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두번 울릴까말까 한 내 방 유선전화. 주로 텔레마케팅 아니면 보이스피싱, 그도 아니면 여론조사 전화인 걸 알기에 잘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화는 왜 안 없애는지... 인터넷이랑 결합돼서 해지는 안되는 걸거라고 확인도 없이 생각만 할 뿐이다. 아주 가끔 미국 친구가 전화를 걸기도 하니깐... 그게 핑계라면 핑계.
암튼 오늘은 오후에 걸려온 전화를 그냥 받았다. 벨소리가 시끄러워서... 총선을 앞두고, 종종 엄마네 집 전화로도 여론조사 협조요청 전화가 오는데 엄마도 나도 매번 그냥 끊곤 했다. 시간 없어요, 관심 없어요... (일일이 질문에 대답해줄 만큼 정치에 흥미도 없고 답도 없어요..가 정답 아닐까)
암튼 그런데 오늘은 수화기 저쪽의 여론조사 요원 목소리가 너무 지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도 직업일텐데 참 힘들겠다. 텔레마케터가 감정노동 스트레스 1위라지..) 매몰차게 끊질 못했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전화 여론조사에 따박따박 대답해주는 사람들은 노년층밖에 없어서 여론조사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둥, 죄다 보수의견밖에 안나온다는둥 하는 이야기도 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연령대별로 표본집단 수를 정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조사 대상 비율을 맞추지 않을까?)
그래, 그렇다면 삐딱한 40대 여론을 대변해주마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 (만으론 아직 40대라규~ ㅋ)
첫번째 질문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것. 당연히 '매우 못하고 있다'고 대답해줬다. 이 동네 국회의원 후보의 정당별 선호도도 묻고, 지지하는 정당도 묻고, 이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가장 시급한 부분을 뭐라고 생각하느냐고도 묻고... 예전 여론조사는 새누리당이면 새누리당 야당이면 야당 설문조사를 의뢰한 주체가 너무도 티나게 편향적인 질문이 많던데 이번엔 어느 쪽에서 의뢰를 한 건지 질문만으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불편했던 건 마지막으로 캐묻는 개인신상!! 최종학력, 직업, 부모님 출신지 묻는 것부터 슬슬 짜증이 났는데, 이 사회에서 본인이 속한 계층을 고르라질 않나, 한달 수입 액수 범위를 고르라질 않나... 애당초 대체 내가 왜 이런 여론조사에 응하고 있는지 버럭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런 건 왜 캐묻는거냐고 따지자, 불편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_-;;
작년엔가 인구표본조사에 걸린 후배가 며칠 동안 메모를 붙여놓고 찾아오는 조사원과 씨름을 한 끝에 결국 대면조사에 응하다가 너무 시시콜콜 개인신상을 파헤치길래 중간에 중단하고 내쫓아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랬더니 국가시책사업 협조에 불응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나. 그래서 더 열받아 어디 한 번 법적으로 해보라고 싸웠다더니만...
그래, 댁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그런 여론조사 항목을 만든 이들이 잘못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최대한 협조적으로 전화통화를 마쳤다. 개인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따위 전혀 믿지 않는다고 생각은 하지만, 박그네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무조건 지지할 30%의 보수층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사실이라고 본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무사히 넘어가는 나라이니 말이다. 그러니깐 여론조사를 안 믿는 것도 아니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나의 통화가 유의미했던 거라고 믿고 싶지만 또 딱히 그래보이지도 않는다. (아 결론이 뭐냐. ㅜ.ㅜ)
으음 그러니깐 총선을 앞두고 술렁이는 정치판이 영 마음에 안들고, 이 나라는 지옥이고 돌파구는 안보이고 한심스럽고 그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가난한 소시민과 텔레마케터가 불쌍하다는 것 정도? 본인이 생각할 때 경제적으로 이 사회에서 상/중상/중/중하/하 가운데 고르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서 돌고 있다. 게으른 번역가는 수입으로 본다면 당연히 '하'다 '하'.