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사랑'에 해당되는 글 89건

  1. 2010.08.12 조카들 선물 14
  2. 2010.07.27 장래희망 6
  3. 2010.05.12 구김살 없는 그림 14
  4. 2010.04.18 소원을 말해봐 5
  5. 2010.03.28 8
  6. 2010.03.25 변화 19
  7. 2010.03.14 끝났다 20
  8. 2010.02.02 무서운 사람 13
  9. 2010.01.19 점 놀이 & 숨바꼭질 16
  10. 2009.09.14 주말 떼자전거 6

조카들 선물

놀잇감 2010. 8. 12. 16:09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가족 중 누군가 생일이 되면 무슨 선물을 받고 싶으냐고 다들 미리 묻는다. 엉뚱한 선물을 받고 난감해지기 싫은 실용주의 노선 때문이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포장을 푸는 설렘도 크지만, 취향을 '딱' 알아맞히기란 사실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다. 딱히 받고 싶거나 사주고 싶은 선물이 생각나지 않으면 성의 없는 '현금'이 오가기 일쑤이고 조금 발전했댔자 상품권이다.

민망한 말이지만 생일 때 선물목록을 만들어 주변에 돌리는 '몹쓸' 전통을 집안에도 끌어들인 건 나였다. 인간관계가 '너무' 방만해서 생일파티를 열번쯤 하느라 7월이 지나고 나면 체력과 지갑이 모두 고갈날 때 시작됐던 '습관'이다. 친구들이 생각해내는 선물이란 게 거의 비슷비슷해서, 립스틱, 향수 같은 건 마구 겹치기도 했고 장마철이 생일이다 보니 우산도 둘씩 받는 해가 속출했다. 해서 나는 뻔뻔하게 미리 위시리스트를 공개하고, 하나씩 골라 선물하도록 했다. -_-; 부담 되지 않도록 그리 비싸지 않은 걸로 품목을 정하고, 좀 덩치가 큰 건 몇명이 힘을 합하도록 부추겼다. 생일을 빙자해 한 살림 장만하려는 사기꾼이 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헌데 그 짓도 젊어서 한때나 할 노릇이지, 점점 선물 생각해내는 게 귀찮아졌다. 사실 별로 갖고 싶은 물건도 없었다. 갖고 싶은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사긴 민망하고 꼭 필요한 건 아니라서 선물로 받으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물건들이 점점 생각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속물스러움이 강화되면서 정말 갖고 싶은 물건은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기엔 턱도 없이 비싼 것들이었다. 미니쿠퍼, 턴테이블이 딸린 '좋은' 오디오 세트, 브롬톤...  ㅠ.ㅠ

몇년 전부터 결국 나는 생일 선물 위시리스트 만드는 걸 관뒀다. 물론 그간의 내 습관에 길들여진 친구들이나, 위시리스트의 존재를 모르고도 필요한 거 없으냐고 늘 물어왔던 지인들은 여전히 내게 뭘 사줄까 물었지만 난 대답을 회피했다. 필요한 건 다 샀고, 딱히 갖고 싶은 게 없다고... 생일을 기념하는 것조차 민망해 피할 수 있으면 생일 즈음에 만나는 것도 사양하다보니 오히려 서로가 편해진 듯했다.

하지만 가족 파티까지 피할 수야 없는 법이므로, 조카들에게는 선물을 꼭 지정해준다. 그림이나 축하카드, 편지를 써오라고. 그래서 올해 받은 조카들 선물을 공개하려고 시작한 포스팅이었는데 잡설이 길었다. ㅋ

자기들이 그려준 그림을 내가 신주단지 모시듯 소중히 여긴다는 걸 알면서도 조카들은 머리가 굵어지면 어느 순간 그림선물을 하지 않는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다 이젠 나보다도 키가 커버린 조카공주는 생일선물도 '빵빵한' 걸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기분파다. 그냥 그림 한 장 그려주면 된다는 데도 용돈을 톡톡 턴다. 받고 싶은 선물 없다는데도 올해도 역시나 나를 거의 쥐어짜듯 닥달해 현물로 선물을 안겨주었다. 누나에게 고무된 그 동생 녀석도 뜻밖의 선물을 들고 왔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내 기대를 가장 충족시켜준 건 손수 그린 그림과 직접 꾸민 카드를 들고 온 녀석들이었다.


작년만 해도 그림을 그려오더니 형아인 준우는 요번엔 손수 해바라기 카드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생이면 이 정도 만드는 건 우스운 걸까? 내가 보기엔 손끝이 보통 여문 것 같지가 않다.
꽃잎 하나 비뚤어진 구석이 없다! +_+
하트 두 개, 준우 올림 ㅎㅎ 
이걸 내밀면서 녀석은 두달 뒤인 자기 생일에 받을 레고 시리즈를 가격까지 알려주며 상기시켰다. ㅋㅋㅋ

두 형제의 그림과 카드는 현재 냉장고에 붙어 있다. 아마 내년 생일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킬 거다.


다음은 정민이랑 지환이 선물

뒤쪽에 있는 장우산이 정민이 선물이고
앞쪽의 화려한 팔찌가 지환이 선물이다. 지환인 더 화려한 걸 골랐는데 제 엄마와 누나가 극구 말리며 대신 추천해준 거란다. 사내녀석들은 내가 '화려하고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한다. +_+ 민낯을 들키면 '못생겨졌다'고 구박이나 하고...

