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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07.24 고교생 연인? 7
  3. 2014.06.30 못해먹겠다 6
  4. 2014.06.20 엄마의 발원문 8
  5. 2014.06.11 여보세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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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3.12.09 누가 가져갔을까 8
  10. 2013.10.25 백사실 계곡, 그 이름의 진실? 3

산에서...

투덜일기 2014. 8. 27. 17:11

지난 주말에 경기도내 어느 산엘 갔는데 거기서도 가짜 땡중을 보았다. 전철역이나 사람 많은 데 불전함 놓고 꽝꽝 목탁두들기는 사람들 대부분 승적도 없이 그냥 옷만 어서 사다입은 가짜 땡중이라고 주변에 주의를 시키는데, 그런 사람들이 산중턱에도 있었다! 어휴... 대개 산속에 절이 있으니 사람들이 의심없이 믿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날 산봉우리를 세개나 넘어야 한대서 삐질삐질 땀흘리며 헉헉대고 계단을 오르다 뜬금없는 목탁소리에 엥~ 쳐다보니 역시나 불전함 앞에 놓고 결식아동 돕는 성금으로 쓴다는 표지판과 함께 명함도 한 갑 놓여 있었다. 멀리서도 꽝꽝 요란하게 두들기기만 하는 목탁소리를 들으니 분명 제대로 교육받은 적 없는 땡중임이 분명한데, 결식아동돕기 팻말과 명함에 잠시 의구심을 갖던 찰나, 결정적인 사기꾼 증거가 땡중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하반야바라밀다 수리수리마하수리... 아제아제 바라아제...

크하하핫.. 그럼 그렇지!


불교에 대해서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목은 들어본 적이 있을 법한 <반야심경>과 <천수경>. 이 둘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듯 절에서 드리는 '예불'에 빠지지 않고 외는 불경들인데 반야심경의 첫소절이 바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반야심경의 정식 이름이기도 하고. ^^; 강수연이 주연했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했던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반야심경의 맨 마지막 반복구절. 


그렇다면 천수경의 첫소절은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로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외할머니와 엄마 따라 하도 절에 다녀서, 그리고 고등학교땐 따로 학생회 활동도 좀 했던 덕분에 지금까지도 외고 있는 구절인데... ㅋㅋㅋ 그 땡중은 둘을 아무렇게나 뒤섞어서 읊어댄 거다!  그것도 사람들 귀에 익숙한 구절만 쏙쏙 뽑아서 반야심경 한 줄, 천수경 한 줄, 또 반야심경 한 줄... 아 놔...  그 노력을 가상하다고 해야할지, 이왕 외울 거 좀 더 신경써서 외우지 그랬냐 핀잔을 줘야할지... 암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교회엘 열심히 다니는 친구에게 가짜중이란 증거를 이야기하며 올라가다보니 200미터 쯤 뒤에 똑같은 땡중이 한 명 더 있었다. 한 패거리겠지? 


쯧쯧쯧... 승복 사입으려면 비쌀텐데 투자비 꽤나 많이 들었겠다, 불전함 매고 산꼭대기까지 올라오느라 애썼지만 흥,  망해라, 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첫번째 산봉우리에 거의 당도하니 이번엔 우렁찬 '아이스께끼~' 외침소리가 우릴 반겼다. 산꼭대기까지 갖고 올라가서 음료수며 아이스께끼며 엄청 비싸게 받아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 나는 절대 외면하는 편인데(먹고난 쓰레기 사람들이 사방에 막 버리는 것도 싫다!) 누군가 값을 물어보니 1500원이란다. 엇, 다른 산에선 2천원 받던데! 단 거 먹으면 더 목말라진다고 주장하는 편이었으나, 그날은 슬슬 당떨어질 때도 됐고 또 일행이 사주신다고 해서 다리도 쉴 겸 낼름 받아먹었다. 중간에 막대기 버릴 데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취하며 끝까지 다 먹고 버리고 가야한다고 우겨대면서. ^^


아직도 낮엔 꽤나 뜨거운 날씨에 이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고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께끼를 먹으며, 땡중과 아이스께끼 아저씨 둘 다 서울 근교 산을 생계의 터전으로 삼아 무거운 상자를 짊어지고 등산로를 올랐겠지만 본인의 자부심도 그렇겠고 참 얼마나 가치가 다른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설마 산중턱 아이스께기 장사에도 정해진 영역이나  자릿세 같은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달랑 1500원짜리 멜론 맛 아이스께끼를 먹으며 노동의 소중함이니 부가가치니 소비효율이니 하는 얘기까지 막 덧붙이며 께끼 아저씨한테는 온갖 칭찬이 쏟아졌었다. 물론 좀 전에 우리가 지나쳐온 땡중에게 시주하는 이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었다. 당연히 수입도 엄청 차이가 나지 않을까? 목탁을 두들기며 불경을 외는 것도, 아이스께끼를 목청껏 외치는 것도 똑같은 노동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기꾼의 눈속임과 엄연한 상업 행위를 동등하게 바라볼 순 없다. 물론 국립공원 관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상업행위가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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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연인?

투덜일기 2014. 7. 24. 17:50

번역하다보면 오래 고민해 봐도 뾰족하게 일대일로 이거다 싶게 대응하는 답이 안나오는 말들이 더러 있다. 'highschool sweetheart'도 그런 말이다. 곧이 곧대로 '고교생 연인'이라고 하면 얼마나 웃긴가! 그냥 아무개랑 아무개는 고등학교 때 사귀었다.. 정도로 풀어쓰는 차선책을 택하는 게 낫다. 요새도 가끔 고등학교 때 사귄 첫사랑이랑 결혼하는 이들이 더러 있나본데 (대표적인 주자로 차태현이 있다;; ㅋ) 옛날엔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이 케이스의 대표주자는 단연코 울 부모님이다;; +_+)했다고 들었다. 결혼시기가 지금보다 빨랐으니 아무래도 더욱 그랬겠지.


하여간 외국에선 최근까지도 '고교생 연인'끼리 결혼하는 비율이 한국보다는 더 높고(그래봤자 걔들도 고딩때 사귄 애인과는 절반 이상 졸업 후나 대학 들어가면서 헤어진다고;;)  대체로 어린 마음에 확 결혼했다가는 몇년 못 살고 헤어지는 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만 해도 일반 이혼율이 40퍼센트를 넘는다는 것 같은데, 어린 부부들이야 오죽할까!


