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사랑'에 해당되는 글 89건

  1. 2013.05.02 서양수수꽃다리 4
  2. 2012.12.27 산타는 있는가 8
  3. 2012.10.10 아등바등 2
  4. 2012.03.02 Why not? 4
  5. 2012.02.23 기분 좋아지는 그림 13
  6. 2012.02.17 재롱잔치 유감 12
  7. 2011.12.26 고흐가 알면 13
  8. 2011.12.22 섬집아기 8
  9. 2011.12.06 화장 3
  10. 2011.11.30 초상화 두점 14

언제 가고 왔는지 모르게 4월이 가고 5월이 왔다. 그새 벚꽃, 살구꽃은 다 떨어져 연두잎을 내밀었고, 라일락이 피어났다. 두문불출하는 나날의 연속이지만 드물게 마당에 내려가보면 라일락 향기가 퍽이나 유혹적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가 라일락 향기에 감탄하는 두 아줌마에게 외쳤다. 라일락이라고 하지 말고 서양수수꽃다리라고 해야 돼! 기특한 녀석. 라일락이 수수꽃다리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는데, 그새 '서양'이 더 붙었나보다. 배배 꼬여 쓰러져가는 라일락나무 밑둥에서 올해는 가느다란 가지가 올라오더니 볼품없는 막대기처럼 보였던 외줄기에도 꽃이 매달렸다. 허리를 숙여야 제대로 보이는 높이에서 솟아나듯 피어난 서양수수꽃다리는 더욱 향기롭고 예뻐 보인다. 애먼 데서 느끼는 단신의 동질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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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는 있는가

투덜일기 2012. 12. 27. 16:22

열살짜리 조카랑 얼마전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놓고 나름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어쩌다가 종교 이야기가 나왔는지 잘 모르겠는데, 녀석이 뜬금없이 고모는 왜 옛날엔 할머니 따라서 절에 다녔는데 이제는 신을 안믿느냐고 물었다.

 

그땐 고모도 어쩌면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절에 가면 부처님한테 기도하고, 성당이나 교회에 가면 또 거기서도 신한테 기도를 했었는데 곰곰이 따져보니 없는 것 같더라고 뭉뚱그려 대답했다. 신은 그냥 약한 인간이 기댈 존재가 필요해서 만들어낸 것 같다고. 그 밖에 몇 가지 더 알량한 이유를 들어 자기변명 비슷하게 설명을 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녀석은 선선히 자기도 신은 없는 것 같다고 하더니만, "그런데 산타클로스는 확실히 있는 것 같아"라며 내게 동조를 비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작년부터였나 이미 산타클로스는 없다는 친구들의 폭로에 노출되어 퍽이나 혼란을 겪었음에도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아직은 믿고싶어하는 눈치였다. 작년에도 산타가 정말로 없느냐는 아이의 물음에, "없다고 믿으면 절대 없겠지. 너 믿고 싶은 대로 해."라며 얼렁뚱땅  넘어갔는데, 때가 때이니 만큼 또 다시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녀석이 3학년이나 돼서도 아직 산타클로스가 있다는 쪽에 더 무게를 두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엄청나게 말을 안들으면  정말로 산타의 선물을 받지 못하더라. - 제 누나와 본인이 그 좋은 예 (오래 전 허구한 날 쌈박질을 하던 남매 모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못한 해가 있었다. ㅋㅋㅋ)

 

둘째, 자기가 다섯 살 때 산타할아버지한테 자기는 장난감 필요없고 꼭 벙어리 장갑을 받게 해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애들이 놀려서 그냥 말로만 레고 받고 싶다고 했더니만, 진짜로 산타할아버지가 벙어리장갑이랑 조그만 레고 장난감을 같이 선물로 두고 갔었다. (벙어리장갑을 받고 싶은 건 정말로 '자기만 아는 비밀'이었다나 ㅋㅋㅋ)

 

셋째,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정말로 갖고 싶은 선물이 하나도 없고(헐, 장난감 과잉의 시대!) 산타가 있는지 없는지도 고민이 많아서 산타할아버지 마음대로 선물을 주려면 주고 말라면 말라고 생각했더니....... ㅋㅋㅋ 5만원짜리를 두고 가셨단다. 차라리 산타가 용돈을 주면 나중에 마음에 드는 선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자기도 한 적 있었다고! (크핫;; 니네 엄마아빠도 참!!!)

 

 

그럼에도 산타는 없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엄마아빠가 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친구들의 주장에 경도되는 이유 역시 존재했다.

