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5.06.15 낙오 6
  2. 2015.05.29 새 이웃 7
  3. 2015.05.26 세금의 달 5월 4
  4. 2015.05.26 부처님오신날 2
  5. 2015.05.21 이해
  6. 2015.05.08 5월 8일 3
  7. 2015.04.18 그랬다고.. 7
  8. 2015.04.15 모둠 과제 발표? 9
  9. 2015.04.11 몰라요 5
  10. 2015.04.06 냉이 7

낙오

투덜일기 2015. 6. 15. 22:09

주말에 수락산에 갔었는데 중간에 낙오가 됐다. 하산 길 시작하자마자 일부러 느림보들을 모아 앞세워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후미에 있다가 일행과 떨어져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중간에 꼬리를 놓치면서 갈래길에서 엉뚱한 길로 내려간 거였다. 근데 낙오자 6명 중 맨 끄트머리에 있었던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단 걸 맨 처음 알았다. 내가 앞사람을 따라 무작정 내려가고 있으려니 뒤에서 우리 단체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OO! OO! 어쩌구저쩌구... (나중에 알고 보니 혹시 일행중 무작정 직선 코스로 내려간 사람 있을까봐 갈래길에서 OO 우측으로!라고 외친 거였단다)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깨달은 나는 다시 길을 올라가며 외쳤다. OO 여기도 있어요!! 


하지만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듯 등산로는 다시 조용해졌다. 하산길도 아니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서 내가 앞선 멤버들을 따라잡을 리는 만무했다. 일단 나는 다시 소수가 내려간 길로 내려가 상황을 알렸다. 우리 잘못 내려왔어요! 다른 사람들은 오른쪽 길로 갔어요! 


그랬더니 산악마라톤도 하시는 선배님과 등산 고수 후배가 수락산은 등산로가 많아서 어차피 가다가 다 만나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내가 가리킨 방향은 뒤풀이 장소인 '수락골' 방향(서쪽)이 아니라 북쪽이라나... 고수들이 그렇다면야 그런 거지. 일단 우리 6명은 더 이상 헤어지면 안된다고 꼭 붙어 움직여야 한다고 다짐하며 하산을 계속했다. 마침 올라오는 등반객 두 사람을 만난 우리는 수락골 방향을 물었다. 이쪽으로 내려가면 수락골 가는 길 나오나요? 그랬더니 그 젊은이 자신감 넘치게도 '아니'라고, 길도 안보이는 왼편 숲쪽을 가리키며 저리로 내려가야 수락골이 나온다고 말했다. 나름 방향감각이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보기엔, 그리고 좀 전에 헤어진 일행들이 간 방향과는 완전 반대방향을 가리키는 조언에 나는 의심을 품었지만, 가다 말고 다시 돌아서서까지 방향과 갈 길을 일러주는 그 청년의 호기에 우리는 길도 안 보이는 숲으로, 말하자면 비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내눈엔 길도 아닌데! 등산 고수들은 이 정도면 길이 있는 거라고... 쌓인 낙엽에 발이 푹푹 빠지고 아슬아슬 한뼘 밖에 흙이 안보이는 이상한 숲길로 우리를 이끌었다. 어차피 산 내려가면 좀 벗어났더라도 택시 타고 집결지로 가면 된다고... 하지만 길은 점점 더 험해지고, 설상가상 하늘이 깜깜해지더니 비까지 흩뿌렸다. 좀 전까지 햇빛 쨍쨍 눈부셔서 선글라스 끼고 있었는데! 나뭇가지를 헤치고 지나느라 긁히고 찔리고... 인적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주등산로와 달리 암벽에 묶여 있는 건 알량한 빨랫줄 아니면 줄줄이 엮어 놓은 운동화끈! ㅠ.ㅠ 그걸 붙들고 유격훈련 하듯이 한 길 넘는 암벽을 내려갔다. 하지만 제법 내려가도 주등산로와 만나지지가 않았고, 나는 다시 일행들이 간 방향과 너무 달라 불안하다고 꿍얼거렸다. 


그제야 네이버 지도로 현위치를 확인. 수락산이 요상하게도 전화가 안터지는 곳이 많았고 종종 인터넷도 먹통이었다. 드디어 휴대폰에 지도가 뜬 순간 우리는 완전 엉뚱한 곳으로 내려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남양주군 별내가 나온단다. ㅋㅋㅋㅋ 결국 다시 우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미친 놈 뭐야! 길을 모르면 모른다고 가르쳐주질 말든지 왜 잘난 척 틀린 길을 가르쳐줘가지고!!! 하산길에 만난 남자가 가르쳐준 방향은 정 반대인 동쪽 방향이었다. 나 원 참. 그리고 등산하다 길을 잃으면 괜히 모르는 길 질러갈 게 아니라 다시 올라가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


우린 다시 가느다란  빨랫줄이나 운동화끈 같은 줄에 목숨을 걸고(!) 익스트림 스포츠 즐기는 인간이거나 약초꾼들이나 다닐 법한 이상한 숲길과 암벽을 타고 다시 정상을 향했다. 4, 50분 헤맨 끝에 드디어 밥먹고 하산하던 주등산로와 만난 순간, 희한하게도 하늘은 다시 밝아져 햇빛이 쨍쨍했다. 좀 전에 다니던 길과는 전혀 다른 세상. 음침한 회색 세계에서 벗어난 느낌은 순전히 심리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나 혼자였으면 다 뻥이려니 하겠지만 비 등산로에서 헤매며 비 계속 내리면 몇몇은 방수 옷 없는데 어쩌나 단체로 걱정했다규! 


지나고 보니 다 웃을 일이고 인상 깊은 추억이지만 생각할수록 길 잘못 알려준 그 남자가 생각난다. 원래도 소심해서 타인에게 잘 묻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어쩌면 나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이번에 애써 주변에 묻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며 오히려 더 꼬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모르면 사실대로 모른다고 할 일이지, 그 남자는 왜 아는 척을 했을까? 진짜로 안다고 생각했을까? 비슷한 방향도 아니고 정 반대 방향을 가르쳐주면서?


