. 21:37

어제 할아버지 제사를 마치고 모두들 헤어져 돌아가는 순간, 주차장에서 내가 조카들을 한번씩 더 껴안고 뽀뽀를 주고받자, 막내고모가 외쳤다. "나두, 나두!" 나는 씩 웃으며 나보다 아홉살 많지만 항상 내가 뭘 더 챙겨줘야 한다고 느끼는 막내고모를 껴안고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면서.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도 명절이나 제삿날 밤에 헤어질 때, 아버지가 열여덟살이나 터울이 나는 막내동생에게는 각별히 꼭 포옹과 입맞춤으로 작별인사를 했던 것 같다. "우리 막둥이, 잘 가라"고 하시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특별히 막내딸을 더 챙긴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겨우 9살 차이나는 고모와 조카 사이가 어렸을 땐 꽤나 경쟁적이었다는 것도 같은데, 내가 기억하는 한 막내고모는 거의 내 우상이었고 스무살 무렵부터는 어쩐지 맏이인 내가 막내인 고모를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투부터 상냥함과 애교가 뚝뚝 떨어지며 하늘 끝까지 여성스럽고 연약하고 다소곳해서 내가 봐도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막내고모를 씩씩한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 느꼈달까. 물론 고모쪽에선 그래봤자 땅꼬마 조카라고 생각했겠지만 말이다. 

요즘에야 형제들 수가 적어서 막내란 존재의 개성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모양이지만, 맏이인 내가 보기엔 확실히 막내가 달라도 많이 다르다. 우리 막내고모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8남매의 막내딸이고 (할머니가 마흔 다섯살에 낳으셨다) 제일 큰 언니와는 스무 살도 넘게 차이가 나는 완전 늦둥이라, 지금까지도 온 가족이 애틋하고 안쓰러이 여기는 애교쟁이 막내의 개성이 극대화된 경우다. 천사표이신 나의 작은 엄마들은 다섯이나 되는 시누이 가운데 유일하게 막내고모를 위해선 지금도 번갈아가며 김치를 담가다주신다. 14년 전에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까지 주욱. (막내고모 요리솜씨가 엉망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요리도 잘하나? 의아할 정도다;;)  울 엄마도 건강하실 땐 밑반찬 만들어가지고 아버지랑 같이 수시로 막내고모네를 살폈다. 뭘 좀 제대로 먹고 살기나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우리 집안에서 막내란 그런 존재인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쩐지 보살펴주어야 할 것 같고 이유없이 애틋한. 

막내라서 본능적으로 애교와 귀염성이 많기 때문에 부모와 형제들의 사랑을 더 받는 것인지, 아니면 풍부한 애정 덕분에 막내들이 맏이와는 다르게 애교와 붙임성 같은 것들이 개발되는 것인지 나로선 통 모를일이다. 하지만 나의 막내동생을 보아도 어려서부터 무뚝뚝한 두 맏이와는 달랐다. 큰동생은 둘째이긴 해도 맏아들이네, 장손이네 하는 말을 듣고 자라서 그런지 맏이로서의 성격이 강한 편이고, 나와 마찬가지로 애교 따윈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자존심과 똥고집만 내세울 뿐. 삼남매가 뭐든 잘못을 하거나 싸웠다는 이유로 회초리 맞을 일이 생기면, 나와 큰동생은 '잘못했어요' 소리를 안하고 꿋꿋하게 정해진 매를 다 맞는 편이라면, 막내는 딱 한대 만 맞고도, 아니 심지어는 자기 맞을 차례가 되면 벌써부터 울음바람에 엄마를 와락 끌어안으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서 매를 피했다. 우리들 눈에 그게 얼마나 얄미워 보였던지!! 엄마 목을 끌어안고 돌아서서 막내녀석이 우리에게 혀를 쏙 내밀어 보였던 것도 같고...  -_-;  하지만 어려서도 나는 대체로 막내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매일 저녁 좁은 단칸방에서 노래와 춤으로 재롱을 부리며 온 가족을 즐겁게 해주었던 것도 항상 막내였다. 나와 큰동생은 엄마 아빠 밖에 없는데도 앞에 나가서 노래 한 마디 하는 게 어찌나 어려웠는지 원. 심지어 막내동생은 요즘도 두 아들을 데리고 우리 앞에서 가끔 최신 유행하는 아이돌 춤을 시범 보이며 귀여움을 떤다. ㅋㅋㅋㅋ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역시나 막내인 그의 배우자까지도 춤연습을 하며 논다는 것 같다.)

