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6.01.29 전화 여론조사 6
  2. 2016.01.25 상황 역전 2
  3. 2015.12.17 예비 측정 4
  4. 2015.12.08 친구딸 4
  5. 2015.12.03 눈길 4
  6. 2015.11.30 멍... 8
  7. 2015.10.28 엄마의 장난감 11
  8. 2015.10.16 이상한 일 계속... 8
  9. 2015.10.12 이상한 일 6
  10. 2015.09.29 물건 정리 원칙 6

전화 여론조사

투덜일기 2016. 1. 29. 17:09

일주일에 한두번 울릴까말까 한 내 방 유선전화. 주로 텔레마케팅 아니면 보이스피싱, 그도 아니면 여론조사 전화인 걸 알기에 잘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화는 왜 안 없애는지... 인터넷이랑 결합돼서 해지는 안되는 걸거라고 확인도 없이 생각만 할 뿐이다. 아주 가끔 미국 친구가 전화를 걸기도 하니깐... 그게 핑계라면 핑계.


암튼 오늘은 오후에 걸려온 전화를 그냥 받았다. 벨소리가 시끄러워서... 총선을 앞두고, 종종 엄마네 집 전화로도 여론조사 협조요청 전화가 오는데 엄마도 나도 매번 그냥 끊곤 했다. 시간 없어요, 관심 없어요...  (일일이 질문에 대답해줄 만큼 정치에 흥미도 없고 답도 없어요..가 정답 아닐까)


암튼 그런데 오늘은 수화기 저쪽의 여론조사 요원 목소리가 너무 지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도 직업일텐데 참 힘들겠다. 텔레마케터가 감정노동 스트레스 1위라지..) 매몰차게 끊질 못했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전화 여론조사에 따박따박 대답해주는 사람들은 노년층밖에 없어서 여론조사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둥, 죄다 보수의견밖에 안나온다는둥 하는 이야기도 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연령대별로 표본집단 수를 정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조사 대상 비율을 맞추지 않을까?)

그래, 그렇다면 삐딱한 40대 여론을 대변해주마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 (만으론 아직 40대라규~ ㅋ)


첫번째 질문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것. 당연히 '매우 못하고 있다'고 대답해줬다. 이 동네 국회의원 후보의 정당별 선호도도 묻고, 지지하는 정당도 묻고, 이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가장 시급한 부분을 뭐라고 생각하느냐고도 묻고... 예전 여론조사는 새누리당이면 새누리당 야당이면 야당 설문조사를 의뢰한 주체가 너무도 티나게 편향적인 질문이 많던데 이번엔 어느 쪽에서 의뢰를 한 건지 질문만으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불편했던 건 마지막으로 캐묻는 개인신상!! 최종학력, 직업, 부모님 출신지 묻는 것부터 슬슬 짜증이 났는데, 이 사회에서 본인이 속한 계층을 고르라질 않나, 한달 수입 액수 범위를 고르라질 않나... 애당초 대체 내가 왜 이런 여론조사에 응하고 있는지 버럭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런 건 왜 캐묻는거냐고 따지자, 불편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_-;;


작년엔가 인구표본조사에 걸린 후배가 며칠 동안 메모를 붙여놓고 찾아오는 조사원과 씨름을 한 끝에 결국 대면조사에 응하다가 너무 시시콜콜 개인신상을 파헤치길래 중간에 중단하고 내쫓아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랬더니 국가시책사업 협조에 불응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나. 그래서 더 열받아 어디 한 번 법적으로 해보라고 싸웠다더니만... 


그래, 댁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그런 여론조사 항목을 만든 이들이 잘못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최대한 협조적으로 전화통화를 마쳤다. 개인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따위 전혀 믿지 않는다고 생각은 하지만, 박그네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무조건 지지할 30%의 보수층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사실이라고 본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무사히 넘어가는 나라이니 말이다. 그러니깐 여론조사를 안 믿는 것도 아니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나의 통화가 유의미했던 거라고 믿고 싶지만 또 딱히 그래보이지도 않는다. (아 결론이 뭐냐. ㅜ.ㅜ) 


으음 그러니깐 총선을 앞두고 술렁이는 정치판이 영 마음에 안들고, 이 나라는 지옥이고 돌파구는 안보이고 한심스럽고 그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가난한 소시민과 텔레마케터가 불쌍하다는 것 정도? 본인이 생각할 때 경제적으로 이 사회에서 상/중상/중/중하/하 가운데 고르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서 돌고 있다. 게으른 번역가는 수입으로 본다면 당연히 '하'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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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역전

투덜일기 2016. 1. 25. 16:51

이제는 하도 재미가 없어져서 잘 보지않는 <개그콘서트>를 어제 우연히 채널 돌리다 보게됐는데, '웰컴 투 코리아'인가 하는 코너에서 한국의 엄마들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자식이 내 옷 그거 어디 갔느냐고 찾으면, 보지도 않고 어느 서랍 몇번째 칸에 들었다고 척척 얘기해주는 엄마들의 신비로운 능력에 대해서. <응답하라 1988>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얼핏 다뤄졌었다. 엄마 없이 너무도 잘 지내던 가족들에 황망하고 섭섭해하던 엄마의 기분을 돋우려고 개정팔은 서랍을 마구 헤집어놓은 뒤 특정 옷을 찾아달라고 엄마에게 부탁을 한다. (빨래를 해서 잘 개어 서랍에 정리해둔 장본인이었을) 엄마 라미란 여사는 혀를 끌끌 차며 아들 방에 들어와 당연스레 그 옷을 찾아주고...