첫째, 작년에 '말도 잘 안듣고 못되고 만날 떼를 쓰는' 사촌동생 OO이는 무려 30만원이나 하는 3D닌텐도에다가 심지어 게임팩까지 6개나 한꺼번에 선물로 받았다. 말도 안 된다. 산타 할아버지가 전세계에 있는 어린이한테 선물을 줘야하는데 한 사람한테만 그렇게 비싼 선물을 줄 리가 없다. (오 녀석, 기특하게도 자본과 평등의 문제도 고민하는구나;;)

 

둘째, 자기 친구 @@이가 밤에 몰래 아빠가 트리 밑에 선물 두는 걸 숨어서 봤다. 선물도 @@이가 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산타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가짓수도 더 많고 본인의 경험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결론은 산타가 있다는 쪽으로 내려진 모양이었다. 다만 떨칠 수 없는 의구심을 내게 설명해달라는 듯했다. 그렇다면 내 역할은 열심히 '구라'를 쳐서 아이의 동심을 한 해 더 지켜주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설명은 어렵지 않았다. 녀석의 사촌동생 OO이가 작년에 받은 선물은 산타할아버지가 놓고 간 게 아닐 거다. 정말로 그렇게 말도 안듣고 떼를 쓴 아이였다면 선물을 받을 리도 없고, 정말로 산타할아버지는 공평하게 선물을 나눠줘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비싼 선물은 줄 수 없으니까. 그런데 OO이도 아마 선물 받을 욕심에 12월 들어서는 착한 일을 좀 하지 않았을까? 녀석은 좀 생각해보더니, 진짜 까불기는 하는데 자기 말을 잘 들을 때도 있다면서 스스로 그럴듯한 답을 생각해냈다. OO이가 받고싶은 선물은 너무 비싸서 산타할아버지가 준비할 수 없으니까, OO이네 엄마한테 텔레파시를 보내서 사주라고 했나보다! 그랬더니 이모가 돈이 너무 많아서 게임팩까지 막 사준 거라고.... +_+  (이 설명은 놀랍게도 산타가 아니라 부모에게 값비싼 크리스마스 선물을 대신 받은 수많은 아이들의 문제까지 해결해준다!)

 

두번째 친구 @@이의 경우도 산타를 의심하고 숨어서 지켜본 아이니까 산타할아버지가 찾아올 리 없고, 그걸 안쓰러워 한 아빠가 대신 선물을 준비했으니 엉뚱한 걸 받게 됐을 거라고.... (거짓말도 자꾸 하면 는다 끙;;)

 

 

어쨌든 녀석은 올 크리스마스에 무슨 선물을 받게 될지 고민이 많았다. 정말로 받고 싶은 선물은 3D닌텐도랑 게임팩인데 그건 너무 비싸서 산타할아버지가 사줄 수 없고, 산타가 엄마아빠한테 텔레파시를 보낸다고 해도 자기네 집은 절대 안 사줄 것이라는 점이 함정.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기다려보겠다고 했다. ^^;

 

나는 과연 녀석이 산타에게 무슨 선물을 받을지 자못 궁금했는데 어제 가보니 새까만 재규어 인형(!) 한마리가 트리 아래 누워있었다. 열살인데도 아직까지 복실복실 봉제인형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녀석임은 알지만.... 산타할아버지가 알고 보낸 선물인지 아닌지 원 알 수가 있나. 침대에서 데리고 노는 게 아니라 인형을 트리 밑에 며칠째 얌전히 놓아둔 걸로 보아, 올해로 드디어 산타의 존재에 대해서 산통이 깨진 건 아닌지 겁이 나서 아직 조카와 추후 대화는 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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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등바등

투덜일기 2012. 10. 10. 10:51

 

 

지난 여름 생일에 지우가 선물한 그림.

난 무대체질도 아닌데, 내 평생 외발자전거는 타본 적도 없는데, 그림 속의 나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저글링까지 하고 있다. 운동신경 젬병인 고모를 저런 모습으로 담아준 것이 그저 고맙고, 녀석의 뛰어난 상상력을 신기해하며 줄곧 냉장고에 붙여두고 흐뭇해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요즘 문득 쳐다보며 어린 조카의 혜안(?)이 참 놀랍구나 싶어졌다. 잘 타지도 못하는 외발자전거에 올라 공을 세개나 허공으로 던지고 받느라 아등바등... 얼굴은 웃고 있지만 언제 넘어질지 위태롭기만 하다. 딱 요즘 내 모습이 아닌가. 이 다음 장면에서 난 분명 저 높은 언덕을 오르지 못하고 자빠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을 거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당분간 아등바등 몸부림은 그만둬야겠다. 철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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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not?

하나마나 푸념 2012. 3. 2. 17:55

내가 중학생 때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아도 도통 기억이 선명하질 않다. 그때만 해도 성적은 그리 중대사가 아니었으니 아마도 친구 문제였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요즘 중학생의 최대 관심사는?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조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뭐니뭐니해도 첫째가 '외모'다. -_-; 친구도 '외모'가 따라줘야 만들수 있는 거라나 뭐라나. 내 경우 그 시절 외모는 최대 관심사가 아니었다. 확실하다. 미용실보다 커트 비용이 훨씬 싸다는 이유로 엄마는 가끔 나를 우리집 바로 옆에 있던 '이발소'에 보낸 적도 있었는데, 들어가고 나올 때 누가 볼까봐 창피해서 그렇지, 맞다 이발소 의자에 앉으면 키가 너무 작아서 이발소 의자 팔걸이에 판자를 가로 얹고 그 위에 앉아 머리를 자르는 어린이 취급을 받는 게 민망하긴 했어도 어차피 귀밑 1, 2센티미터로 자르는 단발머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헌데 요즘 여중생은 확연히 다르다.

