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해당되는 글 39건

  1. 2008.09.29 스카프의 계절 15
  2. 2008.08.08 덥다덥다덥다 6
  3. 2007.11.21 두 번째 눈
  4. 2007.10.20 춥다 7
  5. 2007.10.16 홍옥 예찬 18
  6. 2007.10.16 감기 12
  7. 2007.09.01 9월이다 15
  8. 2006.11.28 떠나는 가을 2
  9. 2006.11.16 오메 단풍들었네 1

스카프의 계절

놀잇감 2008. 9. 29. 16:44

언제부턴가 스카프만 보면 광분하는 경향이 생겼다.
비교적 어린 주변 지인들이 스카프 매는 걸 껄끄러워하는 걸 보며 곰곰이 따져보니, 나도 20대 초반엔 스카프를 꽤나 거추장스러워했고 노회함의 상징이라 여겼던 것도 같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거추장스럽더라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선물로 받거나 어디서 생겨 매고다니던 스카프의 매끄러운 실크의 감촉은 좋아도 훌러덩 미끄러져 빠져버리거나 흘리는 일도 잦았기 때문에 찬찬하지 못한 나로선 간수가 그리 쉽질 않았다. 그래서 날씨가 아주 쌀쌀해지면 얼른 모직이나 털 목도리로 바꿔 매곤 했다.
그러다 아주 마음에 드는 스카프를 내 손으로 구입하기도 하고 즐겨 매고 다니는 일이 시작된 건 20대중후반부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직 '애기'나 다름없는 스물여섯, 스물일곱 살의 나는 후반부 직장생활에서 늘 최고참 여직원이었다. -_-;; 업계를 잘못 선택한 내 탓이 컸지만, 어쨌든 그 당시의 나는 최대한 위엄있게 보일 필요가 많았고 회사에선 유니폼을 입어야하는 데도 거의 정장을 입고 출퇴근을 했다.
여성의류를 다루던 첫 회사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옷차림이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준다> 따위의 원칙에 너무 세뇌당했던 탓에 청바지에 티쪼가리 같은 걸 입고선 도저히 출근을 할 수가 없었다. 완전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지만, 암튼 그땐 그랬다. ^^
그리고 그때 멋스러운 스카프 한 장을 목에 두르면 (짧은 목을 남들이 답답하게 여기거나 말거나;;) 내 나름대로는 노회한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여겼다). 

암튼 예나 지금이나 단조롭거나 실증난 옷차림이라도 스카프 하나만 잘 골라 매주면 그럭저럭 신선함을 느낄 수도 있음은 물론이고 보온효과도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목을 감싸주면 체감온도가 5도쯤이나 올라간다는 말을 최근 몇년 꾸준히 들어온 듯한데, 이미 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그 진리를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요즘엔 한 여름에도 깊이 파인 목선에 가늘게 스카프를 둘러메는 인간들이 있을 만큼 스카프가 유행이라 번쩍이는 실크 이외에도 다양한 질감과 색감의 스카프가 선을 보이고 있으니 나로선 반갑기 그지없다.

물론 난 그렇게 유난을 떨 정도로 목이 길거나 우아하지도 않고;;;
참을성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여름 지나고 찬바람 불기 시작해서 한 겨울, 그리고 봄까지는 멋스럽기도 하고 보온성 또한 뛰어난 스카프를 애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삶을 단출하게 꾸려야 한다고, 쓸모없는 과잉의 욕심을 버려야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좋아하는 물건에 대한 애착은 쉬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해마다 고민고민하다 정리해 버리기도 하지만 옷장엔 여전히 20년 가까이 된 스카프부터 최근에 사들이거나 선물 받은 스카프까지 빼곡하게 매달려 서로 매달라고 나를 유혹하고 있는데(왜 스카프는 해지지 않는 거냐!), 가을이 되면 나는 마치 나쁜 습관을 완전히 끊지 못한 중독자처럼 스카프에 탐닉한다. +_+

몇년 전 늦가을엔 한꺼번에 스카프를 세 장이나 사놓고는, 미쳤어 미쳤어 라고 중얼거리면서 한편으로 풍성해진 스카프 옷걸이를 보며 기뻐한 뒤 스카프 욕심 좀 그만 부리자고 다짐했고, 정 사고픈 스카프가 있으면 내가 사는 대신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누렸었다.
그러나 그 의지력의 약기운이 떨어졌는지, 올해도 지인의 생일선물을 스카프로 고르다가 급기야... 내 스카프도 사고 말았다. 그것도 두장이나. ㅎㅎ