음. 서론이 길었는데 암튼 울 엄마도 옛날엔 그랬었다. 목도리나 장갑이 통 안보여 찾아 헤맬 때라든지, 계절이 바뀌고서 작년에 입었던 그 바지를 찾다가 신경질을 부리면 희한하게도 엄마는 내가 방금 찾아본 그 서랍 속에서 쏙 문제의 옷이나 물건을 찾아내주곤 했다. 이상하다? 왜 내가 찾을 땐 안보였지? 아깐 분명히 없었는데...


우린 집과 옷장이 좁아서 코트 같은 겨울옷은 봄부터 여름 내 세탁소에 맡겨두었다가 입을 때 쯤에나 찾아와서 입는 경우도 잦았는데, 막상 날이 갑자기 추워져 성질과 난리를 피우며 옷을 찾아 헤매고 있노라면 엄마가 새벽부터 세탁소에 가서 외투를 찾아다주기도 했었다. 와 울 엄마 기억력짱... 뭐 그런 생각을 늘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들의 그런 능력은 때때로 평생 가지 않나보다. 듣자하니 어떤 엄마들은 노년에도 여전히 그런 명민한 능력을 발휘하신다는데 (실제로 울 외할머니는 팔순이 넘도록 그런 능력의 소유자였다. 사랑방 시렁에 얹어놓은 대봉시 중에서 맨 왼쪽 두개만 잘 익었으니 그 놈으로 집어오라고 안방에 앉아서도 콕 찝어서 심부름을 시키신다든지... ) 울 엄만 아니다. 


몇년 전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본인이 잘 개어 서랍에 넣어둔 옷도 종종 못찾아, 버릇처럼 "암만 찾아도 그 옷이 안나온다"며 이상하다고 나를 들복는다. 물론 옷에 발이 달려 어디로 사라졌을 리 없으니, 내가 뒤지면 반드시 나온다. 옷장에 버젓이 걸려있는 외투나 스카프도 내 눈엔 빤히 보이는데 못찾겠다고...


그뿐인가. 나이들면 혀와 입주면 근육과 신경이 무뎌져서 아이처럼 입가에 뭘 잘 묻히거나 흘린다는 이야기를 누누히 듣기는 했지만 아오 진짜로 얼마나 흘려대는지! 엄마가 외출복과 집에서 입는 옷을 구분하지 않고 입는 걸 난 아주 질색을 하는데, 그 첫번째 이유가 앞섶에 생기는 얼룩 때문이다. 엄마가 집에서 입고 지내는 상의 앞섶은 깨끗한 게 하나도 없다. 뭘 흘린 걸 발견하고서 금방 초벌빨래를 하거나 빨래하기 전에 잘 문지르면 지울 수 있지만, 문제는 엄마가 언제 흘렸는지도 모르게 수많은 음식물 얼룩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 ㅠ.ㅠ


본인도 밥먹으면서 잘 흘린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계속 휴지로 옷도 닦고 식탁보도 문지르지만 ㅋㅋㅋ 나중에 보면 식탁 아래 밥풀이며 반찬 부스러기가 즐비하다. 오늘은 바닥에 점심에 끓여먹은 우동 가락까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이젠 삼둥이처럼 전용 턱받이를 장만하거나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하시라고 구박한 적도 있다. 몇번은 실제로 식탁 앞에서 앞치마를 입힌 적도 있지만 금세 민망해졌다. 까짓거 옷을 빨면 되지... 요양병원 환자도 아니고.. -.-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잘 둔 다고 보관해둔 반지나 팔찌, 용돈 봉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전전긍긍하는 엄마를 보면 한숨부터 푹 내쉰 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수색에 나설 수밖에 없다. 물론 엄마가 찾아본 곳에서 약간만 수색 반경을 넓히면 문제의 물건은 금방 발견된다. 요샌 종종 서랍안에 멀쩡히 들어 있는 손톱깎이도 사라졌다고 찾는 판국이라(다른 물건에 조금만 가려져 있어도 못 찾으신다) 나의 짜증과 분노는 점점 심해진다. 아 대체 왜 잘 찾아보지도 않고!!


그러나 그 분노가 향하는 진짜 대상은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노화와 무기력을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인 것 같다. 더는 우리 엄마가 전지전능 초능력자 같았던 슈퍼맘이 아니고 그냥 늙어가는 노인이라는 것을, 그 옛날 엄마가 우릴 보살펴주었듯이 역전된 상황에서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싫은 거겠지.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들이 사방에서 엄마, 엄마, 여보, 여보 불러가며 이것저것 찾아달라고 해달라고 보챘던 시절의 울 엄마 나이는 사십대였다. 내가 대학1학년 때 울엄마 나이가 겨우 45세. 지금의 나보다 한참 젊다. ㅠ.ㅠ 그러니깐 30여년이나 지난 지금의 엄마에게 그 옛날의 전능함을 기대하면 안되는데, 중년이 되어서도 도무지 철딱서니 없는 딸은 여전히 늙은 엄마의 현재 모습을 선선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정작 엄마는 이제 초연한 것도 같다. 내가 아무리 길길이 날 뛰어도, 늙으면 애가 된다잖니, 너도 늙어봐라, 어쩌겠니 이렇게 된걸... 그러면서 웃어넘기신다. 그래서 다행이지만, 이렇게 모녀의 상황이 역전된 세월이 서글픈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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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측정