중학생이 되면서 여드름을 가리느라 비비크림을 상용해 '심히' 뽀얀 얼굴을 만들고 다니던 조카는 여름 방학에도, 이번 겨울 방학에도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였다. 방학 전부터 제 부모에게 염색을 졸랐으나 개학때 또 다시 검정색으로 바꾸는 미용실 비용까지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반대했더니 친구랑 손수 염색약을 사서 해치웠다고 했다. 예뻐보이려고 어른들도 흔히 하는 염색을 아이라고 못하게 하는 건(파마약과 염색약이 유전자 변형을 가져온다는 말 정도는 안통한다. 거리에만 나가봐도 머리 물들인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논리적으로 납득시킬 수가 없어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후엔 며칠 버티다 다시 검정 물을 들였었다. 하지만 2학년으로 올라가는 이번엔 '학생인권조례'를 빌미로 버티기를 할 모양이다. 원래도 고리타분하고 규율이 엄한 그놈의 학교의 반응은 어떨지 30년 동문 선배이자 고모인 나는 벌써부터 걱정인데, 녀석은 천하태평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똘똘한 일부 학생들과 깨어 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얻어낸 '학생인권조례'는 교과부의 반발로 허공에 붕 떠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상태다. 기껏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정책이 교권과 상충한다는 이유로 무산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학생인권조례'가 발표됐을 때, 몇몇 보수 단체에서 '임신, 에이즈, 동성애 창궐' 따위의 피켓을 들고 반대시위를 하는 걸 보고 나는 기가 막혔다. 서울교육청에 가서 학생인권조례 전문을 다운받아 읽어보았지만, 도대체 어떤 문구에서 그런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임신이나 질병, 종교, 동성애 따위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아이들의 권리가 어떻게 그런 상황을 부추기고 조장할 거라는 논리로 발전하는지 원. 그럼 그런 아이들은 무조건 퇴학시키고 또래들과 차단하여 '격리'시켜야 옳단 말인가?

학원폭력과 왕따 문제로 가해자 아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그 어느때보다 높고 경찰까지 개입해 해결하려는 추세지만, 나는 결과를 놓고 처벌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예방교육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어쩌다가 중고생 아이들이 조폭 수준의 폭력과 증오를 실천하게 되었는지, 근본원인이 있지 않겠나. 이렇게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학벌주의 사회에서는 더는 그들을 '선도'할 희망이 없으며, 단죄밖에 길이 없다고는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다. 가정도, 학교도 우리 아이들을 끌어안지 못하면 대체 어쩌라고!

학창시절 불행히도 나는 존경할만한 스승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 괜찮은 선생님들도 더러 있긴 했지만 '존경'스럽진 않았기에, 기억나는 선생님 이름이 거의 없을 정도다. 대신 죽도록 싫었던 교사들의 얼굴은 잘 잊히질 않는다. 걸핏하면 "너희는 노예근성에 물들었다"면서 단체기합을 주거나 몽둥이로 다섯대씩 우리 엉덩이를 때렸던 사람, 소풍 때 '빨간색 진바지'를 입고 왔다는 이유로 다음날 교단에서 가위를 번득이며 아이의 귀 옆머리를 싹둑 달랐던 여선생(웃기는 건 그 사람의 별명이 하도 빨간바지를 애용해 '빨간바지'였다는 것;; 빨간바지를 입는 것이 교사만의 특권이라 생각했을까? 당시엔 무려 '교복자율화 시대'라 사복입고 다닐 때였다.), 별 이유도 없이 플라스틱 분필통이 부서져라 학생의 머리통을 두들긴 사람.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그들의 폭력을 지켜보며 우리는 더욱 분노하고 좌절했을 뿐, 학습태도가 좋아지거나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어서 빨리 졸업해 지긋지긋한 그들을 안보게 될 날을 기다렸다고나 할까.

교사일을 하는 친구 말을 들으면, 정말로 아무리 인간적으로 대해도 소용없는 '근본이 사악하고' '구제불능인' 아이들이 있으며, 못되게도 온갖 조롱으로 선생 길들이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 실행은 안 그래도 바닥에 떨어진 교권을 더욱 위태롭게 하는 조치라고.  현장에서 현실을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니 뭐라고 말을 보태기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과거 학창시절을 돌아볼 때 학생들의 인권은 중요하며 폭력과 체벌은 어떤 이름으로든 미화될 수 없다. 사랑의 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단체로 두들겨 맞으며, 사랑의 매라고 느껴본 적 나는 단 한번도 없다. 별것도 아닌 말썽을 부려 교사에게 매를 맞는 친구를 지켜보면서도, 같은 학생으로서 자존심이 상했으면 상했지 그것이 사랑의 매라고 생각한 적은 결단코 없다. 그저 교사로서 자기 자존심이 구겨졌기 때문에, 분노를 삭이지 못해 하는 분풀이로 여겨졌을 뿐이다.