요즘처럼 너도나도 장수하는 100세 시대와 발을 맞추려면, 평균 수명 40세 안팎일 때 만들어진 결혼제도와 일부일처제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최소한 배우자를 3번은 바꿔가며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나! ㅋㅋㅋ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말로 자신과 잘 맞는 파트너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그냥 웃어넘기기엔 나름의 타당성도 있다. 살아봐야 아는 점이(어떤 건 살아봐도 잘 모르지 않나?) 어디 한두가지여야 말이지... 그렇다고 덜컥덜컥 쉽사리 결혼하고 또 헤어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개인의 성향차이고 선택의 차이겠거니 할 따름. 


얼마 전 번역하다 책에 나온 '고교생 연인' 이야기의 추이에 유달리 신경을 쓴 이유는 아무래도 나의 조카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도 그렇고 그간 남자친구 있느냐고 그렇게 묻고 의심해도 절대 없다고 딱 잡아떼시던 우리의 ㅈㅁ공주. (중딩땐 진짜로 없었던 건지도...) 고등학교 올라가자마자 남친과 동네에서 데이트 하다가 온 가족에게 현행범으로 딱 걸렸다. 하필 울 엄마랑 나도 간 날이라 밖에서 저녁 먹고 나서 평소와 다른 뒷길로 움직이던 중이었는데, 그야말로 '고교생 연인'의 실루엣이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딱 걸려들었다. ㅎㅎㅎㅎㅎ 


고2때 만난 남자랑 8년 연애 끝에 결혼해 40여년을 같이 살고도 다시 태어나도 그 남편과 살겠다는 순애보를 고집하는 할머니는 당장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뭐하는 집 아들인지 알아보라'고 성화를 부리시고, 공주 아빠는 얼굴이 굳었다. (남자애가 뭐 저렇게 못 생기고 키도 작고 비실비실하냐!) ㅋㅋㅋㅋ 물론 당시 겉으로는 다들 웃는 얼굴로 창문을 내리고는 반갑다, 니가 ㅎㅈ이구나, 나중에 또 보자, 집으로 놀러와라... 다정하게 대해주었음을 밝혀둔다. (조카의 카톡 프로필 글귀에서 우린 ㄱㅎㅈ이란 애가 남친일 수도 있다고 이미 추측하고 있었다!)


아무튼 '쿨한 고모 코스프레'에 충실하려는 나는 울 공주 결혼하려면 그 전까지 남친 열명도 더 갈아치울 테니 염려 말라고, 이제 겨우 고1인데 뭔 걱정이냐고 코웃음을 쳤다. 본인이 예쁘니깐 남친 외모도 안보고 사귀네, 엄청 훌륭하네 뭐, 남자애가 착한가보다... 너스레를 떨면서... (근데 내심 나도 그 남친 ㅎㅈ이가 그리 맘에 들진 않았다. ㅠ.ㅠ 이놈의 외모지상주의자!) 


이후로도 조카에게 남친 얘기 물어보면 절대로 대답도 안해주고 버럭 화만 내기 때문에 조카의 카톡 프로필 글귀나 보면서 둘 사이를 짐작할 뿐이었다. 과연 얼마나 오래갈까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가끔 보란듯이 엄청난 남친 욕설을 적어놓는다든지 수상한 글귀가 떠오르면 둘이 헤어졌나 싶기도 했는데, 또 금세 잘 만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젠 막 남친이 집으로 놀러도 오는 사이라나... ㅠ.ㅠ 


그러더니 급기야 좀 있으면 사귄지 200일이라고 선물(커플 시계!)까지 준비중이시란다. 그것도 영원한 봉 고모의 스폰서를 받아서.. 끙... 그냥은 스폰서 못해주겠고 와서 할머니 어깨 주무르기 알바라도 하면 시급으로 비용을 까주겠다고 했더니만 진짜로 방학 첫날인 오늘 건너왔다. 주말에 제발 좀 놀러오라고 할머니랑 고모가 애걸복걸 할 때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쳇... 아 놀라운 풋사랑의 힘이여~! 


업고 안아 재우며 키운 첫조카가 벌써 17살이 되어 연애질을 한다는데 허거걱 그간의 세월이 놀랍기도하려니와 고딩 연인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데이트를 하는지 호기심이 발동하며 자꾸 실실 웃음이 난다. 중간고사 기간 땐 둘이 울 동네 구립 도서관에도 같이 간 모양인데 (아우 귀엽다!) 자리가 없어서 헤매다 둘이 밥 얻어먹으러 우리집에도 왔었다. 이쯤 되면 건전하고 착한 연인이라고 인정. 다만 조카가 자꾸 다이어트에 열 올리지 않도록 남친 녀석이 좀 살이 쪄주면 좋겠다. ㅎ 


200일 기념 커플아이템 마련을 위해 (공주께선 그간 남친이 사준 커플링을 두번이나 잃어버리셨다고 +_+) 일종의 알바를 하러 온 건데, 나 원참 할머니 어깨는 10분씩 겨우 두번이나 주물렀나.... 히히호호 남친이랑 통화를 하지 않으면 카톡하느라 정신이 없더니 30분에 걸쳐 곱게 '풀메이크업'을 하고는 데이트나가신단다. 계속되는 조카의 봉노릇... 기분이 그닥 나쁘지는 않은데, 이거 괜찮은 건가 좀 염려는 된다. 조카 남친의 봉노릇까지 하는 고모라니 쯧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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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먹겠다

투덜일기 2014. 6. 30. 22:00

이걸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하는지 모르겠다. 일종의 파트타임 애보기라고 해야하나? 암튼 전업주부로 들어앉았던 큰올케가 또 갑자기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당분간 12살짜리 조카를 보필하는 임무가 내게 떨어졌다. 그래봤자, 화목토에 다니는 수학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고, 매일 저녁 해먹이고, 밤에 집에다 데려다주는 일이 전부다. 


열두살 조카는 이제 집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우리집에 오는 법을 확실히 익혔기에, 월수금엔 방과후 집으로 선생님이 찾아오는 피아노와 영어 과외를 받은 뒤 숙제거리를 싸가지고 저녁을 먹으러 11정거장 거리인 우리집으로 버스타고 찾아온다. 다행히 수학학원 가는 날엔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걔네 엄마가 학교부터 학원까지 픽업을 해주거나 둘이 택시를 타고(!) 연희동으로 간단다. 애들끼리만 택시 타는 게 나는 너무도 못마땅한데, 조카의 친구 엄마 말로는 자기네 애는 하도 택시를 많이 타고 다녀서 염려 없다고 장담했고 올케도 별 거부감이 없는 눈치다. 