본인이 의식하진 못하겠지만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 사회에 병적인 존재가 아닐까 심히 비약하는 결론까지 내리게 된다. 무작정 어디론가 사람들을 막 끌고 가다가 '이길이 아닌개벼...' '아님 말고..' 하는 식의 리더나 조언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과적으로 무사히 낙오자들을 다독여가며 이끌고 하산에 성공한 등산 고수 두 사람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하산길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해 남은 얼음물 홀라당 거의 다 마셔버린 하수들과 달리, 고수들은 보온병에 든 오미자차, 보냉팩으로 감싼 얼음물이 끝까지 남아 있어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ㅠ.ㅠ 염분과 당 떨어지는 경우를 대비한 각종 간식까지도...) 선뜻 "아무 길로나 질러가면 돼!"라고 함부로 생각한 건 잘못이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50명도 넘는 인원을 리드하면서 평소처럼 갈래길에서 방향을 지시해주는 사람을 세워두지 않은 주최측도 잘못했다! (산행 책임자는 그래서 모두에게 긴 반성의 글을 올렸다 ㅋㅋ) 하지만 이번엔 워낙 인원도 많고, 뒤풀이 장소 확보를 위해서 무거운 짐과 함께 선발대(주로 빌빌대는 멤버들 뒤치다꺼리 해주는 고수들)를 여럿 파견하는 바람에 미처 못 챙긴 걸 안다. 그래도 섭섭한 건 섭섭한 것. ㅋㅋ


그간 거의 매일 휴대폰 앱으로 근력운동을 좀 했고 앞산도 가끔 올랐지만 체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몰랐는데, 긴장한 탓인지 낙오하기 이전에 정상 오를 때도 이상한 암벽에서 밧줄이나 쇠줄 타고 오르기를 거듭 시도했고 (부들부들 떨면서... ㅠㅠ) 나중에 낙오한 뒤 되돌아가는 길에도 유격훈련이 아니고 뭐냐 싶게 엄청 생고생을 했는데도 밧줄 잡았던 어깨만 약간 뻐근할 뿐 비교적 몸이 멀쩡한 것이 놀랍다! 비록 입안은 너덜너덜 다 헐었지만서도... ㅎㅎㅎ 혹시나 산에서 낙오되면 나 혼자서도 집에 잘 찾아가야한다며 산행 루트 설명할때 귀 쫑긋 열심히 듣는 편이고, 휴대폰 안 터질 것에 대비해 배낭에 나침반도 매달고 다니지만 실제로 낙오를 하다니... ㅋㅋ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 물론 그날따라 산행 지도도 안보고 딴짓했고 휴대폰 안터져도 나침반 보잔 말은 못 꺼내겠더라... 고수들이 있는데 하수가 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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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웃

투덜일기 2015. 5. 29. 01:27

엄마네 집쪽 아래층에서 6,7년쯤 살던 주류 도매상 아저씨네(한때 몸집 거대한 잡종 진돗개 '곰돌이'를 키우며 온 동네를 괴롭게 했던;;)가 얼마 전 이사를 가고, 집주인이 다시 이사를 올거라며 수리를 한참 하더니만 결국엔 또 세를 놓은 모양이었다. 아래층 집주인이 워낙 괴팍하고 싸움도 욕도 잘해서 온 동네에 죄다 인심을 잃은 '장로님'이시라 엄마는 그 아저씨가 다시 이사온다는 소식에 지레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떡하니 이삿짐 트럭이 도착한 날 전혀 다른 사람이 인사를 하자 퍽이나 놀랐다고 했다. 


듣자하니 이전 세입자와 금전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어서 다른 세입자를 들이는 게 일종의 비밀이었다나 뭐라나. 암튼 우리로선 천만다행이었다. 다가구주택임에도 오래된 집이라 주차공간은 한대밖에 없어서 그 아저씨 이사오면 주차 문제로 싸우기 싫어서라도 내가 차를 골목에 대야지 그러고 있었는데 오예~! ㅋㅋ 게다가 새로 이사온 아래층 아줌마는 노상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다가 콧노래를 부르며 마당에 빨래를 널면서 벌써부터 울 엄마와 서로 좋은 인상을 주고받은 모양이었다. 이사 후 두번째 마주쳤을 때 이미 차 마시러 좀 들어오세요~ 그랬다나. 오지랖 넓은 할머니이긴 해도 선뜻 응하기 뭣해서 엄마는 일단 사양을 했다는데, 그간 몇번 얼굴 마주친 거 치고는 놀랍게도 신상명세를 벌써 다 파악해오셨다. +_+ 하기야 울 엄마도 우리 모녀 신상을 대충은 다 공개한 듯, 며칠 전 외출하는데 오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마당에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어머니 인상이 참 좋으세요. 좋은 분이랑 이웃되서 반가워요."라고 말했다. @.,@


나는 당황해서 우물쭈물 뭐라고 대꾸했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암튼 엄마가 '캐내온' 아래층 이웃의 정보는 남편이 영국인이고 다 큰 아들이 하나 있는데 다른 집에서 살면서 가끔 들른다는 것. 그리고 이사온지 얼마 안 돼 영국에 보름간 다녀오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울 엄마가 마당 화분 몇개와 스티로폼 통에 상추와 고추 모종을 사다 심어놓고 매일 물을 주는 걸 보면서, 부러워서 자기도 그 옆 화분에 상추랑 치커리 따위를 심었다고 했단다. 집 빈 동안에 아들이 다녀갈 수도 있으니 놀라지는 마시라고. 


새 이웃이 영국에 간 사이 울 엄마는 또 그집 채소 화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 안주면 금방 말라죽을 텐데... 내가 우리 화분 주면서 같이 물을 줘야하나... 아픈 다리로 이층에서 물조리 한 통 갖고 내려가는 것도 힘든데 내가 대체 왜?.. 뭐 이런 생각을 하셨던 거다. 다행히 그 사이 비가 몇번 내렸고, 시들시들 말라가는 채소를 차마 그냥 보아넘길 수 없었던 엄마는 간간이 조리에 받아간 물을 아껴가며 이웃 화분에도 나눠주었던 듯했다.


오지라퍼 할머니는 아래층 이웃이 돌아오기를 괜히 오매불망 기다렸다. 기껏 심은 모종 다 말라죽으면 어떡하냐. 아들이 다녀는 가던데 화분에 물은 안주는 것 같더라. 물 덜 줘서 축 늘어진 모종 불쌍해서 어쩌냐... 제일 안쪽 화분은 팔이 안 닿아서 물을 줄래도 줄 수가 없던데...  아 놔;;;;


보름이 지나고 드디어 아래층 이웃이 돌아온 듯했지만, 엄마의 관찰 결과 더는 현관문을 열어놓고 살지 않아 사람 얼굴을 볼 수도 없고 채소 모종은 계속 축 늘어져 말라가고 있다고 또 성화를 하셨다. 아 진짜! 엄마! 상추모종 천원에 다섯개라며! 고추모종도 그렇고! 죽으면 좀 어때요! 물 주기 귀찮아서 죽이기로 했나보지! 아래층 아줌마 만나면 그간 내가 화분에 물 줬다고 생색내고 싶은 거예요??? 그거 아니면 제발 남의 일에 간섭도 걱정도 좀 하지 마세요!! 


