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잠깐 슬럼프를 겪는 듯 집에선 잠시 그림을 멀리했다던 지우는 다시 폭풍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루에 스케치북 한권도 금세 다 써버리는 시기가 아닐는지 ㅋㅋㅋ 예쁘고 진지한 그림은 유치원(미술학원?)에서 매일 그리니까 집에선 '이상한' 그림을 그리겠노라고 선언하는 적도 있었다는데 암튼... 최근에 또 한권의 작품집을 끝내 집으로 가져왔다는 기쁜 소식도 들리고 하여, 2차 작품집 본격 자랑질의 예고편 격으로 지우 그림 몇장 또 소개할 작정이다. 휘휘 떨어져 내리는 낙엽 따라 마음이 늘어져 그런지 통 포스팅할 '꺼리'도 생각 안나기도 하고...
첫번째 그림은 지난 9월 지우가 준우형님 생일 선물로 그려준 작품이다. 타자로 활약하는 형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투수가 공을 던질 때부터 야구공의 움직임을 화살표로 표현해놓았다는 점. ^^; 준우형아가 홈런을 쳤단다. 그림 오른쪽 하단의 초록색 물체가 바로 야구장의 그물망을 표현한 것인 듯. 외야수가 팔을 한껏 높이 뻗었음에도 공은 담장을 넘어갔다. 캬... 6살 지우가 아직 한글을 다 깨우치지 못하였으므로 생일 축하 메시지는 엄마에게 불러주어 적게 하였고 '지우가'라는 서명만 본인이 작성했다고... 수줍음 많은 형한테 부끄럼타지 말라는 게 요지다. ㅋㅋㅋ
2011년 9월 [야구하는 준우형아]
두번째 작품은 색연필로 그린 [용의 공격] (설명 들은 걸 고새 까먹어 제목 내 맘대로 붙였다;; ㅋ)
입에선 불을 뿜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의자에 앉은 사람이 고삐를 매 조종하고 있고, 입엔 여의주까지 물었다. 두가지 색깔로 표현한 불꽃하며, 날개에 그려넣은 무늬까지 아주 섬세하다.
2011년 9월 [용의 공격]
여의주 부분과 고삐를 잡아당기느라 몸을 뒤로 젖힌 사람의 자세까지 면밀히 보라고 올케가 상세사진도 보내줬다! 뾰족한 용의 귀부분도 완전 섬세해 섬세해~~!! 꼬마녀석이 연필로 어떻게 저런 곡선과 직선을 자유자재로 그리는지 모르겠다.
노랗게 반짝이는 큼지막한 별을 달보다도 크게 그린 것이 인상적. 저 삐죽하게 솟아오른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라!
이렇게 그려놓고 고흐보다 잘 그렸냐고 묻더란다. 물론 그렇다고 대답해주라고 코치했다.
고흐는 27살에 처음 그림을 그렸단다, 지우야! 너는 그사람보다 무려 21년이나 빨리 이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거야. 훨씬 더 훌륭하고말고!!
지난번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소개한 책을 지우에게 사주었더니 그걸 보고 따라그렸다는데, 장난꾸러기 지우는 해바라기도 그려주겠다며 성의없게
2011년 10월. 지우의 해바라기
슥슥 그려 위 그림에 연이어 사진을 내게 보내왔다. -_-;
지우 표정을 보면 그리기가 싫었거나, 어른들을 놀려먹고 싶었거나... 둘중의 하나가 아닐까나.
아래는 지우맘 카톡 사진에 올라있길래 얼른 청해서 받은 칠교작품이다. 방바닥에 저래놓았으니 영구보존할 수도 없고 참 안타깝다. 내눈엔 그냥 빤해 보이는 색깔나뭇조각으로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다 하는지 원... 지난번 불이랑 얼음 뱉어내 양을 공격하는 용이랑 사자 작품보다 훨씬 더 정교해졌다. 작품명은 [로봇]이라고.
2011년 10월. [로봇] 장판위에 칠교조각 ^^;
손에 든 건 각각 방패와 도끼란다. 이 작품 사진을 본 내가 말했다. 어디선가 아즈텍 전사의 향기가 나! ^^; 안 그런가?
다음으론 무지개 공작새를 탄 준우네 가족 그림. 지우가 집에서 특히 가족화를 많이 그리는 건 어떤 의미일지, 그만큼 가족애가 많다는 건지 문득 궁금하다. 이번에도 맨 앞에서 새를 조종하는 건 슈퍼맨처럼 망토까지 걸친 지우.
2011년 10월. [공작새를 탄 가족]
이 그림을 보고 준우가 자기만 이상하고 성의없게 그렸다고 화를 냈다고 들었다. 인물 가운데선 역시나 본인과 제 엄마를 제일 정성들여 그렸다. 그래도 내눈엔 새초롬한 공작의 표정과 눈초리가 제일 인상적. ㅎㅎ
2011년 11월. [감따는 지우]
마지막 작품은 그야말로 제2작품집의 예고편이다.
유치원에서 보내온 두번째 작품집 가운데 (아마도 요번 주말에 나도 알현할 수 있을 듯.. 두근두근 설레 죽겠다 >,.<) 제일 가을분위기가 물씬 난다며 동생들이 한 장 먼저 선보여주었다. 작품명은 <감따는 지우>.
나무 모양과 바구니, 창호지로 보이는 감은 선생님이 일괄 붙여주고 나머지 색칠과 나뭇잎 사람 그림을 시킨 모양인데, 지우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높은 감나무를 올려다보는 자세를 그렸다! 그 조그만 머리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감탄스럽다. 나 같으면 기껏해야 옆얼굴 그리고 말았을텐데... 아웅.
옷색깔이랑 양말까지 전체적인 색 배합이 참으로 예쁘다. 작품집에 또 어떤 그림이 들어있을지 궁금궁금...
올케랑 애들 먼저 버스 갈아타고 우리집에 오느라 지우 스케치북을 못가져왔대서 아직 구경 못했다. -_-; 역시 대가의 작품은 알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새로운 그림 사진 하나는 또 입수했다. 사진 상태가 그리 정교하진 않지만... 그래도 지우 그림은 소중하니까 ^^;
제 아빠의 회사 동료(후배?)가 결혼을 앞두고 집으로 인사를 왔다는데 결혼축하의 의미로 지우가 그려준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 스케치만 했을 때는 더욱 정교하고 세밀하여 아름다웠다는데 곧 도착한다는 전언에 마음이 급해 색깔을 대강 칠하면서 디테일이 지워져 안타깝다고 지우맘이 말했다. 어쨌거나 보자.
나비넥타이를 맨 신랑을 향해 어여쁜 신부가 걸어가고 있다. 처음엔 맨 왼쪽편 단상의 인물이 주례인 줄 알고 신랑이 신부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라 상상했는데, 아무래도 마이크를 손에 잡은 품새가 사회자 같다. ^^; 요즘엔 빨간색 주단 대신에 하얀색 레이스 비단을 깔아놓은 예식장이 많던데, 지우는 빨간색 주단을 선택했다. 흰색 일색인 웨딩드레스 대신에 장식과 채색이 화려한 드레스를 신부에게 입힌 것도 흥미롭다. 제일 기발한 건 화면 맨 아래쪽 테이블에 앉아 손을 든 하객의 모습이다. 제 아빠가 "어이 종오!"(이름 맞나 모르겠음)라고 신랑이름을 부르는 장면이라고...
시간이 넉넉해서 그림의 완성도를 좀 더 높였더라면 좋았겠으나, 뭐 이대로도 훌륭하다고 본다. 천재화가소년에게 이런 놀라운 선물을 받은 신랑신부는 얼마나 기쁠까나. ㅋㅋㅋ
어제 다니러온 큰동생네가 밤늦게 돌아갈 때의 일이다. 늘 하던대로, 동생은 계단을 내려가며 위쪽 현관에 서 있는 울 엄마에게 또 한번 인사를 했다. 엄마, 갈게.
그랬더니 아홉살 지환이가 대뜸 호통을 쳤다. 아빠는 내가 나중에 커서 인사할 때 '아빠, 갈게!'라고 하면 좋겠어? 급 당황해 말문이 막힌 동생을 본 내가 킥킥 웃으며 거들었다. 그럼, 그럼! 엄마,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인사해야지. 그치?
ㅋㅋㅋ 사십줄에 들어선지 오래인데도 부모님께 존댓말이 서툰 건 나도 마찬가지다. <엄마, 진지 잡수세요>라는 말을 연습하고 자주 써먹겠노라고 언젠가 포스팅을 하기도 했지만 그야 결심이 그렇다는 것이고 현실에선 "엄마!"라고 부르면 끝인 경우가 잦다. 기껏 높여봐야, "엄마 저녁 드셔". (오늘 저녁에도 이렇게 말한 듯;;)
밖에 나가선 그래도 제법 예의바른 언어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집안에서 나의 형제들이 부모님 존대를 엄중히 실행하지 못한 이유는 아무래도 부모님 두분이 서로 반말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겨우 한살 차이인데다가, 학년상으로는 같은 동네 친구로 연애를 시작해 8년만에 결혼했으니 두분이 평생 반말을 쓰고 산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해서 부모님이 서로를 함부로 대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냥 워낙 막역하고 정이 깊은 부부사이라고 느꼈을 뿐이다. 가족인 경우 반말이 곧 상스럽고 예의 없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친근함의 차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심지어 친할머니께도 오래도록 반말을 했었다. 할아버지랑 외할머니한테는 당연히 존댓말을 쓰면서도 친할머니한테는 존댓말을 쓰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 가끔 할머니께 반말하다 할아버지한테 걸리면 꾸지람을 듣기도 했지만 제버릇 남주나... (그렇다고 밖에 나가 낯선 어르신에게 함부로 반말짓거리 해대는 사람들은 싫다. 그건 몰예의, 몰상식한 거고!)
밖에서 보면 버르장머리없는 집안 내력이라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는데, 중학생이 된 정민이도 제 할머니한테 아주 편히 반말을 한다. 할머니가 용돈을 주면 옆에서 고맙습니다, 라고 하라고 잔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들릴락말락 '고맙습니다'라고 따라하는 적이 간혹 있지만 노상 반말 쓰다 갑자기 존댓말이 나올리 없지 않은가? 옆에서 제 엄마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라 종용해도, 고집스런 정민이의 대답은 '잘 쓸게, 할머니'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외출할 때 나 역시 지금도 '엄마, 갔다올게'라고 하는 판국에 감히 누굴 탓하랴.