처음 며칠은 갑자기 달라진 삶에 심술이 난 조카가 집으로 고모가 자길 데리러 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고집을 부렸었고, 그렇지 않으면 택시를 탈 테니 큰길가에 내려와 있으라고 해서 몇번인가 데리러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필 고모는 바빠서 죽겠는 기간인데... 암튼 그래도 조카는 금세 리락쿠마 인형에 충전된 티머니로 버스 타는 묘미를 익혔고, 희희낙락 고모네 와서 마음껏 할머니 방 TV를 볼 수도 있고, 하녀처럼 살뜰하게 저를 챙기는 고모를 이리저리 부리는 재미(고모 놀자! 고모, 아이스 메밀차 먹을래! 고모, 방울토마토 먹을래! 고모, 바나나 먹고싶어!--집에 없어서 결국 사다줬다--고모, 얼음만 컵에 잔뜩 담아줘! 고모, 이제 우리 집에 가자! 고모, 우리 집에 같이 들어갔다가 가자!... +_+)에 길이 들었다. 


게다가 지난주와 오늘까지 기말고사기간. 괜히 왔다갔다 붕 뜬 마음에 시험공부라도 잘 못하면 어쩌나 괜히 내가 눈치가 보여서 정말로 왕자님 모시듯 떠받드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라 나도 아직 녀석을 애기취급하는데, 엄마 손길이 적어져 애가 맘상하진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다행히 지난주 영어시험도 그렇고 오늘 기말고사도 잘 본 것 같단다. 물론 성적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ㅋㅋ 어쩔 수 없이 나도 성적지상주의자로다. 그치만 고모가 보필해서 성적 떨어졌단 말은 듣기 싫은데;; ㅠ.ㅠ) 


그러다 2주째였던 지난주 중간쯤엔 괜히 스트레스 폭발, 조카한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영어과외를 째기로 애 엄마와 통화를 하고 애를 집에 데려왔는데, 시험기간 직전이라 굳이 과외선생이 우리집으로 찾아와 수업을 하겠다고 했던 날이었다. 6시에 온다고 해도 7시에 수업 끝나면 저녁이 늦어지는 판국에, 설상가상 길이 막혀 과외선생은 6시 반이 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난 원래 끼니 시간을 넘기면 분노 조절이 안된다. ㅠ.ㅠ 6시 반엔 저녁밥을 먹어줘야;;) 괜한 신경질에 조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왜 자기한테 화를 내느냐고 물었다. 아... 화를 낼 대상은 그냥 어쩔 수 없는 내 상황이었거늘. 금방 반성하고 사과할 수밖에.


매일 조카 저녁 챙겨먹이는 건 뭐 원래도 하는 일에 밥숟갈만 하나 더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해서 늘 영양 만점이라고 생각하는(아닌 날도 많은데 ㅠ.ㅠ) 고모의 밥상을 조카가 엄청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제 엄마에게 고모는 된장찌개도 대충 끓이는 데 엄청 맛있다고 했단다 으휴...) 편식 없이 아무거나 해주는 대로 잘 먹긴 하지만, 반찬에 아무래도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고, 당분간은 저녁약속도 잡을 수가 없다! (엄마 혼자 한끼쯤 홀로 챙겨드시는 건 문제 없어도 손주 끼니 보필은 좀 무리인 게 사실.)


매일매일 조카에게 현재 어딘지, 집에 왔는지 학원에 갔는지, 예정대로 그 시간에 데리러가면 되는지, 혹은 버스 타고 오는 중인지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아야 하고, 학원앞에 데리러 가서도 주차할 데 없으면 또 부리나케 전화통화를 해야하는 모든 상황이 나에겐 스트레스. 도대체 사교육에 힘쓰는 이땅의 엄마들은 어떻게 애들을 키울까! 난 겨우 2주만에 못해먹겠다 무자식이상팔자구나, 궁시렁궁시렁 온갖 투정을 해대고 있는데 말이다. 


지난 금요일엔가 나온 김에 저녁 먹고 들어가자는 말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들어가서 조카 데려다가 밥해먹여야 한다고 하자, 애들 다 키워놓은 지인들이 킥킥 웃었다. 운전해서 애들 학원 뺑뺑이 돌리는 거, 그거 마흔살 이전에나 할 수 있는 중노동이야! 라면서. 


물론 한정없이 내가 계속해야 하는 일은 아니고, 올케가 직원을 뽑아 일이 자리가 잡히면 곧 놓여날 수  있는 상황이라 그나마 다행. 아마 나더러 계속 하라고 하면 어디로 도망치고 싶을 것 같다. 부모 노릇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다고 익히 생각은 해왔지만, 역시 난 엄마가 될 수 없는 잠깐잠깐 조카들을 예뻐하는 고모일 뿐이고, 온전한 책임은 버거워하는 이기적인 사람임을 깨닫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주들 오면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다고 하는 말을 새삼 이렇게 뼈저리게 실감할 줄이야... 

매일 같이 지네 집과 고모 집을 전전해야 하는 조카녀석도 안쓰럽고, 집에 데려다줄 때마다 가끔씩 얼굴을 보는 고딩 큰조카도 어쩐지 안돼 보이고, 목이 다 쉬어 계속 피곤한 몸으로 오밤중까지 돈벌이에 힘쓰는 올케도 안쓰럽고, 갑작스런 애보기 신세에 스트레스 받는 나도 안쓰럽고... 문득 이 세상의 모든 맞벌이 부부나 싱글맘, 싱글대디들은 애들을 어떻게 키우나 의문이 든다. 이러면서 나라에선 출산율 떨어진다고 이상한 정책이나 세워대고 말이지...  암튼 어렵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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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발원문

투덜일기 2014. 6. 20. 16:51

며칠에 한번씩 연필 깎아대기 귀찮아서 연필 깎는 기계를 살까말까 고민하는 포스팅을 했다가, 결국 반성하고 계속 연필깎이 봉사를 보태기로 했던 엄마의 금강경 필사는 계절이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매일 새벽 거의 2시간씩 꼬박 식탁에 앉아서 금강경을 베껴적으시는데, 이젠 아는 한자가 많아져 속도도 빨라졌고 목표로 했던 7권 가운데 마지막 한권만 남았다는 것 같다. (1권에 3번씩 쓸 수 있으니 총 21번을 쓰는 셈)