투덜일기 2015. 12. 17. 04:10

올해가 2년마다 돌아오는 건강검진 받는 해인데 1년 내내 차일피일 미뤘다. 근육량을 좀 더 늘인 다음에 받아야지, 체중도 좀 더 줄인 다음에 받아야지, 운동을 좀 더 빡시게 한 다음에 예약해야지... 그러면서. ㅋㅋ


그러다 어느새 12월. 올해 안에 받을까 말까, 1월까지는 연장해서 받을 수 있다는데 괜히 분주한 연말 보내고 나서 연초에 조신한 마음으로 받을까.. 괜히 머리아프게 고민하다가 지난주에 검진센터에 일단 전화를 걸었다. (예약 전화 전화 걸기 싫어서 검진이 미뤄졌을 수도 있다. 어휴...  전화기피증은 점점 더 심해진다.) 연말에 검진자가 몰려서 올해 안에 스케줄 못잡으면 하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할 작정이었다. 


근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안 몰렸는지, 주말만 아니면 평일엔 12월 말에도 검진을 받을 수 있다는 희소식. 그러나 막상 날을 잡고보니 24일이다. +_+ 크리스마스이브에 건강검진. ㅋㅋ 웃기지만 뭐 상관없다. 기독교인도 아니고 별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막상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생각해보니 걱정이 됐다. 체중이랑 근육량이랑 혈압이랑 이젠 다 정상일까 어쩔까. 2년전엔 혈압 때문에 골치가 아팠었는데... (집에서나 엄니 따라간 병원에서 재면 정상이라규~!!)


건강하게 몸 챙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작년에 등산을 시작했다면, 올해는 스마트폰 앱을 깔아놓고 1월부터 매일 운동을 병행했다. 하루도 안빠졌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래도 스쿼트, 플랭크, 런지, 팔굽혀펴기... 등등이 골고루 들어가 있는 근력운동을 나름 꾸준히 했다. 일본 여행 가서도 했을 정도니 뭐... 


그래서 근육이 얼마나 생겼나  더 궁금한 마음이 들어, 예비 측정 삼아 오늘 구청 보건소 체력측정실에 내 발로 찾아갔다. 거기 가면 예약 안하고도 체성분 분석을 받을 수 있다기에 연초부터 가야지 가야지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연말에나 실천하게 된 것.


역시나 쫄았는지, 아니면 너무 운동을 빡시게 하고 가서(좀 많이 걸은 데다 6층까지도 계단으로 그냥 올라갔다) 혈압은 금방 안 내려갔다. 집에서 재면 정상이라고 우겨서 일단 무시하기로 하고, 체성분 분석기계에 올라갔다. 


ㅠ.ㅠ 키는 0.5센티미터 줄은 걸로 나와서 처음부터 속상했는데 ㅎㅎ 신체나이가 '무려 5살' 어리게 나와서 다시 희희낙락. 체중과 체지방량은 2년 전에도 적정수준이었으니 그렇다치고, 부족했던 근육량이 드디어 '적정 범위'에 들었다. 야호! 운동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로군.


그런데 하체에 비해서 팔근육이 심히 부족하댄다. 평균 미달 수준.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근육량도 차이가 심하고... 덤벨 운동이랑 팔굽혀 펴기를 좀 더 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짝다리도 조심하라고. 쳇. 혼자서 근력운동을 한 폐해인가? 아니다... 등산 가보면 밧줄에 매달릴 때 팔 힘도 많이 늘었다고 느끼지만, 등산이야 기본적으로 전신+하체 강화운동이지 뭐. 팔 운동 할 때는 좀 설렁설렁 한 게 사실이다. 


째뜬 신체나이가 젊어진 게 어디람! 2년전엔 한살 더 많게 나왔었는데.. ㅎㅎㅎㅎ 남은 일주일간 위험스러운 송년모임이 2번이나 더 있긴 하지만, 조심조심 술과 과식을 멀리하며 잘 버텨봐야겠다. 이렇게 건강에 신경쓰는 걸 보면 확실히 늙었구나 웃기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아픈 것보다는 낫겠거니... 하련다. 졸지에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건강염려증이 막 도지는 것 같기도 하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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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딸

투덜일기 2015. 12. 8. 20:53

아마도 나에게 자식이 있다면 종종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며 들먹여 애들 기죽이기에 아주 딱인 친구 딸이 하나 있다. 물론 그집은 딸 둘 모두 너무도 모범적이서 노상 칭찬하기 바쁘지만, 두 딸 중에서도 특히 첫째는 지금 스물세살인데 내가 생각해도 존경스러운 아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

벌써 오래전이지만 고등학교 입시 때, 특목고에 충분히 갈 실력임에도 일반고를 선택했다. 친구 부부는 다행히도 자식의 장래에 대한 계획을 본인에게 맡기는 편. 부모로서 조언은 해도 최종 결정은 아이가 한다. (그래서 나중에 속을 푹푹 끓일망정, 강요는 하지 않는 친구 부부도 물론 훌륭하다)  특목고 아이들만의 괜한 특권의식과 잘난 분위기가 싫다는 것이 아이가 일반고를 선태한 이유. 