그리고 그 스카프가 조금 전 택배로 배달되었다!
당장이라도 스카프를 두르고 나가 걸으며 바람에 펄럭이는 스카프 자락의 미묘한 흔들림을 만끽하고 싶지만 어느것부터 매고 싶은지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할 수가 없다.
내일 약속 때까지는 정해야 할 턴데... ^_______________^

끝없는 나의 스카프 욕심에 핀잔을 주는 엄마한테 들킬까봐 얼른 별것 아니라고 얼버부리면서 꽤나 찔리긴 했지만, 까짓것, 수십만원짜리 사치품도 아니니 이정도 소박한 기쁨을 누리는 건 허락될 수 있다고 믿을란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가 속상해서 바야흐로 스카프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사실로 위로 좀 받겠다는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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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덥다덥다

투덜일기 2008. 8. 8. 23:48
입추가 말복 이전이라는 건 아무래도 사기다.
말복더위 하느라고 그러는지 수은주가 최고로 올라갔다지.
아침부터 종일 에어컨을 끼고 살기는 했지만 밤엔 전기세도 무섭고 환경오염 문제도 좀 찔려서 선풍기로만 버티려니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얼음물을 연거퍼 마셔도, 몸을 적시고 나와도 그 순간뿐, 지친 선풍기에선 정말로 뜨거운 바람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 뜨거운 더위에 또 거기다 올림픽이라나.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대규모 스포츠행사는 어쩐지 배알이 틀리고 마뜩찮다.
올림픽의 아마추어리즘은 이미 사라진지도 오래 아닌가.
언젠가 우리나라 선수가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놓치고는 어찌나 화를 내는지 우승을 거둔 상대방과 악수도 나누지 않는 장면을 보고 올림픽의 금메달에 더더욱 환멸을 느낀 적이 있었다.
1등이 아니면 본인도 주변에서도 인정을 못하고 화를 내는 분위기, 정말 싫다.
은메달도, 동메달도 아니 국가대표 선수로 뽑힌 것도 대단한 일 아닌가.
차등이 심한 포상금 문제도 있기는 하겠지만, 이럴 때 너도나도 애국자인 체하고 금금금메달에 미치는 꼬락서니를 나는 좀 멀리하고 싶다.

다만 박태환 선수가 이번에 세계신기록을 세울 것인지,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우승을 할 지, 그 부분엔 나도 관심이 있다. 귀여운 마린보이가 나올 때는 예선전부터 찾아봐줄 생각. ^^

째뜬 이건 너무 덥다.
이런 더위에 철야작업은 말도 안되는 짓거리라고 생각도 하기 전에 이미 뇌가 흐물흐물 상해버린 것 같다.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니, 에너지 절약이니 다 쉰소리라 생각하고 다시 에어컨을 켤까말까 계속 소심하게 리모컨만 쥐었다놨다 하고 있다.
어제 오늘, 올 여름 더위가 정말이지 견디기 어렵다고 느꼈다. +_+
가을 빨리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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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눈

삶꾸러미 2007. 11. 21. 23:09
첫눈에 이어 그 다음날에도 또 눈이 오다니
올해는 눈이 흔하려는 징조인가?

동네마다 휘리릭 날리다 마는 것으로 그치는 예년의 첫눈과 달리
올 첫눈은 그래도 눈발이 꽤나 굵었다.
눈이 올 가능성을 알리는 기상예보엔 둔감했었는데, 첫눈 온다고 창밖을 내다보라는
정민공주의 전화를 받고서 후다닥 밖을 내다보니 옛날과는 달라도 조금은 가슴이 설렜다.
첫눈 온다고 호들갑 떠는 메시지를 몇개나 날렸을 정도로... ^^
물론 곧이어 내린 비에 첫눈의 흔적은 죄다 씻겨 내려갔지만
두 번째 눈은 오늘 오후까지 응달에 쌓여있을 정도니 꽤나 내린 모양이다.

그런데 첫눈과 두 번째 눈에 대한 대우는 사뭇 다르다.
첫눈이 다 녹아 흔적도 없는 건 그리도 아쉽더니만
두 번째 눈이 고스란히 쌓여 하얗게 뒤덮인 차를 보니 제일 먼저 눈 치우는 게  귀찮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인간이 참 어찌나 간사스러운지...

