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 두려움

책보따리 2009. 3. 14. 16:31

실제로 욕하는 사람들과 대면할 일은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긴 하지만 번역가 역시 대중에 노출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직업이기에 어느 정도 욕 먹을 각오는 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검증과 검색 수준이 뛰어난 독자들을 상대로는 더욱 그렇다. 나 역시 과거에 번역서들을 읽으며 통 내용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문장 호흡이 길어 심히 얽힌다 싶으면 <번역이 뭐 이따위야!> 또는 <번역이 엉망이군>이라는 말을 아무 생각없이, 수없이 외쳤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지금도 내노라하는 이름난 번역가들이 옮긴 책에서도 혹시 제자를 대리 번역시켰나 싶은 의혹이 드는 이상한 문장이나 비문을을 발견하는 일이 더러 있을 정도이니 오죽하랴.

어차피 입맛 다양한 독자들을 일일이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번역문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로 위로를 삼기는 하지만, 굳이 지난번 시리즈물 번역건으로 속쓰렸던 일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특히 잘 팔렸으면 싶은 책이거나 잘 팔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책의 경우는 욕먹을 두려움 때문에라도 점점 최종 원고를 넘기는 일이 망설여진다. 물론 그래야 번역의 질이 높아지고 더 정성들인 문장이 태어날 터이니 나에겐 도움이 되는 고민이긴 한데, 아무리 고민을 해봤자 딜레마는 깊어만 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과거 출판사들은 대부분 독자들을 위해 가독성이 뛰어난 매끄러운 번역문장을 선호하여 너무 복잡한 문장은 번역이나 편집 단계에서 <알아서> 정리했지만 최근들어선 가독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원문의 문체와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번역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쉽게 술술 잘 읽히는 문장만이 능사는 아님을 책만드는 사람들도 책 읽는 사람들도 깨닫기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나 역시 골머리가 썩을지언정 쉽게 번역하자고 대여섯줄씩 이어지는 복잡한 문장을 생선 토막치듯 난도질해 편히 옮기는 것보다는 기필코 유려하게 원문과 <최대한> 유사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고 나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 걸 더 즐기는 편이다. 복잡한 만연체로 쓴 작가의 작품을 선택해 읽는 독자라면 호흡이 더뎌 진도가 느리더라도 문장을 곱씹어 읽는 정도의 수고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글을 다듬는 과정을 <윤문>이라고 하는데, 번역서의 경우 윤문의 정도가 얼만큼이 적당한지, 원작 훼손과 가독성의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 양보를 할 수 있을 것인지의 논란은 아마도 인류가 다른 언어권의 책을 읽어대는 행위가 끝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옷을 바꿔입으면서 이미 원전은 훼손을 피할 수 없지만, 그 훼손의 정도를 최소로 줄여 전달하는 것이 번역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할 때 번역가의 존재는 눈에 띄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은이와 독자 사이의 소통에 옮긴이의 개입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독서를 이끄는 번역. 냄새 고약한 정로환에 분홍색 껍질을 입혀 냄새를 없앤 정로환 당의정 같은 느낌의 번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약효는 똑같으니 본질은 같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겠지만, 일단 다른 언어로 먼저 쓰인 책을 만들고 읽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라면 거북한 냄새가 나는 정로환은 냄새 나게, 달콤하고 알록달록한 새알 초콜릿은 또 그렇게 경쾌하고 달콤하게, 번역가도 편집자도 독자도 그대로 인정하고 삼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내 경우도 이 생각은 어디까지나 내가 번역작업을 하며 목표로 삼는 <이상>일 뿐, 현실에선 끊임없는 유혹을 느낄 때가 많다. 이왕이면 좀 더 그럴듯하게 유려하게 문장을 다듬고 싶은 유혹. 읽다가 턱턱 걸려서 짜증났던 과거의 수많은 번역서 독서 경험도 원인으로 작용했겠고, 일단은 쉽게 풀어 독자 입에 쏙 넣어주는 매끄러운 번역을 선호했던 과거의 번역경향에 이미 내가 꽤 길들여진 탓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원문이 워낙 유려하다면 오히려 그 느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할까 염려해야 하는 형편이니 더욱 공을 들이면 될 일이다. 하지만 원문이 의도적인 비문이라면?

이번에 번역한 책이 그랬다. 중국인 지은이가 <고의로> 서툰 영어로 쓴 일기식 소설. 초반부엔 완전한 문장이 단 한줄도 없는 단어의 나열이고, 맞춤법을 틀리게 쓰는 건 유머스러운 애교 수준이었으며 중반 이후에도 주어와 동사가 마구 생략되거나 시제는 무시되었다. 물론 처음엔 재미있는 작업이라 여겼고, 점점 문장력이 향상되는 지은이의 글쓰기 과정을 독자들도 생생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원전의 비문을 온전한 문장으로 만들려는 관성 같은 것이 되살아났고, 몇번이나 서술어를 지우고 다시 눈에 거슬리게 비문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출판사 및 담장자와 의논하여 결정한 번역방향이기도 했고, 그 책의 독특한 특징이므로 옮긴이로선 당연히 지켜야할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_-;; 그렇게 어렵사리 고민하고 넘긴 원고가 교정지 형태로 다시 되돌아온 지난주 내내 나는 역자교정을 하며 새삼 두려움에 떨었다. 책속의 수많은 비문과 불온전한 문장, 서툰 글쓰기와 표현을 과연 독자들이 순순히 원전 때문이라고 여길 것인가? 아니면 옮긴이의 역량부족이라고 불평하며 짜증이 나서 책을 집어던질 것인가?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하마터면 역자후기에 수많은 비문과 서툰 글쓰기 및 표현은 지은이의 의도이니 옮긴이의 책임이 <절대> 아니라고 티나게 유치한 변명을 적어넣을 뻔했다가 참았다. 욕을 할테면 하라지. 나만 떳떳하면 되는 거니까, 라고 마음을 다잡고는 있는데 그래도 슬며시 되살아나는 두려움은 어쩔 수가 없다. 욕 먹는 거 너무 싫은데. 온당한 욕이라면 발전의 밑거름이라도 삼겠지만, 부당한 욕은 나같은 소심생이 투덜이에겐 큰 상처와 좌절을 남긴다. 잘해야 본전인 번역 인생에서 앞으로도 욕 먹을 일은 수없이 많을 텐데 햇수가 거듭될수록 대범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나마 발전적인 고민이라고 새삼 위로를 하고는 있지만, 이 책 잘 팔렸으면 좋겠는데... 걱정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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