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얼흥얼

놀잇감 2010. 10. 15. 17:35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하루를 시작하며 들은 음악은 이상스레 하루종일 흥얼거리게 된다. 엠피3이나 오디오, 라디오를 늘 가까이 하는 사람은 오히려 한 가지 음악에 얽매이지 않을 수도 있을 테지만, 나처럼 드물게 음악을 듣는 사람은 며칠씩 한 가지 노래나 음악에 얽매일 때도 있다. 물론 흥엉흥얼 콧노래를 부를 마음의 여유가 아예 없을 땐 한없이 삭막하게 지낼 때도 많다.

지난주엔 차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우연히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나오는 바람에 같잖게도 며칠 내내 가사도 잘 모르는 오페라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변화무쌍하게도 이번주의 주제가는 <개똥벌레>. 지난 주말에 다녀간 막내조카가 콘서트 놀이(방에서 불 꺼놓고 야광봉과 손전등을 휘두르며 "우윳빛깔 @@@!"를 외쳐대고 열광한다)에서 다섯 번도 넘게 불러준 노래였기 때문이다. 쪼끄만 녀석이 어떻게 그 헷갈리는 가사와 음정을 다 외웠는지 자꾸 순서를 바꿔 부르는 나한테 막 가르쳐줬다.
 
그 이전에는 TV의 영향으로 한동안 <넬라 판타지아>를 흥얼거렸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 합창대회를 할 때마다 그렇게 연습을 지겨워하며 이런 쓰잘데기 없는 행사를 왜 하나 투덜거렸건만,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대회 준비하는 과정을 보니 심지어 그때가 막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오래 전 교생실습 나갔을 때 반 아이들 합창대회 거들던 생각도 떠올랐고. 인간의 목소리가 정말로 훌륭한 악기라는 것도 실감했다. 내 악기는 그리 쓸만하지 않지만서도...

일주일 내내 자꾸만 <개똥벌레> 멜로디가 튀어나오는 게 지겨워져서 시방은 일부러 스팅 노래를 틀어놨다. 내가 계속 흥얼흥얼 따라하기엔 좀 역부족이지만, 이 가을엔 정말로 어울리는 목소리가 아닌가. 중고등학교 시절엔 꼭 라디오를 틀어놓고 공부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냥 배경일 뿐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젠 예민해진 건지 까칠해진 건지 음악을 틀어놓으면 완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멀티플레이어라야 살아남는 현대엔 참 어울리지 않는 인간형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내가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흥얼흥얼거리며 단순 노동을 하는 거다.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곡조도 맞지 않는 콧노래를 부르며 뭔가 일을 하고 있으면,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묻는 이도 있어 당황한다. 꼭 기분이 좋아서 흥얼거리는 건 아닌데 말이다. 나도 모르게 뇌리에 박혀 어느 순간  흘러나오는 흥얼거림은 어쩌면 기분 상승을 위한 일종의 정신작용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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