나의 조카들을 봐도 그렇다. 겨우 둘씩이라 맏이와 막내로 구분하기도 좀 뭣하지만, 집집마다 첫째와 둘째는 판이하게 성격이 다르다. 둘째들은 하나같이 애교가 많고 붙임성이 뛰어나고 눈치가 빨라서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첫째들은 뻣뻣하고 자존심만 강한 데다 융통성이 없어서 만날 엄마랑 싸운단다. 심지어 나의 올케들은 둘다 '막내'라서 맏이 특유의 애교 부족과 무뚝뚝함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맏이인 내 눈엔 위기를 모면하는 약삭빠른 둘째들의 아양떨기가 귀여우면서도 가끔 얄미운데 말이다!

어쨌든 막내는 막내고 맏이는 맏이라서, 각자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긴 하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확실히 아픔에도 차이가 있다는데 어쩌란 말인가. 어젯밤 왕비마마도 실토하셨다. 깨물면 새끼손가락이 제일 아프고, 엄지손가락은 별로 안아프다고. (시범까지 보이며;;) 그래서 맏이인 나와 큰동생의 경우엔 뭘 하든 믿게 되고, 약간씩 못미더운 부분이 있더라도 크게 걱정이 안되는 반면에, 막내의 경우엔 그저 안쓰럽고 염려스럽고 어떻게든 좀 더 챙겨줘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딸인 나와 달리, 두 형제 사이엔 은근한 경쟁심리가 있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왕비마마께 그렇게 티나게 굴지 좀 마시라고 했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나랑 큰동생은 울 할머니가 키우셨는데, 막내는 당신이 직접 키워서 좀 남다른가보다고. -_-; (왕비마마는 막내를 낳고 비로소 직장을 관두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막내라도 맏이같은 성품을 개발한 이도 있을 테고, 가족 내의 위치를 티내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우리집 맏이와 막내들을 보면 막내 프리미엄이란 게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다. 맏이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힘과 재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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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벌레 ^^;

놀잇감 2010. 12. 1. 17:18
 
지난달 큰동생 생일에 모였을 때 지우가 축하공연으로 <개똥벌레>를 불러주었다.
나는 얼씨구나 좋다며 동영상 촬영을 했으나, 촌닭답게 세로로 찍다가 옆으로 돌리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지우의 예쁘고 귀여움은 고개를 꺾고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기에 난생처음 유튜브에 올려보았음. :)
점점 맛들여 가고 있는 아이폰 놀이.
다음번 동영상은 더욱 잘 찍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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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얼흥얼

놀잇감 2010. 10. 15. 17:35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하루를 시작하며 들은 음악은 이상스레 하루종일 흥얼거리게 된다. 엠피3이나 오디오, 라디오를 늘 가까이 하는 사람은 오히려 한 가지 음악에 얽매이지 않을 수도 있을 테지만, 나처럼 드물게 음악을 듣는 사람은 며칠씩 한 가지 노래나 음악에 얽매일 때도 있다. 물론 흥엉흥얼 콧노래를 부를 마음의 여유가 아예 없을 땐 한없이 삭막하게 지낼 때도 많다.