그러더니 고등학교때 견문을 넓히겠다며 미국으로 '불쑥' 1년간 교환학생을 떠났다(나중에 듣자하니 수능 준비엔 엄청난 손실이라나 뭐라나...) .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보니 분위기며 전망이며, 미국에서 대학을 진학하는 게 이롭겠다는 주변의 조언과 압력(?)이 많았단다. SAT를 준비한다기에 모두들 당연히 미국 대학으로 입학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이 아이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고3으로 복학했다. 이유? 미국 대학에서 막상 입학허가를 받고보니 외국인 학생이라 등록금이 어마어마하더란다.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가면 자기네 아버지 회사에서 등록금을 다 대주는데(!), 등록금에다 체류비까지 괜한 돈 들이며 부모 등골 파먹기 싫다는 것이 아이가 귀국을 선택한 이유였다. (정작 부모는 생활비 아껴 유학 비용 대줄 용의가 있었는데도! 친구는 오히려 불리하게 고3 직전에 귀국해 복학한 딸을 내심 원망했었다. 남들은 일부러 유학도 가는데.. 그러면서)

특목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수시에선 실패하고, 정시로 엄청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In Seoul에 성공한 아이는 동아리 활동이며 성적이며 아르바이트며,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열심히 산다고 했다. 대기업 다니는 아버지네 회사에서 등록금을 전액 대주는데도 굳이 종종 장학금도 받아주시고 ^^; 용돈벌이를 위해 과외는 기본, 아이스크림 푸고 빵 파는 아르바이트도 두개씩 막 해대는 강철 체력과 정열... 어휴... 

나는 ㅇㅈ이가 장차 유엔총장이 될 거라고 장담하는 걸 즐기는데, 여기저기 봉사하는 마음으로 보나 통 큰 생각으로보나 실력으로 보나 못할 것도 없다! (영어도 잘하지만 심지어 수학, 물리 이딴 거 좋아하는 이과생!)

하여간에 요즘 웬만한 대학생들은 그놈의 '스펙' 때문에 어학 연수나 교환 학생 다녀오는 게 필수란다. 어차피 요새는 대학도 돈이 있어야, 사교육비를 펑펑 써야 갈 수 있는 시대이고, 간신히 입시에 성공해도 제손으로 등록금을 벌어야하는 학자금 융자파 아이들은 그런 스펙 쌓기 경쟁에서도 당연히 밀려난다. 으휴, 알수록 썩은 세상.

암튼 친구는 2학년 마치고 덜컥 휴학을 결정한 큰딸이 그 필수 코스를 밟는다고 할 줄 알았단다. 그러나 이 아이는 무조건적인 스펙 쌓기보다는 차라리 배낭여행을 떠나겠다며 돈 모으기에 돌입했다. (아 물론, 대학시절 배낭 여행도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다채롭게 만들기 위한 필수 과정이란 말도 있다 ㅠ.ㅠ) 과외 말고도 시간제 알바를 두세 탕씩 뛰면서... (동시에 연애도 하면서!) 

친구 말로는 ㅇㅈ이가 그렇게 악착같이 9개월간 매일매일 알바로 번 돈이 무려 1600만원. 결국 ㅇㅈ이는 부모에게 단돈 한푼도 손 벌리지 않은 채 자력으로 지난 10월 4개월 여정으로 남미 여행을 떠났다. 그보다 먼저 초여름엔 유럽 한바퀴 돌아주시었고... (테러 발생 이전에 다녀온 것도 어찌나 선견지명이 있는지 원..)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아래 사진들은 얼마 전 ㅇㅈ이가 쿠바 아바나에서 찍어보낸 사진들이다. 

멕시코는 어딜 가나 프리다 칼로로, 쿠바는 체 게바라로 먹고사는 것 같다고... ㅎㅎ

남미가 대체로 인터넷 환경이 좋질 않아서 친구 부부는 벌써 두달째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매일 무사하다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아오... 가끔 친구가 전달해주는 남미의 그림 같은 사진들에 감탄하고 반색하며 부럽다, 멋지다, 훌륭하다... 칭찬하기에만 바쁜 나는 가끔 너무 심하다 싶은 친구의 걱정을 위로하다말고 종종 짜증이 난다.

그러면서 실감하는 건... 아... 역시 나는 엄마 입장이 아니고 딸 입장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구나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싶다. 길 미끄러운 데 울 엄니가 나돌아댕기면 나도 괜한 걱정과 망상에 휩쓸린다. 나의 조카가 나중에 커서 배낭여행을 떠난다면 나 역시 전전긍긍 염려하고 앉아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재난이라든지 테러에 휩쓸리는 게 아닌 한, 믿을만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대로 헤치고 나가는 길이라면 그냥 지켜보며 박수쳐주기만 해도 되는 게 아닐까? 아 뭐가 그렇게 걱정이냐고!!?? 경솔하게 일부러 위험 지역으로 찾아들어갈 아이도 아니고, 듣자하니 놀라운 친화력으로 가는 곳마다 친구들을 만드는 것 같던데... 나 원 참.. 