그러더니 며칠 전에 드디어 아래층 영국남자랑 마당에서 뙇 마주쳤다는데 당황해서 엄마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하고 들어왔다고 '안녕하세요' 그럴 걸 그랬다고 후회 또 후회.... ㅠ.ㅠ 난 또 버럭했다. 아니, 할머니를 봤으면 그쪽에서 먼저 인사를 했어야지, 엄마가 왜 미안해하고 그러냐고! 그리고 영국사람들 원래 쌀쌀맞으니깐 곰살맞게 인사받는 거 바라지도 마셔! (그간 효녀 코스프레 한 얘기만 적어서 그렇지, 내 본모습은 이렇게 표독스럽다;;;)


사실 나도 이 동네 3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원래부터 잘 알던 이웃이 아니고선 같은 골목 주민들에게도 선뜻 인사를 하게되질 않는다. 오지랖 넓은 엄마 덕분에 나는 반장 아줌마도 알고, 야쿠르트 아줌마도 알고, 같이 실버합창단 하시는 옆 빌라 안X분 할머니도 알지만, 저들은 은둔형 인간인 나를 잘 모르는 게 확실하다. 제대로 하는 외출이 아닌 한 꽁지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후드를 뒤집어 쓰고 나가기 때문에 어차피 인사를 해도 몰라본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원래 마구 상냥한 스타일도 아니고 뭐... 


하여간에 엄마는 혹시나 또 영국인 남자와 마주치는 경우를 대비해서 당황하지 말고 '안녕하세요'라고 하겠다고 시뮬레이션 연습까지 마치셨는데 이후 아줌마도 아저씨도 대면한 적이 없단다. 오히려 나는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골목 어귀에서 하얀 '난닝구'에 반바지 차림 + 왕뿔테 안경을 쓴 배불뚝이 영국 아저씨랑 마주쳤지만 바로 집앞이 아니라 인사하기도 웃기고 해서 당연히 모른체했다. 나도 마당에서 마주치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연습이라도 미리 해둬야하는 건가. ㅋㅋㅋ 


그간 런던아줌마' 블로그를 통해서 영국사람들이 얼마나 '못버리는 병'에 걸린 환자들인지 전해듣기도 했지만 가끔 마당구석에 정말 신기한 물건들이 하나씩 놓여서 시선을 끈다. 최소 50년은 된 것 같은 다 떨어진 구식 여행가방이라든지, 다리가 기울어진 나무 의자라든지... (그럴 때마다 울 엄만 또 혼자 꿍얼꿍얼 하신다. 아니 그런 물건은 이사올 때 버리고 와야지 왜 다 갖고 와서 새삼 쓰레기를 만드나 그래..)


어쩌면 그 이웃집에서도 위층에 '이상한' 할머니 모녀가 산다고, 귀찮아 죽겠다고 꿍얼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이웃이란 아무래도 서로 적응해나가는 기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나저나 그 옆집, 내방 쪽 아래층엔 이사온지 6개월도 넘었는데 아직 사람 구경을 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는 흔적도 없고... 한전과 가스공사에서 체납고지서를 보내다보내다 못해 사람이 나와, 그 집에 사람 안 사느냐고 우리집을 두들기고 물었을 정도. 이웃사촌이란 말은 사라진지 오랜 도시에서 암튼 새 이웃 덕분에 포스팅도 하고 나도 좀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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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의 달 5월

투덜일기 2015. 5. 26. 16:26

정신없이 사느라 잊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만난 프리랜서 친구가 종합소득세 신고했느냐고 물었다. 잉? 난 우편물도 안왔던데? 우편물 안 왔더라도 홈택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신고할 수 있으니 어서 하라는 충고였다. 하지만 뭐든 질질 끌다가 막판에나 겨우 하지 않으면 마감일을 넘기기 일쑤인 내가 행여나 일찍, 공식 우편물도 날아오기 전에 세금신고를 할 리가 없다. 마지막주에 하면 되겠거니 그냥 또 잊고 있었더니 주말 직전에 우편물이 드디어 도착했다.


나는 간편장부 대상자라 세무서에 갈 것도 없고 그냥 인터넷으로 신고하면 되니까 얼마간 끙끙대면 되겠지 했더니, 오지랖 넢은 친구가 주말에 또 문자를 보냈다. 이번에는 신고양식이며 시스템이 다 바뀌어서 더 헷갈린다, 나중에 헤매다 기한 넘기지 말고 얼른 신고해라...  그렇다면 오케이. 조금 전 점심 먹고 분연한(?) 마음으로 홈택스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친구 말이 맞았다. 작년까지는 지들이 다 알아서 기입해놓은 총 수입액의 명목을 눌러, 총액이 맞는지 아닌지 자체 확인할 수도 있고, 항목별로도 링크가 많이 되어있어서 기부금 공제 항목도 영수증만 있으면 본인이 따로 입력이 가능했는데 그런 게 죄다 사라졌다! 게다가 시스템이 죄다 바뀌었는지 원래 회원인데도 재가입해서 로그인하라고 하고, 비회원로그인도 가능하다지만 메뉴가 제한되고 아우 불편해!! 

 

하는 수없이 통장 2개의 1년치 수입액을 다 뽑아 계산해서 맞춰보고, 기부금공제는 그냥 포기했다. 기부금공제를 받으려면 별지 서식 45호를 작성해서 세무서에 제출하라는데, 별도 증빙서류 제출해야하면 인터넷 신고할 때도 작성할 수 있게 해야지 뭐냐!!! 일단 신고서를 제출하고 나서 증빙서류 제출하라는 메뉴가 있긴 하지만 거긴 기부금 공제 서식이 생성되지 않았다. 기부금은 아예 공제해주지 않겠다는 꼼수가 아니고 뭐냣! 5월에 세무서 가면 얼마나 줄을 오래 서서 기다려야하는데... 그러고도 전자신고하라고 한쪽 구석에 있는 컴퓨터로 내몰기 일쑤... 옜다 먹고 떨어져라 하는 마음으로 그냥 기부금 공제는 빼고 신고를 마쳤다.


부양가족 공제도 없지(울 엄마는 막내동생이 부양가족으로 신고하는 게 관례), 자녀공제도 없지, 출산, 입양 공제도 없지.... 이번에 공제되는 거라고는 표준세액공제 7만원이랑 전자신고 공제 2만원뿐이다. +_+ 젠장젠장... 째뜬 알량하게나마 원천징수로 뜯어갔던 세금 환급되는 거나 기다리는 수밖에. 작년 내가 벌어들인 수입을 확고하게 '숫자'로 확인하는 이 맘때는 참으로 마음이 참담하다. 이거 벌자고 노상 밤새고 있는 거구나 내가...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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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투덜일기 2015. 5. 26. 01:38

빨간날이라서 논다는 것 말고는 (어차피 준백수 프리랜서에겐 빨간날도 큰 의미는 없다) 대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날이지만... 그래도 '불자'이신 왕비마마에겐 퍽 중요한 날이고, 가뜩이나 요즘 맘고생이 심하신 걸 아는지라 동네 개천변에 만들어놓았다는 '코끼리등과 사자등'을 보러 부처님오신날 저녁 밥먹고 나서 슬슬 산책에 동반해드렸다. 