스스로 삐딱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다고 아무리 되뇌여도 사춘기 조카를 지켜보거나 대화를 나눠보면 내가 꽤나 고리타분한 어른이라는 실감이 수시로 든다. '다리 길~어보이려고' 교복 치마 허리춤을 접어 짤뚱한 미니스커트로 입고 다니고, 영하 십몇도까지 내려가도 얇은 스타킹만 고집하는 건 자꾸 눈쌀이 찌푸려진다. 책가방으로 맨 베낭의 어깨끈이 너무 길어 축 늘어진 가방이 엉덩이에 대롱거리는 것도 안 예쁘고, 또 복장 상관없이 흉측한 삼선슬리퍼를 똑같이 신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중고생들은 정말 밉다. 그런데 그들에겐 또 그게 개성이고 멋이다. 나도 안다. 어떻게든 내 생각을 설득해보려하지만 결국 말문이 막히는 쪽은 늘 나다. 고모가 Why not?이라며! 헉. 맞다. 교복 좀 짧게 입고 다닌다고, 여중생이 머리를 물들이고 파마를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어차피 옛날처럼 귀밑 1, 2센티미터 단발머리나 까까머리로 통일시키는 게 아니고서야, 학교에서 원하는 통일성 따위는 이미 불가능하다. 학생은 머리색이 반드시 검정이어야 한다는 것도 크게 보면 순혈주의, 인종차별의 냄새를 풍길 수 있다.  머리모양 하나, 똑같은 교복의 모양새 하나에서부터 일탈을 시도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획일화 사고를 벗어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창의력까지 높아진다는 사례는 혹시 없으려나? -_-; 

새까만 머리는 촌스러움을 대변한다는 미용업계의 세뇌에 힘입어, 나도 한동안 열심히 머리색을 이리저리 바꿔본 사람이다. 그래봤자 흐리고 짙은 톤의 다양한 갈색머리를 시도하거나 부분염색으로 얼룩덜룩 파격을 시도했던 것인데, 그도 관둔지 오래다. 그땐 그게 '스타일리시'하고 멋져 보이더니만 이젠 귀찮음이 더 크고 자연스러운 게 좋다. 그러니깐 애들도 그냥 놔두면 지지고볶고 이리저리 난리를 피우다가 결국 자기가 원하는 개성을 찾게 되지 않을까? 하지 말라고 하니까 자꾸만 더 하고 싶은 아이들의 심리를 교육자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TV만 틀면 하나같이 샛노랗게, 새하얗게, 새파랗게 머리를 물들인 연예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인데 말이다. 

애어른인 듯 굴었던 나의 학창시절과 비교하면 요즘 사춘기 아이들이 훨씬 더 어리고 의존적이며 철도 없으면서 이기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애들이 그렇게 자라난 데는 어른들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성적만이 유일한 미덕이라고 부추기면서 그 외의 인간성 교육은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사교육에 밀려나고, 체벌 대신 벌점제도를 도입하면서 상당수 교사들은 더욱더 '선생님'이기보다 '평가요원'과 '행정직원'의 성향이 짙어졌다.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 문제 있는 아이는 걸러내버리면 그만이라는 듯한 요즘 학교 분위기가 나는 참 무섭다. 계속 거르고 걸러서 뽑아낸 '엘리트' 아이들과  버려진 아이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과연 무얼까. 공부 잘하는 능력과 체제순응형 DNA?

블로그 이웃이신 두분 선생님(한분은 한국에서 사회를, 한분은 영국에서 수학을 가르치신다)의 학교 이야기를 기웃거리다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각자 고군분투하시는 걸 보면 계속 감탄스럽고 그곳 학생들이 참 부럽다. 학교에 정말 그런 선생님이 한분이라도 계신다면 학생노릇 할 맛이 날 것 같다. 이왕이면 조카들도 그런 선생님을 한분이라도 만나게 되길 바라고 있으나, 그런 행운이 쉽진 않을 것이다. '내 아이를 안심하고 맡겨도 좋겠다 싶은 선생님'이 이상적인 교사상이라는 말이 있지만, 세상에 그런 선생님이 어디 흔한가. 그러니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는, "개떡같은 학교라고 해도 몇년만 버티면 돼. 원래 세상이란 데가 불공평한 곳이야. 스무살 때부턴 정말 니 맘대로 하고 살 수 있어" 정도다. 참 내... 질풍노도의 사춘기 아이에게 이게 과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냐고! 