지난주엔 차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우연히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나오는 바람에 같잖게도 며칠 내내 가사도 잘 모르는 오페라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변화무쌍하게도 이번주의 주제가는 <개똥벌레>. 지난 주말에 다녀간 막내조카가 콘서트 놀이(방에서 불 꺼놓고 야광봉과 손전등을 휘두르며 "우윳빛깔 @@@!"를 외쳐대고 열광한다)에서 다섯 번도 넘게 불러준 노래였기 때문이다. 쪼끄만 녀석이 어떻게 그 헷갈리는 가사와 음정을 다 외웠는지 자꾸 순서를 바꿔 부르는 나한테 막 가르쳐줬다.
 
그 이전에는 TV의 영향으로 한동안 <넬라 판타지아>를 흥얼거렸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 합창대회를 할 때마다 그렇게 연습을 지겨워하며 이런 쓰잘데기 없는 행사를 왜 하나 투덜거렸건만,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대회 준비하는 과정을 보니 심지어 그때가 막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오래 전 교생실습 나갔을 때 반 아이들 합창대회 거들던 생각도 떠올랐고. 인간의 목소리가 정말로 훌륭한 악기라는 것도 실감했다. 내 악기는 그리 쓸만하지 않지만서도...

일주일 내내 자꾸만 <개똥벌레> 멜로디가 튀어나오는 게 지겨워져서 시방은 일부러 스팅 노래를 틀어놨다. 내가 계속 흥얼흥얼 따라하기엔 좀 역부족이지만, 이 가을엔 정말로 어울리는 목소리가 아닌가. 중고등학교 시절엔 꼭 라디오를 틀어놓고 공부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냥 배경일 뿐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젠 예민해진 건지 까칠해진 건지 음악을 틀어놓으면 완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멀티플레이어라야 살아남는 현대엔 참 어울리지 않는 인간형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내가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흥얼흥얼거리며 단순 노동을 하는 거다.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곡조도 맞지 않는 콧노래를 부르며 뭔가 일을 하고 있으면,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묻는 이도 있어 당황한다. 꼭 기분이 좋아서 흥얼거리는 건 아닌데 말이다. 나도 모르게 뇌리에 박혀 어느 순간  흘러나오는 흥얼거림은 어쩌면 기분 상승을 위한 일종의 정신작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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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고맙다

투덜일기 2010. 10. 7. 15:49

딸을 둔 부모는 원래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이제 겨우 열세살인 조카를 두고 동생과 올케는 공주의 결혼 문제로 벌써부터 고민을 한다. 동생 녀석은 이렇게 정성들여 키운 딸이 아까워서 어떻게 시집 보내느냐고, 남주기 싫어서 그냥 계속 데리고 살겠다는 전형적인 딸바보 아빠의 발언을 최근까지 토로했다. 그러면 올케는 펄쩍 뛴다. 스무살만 되면 독립시키고 싶다나. 그러면서 공주가 나중에 결혼해서 어떻게 살아나갈지, 가서 보면 속 터질 것 같아 안보는 게 낫겠다고 구시렁거린다. 내가 보기엔 참 걱정도 팔자다. 지난 금요일 결혼식에선 벌써부터 딸 예식 걱정을 하질 않나...

딸들의 경우 자라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은 비슷하게 발전하다 어느 시점에 확고한 자리를 잡는 듯하다. 처음엔 멋모르고 제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하다가 유치원쯤 들어가면 마음에 드는 남자친구랑 결혼하겠다고 하는 식이다. (그러고 보니 사내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려선 엄마랑 결혼하겠다고 하다가 나중에 가족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여자친구 이름을 들먹이지 않는가.) 아이들의 그런 대답은 사실 어느 정도 어른들이 강요한 것이다. "너 커서 누구랑 결혼할래?"라고 자꾸 물으니 눈에 보이는 대상을 입에 올리는 게 아닐까.