위로도 잘 크고는 있지만 그래도 제 사촌들보다는 자꾸만 옆으로 늘어나는 비중이 큰 조카 ㅈㅎ이도 억지로 운동시킬 겸 끌고 나갈 요량이었는데, 이 짓궂은놈 좀 보게. 굳이 방울토마토를 지퍼백에 싸가지고 나가서 먹겠다고 우겼다. -_-; 그러더니 걸어가는 내내 굳이 토마토 봉지를 내게 들게 하고는 하나씩 꺼내먹으며 하는 말. "지금 나와서 걸으며 소모하는 칼로리보다 이거 한 알 칼로리가 더 높을걸! 흥!" ㅠ.ㅠ 내가 졌다....

개천변 산책로엔 코끼리등과 사자등만 켜놓은 게 아니라 꽤 큰 등 4개를 밝혀놓았고, 어느 사찰에서 주최를 한 건지 뭔가 요란하게 석가탄신일 축하연 같은 게 벌어지고 있었다. 성악가들의 합창이 스피커에서 왕왕대며 흘러나오고.... 아 젠장. 시끄럽고 사람 많은 거 딱 질색인데... 아이팟까지 귀에 꽂고 나간 조카는 시끄러워서 자기 음악 안들린다고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빨랑 집에 가자고. ㅋㅋ 그러나 왕비마마는 은근히 성악 공연이며 대금 연주에 관심을 보이는 눈치이니 곧장 들어올 순 없었다. 애당초 명색이 부처님오신날 기념 왕비마마 위로차 나간 밤산책인데. 

해서 적당히 어슬렁거리다 시끄러운 산책로를 등지고 돌아왔다. 마침 사회자가 이상한 음악 틀어놓고 사람들 무대로 나와서 춤추게 하려는 순서여서 단호히 일어설 수 있었던 것. 그런 건 울 엄마도 민망하고 주책스럽다며 싫어하셔서 어찌나 다행인지. 원래 '동이족이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중국 역사책에도 나와있다지만, 아오... 우리나라 사람들 누가 시키기만 하면 장소불문하고 뛰쳐나와 춤추고 노래하고 신명나게 노는 거 나로선 좀체 이해가 안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 용기와 끼는 다들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원. 

째뜬 이번 행사를 위해서 새로이 만든 건지, 광화문 연등행렬 할 때 썼던 걸 재활용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봄밤에 밝혀둔 코끼리등, 사자등, 부처등은 다 예뻐보였다. 왕비마마는 오전에 절에 가서도 열심히 '우리의 웬수바가지'를 위해 특별축원을 하고 기도를 했다는데 과연... ^^ 종교도 회의적이지만 특히 기복 신앙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엄마의 기도는 늘 짠하고 안쓰럽다. 

아참.. 나는 방울토마토 지퍼백 들고나가느라 휴대폰도 안 챙겼기 때문에 사진촬영은 ㅈㅎ이가 협조해주었다. 아이폰6는 야경에 강하다더니 역시... 나도 얼른 바꿔야겠다! (뜬금없는 결론이네 ㅎ 그치만 꽤 멀리 개천 안쪽에 설치된 등을 줌으로 당겨 막 찍었는데 이 정도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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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투덜일기 2015. 5. 21. 23:37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라는 단언을 하지 않겠다고 노력은 하는데 자꾸만 그 말이 튀어나온다. 그냥 입장이 다르고, 태도가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생각도 다를 뿐 그게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님을 알면서도 내 잣대에 맞지 않으면 자꾸만 '이해 불가' 타령을 하는 걸 보니 이젠 나도 말랑말랑한 사고가 불가능해진 꼰대 기성세대로 굳어가고 있는가 해서 두렵다.


늙은 딸의 짜증에 여유롭게 "너도 늙어봐라" 신공으로 대적하는 노친네도 어렵고, 그 어떤 잔소리에도 "뭐래?"라며 무시하는 십대도 어렵고, 참자 참자 사랑으로 덮어주자, 주문을 외우면서도 수시로 버럭버럭 화가나는 내 마음도 어렵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궁극적으로 네 편'이라는 신뢰를 주기란 참 얼마나 어려운가 새삼 느끼는 중이다. 


무튼.. 5월이 조바심 속에서 이렇게 가고 있다. 이런 날들도 나중에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웃으며 옛말하는 추억이 될 거라 믿어야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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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투덜일기 2015. 5. 8. 20:27

아카시아꽃 향기를 처음 느낀 건 7일이었다. 5월5일에 엄마랑 앞산을 오르러 나갔을 때만 해도 연두색 봉오리로 매달려있더니만, 외출했다가 어버이날 만찬을 위해 장을 봐가지고 낑낑대며 언덕을 오르는데 향기로운 냄새가 먼저 반겼다. 아카시아 향기를 즐길 여유도 없이 계속 우울한 나날.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 이렇게 우울한 어버이날이 또 있을까.


지금은 그누구보다도 효자인 큰동생. 장손이라는 부담 때문이었을까, 고등학생때 잠시 방황을 하며 엄마 속을 무던히도 썩였었다. 그때 엄마가 벼르고 별렀다는 말. 너도 장가가서 어디 너랑 똑같은 자식 나서 속 좀 썩어봐라... 


엄마들의 저런 바람은 반드시 이뤄진다던가... 동생은 실제로 요즘 자식 때문에 엄청나게 속을 썩고 있는데, 울 엄마는 정말로 당신의 발언 때문에 그렇게 됐나 싶어 맨날 회개하고 속죄기도를 올린단다. 그런데 속없는 자식놈은 다 커서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엄마가 바란 대로 됐잖아!"라며 부모 원망을 하고, 늙은 엄마는 또 그 말에 상처를 받는다. 


이래저래 마음 상하고, 즐거이 모여 왁짜지껄 밥 먹을 상황도 아니라 동생들에게 가정의달 행사로 모이지 말자고 했다. 올해는 그냥 넘어가자. 내가 너무 바쁘다. 섭섭하지 않다. 진짜로 마음이 안내킨다. 엄마가 싫단다....


그래도 막내동생네는 일요일에 잠시 다녀갔고, 큰동생네는 장손 ㅈㅎ이가 대표로 어버이날 카네이션 사들고 왔다. 그래, 어쩐지 육회 감을 좀 많이 사고 싶더라니. 잘 됐네. 부리나케 전복구이에, 샐러드 두 종류에, 육회무침까지 한상을 차린뒤 밥을 푸려고 보니 아뿔사, 밥통에 밥이 한 그릇밖에 없다. ㅠ.ㅠ


점심은 파스타 해먹으면서 '보온'으로 켜져있는 밥통에 새밥이 한통 가득 든 줄 알았다. 누가 뭐래도 '밥은 내가 해요'라는 엄마의 주장을 '참'으로 만들기 위해서 쿠쿠 밥솥에 밥하기는 엄마 몫인데 맙소사, 한 그릇 남았던 밥은 당연히 아침에 엄마가 드셨어야 했던 거다. 하지만 어버이날 아침을 홀로 손수 차려드시기 싫었던지, 나에겐 밥 먹었다 거짓말(!)을 하고 고구마로 떼웠던 전말이 너무 늦게 드러났다. 으악...


