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생일

투덜일기 2010. 3. 7. 18:13
떠들썩한 환갑잔치를 내가 처음 목격한 것은 스무살 무렵이었다. 당시 수원에 살던 같은 과 친구 하나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더니 난데없이 주말에 시간 되면 밥을 먹으러 오라며 수원의 어느 갈비집을 알려주었다. 터울이 많은 손위 형제들을 둔 막내였던 친구는 부모님이 옛날 분들이라 환갑엔 꼭 동네잔치를 한다고 했다. 내 조부모님의 경우 환갑은 물론이고 칠순도 조촐하게 집에서 가족모임으로 치렀던 터라, 환갑잔치의 실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흔쾌히 그러마고 약속했는데, 그날 목도한 사건이 워낙 인상 깊었던 모양으로 같이 간 친구와 내가 축의금 봉투를 가져갔는지 그냥 입만 가져갔던 건지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무슨무슨 가든이었던 수원의 갈비집엔 큼직한 방마다 온통 잔치음식들이 차려져 있고 한 가운데 불판에선 갈비가 익어갔으며 마당으로 연결된 스피커에선 계속 흥겨운 풍악이 흘러나왔다. 결혼한 큰오빠와 큰언니가 낳은 자식들이 친구와 또래일 정도였으므로 잔치상 앞에 앉으신 부모님께 술잔을 올리며 차례로 절을 하던 자손들의 수가 꽤나 많았던 기억이 나고, 식사 후 여흥이 시작되자 춤과 노래가 쉴새없이 이어졌다. 잔치 주인공의 자손들 뿐만 아니라 자손의 친구들도 다들 앞에 나가 술잔을 올리고 축하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인 모양이었지만, 숫기 없는 우리의 난감함을 알아차린 친구는 싫으면 굳이 안해도 된다고 말해주어 어찌나 고마웠던지 모른다.

친구 부모님의 환갑이나 칠순에 초대받았던 경험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말로만 듣던 동네 잔치를 처음 경험한 때문인지 나는 그날 온종일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고 순간순간 불편하면서 재미있기도 하고 막판엔 지겹고 곤혹스러웠다.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사회자가 지목하면 무조건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목청껏 고함을 질러야하는 상황도 그렇고 떼로 몰려나와 춤을 추는 모양새도 처음엔 흥겹더니 술판이 무르익으면서는 취객들 때문에 눈쌀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었다. 수시로 잔치판에 불려다니느라 우릴 챙겨줄 시간이 별로 없었던 친구는 그제야 지루해하는 우리 태도를 눈치 챘는지, 먼저 가도 된다며 우릴 배웅했다.

잔치집을 나오며 나는 당시에 아직 멀게 느껴지는 부모님의 환갑잔치를 염려했던 것 같다. 혹시라도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떠들썩하고 요란한 잔치를 원하면 어쩌나 싶었다. 무엇보다도 구경꾼처럼 모여든 하객들 앞에서 한복을 떨쳐입은 채 무대처럼 마련된 잔칫상 앞에 나아가 술잔과 절을 올린 뒤 나중엔 큰딸이랍시고 노래까지 한자락 불러야 하는 상황을 내 숫기로는 못견딜 듯했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의 환갑잔치를 고민해야하는 시기가 닥쳤다. 다행히도 우리 부모님은 요란한 걸 싫어하시는 분들이었고, 환갑은 청춘이라며 다들 잔치대신 여행을 떠나는 세태도 나를 도왔다. 하지만 30년 넘게 다닌 직장의 정년퇴직과 맞물린 아버지의 환갑을 그냥 멀뚱히 넘길 순 없었다. 평소 생신에도 몇몇 친지들이 모여 <밥>은 먹어왔으니, 날 잡아서 조촐하게 <밥은 먹어야 한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의견이었다. 외할머니는 우리 아버지가 아무리 마다해도 환갑 기념이라며 맏사위를 위해 고운 한복까지 맞춰 보내셨다.  

환갑 안한다는데 왜 귀찮게 구느냐며 화를 내다시피 했던 아버지는 결국 친가, 처가 가족들이 모여 <간단히 밥을 먹는> 그 자리에 장모님 소원대로 엄마와 나란히 한복을 입고 참석하셨다. 음식점에 미리 부탁해서, 그간 은밀하게 아버지의 옛날 앨범을 뒤져 어릴 때부터 최근까지 사진을 모아 삼남매와 올케들의 영상편지까지 담은 영상물을 틀었던 그날 우리 삼남매와 다른 친척들은 다들 뿌듯해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아버지는 몹시 민망해하셨던 것 같다. 바로 다음해였던 엄마의 환갑은 연달아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엄마의 완고한 고집으로 부부동반 여행으로 대체되었고, 또 10년은 안심해도 좋을 듯했다. 

그런데 오래 걸릴 것만 같던 10년이 어느새 흘러 엄마의 칠순생신을 고민해야 하는 때가 도래했다. 친척분들 모두 환갑은 건너뛰는 분위기여도 칠순에는 다들 모여 맛있는 밥을 먹어왔고, 가뜩이나 홀로 남은 엄마의 칠순 생신은 그냥 넘겨선 안된다는 것이 역시나 집안 어르신들의 의견이었다. "늬 아버지를 봐라. 그렇게 빨리 갈 줄 아무도 몰랐지만 그때 억지로라도 늬 아버지 환갑 안 챙겼으면 어쩔 뻔했니? 니들이 두고두고 마음에 한이 됐을 거다."

