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에 해당되는 글 64건

  1. 2010.06.30 파는 물건이 아니에요 14
  2. 2010.06.29 자기모순 19
  3. 2010.06.01 대물림 10
  4. 2010.05.16 세탁소 쌈닭 13
  5. 2010.04.09 씁쓸 7
  6. 2010.03.29 야로가 있다 10
  7. 2010.01.26 친절도 좋지만 23
  8. 2010.01.08 얼마나 갈까 4
  9. 2010.01.03 눈의 종류 8
  10. 2009.12.14 순무 13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어요.
그 다음엔 이메일 정보를 얻어내려는 일종의 인터넷 피싱일 거라고 짐작했구요.
그런데 비밀댓글을 두번이나 단 걸 보니, 정말로 진지하게 제 블로그를 돈주고 사겠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설마 제가 오해한 것은 아니겠지요?

두고두고 고민해서 나중에라도 블로그를 팔 생각이 들면 적정 판매가격을 알려달라고요?
오래 생각할 것도 없네요. 제 블로그는 파는 물건이 아니랍니다. 진심으로 제 블로그를 탐내셨다면 읽어봐서 아시겠지만, 이 공간엔 순전히 저의 사적인 생각과 푸념과 하소연과 추억이 담겨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과연 어떤 세속의 가치로 환산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쓰던 물건을 중고 시장에 내다파는 것도 아니고 어느덧 4년간 이끌어온 이 공간을 남에게 내준다는 걸 저는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혹시라도 심경의 변화라든지 어떤 문제가 생겨 블로그질을 작파하게 된다면 깨끗하게 폐쇄결정을 내릴망정 누구에겐가 넘겨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이런 "블로그 같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싶어서 혼자 블로그를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꾸미기도 힘들어 차라리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블로그를 운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요?
정말 그럴까요? 찝찝하지 않으시겠어요? 누군가 시간을 두고 차곡차곡 가꿔온 블로그를 이어받아 운영하면 처음 시작한 것보다 과연 더 잘 가꾸게 될까요? 남이 써놓은 일기장을 돈 주고 사다가 이름만 바꿔 적어 제출하곤 뿌듯해하는 격이 아닐까요? 하기야 요즘은 석박사 논문도 돈 주고 대필 시키는 이들도 많다니, 누군가는 허섭스레기 같은 글로 채워진 블로그쯤이야 하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이미 한 사람의 색깔로 채워진 블로그를 사고팔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저에겐 참 낯설고 놀랍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의 세계에서 블로그란 결코 파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사랑스러운 조카들의 사진까지 간간이 들어 있는 이 공간의 이야기가 누군가 '남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전 소름이 끼치네요. 뭘 그리 잘났다고 튕기느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제 뜻은 확실히 전달됐으리라고 믿습니다.

이메일로 답을 원하신 것도 같던데, 제 이메일 정보를 노출하고 싶지 않아서 여기에 이렇게 적습니다. 원하신다면 티스토리 초대장은 보내드릴 수 있겠지요.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하려면 끈기와 정성이 꽤 필요한 것도 같지만, 그냥 낙서장 삼아 끼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굳이 예쁘게 꾸미지 않아도 되잖아요? 어차피 여긴 그리 볼 거리도 별로 없고 더러 너무 길어 읽기 싫다는 불만까지 접수되는 길고 긴 잡담 뿐인걸요. 과연 자기 블로그를 팔겠다고 값을 제시하는 누군가가 또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왕이면 부디 스스로 가꿔보시길 빌게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블로그는 팔고 사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덕분에 돈 몇푼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 공간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으니 고맙단 말씀 전해야겠군요. 이 글을 쓰는 내내 흐흐흐 헛웃음이 몇번이나 새어나왔답니다. 블로그를 팔라니... ㅎㅎㅎ 의미없는 농담에 괜한 진지한 반응이라고 지금쯤 당신이 저를 비웃고 있더라도 어쨌든 전 잠시 황당하면서도 즐거웠어요. 블로그를 팔라니. ㅎㅎㅎ
Posted by 입때
,

자기모순

투덜일기 2010. 6. 29. 23:11

워낙 모순덩어리인 인간인지라, 이곳에 올리는 글도 그런 경향을 피할 수가 없다.
개 싫다면서 개 이야기 줄창 올리고
수다스러운 사람 싫다면서 본인은 긴수다가 끝날 줄을 모르고
요리블로그 아니라면서 걸핏하면 요리 이야기 써대고
월드컵 싫다면서 이젠 월드컵 얘기도 또 쓸 판이다.

하기야 월드컵에 완전히 귀를 닫고 살래도 그러기란 불가능하다. 사방에서 이야기하고, 인터넷 좀 하려면 화면에 절반 이상이 그 이야기이고, TV 채널을 돌리다가도 문득문득 아직은 월드컵 바람이 식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그래서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오늘이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전이 열리는 날이란다.

한국팀이 8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나는 막연히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일본이 남았으니 걔네라도 8강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번 월드컵은 워낙 대진운과 오심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고 있으니, 한국이 떨어지고 일본이 8강에 올라가도 한국팀의 전력이 일본팀보다 열등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안 나올 거란 단순한 생각을 품었던 거다. 실제 실력과 상관없이 일본은 늘 한국보다 피파 순위가 높기도 하지 않았나. 하긴 뭐 초반부터 우수수 떨어져나간 팀들을 보면 피파 순위는 개나 물어가라고 해야할 것 같기는 하더라마는.