​가끔 넌 자식이 없어서 절대 부모 마음 모른다는 둥, 본인이 닥쳐보지 않으면 짐작도 못한다는 둥 내 기를 팍팍 죽이는 말을 듣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영 철이 안들어 어른 취급을 해줄 수 없다는 이도 있었다. 그 사람이랑은 관계를 끊어버렸지만... 암튼 글쎄... 꼭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 있지 않나? 4대강은 반드시 국토를 죽이는 사업이라든지, 아라뱃길은 괜한 돈지랄이라든지...

과연 내가 어떤 엄마가 됐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결코 알 수도 없는 일지만, 어쨌든 내가 잘 아는 '딸의 입장'에서 볼 때 엄마들이란 그저 걱정하는 것이 본능이고 직업이겠으나 앞가림 잘 하는 딸이라면 괜한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이토록 시스템이 엉망진창인 한국에서 살아가는 게 더 걱정이구만 뭘... 


​친구가 마지막으로 전달해준 ㅇㅈ이의 여행지 사진은 갈라파고스였다. ㅠ.ㅠ 바닷가에서 이렇게 물개들이랑 거북이랑 같이 헤엄치며 노신다고... 아.. 난 그저 ㅇㅈ이의 용기와 젊음과 열정과 추진력이 부럽고 또 부러울 따름이다. 2월에 돌아오면 늙은 이모들이랑 팬미팅하자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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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투덜일기 2015. 12. 3. 22:06

오늘은 이상하게 눈길을 걷고 싶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나게 눈을 밟으면서.

그러나 느즈막히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푹한 날씨에 벌써 눈은 거의 다 녹아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뭇가지에나 조금 매달려있을뿐.. 

그렇다면 방법은? 동네 산에라도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마침 도서관에 책 갖다줄 것도 있겠다 겸사겸사 집을 나섰다. 기온은 영상이라지만, 산속은 그래도 추울지 모르니깐 따뜻한 물도 좀 챙기고 귤도 하나 주머니에 넣었다. 간간이 부는 바람은 꽤나 싸늘. 후드티 모자를 푹 뒤집어썼다.

눈내린 날의 늦은 오후. 늘 사람들로 버글거리던 개천변 산책길에도 인적이 드물더니만 산길을 오르는 오솔길엔 사람구경하기가 정말로 어려웠다. 아이 좋아라. 온 산이 다 내것이여~

공포영화나 롤러코스터는 무서워하지만, 혼자 집에 있는다든지 깜깜한 곳에 혼자 있는 것,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가는 따위는 무섭지 않다. 오히려 사람이 나타나야 괜히 무섭지... 산속에서 저 멀리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불현듯나타나는 할매, 할배들이 아예 없어서 더 좋았다. 고즈넉하고 호젓한 분위기.

하지만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눈길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죄다 질퍽질퍽 녹아버렸;;; 그래도 실망은 일렀다. 정상 봉우리를 남겨두고 마지막 산모퉁이를 돌자 그때부턴 정말로 눈길 시작. 사람들이 죄다 밟고 다니긴 했어도 뽀드득뽀드득 제대로 소리도 나주시고, 오가는 바람에 눈보라가 가끔씩 마구 휘날려주시고, 아주 깊은 산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정상 봉수대에서 한바퀴 서울시내를 내려다본 뒤 미지근하게 식은 물 원샷하고는 서둘러 내려오는 길.... 아 쒸.. 길을 잘못들었다. 새하얗게 눈이 덮인, 아무도 걷지 않은 산길을 내가 제일 먼저 오르고 싶다는 이상한 로망이 있지만, 게으름 때문에 도무지 실천을 못하는 것말고도 혹시 산속에서 괜히 길을 잃으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동네 산이기는 해도, 아니 동네 산이기 때문에 길이 하도 여러갈래라서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다른 동네로 내려가기십상인 게 이 동네 @산이다. 

거기다 자락길까지 만들어놔서 사방팔방으로 다 통하게 해놨으니... 곳곳에서 만나지는 정자도 비슷비슷, 운동기구도 비슷비슷, 약수터도 비슷비슷... 오늘은 그냥 눈 녹은 길만 따라 올라갔다 내려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어디선가 방향을 잘못 들었나보았다. 

올라갈 때 본 정자가 틀림없는 줄 알고 내려가보니 완전히 낯선 길 옆이었다. 젠장. 머릿속으로 방향을 더듬어 내려간 곳은 당연히 연희동 쪽인 줄 알고 방향을 틀어 걸어갔는데.. 아 놔... 또 멘붕. 내가 내려간 곳은 연희동쪽이 아니고 정 반대인 무악재쪽이었다. ㅋㅋ 완전히 산을 넘어가버렸네그려. 그나마 중턱에 뚫린 자락길을 다시 돌아서 무사히 도서관에 들렀다가 집에 왔지만, 길 잃은 줄도 모르고 산속에서 좋아라 사진 찍고 흥얼대다가 맑아졌던 파란 하늘이 다시 구름으로 덮이면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순간 살짝 겁이 났다.