어버이날이고 뭐고 길길이 날뛰며 왜 밥먹는 거 가지고 거짓말 하냐고 버럭버럭 소리를 치다가 다 차려놓은 밥상이 식어가는 가운데 씩씩대며 새로 밥을 앉혔다. 올 어버이날은 이래저래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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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고..

투덜일기 2015. 4. 18. 01:30

4월 16일엔 추모집회엔 나도 나가서 촛불 하나 들어야하지 않을까 며칠 고민했지만 나가지 못했/않았다. 꺼려지는 핑계는 너무도 많았다. 같이 나갈 사람도 없고... 비도 온대고... 일도 바쁘고... 다음날 아침부터 자원봉사 나가야하는데 체력이 될까... 분명 차벽치고 길 막고 강력진압할텐데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을까 엄마가 걱정할텐데... 구차하게 나열하고 있지만 그냥 나가기 싫었다는 게 맞다. 절실하지 않았던 거다. 냉장고가 거의 다 비어 장을 보러가야한다고 며칠째 별르면서도 내키질 않아 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집에 처박혀 있었다. 


마침 다음날은 궁궐에 봉사나가는 날이란 핑계로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뉴스는 보지 않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진동으로 돌려놓은 휴대폰 울림에 금방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자정을 몇분 남긴 시간, 휴대폰 화면엔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오는 전화번호는 잘 안받는데, 시간이 시간인 만큼 괜스레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걸 느끼며 전화를 받았더니 큰조카 ㅈㅁ이가 대뜸 "고모, 어디야?" 물었다. 당연히 집이지 어디겠니... 근데 니 전화는 어쩌고!!


버스 타고 집에 가려다가 친구랑 1시간째 버스 안에 갇혀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집보다 고모네 집이 가까우면 엄마가 고모네로 가서 자라고 했단다. 와서 자는 거야 당연히 괜찮은데 문제는 집이 효자동인 친구를 어쩌냐는 것. 초저녁부터 걸어서라도 집에 가려고 시내에서 이리저리 시도했지만 어디로도 접근할 수가 없었단다. 일단 같이 오라고, 당장 내려서 전철 끊기기 전에 전철로 최대한 가까이 오든지, 어떻게든 은평차고지로 갈 거라는 버스에 계속 남아 있다가 종점 도착하면 내가 데리러 가든지 하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버스는 막힌 길을 피해 명동으로 서울역으로 돌고돌아 우리 동네 전철역앞을 지나더라며 버스에서 내렸다고 40분쯤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시간이 너무 늦어 마을버스가 있을지 모르겠다, 택시를 탈래, 데리러 갈까 했더니 걸어와도 되겠단다. 어차피 시내에서 막힌 길 피해 종로로 을지로로 엄청 걸어다녔는데 2정거장쯤 더 걷는 거 일도 아니라나.


씩씩하게 대꾸하더니만 막상 집에 온 두 아이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당연하지. 벌써 새벽1시. 애기들, 고생했다, 조금 쉬다가 길 뚫렸나 알아보고 친구는 효자동 집까지 고모가 데려다주면 되지 않겠니 했더니 일단 배가 고프시다고...  라면 끓여줄까 했더니 웬일로 싫단다. 다른 간식 거리는 없는데.... 그럼 복음밥? 오케이... 다행히 스팸 통조림 하나 있는 거에다 자투리 채소를 다져넣고 남은 밥 한통을 다 볶았다. 내심 아침에 조카 먹여보낼 한 그릇을 남길 요량이었는데.... 결국 위대한 십대 둘은 그 많은 밥을 다 먹어치웠다. 다이어트한다고 맨날 굶지를 말든지 야식을 많이 먹지를 말든지... 자연히 잔소리가 나오려는 걸 꿀꺽 삼켰다. 그냥 살아만 있어도 고마워해야할 아이들인데 까짓것 야식 좀 많이 먹어서 살찌면 어떠니...


뉴스를 검색해보니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시위대가 철야농성에 들어갔다고. 광화문 주변에 둘러친 차벽은 웬만해선 아침까지 버틸 것 같고 우리집에서 효자동으로 접근하는 길도 청와대 길목이라 막아놓았기 십상일 것 같았다. 친구도 그냥 재워보내기로... 배부른 십대 둘은 배를 두들기며 낄낄 깔깔 실컷 수다를 떨다가 2시를 한참 넘겨 잠이 들었지만 결국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5시반부터 깨워달라더니만 5분만 더, 10분만 더...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깨우러 다니는 한편, 고기도 없이 대충 미역국을 끓이고, 없는 반찬대신 한 덩어리 남았던 돼지고기 목살을 녹여 이른 아침부터 요란하게 냄새를 피우면서 구워먹였다. 어휴... 학부형 엄마들은 이짓을 맨날맨날 어떻게 할까,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아침 시간에 애들 깨우느라 소리치고 밥 해먹이고 그러는 게 더 없는 소원이 된 부모들이 있다는 걸 뒤늦게 생각해냈다. 


애들을 보내고 나서는 시간이 너무 많아 느릿느릿 외출준비를 하다가, 몸 편하게 버스타고 잠깐 눈을 붙여야지 생각하며 경복궁 가는 버스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내 생각이 짧았다. 버스는 세검정부터 이미 거북이걸음... 전날밤부터 광화문 바로 앞에서 농성중이라잖니... 그래서 광화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경복궁으로 드나들려면 주차장 입구나 서쪽 쪽문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 형광노랑색 조끼를 입은 의경들이 경복궁 주변에도 골목마다 모퉁이마다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도 밤새 그렇게 지키고 서 있었을까, 얼굴을 살피게 되는 건 이제 그 아이들도 어느덧 다 내 아들뻘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라꼴이 엉망이라 니들도 고생이 많다. 