우산은 아직 개시도 못했지만 (장우산 쓸 만큼 별로 비가 안오기도 했지만 아까워서!) 팔찌는 벌써 여러번 하고 다니며 자랑했다.

그렇다고 두 녀석이 편지를 생략한 건 아니다. ^^

조카들 염원대로 '행복하게 살으'련다.

그러고 보니 다른 녀석들은 머리 굵어졌다고 폰카를 들이대면 마구 피하는 통에 갖고 있는 최근 사진이 없다.
조만간 몰아놓고 또 한방 박아서 들고 다녀야지...

바쁨을 핑계로 거의 한달만에 자랑질을 마치니 몹시 뿌듯하다. ^^v
고모로 사는것의 묘미는 역시 이런 맛이다.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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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

하나마나 푸념 2010. 7. 27. 22:24

넌 꿈이 뭐니?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른들이 습관적으로, 그리고 요즘은 강박적으로 아이들에게 던지는 저 질문은 내가 어린 시절에도 종종 들었던 말이다. 그때마다 나 역시 생각나는 대로, 선생님, 외교관 정도의 '모범적인' 대답을 하긴 했지만 질문을 던지는 어른이나 대답하는 나나 특별히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서 나눈 대화는 아니었다. 처음 만난 어른들이 괜히 할 말 없을 때 날씨 얘기, 시사 얘기 꺼내듯이 허투루  꺼내는 화제와 별 다를 게 없었다는 뜻이다.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직업이 뭔지 찾았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달려오긴 했지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의 꿈은 아마도 내가 남은 평생 선망을 품을 하나의 가능성이 아닌가 싶다.

헌데 가엾게도 요즘 아이들은 상황이 다르다. 자기 꿈이 뭔지, 뭐가 되고 싶은지 빠르게는 초등학생 때, 늦어도 중고등학생 시절엔 이미 목표를 정해 그 준비에 매진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떨려난다고 믿는 어른들 때문이다. 뭐가 되고 싶은지 확고한 주장이 없으면 꿈도 야망도 없는 하찮은 아이로 손가락질 받기 일쑤다. 대학시절을 돌이켜볼 때 나는 지금도 그 때가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여기며 4년 내내 거의 줄창 놀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보낸 추억을 곱씹는 반면, 요즘 대학생들은 신입생 때 이미 취업준비에 매달려 학점따기에 여념이 없다. 조교시절 내가 혹시 출석 확인 잘못하는 바람에 성적에 지장 있을까봐(지정좌석제라 2시간 내내 맨 뒷자리에 앉아 학생들 출결을 확인했었다) 수업 때마다 출석표를 일일이 확인하며 따져대던 학부생들한테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로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요즘 아이들 꿈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훌륭한가 하면 절대 아니다. 초등학생들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 우선은 꿈이 죄다 좋은 학교 진학인 모양이다. 국제중학교, 특목고, 명문대 따위로 이어지는 숨막히는 목표의 반복 속에서 부모들은 정말 자식의 꿈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나와 달리 학부모의 고충을 심히 겪고 있는 친구에게 엊그제 들으니 요즘 중산층 부모가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려면 필수조건이 네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동생의 희생.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기가 막혀 코웃음이 나오면서도 씁쓸했다. 그래서, 자식 하나 명문대 보내서 그 다음엔 어쩔건데???

세상이 하도 거지같다보니, 그저 행복하고 씩씩하게만 자라주었으면 싶은 사랑스러운 나의 조카들도 벌써부터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자기가 뭘 잘하는지 장래희망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왜 아니겠나.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 '코르동 블루' 같은 유명 요리학교에 진학해야 '성공'할 수 있으니까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어른들의 채근이 이어지고, '화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하찮은 그림 하나 그릴 때마다 창의력을 더 키워야 하네 마네 잔소리를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지금 무슨 꿈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른들의 결론은 하나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어떻게 온 세상의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할 수 있나! 공부 잘하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타고난 재능이던데...
 
100점짜리 시험지나 최우수상 상장을 자랑하며 한껏 어깨를 으쓱거리는 조카들을 무한히 칭찬해주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이 답답해진다. 잘난 척 해도 나 역시 성적지상주의에 갈채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초등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2, 3주 전부터 밤늦게까지 시험준비를 해야하는 세상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돌아갈까. 혹시라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90점, 80점으로 점수가 점점 떨어져 성적표에 '노력요함'이 적힌 과목이 차츰 늘어나면 아이들은 또 어떤 상처를 받게될까.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잇달아 당선되긴 했지만 학력중심의 사회구조와 행복은 반드시 성적순이라 믿는 부모들의 맹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나라 교육에 희망은 없어 보인다. 교육정책을 만들어내는 공무원이나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들도 과거 어린 시절 죄다 우등생이었을 텐데, 공부 하기 싫고 잘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까지 과연 헤아릴 수나 있겠나. 공부를 못하면, 고가의 사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하면, 웬만한 꿈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요즘 아이들 절반 이상의 장래 희망이 하나같이 '연예인'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그 꿈은 지긋지긋한 학교공부와는 멀어질 수 있으니까.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재롱만 피우던 조카들의 머리가 굵어지는 걸 바라보며 그 녀석들이 장차 과연 어떤 인물로 자라날지 어떤 인생을 선택할지 몹시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녀석들에게 뭐가 되고 싶으냐는 귀찮은 질문을 던져댄다. 부모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고모로선 그저 행복한 사람, 올바른 사람, 된 사람이 되라고 조언하는 것으로 충분할 텐데 자꾸 속물근성이 튀어나온다. 스스로 올바른 사람, 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장래희망을 나 역시 행복한 사람, 올바른 사람, 된 사람으로 바꾸어야 할 모양이다. 이미 너무 늦어버린 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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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김살 없는 그림