드륵드륵 앞창과 뒷창의 눈만 간신히 긁어낸 뒤 짧은 외출을 하며
그리 춥지도 않은데 히터를 세게 틀고 툴툴거렸다.
작년엔 그래도 12월 들어서 공식 겨울을 인정했는데
올해는 12월을 열흘이나 앞두고서 겨울을 받아들여야하는 것인가, 하는 쓰잘데기 없는 푸념과 함께.

그나마 한 데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제라늄이랑 화분 몇개는 며칠 전에 뒷베란다로 들여놓아 다행이다.
지들이 안 얼어죽으면 내년에 다시 살아나든지 하겠지.

어쨌거나 세번째 눈이 내리는 날엔
찻집에서 마음 편한 지인들과 수다라도 떨 수 있으면 좋겠다.
주책없이 너무 늦게 내리거나 너무 일찍 내리지 말고, 웬만하면 시간 맞춰서 눈이 오면 좋을텐데
하늘한테 너무 욕심 부리면 안되는 건가?

겨울이 온 건지 어쩐 건지는 몰라도
암튼 나의 가을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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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투덜일기 2007. 10. 20. 19:03

이건 반칙이다.
가을이 온 것도 겨우 인정하려는 판국에 날씨가 이게 뭐냐.
오늘은 집에 있는데도 발목이 시려워서(양말도 신었다) 드디어 칠부바지도 포기하고 아예 긴바지 '츄리닝'으로 홈패션을 바꿔야 하나보다고 고민했다.
웃도리는 물론 반팔 티셔츠에 긴팔 덧옷을 껴입었다.

며칠 전 설악산에 첫눈이 내렸다는 뉴스에 더럭 겁을 집어먹었더랬는데
이번엔 아예 첫 얼음이 얼었단다.
일기예보를 백퍼센트 믿을 건 아니지만 중부권도 체감온도가 영하로 내려간다는 말에
위축되어 오늘은 집밖으로 한발짝도 안 나갔다.
작년이었나.
공식적인 겨울을 인정하던 날을 애도하느라 온종일 이불속에서 동면모드로 지냈다는 푸념을
어디엔가 적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으스스 추워지면 늘 나의 시선은 남반구로 향한다.
이 나라가 얼어붙는 겨울 석달동안 따뜻한(?) 여름 나라에서 지내다 오는 것은 언제나 나의 아련한 소망이다.
석달 동안 동면하고픈 충동을 억지로 삼켜야하는 것도 서럽고 억울한데
10월부터 이리 추우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솜을 넣고 누빈 늦가을용 솜저고리(그래도 파카는 아니다)를 옷장에서 꺼내 이것 저것 입어보며
오후 내내 우울했다.
콜록콜록 밭은 기침은 아직도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는데 이런 날씨엔 겨울까지 줄곧 나랑 친구하겠다고
아예 눌러앉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겨울 아침, 뒤뚱뒤뚱 온몸이 둔할 정도로 옷을 입고 모자와 장갑 목도리까지 두르고도
드러난 얼굴이 추워서 학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다 책가방을 맨 채로 회초리를 맞았던 9살짜리 아이는
교복 아래 늘 체육복 바지를 껴입고도 무릎에 친구 체육복 웃도리를 하나 더 덮고 지냈던 여고생으로
자랐다가, 어느새 10월에도 춥다고 징징대는 중늙은이로 변해 있다.
겉모습은 변했어도 철없는 알맹이는 그대로란 얘기렸다.

아무튼 벌써 추워지니 월동대책 전혀 못 세운 서민 답게 마냥 암울하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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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 예찬

추억주머니 2007. 10. 16. 21:05

홍옥에 관해 비슷한 글을 이미 쓴 것 같아 찾아보니 벌써 2년 전이었다.
다시 봐도 감흥이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아
퍼다가 조금 다듬어본다.

내가 어렸을 땐 사과 종류가 홍옥과 국광(어린 친구들 이런 사과가 있었다는 거나 알려나?)만 있는 줄 알았다.
제사나 차례상에 오르는 사과는 그냥 내게 "맛없는 사과"일 뿐이었고 그 이름이 '부사'라는 건 아마 나중에 알았던 듯하다.

