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의 법칙

투덜일기 2010. 3. 9. 20:38
머피의 법칙은 순전히 심리적인 인상이라던데, 나에겐 아닌 것 같다. 몇달 별러 미루다 세차하면 꼭 다음날 비가 오는 건 날씨를 미리 살피지 않은 본인의 게으름 탓이거나 기상청의 오보라고 쳐도 내가 유례없이 뭘 미리 준비하면 곧이어 비웃을 일이 생긴다.

게으름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이라 늘 계절이 한참 지난 뒤에야 옷가지를 정리하는 편이고 심지어 겨울코트를 5월이 돼서야 세탁소에 맡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번엔 웬일인지 부지런을 떨어 겨울옷과 부츠를 죄다 치웠더니 날씨 좀 봐라. 몇년 전 3월 1일에도 눈이 온 적 있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첫주가 무사히 지나는 걸 보고 정리해도 되겠다 싶었으나 아니었던 거다.

그나마 겨우내 염화칼슘에 쩔은 차는 빨리 세차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계속 세차할만 생각만 들면 날씨가 나빠지길래 아직까지 알거지 몰골로 다니고 있긴 하다. 세차에 관해서는 머피의 법칙 피하려다 다 녹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려나 코트는 하나쯤 다시 꺼내 후둘러 입다가 세탁해도 되겠지만 일일이 종이 구겨넣어 상자에 담아둔 부츠는 다시 꺼내 신을까말까 고민된다. 나흘째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강원도 주민에 비하면야 요 정도는 고민도 아니겠지만 어쨌든 신기한 머피의 법칙. 난 올해 왜 유난스레 빨리 겨울옷을 치워버렸을까나. 어쩌면 머피의 법칙이 아니라 그냥 내가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도.

아까 낮에 반짝 해가 났을 때는 옆집 담장 너머로 늘어진 벚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꽃눈이 새하얗게 벌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와서 곧 흐드러지게 봄꽃 피겠구나 싶어 마음이 다 푸근했었는데, 매서운 꽃샘추위를 준비하고 있던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코웃음을 쳤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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