어쨌거나 조카는 오늘 치렁치렁 길러 밝은 갈색으로 물을 들인 머리로 개학을 맞았을 것이고 새 담임에게 첫눈에 '찍혔'을 지도 모르겠다. 벌점이 무섭든 선생님들의 잔소리가 귀찮든 해서 녀석이 머리칼을 다시 검게 물들일지 어쩔지는 두고봐야알겠지만, 'why not?'의 태도가 퍽이나 긍정적이라고 가르친 사람으로서 나는 조카의 삐딱함을 계속 응원하고 지지해줄 수밖에 없다. 좀 지나면 녀석도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게 미덕임을 깨닫게 될 날이 올거라 믿으면서. (그치만 또 평범한 게 진짜 제일 어려운 건데... 아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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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고한 적도 있는 지우의 2차 스케치북 그림들은 아직도 작품 제목과 설명을 못들은 탓에 포스팅을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가운데 다른 작품집을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도 도도하신 화가 본인의 설명을 듣진 못했으나 다행히 제목은 적혀 있으니 마음대로 작품을 해석할 기회라 여기며 열심히 찍어왔다. 미술관 못가는 대신 조카 그림이라도 보면서 기분을 전환해볼 요량이었다가, 내친김에 자랑 포스팅까지 실천한다. 이쯤이면 이웃들도 나의 무한조카자랑에 심히 질리거나 익숙해지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 여기면서;;

아 맞다, 작품집 공개 이전에 녀석의 명작 따라 그리기 작품도 하나 공개.

위트릴로의 [두유마을의 교회]란 작품

지우가 연필로 모사한 그림 2011 12월, 6세


휴대폰에 <세계의 명화>라는 앱을 다운받아놓고 가끔 구경하는데, 지우가 그걸 눌러서 열심히 그림들을 넘겨보다가 하필 콕 찝어 따라그린 그림이다. 유독 그림이 작아 세부사항이 잘 안보이는데도 굳이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못내 궁금하다. 엄마 따라서 열심히 교회를 다녀 녀석의 마음에 은혜로움이 충만하기 때문일까? ^^;

그러고 보니 약간 만화체 같긴 해도, 어디선가 보고 베껴 그린 예수님 그림도 있다. 독실한 교인이신 나의 넷째고모 권사님과 사촌동생은 이 예수님 그림을 사진으로 접하고 마구 흥분하며 반색했다는 후문이다. 유명 화가들 작품엔 예수상 그림 많던데, 언젠가는 녀석이 홀로 생각하고 그려낸 예수상을 만나게 해줄지도...
이 작품은 내가 직접 그림을 본 게 아니라 그림 사진만 전송받아서 왼쪽에 적힌 글씨의 내용이며 사연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성경구절이려나? 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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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제일 어린 조카의 유치원 재롱잔치에 다녀왔다. 작년에 이미 녀석의 끼가 얼마나 출중한지 깜짝 놀라며 감탄했기에 올해도 기대가 컸는데, 역시나 녀석은 요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울 엄마의 촌평을 그대로 빌리자면, "비싼 돈 주고 가서 본 뮤지컬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났다". 정말로 무대가 어찌나 화려하고 프로그램도 다양한지 주최측에서 심혈을 기울인 티가 팍팍 났다. 집중력이 5분, 10분도 안되는 꼬마애들을 데리고 얼마나 진을 빼며 연습을 시켰을지 선생님들의 노고도 노고려니와, 개인당 대여섯 개는 되는 출연분량에 따라 율동과 노래, 때로는 대사를 연습하고 무대를 오르내리며 매번 옷을 갈아입어야했을 아이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어휴... 감탄과 더불어 탄식도 절로 나왔다.

10여년 전, 첫조카가 유치원을 다닐 때만 해도 재롱잔치는 그야말로 유치원 강당에서 선보이는 원생들의 소규모 발표회였다. 의상이래봤자 흰티에 청바지, 한복 정도였고 동식물 역할 같은 특수의상도 유치원 선생님들이 약소하게 꾸며 만든 소품이었던 것 같다. 아, 그때도 운동복이나 태권도복을 입고 나와 시범을 보이는 순서는 있었다. 헌데 몇년 지나지 않아 둘째조카 때부터 재롱잔치가 점점 규모도 커지고 화려해지더니, 요샌 의상이며 조명이 가히 아이돌 그룹의 단체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를 위해 전문 시스템을 동원하고 체육관 같은 공연장을 빌려 '빵빵하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나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 역시 관람을 매우 즐겼기 때문이다. 유치원 재롱잔치의 목적이 아이들의 성취감과 발표력, 혐동심을 높이는 데 있다고 하니, 이왕이면 번듯하게 포장하고 싶은 원장님들의 마음도 알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꼭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의구심이 떠나질 않았다. 어차피 의상비며 소요비용을 학부형들이 부담해야하는 형편임을 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똑같이 무대의상비를 부담했는데, 자기 아이가 입고 나온 무대의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공연장 대관 형편 때문에 평일 저녁 6시로 잡힌 재롱잔치를 나로선 기쁜 마음으로 보러갔지만, 직장 사정상 참석 못하는 부모는 없을까 괜한 걱정을 했던 게 사실이다. 정말로 콘서트장에 오듯 형광글씨 요란한 피켓까지 만들어들고 집안 식구들 대거 동원해 온 가족들도 있는 반면, 그럴 형편이 안되는 집안도 당연히 있지 않겠나. 작년엔 우리도 피켓이랍시고 스케치북에 색종이를 오려 급조한 응원판을 들었으나, 올해는 쿨하게 스마트폰 전광판을 이용하기로 했고 편한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조카의 순서가 아니더라도 앙증맞은 아이들의 몸놀림이 너무 귀엽고 깜찍해서 웃음과 박수가 절로 나왔다. 특히 올해는 완전히 모든 출연 프로그램의 '메인'을 꿰차고 무대 중앙에서 제일 열심히 신나게 정확한 동작으로 춤과 연주를 보여주는 조카 덕분에 어깨까지 으쓱했다.