아버지 환갑 때도 음식점을 알아보고 친척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초청하는 과정을 내가 주동한 전적이 있었으며, 그땐 부모님 몰래 큰동생이 영상물 만드느라고 사진 고르고 녹화하고 제법 법석을 떨었는데도 즐겁기만 하더니 이번엔 왜 모든 과정이 온전히 스트레스로만 여겨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번에도 주인공이신 왕비마마가 민망하다며 모임 같은 거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버티고 계시긴 하다. 하지만 "남편 앞서 보낸 여자가 무슨 염치로 생일잔치를 하느냐"는 엄마의 자학성 핑계는 용납되기 어려운 발언이다. 친척 어르신들은 엄마가 혼자 남았기 때문에 더더욱 칠순을 그냥 넘기면 안된다는데!

잔치가 아니라 그냥 밥 한끼 먹는 것 뿐이라며 엄마를 계속 달래는 한 편, 두 동생 부부와 의논하여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고 음식을 정하고 참석인원을 확인해 연락을 취하며,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소망이 다시 떠올랐다. 어쭙잖게 니체를 읽고 전혜린을 읽던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왠지 모르게 친구들에게 "딱 예순살까지만 살고 죽겠다"고 장담하고 다녔었다. 생존해 계셨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과는 상관없이, 단지 나의 노년이 너무도 끔찍하게만 생각됐던 것 같다.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은 최대한 오래 사시는 게 좋겠지만, 나는 홀로 씩씩하게 딱 예순살 까지만 살다가 깨끗하게 죽겠노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그래 어디 두고보자"며 나를 흘겨볼 뿐이었다. 그런데 요번에 엄마 칠순을 준비하며 문득 세월이 흘러 나중에 누가 내 칠순 때문에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도 싫고 칠순이라며 주인공으로 떠밀리는 게 싫어서라도 차라리 <일흔살 되기 전에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저도모르게 하고 앉았더라는 뜻이다.

예순살까지 살겠다던 어린 시절의 나는 분명 환갑 잔치 따위는 염두에 둔 적이 없었고 다만 그 이후 노년의 삶이 막연히 구질구질할 것이라 상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칠순 생일의 부담으로 또 다시 내 수명을 재단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되살아나다니. 나란 인간은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엄마의 칠순을 <가족모임> 행사로 치르는 게 맞는 것 같기는 하다. 밥먹기 행사 대신 칠순에도 가족여행을 떠나는 집이 있다지만, 울 엄마의 건강으로 보나 시기적으로 보나 그건 실행되기 어려운 대안이다. 어차피 매년 우리끼리 생신밥은 먹어왔으니 그걸 좀 확대시킨 것뿐이라고 여기면 될 일이다. 문제는 부모님 형제가 많아놔서 그 자손들까지 모이면 4, 50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삼남매가 나누어 분담한다고는 해도, 규모가 그리 만만치는 않다. 분위기며 음식 맛, 입을 옷까지 시시콜콜 미리 걱정하는 나 같은 소심증 환자에게는 더더욱!

사실 욕을 좀 먹을 각오만 한다면, 친척 어르신들이 아무리 들쑤셔도 엄마 본인의 뜻대로 칠순같은 거 안 챙긴다고 통보한 뒤 시치미 뚝 떼고 그냥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 건강이 좋지 않아 그렇게 되었다는 쓸만한 핑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남들(친척도 남이라고 치면) 눈 의식해서 자식으로서 속물스럽게 생색을 내려는 태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옛날부터 환갑이나 칠순 때 잔치를 여는 목적은 장수를 축하하기 위함도 있지만 자손들이 그 정도 거나하게 잔치를 해줄 수 있을 만큼 번창했음을 자랑하려는 노인들의 허세에서 비롯된 게 아니던가. 해서 일부 노인들은 자식들의 능력이 되든 말든, 잔치 때문에 빚을 지든 말든 남부끄럽지 않게 소리꾼들까지 불러다가 왁자지껄 노는 잔치를 강요한다던데, 울 엄마가 그런 부류의 노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깊이 감사할 일이지만 그냥 조용히 밥 한끼 먹는 것뿐이라고 여기래도 난감해하며 지레 생병을 앓아 속을 썩이는 상황도 녹록치가 않다.

과연 울 엄마의 진짜 속마음은 무얼까. 말로는 모임 안 했으면 좋겠다지만 내심 뿌듯해하며 잔칫날을 기다리고 계시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의지에 반하는 칠순잔치의 억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일흔살 되기 전에 죽어버리겠노라는 생각이 들만큼 회의를 느낀 내 마음처럼 엄마도 정말로 싫은 걸까. 그렇게 싫다는데 연회 예약을 취소하는 대신 엄마에게 그냥 못 이기는 척 따라오라고 말하는 나의 태도는 과연 옳은 것일까. 홧김에 다 확 취소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번씩 드는데, 정말로 그러면 울 엄만 잘했다고 칭찬을 해줄까.

어쨌거나 이젠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한달 넘게 나의 스트레스 지수를 극도로 높인 왕비마마의 칠순 모임이 겨우 엿새 뒤로 다가왔다. 토요일이 후딱 지나가면 좋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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