어쨌거나 며칠 전 제삿날 모임에서 내가 이런 의견을 토로했더니 식구들이 다 펄쩍 뛰었다. 한국팀이 8강에 못 올라갔으니, 일본이 올라가는 '꼴'은 절대 못본다는 식이었다. 특별히 일본에 적대감정이 없는데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단다. 우루과이전에서 한국이 엄청 잘하고도 8강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에, 더더욱 일본이 운이 좋아 이기는 상황은 견딜 수가 없을 거라나. 

오늘 16강 전에서 일본팀을 응원하겠는가 말겠는가 묻는 기사도 얼핏 보이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을 품는 이가 나의 가족만은 아닌 듯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 심리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픈 것과 같은 원리 때문일까 아닐까. 같은 상황에서 일본이 아니라 중국팀이나 다른 아시아팀이 올라갔더라도 사람들은 역시나 '8강 진출은 한국 아니면 안 돼!'라고 생각했을까.

내 마음속도 잘 모르면서 남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보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니 결국 답은 미궁에 빠지고 말겠지만, 쓰잘데기 없는 곳에 호기심을 발휘하는 사람으로서 오늘의 경기 결과는 퍽이나 궁금할 것 같다. 일본은 과연 8강에 진출할것인지 아닌지. 그 결과에 따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지. 느긋하게 일이나 하면서 잠시 후 결과를 기다려봐야겠다. ^^;
Posted by 입때
,

대물림

하나마나 푸념 2010. 6. 1. 22:06
야구 팬들이 최근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고 물으면 대뜸 멍해져서 민망해하기만 했는데, 요샌 아예 얼굴에 철판을 깔고 대답한다. 나는 <천하무적 야구단> 팬이라고.
물론 프로야구 원년엔 워낙 박철순 선수 팬이라 무조건 OB베어스를 응원하는 듯도 했지만, 박철순 선수가 안던질 땐 또 다른 팀에도 눈을 돌렸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연고지로 따지면 MBC 청룡을 응원해야할 것도 같았고, 고질적인 지방색을 타파하자면 그냥 공평무사하게 약팀을 응원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처럼 이렇게 팀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는 야구팬보다는 죽으나사나 한팀만 결사적으로 응원하고 충성을 다 바치는 야구팬이 훨씬 더 많을 테고 그게 정상인 것도 같다.

나의 두 동생들만해도 그렇다. 한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큰동생은 LG트윈스, 막내동생은 두산베어스 팬인데 그 역사가 무려 프로야구 원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막내동생은 어린 시절 무척 구두쇠라 저금통을 웬만해선 깨지 않는 아이였는데,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현재 두산 베어스의 전신인 OB베어스에서 리틀야구단을 모집한다는 신문광고가 나자 식구들과 의논도 하질 않고 저금통을 깨 당시 초등학생에겐 상당한 거금 (아마도 5천원이었던듯;;)을 회비로 내고 가입을 했고, 팀로고가 찍힌 야구공과 유리컵, 미니어처 배트 받침대, 야구모자, 티셔츠 등을 받아와선 제일 먼저 두각을 나타내며 프로야구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큰동생이 MBC청룡의 팬이 된건 어쩌면 먼저 치고나간 막내에 대한 반발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녀석은 우리 고향이 서울이므로 당연히 청룡을 응원해야한다며 막내동생을 배신자 취급했었다.

만날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TV앞에 앉아 옥신각신해대는 두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면서, 은근이 우리가 팀 선택을 종용하면 늘 "나는 지는 팀 편이다"라고 하셨다.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항의를 하면, 사는 건 서울이지만 어렸을 땐 피난 내려와 부산에서 살았으니 굳이 고향을 따지면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해야하는데 이놈저놈 다 딱히 마음에 안든다는 걸 이유로 대셨다. 그게 서울 한귀퉁이에 살던 한 집안에서 프로야구 응원팀이 제각각 나뉘게 된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리고 두 동생은 각자 고집스레 지금까지 구단주가 바뀌는 역사를 거쳐서도 여전히 그 맥락을 잇고 있는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의 팬이다.

헌데 두 동생네 집은 현재 상황이 좀 다르다. 뱃속 태아 때부터 제 아빠가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을 자연스레 자기 팀으로 세뇌당한 조카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횟수가 몇번 안되긴 해도 각기 제 아빠와 LG와 두산 모자를 쓰고 경기장에 나가 응원막대기까지 휘둘러본 경험이 있는 조카들은 우습게도 어른인 두 동생이 LG와 두산을 응원하며 티격거리는 양상과 똑같이 자기네 팀이 더 멋지다고 서로에게 시비를 걸기도 한다. 심지어 나이차가 나는 걸 이용하여 자기네 편으로 오지 않으면 놀아주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모태두산팬인 지우에게 정민이가 "지우야, 너는 누나랑 같이 LG팬 할 거지? 응? 안 그럼 안놀아준다~!" 이런 식이다) 