홍옥은 새빨갛고 윤기 나는 얇은 껍질이 특색이고 새콤달콤한 맛이었던 반면
국광은 알도 작고 볼품이 없을 뿐더러 육질이 좀 단단하고 단맛이 많았는데
둘 다 가격은 저렴해서 우리는 가을 무렵 얼기설기 나무로 엮어놓은 상자에 담겨, 쌀겨에 파묻힌 홍옥이나 국광 사과를 한 '궤짝'씩 집에 들여놓고 오래도록 먹곤 했다.
홍옥은 금세 시장에서 사라지는 데 반해, 국광은 좌판에서 한겨울에도 구경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후지, 또는 부사로 불리던 사과도 지천으로 깔려 있었지만 달기만 하고 푸석푸석한 사과의 맛을
나는 좀체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암튼 내가 그리도 좋아했던 홍옥이 단맛 위주의 사과 종류에 밀려 사라진 것이 10년도 더 넘은 듯했다.
더불어 저렴하지만 때깔도 떨어지고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국광' 사과도 찾아볼 길 없었다.
해서 그나마 초가을에 나오는 초록색 풋사과로 새콤달콤한 홍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했는데...
몇년 전부터 드디어 홍옥이 과일가게에 다시 출현한 것이다!

모름지기 홍옥은 빤질빤질 매끄러운 빨간 껍질을 눈으로 음미하다
통째로 한손에 쥐고 와삭... 깨물어 먹는 것이 제맛이다.
그러면 새콤달콤 싱그러운 과즙이 입 한 가득 돌면서 행복함이 밀려든다.

고등학교 때였나...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도시락을 두개씩 싸가지고 다니던 시절,
가을부터 겨울까지
울 엄마는 도시락 두개와 함께 꼭 홍옥 사과 두 개를 함께 싸주셨더랬다. 디저트로 먹으라고..
그러면 손 힘 좋은 단짝 친구한테 반으로 쪼개달라고 부탁해서
반쪽씩 손에 들고 서로 바라보며 와그작 와그작 깨물어 먹던 재미와 맛도 일품이었다.

그렇게 맛있는 홍옥을 통 만나볼 수가 없었기에 안타까워하고만 있었는데
이태 전 과일가게에서.. 수많은 종류의 사과 이름 속에서 '홍옥'이란 글씨를 보고 긴가민가.. 의심 많은 인간 답게 설마... 했었다. '홍옥'의 짝퉁임이 분명한 '홍로'를 좀 더 익혀놓고 사기 치는 게 아닌가 했던 것.
그러나 "속는 셈 치고" 한번 사와 먹어보니
역시나 새콤달콤 감동의 맛이었다.
나처럼 그간 홍옥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람들이 꽤 많았던지
행복하게도 해마다 요맘때면 반짝 과일가게에서 홍옥을 만날 수가 있다.

감기 기운을 이겨보겠다고 며칠 신경써서 과일을 먹으며 계속 홍옥 타령을 해댔더니
엄마가 드디어 새빨간 홍옥을 사다주셨다.
겉에 입혀 놓은 왁스 때문이라지만, 예전엔 홍옥을 먹기 전에 꼭 옷자락에(지금 생각하면 더럽기도 하다만;;)
쓱쓱 닦아 빤질빤질 더욱 윤이 나게 문지르곤 했다.
그러면 제일 처음 한입 크게 깨물었을 때 생겨나는 동그란 이빨 자국과 연노랑색 과육이 참으로 예쁘게 느껴졌다.
*_*

좀 전에도 엄마가 굳이 과도와 포크까지 쟁반에 받쳐다 주신 걸 마다하고 덥썩 집어
무식하게 와그작 와그작 깨물어 먹었다.
껍질에 농약성분이 남아 있거나 말거나, 홍옥은 무조건 껍질째 먹어줘야 제맛이란 말이지.
쨍쨍 얼음이 어는 겨울은 커녕 11월만 되도 홍옥은 자취를 감춘다.
과육이 연한 탓에 오래 보관하거나 유통시킬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있을 때 많이많이 먹어두는 수밖에 없다.

으으...
글을 쓰면서도 다시 입안에 침이 돌아 얼른 또 새빨간 홍옥 사과 하나 꺼내
깨물어 먹어줘야겠다.

사고가 단순한 식탐가인 나에게 홍옥은, 이 가을 몇 안되는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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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투덜일기 2007. 10. 16. 12:56
감기에 관한 한은 좀 미련을 떠는 편이다.
인류의 과학이 제 아무리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다 해도
아직 감기약 하나 못 만들었다는 것이 내가 약과 병원을 마뜩찮게 생각하는 이유다. -_-;;
'감기약'이라고 생긴 것은 모두 증상완화제일 뿐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제는 되지 못하니
그저 감기는 쉬면 낫는다..고 믿는다.