굳게 닫힌 광화문과는 상관없이 이날 경복궁엔 현장학습을 나온 단체 어린이 관람객이 넘치고 또 넘쳤다. 안내해설을 예약했던 인천의 어느 초등학교는 주변에 버스조차 세울 틈이 없어 약속시간보다 40분이나 늦게 궁궐에 입장을 할 수 있었다. 경복궁 주변에서 시위자들에게 세월호 관련 유인물을 받아들고 아무 생각 없이 궁궐 문을 들어선 중학생 아이들은 의경들의 검문을 받고 입장을 제지 당했다가 인솔교사의 강력한 항의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길에서 나눠주는 종잇장을 받아든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유인물을 받아든 아이들도 죄가 없고, 상부 명령으로 그런 유인물 소지를 막아야하는게 의무인 의경들도 죄가 없는 건 마찬가지. 청와대 코앞이라 늘 굳은 얼굴로 입구에서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 의경 아이들도 실은, 가끔 궁에 유명인이 나타나면 신이 나서 같이 사진찍자고 청하는 이 땅의 해맑은 청년들이다. 그 옛날 학창시절처럼 경찰병력을 무조건 '짭새'라고 부르며 적대시할수만은 없는 세대가 되고 말았구나 싶다. 시위대에게 캡사이신 최루액 뿌리고 물대포 쏘아대는 건 분명 공권력 남용이지만, 잘못은 그러라고 명령을 내리는 책임자들에게 있지 맨 앞에서 방패와 곤봉들고 싸워야 하는 아이들은 또 무슨 생고생인가. 


광화문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서, 경복궁과 그 너머 광화문 광장의 풍경은 참으로 참으로 대조적이었겠구나 싶은 하루. 오전 오후 두번이나 목이 찢어져라 해설을 하기도 했지만 담장 안쪽에 있다는 게 뭔가 죄스러워서 흥이 나질 않아 이상스레 고단하고 심신이 쳐졌다. 과연 나는 여기서 왜 이렇고 있는 걸까.... 회의가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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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 과제 발표?

투덜일기 2015. 4. 15. 18:26

6학년짜리 조카가 어제 저녁에 난데없이 인터뷰(?) 요청을 했다. 엄밀히는 조카가 직접 한 것도 아니고 올케가 전화를 해서... +_+ 학교에서 '직업탐구'와 관련된 모둠 과제 발표가 있는데, 조카녀석이 자기 고모가 번역하는 사람인데 만나보면 어떻겠느냐고 같은 모둠 아이들에게 의견을 냈고 다들 동의를 했다나. 아 근데 왜 나한테는 미리 말도 안하고! 


암튼 과제 발표 및 제출 기한이 내일이므로, 마침 개교기념일이라 노는 날인 오늘 당장 인터뷰할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했다. 아 놔;;; 조원은 남자2, 여자 2인데, 여자애들은 다 바빠서 인터뷰에 참여할 수 없고 조카와 친구가 인터뷰를 진행하면, ppt파일 만드는 건 여자애들이 담당하기로 했다나 뭐라나...  


조카는 여자애들이 바쁘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추측했다. 말로는 학원에 간다지만 어차피 평일이라 당연히 오후에 갈 텐데, 오전이나 점심때쯤 한두 시간 짬을 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그냥 귀찮은 거라고...  말을 듣고 보니, 애 엄마도 아니면서 돌연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여자애들 워낙 영악해서 수행평가에서 특히 탁월한 솜씨를 보여 남자애들이 감히 따라가지도 못한다더니만... 귀찮고 생색 안나는 일은 남자애들 시키고, 지들은 그럴듯하게 다 해 놓은 과제 발표만 맡겠다는 심보인가? -_-+++


아무튼 난데없는 상황에 팔불출 고모는 거절할 수도 없고, 그저 따라나서는 수밖에. 으휴...

그래도 계속 투덜투덜... 출판사나 주변에서 하루 전에 이런 인터뷰 하라고 통보하면 절대 안해주는데!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려면 미리 질문지를 주고 준비를 시켜야지! 했더니 녀석은 공책 반장 찢어 적은 질문 10가지를 쓱 내밀었다. 번역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학력조건, 이제껏 번역한 책, 번역하며 느낀점, 포기하고 싶었던 적, 앞으로의 활동 계획.... 으아 인터뷰 질문이 꽤나 날카로웠다. 언젠가 대학생 애들이 물어본 내용이랑 하나도 다르지가 않잖아! 누가 정한 질문이냐고 물으니, 역시나... 다들 의논을 하긴 했지만 여자애 중 하나가 적어줬단다.


또 준비할 건 없으냐고 물었더니 번역한 책들 몇권 가져가라고. 심드렁하게 대충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떤 어떤 책을 가져갈지 콕 찝어서 골라주었다. 영화 덕에 초 베스트셀러 됐던 그 책이랑... 번역과정에서 녀석이 계속 참견했던 최근 시리즈물이랑.... ^^;;

그러고는 약속장소로 가며 조카가 한 마디 또 했다. 너무 잘난 척 하지 말고, 겸손하게 인터뷰 해 줘, 고모! +_+


아무렴입쇼,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ㅋㅋ


사진도 찍어야해? 

응, 근데 얼굴 공개되는 거 싫으면 모자이크 처리해줄게. 

땡큐.. 근데 인터뷰 내용은 받아적을 거야, 녹음할 거야? 

받아적기도 하고 녹음도 할 거야. 근데 음성변조도 해줄게. 

으잉? 어.... 얼굴 모자이크 하고 음성변조하고 그러면... 좀 범죄자 같지 않을까?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거나... 으음.. 고맙긴 한데...

내맘이야!

아, 눼;; 그러세요 그럼...


덩치만 컸지 둘째라 집에선 아직도 애기처럼 굴고 노상 휴대폰 게임만 하는 것 같더니만, 밖에서 보니 녀석은 또 느낌이 달랐다. 뭔가 더 훨씬 의젓하고 진지하고... 친구랍시고 엄마를 대동하고 나타난 아이는 덩치가 조카녀석의 절반도 안되는 깡마른 몸매에 테리우스 머리! @.,@ 여자애들 못지 않게 찬찬하고 똘똘한 아이였고, 조카놈이 시키는 대로 인터뷰 질문과 진행은 그 녀석이 도맡았다. 조카 녀석은 마치 엔지니어나 PD라도 되는 듯 음성녹음을 실행하고 질문과 대답을 대충 메모하고, 내 대답이 길어지면 입모양으로 너무 길다고 눈치주고 그만 줄이라고 손짓을 하질 않나, 나름 총지휘 역할. 인터뷰 시작과 끝 마무리 멘트도 소곤소곤 친구에게 사주했다. ㅋㅋ 


카페 한 구석에 앉아서 녀석들이 시키는 대로 따박따박 대답하고 앉아 있으려니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민망하기도 하고 녀석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아 요즘 애들은 5, 6학년이면 벌써 이런 모둠 과제 발표를 하는구나. 중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대학생때도 수업에 조별 과제발표 꼭 있다던데 우왕... 


다른 모둠은 의사, 교수도 만나러 가고, 학교 선생님을 인터뷰하기로 한 애들도 있고, 방송국도 가고 했다는 말에 괜한 자격지심이 든 나는 다들 뭔가 직업이 더 빵빵한데, '겨우' 번역가로 경쟁이 되겠어? 물었더니 '당근'이란다. 뭐 그렇다면야 안심... 