막내동생은 회사에서 아마추어 야구단도 만들어 간간히 경기도 하는 눈치고 집앞에서 아들녀석과 캐치볼도 꽤나 열심히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준우네가 야구와 두산베어스에 대한 충성도와 애정이 깊다. 그렇기 때문에 큰 일이 없는 한 준우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두산베어스나 그 맥을 이어나갈 팀의 골수팬으로 남기 십상으로 보인다. 나의 의문은 여기서 생겨났다. 과연 준우는 커서도 두산베어스 팬이라는 자기 색깔과 취향에 대해 아무런 회의감도 들지 않을까?  나처럼 야구팬이랄수도 없는 뜨내기나 방관자는 몰라도,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는 특정 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열정이 없으면 수십년씩 변함없는 열성적인 팬으로 남기가 힘든 것 같다. 간혹 구단에 환멸을 느껴 응원하는 팀을 바꾸는 이들도 있다고는 들었지만, 내 두 동생들처럼 초등학생 시절부터 25년 넘게 충성을 바치던 팀을 버리고 다른 팀에 정을 들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정치문제를 두고서도 사람들의 태도는 프로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비슷한 것 같다. 나처럼 싫증 잘내고 의심 많고 귀찮은 거 싫어하고 싫은 것도 많은 인간은 정치쪽에도 만날 이랬다 저랬다 고민이 많다. 최선이라고 믿을 인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노상 좀 덜 나쁜 놈 중에 그나마도 좀 나은 놈을 뽑다보니 기준이 들쭉날쭉이다. 하지만 내가 죽기 전에 과연 타파될 날이 있을 것인지 의심스러운 고질적인 지방색은 종종 사람들을 여전히 나누고 수십년씩 한 가지 색깔을 신봉하게 만들기도 하며, 그 취향을 대물림한다. 어린 시절부터 부와 권력을 누려온 젊은 아이들은 그 당연한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인 선과 번영이라 굳게 믿고 체화하였으므로 대를 이어 그 누구보다 보수적이고 우익세력이 된다. 진보적인 사고를 지닌 부모 밑에서 어려서부터 촛불시위에 따라다녀 보았거나 주류 언론의 행간에 감추어진 진실을 간파하는 법을 배운 경험이 있는 아이들 역시 대를 이어 세상을 올바르게 보는 법을 체득한다. 

불행히도 이 사회는 개천에서 더는 용이 나지 못하고, 부유함이든 가난함이든 권력이든 차별이든 모두 대물림으로 세습되는 사회가 되어가는 듯하다. 선거 때마다 뭔가 좀 달라지기를 빌어보지만 통 달라지지 않는 판세를 보아도,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이 매번 권력자로 당선되는 걸 보아도, 자기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웃이 당장 맨몸으로 거리로 나앉든 말든 상관없이 외면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그 생각은 굳어진다. 그러니 변화의 희망을 품는 게 오히려 헛된 짓인지도 모르겠다. 다양성과 융통성이 꿈틀거리기엔 너무 견고하게 굳어진 집단 이기심 때문이다. <나만 잘살면 되고, 나만 성공하면 되고, 내 자식만 공부 잘하면 돼>라는.

선거를 하루 앞두고 후보자들의 홍보물을 죄다 정리해 폐지로 구겨 넣으며 또 한번 착찹한 마음이다. 과연 요번엔 어떤 이들이 어떤 선택을 받게될지. 요번에라도 부디 대물림한 구태를 뒤집어 엎는 선택들이 많이 나오면 참 좋겠다.
Posted by 입때
,

세탁소 쌈닭

투덜일기 2010. 5. 16. 14:55

이 동네로 이사온 뒤 20년 넘게 단골로 다니던 세탁소를 등지게 된 건 작년이었다. 원래 세탁소 주인 아저씨가 말이 워낙 많고 수다스러워서 나로선 상대하기 좀 짜증났지만 세탁이나 수선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끔 좁아터진 옷장 대신 철지난 옷을 대신 맡아주는 장기 보관소 역할도 오래 해왔고(봄에 겨울 옷 맡겨놓고 잊고 있다가 날씨 추워지면 찾아오는 식) 세탁물 다 되면 알아서 배달도 해주었으므로 작년의 사건만 아니었다면 단골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사건은 왕비마마의 바지 허리를 줄이는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재작년에 심하게 몸이 불어 바지를 새로 사야했던 왕비마마는 1년뒤 허리가 원래 사이즈로 되돌아오는 바람에 다시 바지를 줄여 입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나는 우선 왕비마마 바지 한벌을 세탁소에 맡기고는 허리를 1인치만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돈을 주고 찾아온 바지를 입어본 엄마는 바지를 덜 줄였나 아직도 허리가 크다고 불평을 했다. 잘 맞는 바지 허리폭과 맞춰보고 1인치 줄이기를 결정한 터라 그 바지에 대보니 정말로 그대로였다. 그럼 대체 어디를 줄이고 수선비를 받은 건가 살펴본 나는 기막히게도 바지 단을 1인치 잘라놓은 걸 발견했다.

나는 즉각 세탁소로 가서 바지 허리를 줄여달랬더니 왜 단을 잘랐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가뜩이나 말 많은 세탁소 아저씨는 펄쩍 뛰며 속사포처럼 내가 바지단 줄여달랬지 언제 허리 줄여달라고 했느냐며 나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웠다. 기.가.막.혀.서.원. 애당초 내가 엄마 바지를 내밀며 허리를 줄여달라고 했을 때, 그 수다쟁이 아저씨가 묵묵히 그러마고 일감을 받았을 리 만무했다. "바지 허리를 1인치나 줄이는 걸 보니 어머니가 살이 빠지셨나 보네. 운동이라도 하셨나 왜 살이 빠지셨을까, 하기야 저 아래 개천에 산책로 참 잘 만들어 놨죠? 나도 시간 나는대로 개천가서 운동하는데 왜 살이 안빠지나 몰라... 아가씨도 거기 가서 운동 좀 해요? 운동기구 잘 많들어 놨던데..... 어쩌고 저쩌고..." 그러면서 계속 말을 시키는 바람에 난 한참이나 귀를 닫고 있다가 마지막에 얼마인지 수선비만 묻고 돌아왔던 터였다.
그래놓고 내가 바지단을 줄여달라고 했다니! 내가 저런 이야기까지 하지 않았으냐며 정황을 설명해도 세탁소 아저씨는 막무가내로 내 잘못임을 주장했다.