게다가 감기 바이러스란 놈도 아주 야비하고 교활한 녀석이어서
언제 숨어들었는지 모르게 잠복해 있다가 몸이 좀 부실하다 싶으면 옳다구나 본색을 드러내 기승을 부린다.
아... 진짜로 싫은 놈이다!

가을이 왔나보다고 계절을 실감할 무렵부터
감기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긴 했다.
자고 일어나면 목이 약간 아프고 밤마다 밭은 기침이 나오기 시작하기에
나름 열심히 사과와 비타민을 먹어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먹는 걸 잘 챙긴다 해도 잠이 부족하면 효과가 없기 마련.
마감이랍시고 오래 버티기에 들어가느라 며칠 잠을 푹 못잤더니 덜컥 탈이 나고 말았다.

콜록콜록 깽깽거리다 어젠 결국 삭신마저 쑤셔 온종일 누워 빌빌대야 했는데
낮에도 자고 설마 밤에 또 잠이 오랴 싶었는데 또 스르르 잠이 오더니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머리가 좀 맑아지는 듯하다.

진작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 먹었으면 좋을 것을 미련을 떤다고
엄마한테 잔뜩 잔소리를 듣고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기침감기약과 한약냄새 나는 물약을
먹은 뒤에 그나마 좀 나아진 것이니 면목이 없긴 하다.
약도 약이겠지만 감기란 놈이 풀이 꺾인 건 분명 푹 잠을 잔 탓이렸다.

사실 아직도 잠의 유혹이 몹시 강렬하다.
따뜻한 이부자리에 누워 또 한잠 자고나면 감기란 놈한테 내가 아예 이길 것도 같은데
아직도 꽤 많이 남은 일감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칠 못하다.
이래저래 다 자기관리 제대로 못하는 탓이니 자괴감도 만만치 않다.
왜 이렇게 늘 쫓기듯 사는가 말이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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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다

삶꾸러미 2007. 9. 1. 16:22
몇십년 후엔 한반도가 아열대기후에 속해 일년의 절반 이상 절절 끓는 여름이 될 거라 하고
장마철로는 감당이 안되는 여름철 집중호우 때문에 '우기'라는 말을  도입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9월을 며칠 앞두고 기온이 팍 떨어지더니
비와 함께 시작된 9월은 제법 서늘하다 못해 스산하다.
여름 내내 민소매와 반바지로 지냈던 나의 '홈패션'은 급기야 한기를 못이기고 반팔 티셔츠와 7부 추리닝으로 바뀌었다.
감기기운 때문인지 순전히 날씨 때문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나도 모르게 '으 추워~' 소리가 절로 나와, 따뜻한 커피 한잔의 온기를 감싸쥐고 한참을 웃었다.
인간이 어쩜 이리도 간사스러운지...
그저께부터는 한여름용 홑이불만으로 도저히 한기가 가시질 않아 결국 봄가을용 이불을 덮고서야 잠들수 있었다. 포근한 온기가 어찌나 반갑던지,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기가 싫어 한참을 이불 속에서 뭉기적거렸다.

9월이 되면 가을이 오고, 그래서 뭔가 다 잘 풀리고 잘 될 것 같던 느낌은 여전하지만
뭐든 저절로 잘 되는 일이 없다는 게 확실하고 보니, 커지는 건 조바심뿐이다.
드디어 원고독촉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피학성향을 즐기는 인간처럼 그들의 독촉과 채찍질이 은근히 반갑다.
역시나 나란 인간은 자율적인 의지만으론 제대로 일을 해나갈 수 없었나 보다.
그들이 몰고가는 대로 잘만 따라가면 또 무사히 이 가을을 넘길 수 있겠지.
9월 끝자락에 들어 있는 추석엔 다시 에어컨이 필요할 만큼 더울 수도 있으니
공식적으로 가을이 왔음을 선언하기엔 아직 미심쩍지만
어쨌든 9월은 가을임을 실감한다.
잘왔다, 9월.
원래 가을은 내가 겨울 다음으로 싫어하는 계절이지만, 올해만은 반겨주마.
올 여름은 너무 길고 힘겨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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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가을

삶꾸러미 2006. 11. 28. 16:18
해마다 겪는 계절 변화인데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는 유독 힘들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싶지만 어쨌든
계절 핑계로 내내 맥을 놓고 지내느라 기분이 떨어진 탓인지
다른 환절기는 다 놔두고라도 가을과 겨울 사이엔 꼭 감기에 발목을 잡히기 일쑤고
좀처럼 나을 기미도 안보인다.