놀잇감 2010. 5. 12. 20:40

간만에 숨 좀 돌린답시고 구김살 얘기를 썼더니 계속 기분이 구겨진 채로 있는 것 같아, 다시 반전을 모색하는 포스팅이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땐 그저 만만한 게 나의 조카들 자랑. ㅋ

첫조카가 생겼을 땐 나의 조카만 '유독 천재'라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거라고 착각했고, 화가의 혈통(울 막내고모)이 어떻게든 유전자로 발현된 게 틀림없다고 감탄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의 조카들도 그 또래 때는 다들 비슷한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모양이었다. 개인차야 약간씩 있겠지만, 나의 조카들만 천재성을 발휘한 건 아니란 사실에 좀 맥이 빠졌어도 여전히 나는 "혹시 몰라..." 하는 마음에 아직도 조카들이 이면지 따위에 그려준 작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헌데 녀석들의 머리가 굵어지면서 언제부턴가는 통 작품을 받을 수가 없어졌다. 내가 지켜본 결과 아이들이 가장 황홀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시기는 다섯살 전후(만으로는 48개월 전후)이고, 유치원이다 뭐다  제도권 교육에 물들면서 7살쯤 접어들면 함부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해서 최근 2년간은 통 조카들의 새작품을 확보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는 의미다. 집에 놀러가거나 유치원 발표회 같은 델 따라가서 그간 그린 작품들을 구경할 기회가 더러 있긴 했지만, 오로지 나만을 위해 그린 작품을 헌사받는 기쁨을 그깟 한번 구경하는 것과 비교할 순 없는 법. 나로선 제일 어린 지우가 어서 커서 고모에게 그림을 안겨줄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우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어쩐 일인지 색칠에만 관심을 보여 윤곽선은 딴 사람에게 그리게 하던 녀석이 하루에도 스케치북을 몇권씩 써버린다는 소문이었다. 옳다구나 싶었고, 때를 노리던 나는 드디어 지우의 그림을 확보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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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봐

투덜일기 2010. 4. 18. 02:53

주말에 떼로 다니러온 조카네 식구들과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음식점엘 갔는데 막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 찰나, 뒷차로 온 조카들이 뛰어와서 내게 말했다.
"고모, 소원을 말해봐. 우리가 들어줄게."
"진짜? 아무 소원이나 말해도 돼?"
"응. 아무거나 얼른 소원을 말해봐. 우리가 다 들어줄게."
순간적으로 나의 뇌리엔 여러가지 소원이 스치고 지나갔다. 일본 절에서도 빌었던 부실한 왕비마마의 건강을 기원할까, 부질없는 인세 대박을 빌어볼까, 여전히 가시지 않은 꿈의 차 미니쿠퍼를 빌어볼까, 한옥집서 사는 로망을 빌어볼까...
"고모, 빨리!"
"알았어. 요번에 나오는 책 대박 나서 미니 쿠퍼 사는 게 고모 소원이야."
그러자 두 녀석은 동시에 내쪽으로 귀를 내밀며 말했다.
"우리가 들어준다고 했지? 잘 들었어. 고모 소원. 킥킥킥."
그러고 나서 녀석들은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후렴구를 흥얼거리며 소녀들의 손짓 안무를 흉내냈다.

대체 나는 녀석들에게 뭘 더 바랐던 것일까. 소원을 들어준다는 게 말 그대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에 바보처럼 마음에 구멍이 뻥 뚤리는 것 같은 실망이 스쳤다. 고얀 녀석들. 그래도 고모 놀려먹는 걸 신나하면서 즐거이 내 소원을 귀 기울여 들어줄 조카들이 있다는 건 축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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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0. 3. 28. 16:13

우리집 마루 한쪽 벽엔 조카들의 키를 재기 위한 눈금이 그려진 기다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정작 제 부모들은 제 자식들 키 크는 추세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볼때마다 쑥쑥 자라는 녀석들의 키를 거의 다달이 표시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괜스레 뿌듯해하는 걸 보면 난 확실히 '단신'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한 인간이다. 남자들도 180cm가 안 되면 <루저>라는 발언이 방송에도 나올 만큼 키 작은 걸 심각한 장애취급하는 사회이다보니 어쩌겠나. 부디 조카들은 훤칠하고 우월한 키로 세상을 굽어보며 살면 좋겠는걸.