반면에 사내 조카녀석들은 존댓말을 꽤나 유연하고 자연스레 쓰고 있는 듯하다. 만만한 고모한테는 당연히 반말을 써도 할머니한테는 차마 못그러겠다는 듯이. 그게 대단히 기특하고 장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말의 길이만큼 할머니와의 사이도 약간은 멀어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예절바른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면서도, 나는 더 자글자글 늙은 후에도 녀석들에게 '고모, 안녕히 계세요'보다는 '고모, 갈게!' 또는 '고모, 안녕~!"이라는 인사를 듣고 싶다. 내가 좀 이상한 건가? ㅎ 나도 자타공인 할머니 나이가 되면 마음이 달라지려나? -_-
어제 만난 친구에게 이사를 가긴 가야겠는데 집을 팔고 사는 문제도 두렵지만 일단은 30년 가까이 된 두집 살림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또 다시 푸념을 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몰래몰래 버리란다. 노친네들이야 워낙 오래된 물건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못버리게 하는 게 당연하므로 엄마 안 계실 적에 스리살짝. 그래야 하는 것이었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자신은 없다. 오래된 물건 못버리는 '지병'은 (이웃 주민 '쌘'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좀 심각한 걸 알기 때문이다.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 산 책 <나의 고릿젓 몽블랑 만년필>은 막상 읽어보니 내가 워낙 클래식 음악에 무지한 탓에 3분의 1 이상은 뭔소린지도 몰라 뒷머리를 긁적여야 했고,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 젠체하는 느낌이 드는 시인의 글이라 생각보다 별로였다. 그럼에도 지은이가 찍은 오래된 독일물건들 사진을 보는 건 참 좋았다. 런던에서 수학선생님을 하고 계시는 런던아줌마님은 물건 함부로 안 버리고 죄다 껴안고 사는 습관을 '영국병'이라고 칭하지만, 내가 보기에 오래된 물건 절대 안버리고 소중히 간직하는 태도는 유럽인들의 공통적인 특색인 듯하다. 그러니까 세계대전을 두번이나 치르고도 변함없이 간직된 수많은 골동품들이 유통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심지어 몇백년 전의 식료품 거래 영수증이나, 사적인 편지까지도. 유럽치고 벼룩시장 유명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나 말이다. 하다못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도 '야드 세일'이나 '거라지 세일'을 하는 판국에...
오래된 물건을 못/안버리는 습관은 어쩌면 근대의 정서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새로운 것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 확확 세상이 바뀌던 때라 과거에 대한 향수가 특히나 진했던 게 아닐까. 신문지도 함부로 안버리시던 우리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확실히 맞는 것 같은데, 세대를 거쳐 우리 부모님, 그리고 나까지 그런 성향이 이어진 이유는 역시 알쏭달쏭하다. 내 경우는 단지 좀 우유부단하고 청승맞아서 과거에 얽매이는 듯도 하고.
하여튼 독일 벼룩시장에서 지은이가 득템한 골동품들 사진을 보며 희희낙락하다가 제일 정겨웠던 건 몽당 연필과 색연필이 든 파버카스텔 필
통이었다. 같은 브랜드는 아니지만 나도 최소 30년 된 스테들러 색연필 갖고 있다규!
전에도 어딘가 쓴 것 같은데 중학교 때 고모부가 사다주신 '독일제' 색연필을 나는 아끼느라 1, 2년간은 계속 구경만 했었고 드디어 사용한 계기는 손수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기 위함이었던 듯하다.
고등학교 올라가선 친구들과 워낙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으므로 색연필로 편지지를 꾸미기도 했고, 예쁜 편지지에 좋은 글귀 적어서 코팅해 선물하는 유행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 색을 달리해 시를 베껴적는 정성을 들인 기억도 있다. 그렇게 드문드문 십수년간 사용했어도 좀체 닳을 일이 없었던 색연필을 본격적으로 소비하게 된 건 역시나 조카의 탄생 이후의 일이었다. 벽지 낙서를 거쳐 드디어 스케치북과 이면지에 작품을 그려주기 시작한 정민공주의 그림활동에 흐뭇해, 색연필이 막 부러져 하루에도 몇번번씩 깎는 일이 생겨나도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그렇게 조카들 넷을 겪고도 아직 꽤 건재(라기엔 좀 민망하지만;;)한 스테들러 색연필의 현재 몰골은 이렇다. ㅋㅋㅋ
녹이 슨 철제 케이스 위엔 정민이가 서너살 때 붙인 방귀대장 뿡뿡이 스티커가 어지럽기 이를데 없고(잘 떼지지 않아 뗄 수도 없다;;), 내용물은 중간에 없어지고 사라져버린 색깔이 많아 다른 색연필로 대체하는 바람에 마구 뒤섞였지만 아직도 그림놀이 할 때는 없어선 안될 소품이다. 문방구 가면 파버카스텔이든 스테들러든 48색, 64색 색연필이 번드르르 종류별로 진열되어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알면서도 30년 넘은 이 색연필을 못 버리고 갖고 있는 내가 확실히 청승은 청승이라고 인정할밖에. (그나마 핑계는 요즘 같은 브랜드라도 나뭇결이 거칠고 칼을 대면 뚝뚝 쪼개지는 색연필과 달리 연필 나무가 정말 연하고 부드럽다는 것. 똑같이 집어던져도 대체된 잡종 색연필보다 잘 부러지지도 않는다. ㅠ.ㅠ) 애지중지 써온 30년 역사와 색연필 하나하나에 깃든 추억을 생각하면 어떻게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얼마전엔 엄마가 난데없이 장농 서랍 정리를 하며, 시집올 때 함에 들었던 혼서지와 사주단자를 버리겠다고 내놓으셨다. 아예 쓰레기통에 넣어둔 걸 나는 다시 꺼내며 왜 이런 걸 함부로 버리느냐고 막 화를 냈다. 엄마는 우리 할아버지가 손수 쓰신 글씨체도 아니고 당시 혼서지랑 사주단자 써주는 대서소에 가서 써온 거라 별로 보관할 가치가 없는 거라 항변했지만, 왠지 나는 그냥 버릴 수 없는 물건이라고 느꼈다. -_-;
40여년이 지났어도 비단 색실이 하나도 안 바랬다. 벌써 버렸으면 모르겠으나 엄마는 입때 갖고 있다가 왜 이제와서 새삼 버리시겠다고 하는지 원...
물론 나도 좀 지나면 아무 미련없이 버리자는데 동의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 마음으론 한참 더 갖고 있어야할 것만 같다. 엄마방 장농 서랍 안쪽에 든 우리 부모님의 연애편지 묶음도 마찬가지고... -_-;
옛날에 대학생 때였나, 할아버지가 다락방 한 가득 갖고 계시던 오래된 물건들을 비웃으며 대체 왜 그렇게 끼고 도시느냐고 투덜거렸는데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겠으니 어쩌면 좋으냐. 오래된 물건 못 버려 전전긍긍하는 모습 때문에 머지않아 다 큰 조카들에게 고리타분한 노친네 취급받는 모습이 막 눈에 선하다. ㅎㅎㅎ
대여섯살 무렵의 정민이 그림도 예사롭지 않다고, 천재소녀화가 확실하다고 사방팔방 자랑하고 다녔다가 세월이 흐른 뒤 상당히 머쓱해졌음을 잘 안다. 그래서 준우랑 지환이 때는 호들갑을 좀 덜 떨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여섯살 지우의 그림을 보며 나는 또 다시 입에 거품을 물다시피 감탄하며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하루 전 작년과 올해 지우가 '비공식'적으로 집에서 그린 그림들을 자랑했지만, 미술학원(말이 미술학원이지 종일반 유치원이다)에서 '공식적으로' 그린 작품들은 그 깊이와 품격이 완전히 다르다. 천재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여섯살짜리가 이런 필치와 색깔과 구도로 그림을 척척 그려내는지 원! *_*
나야 눈에 콩깍지가 완전히 덮여 이성을 잃었다고 쳐도, 화가이신 우리 막내고모마저 전문가인 자기 그림보다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인정한 그림이 꽤 많다. 그분도 역시나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데다 핏줄은 속일 수가 없으니--게다가 나의 조카들에게 화가 DNA를 물려주신 장본인이 아닌가!--팔이 심히 안으로 굽기는 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화가로서의 냉철한 판단력이 흐려지진 않았으리라 믿는다.
올 상반기동안 예그림미술학원에서 지우가 완성한 작품집에 든 그림이 모두 17점인데, 하나같이 훌륭하다! 화가 본인도 그 점을 잘 아는지, 지난 여름 방학에 우리집에 놀러오는 날 스케치북을 들고 와 하나하나 작품 설명을 해주었다. 뜸들이다가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 설명 내용이 가물거리는 것들도 있지만 최대한 기억을 돌이켜볼 작정이다. 너무 미리 기대치를 높이면 안되니 이쯤에서 잡설은 줄이고 드디어 천재소년화가의 그림을 전격 공개한다. ^^; (엄청 깁니다. 스크롤의 압박이 예상되오니 마음의 준비를 하심이...)
2011년
<공룡> 도화지에 물감, 크레파스, 사인펜. 2011년 상반기, 6세
(똑같은 경우 아래엔 생략예정)
이곳 미술선생님의 특징이 재료와 기법을 섞어서 다양한 표현력을 가르치는 듯하다.
그림마다 거의 테두리는 싸인펜으로 그리고 물감이나 색연필, 크레파스로 색을 칠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공룡의 몸뚱이는 붓으로 칠한 게 아니라 '스펀지'로 두들겼다고 지우가 설명해주었다.
알에서 곧장 태어나 아장아장 걸어나오는 아기공룡인 듯 왼쪽 아래쪽엔 금 간 공룡알들이 세개 더 보이고 저 멀리 화산에선 용암이 분출되고 있다.
배경에 달팽이 무늬를 싸인펜으로 그려넣고 물감으로 번지게한 기법이 쓰였는데 달팽이 무늬 크기가 제각각 다 다르다.
이렇게 귀여운 공룡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둘리보다도 귀엽다고 강력주장... ㅋ
(요번엔 그림들이 클릭하면 '적당히'? 커집니다)
<열기구를 타고>
지난 여름 이 그림을 딱 본 순간 내가 떠올린 건 오매불망 꿈꾸고 있던 터키 카파도키아 열기구 여행이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열기구가 둥실 떠올라 있는 터키 여행사진을 녀석이 어디선가 봤을 리도 없는데... ㅠ.ㅠ
암튼 열기구를 장식한 별과 달팽이 무늬, 바구니에 탄 사람이며 저 멀리 지상에 서 있는 나무와 하늘에 뜬 햇님까지 모두 지우 솜씨라는 건 확실한데, 동그란 열기구 모양은 아무래도 선생님이 일률적으로 그려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가소년 자존심 상할까봐 당시에 묻지 못했는데 나중에 살짝 물어봐야지.(지우에게 확인해보니 선생님이 열기구 모양 그려준 거 맞단다)
화면 오른쪽의 남다른 색칠도 사연을 들은 것 같은데 기억에서 사라졌다. -_-; 추석때 만나서 확인예정. (열기구 오른쪽의 희끗한 형상은 '아파트'라고 함. 왼쪽 하늘색 꽃무늬 같은 것은 구름이고 ^^;)
지우 옆에 타고 있는 소녀는 이 작품집에서 가족 이외에 최다 출연하는 지우의 여자친구 '예서'양이다. 자꾸만 등장하는 걸 보고 고모는 폭풍질투에 사로잡혔었다. ㅋ (이 또한 나의 착각이었다! 열기구에 타고 있는 사람은 지우와 여친이 아니라 왕자와 공주라고! 어쩐지 이제 보니 남자아이가 좀 못생겼다. 지우가 자기를 저렇게 못생기게 그렸을 리가 없다 ㅋㅋ)
<예쁜 우리 엄마>
바로 앞 포스팅에 소개를 했지만 작품집에 든 그림 전체를 공개하는데 의미가 있기도 하고 세부설명도 필요한 것 같아 다시 올렸다.