남은 건 아이들이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서 ppt를 얼마나 근사하게 만들어 발표를 하느냐는 건데, 결과물이 어떨지 진짜로 궁금해진다. 대담 원고 정리하고 사진 앉히고 그러는 건 아무래도 인터뷰에 직접 참여한 애들이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었는데 과연? 요즘 열혈 부모들은 따로 숙제 전담 과외선생을 붙이거나 전문가한테 돈을 주고라도 화려한 ppt 파일을 의뢰하고 난리라던데, 조카네 모둠 아이들은 겨우 반나절 머리 맞대고 어떤 걸 만들어낼지... 다 차려진 밥상에 밥숟갈만 얹으려고 했던 여자애들은 어떻게 거들기로 했을지 (조카는 걔네들이 도와준 게 하나도 없으니 이름을 아예 빼버리겠다고까지! ㅋㅋ)... 또 괜한 걱정을 하고 앉았다. 


하여간에 조카 덕분에 퍽 색다르고 신기하고 오글거리는 경험이었다. 계속 뭔가 더 밥벌이가 좋은 ㅠ.ㅠ 재미난 일은 없을까 기웃기웃하면서 자학했던 마음도 애들 질문에 대답하며 새삼 반성이 되었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가난하지만 무엇보다 보람 있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게 중요하지 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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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요

투덜일기 2015. 4. 11. 11:25

50년 가까이 같이 산 엄마한테서 가끔 아직도 신기한 점이 발견된다. 오 놀라워라. 사람 참... 몰라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젠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오만이었던 거다.


왕비마마에게서 어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은 '활자중독증'이 의심된다는 점이다. 주변의 다독가나 인문학 전공자나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이 특징은 그 어떤 활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거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광고전단지나, 심지어 화장실 낙서도 죄다 읽어야한다고. 나도 약간 그런 경향이 있긴 하지만, '중독'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 기분에 따라서, 혹은 눈이 피곤하면 자잘한 글자 피해 질끈 눈감기도 하고 관심없는 분야는 단호히 외면할 수 있다. 헌데 울 엄마는 하이고...


공식적인 '안산 벚꽃축제'가 오늘부터라기에 우리는 일부러 어제 꽃놀이를 나섰다. 집앞에도 벚꽃이 한창 만개했지만 꽃길을 걸으려면 역시 나가는 수밖에. 실은 꽃놀이 핑계대고 자락길을 한 바퀴 끌고 돌 심산이었다. 총 7km이고 보통 걸음으로 2시간 반 걸린다는데, 동네 주민이면서도 우린 아직 한번도 완주해본 적이 없었다. 작년 가을에 후배들 데리고 거의 한바퀴 돌긴 했지만 자락길 중간에 정상을 올라갔다 내려온 터라 완주라곤 할 수 없으니...


좀 무리인 것 같았지만 암튼 결과적으로 자락길 완주엔 성공했다. 4시간만에. ^^; 안산 자락길은 유모차나 휠체어도 다닐 수 있게 만들어놓은 길이라 별 걱정을 안했는데, 우리집에서 자락길 입구까지 가는 오르막길과 계단이 복병이었다. 자락길 진입 시작도 전에 2, 3번이나 쉬었을 정도. ㅋㅋ 자락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도 중간중간 벤치가 보일 때마다 무작정 주저앉아 쉬어야하는 저질체력 노친네를 모시고 너무 무리하는 건가 더럭 걱정도 되었지만, 1/3쯤 갔을 때 중단하려면 너무 늦기 전에 되돌아가야한다고 했더니, 본인이 완주 의지를 불태웠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다고 왕비마마를 놀려대긴 했지만, 중간에 벤치에서 만난 어느 아줌마가 매일 한 바퀴씩 도는데 안 쉬고 걸으면 2시간 걸린다고 했으니 4시간이면 절반씩 걷고 쉬었다는 의미다. 70대 노친네가 뭐 그만하면 선방이라고 인정. 느릿한 걸음이야 어쩔 수 없이 내가 보조를 맞추기로 했지만, 가뜩이나 시간이 오래 걸려 답답한 상황(내가 원래 성질이 급해서 걸음이 좀 빠르다)에 불을 붙인 건 바로 엄마의 '활자중독증'.


자락길 곳곳에 위치를 알리는 번호 팻말이 붙어 있고, 갈래길마다 표지판도 붙어 있는데 아오, 왕비마마는 그걸 죄다 소리내어 읽어야 지나치신다. 현재 위치 12-1, 너와집 442미터, 봉수대 1.2킬로미터... 설상가상, 서대문형무소 주변이기 때문인지 자락길 곳곳에 항일인사의 활약상이나 남긴 글이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는데, 그 또한 서서 다 읽어야 지나가시는 거다! 으으으... 

김지섭은 나도 금시초문... -_-;


근대역사와 인물에 대해서 널리 알린다는 취지는 좋을지 몰라도, 산에 가면 흔히 나무에 묶어놓은 '입산금지' 표시처럼 펄럭펄럭 천조각에 여기저기 난간과 나무에 노끈으로 매달아놓은 모양이 내 눈엔 심히 거슬렸건만, 오마니는 모르는 사람 많다며 또 열심히 그 앞에 서서 읽고 계시더라는..


"힘드니까 일부러 서서 쉴라고 다 읽는거지!"라고 내가 퉁박을 주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나무 이름 팻말이며 지난 식목일에 심은 듯 새로 묘목에 달아놓은 성명 꼬리표, 스틱 및 아이젠 사용 금지하고 달리기도 하지 말라는 자락길 주의사항, 바위에 적어놓은 오래된 낙서까지 빠짐없이 중얼중얼중얼... +_+


장장 4시간(집에서 나간시간부터 따지면 무려 4시간 40분)에 걸친 자락길 완주를 치하하는 의미로 탕수육과 잡채밥을 사드리고는 (실은 나도 고단해서 집에 와 저녁 차리기 싫었다;;ㅎㅎ) 기어코 내가 한 마디 했다.


엄마는 활자중독증이야! 


다달이 날아오는 사학연금 회보랑 서대문구 소식지를 하나도 안 버리고서 챙겨뒀다가 두고두고 읽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거였나. 난 또 그냥 못버리는 병인 줄 알았지 거기 찍힌 활자에 탐닉하시는 건 줄은 몰랐지 뭔가. 사람 참.. 몰라요... 