키가 큰 사람들은 대부분 성장기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키가 확 자라는 시기를 경험하므로, 큰동생은 중3땐가 1년만에 14센티미터가 자랐다고 하고, 친구 하나는 초등학교 6학년때 너무 갑자기 키가 커서 밤마다 다리가 아파 엉엉 울어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경험들이 죄다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국민학교 입학했을 때 전교에서 제일 작았다는 전설속의 아이는 중학교 때 잠시 중간키 부류에 속하는 기쁨을 누렸을 뿐,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어느 집단에서든 제일 작은 축에 속하는 어른으로 살고 있다. 친구들 중에 나보다 작은 사람은 중학교 때 친구 1명과 고등학교 때 친구 1명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나보다 작았던 아이들을 확률적으로만 따져도 좀 더 많은 단신들을 사회에서 맞닥뜨려야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심지어 나는 스무살까지 느릿느릿 조금씩 키가 자라서 이만큼 된 것인데도!

사실 살아가는 데는 키의 크고 작음이 엄청난 변수로 작용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키가 작아서 좋은 점을 굳이 찾자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이랑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 정도이고(아이들은 자기들보다 몸집이 지나치게 큰 어른들에겐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낀다나 뭐라나;;) 그 외엔 그저 단신이라는 게 단지 외형적인 불만으로 남는 것 같다. 바지는 살 때마다 길이를 줄여 고쳐 입어야 하고, 굽 높은 신발에 길이를 맞춰 자른 바지는 단화를 신을 때 질질 끌려 못 입는다는 점(예외는 스키니진인데 워낙 유행이긴 하지만 다리가 더욱 짧아보이는 것 같아서 별로 마음에 들진 않는다), 무늬가 큼직큼직한 옷을 입으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점, 무슨 옷을 입든 조금이라도 키가 커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다는 점... ㅠ.ㅠ

정말이지 요즘 아이들의 발육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아져, 우리집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중학교 아이들만 봐도 하나같이 늘씬늘씬 키가 크다. 하기야 그 옛날 20여년 전에 내가 교생실습 나갔을 때도 내가 맡은 여학생반에서 나보다 작은 애들은 1번과 2번 딱 둘 뿐인 듯했다. 자존심 상해서 앞번호 아이들과 정확하게 키를 재보지는 않았지만 눈높이로 대강 어림짐작했을 때 그랬다는 얘기다. 그러니깐 이제 6학년이 된 정민이가 내 키를 따라잡을 시기가 되었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수년째 다달이 키를 표시해두면서 그 날이 언제일지 두려워 하고 있었을 뿐.

사실 동생들이 다 키가 큰 편이고 막내올케 역시나 몹시 큰 편, 큰올케도 심히 작은 편은 아니라 조카들 역시 또래들보다는 그간 대체로 키가 컸다. 유독 정민이만 저학년때 작은 편에 속한다고 하더니 작년부터 부쩍부쩍 자라 1년에 거의 10센티미터를 컸고 6학년에 올라가서는 여학생들 중에서 세번째로 크다고 자랑을 했다. 애 키우는 엄마들 못지않게 육아상식이 많은 내가 알기로는 ^^;; 아이들 키가 1년에 평균 6cm 정도 자라는 게 정상 속도란다. 두달에 1cm씩 큰다는 얘긴데, 놀랍게도 최근 우리 조카들은 만날 때마다 평균 이상으로 키가 쑥쑥 자라는 게 눈에 보이는 듯하고 그 결과가 실제로 우리집 벽에 고스란히 눈금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이미 3학년으로 보일 만큼 늘씬한 키를 자랑하던 준우도 반에서 제일 크다나 두번째로 크대고, 요번에 초등학교 입학한 지환이도 또래보다 큰 편이고, 심지어 이제 겨우 다섯살이 된 지우도 발육이 월등하다. 우리집에 올 때마다 조카들을 눈금 벽에 세워놓고 키를 표시하면, 녀석들은 꼭 나와 다시 제 키를 비교한다. "전에는 고모 어깨에 닿았는데 이제는 턱까지 올라갔다!" 이러면서 기뻐하고...  그러면 나는 과연 다시 온 집안에서 제일 키 작은 사람으로 전락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머릿속으로 셈하며 비감에 젖는 한편 늘씬한 조카들이 마냥 자랑스럽다.

집안 서열에서는 왕비마마 다음으로 내가 2위지만, 지난 왕비마마 생신날 이후로 나의 키 서열은 정민이와 동률 6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정민이가 연초에 150cm를 넘어서면서 내 키를 따라잡을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석달도 가기 전에 나와 똑같아질 줄은 예상밖이었던지 그날 나는 약간 충격을 받고 말았다. 정민이는 신났다고 눈금 표시 옆 벽에 날짜와 함께 <고모와 정민 키가 같아짐>이라고 적고는 구름표시를 해두기까지. 그러더니 얼마전까지도 고모를 올려다봤는데 이젠 굽이 꽤 있는 운동화를 신으면 고모가 내려다보인다면서 자기도 잘 적응이 안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으휴. 

