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투덜일기 2015. 4. 6. 11:15

냉이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요즘 냉이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거라 향이 옛날 같지 않다, 는 것이 엄마의 총평. 까다로운 노친네가 트집을 잡거나 말거나, 나는 식탁에 앉아 된장찌개 한 입 떠먹은 순간 입안으로 확 퍼지는 냉이 향기에 나도 모르게 아, 봄맛이네....그랬다. 음식의 '맛'이란게 대부분 기억의 총합이고 추억이라더니만, 봄마다 먹어온 냉이 된장찌개가 내 두뇌에 그렇게 새겨놓은 탓일 거다. 냉이를 먹으면 봄이다, 이런식으로.  


잔털에 붙은 흙이며 지저분한 잎사귀 떼어내고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냉이는 봄이 되어도 내가 즐겨 사는 재료가 아니다. 그런데도 봄에 냉이로 국이든 찌개든 나물이든 한번쯤은 해먹어 줘야 봄을 봄답게 맞는 것 같은 마음 역시 오랜 세월 세뇌된 머리가 짜내는 계절성 습관이겠지? 마트에 나온 냉이를 조금 째려보다가 (아 손질하기 귀찮아;;) 기어코 카트에 한 팩 넣었으니 하는 말이다. 


어렸을 땐 봄에 꼭 엄마가 끓여주는 쑥국, 냉잇국이 싫었다. 쑥국은 너무 쓰고, 냉잇국에선 흙냄새가 난다는 것이 이유였다. 조카 ㅈㅎ이가 '걸레냄새가 난다'며 모든 버섯을 치떨리게 싫어하고 못먹는 것과 비슷한 듯하다. 조카들은 싫은 음식은 죽어도 안먹고 버텨도 되지만, 그 옛날 어린 나는 싫은 음식도 꾸역꾸역 참고 먹어야했다. 편식은 안 돼! 음식 귀한 줄 알아야지. 음식 남겨서 버리면 죄받는다. 지옥에 가서 평생 버린 음식 다 먹어야 된대. 몸에 좋은 거야. 무조건 먹어... 밥상에서 이런 말로 잔소리를 했던 건 주로 할아버지와 엄마였다. 때로는 꼴깍꼴깍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느라고 눈물이 핑 돌면서도 (검정색 수건처럼 생긴 천엽이라든지, 금방이라도 피가 줄줄 흐를 것 같은 생간, 살코기보다 허연 비계와 껍데기가 더 많은 돼지고기 수육!) 난 또 '솔선수범' 착한 누나 역할에 힘쓰느라 씹지도 않고 대충 꿀꺽 삼키고는 칭찬을 듣는 쪽을 택했다. (완강하게 싫다고 왜 말을 못했니... 응?) +_+ 


어쨌든 쑥국 싫어! 냉잇국 맛없어! 엄마한테 투정을 부려도 아예 안 먹는 건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닌가? 그냥 내가 괜히 잘난척 하느라고 먹으라는 대로 다 따라 먹었을 수도 있겠다. 편식 심한 막내동생은 막 울면서 끝까지 버텼을텐데! 닭백숙은 좋아라 먹었어도, 누런 기름이 둥둥 뜬 백숙 국물은 아버지 빼곤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엄마는 어떻게든 그걸 우리한테 다 먹이려들었었다. 하지만 막내는 차라리 맨밥을 빡빡 빨아먹으면 먹었지 절대로 안 먹고 도리도리... 어떻게든 '영양가 많은' 닭국물을 먹이겠다는 일념하에 엄만 라면 좋아하는 막내를 위해, 백숙국물로 라면을 끓여바쳤지만 한 입 딱 먹어본 막내는 그 좋아하는 라면도 외면했다는 일화를 아직도 가끔 들려주신다. 막내동생의 막내아들 ㅈㅇ가 편식 심한 건 다 지 애비 닮아서 그런 거라며...


씁쓸한 맛이 나는 음식 맛을 즐기게 되면 그게 다 컸다는 증거라던가. 하지만 씁쓸한 쑥국과 흙냄새 풀풀나는 냉이를 언제부터 거부감 없이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참, 냉이 향을 흙냄새로 느끼는 건 나뿐일까? 하긴 뭐, 익힌 당근에서 나는 특유의 향을 나는 어려서부터 석유 냄새로 인식했고, 익힌 당근을 억지로 먹으면 버스멀미 하는 느낌에 시달렸다. 그래서 지금도 별로 즐기진 않음.  암튼 쑥이나 냉이를 딱히 즐긴다기보다는 그냥 계절맞이 절차로 참아넘기다 보니 먹을만하게 되었다가, 오랜 습관이 쌓이면서 조건반사처럼 계절에 따라 내가 먼저 찾게 된 거다. 제철 음식, 제철 과일은 어떤 영양제보다 몸에 좋다는 이야기에 심히 혹했을 수도 있다. 워낙 먹는 거에 탐닉하는 인간이라서... ㅎㅎ 


모전녀전이라고 어제 성묘가며 들른 떡집 앞에서 엄마는 차창을 내리고 내게 소리를 질렀다. '쑥개떡'도 있으면 사오라고... ㅎㅎ 그렇지, 봄은 또 쑥개떡의 계절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이른 탓인지 아쉽게도 쑥개떡은 보이지 않았다. 쌀가루보다 쑥이 더 많이 들어가 떡인지 쑥뭉침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 그 옛날 엄마표 쑥개떡 역시 난 별로 안좋아했다. 이름도 마음에 안들어.. 개떡이 뭐냐 개떡이... 오죽하면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속담이 있을라고. 떡이라면 모름지기 맛있는 소가 들어간 바람떡이나 송편, 고소한 콩가루를 입힌 인절미, 달콤한 백설기 정도는 돼야지 말이야. 어려서는 바람떡이나 송편, 절편을 먹을 때도 꼭 '하얀색'만 골라먹었고, 쑥색은 절대 피했었는데 언제부턴가는 쑥떡 쪽에 먼저 손이 간다.게다가 단 음식들이 싫어지면서는 제일 먼저 손이 가는 떡이 쑥절편... ^^; 


그렇다고 제철음식 먹으러 주꾸미 축제니, 새우축제니 하는 데 굳이 찾아갈 만큼의 부지런함은 없다. 일단 '축제'라고 이름붙은 공간의 번잡함과 시끄러움이 싫어! 특별히 더 싸게 파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동네 횟집에도 '봄 도다리', '주꾸미 입하'라고 적혀 있지만 그건 별로 땡기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억지로든 즐겨서든 많이 먹어본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내심 그래서 다행이다. 밥순이의 삶이 꽤 오래 되어도 아직 어류를 맨손으로 손질하는 거 영 마뜩찮다. 봄마다 도다리 쑥국 이런 거 끓여먹고 싶어진다면 얼마나 귀찮겠나! 어우 비린내 생각만해도.. ㅠ.ㅠ 그나마 냉이가 낫지. 올봄 추억의 제철음식은 어제 먹은 쑥절편이랑 냉이 된장찌개로 만족하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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