선생님에 따르면 지우는 작품을 '구상'하는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다른 애들이 대강 쓱쓱 재빨리 그림을 그리는데 반해 워낙 공을 들이기 때문에 작품 완성이 상대적으로 늦단다. 다른 아이들이 그림을 다 그리고 막 놀기 시작하면 지우도 막 같이 놀고 싶어 엉덩이를 들먹거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놀 생각에 가끔 바탕색 칠하는 걸 힘겨워할 때가 있다고 해서 우린 깜짝 놀랐다. 지우가 워낙 색칠하기를 좋아하고 빈틈없이 칠하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도 머리에 단 리본이며, 다이아몬드 귀걸이, 하트 목걸이 같은 섬세한 부분도 일품이지만, 엄마에 대한 넘쳐나는 사랑을 표현하듯 바탕에 하트를 아주 빈틈없이 도배해놓았다. 보라색과 자주색으로 이중 처리한 옷색깔은 또 어떻고! 인물도 예쁘지만 색감이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전 포스팅에서 지우가 그린 엄마와 실물 비교를 위해 사진을 올리기도 했지만, 지우가 그린 자화상과 실물의 닮은 정도는 정말 놀랍다! 내가 그림과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할 때마다 다들 입을 모았다. 싱크로율 100%야! @.,@
정말 닮지 않았나? 비단 머리모양 뿐만 아니라 맑은 눈매며 암팡진 인상까지 똑같다고 팔불출 고모는 마구 주장하는 바임. ㅋㅋ
그림 제목은 <내 입속에는>이다. 지우가 완전 편식대마왕님이라서 먹는 게 정말 한정적이다. 저 그림에 드러난 밥, 쿠키, 아이스크림, 치킨, 생선, 바나나, 포도, 수박, 사탕, 콩 정도가 전부다. (드물게 콩을 먹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그 외에 빵과 떡도 좋아한다) 그런데 치킨 옆에 있는 저게 뭔지 통 기억이 안난다. 햄이라고 했던가? -_-; 며칠 뒤에 물어봐야지. ㅎㅎㅎ
(치킨 옆에 있는 파란 물체는 다름아닌 '물'이란다! 먹거리 그려넣으며 컵에 담겨 찰랑대는 물을 그려넣을 생각을 하다니 놀라워 놀라워;;)
<둥지 위의 새>
도화지에 싸인펜, 물감, 색종이, 크레파스
알에서 하나씩 부화하는 새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태어나자마자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그걸 음표로 표현한 것 좀 보라!
보라색 배경에 어울리도록 햇님을 흰색으로 그냥 내버려둔 센스는 또 어떻고~!
화가께서는 맨 왼쪽의 금 간 알을 가리키며, 얘도 이제 곧 깨어날 거라고 말씀하시었다. ^^ 벌레를 잡으러 간 엄마새를 기다리는 모습이라고... 대체 무슨 새인지 몸통 색깔이 다 다르다.
<무당벌레>
비오는 날, 커다란 나뭇잎에 무당벌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왼쪽 무당벌레는 오른쪽 무당벌레가 날아가는 모습이라고("얘가 날아가면 이렇게 날개가 펴지는 거야...")지우가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무당벌레 한 마리의 두 가지 움직임을 한 화면에 포착한 셈이다. @.@
나는 오른쪽 아랫부분에 그린, 민들레로 추정되는 노란꽃까지 전체적인 구도며 색감이 너무 마음에 든다. ㅠ.ㅠ
<바다 위의 돛단배>
색종이를 접어 붙이는 콜라주 기법이 응용된 작품으로, 돛에는 별 스티커도 장식되어 있다. 바다를 파란색으로 칠하고는 하늘을 노란색으로 표현했다. 아웅...
왼쪽 돛단배에 탄 한 쌍이 또 다시 지우와 예서 커플인지, 제 엄마아빠인지 까먹었다. 물어본 것만 기억나고 대답이 뭐였는지는... 에휴... 이 또한 추후 수정하겠음.
(왼쪽 노란 배를 탄 한쌍은 왕자와 공주이고, 그 뒤를 쫓는 빨간 배에 탄 건 '나쁜 악당'이란다. 얘길 듣고 보니 빨간배에 탄 인물의 표정이 매우 포악, 사납다 ㅋㅋㅋ)
<행복한 우리집>
언뜻 보고 지우도 한옥에 살고싶어 하는 건가 의아했더니만, 자기네가 사는 아파트를 그린 거란다.
하긴 현관문 번호키를 보면 지네 아파트 맞다. ㅋ 방방마다 엄마아빠 형과 자기를 그려넣었는데 특이한 건 오른쪽 아래 누운 사람이 지우의 '이모님'이라는 사실이다. 이모가 자기네 집에 와서 자고 있다나?
고모는 안 그려주고 이모를 그렸대서
속 좁은 고모는 또다시 폭풍질투에 사로잡혔다. 그치만 뭐 어쩌겠나.. 이모는 바로 옆에 살고 고모는 아예 다른 시에 살고 있는 걸. ㅠ.ㅠ (지우네 집은 일산이다)
맨 왼쪽 네모에 들은 인물은 부엌에 있는 엄마가 아니라 '졸라맨'이란다. +_+ 그 옆에 세로로 그려진 두 인물은 아빠와 형, 오른쪽에 나란히 그린 인물이 엄마와 지우라고 함. 웬 뜬금없이 졸라맨? 아무래도 지우가 고모를 놀려주려고 장난친 것 같다. -_-;
<팽이치기 놀이>
지우랑 예서가 '베이 블레이드'라고 하는 팽이놀이를 하는 장면이란다.
팽이를 돌림판에 꽂아 끈을 잡아당겨 둥근 플라스틱 판에 놓으면 신나게 돌아가는 건데, 작년부터 한참 유행이라 나도 녀석들이랑 놀아봤다.
팽이를 부딛치게 해서 싸우거나 누가 오래 돌아가는지로 내기를 하는데, 그림 속에선 두 팽이가 불꽃튀는 전투를 벌이는 모양이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팽이의 움직임을 꼬불꼬불 용수철 모양으로 형상화한 게 인상적.
<땅속 개미>
검은 도화지에 흰 크레파스로 개미를 그려 오려붙였다. 개미굴 맨 안쪽엔 알들이 잠을 자고 있고, 주변 땅속엔 개미들이 물어다놓은 애벌레, 과자, 도넛 같은 식량이 잔뜩 쌓여있다.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ㅋㅋ
그림 맨 위 상단부의 주황색 물체는 애벌레가 아니라 '소세지'란다. ㅎㅎㅎ
<코끼리를 타고>
지우네 가족이 코끼리를 타고 있는 장면이다. 당연히 맨 오른쪽 엄마 옆에 앉아 있는 게 지우 본인.
코끼리가 네 식구나 태우고도 어쩜 저리 표정이 밝고 명랑한지. 뒷다리는 두껍게, 앞다리는 얊게 그린 것도 신기하고 힘들지 말라고 미리 포도랑 사과도 갖다주었다. 전체적으로 사랑스러운 느낌.
<거북이>
도화지 화면에 꽉 찬 거북이가 참 알차다. 등가죽의 육각형 무늬를 어떻게 저렇게 정교하게 그렸을까? *_*
그안을 촘촘이 선으로 채운 것도 그렇고... 목덜미에 땀방울까지 디테일의 승리다.
흰색 크레파스로 구름이랑 동그라미 그리고 물감으로 바탕칠하는 기법이야 선생님이 가르쳤겠지만 시원시원한 선과 색감이 일품.
<나비가 훨훨>
제목 대로 꽃을 따라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들 모습이다. 여기선 그림물감을 어딘가 딱딱한 데 묻혔거나 물감튜브째로 찍는 기법이 사용된 것 같다.
호랑나비 색깔들도 현란하지만 더듬이와 날개 모양을 어쩜 저리도 잘 그렸는지... 꽃모양도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느낌이 다양하다. 그림마다 전체적인 완성도가 확실히 다르지 않은가! ㅋ
<비누방울 놀이>
무지개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비누방울을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어린이가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고 하고 싶다. ㅠ.ㅠ
실제로 비누방울 놀이를 많이 해봐서 처음에 훅 불어내면 약간 바람에 찌그러지는 모습까지 포착한 듯...
천재랄밖에...
<세모나라>
세모나라라서 자동차들도 세모고 나무도 세모고 세모꼴의 대표랄 수 있는 피자조각도 보인다.
팔을 길게 뻗은 듯한 회색 자동차의 정체는 코끼리 자동차익고, 밤색 네모꼴은 '택배상자'란다. ^^;
<생일축하>
이 작품은 실제로 스케치북 제일 마지막에 케이크가 입체적으로 상당히 두둑하게 붙어 있었다. 종이찰흑인지 발포제 같은 걸로 따로 만들어 붙인 듯.
발 아래 놓인 생일선물들은 죄다 레고 시리즈란다. 지우의 파티 의상도 예사롭지 않다. 레고 닌자 시리즈에 꽂혔는지 검을 세개나 차고 시커먼 복면까지... ㅎㅎ
오른쪽엔 예서양 드레스를 입고 또 등장하시었다. -_-;
우리 가족들은 지우가 하도 말라서 자코메티의 조각, 또는 이디오피아 난민이라고 부르며 많이 걱정을 하는데, 지우의 여성취향 또한 가늘가늘 마른 소녀를 좋아한단다.
좀 튼실하게 예쁜 소녀친구에겐 '잘생겼다'고 칭찬을 한대고, 유독 하늘하늘 가녀린 예서만 '예쁘다' 또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사용한단다. 그래서 다른 여자애들이 막 속앓이를 할 정도라고... (꽃남의 인기는 어딜가나 그저!) 실제로 유치원 재롱잔치인가 발표회 때 지우가 워낙 춤동작을 잘하기도 했지만 인기를 감안해서 그런 것인지 다들 쌍쌍이 군무를 펼치는데 지우만 맨 앞 한 가운데에서 양쪽에 여자친구들을 데리고 무용을 했다.