그나마 정민이는 6학년때 나와 키가 같아졌지만, 조카들 가운데 발육이 가장 훌륭한 준우는 이 추세라면 5학년도 돼지 않아 나를 따라잡을 확률이 높다. ㅠ.ㅠ 어린 녀석들이 발은 또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6학년짜리 발이 나보다 커진건 벌써 옛날이고 이젠 2학년짜리 신발도 내가 물려신게 생겼다. 자전거 열풍 이후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인라인 스케이트를 둘째조카한테 넘기긴 했지만 지금도 딱 맞으니 아마 올해 안에 작아졌다고 다시 반납할 게 확실하다. 조카들한테 운동화 물려받아 신는다는 이모나 고모의 이야기를 더러 듣기는 했지만 내가 막상 그런 입장이 되고보니 왜 이리 민망한지, 조카들의 우월한 성장이 뿌듯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160cm에 가까운 키라 옛날 사람치고 큰 편이었다는 왕비마마는 척추골절과 척추협착증 수술을 연이어 겪으며 자세도 굽었고 실제로 키도 많이 작아져 지난번 정기검진때는 허리를 잘 펴지 못해 무려 154cm로 기록되기도 했다. 요번에 여권을 다시 만들며 왕비마마는 그래도 꿋꿋하게 159cm라고 박박 우기셨지만 요즘 나란히 다녀보면 확실히 엄마 눈높이가 나와 비슷하다. 과거엔 드물게 엄마보다 키가 작은 딸로 살며 자존심이 좀 상했었는데, 노년의 엄마 키가 쪼그라든 걸 보니 마음이 더욱 좋지 않다. 젊어서도 작은 나는 나중에 늙으면 얼마나 더 작아질까 생각하면 더 서글퍼지기도 하고. 평균 이상인 사람들은 평생 대수롭지 않게 살아갈 키에 평생 연연해하는 나의 컴플렉스, 이제 좀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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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투덜일기 2010. 3. 25. 18:07

큰조카네 집에 강아지가 생기고 나서 제일 질색팔색 두려워한 사람은 둘이었다. 나와 막내동생네 둘째아들 지우. 특히 다섯살난 지우는 강아지 때문에 현관에서 아예 신발도 못벗고 벌벌 떨다가 방에 들어와선 계속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어야 할 정도였고, 아이들끼리 노는 방에 파랑이가 나타나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 하거나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면서 놀랍게도 나도 그렇고 지우도 그렇고 파랑이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줄었다. 물론 파랑이가 워낙 애정을 추구하는(?) 스타일의 강아지라 누구든 지네 집에 나타나면 아는 척 하고 안아줄 때까지 마구 짖어대며 꼬리를 흔들거나 심지어 두 앞발을 척 들어 다리에 매달리는 놈이라 나는 그럴 때마다 어쩔줄을 모르며 당황하긴 한다. 특히 제일 못참겠는 건 막 핥아대려고 하는 것!

암튼 내가 싫어하든 말든 큰조카네는 웬만한 외출에는 파랑이를 대동하고 다니기 때문에 우리집에도, 막내동생네 집에도 벌써 여러번 강아지가 다녀갔고 애완견 혐오파 가족(울 엄마와 막내동생네)들도 이젠 그러려니 하고 있으며, 나도 지우도 누군가 파랑이를 잡고 있거나 녀석이 좀 얌전하게 굴 때는 쓰다듬어줄 수도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요번에 막내동생이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보니 지우의 변화는 기대 이상이다! 슬며시 지우한테 배신감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긴 하지만 ^^; 두 녀석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어린이계의 얼짱 지우와 말티즈계의 얼짱 파랑이 인정> 어쩌고 하는 댓글을 단 걸 보면 나 역시 파랑이와 많이 친해졌구나 싶다. 애완견 생기면 집에도 안가겠다고 협박하던 내가 이젠 파랑이랑 나란히 차에 타고 갈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개 공포증 완화가 아직은 다른 개들한테까지 고루 미치진 못했다.



설상가상 아래층에서 하얀색 잡종견 강아지를 한마리 데려다가 겨우내 집안에서 키우더니 얼마 전부터 마당에 개집을 놓고 묶어 놓았다. 아직 강아지 꼬락서니를 한 이놈이 또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내가 현관을 드나들 때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넣을 때마다 우렁차게 짖어대서 괴로워죽겠고, 그럴 때마다 나는 시끄럽다고 녀석한테 야단을 친다. 어제 만난 아래층 아저씨는 녀석을 훈련시켜야 하니까 낯선 사람 아니고 계속 우리한테 짖을 땐 좀 혼내주라고 조언하던데, 그게 어디 쉬운가? 처음 파랑이도 그랬듯 이놈의 강아지도 나를 우습게 아는지 그간 계속 짖어대며 나와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던데!!

헌데 모든 강아지를 비롯해 성견까지도 좋아하는 공주는 어제 하루만에 벌써 아래층 강아지와 친해져 간식을 나누어주더니 귀엽다고 난리다. 곰돌이라는 이름도 알아냈고 아직 애기라 이빨도 몇개 없다는 것까지 시시콜콜 내게 보고를 했다. 고모도 맛있는 거 주면서 좀 친해지라나. -_-;;

어젯밤 공주를 배웅하러 갔다가 들어올 때도 분명 녀석은 우렁차게 짖어댔는데, 드디어 오늘 내가 두번이나 드나드는데도 개집 안에서 빤히 쳐다보기만 할뿐 짖지를 않았다. 하루만에 내가 이 집에 사는 사람이란 걸 파악한 건가?? 하기야 뭣도 모르는 놈이라 오히려 택배 아저씨들이 와도 짖기는커녕 집안으로 숨어드는 눈치라 내일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문득 나는 짖지 않는 녀석에게 감동하여, 순간적으로 집에 뭔가 녀석에게 줄 건강한 먹거리가 없는지 생각하고 있질 않은가. ㅋㅋ 스스로 이건 내가 아니다 싶어 얼른 그 생각을 물리쳤지만, 이런 놀라운 변화는 분명 파랑이 때문에 시작된 게 틀림없다. 그렇긴 해도 녀석이 부디 핥으려고 달려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변함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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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투덜일기 2010. 3. 14. 16:35

왕비마마의 칠순모임은 잘 끝났다. 일주일 전까지도 "니들끼리 가라, 난 창피해서 안 갈란다"고 버티던 왕비마마는 D-데이를 나흘 앞둔 날 자진해서 새로 파마를 하고 오셨고 어떤 옷을 입고 갈지 골라두며 호의적인 태도로 돌아서 마음을 놓게 했고, 어젠 최상의 컨디션과 환한 얼굴로 주인공 노릇을 훌륭히 해내셨다.