여기서 괜히 빙판길에(점점 기온이 떨어졌는지 중턱 아래쪽도 눈길이 얼어붙기 시작) 넘어져 팔이라도 부러지면 혼자서 낑낑대며 병원까지 가야하는 건가 어쩐가...  ㅋ 왜 괜히 재수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가 자책하며 킥킥거렸다. 당연히 조심조심 걸어 한번도 안넘어졌음.   

올초부터 눈길에 꼭대기까지 안가본 것도 아니고... 늘 다니던 산길에서 길을 잃다니 (역시 눈이 덮이면 다 낯설어보인다) 좀 바보같았지만, 그래도 나름 뿌듯하고 보람찼던 눈길 탐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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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투덜일기 2015. 11. 30. 21:15

요즘 누가 잘 지내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곧장 안나온다. 어.. 으음.. 글쎄... 

그저 멍... 

머리가 작동을 잘 못하는 듯 누가 뭘 물어도 대답을 잘 못하겠고, 뭔가 설명을 할 때도 단어가 잘 생각이 안나고, 그래도 뭔가 애써보려는 의욕이 앞서다보면 괜히 버럭 화를 내고 앉았다. 


무작정 우울해지는 11월 탓이라고, 특히나 왜 또 그렇게 비는 내리는지, 혹은 대책없이 너무 열심히 놀고 난 뒤의 후유증이라고, 그도 아니면 진짜로 호르몬에 이상이 찾아온 '갱년기'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어쩌면 그 모든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여행 다녀온 후기를 뭔가 알차게 기록해 놓고 싶다는 생각은 의외로 스트레스여서, 개학 앞두고 방학숙제 잔뜩 밀린 아이 같은 심정으로 괜히 월말을 앞두고 전전긍긍했었다. 사진만 미리 대충 골라 비밀글로 올려두고는 차차 수정해서 마무리해야지.. 그랬는데 그마저도 귀찮을 줄이야! 결국 배째라.. 숙제 안해가면 그만이다.. 그런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ㅎ


해마다 겨울이 시작되면 아 다 귀찮다, 춥다, 동면하고 싶다, 짜증부리는 일을 반복하고는 있지만 쓸데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별것 아닌데서 의미를 찾고 집착하고 미리 고민하는 나의 습관은 한해를 또 허송했나 반성모드 돌입과 함께 또 한 해는 어떻게 보내게 될까 공포에 사로잡히면서 그 증상이 극심해지는 것 같다. 


올해는 20주년이네 어쩌구 시건방떨다가 더 민망해진 게 아닐지. ㅠ.ㅠ 뜨르르하게 장소빌리고 지인들 초대해서 파티하겠다는 계획은 전격 폐기했다. 귀차니즘이 가장 크고, 시간도 너무 없고, 비용도 만만찮고... 막상 누굴 오라고할지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져서 (임시 준비위원 자처한 후배가 초대할 사람 목록부터 뽑으라는데-- 출판계 부터--으악.. 졸지에 무서워졌다) 그냥 조용히 자축하기로 마음을 바꿨음. ㅋㅋ  니가 그렇지 뭐. 회사에서 20년 근속상 준대도 자괴감에 빠져 시큰둥할 인간이 스스로 판을 벌이겠단 생각이 애당초 웃겼다. 


하여간 그래서 더욱 자중하며 새해까지 남은 한달을 잘 보내기로. (꼴랑 블로그에 몇줄 쓰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휴..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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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장난감

투덜일기 2015. 10. 28. 14:10

스마트폰이 요즘 어른들의 필수 장난감이 된 거야 주지의 사실. 70대 노년의 울 엄마도 스마트폰 세상으로 입문하신지 석달이 넘었는데, 아이고 안 사드렸으면 어쩔 뻔 했나 싶다.

처음엔 문자놀이에 빠져 집에 있는 나한테도 언제 일어날 거냐, 점심 뭐 먹을 거냐, 장보러 안가냐... 띠리링 띠리링 아주 귀찮게 하시더니만 ^^

요샌 사진 재미에 푹 빠져 계시다. 아예 동네 개천변 산책길의 꽃과 풍경 사계를 기록으로 남기시겠다고!

하루에도 수십장씩 찍어온 사진들을 내밀며 좀 보라고 하는데 무심한 딸은 그저 귀찮을 뿐이고!! ㅋ 멋지다, 잘 찍었다고... 영혼없는 칭찬도 하루이틀이지 원...
휴대폰을 내밀어도 보는 둥 마는 둥 했더니 이젠 문자나 카톡으로 사진 폭탄세례!! 아 놔;;

나뿐만 아니고 두 아들과 만만한 시누이들한테도 막 자랑삼아 보내시는데... 한꺼번에 사진 너무 많이 보내는 거 실례고 민폐라고 암만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 바로 답장 안하면 삐치기나 하실 뿐.