어쨌든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회의적으로 보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였던 듯한데, '주의'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이론적인 정신 무장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놓고 독신을 부르짖지는 않았어도 내심 난 결혼 같은 거 하지 않으리라고 '자연스레' 마음 먹고 있었다. 사회 시간이었던가, 어쩌다 결혼제도의 종류와 일부일처제의 불합리함을 토론하던 수업 중에 나의 독신 성향이 발각되고 말았을 때, 욕쟁이 여선생은 내게 말했다. "저런 년이 제일 먼저 시집간다고 난리 치는 법이다. 다들 두고봐라. 쟤 학교 졸업하자마자 청첩장 돌리나 안 돌리나." 속으로 나 역시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어디 두고 보셔.'
 
얼마 전까지도 공주는 아주 돈이 많은 부자랑 결혼해서 자기가 회사 나가서 일 안해도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여행다니며 살고 싶다고 말해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그런 사고방식이 왜 옳지 않은지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퍼뜩 떠오르지 않았달까. 주체적인 삶이 어쩌고 경제적인 종속이 어쩌고 몇 마디 하다가 그냥, 그런 건 나중에 커서 결정해도 된다고, 어른 되면 생각이 바뀔 거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런데 제 엄마에게 또 한번 "너 나중에 결혼하면.... 어쩌구 저쩌구..."하는 잔소리를 듣던 조카가 며칠 전엔 대뜸 자기는 결혼을 하지 않고 '고모처럼 살겠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고모가 얼마나 행복한데 그래!"라고 부연하면서. +_+ 진정한 행복 여부를 떠나 순간 어찌나 공주한테 고맙던지! 물론 조카의 의도는 '고모처럼' 계속해서 부모에게 얹혀 살며 캥거루족이 되겠다는 것이어서 제 엄마를 더욱 펄쩍펄쩍 뛰게 만들었지만, 옆에서 듣는 나는 염려스러우면서도 뿌듯했다. 스스로 요즘 내 삶이 과연 행복한가 회의에 빠져있던 시기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소소한 데서 찾는 깨알 같은 행복으로 만족하기엔 속물스러움이 점점 심해진다. 욕심은 커지고 몸을 써서 들이는 노력은 차츰 아끼고만 싶다. 불평과 짜증은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나 이마엔 깊은 三자 주름이 새겨진 느낌이다. 그러던 중에 가끔씩 촌철살인 예리하게 솔직함을 드러내는 공주에게 들은 '행복해보인다'는 말에 얼마나 기운이 솟는지 모르겠다. 요즘의 감정곡선으론 몇달 안 지나서 또 죽상을 하고 있기 십상이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꽤 훌륭한 자기최면의 화두가 될 것 같다. "고모가 얼마나 행복한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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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유감

투덜일기 2010. 9. 2. 15:40

초등학교 앞 문방구의 최고 인기품목이 하나에 이천원짜리 커플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줄곧 어여쁜 조카 공주의 로맨스를 기다려왔다. (어쩌면 약간은 두려워하면서... 아니 왜? -_-;;)  헌데 유치원 시절에 몇몇 남자아이들의 이름을 대며 좋아한다고, 나중에 결혼할 거라는 결심을 토로했다가 금세 마음을 바꾼 시시한 해프닝 이후로 지금껏 6, 7년째 공주는 남자애들에게 관심이 없다. 은근히 유도심문을 해봐도 전교생 중에 썩 괜찮은 남자애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건 이성에 큰 관심이 없다는 뜻이겠지? 눈도 높고 어려서부터 워낙 도도한 편이라 그건 그러려니 할 수 있겠는데, 내가 보기엔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고모 특유의 콩깍지 모드임은 나도 안다) 공주를 어째서 남자애들이 그냥 두는 것인지 그건 좀 이상했다.

물론 1학년 때부터 공주에 대한 순정을 6년째 이어오고 있다는 '땅꼬마' 남자애가 하나 있다는 건 알지만(현재 이 남자애는 공주와 다른 반이다), 제 친구들이 벌써 몇 번이나 커플이 되었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별다른 연애사건이 없으니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좀 아쉽다. 하다못해 심히 연애인자가 부족한 나조차도 국민학교 다닐 때 몇번이나 스캔들이 있었는데 말이지!