[#M_그 증거 사진 ^^;|접기|
지우 인기가 이 정도라규~! 발표회 리허설에서 처음 두 여자에게 볼 뽀뽀를 당한 지우는 당황하여 울어버렸단다. 예서한테만 허락하는 뺨이었던가? ㅋㅋ 그러고보니 저 소녀들 중에 예서가 있었는지 물어봐야겠다.
<기차여행>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이다.
나뿐만 아니라 지우 그림 사진을 보여주면 이 작품을 탐내는 이들이 꽤 많다. 아이들 그림 중에 드물게 흑백느낌이라 그럴까?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디어도 만만치가 않다!
비오는 날(아래로 죽죽 그어진 하얀 선이 빗줄기란다)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데, 기찻길이 갑자기 울퉁불퉁 꿀렁거려서 '덜컹!' 하는 바람에 기차에 탄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라는 장면이란다. ^^;
검은 기차는 먹구름 짙은 잿빛 하늘에 길게 하얀 연기를 내뿜는데, 기관사도 놀라 조종간을 놓쳤고 사람들은 공중에 붕 떠있다. 심지어 맨 뒤에 탄 사람은 머리가 천장에 부딪쳤다! 기찻길을 촘촘이 채운 자갈돌은 또 어떻고! 언제 지우가 기차를 타봤던가? 관찰력이 참으로 세밀한 지우.
작품집에서 뜯어내기 너무도 아깝지만 이 그림을 주면 액자에 넣어 고이 간직하겠다고 굽신굽신해보았으나 화가께선 배시시 웃기만 하였다. 그치만 이 그림 너무도 갖고 싶다! +_+
벌써부터 써야지 써야지 생각은 많았으나 지우 경우엔 제목부터 바꿔야 하지 않나 -- <천재가 확실하다!> 뭐 이런 걸로 ㅋㅋ -- 싶은 잡다한 생각이 꼬리를 무는 바람에 되레 더 늦어졌다. 이미 지우 그림은 초창기부터 여기 많이 자랑해서 중복해 올리기도 뭣하고, 천재성이 여실한 '아주 멋진 작품집'을 확보했기 때문에 그림을 꽤 추려내도 워낙 많아 1, 2부로 나눠 올려야하나 어쩌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딱히 방향을 잡은 건 아니라서 지우 그림폴더 펼쳐보며 되는대로 자랑할 심산이다. 아무려나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지우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다섯살이 된 작년부터였다. 다른 조카들은 서너살 무렵부터 여기저기 마구 낙서질을 해대며 그림에 관심을 보였다면 지우는 그 나이땐 낙서보다 색칠하기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제 부모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거나 테두리 그림이 있는 그림책을 사서 자기는 그 안에 색깔만 칠하는 방식. 그런데 색깔 칠하기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무슨 네살 짜리가 크레파스 색칠을 금 밖으론 안 튀어나가게 하는지!
그러다가 다섯살 봄부터 자동차, 인물화 따위를 그리기 시작하더니 몇달만에 그림솜씨가 확 늘었다.
2010년 7월. 5세. [노래방에 간 고모]
이렇게 내 생일에 선물로 그림도 그려다 주고....
노래방에서 마이크 들고 노래하는 내 모습이란다. 이미 자랑한 적 있지만 그림의 변화 정도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다시 올렸다. 올해 선물 받은 그림과 비교해도 재미있을 것 같고... (그렇지만 내가 지우랑 마지막으로 노래방엘 간 건 아마도 지우 세살 때였다규~! 그날 내 모습이 워낙 인상적이었을까?)
지금으로부터 딱 1년전인 작년 추석. 친척들에게 널리 지우 솜씨를 자랑하려고 이면지를 연필과 함께 지우에게 내밀었더니 슥삭슥삭 순식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폰을 장만한 게 하필 바로 추석 연휴 전날이라 아직 기능을 잘 몰라 버벅거리느라 사진이 영 엉망이지만 그러느라 과정 샷도 있다. ㅋㅋ
2010년 9월, 5세. 작품 활동중인 지우
이것이 바로 완성본.
2010년 9월, 5세. [선미, 진이고모와 지우]
제일 먼저 그린 왼쪽 인물은 <선미고모>, 중간이 본인이고 오른 쪽은 <진이고모>였을 거다. (명절 전날 음식장만을 할 때면 나의 사촌동생인 저 둘이 아이들과 제일 잘 놀아준다. 심지어 선미고모는 유치원 선생님이니 뭐;; 지우한테 예쁨을 받을 수밖에)
이 그림을 보자 너도나도 자기를 그려달라고 난리가 벌어졌다.
다음 차례는 그래서 제 엄마와 큰 엄마.
2010년 9월, 5세. [큰엄마와 엄마]
왼쪽이 큰엄마, 오른쪽이 제 엄마다. 강아지를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가운데 아래쪽에 파랑이도 그려넣었다. 오른쪽 아래 구석에 있는 게 파랑이 침대인데 짤렸다. 인물그림에 악어와 새까지 그려넣어 구도를 맞췄다. 천재답지 않나? ㅋ
서열이 세번째까지 밀린 게 자존심 상하지만 나도 가만 있을 수 없어, 지우를 살살 꼬드겼다. 지우야, 고모도 한번만 그려주라 응? 응? 사랑해~~~
2010년 9월. 5세. [고모]
역시나 압박을 가하면 화가의 예술혼은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림이 엄청 단순해졌다. ㅠ.ㅠ 나도 선미고모처럼 소녀같이 예쁘게 그려주지.. 흑... 그래도 표정이 완전 행복해보인다. 현실의 내가 아무리 머리를 길러도 지우가 그려주는 그림속의 나는 언제나 짧은 파마머리다. 아줌마 파마 안한지 오해됐는데... 우쒸...
암튼 이날의 그림들을 담날 내가 챙겨온다는 것이 깜빡 잊었더니, 아 글쎄 청소쟁이 올케가 신문지와 함께 다 버렸는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해서 이들 작품 뭉치는 이렇게 사진으로만 남았다는 슬픈 후문이...
2010년 11월, 5세. [엄마아빠 결혼식]
이 그림은 지우가 제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에 선물했다는 그림이다.
신부가 짧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건지, 피로연장인지 암튼 뒤쪽엔 빨간 융단(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아빠는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하는 것 같다.
(아쉽게도 지우에게 직접 그림 설명을 못들었음 ㅠ.ㅠ)
가슴의 무늬를 보면 또 나름 커플룩이다! ㅋㅋㅋ
제 엄마는 절대로 저렇게 머리를 기른 적 없는 짧은 머리인데도 꼭 저렇게 길게 그린다. 나는 길게 길러도 맨날 짧게 그려주고! 치사하다..
드디어 해가 바뀌고 지우는 6살이 되었다. 해마다 첫 생일인 지환이 헝아 생일날, 원래 파티장소가 예전에도 가본 적 있는 브라질 식당 <메르까도>였다. 브라질인 요리사가 오븐 화덕에 구운 온갖 고깃덩어리를 직접 들고 와서 썩썩 접시에 잘라주는 곳인데, 워낙 인상적이었는지 생일선물 그림으로 그곳을 그렸다.
2011년 1월 6세. [브라질 식당]
그런데 그날 아쉽게도 파티장소가 바뀌었을 뿐이고! ㅎㅎㅎ 옆에 적힌 글씨는 <엉아 지환>이고, 하트에는 자기 이름을 적었다. 마지막 하트엔 '우지'라고 적혀 있ㅇ어! ㅋㅋㅋ
올해부터 지우는 유치원식 미술학원엘 다니고 있다. 아무래도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 미술교육을 중점으로 하는 곳에 보내는 게 당연해 보였을 듯. 그림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인지 지우의 그림실력은 이제 막 폭발한다. 아래는 내가 이미 포스팅으로 자랑한 바 있는 가족화. ^^;
2011년 3월. 6세. [우리 가족]
2011년 3월. 6세. [우리 가족] 채색
이제 지우 그림의 정교함은 감탄의 경지를 넘어선다. 동물 그림도 그렇고, 공룡 그림책을 보고 슥슥 따라 그렸다는 그림들도 완전 기막히지 않은가!
2011년 4월 6세. [동물들]
2011년 4월 6세. [공룡]
2011년 4월 6세. [공룡]
죄송스럽게도 공룡 이름 들었는데 다 까먹었다. ㅠ.ㅠ
째뜬 어른도 이렇게 따라그리기 어려운데 어쩜... 참으로 훌륭하다. 천재인줄 알았다는 과거형이 아니라 그야말로 천재 맞다규~! ^^;
보고 따라 그린 공룡그림과 직접 그린 공룡그림을 한번 비교해볼까나...
2011년 6월, 6세. [공룡]
2011년 6월, 6세. [화산과 공룡]
2011년 6월, 6세. [축구]
공룡그림도 사랑스럽지만 나는 지우의 인물화가 훨씬 마음에 든다. 맨 오른쪽 축구 경기 장면은, 지우가 강슛을 날렸으나 아쉽게도 골키퍼를 맡은 준우헝아가 막아내는 장면이란다. 표정들이 어쩜 저리도 사랑스럽고 동작이 역동적인지! (클릭하면 사진 커지는데 사진을 줄이지 못해 너무 커져 죄송합니다;;)
그림은 아니지만 준우형아의 칠교놀이 교재로 지우가 만들었다는 작품도 인상적이라 얼른 퍼다 놓았다.
<불을 뿝는 용>과 <얼음을 뱉어내는 사자>, 둘의 희생양이 되고 만 가엾은 양을 형상화했단다. @.,@
빨간색 나뭇조각을 이어붙여 용이 뿜어내는 불이라니... 난데없이 얼음을 뱉어내 공격하는 사자는 또 뭔가.
아이디어가 놀라워 놀라워...