근데 또 열렬히 울 엄마의 작품생활을 지지하는 이가 나타났으니... 화가이신 울 막내고모다. ^^*
마침 요즘 그리는 작품이 풀, 나무, 꽃과 관련이 있대고 준비하는 논문도 풀꽃의 도상화 작업에 대한 거라나. 해서 오히려 아마추어가 찍은 소박한 풀과 꽃 사진이라 작품에 더 영감을 준댄다. 심지어 "언니, 그러다 사진 작품전 열어야겠어요"라고까지 (너무 심한) 극찬을..  ㅠ.ㅠ 
그 얘길 듣더니 울 엄니 더 신나서 작품활동에 힘쓰시고 자꾸만 또 나한테도 좀 보라고.... ㅋㅋ

내가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서 엑기스 매뉴얼을 손수 대여섯장이나 적어드렸는데 아무래도 독학하며 글로 익히자니 한계가 있었는지, 오늘부턴 아예 구청 스마트폰 초보교실에 등록해 공부하러 가셨다. 놀라운 학구열!

일요일에 1박2일로 부산 모녀여행을 다녀왔는데, 자긴 충전기 안챙겨가도 될 거라고 장담했다가 배터리 떨어진 걸 어찌나 아쉬워 하시던지 결국 올라올때 부산역 편의점에서 급속충전을 해드렸다. 근데 그 이후 이상하게 휴대폰이 먹통! 전화만 되고 시간날짜도 초기화되더니 문자 카톡이 안됐다. 내가 배터리 빼면서 유심칩 빠뜨렸나 덩달아 식겁. ㅠㅠ

안타깝게도 서울역엔 kt매장이 없고 비까지 내리는 밤중이라 얼렁 택시타고 집에 와야했다.
해서 다음날까지 휴대폰 놀이를 못하게된 왕비마마.. 거의 멘붕이신듯 안절부절! ㅋㅋ 스마트폰 금단증상이 따로없더군. ㅎㅎ 

어제 득달같이 휴대폰 매장에 갔더니 유심칩 빠진 건 아니라서 부팅을 여러번 하고 설정을 고치고 이것저것 눌러보더니만 금방 고쳐줬다. 그제야 안심하고 환하게 웃는 노친네. 아들들한테 카톡으로 부산 사진 자랑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병이 날 지경이었나보다. 아이고...

고교 동창모임에서 친구들이 큼지막한 스마트폰 화면 쓱쓱 넘기며 손주들 사진 자랑할 때 부러웠더다니... 이젠 울 엄니도 손주들 사진에 당신 사진, 손수 찍은 작품사진까지 아주 어딜가나 자랑이 한창이다.

울 엄니 때문에 또 어느 할머니도 스마트폰 세상에 입문하실지도 모를 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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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연일 너무 궁금해서 미치겠다.

아무래도 무딘 내가 최근에야 발견했을 뿐, 아마 새의 우리집 유리창 공격은 꽤 여러날 지속되고 있었다는 심증이 굳어지고 있다. 짝짓기철이라서 자기랑 똑같이 생긴 예쁜 짝을 찾는 건가???

새가 날아드는 시간대도 거의 매일 일정한 것 같다.

아침 7-8시 전후

점심 12시 무렵

그리고 저녁 5시쯤...

어제는 어찌나 요란하게 삐리리리 울어대다 유리창을 두들겨대는지 아침에 선잠이 깰 정도였고, 오늘 궁궐 봉사 가느라 일찍 일어나서 왔다리갔다리 하다보니 또 똑같은 자리로 날아들고 있었다. 날갯짓을 하는 장면 포착엔 실패했지만 그래도 스카프 뒤집어쓰고 변장하고 기다렸다가 도도하게 돌아서는 놈의 모습을 포착하는데는 성공!  

대체 무슨 새일까나...  

​아오.. 유리창 더러운 거 너무 티난다. ㅋㅋ

나름 버드세이버라고 오려붙였던 맹금류 형체는 내가 봐도 너무 어설펐다. 아무 소용이 없어서 하루만에 떼어버렸는데 그래도.. 사진은 남았음 ^^ 더 크게 아주 무시무시하게 만들어 붙였어야 효과가 있었을까... 내딴엔 알량한 가위질로만 '솔개'를 형상화한 것인데... 궁금증은 풀 길이 없고 답답하여라.. 끙... 

내일도 또 날아오는지 아주 새 관찰 일기를 쓸 판이다. 느낌으론 짝짓기 철이 끝날 때까지 새의 공격은 계속 될 것만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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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

투덜일기 2015. 10. 12. 23:32

어제 오늘 베란다 창문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렸다.

왕파리가 날아가다 유리에 부딪치는 소리도 아니고...

말벌이 밖에서 돌진해오는 소리도 아니고...

태풍 불때 바람에 흔들린 나뭇가지가 휘청휘청 유리창에 살짝 닿을 때의 소리에 가장 가까운 것도 같고... 

누가 손톱으로 톡톡 유리를 두들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대체 뭐지?


빨래 건조대 너머로 내다보아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밖에서 삐리릭찌르르르르 새소리만 요란할 뿐.

혹시 귀가 이상해져셔 환청이 들리는 건가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단 생각에 주렁주렁 빨래가 널려 있는 건조대를 창가에서 옆으로 치우고 

창문 시야를 죄다 틔워놓고 지켜보고 있으니 범인이 금방 발각되었다.


크기는 딱 참새 만하고 색깔은 검정색과 흰색, 회청색이 어우러진 새 한마리가 창문 한 가운데도 아니고 맨 아래쪽 창틀 바로 위 유리를 부리로 톡톡 두들기며 자꾸 날아들었다. 너 뭐니?