그.러.나. 까칠한 인간의 취향은 어디 가도 드러나는 법. 대체로 훌륭했다고 평할 수 있는 공연이건만 중간중간에 눈쌀이 찌푸려지는 순간이 몇번 있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싶은 시대착오적인 면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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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알면

놀잇감 2011. 12. 26. 21:19

고흐가 알면 아마 깜짝 놀라지 않을까 싶다.
매일매일 같이 그림을 그리며 놀자고 졸라서 애엄마가 괴롭다고 토로하는 나의 조카 지우.
방금 고흐 자화상을 컴퓨터로 골라놓고 제일 마음에 드는 걸 따라그렸다면서 올케가 동영상과 그림을 보내왔다. +_+
완성본만 본다면 겨우 6살, 아니, 만으로는 다섯살 밖에 안된 아이가 그린 그림이라는 걸 다들 믿을까 싶을 만큼 모사화 솜씨가 훌륭하다. 머리모양과 눈매, 양복의 선이며 이미지까지 완벽 포착!
비단 팔불출 고모라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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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집아기

투덜일기 2011. 12. 22. 01:43

참 구슬픈 노래다. 어려서 정확히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는 통 모르겠다. 어쩌면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게 아니고 TV <누가누가 잘하나>를 통해서 배운 노래일 수도 있겠다. 암튼 어려서도 커서도 <섬집아기>는 좋아하는 동요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연유는 잘 모르겠으나, 첫 조카가 태어나고 나서 자장가로 불러주던 노래이기도 했다. 잠투정이 심할 때는 안고 서서 집안을 걸어다니며 스무 번도 넘게 무한반복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대개는 볼륨을 점점 낮추고 곡조를 느리게 바꿔가며 2절까지 한 다섯번쯤 부르면 노랫말 속 아기처럼 조카도 스스르 잠이 들었다.

4년뒤 태어난 둘째 조카도 마음 같아선 <섬집아기>를 불러 재워주고 싶었지만 준우는 태어나면서부터 워낙 기골이 장대하여(4.5kg를 넘겨 태어났다;) 안고 흔들어 재우는 걸 습관들이면 엄마아빠가 너무 힘들다고 처음부터 눕혀놓고 옆에 같이 누워 퍽퍽 두들겨(!) 자장자장 재우는 쪽이었다. <섬집아기> 자장가 시대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래도 조카들에게 가끔 <섬집아기>를 불러줄 기회가 없지는 않았으나, 준우에게도 세번째로 태어난 지환이에게도 이 노래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너무 슬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엄마 없이 혼자 집에서 놀다 지쳐 잠드는 아기에게 심히 감정이입이 됐는지 지환이는 노래를 부르다 중간에 눈물을 쏟을 정도였다. 아기 혼자 집에서 놀다가 다치면 어쩌냐고, 엄마 나쁘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옛날 노래임에도 일하는 엄마들의 애환을 가사에 참 잘도 담아냈다.

원래도 슬픈 노래라 조심해야 하는데, 아까 낮에 이웃 블로그에 올려진 <섬집아기> 오케스트라 연주 동영상을 보다가 질질 울고 말았다. 병들어 가끔씩 정신을 놓치는 부모에게 바치는 자식과 손녀들의 선물이라는 사연을 미리 듣기도 했지만, 자장가로 <섬집아기>를 불러 재우던 조카가 어느새 훌쩍 자라 이제는 어른들과 눈도 잘 맞추려 하지 않는 뾰족한 폭풍 사춘기를 보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연말이랍시고 마음은 바쁜데 날씨는 춥고 할 일은 많고 뜻하는 대로 되는 건 잘 없다보니 사방에 복병이고 수도꼭지는 걸핏하면 고장날 기미를 보인다. 아주 슬픈 영화나 보면서 잉여 수분을 아예 다 말려버릴까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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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투덜일기 2011. 12. 6. 23:12

국민학교 4학년 때였던가, 학예회에서 꼭두각시 춤을 추느라 칠한 검정색 아이라인과 빨간 립스틱이 아마도 처음 내가 해본 화장이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 화장대에서 더러 화장놀이를 해봤다는데, 울 엄마의 유일한 화장도구는 '주홍색' 립스틱이었기 때문에 나는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얼굴 새하얀 엄마에겐 잘 어울릴지 몰라도(더는 얼굴색이 하얗지 않은 노년의 울 엄마는 여전히 '주홍색' 립스틱을 가장 선호하신다. 참 취향도 일관성 있으시지;;) 내가 바르면 그야말로 '김치국물' 묻은 것으로 보일 게 뻔했다.