그리고 드디어 올해 내 생일 이미 한달 전부터 지우에게 애걸복걸 그림선물을 해달라고 부탁을 한 덕분인지 작품을 <두 개>나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물론 작품의 완성도는 미술학원에서 심혈을 기울인 공식 그림들에 꽤나 못미치지만 그래도 감지덕지... 그림에 담긴 이야기도 흥미롭다. ^^;
2011년 7월, 6세. [도서관에 간 고모]
2011년 7월, 6세. [생선을 들고 앵두 따는 고모]
왼쪽 그림은 <도서관에 간 고모>라는데 뜬금없이 커피와 도넛(영어도 쓴 거 보시라! 커피 그림엔 김이 모락모락~ 디테일이 살아있다, 간판 커피에서도 김 나는 모양 있는데 사진에 짤렸다. ㅠ.ㅠ)을 잔뜩 사들고 들어가고 있다. 전화통화를 할 때부터 내가 이왕이면 사람들 많이 나오는 그림을 그려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지우가 '도서관에 간 고모'를 그려주겠다고 미리 예고를 했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 열람실 장면을 상상했더니만 한 아름 안은 도넛이라니... 대체 지우 머릿속의 고모는 어떤 인물일지 몹시 궁금하다. ^^ 내 평생 저렇게 도넛을 사들고 먹어본 적 없건만 ㅋㅋㅋ
오른쪽 그림은 우리 집앞에서 앵두를 따는 내 모습이란다. 대체 왜 왼손에 생선을 들고 앵두를 따는지 알 수가 없다. 아래층 개가 무서워서 앵두를 잘 못따겠다고 내가 말한 걸 기억하고 똥개 유인용으로 들려준 걸까? 암튼 아래층 개도 영광스럽게 개집과 함께 그림에 등장했다. 내 발 아래 놓인 건 돌멩이란다. "고모는 키가 작으니까 돌멩이에 올라가서 따는 거야"라고 지우가 말했다. ㅠ.ㅠ 생각해줘서 고맙다, 지우야. 암튼 물감으로 칠한 게 아니라 색연필화라서 색감이 흐리지만 입고 있는 옷도 잘 봐야 한다. ^^; 위아래 한벌이고 가슴에 그려진 무지개 무늬가 바지 밑단에 장식되어 있다. 섬세해 섬세해~~!!
지우는 올 상반기에 정말 엄청난 작품활동과 실력향상을 보였다. 미술학원에서 계속 그렸던 작품집을 집으로 보내왔는데 정말 하나같이 환상적인 작품들이었다. 천재화가소년께서 지난 7월 친히 작품집을 가져와 내게 하나하나 설명을 하며 사진촬영에 협조를 해주어 그 그림들도 곧 소개할 예정이다. ^^; 그 가운데 하나만 맛보기로 소개하고 마무리하련다.
[#M_닮았나요?|닫기|
화가는 원래 사랑하는 대상을 더욱 아름답게 그린다는 걸 알지만 지우가 제 엄마를 그린 그림을 보면 정말 질투가 폭발해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는 절대 안경 안 벗겨주면서 제 엄마 그림엔 거의 안경을 생략하고 반드시 공주풍으로 그린다. 흑.. 부럽 부럽;;
2011년 6월, 6세. [엄마]
2011년 7월, 6세 [엄마]
엄마의 실물 ^^;
왼쪽 그림은 너무도 미화된 공주풍이지만 가운데 그림(작품집에 들어있는 엄마 그림이다)은 실물과 정말로 느낌과 인상이 닮은 것 같아(지우 모친 본인은 지우 머릿속의 이상화된 엄마 모습이라며 극구 부인하지만;;) 참으로 신기해서 일부러 사진이랑 같이 공개했다.
만으로는 다섯살밖에 안됐는데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 지우 천재화가소년 맞는 거 같죠? ㅋㅋ
꾸준하게 시리즈로 글을 올린다는 건 게으름뱅이에게 역시나 참 어렵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든 없든 괜히 6월 안에 한 편은 써야할 것 같아 혼자 전전긍긍하며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림 사진은 이미 다 확보해놓고도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원. 해서 시작은 6월 마지막날 했으나 마무리를 못해 이제야 끝낸다. 드디어 지우편 하나 남았다. :)
지환이의 천재적인 화가 기질 자랑이 자꾸 늦어진 건 아무래도 녀석의 작품 사진이 제일 적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 조카인 정민이야 5살까지 오로지 홀로 각별한 관심을 받았고, 준우도 첫째인데다 막내 동생 내외가 워낙 꼼꼼해 일일이 작품사진을 싸이월드와 블로그에 올려주어 내가 퍼나르기 쉬웠던 데 반해 지환이는 무려 집안의 '장손'임에도 그림관리가 좀 소홀했다. 그래서 연도별로 그림의 변화를 추적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듯하지만, 그림마다 지환이 특유의 개성이 엿보이는 건 확실하다. 그림이 많지 않은 대신 옛날 싸이에서 귀한 사진을 하나 건졌다. ^^;
[#M_엿보기|접기|
남매의 그림삼매경. 2005년 1월
2005년 1월 사진이니 지환이가 만 두돌. 겨우 세살때다.
비록 저 작품은 남아있지 않지만 가장 어린 나이에 작품활동을 하는 사진을 남긴 녀석은 지환이가 아닐지.
내복이 줄줄 내려간 줄도 모르고 열심히 막그림을 그리고 있는 오른쪽 지환이와 암팡지게 색연필을 쥐고 있는 여덟살 정민공주의 모습이 참말 귀엽지 않은가! (막 강요;; ㅋㅋ)
나중에 지환이가 커서 내 블로그에 엉덩이골 드러난 이런 사진 올린 거 알면 길길이 뛸까봐 나름 다시 접어 숨겨두기
위 사진 속에 마구 낙서처럼 생긴 그림 말고 내가 처음 접한 지환이의 작품 사진은 다섯살 때다. 그 사이에도 지환이가 누나 따라 그림을 많이 그렸을 텐데, 원래 큰 동생네 내외는 좀 대범하고 무심한 스타일이라 어린 아들이 스케치북에 그린 작품을 죄다 잘 모아놓았을지 아닐지 잘 모르겠다. ㅋ
[지환] 2007년 3월, 5세
[누나] 2007년 3월, 5세
[엄마] 2007년 3월, 5세
[고모] 2007년 3월, 5세
[할머니] 2007년 3월, 5세
[할아버지] 2007년 3월, 5세
느낌으로 보아 6작품 모두 한날 한시에 그린 것 같다. 올케가 하필 플래시로 작품사진을 올려놓아 하나하나 따로 다운받고 작품명 확인하느라 땀깨나 흘렸다. -_-; (그러나 할머니 그림이 유독 왜 저리 작아졌는지 이해불가 ㅠ.ㅠ)
어째서 하필 자화상을 동물 느낌으로 그려놓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제 엄마를 제일 예쁘고 사랑스럽게 그린 게 인상적이다. 아래쪽의 고모 그림도 꽤나 정성들인 흔적이 보며 모델로서 아주 흐뭇하다. 뭐니뭐니해도 이 가운데 압권은 오른쪽 아래 할아버지 그림이 아닐지! 할아버지의 대머리가 강조된 느낌이다.
이 그림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도무지 독해 불가능한 글자로 나름 제목을 써놓았다는 사실이다. 일어도 아니고 상형문자도 아니고 저건 어느나라 말일까. ㅋㅋㅋ
[리본 공룡] 2007년 8월, 5세
지환이도 공룡을 매우 좋아했으나 그림 속 공룡의 형태는 조카마다 확실히 다르다. 녀석의 그림은 죄다 애교스럽고 귀여운 구석이 있는 듯.
유치원에 다니기는 해도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을 때라
믿음반 변지환을 <민음바 빈지한>이라고 적었다.
나는 이 그림을 컴퓨터방에 집게로 매달아두었었는데, 몇주일 뒤에 와서 보니 글자 틀린 게 스스로 마음에 걸렸는지 의자에 올라가 제 맘대로 빨간색 매직으로 덧칠하고 있는 걸 현행범으로 발견, 그냥 두라고 간신히 지환이를 말렸다. 뭔가 틀리고 허전한 게 있기는 한데 확실히 아는 건 아닌 듯 '별'로 장식하려 했다는 게 지환이의 설명이었다. ㅎㅎㅎ
[엄마의 두 얼굴] 2007년 9월, 5세
정민이와 준우편에서도 소개했던 <이면전> 출품작 사포 모빌에 당연히 지환이도 참여했다.
곤충모양도 두어개 더 있어, 내방문 앞에 현재 걸려있는 소형모빌에도 하나 포함되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지환이 작품 중 그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 둘이었다.
위는 <기분 좋은 엄마>, 아래는 <화내는 엄마>란다.
ㅋㅋㅋ 천사같이 웃고 있는 예쁜 엄마와 악마 같은 엄마의 화난 표정을 다섯살 짜리가 이렇게 표현했다는 게 너무 기막혀서 한참 깔깔댔다.
작품 발표와 촬영이 9월이란 얘기고, 실제 그린 건 여름방학 중이었을 거다.
이렇게 기발한 그림을 그린 장본인의 사진을 마침 그날 전시장에서 내가 폰카로 찍어왔었다.
시치미 뚝 떼고 자기 작품을 쥐고 있음. ㅎㅎㅎ
이날 전시를 다 보고나서 식구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음식점 테이블에 놓인 메모지를 보더니 지환이는 막 그림혼이 솟구치는 듯 볼펜으로 식구들 모습을 하나하나 그려 선사했다. 다들 깔깔대며 자기 그림을 받아 넣었는데, 내 그림과 울 엄마 그림이야 지금도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찌했나 모르겠다. 다행히도 사촌동생 하나는 자기 그림을 찍어 싸이에 올려두는 바람에 확보가능. 주근깨 특징을 잘 잡아내어 제일 큰 웃음을 안겼으나 사진에선 볼펜으로 찍은 점이 잘 안보여 그 느낌이 제대로 안 살았다. (이날의 충격으로 말미암은 것인듯, 사촌동생은 최근 결국 주근깨를 모두 없앴다! ㅋㅋ)
[진이고모] 2007년 9월, 5세
[할머니] 2007년 9월, 5세
[고모] 2007년 9월, 5세
하도 많은 식구들 그림을 그려주다 보니 지쳤는지 막판에 내 그림을 매우 성의없이 그렸기에, 그 다음번에 만났을 때 지환이에게 항의를 했다. 고모 머리가 왜 저렇게 <검정고무신> 주인공처럼 이상하게 생겼냐고. 그랬더니 얼른 새로 그려준 초상화가 바로 이것이다.
[고모] 2007년 9월, 5세
이 그림 역시 고모의 잔소리를 피하려고 이면지에 색연필로 후다닥 성의 없게 그린 건 마찬가지지만 (당시 나는 기필코 파마머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훨씬 귀여워서 흔쾌히 칭찬을 해주었다. ^^;
고모를 그린 거라기 보다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다. ㅋㅋ
[녹지 않는 눈사람} 2008년 2월, 6세
[할머니와 지환이] 2008년 2월, 6세
6살이 된 지환이는 조물락조물락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도 그림에도 아이디어가 남다른 것 같았다.
왼쪽, 종이로 만든 녹지 않는 눈사람은 이미 블로그에 자랑한 적도 있지만 이참에 다시 올린다. 고모한테 뭔가를 선물하겠다며 이면지랑 색연필, 스카치테이프 따위를 챙겨들고서 혼자 방문 잠그고 들어가 후딱 만들어 나왔던 작품이다. 오른쪽 그림 역시 여기에 올려 자랑한 적 있었던 할머니 생일 축하용 작품. 그냥 그림도 아니고 밑바탕에 색을 칠해 크레파스를 긁어내는 기법을 활용할 생각을 하다니, 요새도 냉장고 옆에 붙여둔 이 그림을 보며 감탄한다.