춥다는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새어나오는 며칠을 보낸 뒤,
내가 싫어하는 겨울이 이미 와버렸다고  절망하다가 언뜻 고개를 들어 바라본
가로수 단풍이 하도 예뻐서 아직은 가을이었구나 싶어 마음 시계를 다시 되돌린지
얼마나 됐던가.

어제 온종일 내리는 비를 보며, 굳이 일기예보를 듣지 않아도
비 그치면 기온이 뚝 떨어지겠구나,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 모를 가혹한 물기에 이젠 정말로 나무들이 헐벗겠구나,
짐작하며 마음의 각오를 했음에도
작업실 오는 길에 늘어선 은행나무들 가운데 절반쯤은 완전히 잎을 떨구고
습기때문에 줄기마저 검게 변한 채 앙상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끝없이 스산해졌다.
물기로 엉겨붙은 노란 잎들이 차도와 인도에 수북하게 떨어져 짓이겨지고 있는 모습도
안쓰러워, 아직 가지에 매달려 축 늘어진 잎들만 애써 쳐다보았다.

작업실에 꽂아놓은 국화도 시들어 때깔을 잃었다.
언젠가 시들 것을 알고 꽂아 놓았으면서도 속이 상한다.
사실 보름 가까이 고운 자태를 자랑했으니 국화로선 제 몫을 다 했는데도 말이다.

떠나는 가을이 아쉬워 끄트머리라도 붙잡고 싶은데
매몰찬 애인마냥 떨치고 가려는게 못내 아쉬운지 별별것에 다 마음이 상한다.

겨울을 다 보내고 봄을 맞을 때처럼 그렇게 의연하고 씩씩하게
겨울을 맞이하게 되는 날이 과연 내게도 올까.
아니면 늘 이렇게 겨울이 오는 게 싫고 짜증스러워 석달쯤 동면을 했다 깨어나거나
여름나라로 뿅 사라졌다 돌아오게 되기를 바라면서 마냥
가을앓이를 평생 이어가게 될까.

미래를 상상하는 일 역시 겨울을 견뎌야한다고 마음 먹는 일만큼이나
내겐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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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초입부터
올해는 워낙 가물고 이상기온으로 날씨가 더워 예쁜 단풍 보기는 글렀다고
언론에서 떠들어대기도 했고
실제로 남도쪽 가을 산엘 다녀오신 울 아버지도 단풍도 들기 전에 벌써 낙엽이 시작됐다고
안타까워하셨기에
가뜩이나 근시안적인 인간인 나는 언덕배기에 있는 우리집 앞뒷산도 제대로 안 쳐다보고 살았더랬다.

그런데 며칠 밤마다 비가 내리고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어깨를 옹송거리며 다녀야하는 것만 그저 몹시 싫어 이맛살을 찌푸리던 나는
쨍하고 비가 갠 오늘에야 비로소 햇살에 반짝이는 앞산의 단풍과
가로수 은행나무의 노란 잎사귀를 발견하고 계속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제일 눈에 띈건 봄마다 벚꽃길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던 구청 뒤 산책로의 진자줏빛 벚나무 단풍이었고, 샛노란 걸로 보아 분명 은행나무겠다 싶은 나무들이 줄지어 그 옆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

단풍이야 원래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비장한 몸단속이니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나처럼 쟤들도 겨울이 오는 게 참 싫은가 본데, 그래도 그 투정을 참 예쁘게도 한다고
마음대로 생각하며 쓸쓸해 했는데, 올해는 오늘 겨우 나무들의 겨울채비를 뼈저리게 실감한 거다.

이렇게 며칠 더 추워지면
하루아침에 은행잎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져 바스라질 테고
질기디 질긴 플라타너스는 단풍인지 낙엽인지 분간 안되는 커다란 잎들을 초겨울까지 끊임없이 뚝뚝 떨어뜨릴 게다.

솜을 넣어 얄팍하게 누빈 겨울 외투를 벌써부터 꺼내입고 다니며
그간 벌써 겨울이 왔다고 공연히 억울해 했는데
아무래도 다시 마음시계를 가을로 돌려야할 것 같다.
나무들도 아직 저렇게 가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나 먼저 겨울 속에서 슬퍼할 수야 없지.
비록 며칠 뒤에 수능한파랍시고 기온이 뚝 떨어져 나무들이 갑자기 앙상해지더라도
그 며칠 동안은 늦게라도 다시 가을정취를 느껴봐야겠다.

제법 태가 고운 울 동네 앞뒷산 단풍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오메.. 단풍 들었네.. 한 마디씩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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