그 뒤로 중학생 때는 언감생심 화장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고등학생이 되자 반에서 외모에 유달리 신경을 쓰는 몇명은 체리빛깔의 립글로스를 바르고 다녔다. 똑같은 체리향이 나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바르는 챕스틱 립크림과 달리 그애들이 바르는 건 향이 더욱 진하고 반짝반짝 입술에 윤기가 흘렀으며 색도 또렸했다. 물론 학생부 금지품목이었지만, 당시에 향수도 어지간히 뿌리고 다니던 친구 하나는 학생주임한테 가끔씩 립글로스 때문에 손바닥을 맞고 반성문을 써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개기름 바른 것 같다>며 그런 아이들의 요란한 입술을 비웃는 축이었다. 진짜로 안 예쁘고 입술만 동동 떠다니는 것 같던데!

그러고는 드디어 고3 말, 학력고사(그렇다, 나는 학력고사 세대 ㅋㅋ)가 끝나자 연일 화장품 회사에서 찾아와 특별수업을 진행했다. 아이섀도와 립글로스, 립스틱 샘플도 막 나눠주면서... 그러나 80년대 중반인 당시엔 파격적인 색조화장이 유행이라(분홍 바탕에 파란색으로 눈꺼풀 강조, 주황바탕에 진초록 따위!) 화장품 회사 직원이 예쁜 아이 하나를 모델로 뽑아 색조화장을 해놓은 몰골은 예뻐진 게 아니라... 퍽 무서웠다. +_+ 나는 결심했다. 졸업해도 화장하지 말아야겠다고.

대학 신입생때였던 것 같은데 당시에 <지지>라는 화장품 브랜드가 엄청 유행을 했다. 사회 초년생들에 맞는 가벼운 색조와 저렴한 가격, 앙증맞은 케이스로 관심을 끌었다. 내가 직접 샀는지 누가 선물을 해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암튼 5월 축제를 앞두고 드디어 내 손에도 그 <지지 립글로스>가 손에 들어왔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둥근 세모꼴의 분홍색 케이스가 지금도 눈에 선한데 암튼, 최초의 화장이랍시고 그걸 입술에 펴바르고 학교에 갔더니 촌스러운 과 남자애들이 막 아유를 보냈다. 초등학생이 엄마 꺼 훔쳐바른 것 같다 야! 갈치 한마리 입에 물었냐? 그러거나 말거나 그 이후로 나의 색조 화장품은 야금야금 늘어났다. 밤색과 검정색 아이라이너, 눈썹 연필, 매니큐어, 색색깔의 아이섀도까지.

그래도 학생시절엔 매일 화장을 한 건 아니었고 그냥 시간 많고 기분 내키는 날 그림 그리듯 시도해봤다가 외출 직전에 북북 지우고는 아이라이너와 립글로스 정도만 내버려뒀던 것 같다. 본격적인 화장은 역시나 회사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단은 <내 얼굴의 햇살>이라고 불리던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를 껴야 했는데(얼굴을 반쯤 가리는 당시 유행 안경을 쓴 여직원은 잘 안뽑아주던 전근대적인 시대여서 입사원서용 사진부터 안경을 벗고 찍었다. ㅠ.ㅠ), 안경을 벗고 보니 부은 듯 수북한 눈두덩이 어찌나 더 눈에 거슬리던지! 그걸 감춰보겠다고 아이섀도로 색깔을 입히기 시작한 것. 

암튼 첫 직장이 의류관련업이었고, 그 회사 모토가 <패션을 모르면 패션을 다룰 자격이 없다>는 것이어서 옷이며 화장 가지고 꽤나 스트레스를 줬다. 해서... 옷이야 뭐 그렇다 치고 당시 사진을 보면 화장이 아주 가관이다. 눈주변은 뻘겋고 퍼렇고 때론 밤탱이처럼 시커멓고 입술은 새빨갛지 않으면 시커멓고(왜 그땐 진한 갈색 립스틱이 또 그리도 유행이었는지!)... 게다가 미국본사를 등에 업고 우리가 갑 입장이라 구매자로서 '센' 이미지를 줘야 한다고 선배들에게 교육을 받기도 했다. 끙. 암튼 그래서 앨범에선 그때 사진들이 바로 나의 암흑기다. 닭벼슬처럼 앞머리를 치켜세운 꼬불꼬불한 머리칼은 치렁치렁하고 얼굴은 독기 어린 화장에다 울트라파워숄더 재킷까지. ㅋㅋㅋ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흘러 화장의 유행도 변하고 나이를 먹으며, 이제는 화장이랍시고 얼굴에 공들여 색을 입히는 일이 거의 연중행사가 되었다. 물론 대개 외출할 때는 선블럭과 비비크림 정도야 바르지만, 이젠 귀찮아서 장보러 갈 때나 심지어 보호자로 엄니 병원 따라갈 때조차 미친 척 맨얼굴로 나가도 그리 민망하지 않은 뻔뻔함을 갖추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민낯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화장 지우기 귀찮아서다 ㅎㅎ) 민낯이 민망하면서도 귀찮음을 못이기고 그냥 집밖으로 나설 땐, 어쩔 수 없이 아줌마 다 됐구나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시 화장에 요란과 부지런을 떠는 모습도 상상되지 않는다.