 

노친네가 1월에 빙판길에 넘어지면서 손을 다쳐 초반부엔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1달에 한권씩 써서 백중(8월 10일이다) 전에 다 끝내겠다던 대장정이 순조롭게 결실을 앞두고 있다.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너무 짧아진 연필 몇 개는 버리고 새 연필을 서너 자루 더 깎아드린 것 같다. 지켜보는 사람으로선 참 대단한 끈기이고 정성이다 싶어서 존경스럽다가도, 간혹 잠도 안자고 새벽 3시에 막 필사하겠다고 나서면 억지로 다시 방으로 쫓아보내 더 주무시라고 하면서 버럭 화가 난다. 뭐든 스트레스가 되면 안되는 거라구욧!

 

엄마 본인의 말로는 학창시절 공부를 못했단다. (딸에게 이런 고백을 스스럼없이 하는 엄마라니.. 참 나.) 하여간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많이 졸다가 쉬는 시간에만 재잘재잘 살아났고(요즘도 한달에 한번 만나는 엄마의 고교동창들이 그런단다. 얘, 너 학교 다닐 때도 엄청 수다스러웠어!), 집에서도 공부 좀 할라고 그러면 어찌나 졸린지, 시험 앞두고서도 할머니한테 새벽에 깨워달라고 하고는 내쳐잔 뒤 다음날 안 깨웠다 신경질만 부렸단다. 할머니가 왜 안깨웠겠나, 깨워도 그냥 잤겠지. ㅋㅋ 게다가 워낙 악필이라 수업시간에 적어온 필기 내용을 (아마 졸면서 적어서 더 그랬을듯;;) 본인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는 게 함정. 그뿐인가. 무려 고2때부터 이후 8년간이나 이어지는 연애질을 시작해 종종 학교 수업 빼먹고 명동으로 영화구경도 다녔다니, 공부를 대체 언제 했겠나! (가끔 울 아빠가 읽어보라고 건네주는 책--주로 고전--읽기에도 바빴다고;;)

 

하여간 공부를 잘 해보고 싶어도 잘 안됐던 그 시절의 로망을 요즘에 투사하는 건지, 엄마는 뭐든 금강경 필사만큼이나 열심이다. 실버 아카데미 다닐 때는 무결석은 물론이고 숙제도 그날 오자마자 상 펴고 앉아 몇시간씩 낑낑대며 다 해치웠고, 요즘도 활동중인 실버 합창단은 열혈 선생이 구워준 CD를 집에서 연거푸 들으며 악보 챙겨와 따로 예습복습까지 해갈 정도다. 자고로 선생이 예습복습 해오란다고 정말로 해가는 아이들이 반에서 1퍼센트는 될까? -_-;; 암튼 그래서 엄마는 합창단 지휘자 선생도 인정하는 모범생이다. 

 

예전에 엄마가 서예 배우러 다닐 때도 신기하게 느꼈던 건데, 한글 글씨체는 진짜 악필인데 한문 글씨체는 잘 쓰는 편이라는 것! 나는 한글도 엉망이지만 한문 적어놓으면 그야말로 어린애가 그려놓은 듯 우스꽝스러운데, 금강경 필사야 밑에 흐린 점선으로 적혀 있는 대로 베껴적어서 그렇다치고 일반 공책에 한자성어 적어놓은 것도 한글은 지렁이 기어가듯 보이는 반면 한문 획은 반듯하다. 나로선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그래도 몇달째 필사를 하면서 손아귀에도 힘이 생겨 악필도 많이 나아진 것 같다.  금연하라고 하사금까지 내렸는데 아직도 몰래몰래 담배를 피워 노친네 애를 태우는 동생놈들 양심 찔리라고 엄마의 발원문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노친네가 쌓고 있는 정성의 힘이 어떤 절대자의 마음을 움직인다거나 해서 소원이 덜컥 다 이뤄진다고 믿진 않지만(신은 없다니깐!) 이런 과정을 실천하고 지켜보는 인간들이 슬그머니 변모하려는 노력은 낳게 되지 않을까. (마지막 두 줄은 나와 괜히 티격태격한 날 덧붙인 모양이라 나도 찔린다. 버럭버럭 마감 스트레스 괜히 엉뚱한데 풀지 말고 나도 뾰족한 말 좀 덜 하기를 바라는 차원의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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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투덜일기 2014. 6. 11. 13:12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은지는 꽤 됐다. 가끔 예외는 그날 택배 배달 예고가 있는데 밖에 나가있을 때 정도. 그렇다고 번호 저장된 사람들의 전화를 잘 받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워낙 전화오는 일이 드물기도 하고, 진동으로 해두고 못들을 때도 많다. 배터리 꺼진줄도 모르고 있을 때도 있으니 뭐.


암튼 전화와 관련해선 기피증도 심하고 구세대임이 분명한 나는 아는 이에게 걸려온 번호도 미리 반색하며 알은체를 하지 않는다. 그냥 일관되게 "여보세요."라고 응답하는 쪽인데, 가끔 저쪽에서 섭섭해하는 경우가 있다. 내 번호 저장 안 돼있어? 아니 저장되어 있는데요... 근데 왜 모른척 해? 어 그게 아니고....  


이거 원 참... 난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여보세요"라고 안하고 대뜸 "응 OO아!" "네, 언니!" "어, 웬일이야?"라는 식으로 대답하면 그게 더 어색하다. 어쩐지 빨랑 용건부터 말해야할 것 같고... 난 "여보세요"란 말에 대비해 서서히 인삿말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쪽에선 벌써 "오랜만이네. 어떻게 지냈어" 따위로 대화를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좀 더듬거린다. 이것도 사회성 부족 현상일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특히나 휴대폰에 뜨는 상대방 이름을 보고 재빨리 응대할 태도 준비까지 마쳐야하는 모양이다. 무작정 "여보세요"라고 받으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점수가 심히 깎인다고. 지켜본 바에 의하면 배우자나 애인한테도 마찬가지인 듯. 대뜸 콧소리 작렬하는 "자기야~!"로 응답하는 장면 꽤 목격했다. 으윽.  