[슬리퍼와 공룡] 2008년 4월, 정민 11세, 지환 6세
이 도자기 작품은 다 지환이가 만든 게 아니고, 오른쪽 작은 슬리퍼와 위에 놓인 나무 모양만 지환이 작품이다. 왼쪽 큰 슬리퍼는 정민누나가, 오른쪽 위 공룡은 우리 막내고모가 만들어 함께 구웠다고 들었다. 슬리퍼도 예쁘지만 난 저 작고 앙증맞은 나무를 빚고 있었을 지환이를 상상할 때마다 헤벌쭉 웃음이 난다.
[신나는 여름] 2010년, 8세
[빗방울 공주] 2010년, 8세
[가을낙엽 꾸미기] 2010년, 8세
아쉽게도 지환이가 일곱살 때 작품은 사진이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여덟살 때 학교에 제출한 이 두 작품도 얼마 전 지환이 방에서 운 좋게 구경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정확한 작품제작(?) 시기는 알 수 없다. 암튼 지환이의 엉뚱한 아이디어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신나는 여름> 작품에서 낚싯줄에 매달아 커다란 물고기를 잡을 미끼로 사용되는 건 '이상한 여자'다. -_-;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원...
어쨌거나 오른쪽 입체 동화책을 보라! 여덟살 짜리가 입체로 접히는 동화책을 만들어내다니 놀랍지 않은가! (어린이날에 내가 입체 동화책을 사주어 지환에게 영감을 제공했다고 자뻑중;; ㅎㅎ) 비록 창작품은 아니고 기존 동화를 요약하긴 했지만 (처음엔 내용도 지어낸 건 줄 알고 완전 천재라며 거품 물 뻔했다 ㅠ.ㅠ) 입체로 접히는 책의 구조와 오리기 기법은 놀라운 수준이라고 굳게 믿는다. ㅋ
맨 오른쪽 작품은 찍어온 걸 까먹고 있다가 뒤늦게 덧붙인다. 가을 낙엽을 이용해서 꾸미기를 한 모양인데 다른 것들이야 흔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은행잎을 쪼개서 당근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정말 기발하지 않은가! ^^; 학교에서도 칭찬을 들은 작품이라고 함. 암, 당연하지. ㅎㅎ
[샤프펜슬의 모험] 2011년 6월, 9세
지환이는 지금도 동화책 만드는 걸 아주 즐긴다. (그러고 보니 준우가 만든 창작 동화책도 본 적 있다! 요즘 애들이 다 그러나? 아님 나의 조카들만 유독?? ㅎㅎㅎ)
그러더니 얼마전엔 나와 경쟁적으로 영어 동화책도 하나씩 만들었다. 텍스트가 중요하므로 그림은 다소 단순한 <샤프펜슬의 모험> 표지 사진을 찍어봤다.
샤프펜슬이 다른 문방구랑 말다툼을 벌이다 화가 나서 떠나고 싶어하는 참에 새가 물어다줘 세상구경을 한다는 모험담이다. ^^;
그러고 보니 지환이의 새도 장욱진 그림을 닮았다. 장욱진 화백이 어린이 그림체를 참고한 거겠지만...
지환이도 학교 들어가서는 나한테 그림선물을 잘 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독촉해도 좀처럼 채색화는 보기 힘든데 얼마전 집에 갔다가 학교 숙제로 낸 글과 그림에 감탄해 얼른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에 대해서 그림을 그리고 영어로 글을 쓰는 거였는데, 선생님의 빨간펜 수정이 있기는 해도 그림과 글 모두 훌륭했다. +_+
2011년 6월, 9세(초등학교 2학년)
과학 과목을 좋아해서 나중에 과학자가 되어 로봇과 약을 만들어 사람들을 돕겠다는 내용이다. 연구실의 각종 실험도구 디테일이 재미있는데 왼쪽 위의 나선형 시험관 모양을 어떻게 저렇게 절묘하게 끊기지 않게 그렸는지 감탄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호기심이 유독 많아 돌잔치 때도 난생 첨 보는 실뭉치를 덥썩 잡은 지환이. (다른 조카들은 셋 다 연필을 집었다)
꼭 멋진 과학자가 되거라, 지환아! 그림도 잘 그리고 피아노도 잘 치는 과학자가 되면 아주 좋겠다고 고모는 한껏 욕심을 부리고 있다. ㅎㅎㅎ
후반부로 갈수록 처음보다 덜 웃기고 자꾸 안타까워져 본방사수를 안(못)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다운로드까지 해서 본 어제 최종회로 드디어 <최고의 사랑>이 끝났다. 보나마나 연말에 베스트 드라마 집계 당첨 확률 백프로다. 가볍고 경쾌해서 열광했지만 이래저래 생각할 거리도 꽤 던져준 드라마였다. 심지어 나는 친지 중에 연예인이 있음에도 괜히 싫어하는 연예인들 굳이 콕콕 찝어 싫다고 밝히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왔는데, 댓글 하나하나에 파르르 떠는 독고진이 생각나서 앞으로는 좀 말을 삼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해피엔딩을 결혼과 출산이라는 빤한 결말로 보여주어 실망이라는 사람도 있으나 나로선 흡족하다. 독고진이 심장수술하다 죽지 않았으며, 깨진 유리컵과 함께 나뒹굴었던 감자싹이 죽지 않고 화분에 담겨있는 걸 본 것만으로도 일단 안심한 터라, 사실 어떻게 끝나든 좋다는 생각이었다. 인생이란 언제 또 어떻게 뒤틀릴지 모르는 거고, 뭐니뭐니해도 로맨틱코미디라면 열린 결말이든 확정 결말이든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종결되는 동화 같은 마무리가 아무래도 마음 편하다. 현실에선 그런 동화 같은 마무리가 좀 드물어야 말이지. 한편으로는 뭔가 참신하고 새로운 결말을 원하면서도, 결국 똑 떨어지는 해피엔딩이 아니면 못마땅한 이율배반의 심리를 작가들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암튼 똑같이 결혼을 강행하고 졸지에 사내아이들을 셋씩이나 이끌고 나왔던 <시크릿 가든>의 결말보다도 <최고의 사랑> 마지막이 나는 더 좋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통통한 스파이더맨 띵똥 라인이었던 터라 마지막 신까지 귀여운 띵똥 형규가 함께 나와주어 더욱 기뻤다. 엄마의 부재 속에서도 띵똥이 그렇게 속깊고 이해심과 인정이 많은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던 건 분명 구애정 고모 덕이 태반이라고 생각하므로, 계속해서 고모네 가족과 함께 하는 건 당연하다.
밖에서 대중이 뭐라고 쑥떡대건 상관없이 행복한 구애정과 독고진의 일상을 보여주던 닭살스러운 장면 가운데서도 가장 흐뭇했던 건 독고진 부녀의 취침 장면. (큰 사진을 못 구했다;;) 화면 구성 때문임을 알면서도 아가를 소파 바깥 쪽에 뉘여놓아 떨어지면 어쩌나 쓰잘데기 없는 걱정을 잠깐 하기는 했으나, 개인적으로 이런 평화로운 장면 정말 좋다.
므흣하게 이 장면을 보다가 문득 떠올랐다. 저 장면과 유사하게 막내동생네가 연출한 사진이 있다는 걸. 이른바 준우네 삼부자 취침사건이다. 어느 휴일 오전, 다 같이 외출을 하려고 엄마가 먼저 한참 씻고 나오니 침대에서 기껏 깨워 거실로 내몰았던 삼부자는 소파에서 다시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올케가 기막혀 하면서도 애틋한 마음에 찍어놓은 사진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짓다가 괜스레 돌연 울컥했었다. 이젠 더 띵똥과 독고진, 구애정을 볼 수 없게된 허전한 마음을 조카들 사진 보며 극뽀~옥 해야겠다.
아빠 가슴팍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가 지우가 지금 여섯살이니 벌써 4년이나 지난 사진이다. 아마도 결국 저날 지우 돌잔치 예약을 하고 돌아온 것이 외출의 전부라고 들은 것 같으므로, 독고진네 아기랑 사진속 지우랑 개월수가 비슷하지 않을까나? 셋 다 팅팅 불어터진 얼굴로 서로 엉겨 자고 있는 모습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새 또 까먹고 있다가 막내조카 그림을 찍어 올린 동생 블로그에 가보고 떠올랐다. 조카들 그림 자랑 시리즈로 쓴대놓고 이거 원, 얼른 준우편, 지환이편을 마무리해야 요즘 가장 기대주인 지우편을 쓸 수 있으니 서둘러야겠다. 그동안 지우는 계속해서 천재적인 그림을 그려놓거라!
동생네 집에는 준우 작품과 작품사진이 더 어린 시절부터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암튼 내가 열심히 싸이질 하던 시절부터 퍼다놓고 오려놓고 찍어놓은 추억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팔불출 고모에게 천재가 틀림없다며 감탄을 자아내기 시작한 건 네살 때다.
아이들이 이 정도 그림은 다 그리는 거라고 비웃어도 소용없다. 뭔가 주제에 맞게 다양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게 내겐 그저 신기했으니까.
이 시기에 비슷하게 제 아빠를 그린 그림도 있지만 앞으로 그림사진을 잔뜩 올려야하니 엄선하는 수밖에 없다. 암튼 준우도 네살이 되자 스케치북을 하루아침에 뚝딱 다 써버릴 정도로 작품욕에 불타올랐다. 엄마는 크게 그리고 자기는 작게 그리는 걸 이미 네살 때 터득했다는 거 훌륭한 거 아닌가? ㅋㅋㅋ
2005년 4월. 아직 만 세돌도 안된 네살 때 그림이다.
한해를 넘기고 다섯살이 되면서 인물화 이외에도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 그림은 연필로 쓱쓱 그린 <호랑이와 햇님>
2006년 2월작. 호랑이와 햇님이 매우 닮은 것이 특징이다. ^^;
올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무렵엔 홀로 스케치북을 펴놓고 앉아 쓱쓱 그림을 그려놓고선 제 엄마에게 이게 무슨 그림 같으냐고 물었단다. 자기가 형상화한 모양이 타인에게도 정확하게 전달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또 열광했다. 역시 천재가 틀림없어! >.<
[새] 2006. 2월. 5세
[고모(그렇다! 바로 나다ㅋ)]2006. 3월
같은해 겨우 한달 새 그린 그림인데 한쪽은 대단히 절제된 선과 단순성이 돋보이는 작품인 반면, 오른쪽은 그림을 사주한 장본인 앞에서 그리려니 짜증이 밀려와 화풍이 달라졌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확연히 느낌이 다르다. ^^;
어쨌거나 이 오른쪽 그림은 준우가 나를 그려준 첫 작품이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하이힐을 신은 발을 보시라! (당시만 해도 나는 언제나 높은 신발만 신고 다녔을 거다)
[악어] 2006. 2월. 스케치북에 연필. 5세
세로그림을 위로 모으느라 순서가 달라졌다만, 이 그림은 위의 왼쪽 새 그림과 같은날 발견, 촬영된 것이다.