연회실 규모가 정해져 있는 바람에 혹시 예약인원과 참석인원이 크게 달라 자리가 모자랄까봐 염려했던 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는데, 못온댔다가 뜻밖에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다고 했다가 못오신 분들도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마지막으로 조정한 예약인원과 딱 떨어진 셈이었다. 전화 거는 거 병적으로 싫어하는 내가 초대전화부터 참석확인 전화까지 돌려대느라 참 애썼다. 스스로 장하다. -_-;

오래전 외할머니의 산수연에서 예상밖으로 손님이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뷔페 음식이 모자랐던 망신살을 모두 기억하고 있던 터라, 모임을 예약하면서 우리가 가장 강조하고 확인한 게 음식이 계속 리필되느냐는 점이었다. 나의 식탐도 식탐이지만, 좋은 날 손님들이 밥 먹다가 음식 모자라는 것만큼 민망한 일이 또 어디 있겠나. 어제 호텔에 미리 도착해서도 그 점을 재차 부탁해두었는데 ㅋㅋ 차린 음식이 너무 많이 남아 안타까울 정도였다. (외할머니 산수연을 한 호텔이 더 유명한 데였는데 거긴 왜 음식이 모자랐을까 이상하다. 인원차가 너무 컸던 것일까?)
 
어르신들은 오락가락 돌아 다녀야하는 뷔페를 싫어하시는데도 굳이 뷔페식으로 정한 건 모이는 시간 때문이었다. 한정식이나 중식은 다 모여야 시작할 수 있는데 한국사람들이 어디 그런가. 양식은 우리집 어른들이 더욱 싫어하시고... 거기다 우리집 바로 옆이라는 이점 때문에 최종 선택된 장소는 뷔페식당 맛이 별로 없는 것으로 유명(?)해 내심 꺼림칙했었다. 메뉴를 선택할 때도 잠시 머리털 쥐어짜며 고민했지만, 뷔페 음식이 맛있어 봤자고 또 맛없어 봤댔자 한끼 정도는 눈감아 주리라 믿으며 마음을 접었다. 그나마 뷔페 주방과 연회 주방은 다른 곳이라고 해서 혹시 기대를 했는데, 기대치가 낮았던 때문인지 음식 맛도 대체로 괜찮았다. 친척분들이야 인사치레로 맛있었다고 하실 수 있겠지만, 입맛 까다로운 조카들이 인정해주었으니 안심.

약간의 혼선이 있었던 부분은 사회자를 비롯해 마이크까지 일절 필요없다고 얘기해 놓았는데, 뜻밖에도 조카 두 녀석이 축하노래 공연을 하겠다고 나섰던 점이었다. 무반주에 마이크도 없이 용감한 형제가 <죽어도 못보내>(클라이막스 부분)와 <사랑비>(전곡^^;)를 부르는 바람에 분위기가 한층 더 즐거워졌으니 나중에 마이크 가져다준다고 어수선해졌던 것까지도 유쾌한 해프닝이었다. 또 어린이들만 죄다 앞으로 불러내 케이크 앞에서 왕비마마 할머니를 위한 생일축하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촛불 켜주는 직원이 음을 너무 높게 잡아주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노래가 엉망이 돼버렸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하마터면 좋은 날 나 혼자 울컥 해서 질질 울뻔 했던 위기를 웃으며 넘겼으니 결과적으로 다 좋았다.

간만에 높은 구두를 신어서 그러나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무사히 행사를 마친 다음날의 피로감은 꽤나 묵직하다. 어쨌든 다 끝났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또 10년 맘 놓고 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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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사람

투덜일기 2010. 2. 2. 22:02

아버지가 생전에 늘 그러셨다. "나는 제일 무서운 사람이 쟤(나를 가리키며)"라고. 엄마도 그 말뜻을 이제야 알겠다며, 내가 제일 무섭고 눈치 보인단다. 대외적으로는 소심하지만 가족에게는 해야할 말이나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내 성격 때문일 것도 같고, 또 연로하신 부모님과 동거하는 비혼 자식의 흔한 상관관계 때문일 듯도 하다. 하기야 가끔은 고모님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듣고 살았다. "나는 라니가 제일 무서워!" 병약하고 연로한 울 왕비마마 대신 집안 대소사에 얽힌 의견조율과 결정을 내가 도맡으면서 목소리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만큼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기도 한데, 한 몇년 쯤 어디론가 멀리 사라졌다 오면 모를까 어느덧 <집안의 최고어른>이 되어버린 왕비마마를 모시고 사는 한은 권한대행 격으로 휘두르는 칼자루를 놓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작은아버지들도 장손인 동생놈과 의논하는 것보다 아직은 형수님 계신 우리집과 먼저 상의하는 게 옳다고 느끼시는 모양이라, 톡 잘라서 손떼겠다는 말이 안나온다. 어쩌면 내심 무서운 사람으로서의 권력을 즐기는 건 아닌지.