 

문득 회사다닐 때 생각이 난다. 사무실 전화가 울리면 습관적인 '여보세요' 대신에 회사이름을 대야 했는데, 난 그게 어찌나 어렵던지. 첫 회사는 심지어 영어이름이었으니... 두번째인가 세번째 회사는 심지어 "감사합니다, OOOO 영업부 OOO입니다."라고 회사명과 소속부서 본인 이름까지 대라고 강요했다. 아우 발음꼬여! 하도 스트레스라서 집에 와서도 그렇게 회사이름을 대며 전화받던 시절도 있었네그려.

 

어린시절 우리집엔 없는 대문 인터폰이 달린 고모네 집에 놀러갔을 때, 벨이 울리고 부엌에서 일하던 고모가 나더러 받아보라고 했을 때 수화기를 들고는 '누구세요' 대신 '여보세요'라고 했던 민망한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어찌나 창피했는지. 마침 퇴근하신 고모부가 누른 벨이었고, '여보세요'라고 했다고 놀림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인터폰에 대고 '여보세요'라고 한 적이 꽤 되는 듯. 드디어 우리집에도 인터폰을 달았을 때, 들고 있는 수화기가 전화인지 인터폰인지 헷갈려 '여보세요' 했다가  '아니, 누구세요'로 바꾸곤 한 것 같다.

 

암튼 습관이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것이고, 대인관계의 태도 역시 갑자기 바꾸기 어려우니 나의 '여보세요'는 평생 이어질 게 틀림없다. 엄마한테 오는 전화도 동생들한테 오는 전화도 다 일단은 "여보세요"라고 받는 게 나로선 너무 당연한데,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가? 문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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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3시

투덜일기 2014. 5. 11. 16:12

벌써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작년 이맘때쯤? 정확하진 않지만 계절이 여러번 지나간 건 확실하다. 하여간 일요일 오후 3시 무렵이면 똑똑똑 현관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이웃인데요,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필요없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잠깐만 시간 좀 내주세요. 됐어요! 아무리 쌀쌀맞게 대꾸를 해도 그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 매번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다음 일요일엔 어김없이 나타나는 저 놀라운 끈기. 


나는 한번도 대면한적 없어 도무지 정체가 누군지 알지 못했는데, 듣자하니 동네 입구 상가 2층에 있는 작은 교회 신자들이란다. 이웃 아줌마가 호기심에 문을 열고 인쇄물을 받아보았더라나. 우리집을 찾은 사람과 동일인물인지 아닌지 확신할 순 없지만 유독 일요일 오후 3시쯤 집집마다 문을 두들기고 좋은 말씀을 전하려는 이들이 또 있을까 싶긴 하다. 아니지, 언젠가는 '좋은 말씀' 언급은 꼭 빼고 이웃이라며 물어볼 게 있다는 감언이설(?)로 문을 열게 한 뒤 다짜고짜 인쇄물을 내밀고는 됐다고, 필요 없다고 하자 '50원'인가 '100원'을 내놓으라고 하던 특정 종파도 있었다. 그날도 일요일이었던가, 그땐 평일이었던 것도 같고. 


노친네들이 유독 많이 살아 동네 분위기가 허술한 때문인가. 몇달에 한번쯤은 절에서 왔다며 시주를 청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물론 엄마 덕분에 불교쪽에 대해선 좀 더 빠삭한 사람으로서, 전철역 앞에 불전함 놓고 꽝꽝 드럼치듯 목탁 두들겨대는 땡중(승적도 없을 게 분명하다!)들이 다 구걸형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듯이, 절에서 나왔다는 사람들도 종교를 빙자한 사기꾼이라고 굳게 믿는다. 요즘이 어떤 시절인데 저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녀서 과연 종교 설파가 된다고 믿을까? 


순수하게 길을 묻는 사람들도 혹시나 '도나기' 일당은 아닐까 지레 경계하며 쌀쌀맞게 대한지 꽤 됐다. 이젠 이사했다고 떡 돌리는 이웃들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 있을지 모르는데 (아마 이 집이 팔려서 이사를 가게 되면 울 엄만 반드시 고사떡을 해가지고 이웃에게 돌릴 사람이다), 누군가 문을 두들기고 이웃이라고 하면 버럭 짜증부터 난다. 아으 참 용감하고도 질긴 (일부) 종교인들!


시내 중심가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팻말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그렇고, 일요일 예배후 지역을 나눠 동네 전도에 힘쓰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들이 전도에 힘쓰는 건 무지몽매한 비종교인들을 함께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들이 보기엔 지옥불에 떨어질 중생들이 안타깝고 불쌍하겠지. 그러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마침 내가 향기로운 커피를 즐길 시간에 똑똑똑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는 분명 스트레스다. 이젠 아주 그 시간 즈음 되면 미리부터 조마조마하다. 두들겨도 빈집인 척, 아예 대답을 하지 말까? 그러다 진짜 볼 일 있는 사람이면 어쩌지? 가스 검침원이라든지... 


현관문 유리로 얼핏 보이는 실루엣으로 미리 짐작하거나 베란다 창으로 내다보아 마당에 또 다른 일행이 서 있나 확인하기도 하는데 (둘셋씩 다니면 전도 목적이 확실하니까';) 나보다는 확실히 저들의 전략이 더 앞선다. 아 오늘은 조금 전에 글쎄, 젊은 청년이 홀로 나타나 문을 두들겼다. 착하고 성실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이웃인데요... 레퍼토리가 똑같지 않았더라면 나도 계단을 뛰어 내려가 문을 열어봤을지도 모르겠다. 귀가 어두운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대뜸 문부터 열려고 신발을 꿰신는 걸 내가 말렸을 정도. 그간 그렇게 두들겨 봤으면, 이 집은 도저히 안되겠으니 이제 좀 포기해주면 안되나. 내가 집에 없던 어느 일요일 오후, 가능한한 짧게 상대하지 않는 게 최선임을 모르시는 노친네, "우린 절에 다녀요."라고 괜히 대꾸했다가 한참이나 댓거리를 해야했단다. 안가고 서서 더욱 열렬히 한참이나 좋은 말씀을 전하시더라는...   으휴. 오늘은 날 흐리고 바람도 세차던데 참 수고가 많으시겠으나, 이제 부디 우리 집은 포기해주시기를. 


