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30권에 혹해 결국 읽지도 못한 책들을 두번에 걸쳐 나눠 반납하고도 몇권은 일주일 대출연기를 했지만, 또 다시 금세 돌아온 반납일. 책 한권은 연체까지 됐다고(분명 다 같이 대출연기했는데 왜 한권은 안됐는지 그것도 미스터리;;;) 자꾸만 문자가 날아오는 바람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오늘 다시 도서관엘 올라갔다. 마침 프린트할 것도 있고 해서... (고장난 프린터 내다버리고 스캐너만 놓고 살다보니 드물게 인쇄할 게 있으면 예전엔 집근처 pc방엘 갔었다. A4 1장당 100원 이었나 200원의 거금을 내야한다는 것이 함정. 게다가 컬러 프린트는 무려 장당 1-2천원! 사진 같은 건 2천원이고 일반문서는 천원. 그러다 도서관엘 가면 흑백문서를 장당 50원에 인쇄할 수 있단 걸 알고 애용중. 컬러프린트도 장당 700원. 비교적 저렴하다)

 

암튼... 책을 반납하면서, 연체료 2200원을 낸 뒤 대출정지를 풀어 아직 미련이 남은 책 세 권은 도로 빌려왔다. 이번엔 과연 다 읽을 수 있으려나. ㅠ.ㅠ 그러고는 예약해둔 시간에 맞춰 디지털자료실에 내려가 먼저 usb에 담아간 사진 파일 컬러프린트를 직원에게 부탁했다. .  

바로 이 그림... ^^;

1868년 신정왕후(고종을 양자로 들여 왕위에 오르게 한 인물)의 회갑연을 묘사한 <무진년 강녕전내진찬도>라는 병풍 그림이다. 좀 흐리기는 하지만 궁궐안내할 때 써먹을까 싶었던 것...

 

구겨질까, 혹시 비에 젖을까 일부러 가져간 투명비닐파일에 인쇄한 걸 고이 담아 프린터 옆 테이블에 두고, 예약해둔 컴퓨터에 앉아 다른 문서를 출력했다. 5분도 채 안된 시간...

 

출력한 문서를 같이 담으려고 프린터 옆 테이블을 쳐다보니, 그림이 없다. ㅠ.ㅠ

인쇄비 700원과 비닐파일값 아까운 것보다도 너무 황당하잖아!! 아니 왜 도서관에서 남의 물건을 집어가나?? 내용물보다도 비닐파일이 탐났을까? 천원이면 사는 흔한 건데!

 

기가 막혀서 도서관 직원에게 방금 인쇄한 컬러그림 잃어버렸다고 하니깐, 그분은 괜히 한바퀴 디지털자료실을 돌며 컴퓨터질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도둑놈이 아직 거기 앉아 있을 리가 없잖아...  쳇...

 

째뜬 내 불찰이니 다시 인쇄를 부탁했는데, 나이 지긋한 직원 아저씨께서 두번째 인쇄비 700원은 안받고 그냥 해주셨다. ㅎㅎ 다른 데도 아니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과 도둑질은 어쩐지 전혀 안어울릴 것 같지만, 참 알 수 없는 게 사람 심리인듯.

 

문득 10여년 전 Y대 도서관에서 엎어져 자다가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렸던 때가 생각났다. 시험기간이라 누가 자리 좀 맡아달라고 해서 바로 옆자리에 책가방을 두고는 엎드려 깜박 졸았는데 어느틈엔가 사라져 버렸었다. 돈과 신용카드, 신분증이 든 지갑도 문제였지만 가방에 든 열쇠고리엔 집열쇠와 자동차열쇠가 같이 매달려 있었다. (여벌의 자동차 열쇠가 하나 집에 있긴 하지만, 자동잠금장치 없이 그냥 열쇠로 돌려 열면 요란하게 알람 울리고 난리가 난다. 물론 당시엔 그것도 모르고, 머리가 하얘졌다. 뾱뾱이 없이 자동차를 어떻게 열 거냐고! 어쨌거나 돈 꿔서 택시타고 집에 가 그 여벌 열쇠라도 가져와야 하나?)

 

말 그대로 '멘붕'이 되어 망연자실했던 나는, 가방 훔쳐가는 것도 모르고 엎어져 잠든 걸 자책할 새도 없이 열람실 문에 도둑에게 보내는 메모를 써붙였다. ^^; 지갑은 됐으니 열쇠만이라도 돌려달라고. 그러고는 도서관 건물 화장실을 꼭대기층부터 다 뒤졌다. 도둑들이 가방이나 지갑 훔쳐서 귀중품 빼고나면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경비 아저씨의 조언을 참고했던 거다. 징징 울지도 못하고 기가 막혀 도서관을 배회하는데... 띵동~ 문자 메시지가 왔다. 4층(5층이던가;; 암튼;;)  열람실 맨 안쪽에 가방 두었으니 가져가라고... ㅠ.ㅠ  도둑은 여전히 도서관 건물에서 활동하며, 내가 써붙인 읍소의 메모를 읽고 답장까지 보내준 거다. 정말로 그곳에 가보니, 나의 누런색 '루카스' 천 배낭이 떡하니...

 

집열쇠, 자동차 열쇠는 물론이고, 돈만 쏙 빼간 지갑도 고스란히 가방에 들어 있었다. 의외였던 건 '여행용 휴지'가 없어진 것. ㅋㅋㅋ 도둑이 감기라도 걸렸었던 걸까. 암튼 난 가방과 지갑과 열쇠까지 되찾았으니, 참 친절한 도둑도 다 있다고 막 감탄을 했던 것 같다. 혹시 학생 아냐? 주변에선 날아온 문자 번호 신고하라고 난리였지만, 바보가 아닌 한 자기 번호로 문자를 보냈을 리가 있겠나? (요새도 되는지 모르지만 그땐 휴대폰에서 문자 보내는 사람 전화번호 조작이 가능했다;;)

 

대학 도서관에는 늘 상습적인 도둑들이 상주하고 있어서 가끔 뉴스에 체포 소식이 들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동네 도서관에선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규~~!! 난 동네 도서관에서도 가끔 가방 자리에 놓고 잠깐씩 데스크 직원한테 뭐 물어보러 가고 그러는데...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굳게 결심했다.

 

그나저나 A4용지 그림 달랑 한장 든 비닐 파일을 가져간 도둑은 대체 왜 그랬을지 몹시 궁금타. 귀중품도 아닌데.... 혹시 우산이 없어서 머리 가리고 뛰어갈라고 그랬으려나? 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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