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가을

삶꾸러미 2006. 11. 28. 16:18
해마다 겪는 계절 변화인데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는 유독 힘들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싶지만 어쨌든
계절 핑계로 내내 맥을 놓고 지내느라 기분이 떨어진 탓인지
다른 환절기는 다 놔두고라도 가을과 겨울 사이엔 꼭 감기에 발목을 잡히기 일쑤고
좀처럼 나을 기미도 안보인다.

춥다는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새어나오는 며칠을 보낸 뒤,
내가 싫어하는 겨울이 이미 와버렸다고  절망하다가 언뜻 고개를 들어 바라본
가로수 단풍이 하도 예뻐서 아직은 가을이었구나 싶어 마음 시계를 다시 되돌린지
얼마나 됐던가.

어제 온종일 내리는 비를 보며, 굳이 일기예보를 듣지 않아도
비 그치면 기온이 뚝 떨어지겠구나,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 모를 가혹한 물기에 이젠 정말로 나무들이 헐벗겠구나,
짐작하며 마음의 각오를 했음에도
작업실 오는 길에 늘어선 은행나무들 가운데 절반쯤은 완전히 잎을 떨구고
습기때문에 줄기마저 검게 변한 채 앙상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끝없이 스산해졌다.
물기로 엉겨붙은 노란 잎들이 차도와 인도에 수북하게 떨어져 짓이겨지고 있는 모습도
안쓰러워, 아직 가지에 매달려 축 늘어진 잎들만 애써 쳐다보았다.

작업실에 꽂아놓은 국화도 시들어 때깔을 잃었다.
언젠가 시들 것을 알고 꽂아 놓았으면서도 속이 상한다.
사실 보름 가까이 고운 자태를 자랑했으니 국화로선 제 몫을 다 했는데도 말이다.

떠나는 가을이 아쉬워 끄트머리라도 붙잡고 싶은데
매몰찬 애인마냥 떨치고 가려는게 못내 아쉬운지 별별것에 다 마음이 상한다.

겨울을 다 보내고 봄을 맞을 때처럼 그렇게 의연하고 씩씩하게
겨울을 맞이하게 되는 날이 과연 내게도 올까.
아니면 늘 이렇게 겨울이 오는 게 싫고 짜증스러워 석달쯤 동면을 했다 깨어나거나
여름나라로 뿅 사라졌다 돌아오게 되기를 바라면서 마냥
가을앓이를 평생 이어가게 될까.

미래를 상상하는 일 역시 겨울을 견뎌야한다고 마음 먹는 일만큼이나
내겐 어렵기만 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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