일요일 오후 3시 무렵의 스트레스에서 이만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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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투덜일기 2014. 1. 12. 00:30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은 뾰족한ㅅ자 모양으로 각도가 좀 묘한데다 언덕이고 또 꽤 좁기도 해서 모퉁이에 누군가 차를 세워놓으면 곧장 방향을 틀 수가 없어 다음 골목에서 차를 돌려서 들어와야한다. 낮엔 몰라도 밤늦게 귀가하면 어김없이 그래야하는데, 10시를 조금 넘긴 오늘도 그랬다. 경사 급한 다음번 골목길로 후진으로 들어가 방향을 바꾸려는 찰나 저 앞 커브 심한 언덕길에서 차 한대가 미친듯이 달려내려왔다. 속도방지턱을 그냥 내달려서 영화처럼 차가 붕 떴다가 앞 범퍼를 요란하게 바닥에 부딪힐 정도였고 그 여파로 옆에 세워둔 다른 차와도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내가 빨리 안비키면 금세 내차와 정면충돌이라도 할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차도 속도를 좀 늦추는 사이 으악 놀랐던 나는 얼른 후진으로 길을 터주고는 휴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내가 그 차 뒤로 방향을 틀려는 순간 곧이어 같은 방향에서 경찰차가 나타났고, 나는 또 다시 후다닥 후진으로 길을 터주었다. 음주단속을 피해 달아나는 차였나? 그렇다면 내가 도주로를 잠시나마 막아섰던 셈! 그런데, 그 운전자가 우리 동네를 잘 알지는 못하는 듯 ㅋㅋㅋ 하필이면 한쪽편에 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는 우리집 골목으로 들어갔고 (바보, 막다른 골목인데!) 속력을 내서 지나갈 순 절대 없는 좁은 골목인지라 도망치기를 제풀에 포기한 듯, 입구에서 조금 가다 멈추고 말았다. 조수석에 탔던 경찰이 뛰어내리자 50대쯤으로 보이는 아저씨 운전자도 차에서 내려 뭐라뭐라 변명을 했다. 음주운전단속을 피하려고 도망친 게 틀림없어보였다.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그 골목으로 들어가야한다는 표시로 깜박이를 켜보였더니만 두대 모두 후진으로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언덕을 내려갔다. 통행에 지장이 없는 큰길에 가서 나머지 절차를 밟으려는 듯... 

 

생각해보니 얼떨결에 나는 음주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낸 경미한 접촉사고까지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이 된 거였다! 뒤 따라 오던 경찰이 음주단속이야 했겠지만 그 문제의 차가 골목에 세워둔 차와 부딪힌 것까지 보지는 못했을 테니, 그 책임까지 물을 것 같지는 않고.... 누군지 모르지만 골목에 세워뒀다 괜히 차만 찌그러진 자동차 주인이 불쌍하다. 소리로 봐선 꽤 심하게 찌그러졌겠다 싶던데 흐이구... 혹시 내일아침 찌그러진 차를 발견한 동네 주민이 목격자를 찾는다는 쪽지나 플래카드(?)라도 붙여놓으면 나는 아는 척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면서 어쩐지 도시의 무용담 같아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 째뜬 오늘의 교훈은 음주운전은 절대로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것. 커브길 끝에 속도방지턱 없었으면 나랑 정면충돌했을지도 모르잖아!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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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들

투덜일기 2014. 1. 9. 18:01

 

2014년 1월

 

엊그제 운동을 빙자한 산책 나갔다가 개천변에서 만난 오리들이다. 벌써 몇년째 지켜보고 있는데 놀랍게도 여기서 계속 살면서 새끼를 낳고 키우고 훌쩍 자라나고 그런다. 얘들은 대체 뭘 먹고 사는 걸까? 수질보호를 위해 오리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팻말이 곳곳에 서 있지만 간혹 보면 애고 어른이고 과자부스러기나 강냉이를 던져주기도 하는데, 이왕 먹이를 줄 거면 잡곡이나 가져다 주지.. 속으로만 생각한다. 

 

처음에 '자연하천복원'이라고 큰소리 띵띵 쳐놓고는 공사 시작되자 콘크리트로 둑을 쳐바르는 광경을 목격했기에 그 위로 또 뭔가를 덮어씌우고 수초를 심어도 다 소용없는 짓이라 여겼으나 그래도 여름엔 양쪽 천변으로 수초들이 꽤 키를 높여 자랐었다.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깊어지면 한강에서 거슬러 올라왔을 것으로 생각되는 작은 물고기떼가 우글거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아주 큰 붕어들이 떼지어 나타나기도 하고...  이렇게 말이다.

2013년 7월

 

물속 바위에 시커먼 물이끼가 뒤덮이고 개천 물이 저렇게 더러운데 거의 내 팔뚝만한 물고기가 다리 밑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는 걸 보고 신기해서 찍어둔 사진인데, 이 당시 첫 사진 속의 오리들은 이제 갓 부화를 마치고 나온 갈색 새끼 오리의 모습으로 개천 건너편에서 어미 오리를 따라다니며 헤엄치기를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 반년만에 그 오리들이 저렇게 컸다는 게 정말이지 놀랍다. (그러고 보니 나의 천변 산책도 반년 만이라는 의미네.. ㅋ) 장마철에 폭우 내렸을 때는 오리들이 대체 어디에서 피신을 했을지? +_+ 물고기들이야 뭐 한강으로 내려가면 그뿐이겠지만서도...

 

암튼 오리들은 한파가 몰려와 개천이 거의 다 꽁꽁 얼어붙어도 어디로 날아가지 않고 얼음위를 뒤뚱거리며 걸어다니며 먹이를 찾아다니는 듯했다. 아무리 추워도 다리 아래쪽엔 헤엄칠 공간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올해는 비교적 삼한사온이 맞아떨어지는 듯 미친듯이 한파가 계속되진 않으니 오리들도 겨울나기가 수월하려나 어쩌려나 괜한 궁금증이 인다. 옛날에 할아버지가 TV로 <동물의 왕국>을 놓치지 않고 보시는게 참 이상해보였는데, 조류 공포증이 있는 나도 동네 개천 오리들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있으니 조만간 동물의 왕국 열혈 시청자가 되는 건 아닌지 원... 뭐 그렇다는 얘기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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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30권에 혹해 결국 읽지도 못한 책들을 두번에 걸쳐 나눠 반납하고도 몇권은 일주일 대출연기를 했지만, 또 다시 금세 돌아온 반납일. 책 한권은 연체까지 됐다고(분명 다 같이 대출연기했는데 왜 한권은 안됐는지 그것도 미스터리;;;) 자꾸만 문자가 날아오는 바람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오늘 다시 도서관엘 올라갔다. 마침 프린트할 것도 있고 해서... (고장난 프린터 내다버리고 스캐너만 놓고 살다보니 드물게 인쇄할 게 있으면 예전엔 집근처 pc방엘 갔었다. A4 1장당 100원 이었나 200원의 거금을 내야한다는 것이 함정. 게다가 컬러 프린트는 무려 장당 1-2천원! 사진 같은 건 2천원이고 일반문서는 천원. 그러다 도서관엘 가면 흑백문서를 장당 50원에 인쇄할 수 있단 걸 알고 애용중. 컬러프린트도 장당 700원. 비교적 저렴하다)