다음날 득달같이 다시 수선한 엄마 바지를 배달온 아저씨는 자기는 절대로 잘못 듣지 않았으며 분명히 따님이 바지단을 줄여달라고 잘못 말을 했기 때문에 두번이나 수선을 했지만, 단골이고 하니까 수선비는 한번만 받겠다고 잔뜩 생색을 내며 거의 20분이나 떠들다가 돌아갔다고 했다. 마침 외출을 해 집에 없었던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따발총처럼 쏟아대는 아저씨의 수다와 주장에 엄마마저도 "혹시 니가 잘못 말했을 수도 있잖아..."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아무리 내 정신머리가 없을망정 허리 줄이러 가서 단을 줄여달라고 한단 말인가! 그럼 엄마 살빠졌나 보다는 얘기는 뭐고, 개천변에서 운동하는 얘기는 왜 나왔느냐고!

세탁물 맡기러 갈 때마다, 그리고 세탁물을 배달 올 때마다 뭐든 순순히 넘어가는 일 없이 시시콜콜 오만가지 이야기를 죄다 끌어붙여 수다를 떨어대며 내 시간을 축내온 S세탁소 아저씨에 대한 인내심은 그날로 끝장이었다. 자기가 실수를 했을 수도 있으니 어쨌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비쳤다면 나도 그냥 넘어갔겠지만, 그 아저씨는 자기 세탁인생 30년을 운운하며 그간 그런 터무니 없는 실수는 절대 한 적 없다고, 전적으로 내가 단을 줄여달라고 잘못 말했기 때문에 단을 줄인 것 뿐이라고 우기며, 나를 정신나간년으로 만드는데야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마침 작년에 원래 있던 S세탁소 건너편에 새로이 세탁소가 생겼던 터라 나로선 아쉬울 것도 전혀 없었다. 20년 단골 하나 잃어서 아쉬운 건 세탁소 아저씨 쪽일 거라 여기며(하기야 그쪽도 별로 아쉬울 게 없을 지도...) 보란 듯이 새 세탁소를 이용하고 있었다. 헌데 동네 세탁소는 세탁이 전문이고 원래 수선 쪽은 약하기 마련임을 감안하더라도 새로운 ㅎ세탁소는 수선솜씨가 너무 형편 없는 것이 문제였다. 단신의 비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바지를 살 때마다 수선해서 입어야 하는 것인데, 백화점 같은 데서야 옷을 산 데서 바로 수선을 해주니 문제 없지만 충동구매로 사들인 바지 같은 경우 이 세탁소에 맡기면 내 성에 안차게 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재봉선이 비뚤어진 것도 불만이지만 가장 큰 불만은 실 색깔! 수선도 하는 세탁소라면 최대한 다양한 재봉실을 갖춰놓아야 정석일 텐데 면바지든 청바지든 어쩜 그렇게 엉뚱한 색깔로 박아놓는지.. ㅠ.ㅠ

해서 요번에 산 청바지는 기필코 밑단의 예쁜 물빠짐 모양과 실색깔을 살려두겠다 다짐하며, 백화점 수선집에서 해주는 대로 밑단을 잘라 그대로 올려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해달라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며, 가능한지부터 물었다. 별 말이 없는 과묵한 스타일이라 그나마 시끄럽지 않아 좋았던 세탁소 아저씨는 "밑단을 살려달라는 거 아닙니까?"라고 되물으며 흔쾌히 대답하여, 나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런데 어제 청바지를 찾으러 가보니, 세상에나! 차라리 밑단을 그냥 잘라 접어 박은 거면 실 색깔이 달라도 투박하지나 않을 텐데, 이 아저씨는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건지 청바지 단에 억지로 바이어스를 두르듯 싸박아 놓은 게 아닌가. ㅠ.ㅠ 할 줄 모르면 모른다고나 하지!!!!

바지 완전히 버려놨다고 울상을 하며 경악하던 나는 집에 올라와서도 도저히 울화를 그냥 참을 수가 없어서 (아까운 내 청바지! 그게 얼마짜린데!) 다시 세탁소로 내려가 다른 수선집에 맡겨 살려보게 잘라버린 밑단이라도 내놓으라며, 화를 냈다. 청바지 잘라 밑단 올려붙이는 거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안다고 그랬느냐고. 그랬더니 이 아저씨 완전 적반하장, 자긴 아무 잘못이 없단다. 밑단 살려달래서 살려놨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게다가 잘라낸 청바지 밑단도 버리고 없단다. 어제는 토요일. 우리 동네 쓰레기 배출일은 화/목/일. 내가 그걸 놓칠 리 없으니 버렸을 리 없다고 따지자, 밑단 박음을 풀러서 그걸 잘라다가 씌워 박은 거라고 실토했다. 악! ㅠ.ㅠ

애당초 샘플 청바지를 가지고 내려가서 실제로 보여주며 설명을 했어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선하는 세탁소에서 어떻게 청바지 밑단 줄이는 방법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예전 세탁소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이 아저씨 역시 미안하단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전적으로 내 잘못(그렇게 잘났으면 옷 산데 가서 수선받지 왜 세탁소에 맡기느냐! 청바지 자르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다르다고 따지냐! 등등)이라며 계속 자기 잘못 없음을 주장하더니 막판엔 억울하면 손해배상청구라도 하란다. +_+ 기.가.막.혀.서.원.