저 앞에 또 뭐라고 적혔나 보자... 힘차게 걸어가는 오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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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투덜일기 2015. 4. 6. 11:15

냉이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요즘 냉이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거라 향이 옛날 같지 않다, 는 것이 엄마의 총평. 까다로운 노친네가 트집을 잡거나 말거나, 나는 식탁에 앉아 된장찌개 한 입 떠먹은 순간 입안으로 확 퍼지는 냉이 향기에 나도 모르게 아, 봄맛이네....그랬다. 음식의 '맛'이란게 대부분 기억의 총합이고 추억이라더니만, 봄마다 먹어온 냉이 된장찌개가 내 두뇌에 그렇게 새겨놓은 탓일 거다. 냉이를 먹으면 봄이다, 이런식으로.  


잔털에 붙은 흙이며 지저분한 잎사귀 떼어내고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냉이는 봄이 되어도 내가 즐겨 사는 재료가 아니다. 그런데도 봄에 냉이로 국이든 찌개든 나물이든 한번쯤은 해먹어 줘야 봄을 봄답게 맞는 것 같은 마음 역시 오랜 세월 세뇌된 머리가 짜내는 계절성 습관이겠지? 마트에 나온 냉이를 조금 째려보다가 (아 손질하기 귀찮아;;) 기어코 카트에 한 팩 넣었으니 하는 말이다. 


어렸을 땐 봄에 꼭 엄마가 끓여주는 쑥국, 냉잇국이 싫었다. 쑥국은 너무 쓰고, 냉잇국에선 흙냄새가 난다는 것이 이유였다. 조카 ㅈㅎ이가 '걸레냄새가 난다'며 모든 버섯을 치떨리게 싫어하고 못먹는 것과 비슷한 듯하다. 조카들은 싫은 음식은 죽어도 안먹고 버텨도 되지만, 그 옛날 어린 나는 싫은 음식도 꾸역꾸역 참고 먹어야했다. 편식은 안 돼! 음식 귀한 줄 알아야지. 음식 남겨서 버리면 죄받는다. 지옥에 가서 평생 버린 음식 다 먹어야 된대. 몸에 좋은 거야. 무조건 먹어... 밥상에서 이런 말로 잔소리를 했던 건 주로 할아버지와 엄마였다. 때로는 꼴깍꼴깍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느라고 눈물이 핑 돌면서도 (검정색 수건처럼 생긴 천엽이라든지, 금방이라도 피가 줄줄 흐를 것 같은 생간, 살코기보다 허연 비계와 껍데기가 더 많은 돼지고기 수육!) 난 또 '솔선수범' 착한 누나 역할에 힘쓰느라 씹지도 않고 대충 꿀꺽 삼키고는 칭찬을 듣는 쪽을 택했다. (완강하게 싫다고 왜 말을 못했니... 응?) +_+ 


어쨌든 쑥국 싫어! 냉잇국 맛없어! 엄마한테 투정을 부려도 아예 안 먹는 건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닌가? 그냥 내가 괜히 잘난척 하느라고 먹으라는 대로 다 따라 먹었을 수도 있겠다. 편식 심한 막내동생은 막 울면서 끝까지 버텼을텐데! 닭백숙은 좋아라 먹었어도, 누런 기름이 둥둥 뜬 백숙 국물은 아버지 빼곤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엄마는 어떻게든 그걸 우리한테 다 먹이려들었었다. 하지만 막내는 차라리 맨밥을 빡빡 빨아먹으면 먹었지 절대로 안 먹고 도리도리... 어떻게든 '영양가 많은' 닭국물을 먹이겠다는 일념하에 엄만 라면 좋아하는 막내를 위해, 백숙국물로 라면을 끓여바쳤지만 한 입 딱 먹어본 막내는 그 좋아하는 라면도 외면했다는 일화를 아직도 가끔 들려주신다. 막내동생의 막내아들 ㅈㅇ가 편식 심한 건 다 지 애비 닮아서 그런 거라며...


씁쓸한 맛이 나는 음식 맛을 즐기게 되면 그게 다 컸다는 증거라던가. 하지만 씁쓸한 쑥국과 흙냄새 풀풀나는 냉이를 언제부터 거부감 없이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참, 냉이 향을 흙냄새로 느끼는 건 나뿐일까? 하긴 뭐, 익힌 당근에서 나는 특유의 향을 나는 어려서부터 석유 냄새로 인식했고, 익힌 당근을 억지로 먹으면 버스멀미 하는 느낌에 시달렸다. 그래서 지금도 별로 즐기진 않음.  암튼 쑥이나 냉이를 딱히 즐긴다기보다는 그냥 계절맞이 절차로 참아넘기다 보니 먹을만하게 되었다가, 오랜 습관이 쌓이면서 조건반사처럼 계절에 따라 내가 먼저 찾게 된 거다. 제철 음식, 제철 과일은 어떤 영양제보다 몸에 좋다는 이야기에 심히 혹했을 수도 있다. 워낙 먹는 거에 탐닉하는 인간이라서... ㅎㅎ 


모전녀전이라고 어제 성묘가며 들른 떡집 앞에서 엄마는 차창을 내리고 내게 소리를 질렀다. '쑥개떡'도 있으면 사오라고... ㅎㅎ 그렇지, 봄은 또 쑥개떡의 계절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이른 탓인지 아쉽게도 쑥개떡은 보이지 않았다. 쌀가루보다 쑥이 더 많이 들어가 떡인지 쑥뭉침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 그 옛날 엄마표 쑥개떡 역시 난 별로 안좋아했다. 이름도 마음에 안들어.. 개떡이 뭐냐 개떡이... 오죽하면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속담이 있을라고. 떡이라면 모름지기 맛있는 소가 들어간 바람떡이나 송편, 고소한 콩가루를 입힌 인절미, 달콤한 백설기 정도는 돼야지 말이야. 어려서는 바람떡이나 송편, 절편을 먹을 때도 꼭 '하얀색'만 골라먹었고, 쑥색은 절대 피했었는데 언제부턴가는 쑥떡 쪽에 먼저 손이 간다.게다가 단 음식들이 싫어지면서는 제일 먼저 손이 가는 떡이 쑥절편... ^^; 


그렇다고 제철음식 먹으러 주꾸미 축제니, 새우축제니 하는 데 굳이 찾아갈 만큼의 부지런함은 없다. 일단 '축제'라고 이름붙은 공간의 번잡함과 시끄러움이 싫어! 특별히 더 싸게 파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동네 횟집에도 '봄 도다리', '주꾸미 입하'라고 적혀 있지만 그건 별로 땡기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억지로든 즐겨서든 많이 먹어본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내심 그래서 다행이다. 밥순이의 삶이 꽤 오래 되어도 아직 어류를 맨손으로 손질하는 거 영 마뜩찮다. 봄마다 도다리 쑥국 이런 거 끓여먹고 싶어진다면 얼마나 귀찮겠나! 어우 비린내 생각만해도.. ㅠ.ㅠ 그나마 냉이가 낫지. 올봄 추억의 제철음식은 어제 먹은 쑥절편이랑 냉이 된장찌개로 만족하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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