 

암튼... 책을 반납하면서, 연체료 2200원을 낸 뒤 대출정지를 풀어 아직 미련이 남은 책 세 권은 도로 빌려왔다. 이번엔 과연 다 읽을 수 있으려나. ㅠ.ㅠ 그러고는 예약해둔 시간에 맞춰 디지털자료실에 내려가 먼저 usb에 담아간 사진 파일 컬러프린트를 직원에게 부탁했다. .  

바로 이 그림... ^^;

1868년 신정왕후(고종을 양자로 들여 왕위에 오르게 한 인물)의 회갑연을 묘사한 <무진년 강녕전내진찬도>라는 병풍 그림이다. 좀 흐리기는 하지만 궁궐안내할 때 써먹을까 싶었던 것...

 

구겨질까, 혹시 비에 젖을까 일부러 가져간 투명비닐파일에 인쇄한 걸 고이 담아 프린터 옆 테이블에 두고, 예약해둔 컴퓨터에 앉아 다른 문서를 출력했다. 5분도 채 안된 시간...

 

출력한 문서를 같이 담으려고 프린터 옆 테이블을 쳐다보니, 그림이 없다. ㅠ.ㅠ

인쇄비 700원과 비닐파일값 아까운 것보다도 너무 황당하잖아!! 아니 왜 도서관에서 남의 물건을 집어가나?? 내용물보다도 비닐파일이 탐났을까? 천원이면 사는 흔한 건데!

 

기가 막혀서 도서관 직원에게 방금 인쇄한 컬러그림 잃어버렸다고 하니깐, 그분은 괜히 한바퀴 디지털자료실을 돌며 컴퓨터질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도둑놈이 아직 거기 앉아 있을 리가 없잖아...  쳇...

 

째뜬 내 불찰이니 다시 인쇄를 부탁했는데, 나이 지긋한 직원 아저씨께서 두번째 인쇄비 700원은 안받고 그냥 해주셨다. ㅎㅎ 다른 데도 아니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과 도둑질은 어쩐지 전혀 안어울릴 것 같지만, 참 알 수 없는 게 사람 심리인듯.

 

문득 10여년 전 Y대 도서관에서 엎어져 자다가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렸던 때가 생각났다. 시험기간이라 누가 자리 좀 맡아달라고 해서 바로 옆자리에 책가방을 두고는 엎드려 깜박 졸았는데 어느틈엔가 사라져 버렸었다. 돈과 신용카드, 신분증이 든 지갑도 문제였지만 가방에 든 열쇠고리엔 집열쇠와 자동차열쇠가 같이 매달려 있었다. (여벌의 자동차 열쇠가 하나 집에 있긴 하지만, 자동잠금장치 없이 그냥 열쇠로 돌려 열면 요란하게 알람 울리고 난리가 난다. 물론 당시엔 그것도 모르고, 머리가 하얘졌다. 뾱뾱이 없이 자동차를 어떻게 열 거냐고! 어쨌거나 돈 꿔서 택시타고 집에 가 그 여벌 열쇠라도 가져와야 하나?)

 

말 그대로 '멘붕'이 되어 망연자실했던 나는, 가방 훔쳐가는 것도 모르고 엎어져 잠든 걸 자책할 새도 없이 열람실 문에 도둑에게 보내는 메모를 써붙였다. ^^; 지갑은 됐으니 열쇠만이라도 돌려달라고. 그러고는 도서관 건물 화장실을 꼭대기층부터 다 뒤졌다. 도둑들이 가방이나 지갑 훔쳐서 귀중품 빼고나면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경비 아저씨의 조언을 참고했던 거다. 징징 울지도 못하고 기가 막혀 도서관을 배회하는데... 띵동~ 문자 메시지가 왔다. 4층(5층이던가;; 암튼;;)  열람실 맨 안쪽에 가방 두었으니 가져가라고... ㅠ.ㅠ  도둑은 여전히 도서관 건물에서 활동하며, 내가 써붙인 읍소의 메모를 읽고 답장까지 보내준 거다. 정말로 그곳에 가보니, 나의 누런색 '루카스' 천 배낭이 떡하니...

 

집열쇠, 자동차 열쇠는 물론이고, 돈만 쏙 빼간 지갑도 고스란히 가방에 들어 있었다. 의외였던 건 '여행용 휴지'가 없어진 것. ㅋㅋㅋ 도둑이 감기라도 걸렸었던 걸까. 암튼 난 가방과 지갑과 열쇠까지 되찾았으니, 참 친절한 도둑도 다 있다고 막 감탄을 했던 것 같다. 혹시 학생 아냐? 주변에선 날아온 문자 번호 신고하라고 난리였지만, 바보가 아닌 한 자기 번호로 문자를 보냈을 리가 있겠나? (요새도 되는지 모르지만 그땐 휴대폰에서 문자 보내는 사람 전화번호 조작이 가능했다;;)

 

대학 도서관에는 늘 상습적인 도둑들이 상주하고 있어서 가끔 뉴스에 체포 소식이 들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동네 도서관에선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규~~!! 난 동네 도서관에서도 가끔 가방 자리에 놓고 잠깐씩 데스크 직원한테 뭐 물어보러 가고 그러는데...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굳게 결심했다.

 

그나저나 A4용지 그림 달랑 한장 든 비닐 파일을 가져간 도둑은 대체 왜 그랬을지 몹시 궁금타. 귀중품도 아닌데.... 혹시 우산이 없어서 머리 가리고 뛰어갈라고 그랬으려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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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촌에 이어 최근엔 서촌, 부암동도 덩달아 뜨는 모양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데도 한번 발걸음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또 한번 답사 명목으로 샅샅이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다. 그 자세한 후기는 아무래도 쓰게 되지 않을 것 같고 (벌써 오래되어 다 까먹었다 ㅜ.ㅜ) 백사실 계곡에 대한 의문만 적어둘란다.