결국 동네 세탁소 두 군데서 정신나간 쌈닭으로 활약하고 열만 받았다는 얘기다. 아주 못입게 된 건 아니지만 심혈을 기울여 오래 고른 청바지를 (포인트랑 쿠폰 쓰느라고 백화점에 가서 입어보고 스타일번호 적어다가 온라인으로 샀단 말이닷! ㅠㅠ) 망쳤다는 상심에 어젠 너무 열이 받아 아무 생각도 안들었는데, 오늘 생각해보니 궁금한 게 생겼다. 우리 동네 세탁소 아저씨들만 우연의 일치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세탁업 특성상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면 배상액이 커질 수 있어 전체적으로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업계의 관행일까? 흠... 아마도 내가 이래서 자꾸 수선집에 보낼 일을 손수 바느질하고 앉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번 일을 계기로 옷 수선은 내가 할 수 없는 건 반드시 전문 수선집에 맡길 작정이고, 세탁물은 길 건너편 옆동네 세탁소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이 동네 (거의) 토박이로서 동네 세탁소 두 아저씨들 실력없고 이상하다고 소문내고 다녀서 복수할 거닷!


Posted by 입때
,

씁쓸

책보따리 2010. 4. 9. 17:07

어제 간만에 멀리 사는 친구들을 만나느라 강남 교보엘 갔었다. 그곳이 나름 중간 지점이라서 거의 지정 모임장소처럼 되고보니, 그런 날엔 서점 볼일도 같이 챙기는 편이다. 찾아볼 책도 좀 뒤지고 요새 책시장은 어떤가도 좀 살펴보려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법정스님의 책들이었다. 책의 가치여부를 떠나서 명사의 죽음은 늘 (나쁘게 말해) 책 장사의 방편으로 이용되어 왔지만, 그야  무엇이든 떠나보내고 난 뒤에나 새삼 돌이켜보는 인간의 어리석은 경향을 반영한 상술이니 무조건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법정스님의 책들은 절판 유언 때문에 더욱 기이한 소유욕과 과열 시장을 만들어냈고 이래저래 계속 말이 많았고, 알게 모르게 그 여파가 나 같은 존재한테도 영향을 미치는 듯 해 씁쓸하다.

각 출판사에서 법정스님의 절판 유지를 받들어 올해까지만 책을 판매하기로 협의했다는 뉴스를 들었고, 올 연말까지면 출판사에서도 팔아먹을 만큼 팔아먹은 뒤고 건망증 심한 이 나라 독자들의 기이한 독서열풍 또는 소유열풍도 사라지겠군 싶었다. <무소유> 초판본이 중고책 시장에서 수십만원에 거래되는 지경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면서, 또 <단군이대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에 그나마도 책이 움직이는 빌미를 제공한 스님한테 책으로 밥빌어먹고 사는 사람들 모두 고마워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강남 교보에도 벽에 따로 마련된 베스트셀러 진열대에는 법정스님의 책이 몇권이나 꽂혀 있었으며, 친절하게도 스님의 책만 모아 여러 군데 자리잡고 있는 특별 책 판매대에는 <무소유>가 4월 몇일 이후에 입고될 예정이며 선주문을 받는다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출판사도 매우 다양했다.

어제 만난 친구 하나도 번역을 하고 있으니 수다 중에 당연히 출판계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법정스님의 책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 친구도 나도 작년말부터 나온다 나온다 말만 앞세운 번역서의 출간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이유가 법정 스님 책의 열풍 때문이라는데 동의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법정 관련 출판사들이 저마다 대량으로 책을 제작하고 있는 터라 상당히 많은 인쇄소며 제본소에 다른 신간이 끼어들 여유가 별로 없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불황이라 신간을 내도 팔릴지 말지 모르는 와중이니 일단 잘 팔릴 책, 50% 할인해서 물량공세로 밀어낼 책, 홈쇼핑에서 전집으로 판매대박을 낸 책들 먼저 인쇄에 돌입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러다가 결국 출판시장이 망하거나 말거나. -_-;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이런 저런 뒷말로 새삼 욕되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말빚>을 청산하고 싶다는 위대한 유지에 딴죽을 걸 입장도 아니지만, 삐딱한 심성으로 계속 지켜보자니 법정스님의 절판 유언은 결과적으로 한국 출판계 최대의 마케팅 전략으로 비쳐진다. 정말로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그간 출간한 책을 절판하여 말빚을 청산할 작심을 하고 계셨다면, 스님은 왜 입적 직전까지 새책의 서문을 구술해서라도 출간되도록 밀어주셨으며, 최측근 출판권력의 손에 모든 저작권과 사업 이권을 위탁하고 있었을까? 그러고선 대뜸 유언에는 절판하라 말씀하신 저의는 무엇일까?

