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투덜일기 2015. 5. 26. 01:38

빨간날이라서 논다는 것 말고는 (어차피 준백수 프리랜서에겐 빨간날도 큰 의미는 없다) 대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날이지만... 그래도 '불자'이신 왕비마마에겐 퍽 중요한 날이고, 가뜩이나 요즘 맘고생이 심하신 걸 아는지라 동네 개천변에 만들어놓았다는 '코끼리등과 사자등'을 보러 부처님오신날 저녁 밥먹고 나서 슬슬 산책에 동반해드렸다. 

위로도 잘 크고는 있지만 그래도 제 사촌들보다는 자꾸만 옆으로 늘어나는 비중이 큰 조카 ㅈㅎ이도 억지로 운동시킬 겸 끌고 나갈 요량이었는데, 이 짓궂은놈 좀 보게. 굳이 방울토마토를 지퍼백에 싸가지고 나가서 먹겠다고 우겼다. -_-; 그러더니 걸어가는 내내 굳이 토마토 봉지를 내게 들게 하고는 하나씩 꺼내먹으며 하는 말. "지금 나와서 걸으며 소모하는 칼로리보다 이거 한 알 칼로리가 더 높을걸! 흥!" ㅠ.ㅠ 내가 졌다....

개천변 산책로엔 코끼리등과 사자등만 켜놓은 게 아니라 꽤 큰 등 4개를 밝혀놓았고, 어느 사찰에서 주최를 한 건지 뭔가 요란하게 석가탄신일 축하연 같은 게 벌어지고 있었다. 성악가들의 합창이 스피커에서 왕왕대며 흘러나오고.... 아 젠장. 시끄럽고 사람 많은 거 딱 질색인데... 아이팟까지 귀에 꽂고 나간 조카는 시끄러워서 자기 음악 안들린다고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빨랑 집에 가자고. ㅋㅋ 그러나 왕비마마는 은근히 성악 공연이며 대금 연주에 관심을 보이는 눈치이니 곧장 들어올 순 없었다. 애당초 명색이 부처님오신날 기념 왕비마마 위로차 나간 밤산책인데. 

해서 적당히 어슬렁거리다 시끄러운 산책로를 등지고 돌아왔다. 마침 사회자가 이상한 음악 틀어놓고 사람들 무대로 나와서 춤추게 하려는 순서여서 단호히 일어설 수 있었던 것. 그런 건 울 엄마도 민망하고 주책스럽다며 싫어하셔서 어찌나 다행인지. 원래 '동이족이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중국 역사책에도 나와있다지만, 아오... 우리나라 사람들 누가 시키기만 하면 장소불문하고 뛰쳐나와 춤추고 노래하고 신명나게 노는 거 나로선 좀체 이해가 안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 용기와 끼는 다들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원. 

째뜬 이번 행사를 위해서 새로이 만든 건지, 광화문 연등행렬 할 때 썼던 걸 재활용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봄밤에 밝혀둔 코끼리등, 사자등, 부처등은 다 예뻐보였다. 왕비마마는 오전에 절에 가서도 열심히 '우리의 웬수바가지'를 위해 특별축원을 하고 기도를 했다는데 과연... ^^ 종교도 회의적이지만 특히 기복 신앙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엄마의 기도는 늘 짠하고 안쓰럽다. 

아참.. 나는 방울토마토 지퍼백 들고나가느라 휴대폰도 안 챙겼기 때문에 사진촬영은 ㅈㅎ이가 협조해주었다. 아이폰6는 야경에 강하다더니 역시... 나도 얼른 바꿔야겠다! (뜬금없는 결론이네 ㅎ 그치만 꽤 멀리 개천 안쪽에 설치된 등을 줌으로 당겨 막 찍었는데 이 정도면 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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