세대차겠지만 우리때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화장을 정말 일찍 시작하는 추세다. 요즘 열네살 조카의 (인위적으로) 뽀얀 얼굴에 놀란 내가 걱정을 했더니 비슷한 또래의 딸 키우는 친구가 별난 일도 아니라고 위로해주었다. 열네살 중학생이면 비비크림과 파우더, 아이라인은 기본이라고 봐야 한다나. +_+ 수도권 신도시에 사는 그 친구는 지켜보니 6학년 여자애들도 거의 절반은 파우더를 두드리고 다니더라고 했다. 미디어와 사회의 부추김 때문에, 온갖 수단을 동원해 더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은 이제 아이들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친구 말이, 고등학생인 큰딸은 차라리 지각을 했으면 했지 눈썹이 완벽하게 그려지지 않으면 아예 집을 나서질 않는단다. 그래서 친구는 고3이 되기 전에 차라리 딸에게 살짝 눈썹 문신을 해줄까 심각히 고민중이라고 했다. 참고로 친구 딸은 고교평준화가 되지 않은 수도권 지역의 유명 학교 우등생이다. 하기야 미모에 대한 관심과 성적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겠나. 개인차겠지.

그래도 여전히 나는 청소년기의 색조 화장이 걱정스럽고 마뜩찮다. 화장 안해도 눈부시게 예쁘다고, 네 나이 땐 여드름 송송난 이마도 매력이라고 아양도 떨어보고, 지금부터 화장 너무 하면 스무살 즈음엔 피부나이 서른살로 판명될지 모른다고 은근히 협박도 해보지만 별 소용은 없다. 돌아보면 화장에 대해서 이미 어른들이 너무 많은 빌미를 조카에게 제공했던 것 같다. 일종의 색채 수업일 수도 있겠다 여겨, 어린이용 장난감 화장품도 꽤 많이 사주었고(요즘 문제되는 유독성 화학제품은 아니었기를 빌고 있다 ㅠ.ㅠ), 어린 시절 미용실에서 장시간 버티며 까탈부릴까봐서 원장이 조카에게 예쁘게 화장을 해준 적도 많았다. 조카가 워낙 그런 걸 좋아라했었고...


예닐곱살 땐 가끔씩 어른들이 신나서 해주었던 색조 화장이 열네살 땐 '절대' 안된다고 말하는 논리는 내가 들어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다만 '학칙'에 어긋난다는 점이 문제인데, 요즘 아이들이 그걸 중시할 리도 없지 않은가. 색조화장이라고 해봐야 아직은 비비크림과 아이라인 정도이니, 그저 화장은 잘 지우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하며, '요즘 열네살 다 그렇대'라고 마음을 달래고 있다. 가뜩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소용돌이 같은 사춘기 광풍 가운데 사실 화장은 아주 사소한 부분이니 그냥 넘어간다고나 할까. 귀엽고 어여쁜 조카들이 더는 자라지 않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품은 게 바로 얼마전인데, 간사하게도 지금은 사춘기가 후딱 지나버려 어서 성숙해지면 좋겠다고 빌고 있다. 그러면 사춘기의 말간 맨얼굴이 제일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걸 녀석도 뒤늦게 깨닫게 될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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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두점

놀잇감 2011. 11. 30. 00:02

지우의 두번째 작품집을 곧 공개하겠다고 장담해놓고 약속을 못지켜 혼자 찔려하는 중이다.
지난 주말 드디어 스케치북을 알현하고 작품사진을 서둘러 찍기는 했으나, 하필 제삿날이라 분주한 가운데 제대로 그림 설명을 듣지 못했다. 화가 본인께서도 노는 데 바빠 좀체 그림 설명을 하려들지 않았다. 제목이 뭐냐고 물으면 그림 뒤에 써 있다며 쿨하게 반응하시고...

암튼 그래도 그림혼 충만한 지우가 잠시 짬을 내어 초상화 두 점을 그려주어, 그것을 대신 미리 공개한다. 지우가 그린 큼지막한 초상화를 갖고 싶은 소원을 드디어 이루어 감격스럽다. 다음에 만날 땐 색깔도 칠해주겠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집에 물감으로 변하는 색연필을 미리 장만해놓아야하는 것인가 생각이 복잡하다. 화가소년을 위해 이 기회에 확 지를까?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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