스님의 유명세와 출판계의 욕심에 밀려 몇달간 골빠지게 작업한 책의 빛 볼 날이 자꾸만 미뤄지는 바람에 속좁게 구시렁거리고 있는 소인배의 푸념이라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 눈에도 분명 지금 돌아가고 있는 책세상 형국이 비정상이란 것만은 확실하니까. 어쨌거나 법정스님 책을 내는 유명 출판사들이 어서 올해 말까지 팔아먹을 책들을 창고에 그득그득 쌓아놓아, 이제 그만 충무로와 을지로에 있는 인쇄소와 제본소가 다른 책을 찍을 여유를 되찾길 빌 뿐이다. 작년에 내 이름을 달고 나올 예정이라던 몇권의 책들이 올해를 몇달이나 넘기고도 아직 코빼기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작업하고 있는 책들도 예년에 비해 원고 채근이 덜한 게 죄다 법정스님 책 때문이라는 건 순억지겠지만(대체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 사정이 좋아질 날은 있는 걸까?),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땅에 허리케인을 불러온다는 이론이 순 헛소리만은 아니라는 데 자꾸 심증이 간다. 나의 긴 한숨따위는 이런 좁은 공간에서 푸념으로 맴돌다 사라질 뿐이겠지만.
Posted by 입때
,

<야로가 있다>는 말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자주 쓰셨던 표현이다. 살림살이가 비교적 넉넉했던 이북 및 만주생활과 달리 남한에 내려와 정착해 살면서는 무엇 하나 당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던 삶 때문인지 할아버지는 특히 정치사회 문제에 의심이 많으셨고, 뉴스나 신문을 보시다간 종종 "이놈의 아새끼들 분명 야로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야로>라는 말의 어감상 나는 그게 일본말이라고 생각해왔다. 급히 찾으실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 입에서 흘러 나오는 아지노모도(조미료), 사리마다(팬티) 따위의 아류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커서 알고 보니 <야로>는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순우리말이었다. 뜻은 <남에게 드러내지 아니하고 우물쭈물하는 속셈이나 수작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고 <이번 일에는 무슨 야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식으로 쓰인다. 못마땅한 정국이나 공무원 비리 뉴스 같은 걸 보면서 "무슨 야로가 있다"고 지적하신 할아버지의 우리말 표현은 그야말로 정확했다는 의미다.

지난 금요일 밤 마치 금세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연이은 속보로 한반도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초계함 침몰 사건 보도를 지켜보며 내 입에서도 자꾸 그 말이 흘러나온다. "뭔가 분명 야로가 있다." 군사 정보에 완전 무지하고 해군 함정의 구조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 없지만,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군의 발표와 뉴스 내용은 의문 투성이다. 빤히 침몰한 배의 선체가 뒤집혀 물 위에 떠있는 걸 뉴스 화면에서 봤는데 어젠 그 반동강 조차 떠밀려가 가라앉은 위치 파악이 안 됐대고, 수많은 장병들이 갇혀 있을 선미는 사흘이 지난 오늘에야 겨우 찾아냈단다. 아무리 시계가 나쁘고 조류가 심한 곳이라지만 수심이 그리 깊지도 않은 연안에서 레이더로는 잔해의 위치 파악이 불가능하단 말인가? 요샌 고기잡이도 바닷속 물고기떼를 레이더로 탐지해서 잡던데? 망망대해에 뜬 조각배 하나도 위성과 레이더의 공조만 있으면 찾아내는 게 아니었나? 세떼는 레이더에 잡혀 무려 76mm 대포를 쏴댔다면서?

부디 배 안에 생존자가 있어 다들 무사히 구조되기를 빌고 또 빌지만, 희생자 가족이 아닌 나도 당국과 군의 뜨뜻미지근하고 수상쩍은 태도에 열통이 터지는 판국이니 당사자들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사고 원인 짐작조차 쉬쉬하는 분위기고, 초계함의 작전상 이동은 당연히 명령을 통한 것일 테니 애당초 왜 그렇게 연안 가까이에 접근했는지 이유가 있을 텐데 군사 기밀이라서 그런지, 명령체계의 오류나 작전실수라서 그런지 시원한 해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여권과 주류언론에선 지방선거 앞두고 이런 비극조차 이용하려고 자꾸 북한 개입설을 들먹여 불안감을 조성할 테지만, 진짜 불안한 건 터무니 없이 무너져버린 해상 방어능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도무지 신빙성이 가지 않는 군의 사건 개요 발표와 대처도 그렇고 뭔가 중요한 걸 감추느라 말 짜맞추기를 하는 것 같던 함장의 말을 보아도 확실해 보이는 건 현재 <뭔가 야로가 있다>는 심증뿐이다. 부디 실종자들의 극적인 생존 속보와 함께 차츰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속보 나오자 마자 지하벙커에 숨어 <국가 안보회의>를 소집한 뒤 "한점 의혹 없도록 진실 규명에 힘쓰라"고 지시했다는 '그분'의 말에 오히려 의혹의 무게가 실리는 걸 어쩔 수가 없다.
Posted by 입때
,

요즘 서비스업계 종사자의 우리말 파괴 실력이야 익히 알고는 있어 이젠 그러려니 하지만, 막상 겪으면 매번 어처구니가 없다. 좀 전에 정수기 때문에 AS 기사가 다녀갔는데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실소가 나올 만큼 극강의 높임말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었다. 