 

서울에서 드물게 청정지역으로 남아(군사지역으로 정해 노무현정부 이전까지 오래도록 일반인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도룡뇽과 버들치가 살고 있다 해서 유명해진 곳이 바로 부암동 백사실 계곡. 얼마전 부암동 유지이자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는 분을 따라 그야말로 구석구석 재미난 구경을 했었다. 내가 특히 궁금했던 건 '백사실'이라고 하는 이름의 유래였다. 우리가 <오성과 한음> 일화로 잘 아는 이항복의 호가 '백사(白砂)'이고, <딱히 기록엔 없지만> 이항복의 별장 터가 그 근처에 있어 '백사실'이라는 이름이 유래했으리라는 것이 모든 안내 표지판에 적힌 유력한 짐작이었고, 해설사의 설명도 그러했다(이항복 말고 또 '백사'라는 호를 지닌 다른 인물 유래론도 있다고;;). 

 

하지만 분명한 내 기억으론 아닌데!!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백사실 계곡'은 내가 '국민학교' 시절 해마다 봄가을 소풍때 거의 어김없이 학교 운동장부터 줄 맞춰 걸어가 놀던 추억의 장소였다. 계곡 좌우에 군데군데 공터가 있어서 저학년들은 주로 계곡 아래쪽에서, 고학년들은 주로 계곡 위쪽에서 학년 별로 터를 잡고 가재 잡으며 놀다가, 점심먹고, 보물찾기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수건돌리기도 하며 놀았었다. 가끔은 소풍 장소가 백사실 건너편 구기동 계곡으로 변경된 적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어린 나에게는 백사실이나 구기동이나 별 다를 게 없었다. 왜냐하면 홍지문을 지나 세검정 주변부터 줄 지어 늘어서 있는 '뱀집'들 때문에 그 언저리가 '흰뱀이 나오는 동네'(白蛇室)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론 상명대 건너편부터 세검정 정자까지, 또한 정자부터 지금은 사라진 신영아파트 상가와 건너편 삼거리 군데군데에 다닥다닥 뱀집들이 붙어 있었고, 진열장엔 하나같이 길쭉한 유리병에 담긴 '하얀뱀'들이 똬리를 튼 채로 어린애들을 위협했다. 새빨간 눈이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아서(사실 난 자세히 본 적도 없다. 애들이 흰뱀 눈은 빨갛다고 하니 그런 줄로만;;) 그 앞을 지나가는 게 어린 마음에 얼마나 무서웠는데! 당연히 귀한 흰뱀이 많이 나와서 그 동네 이름이 백사실이 되었다고 했다. 이항복의 호인 '흰 모래'가 아니라! 결단코 나 어린 시절엔 '백사 이항복'이 백사실 계곡과 관련있단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규~!

 

헌데 내가 그런 질문을 했더니 20년째 부암동에서 살고 계시다는 부암동 주민이자 해설사이신 그분은 흰뱀-백사실 이야기는 완전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내가 비록 그 동네 주민은 아니지만 국민학교 졸업 이후로도 6년간 더 꼬박 중고등학교를 세검정에 있는 학교에서 다녀 '흰 뱀'이 담긴 유리병을 자랑스레 전시했던 건강원들이 하나들 자취를 감추는 모습까지 지켜본 사람 아닌가. 하기야 나처럼 같은 집에서 30년씩 막 눌러사는 서울 주민이 몇명이나 되겠냐마는 ㅠ.ㅠ 그래도 이렇게 백사실 계곡 소풍에 관한 빤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텐데, 어떻게 부암동 문화해설 체계가 구축한 '스토리 텔링' 관광에 그런 이야기가 빠져 있는지 궁금한 노릇이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검색을 해보니, 부암동 숲해설을 하는 이들은 '흰뱀-백사실' 유래와 '흰모래-백사실' 유래를 둘 다 설명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듯했다. 하지만 종로구나 부암동 측에서는 혐오식품인 '뱀탕'과 관련된 유래보다야 지혜로운 재상의 전형인 '백사 이항복'과 연결시키는 편이 더 그럴듯하고 품위도 있어보여 그 쪽으로 밀고 있는 게 아닐까나? ㅋ 역사는 역시 권력을 쥔 자의 입맛에 따라 정리된다는 진리를 여기서도 어렴풋이 느꼈다면 너무 비약인가.

 

어쨌거나 사람의 기억이란 놀라운 것이어서 백사실 계곡을 위에서부터 훑어내려오며 둘러보니 퍼뜩, 아 이 즈음의 공터에서 둘러앉아 수건돌리기를 하고 놀았겠구나, 여기서 학년 장기자랑을 했겠구나 싶은 장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건돌리기에서 걸려, 벌칙으로 엉덩이로 이름쓰기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라는데 둘 다 못하겠다고 서서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던 11살 즈음의 나도 떠오르고...  근 35년만의 재방문이라니... ㅠ.ㅠ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ㅎ 나는 무서워서 잘 잡지 못하고, 친구가 잡아주는 가재를 원통형의 새알초코알 통에 넣어가지고 조금 놀다 다시 물에 던져넣곤 했었는데...

 

이미 날이 싸늘해져 가재와 도룡뇽은 못봤지만 맑은 계곡 물엔 버들치인지 송사리인지 작은 물고기들이 정말로 엄청 많았다. 물고기가 제일 많이 보이는 웅덩이에 휴대폰을 들이댔으나 모래랑 색이 비슷해 하나도 안보인다. ㅋㅋ 물위에 뜬 동심원이 바로 물고기 녀석들이 만들어낸 그림...

도룡뇽, 가재, 버들치가 살고 있는 생태보전지역이라는데, 과연 아직 흰뱀도 살고 있을지 난 그것이 가장 궁금하다. 그래야 내가 아는 '흰뱀-백사실' 유래설에도 힘이 실릴텐데 말이다. 그 많던 뱀탕집도 다 사라졌으니 어딘가 꽁꽁 숨어 잘 살고 있으면 좋으련만... 생태 지킴이 자원봉사자가 상주하고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또 어찌되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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