암튼 친지들은 내가 제일 무서운 사람이라는데, 나는 조카들이 제일 무섭다. 특히 섣불리 한 약속을 절대 안 까먹고 들이대는 조카들의 새카만 눈망울을 보면 오금이 저린다. 얼마 전엔 공주한테 이런 말도 들었다. "약속 안지키는 어른들 정말 짜증나! 고모도 똑같아!" 주로 놀러 가겠다거나, 장난감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해놓고서 기한을 못지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방학엔 은근히 공허한 약속을 남발했다가 덜컥 개학을 맞고 말았다. 게으름 탓에 언제나 마감에 쫓기는 마감인생 고모가 특히 월말월초에 바쁘다는 걸 조카들에게 핑계대기엔 스스로도 민망하지만, 결국 이번 방학 약속은 봄방학으로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부디 봄방학 동안에는 고모의 신용을 좀 회복할 수 있으려나. 조카들이 조금 더 크고 나면 "고모 놀자!" 소리도 하지 않게 될 거라고, 그 때가 올까봐 벌써부터 속상한 마음은 분명 있는데, 동시에 "고모 놀자!"는 말이 무섭기도 하다. 체력 딸리고 아이디어 딸려서 예전처럼 뛰노는 놀이는 쉬 지치는 데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안기기라도 하면 허리가 휘청~ 자빠질까 겁난다. 마음 한 켠으론 내게 무서운 사람으로서의 짜릿한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있는 녀석들이 그만 자랐으면 좋겠다가도, 팔팔하던 예전보다 고모 노릇을 제대로 못할까봐 겁이 나는 모양이다. 에구구. 그나저나 봄방학도 열흘밖에 안남았다. 원고 독촉보다 더 무서운 조카들과의 약속을 위해서라도 더욱 매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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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놀러온 조카들과 <점 놀이>를 했다.
방안을 캄캄하게 해놓고 작은 눈사람 조명만 켜놓고는 돌아가며 점쟁이가 되어 궁금한 점을 풀어주는 놀이인데 난생 처음 해본 거다. 녀석들이 점집에 가봤을 리는 없고 무릎팍 도사를 본 영향인 것 같다.

<손님 1>
공주 도사: 무슨 고민이 있어서 오셨나요?
손님: 제가 번역한 책이 안 팔려서 걱정입니다. 올해는 잘 될까요?
공주 도사: 네, 올해는 대박이 날 겁니다.
손님: 진짜로요? 일도 잘 못하는데요...
공주 도사: 네, 잘 됩니다. 근데 조카들이 일을 방해해서 가끔씩 늦어지긴 하지만 결국엔 다 잘 될 겁니다.
손님: 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공주 도사: 5만원입니다....
(복채가 5만원이나 하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참고로 공주 도사는 13살)

<손님2>
왕자 도사: 무슨 고민으로 오셨나요?
손님: 저는 동물이 너무 싫고 무서운데 조카들이 자꾸 개를 데리고 놀러옵니다. 어떻게 하죠?
왕자 도사: (은근한 목소리로)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손님: 네? 다른 방법은 없나요?
왕자도사: 네, 익숙해지세요! 무서워도 자꾸 만지면 됩니다. 겁내지 말고 처음엔 머리를 쓰다듬어주세요. 그러다 등까지 쓰다듬어주면 친해질 수 있습니다.
손님: 겁나서 못하겠던데요.
왕자 도사: 가보세요. 5만원입니다.
(왕자도사 올해로 8살)

조금만 더 놀다 가겠다고 떼를 쓰던 조카들은 마지막으로 가기 전에 숨바꼭질을 딱 두판만 하기로 했는데, 두번 다 내가 술래였다. 곳곳에 숨은 조카들을 찾으러 다니는데 내가 건넌방에 다가가자 갑자기 강아지가 막 짖어대며 나의 접근을 막았다. 혹시나 방문을 열어보니 그 뒤에 공주가 숨어 있었다. 다음으론 안방문을 열려고 하자 또 강아지가 무섭게 짖어댔다. 웃기는 녀석이다. 제 딴엔 아이들 못찾게 막아주겠다는 뜻인 모양인데, 더 표나게 짖다니. 역시나 안방엔 작은 아이가 숨어 있었다. 집안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쬐그만 게 아이들 보호자 역할을 하려 든다. 누군가 조카들을 혼내거나 때리는 시늉을 하면 무섭게 짖어대거나 말린단다. 놀랍다. 어린 조카들과 강아지가 중년적응에 힘겨워하는 고모보다 똘똘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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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떼자전거

