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투덜일기 2014. 1. 12. 00:30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은 뾰족한ㅅ자 모양으로 각도가 좀 묘한데다 언덕이고 또 꽤 좁기도 해서 모퉁이에 누군가 차를 세워놓으면 곧장 방향을 틀 수가 없어 다음 골목에서 차를 돌려서 들어와야한다. 낮엔 몰라도 밤늦게 귀가하면 어김없이 그래야하는데, 10시를 조금 넘긴 오늘도 그랬다. 경사 급한 다음번 골목길로 후진으로 들어가 방향을 바꾸려는 찰나 저 앞 커브 심한 언덕길에서 차 한대가 미친듯이 달려내려왔다. 속도방지턱을 그냥 내달려서 영화처럼 차가 붕 떴다가 앞 범퍼를 요란하게 바닥에 부딪힐 정도였고 그 여파로 옆에 세워둔 다른 차와도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내가 빨리 안비키면 금세 내차와 정면충돌이라도 할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차도 속도를 좀 늦추는 사이 으악 놀랐던 나는 얼른 후진으로 길을 터주고는 휴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내가 그 차 뒤로 방향을 틀려는 순간 곧이어 같은 방향에서 경찰차가 나타났고, 나는 또 다시 후다닥 후진으로 길을 터주었다. 음주단속을 피해 달아나는 차였나? 그렇다면 내가 도주로를 잠시나마 막아섰던 셈! 그런데, 그 운전자가 우리 동네를 잘 알지는 못하는 듯 ㅋㅋㅋ 하필이면 한쪽편에 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는 우리집 골목으로 들어갔고 (바보, 막다른 골목인데!) 속력을 내서 지나갈 순 절대 없는 좁은 골목인지라 도망치기를 제풀에 포기한 듯, 입구에서 조금 가다 멈추고 말았다. 조수석에 탔던 경찰이 뛰어내리자 50대쯤으로 보이는 아저씨 운전자도 차에서 내려 뭐라뭐라 변명을 했다. 음주운전단속을 피하려고 도망친 게 틀림없어보였다.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그 골목으로 들어가야한다는 표시로 깜박이를 켜보였더니만 두대 모두 후진으로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언덕을 내려갔다. 통행에 지장이 없는 큰길에 가서 나머지 절차를 밟으려는 듯... 

 

생각해보니 얼떨결에 나는 음주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낸 경미한 접촉사고까지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이 된 거였다! 뒤 따라 오던 경찰이 음주단속이야 했겠지만 그 문제의 차가 골목에 세워둔 차와 부딪힌 것까지 보지는 못했을 테니, 그 책임까지 물을 것 같지는 않고.... 누군지 모르지만 골목에 세워뒀다 괜히 차만 찌그러진 자동차 주인이 불쌍하다. 소리로 봐선 꽤 심하게 찌그러졌겠다 싶던데 흐이구... 혹시 내일아침 찌그러진 차를 발견한 동네 주민이 목격자를 찾는다는 쪽지나 플래카드(?)라도 붙여놓으면 나는 아는 척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면서 어쩐지 도시의 무용담 같아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 째뜬 오늘의 교훈은 음주운전은 절대로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것. 커브길 끝에 속도방지턱 없었으면 나랑 정면충돌했을지도 모르잖아! 어휴...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