"냉수 조절 센서가 고장나 것 같아요."
"이게 바로 센서이데요, 부품이 없으서 오전에 못왔습니다."
"지금은 얼음이 다 녹으네요."
"다 되습니다."
그러더니 다 고치고 나서 집을 나서며 우리 모녀에게 한 마디 했다. "수고 많이 하십시오." -_-;

백화점 점원의 "15만원이십니다",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정도는 한방에 날려버리듯, 정수기 부품과 센서와 얼음까지 한껏 높여주더니만 우리더러 수고를 많이 하라니 뭐냐. 우습게도 AS 평가서를 바로 자기 눈앞에서 작성해달라고 내미는데, 천편일률적인 항목만 체크하도록 주르륵 적혀있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따로 쓰는 고객의 의견란이 있었더라면 우리말 존칭 교육부터 다시 시키라고 적고 싶었다. 멀끔히 생긴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아무데나 '시'자를 붙여대는지, 그게 친절이고 고객을 높이는 행동이라고 착각하는 이유가 뭔지 정말 궁금하고 짜증스럽다. 


Posted by 입때
,

얼마나 갈까

투덜일기 2010. 1. 8. 01:31
연말연시에 노느라 바쁘거나 날짜가 공교롭거나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계속 수업을 빼먹다 2주만에 요가학원엘 갔다가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_+ 내가 등록한 건 5시반 수업이지만 조카와 상의해 3시 수업을 들으러 갔었는데, 기막히게도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평소엔 최대인원의 절반도 안되는 열다섯 명 정도밖엔 수강생이 없는 시간이라는데.

날쌘 조카는 어느 틈에 요가 매트 하나를 차지했지만, 동작 굼뜬 고모는 어둑한 실내에서 어리바리 빈자리를 살피다 더 늦게 온 사람에게 마지막 남은 자리를 빼앗기고는 망연자실 밖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다른 강사가 여분 매트를 들고 가까스로 없던 자리를 하나 만들어주어 뻘쭘하게 더욱 뻣뻣해진 몸으로 대충 수업을 따라하긴 했지만, 색깔마저 다른 요가매트 때문에 더욱 수업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어제 그런 민망함을 겪었기에 금요일 수업대신 오늘 가기로 한 수업은 부러 5시반에 맞춰 갔는데도 역시나 빈자리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수강생들의 면면을 보니 처음 온 사람들이 많았다. 뒤이은 수업에는 더더욱 바글바글 자리다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제야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 새해로구나. 신년맞이 결심으로 요가학원을 찾은 사람들에겐 요번주가 첫주로구나. 

매 수강시간에 정해진 인원을 초과하는 사람을 등록시키진 않았을 테고, 폭설과 강추위에 며칠 빠진 수업까지 악착같이 보강하겠다는 새해결심성 열성요인이 작용한 게 분명했다. 지난달까지는 하나같이 날씬하고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몸매의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어서 최강뻣뻣 사십대인 나로선 민망하기 그지없었는데, 어제 오늘 이틀 수업을 받으며 살피니 나보다 더 비틀거리는 사람들도 눈에 띄고 확실히 다이어트 목적으로 요가원을 찾았음직 해 보이는 푸근한 몸매의 여인들도 드디어 나타났다. ㅎㅎ

너무 사람이 많아져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기도 힘겨워진 요가원을 나서며 문득 궁금해졌다. 새해결심으로 요가수련을 찾은 사람들의 열의는 과연 얼마나 갈까. 정말로 작심삼일로 끝이 날까, 아니면 최소한 한 달은 이어질까. 다음주에도 혹한이라는데 매서운 추위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면욕망을 일으켜 무기력감을 선사할 것인지 못내 궁금해서라도 난 한동안 꽤 열심히 요가원엘 다닐 것 같다. 물론 가장 큰 나의 동력은 고모 못가는 날엔 혼자서라도 버스 타고 신촌까지 납시어 요가수련에 힘쓰고 있는 공주님이지만...
Posted by 입때
,

눈의 종류

놀잇감 2010. 1. 3. 02:33

이번 겨울 전체 예보에 눈이 많이 내린다고 했던가? 절대 기억할 수 없어 민망하지만 어쨌든 새해들어 또 눈이 내렸다. 이번엔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 파르르 부서지는 눈은 아니다. 에스키모들에겐 눈의 이름이 수십 가지라던가 수백 가지(설마 수백 가지는 아니겠지? +_+) 나 된다고 들었는데 우리말엔 함박눈, 싸락눈, 진눈깨비, 세 종류 뿐인가 싶어 찾아보니 아니란다.
<눈의 종류>로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많은 표현이 있었다.

가랑눈 · 가루눈 · 길눈 · 도둑눈 · 마른눈 · 만년눈 · 밤눈 · 복눈 · 봄눈 · 소나기눈 ·
솜눈 · 숫눈 · 싸라기눈 · 자국눈 · 진눈 · 진눈깨비 · 찬눈 · 첫눈 · 함박눈


사실 내가 흔히 썼던 <싸락눈>이 표준말인지도 그간 자신이 없었다. 며칠 전, 얼마 안 쌓인 눈길을 달려 밥먹으러 가면서 마침 다들 출판계에 종사하는 친구들이라 싸락눈의 맞춤법을 물었더니 놀랍게도 다들 갸우뚱했다. 함박눈은 확실히 알겠는데, 알알이 부서지는 그 가느다란 눈에 대한 이름이 무엇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싸락눈? 싸라기눈?  싸래기눈? 싸리눈?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표준어는 싸라기눈이고, 싸락눈도 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니 역시 표준말인 셈이다.
싸라기눈: 빗방울이 갑자기 찬 바람을 만나 얼어 떨어지는 쌀알 같은 눈
싸락눈: 싸라기눈의 준말.                                     [출처: 국립국어원]
 
그런데 왜 이렇게 낯설은 건지 원. 싸락눈. 싸라기눈. 둘 다 사투리같다. 크크.