작품명은 모두가 짐작할 수 있듯 <악어>
이러니 내가 천재소리를 안할 수가 있겠나! ㅋ
[인물화] 이면지에 보라색연필. 5세.
2006년은 준우에게도 특별한 해다. 다섯살이 되면서 동생이 생겼기 때문이다. 동생이 생기면 같이 놀아주고 예뻐해주겠다고 열달 내내 다짐을 했고, 그 결심은 열살인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동생은 동생이고 산후조리기간 동안 죽도록 좋아하는 엄마랑 헤어져 지내야하는 건 모든 아이가 그렇듯 준우에게도 힘겨운 시련이었다. 엄마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유치원에 다녀와선 주로 외할머니나 이모가 돌봐주시고 가끔 우리집에도 왔었는데, 내가 아무리 정신없이 놀아주려 해도 엄마가 그리워서 어깨가 축 쳐졌었다. 어쨌든 그렇게 지우가 태어나고 며칠 뒤 우리집에서 놀다가 그린 그림이다. 누구냐고 물어도 "그냥...."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6월에 찍어서 6월로 기록되어 있지만 내 생각엔 2006년 5월말 작품인듯.
[공룡] 2007년 2월 스케치북에 싸인펜. 6세
[엄마와 동생] 2007년 2월. 스케치북에 색연필. 6세
2007년 준우 여섯살 때다. 역시나 나이와 함께 그림도 여물었다. 정민이는 공룡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는 건지 준우, 지환이, 지우 다 공룡이라면 아주 사족을 못쓰고 좋아한다. 그 어렵고 긴 외래어 이름을 다 외우는 게 나는 너무나 신기했다. 그러고는 공룡을 자주 그리기도 했다. 싸인펜으로 마치 공룡화석을 스케치한 것처럼 쓱쓱쓱 이리도 정교하게 그려놓다니, 나로선 침을 줄줄 흘리며 감탄할밖에. 근데 이건 무슨 공룡일까? +_+
오른쪽 그림은 제 엄마와 동생 지우를 그린 작품이다. 그림 설명을 청했을 때 동생이 자고 있어서 엄마가 행복해한다고 들은 것 같다. 짜식... 엄마를 '임마'라고 적은 것이 참으로 귀엽다. ㅎㅎㅎㅎ
[동현이 헝아] 2007년, 6세
이쯤해서 귀여운 화가 준우의 사진을 공개한다. 지금은 완전 청년 느낌인데 이때만 해도 완전 애기다 애기. ㅠ.ㅠ
작품명은 <동현이 헝아>.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제 사촌형을 그렸다.
이때만 해도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음에도 노상 바쁘다고 빌빌대느라 나는 이렇게 멋진 작품을 그려받지 못했다. 속상하다. 흑... 뭐 그래도 생일 선물로는 늘 그림을 받았으니까!
다섯살 때 생일선물로 가져온, 배꼽도 있고 찌찌도 있는 싸인펜화는 예전에 다른 데 공개한 적이 있으니 이번엔 생략했다. ㅎㅎ
정민이 그림 때도 소개한 적이 있는, 막내고모할머니랑 공동작업한 사포 모빌작품이다. 그 가운데 준우는 세 개를 그렸던 모양인데 마침 사촌동생이 찍어다주어 어찌나 반갑던지 낼름 퍼다놨었다. 곤충 그림만 봐도 딱 준우 느낌이 난다. ^^
역시나 2007년 9월. 6세 때.
드디어 2008년으로 넘어가자. 2007년부턴가 동생이 좋은 카메라를 장만해 사진보기 답답한 미니홈피를 탈피해 블로그 시대를 열면서 작품사진도 훨씬 시원시원해져 퍼오기도 좋다. ㅎㅎ
[무서운 상어] 08년 7월. 도화지에 크레파스와 물감. 7세
[낙타거미] 08년 가을. 7세
둘 다 준우 유치원에서 발표가 있던 날 교실에 걸려있던 그림을 동생이 찍어온 사진이다. 왼쪽의 바다 풍경 그림에선 갈매기가 어쩜 저리도 정교한지, 그리고 상어를 흔하지 않게 자주색으로 칠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이런 채색화도 하나 소장하고 싶은데 흑...
오른쪽 그림은 나도 직접 봤는데 세밀하기가 이를 데 없다! 어떻게 저런 그림을 그리는지.. 다른 애들 작품과 완전 비교되면서 천재 DNA에 대한 나의 심중을 굳혔다. 누가 일곱살 때 이런 그림을 그리겠느냐고!!!
[코뿔소] 2009년 10월. 도화지에 연필. 8세
모티브가 된 고모할머니 판화작품
막내고모할머니의 전시회를 다녀온 준우가 집에 가서 코뿔소 그림을 그렸다며 동생이 찍어 올려주었었다. 사진을 보고 그린 것도 아니고, 그저 작품이 남긴 인상을 떠올려 그린 그림치고는 정말 잘 그리지 않았나!!! (뭐 카탈로그 보고 따라그린 거라고 해도 어쨌든 휼륭하다;; ㅋ) 왼쪽 작품을 보고 동생은 귀가 어깨에 달린 게 흠이라지만 그런 파격이 더 천재적인 거지 원래! ㅋㅋㅋ
일부러 비교용으로 나란히 놓았는데 볼수록 신기하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자 역시나 제도권 미술교육의 폐해인지 아닌지, 준우도 우리 집에 오면 그림 그리며 놀자는 나의 청을 단박에 거절하고 다른 놀이를 원했다. 공차기라든지 원반던지기라든지 아니면 카페놀이.. -_-; 그러다 어렵사리 그림을 그리자고 꼬드겨보면 한참 열중해 있던 SF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이름도 하나같이 어찌나 웃긴지 원 ^^; 해서 준우가 고모에게 소장을 허락한 마지막 그림은 아래와 같다. 물론 생일 선물 빼고...
작품명은 모르겠고 2010년 4월 작품으로 추정됨. 9세
나는 특히 아래쪽 문어 캐릭터가 맘에든다 ㅎㅎ
다 무시무시하게 생겼는데 이래뵈도 착한 애들과 나쁜 애들로 나뉜다. 특히나 '똥파란 사자', '나쁜 문에수' 등 악당 이름이 웃겨죽겠다.
어느덧 준우는 이제 3학년. 10살이다. 요즘은 팽이와 레고, 부루마블을 비롯해 놀잇감이 워낙 많으니 그림을 그리며 놀지 않는다. 그림은 제 동생이 열심히 그려주고 있으니 준우는 축구와 야구에 심취해 몸을 쓰며 노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고모는 궁금하다. 준우는 요새 학교에서 어떤 작품을 선보이는지. 천재화가의 DNA는 또 언제쯤 발현되어 줄 것인지... 허나 어쩌겠나. 기다림밖엔 답이 없으니 기다려야지.
풀 그림 이야기가 나오면 내겐 또 남다른 사연이 있다. 예전에 미니홈피에도 밝혔던 이야긴데, 풀로 그린 조카 그림도 하나 더 있겠다 그 추억도 마저 상기해야겠다. 부모님이 동생들을 데리고 분가하시고 나서도,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중간 무렵까지 본적지이자 출생지인 ***동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들과 살았다. 연년생인 남동생과 입학 터울을 둘 겸, 생일이 여름인데도 제법 똘똘하다는 것만 믿고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나를 덜컥 7살에 국민학교에 입학시켜놓고, 할머니는 매일 전교에서 제일 작은 1학년 학생인 나를 업어나르셨다. 울 엄마는 또 첫딸 입학을 위해 제일 비싼 최고급 책가방을 사주었다는데 (가죽이었는지 아닌지 기억나지 않지만 암튼 빨간색이었던 그 가방은 무척 재질이 두꺼웠고 열고 닫기 불편했다) 그게 또 엄청 무거워, 할머니가 보기엔 책가방 무게 때문에 애가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단다. ㅋㅋ
늘 교문 앞에서 수업 끝나기를 기다리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던 어느 날, 나는 친구들과 가방 들어주기 가위바위보를 했다. 지금도 그때도 가위바위보에 젬병인 나는 당연히 꼴찌였다. 책가방을 앞 뒤로 매고 양손에도 하나씩 친구 책가방을 들었다. 꼴찌에서 두번째는 신발주머니를 모아 들었다. 낑낑대며 학교 앞 언덕길을 내려가는 나를 저 멀리서 발견한 할머니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시며 달려왔다. 힘 없는 아이 괴롭히는 나쁜 놈들이라고... 친구들의 엉덩이까지 한대씩 퍽퍽 때려준 할머니는 내가 옆에서 괴롭힌 게 아니라 그냥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것 뿐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러고도 분에 못 이기셨는지 할머니는 울먹거리는 친구들에게 집이 어디냐고, 앞장서라고 말씀하셨다. 애들 부모에게 일러 다시는 손녀딸을 괴롭히지 말라고 당부할 작정이었던 거다. 그래서... 화난 그 아이들은 한동안 나와 놀아주지 않았다.
한글도 못 떼고 들어가 이해력이 많이 떨어졌던 나는 1학년 미술시간 준비물을 알려준 선생님의 설명을 오해했던 모양이다. 미술책을 미리 들춰보았다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겠지만, 어린애가 뭘 알았겠나. 늦둥이로 낳은 막내딸도 거의 다 키워놓아 국민학생의 학부모 노릇에 서툴렀을 할머니, 할아버지도 마찬가지고. 어쨌든 "풀에 물을 들여오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나는 집에 가서 그대로 전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고심 끝에 누렇게 말라붙은 (아마도 채 신록이 우거지기 전인듯..) 풀들을 마당에서 따다가 정성껏 물감으로 이런저런 색을 칠해 물을 들여주셨다.
다음날 곱게 '물들인 풀'을 갖고 학교에 간 나는 친구들이 다 나와 달리 '찍어 쓰는 풀통'에 물감을 풀어 색색깔로 물들여온 걸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 사건은 어린 나에게 제법 큰 충격이었던 듯하다. 부모님 슬하로 옮기느라 전학을 했던 이후 국민학교는 몰라도, 입학한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은 거의 사라졌는데도 책가방 사건과 더불어 이 사건은 또렷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날 나의 담임이셨던 '호복순' 선생님(이 이름도 절대 잊혀지질 않는다^^)은 우는 나를 달래시곤 옆 친구에게 색깔풀을 나눠주라 하셨고, 미술시간은 친구의 준비물을 빌어쓰며 무사히 넘어갔다.