놀잇감 2009. 9. 14. 01:44

가을에 태어난 조카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주말에 막내동생네서 미리 파티를 했다. 하지만 파티보다 중요한 건 내 자전거를 싣고 가서 준우왕자와 함께 자전거로 일산 호수공원을 같이 돌기로 한 약속이었다. 조카는 새로 장만한 자전거도 자랑할 겸, 그리고 요즘 "내가 워낙 빨라서 아마 고모는 못 따라올걸!"이라며 큰소리를 쳤던 자전거 타는 솜씨도 보여줄 겸 기대가 큰 눈치였다. 토요일에 비가 좀 온다고 했다면서 어른스럽게 며칠 전부터 날씨 걱정을 할 정도로...
나 역시 주초부터 주간날씨를 열심히 살피며 토요일엔 비가 안오길 바랐지만, 금요일밤부터 억수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천둥번개까지 치더군. 그나마 오후부턴 날씨가 갠다기에 희망을 품었지만, 집 나서려던 2시쯤엔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들며 다시 소나기가 내려 마음을 조렸다. 
어쨌거나 소나기 후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사라지고 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토요일. 정민공주네까지 자전거를 두대나 싣고 와 꿈에 그리던 우리 가족의 호수공원 떼자전거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다혼의 우베공이 두대, 역시 다혼의 실버팁 한대, BMW 미니 자전거 한대, 삼천리 애팔래치아 한대, 성인용 자전거는 모두 미니벨로였고, 준우의 삼천리 넥스트 프로액션 SF, 지환이의 레스포 자전거, 지우의 삼천리 하이킥까지 모두 모으면 자전거가 여덟대였지만 어젠 올케가 우리 왕비마마 보필을 담당하는 바람에 준우네 자전거가 한대 빠졌고, 정민네도 자전거를 두대밖에 싣지 못해 총 여섯대가 호수공원으로 출격했다. (근데 멍청하게도 자전거 몽땅 모아놓고 사진찍는다는 걸 까먹었다. 뒤늦게 미니가 합류할 때쯤엔 조카들 건사하느라 내가 정신이 좀 빠져 있었던 모양...ㅠ.ㅠ 다음에 진짜로 다 모여 떼차질할 땐 꼭 기념촬영 해놔야지...)
9월 결심을 세운 날 딱 하루만 느루를 탔던 데다 밤새 아침까지 계속 시간대별 날씨상황을 알아보다 잠드는 바람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나는 호수공원 쯤이야..라며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거의 10년 전에 거의 주말마다 호수공원에 놀러가서 빌린 자전거로 두어바퀴 쯤 수월하게 돌고 나서 잔디밭에 앉아 음주를 즐겼던 전적을 믿었던 것.
그런데 변수는 놀랍게도 조카들의 자전거 실력이었다. 무조건 일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들은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도 나에게 절대 앞장서면 안된다고, 반드시 자기네 뒤에서 쫓아와야한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그러지 말라고 해도 걔들보다 빨리 타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아니 쬐끄만 녀석들이 속력을 어찌나 내는지!
그나마 중간중간 사람들이 많아 속력을 줄여야 했는데도 준우와 정민 두 녀석을 따라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고 나니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인데도 내가 집에서 월드컵 공원 다녀오느라 1시간 자전거 탄 만큼의 체력소모가 느껴졌다.
중간에 음료수 마시고 수다떨며 한참을 쉬기는 했지만, 막내가 앞장서 마지막으로 한바퀴를 더 돌기 시작하자 중간 무렵부터 난 도무지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_+ 헥헥대며 뒤쳐져 도착하는 나를 본 동생들은 얼굴이 허옇게 됐다면서 딴사람한테 자전거 넘기고 차라리 운전을 하라고 권할 정도. 하지만 그럴 정도로 지친 건 아니었다규!!
어쨌거나 새삼 놀라웠다. 쉬지않고 재잘대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체력이 대단한 것이야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고모 앞에서 계속 온갖 묘기(한팔로만 잡고 운전하기, 엉덩이 떼고 페달 밟기, 두 다리 쫙 벌리고 자전거 타기, 요리조리 계속 방향바꾸며 타기 따위)를 부리느라 지쳤는지 준우왕자 역시 두 바퀴째엔 나랑 같이 뒤로 쳐지긴 했지만, 집에 와서도 또 숨바꼭질하며 뛰노는 녀석들을 보니 내 체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민공주는 제 삼촌의 뒤를 끝까지 바짝 쫓아갈 정도로 지칠 줄을 몰랐다는데, 한강변에서 제 아빠와 자전거를 오래 타도 어디쯤 오나 돌아보면 언제나 바짝 따라오고 있어 놀랄 정도라고 했다. 하기야 요즘 손과 발이 나보다 더 커버린 열두살 공주가 와락 나를 붙잡고 힘을 쓰면 나는 꼼짝없이 항복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완력이 세다.

주말에 조카들과 자전거를 타보고 깨달은 게 있다. 꼬박 1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간 나름대로 중간중간 숨이 찰 때도 있고 일부러 완만한 경사를 올라 허벅지가 팍팍해지는 걸 느끼긴 했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슬슬 쉬엄쉬엄 자전거를 탔는지. 기어도 늘 제일 높은 데 놓고 페달질을 게을리했는데 결코 그게 좋은 운동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개천변 자전거도로에 하도 사람이 많아서 빠르게 달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이 큰 핑계는 되지만, 월드컵공원에선 더 빨리 달리는 연습을 했어야 옳았다. 앞으로도 자전거를 얼마나 자주 탈지 장담할 순 없지만, 어쨌든 어린 조카들한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달리는 연습을 해두어야겠다. 그래야 이렇게 몇 시간 자전거 탔다고 담날 하루 종일 지쳐 뒹굴거리지 않을 수 있겠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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