게다가 내가 싸락눈이라고 우겼던 지난주초 폭설 때 눈은 쌀알처럼 뭉쳐지지도 않고 아예 파르르 부서지는 눈이었으니 <가루눈>이라고 했어야 옳다. 가랑비가 있듯이 가랑눈도 있고, 마른눈이 있으면 진눈도 있다는 게 재밌다. 눈만 오면 눈사람을 만들러 뛰쳐나갔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니 확실히 함박눈이라고 다 진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솜덩이 찢어 던지듯 펑펑 내렸어도 잘 뭉쳐지는 습기 많은 눈이 있었는가 하면, 싸락눈 못지않게 잘 안뭉쳐지던 마른 함박눈도 분명 있었던 게 기억난다.

올 겨울에 얼마나 더 눈이 내릴지는 모르겠는데, 새삼 눈의 종류를 찾아보았으니 이젠 눈 내릴때마다 어떤 눈인지 굳이 밖에 나가 확인하는 거나 아닌지. 마침 조카들이 놀러오는 날 또 함박눈이 온다면 나도 눈사람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이웃들은 매일 동숲에서 눈사람 마에스트로가 되기 위해 눈덩이를 굴린다는데, 나는 현실에서라도... ^^*
Posted by 입때
,

순무

투덜일기 2009. 12. 14. 15:17
강화도에 간다고 하니 왕비마마는 올 때 "순무나 사와라, 심심할 때 깎아먹게."라고 말했다.
아는 사람은 잘 알지만, 왕비마마는 <언제나> 심심하다. 온종일 TV를 동무삼으면서도 심심하다고 간간이 일하는 딸을 귀찮게 굴어 타박을 받을 정도니 나도 할 말이 없다.
심심하다는 핑계로 괜히 찾아다니는 간식만 안먹어도 체중 줄이기에 성공할 수 있을 텐데, 식탐도 강하고 과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분이라, 그나마 열량이 적은 순무나 무, 콜라비 따위를 군입거리로 삼겠다 할 땐 반가워해야 한다.

오래 전 가족끼리 강화도에 놀러갔을 때도 순무를 사왔는데 만원에 한 보따리였던 것 같다. 이번에도 가격을 물으니 알이 작은 건 6개 5천원, 큰 건 5개 5천원이라고 했다. 동생네가 와 있단 얘기를 안들었으면 5천원어치만 샀겠지만, 공주네 식구도 다이어트 때문인지 날로 깎아먹는 무를 좋아하는 편이라 큰놈으로 만원어치를 달라고 했는데, 알이 굵어선지 꽤 무거웠다. 며칠이든 당일치기든 어딜 다녀오면 그 지방의 특산물을 뇌물로 바치지 않으면 삐치는 집구석은 우리밖에 없나보다. ㅋㅋ 
어쨌거나 아줌마는 분명 순무 잎을 잘라 비닐에 담으며 "하나 더 주겠다"고 한 것 같은데 집에 와보니 달랑 열개 뿐이다. 내가 전날의 과음으로 여전히 숙취에 시달리고 있기는 했지만 잘못 들었을 리는 없는데...
나는 치밀하질 못해서 물건을 살 때 장사치의 셈에 그냥 맡기는 편이다. 과일을 살 때도 굳이 같이 세지 않는다. 내가 특히 셈에 약하기도 하고, 알아서 담겠지 싶어서... 그래서 실수인지 속임수인지 모르지만 가끔은 손해를 보기도 한다. 확인 안한 내 잘못이 크지만, 그래도 과일의 갯수가 모자란다든지 슬그머니 못생기고 상처 난 과일을 집어넣은 걸 발견해 장사치의 얕은 속임수임을 실감할 땐 잠깐이지만 인간이 싫어진다. 

순무의 경우는 어차피 10개가 만원어치이므로 내가 손해본 건 없다. 내가 덤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한 개 더 주겠다고 해놓고 10개만 넣은 건 아무래도 실수인 것 같지만 그래도 뜨내기 장사라고 나를 허투루 대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는 않다. 어제 내가 오자마자 왕비마마는 큼지막한 순무를 한 덩어리 잡아 조카와 함께 뚝딱 해치우셨다. 그래도 여전히 열개나 있으니 동생네와 반반씩 나눠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순무가 9개 뿐이라는 사실에서 그만 나는 잠깐 와락 짜증이 났다. "그 아줌마 뭐냐!" 나의 분노를 식탐과 순무 욕심으로 받아들였는지, 동생네는 달랑 순무를 2개만 얻어갔다. ㅋㅋ

오늘도 심심해진 왕비마마가 깎아준 순무의 맛은 그저 그렇다. 날 무보다 좀 단단하고 부위에 따라 단맛이 좀 더 많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무의 매운 맛과 비슷하게 알싸한 맛으로 씹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내겐 지금 순무의 맛이 중요하지 않다. 순무 장수 아줌마가 10개를 11개로 잘못 센 것인지, 덤을 하나 주겠다고 한 말을 그새 까먹은 것인지, 덤을 주는 척 괜히 생색만 내는 게 그곳 마케팅의 수법인지, 아니면 내가 헛것을 들은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남은 순무가 다 없어질 때까지 나의 의문은 반복될 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