송추 전원주택에 사는 막내고모네는 넓은 유리창으로 가끔 참새도 날아들고 제비도 날아들어 전속력으로 날아온 새들이 죽어 테라스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는 일이 있어서, 신문지를 붙이곤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나마 이 영리한 작은 새는 전속력으로 날아와 몸을 부딪치는 게 아니라 작은 부리로 유리창을 톡톡 톡톡 두들기며 날갯짓을 하는데, 그게 하도 구석이라 건조대로 창이 절반도 넘게 가려져 있을 땐 보일 턱이 있나. 


이누무시키, 왜 들어오려고 그러느냐고 내가 창문 앞에서 오락가락 위협적인 몸짓을 보였더니 금방 포르르 벚나무로 날아가버렸는데, 겁도 없이 내가 가만 서 있으면 자꾸 또 날아와 그짓거리를 했다. 너 뭐냐? 밖에서 볼 땐 우리집 유리창에 나뭇가지 열매나 벌레들이 더 유혹적으로 비치나? 아래쪽은 베란다 난간 때문에 나무가 안 비칠텐데... 흠. 


집앞 벚나무와 살구나무에는 뭐 먹을 게 그리도 많은지, 버찌가 그렇게도 맛있는 먹이인지, 아니면 잎사귀마다 구석구석 작은 벌레들이 살고 있는지 아침마다, 아니 온 종일 온갖 종류의 새들이 날아와서 시끄럽게 먹어댄다. 산비둘기도 날아오고, 이름모를 각종 작은 새들이 와글와글... 참새는 아니던데. 


전면 유리나 거울로 된 대형건물엔 새들이 마구 날아들어 죽기 때문에 맹금류의 모양을 한 스티커를 붙여서 미리 도망가게 한단다. 그걸 버드세이버(bird-saver)라고 한다지? 우리집에도 맹금류 스티커를 붙여야하는 걸까, 그냥 살살 두들기는 거니깐 냅둬야하는 걸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는 아무려나 인간으로선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일도 또 녀석이 창문을 두들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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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정리 원칙

투덜일기 2015. 9. 29. 17:28

지지난주엔 까마득한 후배들의 원어연극 공연을 보러갔었다. 대체로 숫기가 없고, 원어 연극도 당연히 '공부'의 일환으로 생각했던 늙다리 선배들과 달리 요즘 아이들은 주로 '스펙쌓기'의 목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기 때문에 배우를 시켜주지 않으면 아예 중간에 빠져버린단다.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면 개인 시간을 죄다 바치면서 몇달간 지속되는 연극 연습을 견뎌낼 동기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 옛날 나는 무대에 세워준대도 싫고, 순진하게 그냥 영어로 희곡 작품 하나 통째로 외우는 게 어딘가... 그런 걸로도 충분하다고 여겼었는데 ㅋㅋ 


암튼 끼 넘치는 후배들의 공연은 해마다 기대치를 갱신하고, 이번에도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아마추어 학생들의 원어연극은 그냥 대사만 안까먹고 다 외워도 훌륭하다는 게 관람객으로서 기본적인 입장이지만(요샌 자막도 나와주어서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고 사실 대사 버벅거려도 잘 모른다 ^^), 요즘 애들은 대체로 '연기'가 된다! +_+ 놀라워 놀라워...


하여간 뭐 그 연극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고, 작품에 나왔던 대사가 요즘 계속 생각난다. 등장인물 하나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라며 애인에게 물건 정리 원칙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1. 쓸모가 있는가? (Is it useful?)

2. 나를 기분좋게 해주는 물건인가? (Does it make me happy?)

3. 내가 좋아하는 건가? (Do I love it?) 


이 세 가지 질문에 해당되지 않으면 내다 버리는 게 맞다고 해서, 자기 남편을 내다버렸다(!)는 설명이 이어졌는데 깔깔 웃으며 다들 맞다맞다 박수를 쳤다. 


물론 세 가지에 다 해당되는 물건이나 대상이라면 꼭 곁에 두어야한다는 의미다. 명절을 앞두고 살림을 또 일부 정리하면서 계속 되뇌여보았고, 아직도 집안에 내다버릴 물건이 가득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뒤풀이 자리에서 후배 하나가 어떤 '관계'를 놓고서도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인상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관계마저도 '쓸모'를 따지는 건 씁쓸하지만, 친구가 아니고서야 주로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접근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친구와 우정이 더 소중한 거겠지. 


근데 그걸 알면서도 사실 무심함을 핑계로 친구와 우정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은 별로 기울이지 않는다. 그냥 간간이 떠올리면서 잘 지내겠지, 문득 안부가 궁금하고 보고 싶기도 하지만 먼저 선뜻 연락을 하는 건 민망하고 꺼려지는 기분. 어쩌면 상대는 나를 그간 '관리가 필요한' 인간관계망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지레짐작. 그러니깐 그냥 가만히 있는 쪽이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자포자기의 심정? 어쩌면 게으름일수도 있겠고. 


무심한 나에게, 너 그러다가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수가 있다고 경고하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거라는 말도. 으음. 돌연 마음이 스산해서 휴대폰 연락처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전화 한통 걸지 못하고 그냥 또 이렇게 블로그에나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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