정민공주에게 내가 언제 이 사연을 들려주었는지 모르겠는데, 어린 정민이에게도 몹시 인상적인 이야기였던 듯 가끔씩 불쑥 고모 어렸을 때 미술시간에 '물 들인 풀' 준비물을 잘못 해간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서 선생님이 왜 준비물을 잘못 해간 고모를 혼내지 않았는지, 친구는 왜 암말 없이 자기 물감을 나눠주었는지(자기 그림 그릴 것도 모자랄지 모르는데!) 꼬치꼬치 묻곤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려준 날은 어김없이 풀을 쑤어 물감 풀을 만들어 바쳐야 했고.. -_-;
2007년 1월. 장 뒤뷔페의 우를루프 정원 전시회를 함께 다녀온 날도 공주는 위대한 예술가에게 영감을 받았는지 물감풀을 청해 풀 그림을 시도했다. 파란색 풀과 빨간색 풀 두 가지나 만들어야 했는데 찹쌀가루(마침 밀가루가 집에 없었다)를 아낀 탓에 풀이 너무 묽어 다른 때보다 작품엔 열악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작품이 마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개구쟁이 동생이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사진으로만 남은 공주의 풀 그림을 천재 시리즈에 넣을까 말까 하다가 뺐는데 결국 이렇게 올리게 되는군. ㅎㅎ
열살 정민이의 우를루프
장 뒤뷔페의 우를루프 연작 가운데
확실히 뭔가 연결되는 느낌이 들지 않나? 이런 걸 보면 조카들 가운데 하나 쯤은 화가가 탄생하기를 소망하며 자꾸만 미술관에 데려가는 보람이 있다. ㅎㅎㅎ
자꾸만 더러운 세상이라고 욕하고 싶은 꿀꿀한 분위기를 털어버리는 데는 뭐니뭐니해도 팔불출 고모노릇이 최고다. -_-'; 댓글 수로도 드러나는 지우 그림의 인기에 힘입어 그간 모아둔 조카들의 구김살 없는 그림을 대거 공개할 작정이다. (방문자 많은 거 싫다면서 결국 흥행에 신경쓰는 것 좀 봐라 ㅎ) 연도별로 꼬박꼬박 컴퓨터에 스캔해 두거나 찍어둔 조카들의 그림 폴더를 새삼 열어보며 느낀 행복과 흐뭇함을 이웃들에게도 나누고 싶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고 솔직한 이유는 그렇다, 그냥 달리 내세울 게 없는 인간의 팔불출 자랑질이다. ^^;; 이런 자랑질 불편하고 귀찮은 분들은 패스하시라고 접어둔다.
조카들 넷 중에 셋이 돌잡이에서 모두 연필을 잡았는데, 애들은 원래 제일 익숙한 물건을 잡는 것이 보통이라는 속설이 조카들의 경우엔 맞는 것도 같다. 특히 첫 조카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우리집에서 보냈기 때문에 기어다니다가 막 일어설 무렵부터 그림책 읽어주기와 더불어 종이에 그림 그리기를 내가 주도했다. 그게 과도해져 벽이나 방바닥에 거침없이 낙서를 해놔도 나는 그저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해주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벽화잖아! 라고 반색하면서.
암튼 그 때문인지 타고난 DNA가 남달랐는지 그건 알 수 없으나, 찍찍 선을 그어대는 낙서와 동그라미 세모 그리기가 지나고 서너살이 되면 나의 조카들은 곧잘 인물화를 그려냈다. 천편일률적이기 일쑤인 어린아이들의 인물화와 달리 각자의 개성을 간파하여 거의 캐리커처처럼 그려내는 정민공주 솜씨에 나는 그야말로 펄쩍펄쩍 뛰며 흥분했다. 헌데 하루에도 스케치북을 서너권씩 써버리는 속도가 두렵고 종이가 아까워 이면지를 주로 사용했던 초창기 그림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안타깝다.
<4세 고은반>이라고 적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정민공주의 첫작품이다. 크레파스로 밑바탕을 칠하고 그 위에 빨간색 풀을 덮은 뒤 손가락으로 쓱쓱 그렸다. 유치원에서 전시했던 걸 나중에 집으로 가져왔었는데, 저렇게 나날이 풀이 말라 떨어져 버려 결국엔 몇년 전에 버려야 했다. ㅠ.ㅠ 제목은 <엄마>라고 추정. 2001년도 작. 4세라지만 생일이 12월 말이라, 실제 만나이는 30개월 정도였을 거다. 사직을 찍을 당시에도 이미 저리도 많이 훼손된 상태지만 그래도 공주 특유의 시원시원한 필치(?)는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련다. ㅋ
아래의 스케치 6장은 공주가 다섯 살 때, 어느 여름 날 우리 집에 모인 식구들이 돌아가며 줄서듯 졸라댔더니, 몹시 귀찮다는 듯이 장당 30초쯤 걸려 쓱쓱 그려 준 작품이다. 내가 모아두기 시작한 공주의 첫작품들이기도 하고... 이면지에 볼펜으로 대충 그린 이 그림을 스캔해서 널리 자랑했을 때 모두들 내 의견에 동감해주었다. 얘는 천재화가소녀가 틀림없어! 라고. ^^;
[고모] 즉 나라는 얘기 ^^
[아빠] 투실투실 살찐 아빠!
[엄마] 동글동글한 느낌이 딱
[할머니] 꼬불꼬불 파마머리 ㅋ
[할아버지] 대머리와 안경에 주목
[강아지] 이땐 주변에 강아지 없었다
모두 이면지에 볼펜으로 그린 걸 스캔해서 상태가 별로 선명하질 않다. -_-a 암튼 꼭 콧구멍을 그려넣은 것이 당시 그림의 특징이다.
셋 다 2003년, 여섯 살 때 작품이다. 좌: 3월. 작품명은 [고모]. 내가 미용실에서 바람머리를 하고 온 날 기념으로 그려주었다. 초창기 블로그 대문사진으로 쓴 적도 있을 만큼 아끼는 작품인데 원본은 막내고모한테 넘겼다. 하도 탐내 하셔서... ㅎㅎ 중: 10월. 이 무렵은 공주가 어디나 마구 그림을 그려댔다. 작품명은 [참새]. 이제 보니 장욱진의 새 그림을 닮았다. 우: 2월. (순서 바꾸기가 안된다 ㅠ.ㅠ) 누구를 그렸는지 모름. 공주네 식구가 다녀간 어느 주말, 방문에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언제 그림을 그려 풀칠까지 해놓았는지... 하도 테이프질, 풀칠을 많이 해놓아 떼다가 그림은 찢어지고 사진만 남았다.
역시 2003년, 6세 때 작품들. 좌: 11월. 유치원에서 전시했던 작품을 찍은 건데 교사의 가필이 들어갔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창호지에 물감으로 어떻게 저렇게 완벽한 선을 그렸을지 의아하긴 하다만 진짜 공주의 단독 작품이라면 천재가 분명하다고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작품명은 [고구마 줄기] 중: 사진을 11월에 찍어왔음. 집에 가보니 공책에 그려놨더라. 작품명은 둘 다 [자화상] 왼쪽 그림의 분홍색 줄은 줄넘기란다. ^^ 우: 12월에 사진 찍음. 작품명 [자화상]. 다리의 길이를 달리해 달려오는 듯한 아이 모습이 인상적이다
좌: 2004년 8월 7세때. [무지개 포도] 이날 내게 줄 선물로 스케치북 한가득 그림을 그려가지고 왔었는데 그중 엄선했다. 중: 2004년 12월 [코끼리]. 백화점 문화센터로 그림을 그리러 다닐 때다. 창호지에 물감 채색인데 코끼리가 상당히 '벌'스러운 것이 특징. ^^; 마침 할머니가 두달째 입원중이셨는데, 그림 들고 문병와서 할머니 힘내시라고 병원 침대 위에 붙여놓았을 때의 사진이다. 환자보다는 오히려 꼬박 두달간 간병무수리하던 나에게 더 용기를 북돋아준 그림. 우: 2005년 11월. 초등학교 1학년 8세 때다. 좀체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고모할머니의 전시회에 다녀와서 그날 일기장에 그린 그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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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막내고모의 작품인데, 가운데 그림을 기억해서 따라 그린 모양이다. 사진이 어두워서 잘 안보이는데 그림 배경에 모두 금가루와 하얀 점들이 박혀 있다.
2007년 3월에 찍은 사진. 공주가 3학년, 10살 때다. 현재 이 그림은 액자에 들어 왕비마마 거실에 걸려 있다. 그림을 그릴 당시 (2월일지도 모르겠다) 왕비마마가 또 한참 입원해 계셨는데 꽃 좋아하시는 할머니 그림 보고 힘내시라고 정민이가 선물했다. 이 작품 이후로는 정민이가 우리에게 그림 자랑을 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고모할머니한테 그림을 배우러 다니고는 있지만, 예전과 달리 좀처럼 작품 자랑을 하지 않으며 감추려고 하는 느낌이다.
오른쪽 사진은, 역시 공주 10살 때. 9월에 열린 고모할머니의 그룹 전시회 <이면전>에 오브제 모빌 작품으로 조카들 셋(아기였던 지우 빼고)이 모두 함께 참여했었다. 자칫 잘못 보면 손가락 욕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포에 그린 모빌 작품을 잡고 있을 뿐이다. ^^; 조카들이 서너 개씩 그린 그림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드리워졌던 이 모빌은 전시회 철거 후, 고맙게도 일부가 나에게로 와 현재 작업실 방문 앞에 매달려 있다.
2008 4월. 11세때. [아기도깨비]
이후 공주의 그림들은 점점 캐릭터 팬시 상품처럼 변해갔다는 후문이다. 왼쪽 사진은 공주의 작품 사진 폴더에 들어있는 가장 마지막 작품으로, 도자기를 빚어 거기에 그림을 그렸다. 채색 슬리퍼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지환이 작품 소개할 때 같이 공개할 작정.
놀라운 천재적 기질이 아직 공주의 머릿속에, 손끝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다고 늘 이야기하며 용기를 북돋고는 있는데, 초등학교 6년간 공주는 이런 솜씨로도 그림 관련 상을 단 하나도 받아오지 않았다. 천재를 몰라본다고 처음엔 마구 분노했는데, 알고보니 학교에 작품을 제출하는 일 자체가 아주 드물었다. 마음에 안든다며 중간에 북북 찢어버리거나 집으로 가져왔다가 미완성인 채로 결국 내지 않는 식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엔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장 즐거운 놀이였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우리로선 알 수 없다. 물론 나는 언제고 공주의 천재 화가 잠재성이 다시 발현될 것이라 믿으며 묵묵히 기다리자고 마음먹었으나 조바심이 나는 걸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이 포스팅을 하면서 흔들리는 믿음을 다시 굳히기로 했다. ㅎㅎㅎ
* 폰카로 찍은 사진들도 있어 상태가 조악하지만 그래도 그림은 클릭하면 거의 다 크게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