그러던 차에 얼마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컵스카우트인가 뭔가에서 공주는 요번 방학동안 중국엘 다녀왔는데 그때 같이 갔던 5학년짜리 남자애가 5박6일의 여행에서 돌아온 뒤 공주에게 문자를 보냈단다. '우리 사귀자'고!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공주에게 물었더니 그냥 문자를 씹었단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느꼈나보다. ㅋ 헌데 생각할수록 그녀석이 괘씸하다. 제 아무리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유행이라지만, 5학년 땅꼬마 주제에(공주 키가 부쩍 자라는 바람에 남자애들은 동급생들도 거의 내려다본단다) 6학년 누나를 마음에 품었으면 사귀자고 달려들기 전에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부터 해야하는 거 아닌가?!

돌이켜보니 주변인들의 요즘 연애담을 들어봐도 다 비슷하다. 가물가물 기억도 잘 나지는 않지만 과거 추억을 들춰보면 분명 누군가 먼저 좋아하는 마음을 품거나 거의 동시에 마음이 통해서 사랑을 고백하고 망설이거나 적극 응수하는 단계를 거쳐 본격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새는 일단 서로 '조건'과 '스펙'을 맞춰보고 '느낌'이 괜찮은 것 같으면, 혹은 별로 마음에 안들더라도 싱글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단순한 목적만으로도 '일단 사귀고 보는' 식이다. 애틋한 마음을 고백하거나 어떻게든 감정을 전하는 노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촌스러운 감정 소모를 대신하여 고가의 선물이나 커플링이 오간다. 예로부터 중매 시장에서 남녀가 조건에 맞춰 서로를 재본 다음, 세번만에 옳다구나 결혼을 결심했던 전례가 어느새 연애 분야에도 물든 모양이다.

매사에 이기심이 늘어난 요즘 사람들은 혹시라도 감정이 상할 것을 염려하여 섣불리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지는 않으면서 은근슬쩍 얍삽하게 '어장관리'만 한다는 이야기도 익히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아, 이제 나는 연애하기 정말 글렀구나, 하는 사실이다. 내가 너무 구식이라서 (물론 하도 오래 돼서 연애인자가 메말라버린 건 인정한다) 좋아하는 마음도 없이 '일단 사귀고 보자'는 시도 정도에는 도저히 넘어가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귀자'는 말에 이미 '네가 마음에 든다. 좋아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올시다다. 오히려 그 말에는 '일단 사귀어 보긴 하겠는데 아님 말고' 하는 심보가 들어있을 뿐이다. 어린 친구들은 그 편이 더 속편하다고 말한다. 구질구질하지 않고 '쿨하게' 관계 정리가 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름지기 고백이라 함은 애틋한 감정 토로가 먼저여야 할 것 같다. 그 마음을 전하기까지 자기 감정을 곱씹고 돌이키며 망설이는 단계를 거치고 제대로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연애'이고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5, 6학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진짜 '연애 사건'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뭐든 어른들 따라하는 게 당연해진 요즘 사랑조차 가볍고 소모적인 유희로 변질되면 어쩌나 걱정이다. 구닥다리 고모의 마음으로는, 1학년 때부터 줄곧 우리 공주를 좋아했던 녀석이 갑자기 훌쩍 키도 자라고 멋있게 변해서 (공주 말로는 걔가 아토피가 심해서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지만 ㅠ.ㅠ) 순애보를 성공시키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 같다. 그 녀석이 아니더라도, 제발이지 무작정 '사귀자'고 달려드는 놈들 대신 우리 공주에게 '난 네가 좋다'고 제대로 고백하며 접근하는 첫사랑이 다가오면 좋겠다. 고모로서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게... 엇, 열세살이면 너무 빠른가? 그럼 으음, 지금 당장은 말고 몇년 있다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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