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초입부터
올해는 워낙 가물고 이상기온으로 날씨가 더워 예쁜 단풍 보기는 글렀다고
언론에서 떠들어대기도 했고
실제로 남도쪽 가을 산엘 다녀오신 울 아버지도 단풍도 들기 전에 벌써 낙엽이 시작됐다고
안타까워하셨기에
가뜩이나 근시안적인 인간인 나는 언덕배기에 있는 우리집 앞뒷산도 제대로 안 쳐다보고 살았더랬다.

그런데 며칠 밤마다 비가 내리고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어깨를 옹송거리며 다녀야하는 것만 그저 몹시 싫어 이맛살을 찌푸리던 나는
쨍하고 비가 갠 오늘에야 비로소 햇살에 반짝이는 앞산의 단풍과
가로수 은행나무의 노란 잎사귀를 발견하고 계속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제일 눈에 띈건 봄마다 벚꽃길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던 구청 뒤 산책로의 진자줏빛 벚나무 단풍이었고, 샛노란 걸로 보아 분명 은행나무겠다 싶은 나무들이 줄지어 그 옆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

단풍이야 원래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비장한 몸단속이니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나처럼 쟤들도 겨울이 오는 게 참 싫은가 본데, 그래도 그 투정을 참 예쁘게도 한다고
마음대로 생각하며 쓸쓸해 했는데, 올해는 오늘 겨우 나무들의 겨울채비를 뼈저리게 실감한 거다.

이렇게 며칠 더 추워지면
하루아침에 은행잎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져 바스라질 테고
질기디 질긴 플라타너스는 단풍인지 낙엽인지 분간 안되는 커다란 잎들을 초겨울까지 끊임없이 뚝뚝 떨어뜨릴 게다.

솜을 넣어 얄팍하게 누빈 겨울 외투를 벌써부터 꺼내입고 다니며
그간 벌써 겨울이 왔다고 공연히 억울해 했는데
아무래도 다시 마음시계를 가을로 돌려야할 것 같다.
나무들도 아직 저렇게 가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나 먼저 겨울 속에서 슬퍼할 수야 없지.
비록 며칠 뒤에 수능한파랍시고 기온이 뚝 떨어져 나무들이 갑자기 앙상해지더라도
그 며칠 동안은 늦게라도 다시 가을정취를 느껴봐야겠다.

제법 태가 고운 울 동네 앞뒷산 단풍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오메.. 단풍 들었네.. 한 마디씩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